교회사·

분단왕국과 바벨론 포로기/왕하17:18

제이비젼 2014. 6. 7. 09:41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의 흥망성쇠는 세계 어느 나라, 민족들의 역사보다 흥미진진하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정도 여하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매우 표준적인 신앙적 역사관을 보여 준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와 만국의 주권자이심을 인정할 때, 성서 밖에 있었던 수많은 나라와 민족들의 역사적 흥망성쇠도 이와 같은 신앙적 근거에 의하여 고찰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비록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나타나셨지만, 그외의 모든 민족들에게도 우주적인 로고스의 표상으로서 선한 양심과 좋은 문화와 제도 속에서 역사하셨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역사 속에 등장했던 숱한 나라와 민족들도 이러한 관점에서 보건대 그들의 문화와 도덕이 건전할 때 그들은 부흥했으며, 반면에 심한 타락과 부패로 점철될 때 그들은 혼란과 파멸을 겪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 대한 바른 신앙이야말로 모든 인류에 대한 축복의 비결인 것이다. 

 



  솔로몬이 죽은 후 이스라엘 왕국은 10지파의 다윗 왕정에 대한 거부로 이해 이스라엘과 유다 두 왕국으로 갈라졌다. 이 분단을 통해 이스라엘의 외적 정치 세력은 약화되었고 언약의 내적 영역은 크게 흔들렸다. 이 분단은 하나의 강국을 두 개의 작고 약한 왕국들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이 두 세력은 또한 상호간의 태도에 의해 요동되었다. 이 기간(B.C.922-587) 동안에 이스라엘 정치사는 멸망으로 치달았다. 간혹 부분적인 재생의 시기들이 조금씩 있었지만 결국 완전히 멸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결정적인 멸망은 이스라엘에서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나라들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하나님께서 메소보다미아에 새로운 중심 세력을 등장시킴으로 빚어진 결과였다.


1. 왕국의 분단


 1) 북부 지파들의 반란

 솔로몬의 억압 정책은 북부 이스라엘을 예루살렘 중앙정부에서 완전히 따돌렸었다. 솔로몬 왕은 자신의 강경책으로 위험한 반란을 방지할 수 있었으나 그가 죽자 쌓였던 원한이 폭발하여 이스라엘을 두 동강으로 갈라놓은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다. 솔로몬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르호보암은 처음에는 왕국의 통일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르호보암 자신의 왕위 취임을 공시적으로 선포하기 위하여 북쪽 지파들인 이스라엘 지파의 중심지인 세겜에 갔을 때 북쪽 지파들의 협상을 거부하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남유다 지파 사람들과 갈라질 것을 선포했다. 로호보암의 포용성 없고 분별력 없는 행위는 유다와 이스라엘이 연합하여 이룩된 왕국을 분단시킨 것이다. 북부 지파들은 독립을 선언하고 애굽의 망명길에서 돌아온 여로보암을 자기들의 첫 번째 왕으로 세웠다(왕상12:1-20).


 2) 분단된 제국

 새로운 왕국은 '이스라엘'을 국명으로 정했다. 전에는 통일 왕국 전체를 지칭하던 이름이었는데, 이제는 북왕국의 이름이 되었다. 남쪽 나머지 지역은 여전히 다윗 왕가에 충성했으며 유다 왕국으로 불려졌다. 두 나라로 분리된 초기에는 서로간의 적대감이 컸으며, 이로써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시대는 막을 내렸다. 분단된 제국은 그 결과가 비참하였다. 이스라엘도 유다도 이웃 나라들에 의해 위협을 받게 되었고 약소 국가로 전락하였다. 다메섹이 완전 이탈하여 갔고 블레셋인들이 깁돈 부근에서 국경 전투를 계속하였으며(왕상15:27) 동쪽 암몬도 이스라엘에 대해 충성을 거부하였다. 모압도 마찬가지로 자유를 얻었다. 동시에 남북 왕국의 산발적인 국경전이 베냐민 지파 영토에서 일어났다. 두 왕국들 중 이스라엘이 면적도 넓고 경계 형편도 좋았다. 가나안의 큰 도시들 대부분과 중요한 상업 통로들 그리고 요단 강 양편의 비옥한 땅을 차지했다. 이에 비해 유다는 산지에 위치한 작은 나라였으나 그것 때문에 북왕국보다 더 존속할 수 있었다.


2. 바벨론 포로 시대


 1) 이스라엘의 멸망

 두 왕국의 역사는 세 시기로 나누어진다. 제1기, 즉 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암에서부터 오므리까지, 유다에서는 르호보암에서부터 아사까지(왕상12-16장)이다. 이때는 서로 적대관계를 유지했고 이스라엘은 유다와의 대전에서 크게 패망했다. 다시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 아사왕은 수리아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이웃에 있는 강국 때문에 격심한 고통 가운데 말려들었던 것이다. 이런 적대 감정은 제2기에서 이스라엘은 아합과 그의 아들 아하시야와 요람으로 인해, 유다에서는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로 인해 끝이 났다. 이 두 왕가들은 결혼으로 서로 친척 관계를 맺었고 두왕국의 왕들이, 즉 이스라엘의 요람과 유다의 아하시야가 예후에 의해 동시에 죽임을 당할 때까지 외국의 공격을 합세하여 막기 위해 동맹을 맺었다(왕하10:27). 이런 화친의 시기가 끝나고 이스라엘에서는 예후와 유다에서는 요아스 이후부터 시작되는 제3기가 온다. 이 시기에 두 왕국은 다시 서로 미워하며 공격하였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아하스의 비신정적인 정책으로 인해 앗수르 군대로 말미암아 멸망케 되었다(왕하17:5).


 2) 유다의 멸망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당할 때 유다 왕국의 통치자는 아하스였다. 그의 아들 히스기야는 앗시리아가 쇠약해진 것을 눈치채고 다른 나라와 힘을 합해 앗수르에 충성하던 아하스 왕과 달리 독립을 주장했다(왕하18:7). 그러나 산헤립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의 아들 므낫세과 손자 아몬은 우상을 섬기며 백성들에게 잔악한 전제 통치를 행하였다. 그러나 아몬의 아들 요시야는 다시 독립을 주장했다. 그리하여 유다의 독립과 이스라엘 영토 중 일부를 탈환하였다. 그러나 유다에 새로운 황금 시기는 동터 오지 않았다. 앗시리아의 붕괴 이후에 정치적 공백기 없이 메데와 베벨론이 곧 등장하였다. 여러 재앙을 당하고도 각성하지 않던 유다인들은 애굽과의 음모로 바벨론을 대항하려다 느부갓네살에 의해 588년에 멸망당했다. 따라서 시드기야 왕은 그의 아들들이 처형당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고 많은 백성과 함께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다(왕하25:1-21).


3. 포로 귀환


 1) 바벨론의 유다인들

 유다인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수세기 동안의 역사는 추적하기가 매우 어렵다. 다만 예언자 에스겔의 글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비록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으나 전쟁포로와는 달리 그들은 자유스럽게 살았다. 거주 이전의 자유도 있었고 동족들끼리 마음대로 모일 수도 있었다(겔8:1). 이방 땅에 거주하는 유다인들을 결속시킨 것은 안식일이었다(겔2:12). 721년 앗수르에 잡혀갔던 이스라엘 사람과는 달리 거룩한 문서들을 읽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회당(Synagoge) 예배가 시작되었다. 세 번에 걸쳐 포로로 잡혀갔으나 대다수는 본국 유다 땅에서 살고 있었으며 그 생활상은 비참하였다.


 2) 귀환과 성전 재건

 6세기말 고레스의 바벨론 정복에 뒤이어 일부 유다인들은 귀향하여 성전 재건을 시작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귀향인들 중 새 성전의 기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예루살렘 공동체에 의하여 주전 520년에 세워졌으며, 지도자들은 예수아와 스룹바벨이었고 이들은 학개와 스가랴에게서 자극받고 지원받았다.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에게 격려받은 귀향자들은 성전재건 사업을 새롭게 시작한다. 에스랴와 느헤미야는 다른 시기에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하도록 자극하여 조소와 위협, 타협하자는 반역적인 제안에 직면하면서도 재건 사업을 완수했다.

 



 1. 분단 왕국에 대한 성경의 자료들

 1) 열왕기상 12장-열왕기하 25장 : 분단 왕국의 시기에 대해 밝혀 주고 있는 중요한 자료로 신빙성 있는 문서들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 문서들에는 편집자들의 주(註)가 첨가되어 있다. 이 주는 대부분이 왕들에 대한 도덕·종교적 평가들이다. 그러나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부 자료들은 그리 객관적이지 않는 자료에서 나온 것이며, 이런 이야기들은 오히려 이상화되어진 묘사를 보여 주고 있다.

 2) 역대기하 10-36장 : 이 자료는 왕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다루어지는 것은 남왕국(유다)에만 국한 된 것이다. 이 자료가 열왕기서와 다른 점은 이상화시켜서 묘사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몇몇 경우에서는 열왕기서 편집자들이 취급하지 않는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이상화시켜서 묘사하고 있다.

 이사야(1-39장), 예레미야, 호세아, 아모스 그리고 미가의 예언서들 또한 이 당시의 이스라엘과 유다의 사회적 종교적 상황들을 묘사하고 있으므로 분단 왕국 시대를 알 수 있는 유용한 자료들이 된다. 그러나 이런 예언서 안에도 예언자들의 말 외에 후기에 붙여진 부적절한 말이 있다. 이것들은 적절히 분류해 내야 한다.

2. 고고학적 증거

 이스라엘 역사의 국제적 배경을 다룬 문서 자료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애굽, 앗시리아, 바벨론의 문헌들 속에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이 중 이들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들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것들도 있다. 몇 개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 나름대로 독특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자료들 외에 모압 왕 메사가 세운 모압의 돌(the Moabite Stone)은 메사 왕의 메사와 이스라엘간의 관계를 설명한 그을 담고 있다. 이 관계는 왕하1:1; 3:4 이하에도 묘사되어 있다. 팔레스틴에서는 히브리어로 쓰여진 두 개의 텍스트들이 발견되었다. 그 하나는 실로암의 비문(왕하20:20)이고 다른 하나는 라기스의 편지들이다. 오므리가 수도로 세웠던 사마리아에서는 사마리아 상아 제품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왕상20:39). 이는 아합 궁의 장식이었을 것이다.

3. 바벨론 포로기의 성경적 증인들

 열왕기하 25장에는 시드기야의 반란과 그 결과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바벨론이 유대인의 총독으로 임명한 그달랴가 살해당하고 뒤이어 그의 밑에 있던 왕실 인물들이 애굽으로 이주하였다는 보고가 간략히 나와 있다. 열왕기하 25장은 바벨론에 끌려간 여호야긴이 옥에서 풀려났다는 보고로 끝을 맺는다. 예레미야 39-44장은 열왕기하 25장과 같은 보고를 길게 이야기하고 있다. 단지 여기에는 여호야긴의 석방이나 애굽에 대한 언급이 없다.

 무화과 비유가 나오는 예레미야 24장과 포로로 끌려간 자들에게 예언자가 쓴 편지인 예레마야 29장은 실제로 586년 이전 시기의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다음의 네 가지 이유 때문에 중요시된다.

 1) 무화과 비유는 포로에 대한 유대인들의 해석들 중에서 표준이 되었던 것을 표현하고 있다.

 2) 24,29장은 70년이 지난 후에 포로 생활이 끝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 예언은 매우 유력한 것이었다.

 3) 24,29장은 포로기의 상황의 일부를 보여 주고 있다.

 4) 포로 사건에 대한 예언자적 해석을 재차 설명하고 있다.

4. 바벨론 포로기의 고고학적인 증거

 팔레스틴의 발굴 장소에서는 포로기 때의 실정을 밝혀 줄 만한 자료들이 나오지 않았다. 발굴 작업은 단지거주민들의 숫자가 적었고 땅이 메마른 지역의 일반적인 모습을 확중했을 뿐이다. 메소보다미아 도시들, 특히 바벨론에서의 발굴 작업을 통해서 그곳의 생활을 분명하게 그려 볼 수 있었으며 이 시기의 사건들을 뒷받침해 줄 만한 여러 가지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바렐론 왕국에서 발견된 와이너드 판들(the Weidner Tablets)은 행정 문서들인데 이 가운데는 포로로 끌려간 유다 왕 여호와긴에게 베풀어진 혜택을 기록해 놓은 자료들이 있어 관심을 갖게 한다. 고레스가 새로운 세력자로 등장하면서 끝을 맺게 된 나보니두스의 통치를 다루어 놓은 두 개의 중요한 기록이 있다. 이것은 나보니두스 연대기(the Nabonidus Chronicle)와 나보니두스 운문 이야기(the Verse Account of Nabonidus)이다. 이 둘은 고레스가 즉위한 후 고레스의 지지자들에 의해 쓰여졌다. 따라서 나보니두스를 호의적으로 묘사했다고 생각할 수 없다. 고레스에 대해서는 좀더 풍부한 자료들을 가지고 있다. 바벨론에서 점토로 만든 통의 일종인 고레스 실린더가 발견되었고 보조자로서의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 있다. 이 작품들의 저자들은 크세노폰 헬로도루스, 이외의 희랍 역사가들로서 디오도루스 시쿠루스, 체시아스 그리고 아르리안 등이다. 그리고 요세푸스의 「유대고사」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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