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신앙칼럼

교회의 존재 근거는 부활신앙이다

제이비젼 2016. 1. 3. 01:13
 
 

250년간 기독교인을 핍박하던 로마정부가 기독교국가로 공인된 후 
로마의 황제인 콘스탄틴황제가 “아리우스”라는 자가 그리스도의 신성에 도전하며 
교회를 어지럽게 할 때,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로마전역에 교회를 소집하여
 “니케아” 라는곳에서 종교회의를 주제한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회의에 모인 318명의감독들은 대부분이 한쪽 눈이 없거나, 
실명한자. 팔이없는 사람. 다리가 없는 사람. 등등 온통 신체 불구자 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황제들에게 최고의 고통과 박해를 받고 카다콤이란 지하세계에서 살아남은 예수의 흔적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은 그런 그들이 지금 그들을 처형하고 핍박하던 로마황제의 환영을 받고 그들에게 풍성한 대접과 교회의 감독으로서의 예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딛고 일어난 승리자의 당당한 모습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화해한 자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지배를 받으며 순종하는 일꾼입니다. 
 
성도는 주안에서의 수고가 헛되지 않은 줄로 알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며 소망 중에 사는 일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일꾼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사명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머리와 몸의 관계이기 때문에 
교회의 고난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교회일꾼으로서의 사명은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어떤 고난도 기쁨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하는 사명입니다.그러므로 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했습니다. [골1:24]

2000년 전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대개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명예나 권력이 없는 어부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북쪽 갈릴리에 사는 천민들이었으며 그 당시 사회에서 아무도 인정하지 아니하고 크게 비중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저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 이후부터입니다. 갈릴리 지방의 어부들이 온 유대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전 유대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이단으로 박해를 받으면서 유대의 국경을 넘어 마침내는 로마제국의 심장부에까지 진출하여 혁명의 불길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겠습니까?그것은 바로 부활신앙입니다.그것은 영광스러운 승리입니다.저들은 수치와 고난과 박해 속에서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주의 영광을 바라보고 달렸습니다. 이러한 영화로운 부활의 능력이 승리로 나타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 위에 교회는 이렇게 주의 영광이 가득한 부활신앙에 기초하여 세워지게 되었습니다.저들의 눈에는 주의 영광을 보며 부활하신 주님을 선포하였습니다.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다' 라는 말씀이 전파되는 곳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사도행전은 저들이 복음 들고 가는 곳마다 주님도 함께 하심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드디어 사도들이 복음 들고 가는 곳마다 그 빛난 부활의 영광이 온 하늘 덮고 
그 찬송이 온 땅 가득히 퍼져나갔습니다. 
 
주님의 권능은 온 세상을 향하여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에게 권능의 팔을 들어주셨습니다. 모든 열 방이 주 볼 때까지 저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교회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을 갖고 그것을 고백하며 
그 소망을 소유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소망의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소망 때문에 모든 역경을 참을 수 있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되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소망 때문에 죽음까지도 자취할 수 있었던 것이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존재 근거는 부활신앙에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다시 살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직 죄와 멸망의 운명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다시 살지 못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멸망 당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것이 현세뿐 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인간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면 
설교도 헛되고 믿음도 헛된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모든 것은 다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웅장한 사업을 이루어도, 아무리 위대한 학문을 성취해도, 아무리 거대한 교회를 만들어도, 부활의 신앙이 분명치 않으면 다 허무한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은 인간에게 소망을 줍니다.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가? 왜 우리는 악전고투하며 싸워야 하는가? 
왜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죽음을 앞에 두고 사는 인간들로서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이러한 대답들은  모두나에게 부활신앙이 살아 있을 때에 할 수 있는 대답들입니다. 
 
그러한 부활 신앙이 없으면 우리는 '내일죽을 것이니 먹고 마시자' 하는 식의
 생활 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우리에게 내세가 없고 부활이 없다면 나라니 정의니 행복이니 존엄성이니 말해 보아야 무슨의미가 있겠습니까?  
 
 또한 부활신앙이 없는 삶의 모습은 장사를 해도 부정식품을 만들어 돈만 벌면 된다고 합니다. 권력을 잡아도 나의 임기만 넘기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부활신앙이 없는 삶의 모습은 교회생활도 신앙생활도 믿음도 타산적이고 이기적인 삶뿐입니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먼 장래를 내다 보지 않고 지금 당장의 효과를 향유하는 데에만 몰두하게 되는 것입니다.
 
 금방 잘못될 것을 뻔히 보면서도 눈 앞에 일만 생각하고 온갖 부정이 저질러지게 됩니다. 내일을 계산하지 않고 미래를 전제하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부활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진리를 지키며 정의를 수호하며 사랑을 끝까지 옹호하는 이 모든 참된 것의 파숫꾼이되어야 합니다. 부활신앙을 믿는 소망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아가야 합니다. 신학자 반 하우스는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자폐증 크리스찬” 이너무 많음을 한탄하였습니다.
 
 자폐증이란 표현하지 않는 증세입니다.반 하우스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말합니다. 
“현대 크리스찬은 듣기는 듣습니다. 교회는 오고 갑니다.그들은 설교와 성경공부를 
이해하였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부활을 말하지 않습니다.
전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들을 증거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찬송을 통하여 신앙의 자폐증이 걸린 우리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사하여 살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한없는 용서와 참사랑 가지고 
세상에 내려와 값없이 주었다
이것이 귀중하건만 날 무엇 주느냐 
이것이 귀중하건만 날 무엇 주느냐♬♬
 
자폐증 아이를 가진 부모는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슬프고 괴로워합니다.? 
마찬가지로 자폐증 크리스천을 둔 하나님 아버지도몹시 슬퍼하시고 안타까워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의 생명이며, 기독교가 서느냐, 넘어지느냐의 
문제가 달려 있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것입니다.주님은 부활로서 영화로운 승리를 우리에게 보장하여 주었습니다.우리는 이 기쁨과 감격을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려야만 합니다. 우리에게 승리와 영광과 기쁨을 주시는 부활하신 우리 예수님께 찬양으로 화답하여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우리는 이제 당당히 세상을 향하여 전진하며 선포해야만 합니다. 
장차 다가올 영광과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모든 열 방 주 볼 때까지 주님과 함께 이렇게 기도하며 주님을 찬양합시다
 
 
 
♬♫♪♪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내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
그 빛난 영광 온 하늘 덮고
그 찬송 온 땅 가득해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내
찬송가운데 서신주님
 
주님의 얼굴은 세상 향하네
권능의 팔을 드셨네
주의 영광 이곳에 가득해
 
우리서네 주님과 함께
찬양하며 우리는 전진하리
모든 열 방 주 볼 때까지
 
하늘 아버지 우릴 새롭게 하사
열 방 중에서 주를 섬기게 하소서
 
모든 나라 일어나
찬송 부르며
영광의 주님을 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