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관련

예배음악은 그 대상이 하나님이시다

제이비젼 2014. 5. 26. 13:55

예배음악은 그 대상이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찬송을 빙자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사람의 취향과 감정에 맞게 변형시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예배음악은 사람의 종교적 정서를 만족시키는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을 찬송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 앞에서 인간의 정서와 감정은 마땅히 절제되어야 한다.

 

 '감정의 절제' '감정의 제거'는 전혀 다른 것이다. '감정의 저게'는 신앙에서 감성적 요소를 전혀 배제시키로 오직 이성과 말씀에만 의존하려는 '차디찬'태도이지만, '감성의 절제'는 인간이 가진 감성을 소중히 여기되 그 무분별한 분출을 억제하고 감성을 이성과 말씀의 통제 아래 둠으로써, 신앙이 감성일변도(感性一邊到)로 흐르는 것을 막는 한편, 보다 순화(順化)된 감성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많은 부훙회의 복음찬송들이 청중들의 종교적 감성을 자극하여 신비적 도취감에 빠져들게 하는 것은 교회음악의 본질에 맞지 않다. 그것은 집회음악에 속하면서도 교회음악의 기본성격에서 멀리 벗어난 것이다. 집회는 예배보다 우선하지 못한다.

 

 일반 세속음악에서도 고전음악이나 품격있는 노래들은 감성의 절제와 정서의 내면적 표현을 그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하물며, 예배음악에 있어서 인간적 감정이 절제 되지 않고 그 생경한 정서와 그대로 튀어나오는 것은 결코 온당한 일이 아니다.

 

 출애굽기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호수아가 백성의 떠듦을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모세가 가로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짓는 소리도 아니라. 나의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진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출애굽기 32:17~19).

 

 이스라엘이 금송아지의 우상 앞에서 불렀던 노래는 '떠드는 소리, 싸우는 소리'처럼 들리는 시끄러운 노래요, 춤추는 노래였다.

 

 아모스는 예루살렘(시온)과 사마리아(그리심산)의 제사장들에게 경고하기를, "화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중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아모스 6:1,5)

 

 '떠드는 소리, 싸우는 소리, 지절거리는 소리' 같은 시끄러운 노래, 춤추는 노래... 이것은 바로 오늘 우리의 자녀들이 온 몸을 뒤흔들면서 부르는 록 가스펠의 소리가 아닌가?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찬송이 아니다, 두렵건대, 그것은 자기 민족(인간의 감성적 욕구의 분출, 종교적 정서의 만족)을 위해서 춤추며 부르는 우상의 노래가 아닌지?...

 

 "가스펠송의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이다. 그것은 불신자들을 향한 전도와 간증의 노래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께 대한 찬양의 음악은 아니다. 따라서 가스펠은 예배음악이 될 수 없으며, 신자들간의 교제나 여흥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서도 안된다." (김의작, "오늘의 교회음악")

 

 "크리스탼의 삶의 많은 영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나의 취향, 나의 선택'이 우리의 올바른 시각을 흐리게 하고 예배의 참다운 의미를 망각하게 한다."(Frank Garlock & Kurt Woetzel, "Music in the Balance)

 

 사람의 기호(嗜好), 청소년들의 취향 등이 예배나 집회 및 찬양의 성격을 임의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