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종말 / 개요

제이비젼 2014. 8. 14. 11:23






 성경의 모든 예언과 계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중심으로 하는 종말을 향하고 있다. 종말에 대한 예언은 신약 성경의 어떤 특정 부분에만 집중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신·구약 전반 에 걸쳐 내재되어 흐르고 있다. 만약 역사의 종말이 없다면 성도의 신앙은 소망 없는 무의미한 신앙이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종말이 불신자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시작을 의미하지만 성도에게는 영원한 영광과 승리에로의 출발을 뜻하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의 심판 날인 종말을 통해서 인류의 궁극적인 소망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삶이 완성된다는 종말론적 희망은 기독교 역사 철학만이 제시할 수 있는 역설적 희망이다. 


 '종말론'이라는 용어 '에스카톨로지'(Eschatology)'는 '최후', '마지막'이라는 의미의 헬라어(escato" ; 에스카토스)에서 유래된 말로서 성경의 '말세'(escatou twn cronwn ; 에스카 투 톤 크로논; 벧전1:20), '마지막 때'(escath wra ; 에스카테 호라; 요일2:18)라는 '여러 구절들을 그 기초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종말론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 '모든 것의 마지막에 일어날 일들에 관한 이론'을 뜻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이 세상의 종말이나 인류의 마지막에 관한 일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종말론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의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들이지만 보다 정확한 의미는 인간 사후 문제와 지구 종말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관한 것까지 포함된 '만물의 최종적 완성에 대한 이론'이다.(L. Saucy).


 그러므로 종말론은 단순히 초월적 능력의 개입으로 인한 이 세상 질서의 파괴와 영원한 나라의 시작으로만 이해될 것이 아니라 창조 이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쁘신 뜻에 의해 작정하신 '신적 작정'(Divine Decree), 즉 창조로부터 종말에 이르는 전 우주와 인류에 대한 그분의 온전한 계획의 완성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종말론은 죽음과 영생의 문제, 죽음으로부터 부활까지(중간키 상태)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개인적 종말론'(Individual Eschatology)과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 왕국, 죽은 자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 곧 최후의 상태의 대한 문제를 논의하는 '일반적 종말론'(General Eschatology)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제 1 장 개인적 종말론 (Individual Eschatology)


Ⅰ. 육체의 죽음(Physicl Death)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육체적, 영적, 영원 적인 죽음 모두를 포함한다. 육체적 죽음은 영혼의 신체로부터의 분리요, 영적 죽음은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뜻하며(참조; 사59:2; 롬7:24; 엡2:1),영원 적 죽음은 부활로 말미암아 재결합한 악인의 영혼과 육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추방당하여 최종적인 고통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참조; 계1:18;계20:14;계21:8). 이 중에서 육체적 죽음과 영적 죽음은 개인적 종말론에 포함되며, 영원 적 죽음은 일반적 종말론에 포함된다.


1. 육체적 죽음의 상징


 성경은 육체의 죽음에 대해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경은 육체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을 구별하여 말하고 있다(참조; 마10:28; 눅12:4). 때문에 비록 살아 있는 자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불신자를 성경은 이미 죽은 자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둘째, 성경은 육체의 죽음을 육체적 생명의 종결, 혹은 상실이라 말한다"(참조; 눅6:9; 요12:25). 이것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죽음 그 자체가 곧 영혼의 멸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생의 사역적 관계들과의 분리'를 뜻함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하면 육체적 죽음은 그가 육신을 입고 있을 때 맺었던 여러 가지 육체적 관계로부터의 격리만을 의미할 뿐 존재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육신적 삶에서 영적인 삶으로의 이전을 의미하며,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삶의 경험을 뜻하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형태에서의 관계의 지속'을 뜻하는 것이다. 셋째, 성경은 육체의 죽음을 영혼과 육신의 분리로 말하고 있다(참조; 전12:7; 약2:26), 이것은 영과 육이 각각의 본향인 하늘과 땅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는 부활 때까지 계속되다가 그리스도의 부활 때 다시 연합하여 썩지도 병들지도 않는 시공을 초월하는 완전한 몸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러므로 육체적 죽음이란 한마디로 '영혼과 육신의 분리로 말미암은 육체적 생명의 종결, 혹은 새로운 형태의 삶으로의 이전'이라 말할 수 있다.

 

2. 죄와 죽음과의 관계


 '펠라기우스파'(Pelagians)와 '소씨니안파'(Socinians)의 주장에 의하면 사람은 본래부터 '가사적'(可死的) 상태, 즉 단순히 죽음의 희생물이 될 가능성의 상태가 아닌 '사멸'(死滅)의 법칙에 종속되어 당연히 죽어야만 하는 상태로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전혀 조화되지 않는다. 성경은 인간이 죽음의 가능성은 지니고 있으되 본래부터 죽을 운명을 가지고 창조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죽음을 본래 선하게 창조된 인간의 외부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말하고 있으며, 그 원인을 '죄'로 증거하고 있다(참조; 창2:17;창3:19; 롬5:12,롬6:23; 고전15:21; 약1:15). 성경은 죽음을 인생의 자연스러운 어떤 것이라 말하지 않고 도리어 죄에 대한 신적 진노의 표현(참조; 시90:7,11)으로, 심판(참조; 롬1:32)과 정죄(참조; 롬5:16)로, 저주(참조; 갈3:13)와 사람의 마음에 공포를 심어 주는 것으로(참조; 창2:17; 행2:24), 때문에 그것은 친구가 아닌 '적'으로 (참조; 고전15:26) 묘사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죽음은 처음부터 존재하였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범죄에 관계는 필연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일반 은총'으로써 죄와 죽음의 역사를 제재하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의'특별 은총'으로써 사망의 권세를 정복하게 하셨다(참조; 롬5:17; 고전15:45; 딤후1:10; 히2:14; 계1:18;계20:14).


3. 성도의 죽음의 의미


 비록 성경이 육체적 죽음을 '죄의 값', 즉 '죄에 대한 형벌'로 증거하고 있으나 그러한 선언이 성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법, 곧 성령의 법이 성도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이다(참조; 롬8:1,2).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죽음은 결코 죄의 형벌이나 대가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죄의 종말, 곧 후패하여 썩어질 옛사람의 종말을 의미하여 성화의 완성을 뜻하는 것이다. 때문에 성도에게 있어서 죽음은 이 세상 질고와 고통 그리고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동시에 영원한 위로와 안식에 이르는 축복의 관문인 것이다(참조; 요3:36). 이렇듯 성도에게 있어서 죽음은 신자들의 영혼의 성화의 완성과(참조; 히12:23; 계21:27) 완전한 생의 시작을 뜻하며, 천국에 들어가는 확신(참조; 고전15:55)과 함께 영원한 부활의 소망(참조; 롬8:11; 살전4:16,17)을 제공하기에 두려움이 아닌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으며, 사도 바울과 같이 담대히 그것을 소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참조; 고후5:1,8; 빌1:23,24).


Ⅱ.영생-영혼의 불멸(Immortality)


1. 정의


 영혼의 불멸이란 한마디로 인생의 영혼이 육체의 죽음과 함께 소멸되지 않고 영원토록 그 독립적 실존이 보존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육신적 죽음과 함께 흙으로 빚어진 육체는 해체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혼만은 그 해체에 참여하지 아니하고 개별적 실존으로서의 그 본질을 보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보존된 육체는 또 다른 부패와 죽음의 씨를 전혀 지니고 있지 않은 채 그의 신앙 여부에 따라 영생이나 영벌에 처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의 불멸은 인간의 영혼이 육신의 죽음으로부터 부활할 때까지 거하게 되는 동시에 그 모든 교리를 떠받치고 있는 근본 교리가 된다. 한편 이러한 영혼의 영원성은 하나님의 영원하고 불멸하신 속성에 기인한 것으로서, 그의 '본래적이고 영원 적이며 필연적인 속성'이 인생에게 반영됨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본래 불멸이란 용어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적용되는 단어이므로(참조; 딤전6;16)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인 초우적 불멸과 인생의 영혼이 지니고 있는 영원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영혼이 지닌 불멸이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변화되며, 시작이 있는 영원이고 신으로부터 수여 받은 영원임에 반하여, 하나님께서 소유하고 계신, 절대로 외부의 어떠한 요인에 의해 영향받지 않는 완전한 영원이라는 점이다.


2. 영혼 불멸에 대한 성경의 증거 


 1) 구약이 증거하고 있는 영혼의 불멸성 

 일반적으로 구약에는 영혼의 불멸에 대한 가르침이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구약에도 영혼의 불멸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 

① '스올'(sheol)에 대한 언급 

 '스올'은 '묻다', '요구하다'하는 의미의 (lav ; 솨알)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래 시체를 저장하는 무덤에 대해 사용되었다(참조; 창37:35; 욥14:13).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의미보다도 육체와 영혼의 분리 상태, 곧 죽음의 상태에서의 멸절이 아닌 '존재'를 뜻하는 말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참조; 욥14:13,14;욥17:13,14; 시89:48; 호13:14). 이러한 사실은 죽은 자의 영혼이 소멸되지 않고 보존된다는 사실에 대한 강력한 증거인 것이다(참조; 시16:10;시49:14,15).

② 사자(死者)의 일시적인 능력

 에녹과 엘리야의 승천(참조; 창5:24; 삼상28:7-20)과 죽었던 사무엘의 일시적인 현현(참조: 왕하2:11)은 죽은 자의 영혼이 소멸되지 않고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해 준다. 

③ 초혼식에 대한 빈번한 경고  

 구약 성경에는 죽은 자의 영을 불러내는 "초혼씩"(招魂式)에 대한 경고가 빈번히 나오는데 (참조; 레19:31;레20:27; 신18:11; 사8:19;사29:4) 이러한 경고들은 그 당시에 초혼 의식이 상당히 널리 성행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들은 죽은 자의 영혼이 소멸되지 않고 어느 일정한 장소에 머물러 있음을 증명하며, 따라서 그것은 영혼의 불멸을 증거 하는 또 다른 증거가 되는 것이다. 

④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교리 

 신약에서 예수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과의 논쟁을 위해 출3:6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인용하셨다. 예수는 이 구절 속에 이미 부활의 사실이 암시적으로 교훈 되었음을 지적하셨으며(참조; 마22:32; 눅20:37,38), 유대인들이 이 점에 대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책망하셨다. 이렇듯 예수에 의해 증거된 구약의 부활에 관한 교리는 부활해야 할 영혼이 있음을 증거 하는 것이며, 따라서 영혼의 불멸성은 명확하게 증거 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외에도 구약에서 부활에 대해 언급한 성구들은 다음과 같다(참조; 욥19:23-27; 시16:9-11;시17:15;시49:15; 사26:19; 단12:2).


 2) 신약이 증거하고 있는 영혼의 불멸성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된 신약 시대에는 예수 자신이 생명과 영혼의 불멸성을 말씀하셨으므로 그 증거들은 자연히 구약에 비해 크게 증가하였다. 

① 사후의 영혼의 존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신약 성경은 성도나 불신자 모두 사후에 그 영혼이 존재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는데 신자의 경우는 마10:28, 눅23:43, 요11:25과 요14:3, 고후5:1에, 불신자의 경우는 마11:21-24과 마12:41, 롬2:5-11, 고후5:10에 기록되어 있다.

② 영혼의 부활을 말하는 성경 구절

 신약 성경은 성도와 불신자 모두 영혼이 소멸하지 않고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자의 부활이 곧 부활해야 할 영혼의 존재를 증명한다(참조; 눅20:35; 요5:25-29; 행24:15; 고전15장; 살전4:16; 빌3:21; 계20:12-15).

③ 부활 후의 상태에 대한 성경 구절들

 신약 성경은 성도의 불멸이 단순한 무궁의 상태로의 존재가 아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즐기는 영원하고도 복된 삶으로의 불멸로 증거 하였다(참조; 마13:43;마25:34; 롬2:7,10; 고전15:49; 빌3:21; 딤후4:8; 계21:4;계22:3,4), 이러한 증거들 역시 영혼의 불멸에 대한 또 다른 증거가 되는 것이다.


Ⅲ. 중간키 상태(Intermediate State)


 '중간키 상태'란 '영혼의 사망으로부터 부활할 때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이 기간 중에 인간의 몸은 무덤에서 부활을 기다리며 쉬게 되지만 영혼은 즉시 영광 중에 들어가서 최종 상태에 이르기를 기다리게 된다. 이러한 중간키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중간키 처소, 즉 스올과 연옥에 대한 고찰과 중간키 상태에서의 영혼의 상태에 대한 고찰이 필수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1. 중간키 처소에 대한 고찰 


 1) '스올'(Sheol)과 '하데스'(Hades)에 대한 견해

 '스올'과 '하데스'는 각각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중간 상태에 대한 용어이다. 이곳을 '장소적 개념으로서의 중간 상태'로 주장하는 자들에 의하면 그곳은 형벌의 장소도 아니고 상급의 장소도 아니다. 그곳은 의인과 악인 모두가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장소이며, 침울한 장소이고, 심판을 기다리는 임시적인 장소이다. 그곳은 또한 약화된 의식(意識)의 장소요, 침체한 무활동의 장소이며, 생의 흥미를 잃고 생활의 기쁨이 슬픔으로 변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개념은 유대인의 '삼층 구조적 우주관', 죽 하나님의 거처인 하늘과 지하 세계인 스올 또는 하데스, 그리고 인간이 거주하는 지상의 삼층 구조적 우주관에 기인된 것일 뿐 성경적 가르침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어떤 특정한 장소로서 스올과 하데스를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 스올과 하데스에 대해 악인이 내려가는 장소이되 하나님의 경고가 임하는 장소(참조; 욥:13; 시9:17; 잠5:5;잠7:27;창9:18;창15:24;창23:14)와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가 임하는 장소(참조; 신32:22)로 나타나는 동시에 때로는 의인이 내려가는 장소로도 묘사하고 있다(참조; 욥14:13,14;욥17:13,14; 시89:48). 그러므로 스올과 하데스는 장소적 의미로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만약 그곳이 영혼이 부활 때까지 거하는 장소라면 악인이 그곳에 들어가는 것에 하나님의 경고와 진노가 임할 리 없으며, 더구나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곳에 의인이 내려갈 리는 더욱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스올과 하데스는 장소적 개념이 아닌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죽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의인과 악인 모두 스올과 하데스에 내려간다고 하는 구절은 인생 모두가 죽음에 처하게 됨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2) '연옥'(Purgatory)에 대한 견해

 연옥설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중간키 상태에 대한 교리의 핵심이다. 그들에 의하면 사람이 죽을 때 완전한 자들의 영혼은 즉시로 천국에 들어가게 되지만(참조; 마25:46; 빌1:23),완전히 정화되지 못하고 아직도 가벼운 죄들에 대한 죄의 대가를 치르지 못한 자들─성도 대다수의 죽음의 상태를 말함─은 천국의 최고의 복락의 상태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정화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한다. 이 정화의 과정이 연옥에서 이루어지는데 이곳에서 영혼들은 번민과 고통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사람의 영혼이 연옥에 머물러 있는 기간은 각자의 죄의 경중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러한 고통과 연옥에서의 기간이 이 땅에 남아 있는 자들의 신실한 기도와 선행에 의해 단축된다고 한다. 로마 교회는 이러한 그들의 주장을 외경 마카비 2서 12:42-45에 두고 있으며 이 외에도 사4:4, 미7:8, 슥9:11, 말3:2, 마12:32, 고전3:13-15, 고전15:29 등을 근거 구절로 내세우고 있으나 그러한 것들은 성경을 오해한 것일 뿐 전혀 성경적인 견해가 아니다. 

 연옥설은 다음과 같은 모순에 의해 지지될 수 없다. 첫째,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에 무엇을 첨가하여야 구속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것과, 이로써 그리스도의 대속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주장이 되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둘째, 그것은 믿음 만으로의 칭의를 거부하고 행위을 포함시키므로 인정될 수 없다. 셋째, 지상의 교회가 죄의 경감을 결정할 수 있으며 죄 사함의 선포를 내릴 수 있다는 주장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넷째, 이 땅과 저 세상의 연관성을 말하므로 인정할 수 없다. 이렇듯 로마 교회의 연옥설은 '외경을 근거로 인간에 의한 후대의 발명'(Pusey)에 불과할 뿐 어떠한 성경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잘못된 교리이므로 결코 인정될 수 없다.


2.중간키 상태에서의 영혼의 상태


 1) 영혼 수면설(Psychopannychy)

 이 견해는 사람이 죽은 후에 영혼이 영적 실유로서 존재를 계속하나 육체가 부활할 때까지는 무의식적 수면 상태에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이다. 19세기 영국의 '어빙파'(Irvigites)와 미국의 '러셀파'(Russellites)에 의해 받아들여진 이 교리는 다음의 세 가지를 그 주요 근거로 하고 있다. 첫째, 성경은 종종 죽음을 자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참조; 단12:2; 마9:24; 행7:60; 고전15:51; 살전4:13) 이것은 곧 영혼 수면설을 뜻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구들이 영혼 수면설의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죽은 성도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암시하기 위해서, 그리고 주위 세계, 곧 육체와의 격리를 표현하기 위해서 육신의 죽음을 수면으로 묘사한 것일 뿐 영혼 그 자체의 수면이나 잠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죽은 자의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단언하는 성구들이 있다(참조; 시6:5;시30:9;시115:17;시146:4; 전9:10; 사38:18,19). 그러나 이 구절들이 그들의 주장대로 영혼 수면설에 대한 결정적 증거는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성구들은 죽음에 처한 사람이 다시는 현세의 삶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셋째, 사람의 운명은 최후에 심판 때에 결정되며 그 결정이 어떤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을 말하는 성구들이 있다(참조; 마7:22,23;마25:37-39,44; 요5:29; 고후5:10; 계20:12이하), 이러한 말씀들은 최후의 심판 때에 놀라 깨어날 잠자는 영혼이 있음에 대한 증거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오해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최후의 심판은 사건 심리에 대한 성격보다도 판결의 엄숙한 공포와 사람과 천사 앞에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기 위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후의 심판 때에 어떤 사람이 놀라는 것은 그 사람의 운명에 대해 놀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위로우신 공의에 놀라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듯 영혼 수면설은 성경에 의해 어떠한 지지도 얻지 못하며, 때문에 그것은 결코 성경적 개념이나 성경의 가르침이라 할 수 없다.


 2) 영혼 멸절설(Annihilationism)과 조건적 영생설(Conditional Immortality)

 이 교리들의 핵심은, 악인들은 죽은 후에 그 영혼이 멸절되며, 설령 그 존재를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의식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견해들은 그 결과에서는 동일하나 근본적인 논점에서는 서로 다르다. 즉 '영혼 멸절설'은 본래 죽지 않게 창조된 인간이 죄의 생활을 계속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단호한 처벌에 의하여 불사의 재능을 박탈당하고 마침내는 멸절되거나 혹은 영원히 의식을 잃어 실제적으로는 비존재와 같은 상태에 있게 된다는 것이지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사라는 것이다. 주로 '소씨니안파' (Socinians)와 '스토아 학파'(Stoa)에 의해 주장되다가 현재 안식 교인들과 여호와의 증인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교리는 다음의 네 가지를 그 주요 근거로 하고 있다.

 첫째, 성경은 하나님만이 고유적으로 죽지 않으신다고 증거 한다(참조; 딤전6:17). 그러므로 사람은 불사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하나님의 속성과 그의 창조 사역을 이해하지 못한 견해에 불과하다. 분명 하나님은 그 자신의 속성 중에 불사의 속성을 지니고 계시지만 그러한 속성을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사람의 영혼에게도 부여해 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의 영혼은 처음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온 불사성을 지니고 창조되었던 것이다. 

 둘째, 성경은 영생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은사라고 증거 한다(참조; 요10:27,28;요17:3; 롬2:7;롬6:22; 갈6:8). 그러나 이것은 반쪽만의 진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복된 영생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이  받는 하나님의 은사임이 분명하지만 그러한 은사와는 상관없이 영생하는 악인의 영혼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영생은 성도만의 것이 아니라 악인 역시 영생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복된 영생인가 저주의 영생인가의 차이만이 있을 뿐인 것이다.

 셋째, 죄인에게 경고로 주어진 '사망'과 '명망'은 곧 영혼의 멸절을 의미한다(참조; 마7:13;마10:28; 요3:16; 롬6:23;롬8:13; 살후1:9).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성경이 말하는 사망과 멸망의 개념을 오해한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는 사망과 멸망은 영혼의 완전한 멸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와 고통스런 영벌'을 뜻하기 때문이다

 넷째,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물을 영원한 고통 중에 있게 하는 것은 그의 사랑의 성품과 맞지 않는다. 도리어 완전히 없애 버리는 것이 그의 사랑에 걸 맞는다. 이 생각은 얼핏 일리가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죄인, 특별히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완악한 악인에게도 미치는 것이라 생각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자녀 된 자인 성도에게만 임하는 것이요, 그러한 의미에서 악인의 영벌을 통해 성도의 고난을 보상해 주고 기쁨을 주는 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의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혼 멸절설과 조건적 영생설 역시 성경적 개념이라 할 수 없다.


 3) 제 2 시련설(Second Probation)

 이 견해는 죄 가운데 죽은 자들도 중간 상태에서 회개하고 믿음을 갖게 되면 구원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견해이다. 즉 인간의 영원한 상태는 최후의 날까지 변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중간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회개하고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참조; 전15:24-28; 마12:31,32; 엡4:8,9; 빌2:9-11; 골1:19,20; 벧전3:19;벧전4:6). 그러나 이러한 견해 역시 성경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뿐 성경의 가르침이라 말할 수는 없다. 성경은 불신자들의 상태에 대해 '죽음과 멸망의 상태에서의 고정'으로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참조; 전11:3; 눅16:19-31; 요8:21,24; 벧후2:4,9; 유1:7,13). 이러한 점을 볼 때 제2시련설, 즉 중간 상태에서의 회개와 믿음으로 인한 구원의 교리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


3. 중간키 상태에 대한 결론


 성경은 중간키 상태에 대한 어떠한 장소도 암시하지 않는다. 성경은 죽은 자의 영혼이 그의 생전시의 믿음의 여부에 의해 즉각적으로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가게 되며 그곳에서 부활 때까지 그 존재의 실유를 보존하며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중간키 상태에 대한 성경적 개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망과 부활 사이에 있는 영혼의 상태를 중간키 상태라 함은 '천'과 '후'에 있는 상태들과의 관계에 의한 것이니 정당한 것이다.

 둘째, 중간키 처소가 따로 있다는 것은 성경의 증거가 없으므로 부정된다. 죽은 자의 영혼은 영생의 장소인 천국 아니면 영벌의 장소인 지옥으로 나아갈 뿐이다.

 셋째, 각 사람의 도덕적 영적 성격과 목적지는 죽는 때에 선악간 변경될 수 없이 결정된다.

 넷째, 의인들은 즉각적으로 거룩에 완성된다.

 다섯째, 의인들은 즉시 그리스도 앞으로 가서 전기간에 거기 거한다. 

 여섯째, 이 중간키 상태가 궁극적인 최종적 상태와 다른 점은 ① 신체가 없다는 점이며, ② 구속이 아직 최종적 단계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곱째, 의인과 악인의 영혼들이 다 이 기간에 존재하며, 계속적으로 의식하고 활동한다. 

 이러한 요약은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 제32장 1조의 내용을 풀어 설명한 것이다(박형룡, L.Berkhof, C,Hodge).


제 2 장 일반적 종말론(General Eschatology)


Ⅰ. 그리스도의 재림(The Second Coming of Christ)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연적인 것이나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일어나야 하며, 또 반드시 일어나게 될, 역사의 최종적 완성에 이르는 필연적인 것이다. 신약은 이러한 사실을 수 차례에 걸쳐 증거 하였으나(참조; 마24:3,27,37; 고전1:7;고전15:23; 살전2:19;살전3:13;살전4:15;살전5:23; 살후1:7;살후2:8; 딤전6:14; 딤후4:1,8; 딛2:13; 약5:7,8; 벧전1:7,13;벧전4:13; 요일2:28 등), 예수님 자신도 스스로 재림에 대해 여러 번 말씀하셨다(참조; 마24:30;마25:19,31;마26:64; 요13:3). 뿐만 아니라 주께서 승천하실 그들의 서신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역설하였다(참조; 행3:20,21; 빌3:20; 살전4:15,16; 살후1:7,10; 딛2:13; 히9:28). 이렇듯 그리스도의 재림은 반드시 있을 것이며, 때문에 성도들은 그의 재림을 대망하고 준비하여야 하는 것이다.


1. 재림의 전조들 


 1) 이방인을 부르심

 신약 성경의 몇몇 구절들은 주의 재림 전에 먼저 천국 복음이 세계 만국에 전파될 것을 말하고 있다(참조; 마24:14; 막13:10; 롬11:25). 또 다른 구절들은 신약 시대에 이방인의 상당한 수가 천국에 들어올 것을 증언한다(참조; 마8:11;마13:31,32; 눅2:32; 행15:14; 롬9:24-26; 엡2:11-20). 이러한 구절들은 그 실체가 무엇이든 간에 땅 끝까지 주의 복음이 전파된 뒤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을 가르쳐 준다.


 2) 이스라엘의 회심

 신약과 구약은 다같이 이스라엘의 미래의 회심을 말한다(참조; 슥12:10;슥13:1; 롬11:25-20; 고후3:15,16). 이 중에서 롬11장의 내용은 이 사건을 시간의 종말과 관련시켜 언급하였다.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이 구절들에서 이스라엘이 마침내는 전체적으로 주님께 돌아올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라의 자손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어쫓긴 자'(마8:11,12)로 말씀하셨으며, 그들이 구약과 같은 상태로 회복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말에 있을 이스라엘의 회심은 이스라엘의 많은 수가 주님께 돌아올 것으로 보아야 한다.


 3) '적그리스도'의 출현

 적그리스도에 대한 요한 사도의 표현은 '적그리스도' 그 자체였으나 바울은 '불법의 사람'이라 표현하였다. 때문에 예로부터 적그리스도의 실체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논란에 많은 비중을 두고자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적그리스도의 실체가 사탄이든 미혹하는 영이든 아니면 역사상에 실제로 나타났던 압제자든 그리스도의 실체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성도를 미혹하여 스스로를 재림주 또는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모든 세력, 사람, 교리, 악령을 통틀어 적그리스도라 생각해도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에 대한 종말론에서의 강조점은 그 실체가 무엇이냐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적그리스도가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많이 나타나 그리스도와 교회를 대적하고 성도를 미혹하며 압제할 것이라는 교훈과 경고에 그 강조점이 있는 것이다.


 4)표적과 기사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앞서 있을 몇 가지의 표적과 기사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각처에 전쟁과 기근, 지진이 있게 된다. 이것은 고난의 시작이라고 불린다. 둘째, 대환난이 있을 것이다. 이 기간 중에 어떤 의인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박해와 순교를 당하게 될 것이다. 셋째,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할 것이다. 넷째, 하늘에 무서운 징조들이 나타나 하늘의 권세들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참조; 마24:29,30; 막13:24,25; 눅21:25,26).


2. 재림의 시제


 1) 재림의 시기

 재림의 때에 대한 성경의 확언은 그날과 그 시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참조; 마24:36)는 그리스도의 선언으로 귀결된다. 즉 주님은 재림의 전조와 징조를 통해 그 때에 대한 막연한 추측은 할 수 있어도 그 정확한 때는 결코 알 수 없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증거는 종말에 대한 구약의 관심이 종말의 상태에만 있었을 뿐 그 연대기와 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참조; 사50:30; 렘7:32). 성경이 말해 주고 있는 재림의 시기에 대한 분명한 언급은 단지 그것이 '속히' 일어날 임박한 사건으로 계시되었다는 점이다(참조; 막13:33-37; 눅12:35-46; 계22:7).


 2)재림의 양식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양식은 다음의 다섯 가지로 분류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인격적 재림 : 그리스도의 재림은 어떤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은유적으로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재림하신다(참조; 행1:11;행3:20; 고전15;23; 빌3:20; 골3:4; 딤후4:8 등), ② 실제적 재림 : 그리스도는 오순절 성령 강림과 같은 영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 육체를 가지고 임하실 것이다(참조; 행1:11;행3:20,21; 히9:28; 계1:7). ③ 가시적 재림 : 주께서 실제적인 육신을 가지고 임하신다는 사실은 그의 재림이 모든 육체가 볼 수 있는 가시적인 재림이라는 사실을 뜻한다(참조; 막13:26; 눅21:27;눅24:30;눅25:64; 행1:11; 골3:4; 딛2:13; 히9:28; 계1:7). ④ 돌발적 재림 : 그리스도의 재림은 순간적이요 불시적이며 돌발적이다(참조; 마24:36-44;마25:1-12; 막13:33-37; 살전5:2,3; 계3:3;계16:15). 비록 재림의 전조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조일 뿐 재림의 때에 대한 정확한 지시는 아니다. ⑤ 영광스러운 승리의 재림 : 그리스도의 재림은 비하의 신분으로 오신 그의 초림과 다르다. 그는 영광으로 오실 것이며(참조; 히9:28),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고(참조; 마24:30),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시며(참조; 살후1:7), 모든 세력을 정복하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오신다(참조; 계19:11-16).


 3) 재림의 목적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가 십자가상에서 이룩하신 일을 완성하기 위해, 즉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세상과 세상의 왕인 사탄을 심판하여 그의 백성의 온전한 구원을 이루 시기 위함이다. 또한 그의 재림은 세상의 종말에 미래의 시대, 곧 만물의 영원한 상태를 보여 주심으로 죽은 자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이라는 두 개의 큰 사건을 정식으로 시작하며 완성하시기 위함이다(참조; 마13:49,50; 눅9:26; 요5:25-29; 행17:31; 롬3:3-16; 고전4:5; 계20:11-15;계22:12 등).


Ⅱ. 천년기설(The Millennium)


 천년기설이란 계20:1-6을 기초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 왕국이 그의 재림 전이나 재림 후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 이론들과 천년 왕국 자체를 부정하는 이론을 말한다. 이러한 세 가지 이론을 가리켜 '후천년설'(post-millennium) 즉 천년 왕국 후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학설과, '전천년설'(pre-millennium) 즉 천년 왕국 직전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학설, 그리고 '무천년설'(A-millennium) 죽 천년 왕국 자체를 영적으로 이해하여 하나의 기간으로 보는 학설로 나뉜다. 이 견해들 중 정확히 어떤 것이 성경적인가 하는 것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세 가지 학설 모두 강력한 성경적 근거를 지니고 있고, 역사적 전통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심각한 난제와 반대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각각의 선택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넘겨져 왔고 이런 이유에서 교회의 공적 고백은 이들 중 그 어떤 것도 결정적으로 지지하고 있지 않으며 정통 신학과 보수 신학자들 역시 각각의 견해를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본고에서는 이들 세 견해 중 어떤 한 가지를 선택 주장하기보다도 각각의 주장과 난제를 소개하는 정도에서 머물고 각각의 선택은 개인적인 문제로 넘기고자 한다.


1. 후천년설'(post-millennium)


 이 이론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 왕국 후에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천년왕국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복음 시대에 나타나며, 그리스도는 그 종말에 오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후천년설은 역사적 변천에 따라 다음의 두 종류로 나타난다. 


 1) 후천년설의 두 종류

 이전의 후천년설은 복음이 점진적으로 전세계를 감화시키다가, 마지막 날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나타나 풍부한 영적 복음의 시기로 들어가게 될 것이며, 이 시기가 지난 다음에는 짧은 기간의 배교, 악의 세력과 무서운 최종적인 투쟁이 있게 되고, 이 일들이 있은 후에 그리스도의 재림, 일반적 부활, 최후의 심판 등 여러 사건들이 '동시에'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후천년설은 복음의 전파와 이에 따르는 성령의 역사에 의해 천년 왕국이 도입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화의 완전한 자연적 과정의 대결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즉 인간 스스로 그들의 교육과 개정된 법률과 사회 개혁 등을 통하여 새 시대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다.


 2) 후천년설의 난제  

 이 교리의 근본적인 개념, 즉 전세계가 점진으로 그리스도에게 돌아온다는 것, 또는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리라는 것은 재림시에 대한 성경의 묘사와 어울리지 않는다(참조; 마24:6-14,21,22; 눅18:8;눅21:25-28; 살후2:3-12; 딤후3:1-13; 계13장). 더욱이 현재의 시대가 대변혁으로 종결되지 않고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새로운 시대로 들어간다는 것은 비성경적이다(참조; 마24:29-31;마24:35-44; 히12:26,27; 벧후3:10-13). 또한 자연의 진화와 교육, 사회 개혁, 입법 활동에 의한 인간의 노력이 결국은 기독교 정신의 완전한 통치를 가져온다는 현대 사상은 성경적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자연적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방법과 권능에 의해 성취되기 때문이다.


2. 무천년설(A-millennium)


 1) 무천년설의 주장

 이 견해의 핵심은 '천년기를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요한계시록20장의 천년 왕국을 신약 시대(땅 위에서 복음이 전파되는 시대 - 그리스도의 초림으로부터 재림까지의 시대) 그 자체라고 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중간 상태를 거치지 않고 마지막 날 곧바로 완전하고  영원한 형태의 하나님 왕국으로 완성된다고 본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성경에 일시적이 아닌 영원한 나라로 묘사된 것과 미래의 왕국에 들어가는 각 사람이 영원한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2) 무천년의 난제 

 첫째, 무천년설은 사탄의 사역과 패망을 역사적 진행으로 보지 않고 모두 한 가지 사건이 여러 번 되풀이 된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기록은 사탄의 활동과 그 패망을 분명한 역사적 진행으로 말해 준다. 즉 계12:10은 사탄의 패망과 계13-17장의 최후의 발악, 그리고 계19:11-21의 궁극적인 멸망은 동일한 사건의 반복이나 강조가 아니라 분명한 역사적 진행에 대한 증거로 보여 주는 것이다.

 둘째, 성경은 분명히 이중 부활과 이중 심판이 있을 것을 말한다. 즉 살전4:16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만이 일어날 것을 말하고 있으며, 계20:4-6 역시 첫째 부활을 말하며 둘째 부활이 있을 것임을 증거 하였다.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심판 역시 신자들에 대한 심판과(참조; 죽14:14; 고전4:5;고전3:10-15),비신자들에 대한 심판이(참조; 계20:11-15) 분명히 따로 있을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무천년설에 의하면 이러한 성경의 주장과 증거는 완전히 무시된다.

 셋째, 무천년설의 견해는 지나치게 영적이다. 이 견해는 계20:1-10의 말씀을 도저히 풀 수 없게 되자 그것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그 모든 것을 영적으로만 해석한다. 이러한 경향은 천년 왕국의 실재성을 영적으로, 하나의 기간으로 해석하려는 그들의 시도로 절정을 이룬다. 하지만 재림과 천년 왕국 그리고 그 모든 사건들은 앞으로 일어나게 될 역사적 실제이며, 실제적인 역사적 전개 상황이다.


3. 전천년설(pre-millennium)


 1) 전천년설의 핵심

 이 견해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 왕국 이전에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천년 왕국이 시작되는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미 죽었던 성도들이 부활하고 또 그 때에 살아 있는 신자들이 변화하여(참조; 고전15:52; 살전4:16-17) 공중에 올라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이 땅에 내려와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 노릇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의 순서를 문자 그대로 따른 것이며, 그 가장 강력한 근거를 계20:1-10에 둔다(H.Barvink).


 2) 전천년의 난제

 첫째, 이 견해는 영적인 하나님의 왕국을 지상 적이요 국민적 왕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둘째, 성경은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단번에 말하고 있으며(참조; 단12:2; 요5:28,29; 행24:15), 또한 의인의 부활이 마지막 날에 있을 것이라고 말함에도 불구하고(참조; 요6:39,40,44,54;요11:24) 이 견해는 의인과 악인의 부활 사이에 천년간의 간격을 두고 있다. 셋째,  이 견해는 영광스러운 성도와 정욕에 사로잡혀 있는 죄인이 아직 죄와 죽음이 날뛰고 있는 이 지상에서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으며, 어떻게 서로 교제할 수 있겠느냐 하는 데 대하여는 설명 할 수 없다.


Ⅲ. 부활(The Resurrection)


1. 부활에 대한 성경적 증거 

 구약은 죽은 자의 부화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으나 이러한 주장은 옳지 못하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가르침에서 출3:6을 부활에 대한 구약의 증거로 말씀하셨다(참조; 마22:31,32). 이 외에도 구약은 '스올'에서의 구출을 말하는 구절들에서 (참조; 시49:15;시73:24,25; 잠23:14), 또한 사26:19과 단12:2에서도 명백히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은 구약보다 더욱 명백하고 더 풍부한 증거를 보여 주고 있다. 예수님은 사두개인의 부정에 대항하여 죽은 자의 부활을 변증하셨으며(참조; 마22:23-33), 또한 그것을 아주 명백하게 여러 번 말씀하셨다(참조; 요4:25-29; 요6:39,30,44; 요11:24; 요25:14:3; 요17:24). 이 외에도 바울 사도는 고전 15장 전체를 통해 부활과 그 사실의 중요성을 역설하였으며, 살전4:13-17;계20:13 등도 이러한 부활에 대해 힘있게 증거 하였다.


2.부활의 성질

 

 1)육체적 부활

 혹자는 인생의 부활을 '영적인 부활'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신체의 부활에 대하여 명백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즉 그리스도를 부활의 '첫 열매'요 죽은 자들 중의 '먼저 나신 자'로 부르신 것은 성도의 부활도 그와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을 뜻하며, 때문에 그의 부활이 신체적 부활이었으므로 성도의 부활 역시 육체적 부활일 것이라는 실에 대한 증거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이 신체의 구속을 포함한다는 말은 이 때 부활하는 신체는 지상에서의 신체와 같은 나약하고 부패하며 시공의 제약을 받는 육체가 아니라 죽음과 질병이 없고 영원히 썩지 않으며, 시공을 초월하는 신령한 몸을 말한다(참조; 고전15:42-49).


 2) 의인과 악인의 부활

 '영혼 멸절설' 또는 '조건적 영생설'을 믿는 자들은 악인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악인의 영혼은 죽는 순간 소멸해 버리는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악인도 부활할 것을 증거하고 있으며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참조; 단12:2; 요5:28,29; 행24:15).


 3) 의인과 악인의 부활의 차이 

 의인의 부활은 '영생을 위한 부활'이지만 악인의 부활은 '영벌을 위한 부활'이다. 성도에게 있어서 부활은 구원과 영화를 뜻하지만 악인에게 있어서의 부활은 죽음과 영원한 고통을 위한 부활인 것이다. 

 

3. 부활의 시기


 성경에 의하면 부활은 그리스도의 재림 및 세계의 종말과 때를 같이한다. 최후의 심판 직전에 있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즉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것이며(참조; 고전15:23; 빌3:20,21; 살전4:16), 또한 마지막 날과(참조; 요6:39,40,44,54;요11:24) 최후의 심판과도 연결된다는 것이다(참조; 요5:27-29; 계20:11-15).


Ⅳ. 최후의 심판과 궁극적인 상태(The Last Judgment and The Final State)


1.최후의 심판


 최후의 심판이란 세상 끝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성적 도덕적 피조물들을 그들의 시간 안에서, 그들 거룩한 율법의 광명 중에 전 이성적 도덕적 세계의 의식 앞에 행한 모든 일들과의 관련에서 심사하여 판단하시고 그들의 영원한 운명을 최종적으로 선언하시는 일이다.


 1) 심판장과 그 보조자들

 최후 심판의 심판장은 중보자인 그리스도이다(참조; 마5:31,32; 요5:27; 행10:42;행17:31; 빌2:10; 딤후4:1). 이러한 영광은 그의 속죄사역에 대한 상급으로 그에게 주어진 것이며, 때문에 이것은 그의 승귀의 직분의 일부가 된다. 천사들은 이 사역을 돕기로 되어 있으며(참조; 마13:41,42;마24:31;마25:31), 성도들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의 심판에 참여하게 된다(참조; 시149:5-9; 고전6:2,3; 계20:4).


 2) 심판 받을 자들

 모든 인류는 그의 심판의 대상이다(참조; 전12:14; 시50:4-6; 마12:36,37;마25:2; 롬14:10; 고후5:10; 계20:12). 이것은 악인만이 아니라 의인 역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것은 죽은 자만이 아니라 산 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됨을 의미한다. 사탄과 귀신들도 심판의 대상에 포함되다(참조; 마8:29; 고전6:3; 벧후2:4; 유6). 이들의 심판은 아마도 최후의 시판에서 절정을 이룰 것이다.


3) 심판의 시기

최후의 심판은 각 사람의 전 생활 위에 임할 심판이기 때문에 그것은 자연히 세사의 종말에 있을 것이며, 또한 죽은 자의 부활 직후에 있을 것이다(참조; 요5:28,29; 계20:12,13). 한편 심판의 기간이 정확히 어느 정도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성경의 증거에 의해 성도에 대한 심판(참조; 눅14;14;고전3:10-15;고전4:5; 벧전5:4)과 악인의 심판이(참조; 계21:11-15) 분리되어 실시될 것임은 분명하다.


4)심판의 기준

 성도들과 죄인들을 심판할 기준은 '하나님의 계시되 의지'이다. 이방인은 자연법에 의해서, 유대인은 구약의 계시에 의해서 그리고 신약의 신자들은 구약의 계시와 함께 주어진 복음의 요구에 의해서 심판 받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도 그의 심판에 불복하거나 불응할 수 없으며,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될 것이다(참조; 마11:22,24; 눅12:47,48;눅20:47; 고후9:6).


2. 궁극적 상태-최후의 상태


1) 악인의 최후 상태

 악인이 거처하게 될 장소는 '지옥'이다. 이곳은 어떤 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현재에도 체험할 수 있는 '주관적인 상태의 고통'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실제적 장소이다(참조; 마13:42; 눅8:31; 벧전3:19; 벧후2:4; 계20:14,15). 이곳에서 악인들은 '영원토록'(참조; 마9:43; 막9:48; 눅16:26) 고통 당하게 되며 불안을 경험하게 되고 울며 이를 갈게 되는데 (참조; 마8:1;마13:50; 막9:47,48; 눅16:23,28; 계14:10;계21:8), 이 모든 형벌의 핵심은 그들이 생명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추방당한다는 것이다.


 2)의인의 최후 상태

 의인의 최후 상태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전개될 사건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천시지', 곧 '새 하늘과 새 땅'이다. 마19:28은 '세상이 새롭게' 될 것을 말하고, 행2:21 역시 '만유를 회복하실 때'를 말함으로 이러한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그릇은 이 세상에서 누릴 상태가 아닌 분명한 하나의 장소이며 거할 곳이 많은 '아버지의 집'(요14:2)이다. 이곳의 아름다움은 계21,22장이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곳에서 의인은 하나님과 함께 완전한 행복과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되며, 영생의 축복과 안식을 누리게 된다(참조; 마25:46; 롬2:7;롬21:10; 고후4:17; 히4:11; 계21,22).


맺는 말

 

 종말에 대한 가르침은 불신자에게 헤어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를 안겨 준다. 그러나 신자에게는 새로운 각성과 영원한 세계, 그리고 장차 얻을 상급에 대한 소망을 가져다준다. 때문에 종말론은 성도에게 커다란 유익을 준다. 그것은 종말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이 땅의 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적 종말론이 사교(邪敎)의 종말론처럼  금욕주의나 현실 도피주의를 강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성경적 종말론은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는 생활을 깨우쳐 주고 이 땅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소유하게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서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는 성실한 삶을 살아가게 한다. 그러므로 종말론은 언제나 강조되어야 하며, 건전한 종말론의 가르침을 통해 성경 안으로, 성경을 통한 삶을 살게 하여 궁극적인 승리의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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