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 즉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는 말씀을 어겼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70년간 이방의 식민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정한 기간이 차자 바사왕 고레스를 세우셔서 유다의 포로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게 하셨다. 돌아온 이들은 성전 재건을 위하여 힘썼으나 물질적 어려움과 이방인들의 방해 때문에 성전 지대만 놓았을 뿐 완성시키지는 못하였다.
이때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 등이 돌아와 여러 방해공작에 대하여 기도와 고레스의 칙령을 가지고 맞섰으며,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는 성전 재건을 외쳤다. 그 결과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되었는데 이 성전은 예루살렘 멸망 때까지 존속하였다.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국권이 상실되고 이방인에게 나라를 빼앗긴 이스라엘은 앗수르제국의 식민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남쪽의 유대 왕국은 앗수르를 제압한 신바벨론 제국의 포로가 되었으나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해방되어 유배생활을 청산하고 예루살렘을 회복하도록 허락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그 동안의 민족적 수난기를 겪는 동안 야훼공동체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바사제국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
앗수르를 제압한 신바벨론은 주전 538년에 바사(Persia)의 정복자들에 의해 멸망되었다. 바사제국의 융성은 유다의 재건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예레미야 선지의 입으로 하신 말씀, 곧 "70년이 마치면 나 여호와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내가 그 땅에 대하여 선고한바…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니"(렘25:12,13),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visit)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29:10) 하셨던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는 바사제국 초대 왕 고레스(Kores B.C.539-529) 원년에 그의 마음을 감동시킴으로써 온 나라에 공포(公布)하고 조서(詔書)를 내림으로서 여호와의 말씀을 응하게 하였다. 고레스 왕(Cyrus, king of persia)은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스1:1-3)는 말로 유다공동체 소속, 모든 유다인의 귀환을 허가하였다. 혹 귀환하지 아니할 바벨론 잔류자에 대하여서는 별도의 조치를 취하였던 바,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던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지라"(스1:4)고 선포함으로써 그의 조치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충성에서 나온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리하여 첫 번째 귀환이 이루어졌다(스1:5).
2. 바사제국의 유대 정책
이러한 바사제국(앗시리아와 인도 사이에와 트란스 카스피 해 남쪽과 페르시아 만 사이에 위치한 산악지대의 강력한 제국으로서 오늘날 이란의 아리아인 종족 집단이 통치하였다)의 정치 기조는 외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diaspora)과 고국땅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 모두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바벨론에 끌려간 포로의 대부분이 유다의 지도계층이었던 만큼 포로귀환은 유배의 종식과 유대인의 해방, 유대 민족성과 회복, 유대교의 근본적 재건을 의미한 것이다.
또한 고레스가 복합민족국가로서 바사제국에 속한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제각기 고유의 민족언어를 사용하도록 관용 정책을 베풀었다(에1:22). 앗수르와 바벨론은 정복한 땅 이스라엘과 유다에 아랍어를 사용하는 계층의 민중을 이주시켰으며, 이스라엘과 유다 귀족들은 포로로 잡혀가 유배생활을 하던 중 당시 세계적 공용어로 승격된 아람어(스4:7)를 습득하여 귀환하였다. 그리하여 히브리어는 제의용어로 계속 사용되었으나 팔레스틴 반도의 민중언어로는 아람어가 사용되었다.
고레스의 유대 정책은 결과적으로 팔레스틴 유대인과 고대 후기의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세계적 공용어인 아람어 사용을 유발하였다. 이로 인한 정신적 통일과 유대교의 발전에 극히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은 알렉산더 대와의 언어정책으로 히브리인들이 당시 세계 공용어인 헬라어를 사용하게 한 것과 대등한 결과를 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리오 왕은 수사(Susa 왕궁)와 에베소(Ephesus) 사이에 거대한 도로(King's Street) 등 군사와 무역을 위한 도로망을 부설하였고, 예루살렘을 거쳐 애굽으로 향하는 육로개설을 염두에 두고 유대와 우호적 관계를 추구하면서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 언급되는 공문서신 내왕을 위한 우편통신망을 확충하였다. 이러한 교통과 통신제도는 헬라인과 로마인들이 더욱 발전시켜 초대교회 사도들의 복음전파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다리오 왕의 제국통치의 질서정연한 모습은 주전 520년경의 스가랴의 첫 번째 환상에 예언적으로 나타난 바 있다(슥1:8-11).
3. 종교 회복을 위한 스룹바벨의 시온주의
고레스 왕의 구체적인 성전 재건 칙령(스6:3-10)에 따라 유다 목백(牧佰, the prince of Judeh, 스1:8,11)이 총독으로 임명되어(스5:14) 성전 재건에 힘썼으나 성전의 지대(the foundation of the House of God)만 놓았을 뿐 성전 건축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스5:16).
다윗 왕의 후손(대상3:17; 스3:2)인 귀족 스룹바벨(Zerubbabel), 사독 가문의 후손인 제사장(스3:2) 예수아(Jeshua) 등 시온 회복의 열망을 지닌 강력한 시온주의자 일단(一團)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다(스2:1-10). 이 시온집단에서 장로라 불린 세습귀족들(스5:5 이하)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들로 참여하는 귀족집단이 되었다. 그들은 시온 회복을 반대하는 현지인들(스4:1-5)과 시리아 총독(스5:3-17)의 방해공작에 대하여 고레스의 칙령으로 맞섰으며, 그 후에는 다리오 왕의 추가적으로 강화된 칙령을 받아내었다(스6:11-13).
유대 장로들은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권면에 힘입기도 하였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 그 아들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다리오 왕 6년(B.C.515년)에 완공하였으니 이를 스룹바벨 성전이라 일컫게 되었다. 이때의 예배 형태는 포로기 이후 시대의 특징적인 것인데 헤롯 성전 개축 이후 예루살렘 멸망(A.D.70년)까지 존속하였다.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바사 왕의 위임을 받아 팔레스틴으로 귀환하여 예루살렘에 튼튼한 시온공동체 형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방인과의 약혼을 취소하고 결혼을 금지함으로써 시온공동체의 순결을 지향하였으며 유대인들로 하여금 율법에 종속시켰다. 왕의 포교가 율법을 보증함으로써 예루살렘과 유대에서는 율법이 바사 국법의 효력을 지녔으며 그들의 의식 속에는 왕의 명령 위에 율법을 두었다. 시온공동체의 종교의식은 바사당국의 보호에 의하여 율법 규정에 따라 자유롭게 종교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에 의하여 이방민족과의 일체의 접촉이 용납되지 아니한 시온공동체는 여호와에게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임을 주장하는 이웃의 사마리아인들로 하여금 첨예한 감정 대립을 일게 하였다(눅17:18; 눅4:9). 그리하여 사마리아인은 모세오경이 예루살렘이 아닌 그리심(Garizim)을 성산(聖山)으로 지시하고 있음을 내세우고 있었다(신11:29; 신27:12,13; 요4:20).
1. 바사(Persia)
구약 역사상 가장 강대하고 광대한 나라 중의 하나로서 메대인과 더불어 아리안(이란)족에 속하며, 언어는 인도·유럽어군에 속한다. 바사가 강성해진 것은 고레스 왕 때부터인데, 그는 B.C.6세기에 메대, 리디아, 바벨론 등을 정복하여 대제국을 건설하였고, 그의 아들 감비세스는 그 영토를 애굽에까지 넓히기도 하였다. 다리우스 1세가 판도를 더욱 넓혀 강대한 나라를 만들기도 하였으나 B.C.331년 알렉산더 대제의 동방원정에 의해 멸망되었다. 구약에 등장하는 왕으로서는 고레스, 다리우스 1세, 석세스 1세, 아닥사스다 1세, 다리우스 3세 등이다. 바사의 종교는 배화교(조로아스터교)로서 이는 빛과 어두움, 선과 악이라는 대립 원리를 기초로 한 이원론적인 것에 기초하고 있다.
2. 고레스 왕(Cyrus A.D.559-530)
알렉산더 대왕(B.C.331년)까지 200년간 계속된 아케메니드 바사제국의 건국자로서, 이사야는 그에 대해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성전을 재건할 야훼의 목자라고 칭송했다. 동부 엘람의 한 지역인 안산의 왕이었던 부왕 캄비세스 1세(B.C.600-599)가 죽자 고레스가 B.C.559년에 왕위에 올랐다. 549년에는 서진하여 소아시아의 할리스(Halys) 강에 이르기까지 메대의 전영토를 흡수했다. 546년에는 막대한 재산을 가진 푸디아 왕 크로서스가 통일 메대-바사제국을 인정하려 하지 않자 그를 공격하여 그의 제국을 정복했다. 그리고 539년에는 바벨론을 정복하여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리하여 할레스틴도 고레스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바벨론에 입성한 고레스는 포로로 잡힌 유대인들의 귀국을 허락했을 뿐 아니라 저들을 고무하여 성전재건을 하도록 했다. 더욱이 그는 느부갓네살 왕이 솔로몬 성전에서 약탈하였던 그릇들을 유대인들에게 돌려주기도 했으며, 두 번째 성전건축에 있어서는 재정적인 후원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성은 오늘날에도 인정되고 있으며, 이사야가 예언했던 구제자는 고레스에까지 실현되었다.
3. 포로
1) 앗수르 포로 : B.C.743년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이스라엘의 배가 왕고 수리아의 르신 왕이 가신국인 유다의 아하스 왕과 전쟁을 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과 수리아로 쳐들어 왔다. 두 나라를 전멸시킨 디글랏 빌레셀 3세는 몇 명을 포로로 사로잡아 갔다. 두 번째 포로는 북왕조가 파괴되고 수도 사마리아가 파괴된 후인 B.C.722US 앗수르의 살만에셀이 유다 왕 호세아가 앗수르를 배반하고 조공도 드리지 않자 호세아를 옥에 가두고 사마리아를 취할 때 이루어졌다.
2) 바벨론 포로 : B.C.608년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을 항복시킨 후 유다의 여러 방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예언자 예레비야는 3차례의 포로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첫 번째로 포로로 잡혀간 시기는 느부갓네살이 재차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인 B.C.597년이다. 여화야김이 조공을 바치지 않자 쳐들어왔으나 여호야김은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즉위하였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유다의 지식층을 포로로 잡아갔다. 두 번째 시기는 11년 후인 B.C.586년 시드기야를 즉위시키고 바벨론에 충성할 것을 강요하였으나 충성하지 않자 화가 난 느부갓네살은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아의 눈을 뽑고 80여 명의 예루살렘 지도자들과 함께 립나로 끌고가 거기서 처형하였다.
3) 포로생활 : 포로들은 남쪽 메소보다미아 지역에 거주했었다. 자유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며 그들 중 몇 명은 관직이나 지위를 얻는 등 특별한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으나 느부갓네살의 건축에 동원되어 노역에 보충되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결혼을 할 수 있었고, 자녀들을 번성시킬 수 있었으며 예루살렘과 연락을 취할 수도 있었다. 종교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도 허락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를 통해 고향 땅에 돌아가고자 하는 염원과 희망을 소생시켜 주었다
에스겔을 중심한 이스라엘 왕족은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핵을 이루었으며, 예루살렘 복구를 위한 열정과 지도력의 중심이 되었다. 예레미야는 포로 기간이 70년간 계속될 것임을 예언하셨는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은 성전이 파괴된 B.C.586년이었고, 성전이 다시 재건되고 봉헌된 B.C.516년에 귀환하였다. B.C.538년에 바사의 고레스 왕은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키고 유대인들이 그들의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허락한다는 내용의 칙령을 발표하였다.
유대의 총독인 스룹바벨의 지휘 아래 유다로 돌아온 첫 번째 집단은 새로운 성전 건축에 종사했었다. 에스라의 지휘 아래 유다로 돌아온 두 번째 집단은 B.C.457년에 예루살렘 성의 재건을 시작했다. B.C.444년에는 아닥사스다의 술 맡은 자였으며, 유다 총독을 .지낸 느헤미야가 돌아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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