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적인 삶의 모습 (2)
쾌락을 쫒는 태도
쾌락을 쫓는 태도 역시 세속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지만, 그 대상이 건전해야하며 도에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만 세속적인 사람들의 특징은 지나치게 쾌락을 추구하기에 가정이 무너지고 삶이 파괴 되다시피 한다. 대부분의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기회가 나면 술을 마시고 싶어 한다. 성경은 술을 마시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 않지만,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동기를 금하고 있다. 성경에서 인정하는 술은 식사 등에서 즐거움을 더하기위해 포도주나 맥주를 한, 두잔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정도라면 취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좋은 기분이 유지되다가 잠시 뒤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즉, 지나치지 않게 삶을 즐기는 한도 내에서만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목적은 그게 아니라 취하기위해서이다. 그리셔 빨리 취해 기분이 불콰해지도록 높은 도수의 술을 마시거나 여러 술을 혼합하여 마시기도 한다.
하나님이 술에 취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술은 중독성이 있어 마시면 마실수록 취한 기분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절제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애주가들은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중독자에 가깝다. 술에 취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술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더불어 건강에 치명적인 해악을 감수해야한다. 또한 술을 마시면 판단력이 흐려져서 비도덕적인 행위에도 담대해진다. 불법적이고 불의한 일을 모의하고 뇌물과 향응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술자리가 마련된다. 술에 의지해서 동료의식을 느끼고 양심의 가책을 피하고 싶어 한다. 또한 술은 음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음란행위에는 대개 술이 매개체로 작용한다. 술자리에는 으레 시중드는 젊고 예쁜 여성이 동반되고, 술에 거나하게 취하면 자연스레 음란해진 분위기에 편승해서 비도덕적인 성관계가 이어진다. 이처럼 술과 음란이 서로 뗄 수 없는 사이처럼, 가까이 있기에 필연적으로 불륜의 죄악을 잉태하게 되는 이유이다. 술에 취해 기분이 좋아지는 상태가 문제가 아니라, 술을 마시고 취하게 되면 자연스레 온갖 불의한 죄악의 온상이 되기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술 취함을 즐기는 사람들은 천국의 자격이 없음을 성경에는 수도 없이 말하고 있다.(갈5:21) 신앙생활을 한지 오래되어도 술에 취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면 다른 변명이 필요 없다. 그들은 사회생활이나 원만한 대인관계에 필수적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속내는 술에 취하는 쾌락을 버리지 못해서이다.
음란의 쾌락을 즐기는 행위 역시 술 취함 못지않게 하나님이 싫어하는 태도이다. 현대 시대는 음란의 바다에 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작위로 들어오는 스팸메일을 열어보기만 해도 은밀한 육체와 낯 뜨거운 장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여기에 맛들이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보는 것만을 즐기는 관음증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직접 이성상대를 찾아 채팅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불륜에 빠지게 되는 일도 흔하다. 모든 쾌락이 그렇듯이, 즐기면 즐길수록 성에 차지 않아 강도나 빈도를 더해야한다. 인터넷으로 음란을 즐기는 것도 배우자가 알면 심각한 불화와 더불어 이혼의 원인을 제공하는 데, 불륜을 저질렀다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보아야한다. 불륜을 눈감아 주는 부부는 거의 없으며, 설령 어쩔수 없는 이유로 같이 산다고 해도 친밀한 부부의 인연은 끝난 셈이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다. 음란의 쾌락을 즐기는 일을 하나님이 아주 싫어하신 다는 것이다. 천국의 자격이 사라졌음은 물론이고, 그동안 공들였던 신앙행위들은 수포로 돌아갔음이 분명하다.
비단 술이나 음란의 쾌락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과 만나는 경건의 시간이 없이 다만 세상의 즐거운 일들에 푹 빠져 사는 것도 쾌락을 사랑하는 모습이다. 각종 스포츠나 등산이나 낚시 등의 취미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건전한 취미이고 건강에 필요한 운동이라고 하지만 이들 모두는 짜릿한 쾌감을 주는 요소가 들어가 있기에, 지나치게 탐닉하는 것은 쾌락을 사랑하는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상대와 수단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성경은 말한다(마10:37). 하나님은 질투의 신이기 때문이다.(출34:14) 그 중심에 쾌락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가 있다.
출 처 : 다음 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신상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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