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적인 삶의 모습 (1)
부를 쫒는 태도
성경을 읽다보면 마치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전수받는 느낌을 주는 말들이 적지 않다. 구하는 대로 모두 주시겠다고 했으며(마7:7), 믿고 기도한 것은 다 받은 것으로 여겨도 된다고도 하셨다.(마21:22) 그 조건으로 제시한 것이 겨자씨만한, 아주 작은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하셨다. 그러면 놀라운 영적능력을 받아 못할 일이 없으며, 심지어는 예수님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다는 격려도 들어있다.(마17:20) 그래서 이 말을 들으면 힘이 불끈 솟아나서 열심히 기도하게 된다. 그렇지만 신앙의 경륜이 쌓여간다면, 이 말에 확신을 갖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은 일임을 깨닫게 된다. 물론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처한 삶의 상황이 말씀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곤혹스럽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요, 하늘나라의 로열패밀리라면 하는 일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고 성공가도를 달려,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한 몸에 받고 있을 터이며, 기쁨과 뿌듯함으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매일 밤 억지로 잠을 청해야 해야 하지 않은가? 물론 잠을 못 이루고 있는 증세는 같다. 그렇지만 그 이유가 근심과 걱정, 염려와 불안 때문이라면, 그게 아니지 않은가? 주일 성수에 십일조, 각종 봉사를 하며 성실한 예배를 드려왔지만, 예배 때마다 설교단상에서 퍼부어주는 축복이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삶에 힘이 없고 신앙에 능력이 사라진 지 오래다. 도대체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제 1 장 세속적인 삶의 태도
세상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왔던 시절에는 세상에서 추구하는 풍조를 쫓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교회에 와서 성경에 기록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해 배우게 된다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지만 교회에 오래 다닌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조차 주일 아닌 평일에 삶의 현장에서 만나면 세상 사람들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흡사하다.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우리 스스로가 붙인 이름이 아니라, 바울이 전도했던 안디옥에서 복음을 받아들여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변한 모습을 보고 고린도 시민들이 붙여진 이름이다.(행11:26) 기독교를 믿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자 자신들과는 다른 모습의 삶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닌 중견교인이라 할지라도, 세상풍조를 쫓는 세속적인 삶의 태도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저 교회에만 출석하는 무리로 부르신 게 아니라, 말씀을 배워 기꺼이 자신의 뜻을 따르는 제자로 부르셨기 때문이다.
부(富)를 쫓는 태도
엊그제는 서울 강남에 위치한 부유한 교회에 세미나를 다녀왔다. 청중들은 50대 이상의 중년남자들이었다. 보나마나 대부분 그들은 10억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부자들이었을 게다. 물론 그곳에 자신 소유의 집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서울에 집을 갖고 있다면 10억 이상의 부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그들도 할 말이 있을게다. “부자는 헐 ~, 하우스 푸어(House Poor)예요. 겨우 깔고 있는 집 한 채가 전 재산인데, 내다 팔수도 없잖아요.“ 세상에는 두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한 부류는 이미 부자들이고, 또 한 부류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가난하든 아님 그럭저럭 먹고 사는 처지이든 상관없다. 그들의 소망이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은 모두 똑같다. 크리스천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의 속내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들이 기도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안다. 부와 성공이 우선순위에 올라 있고, 말은 돌려서 하지만 돈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신명기에서 약속한 축복이 그들의 신앙목표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성경은 부자에 대해 부정적이다. 예수님은 부자청년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고 돌아가 버리자 부자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차라리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더 쉬울 거라고 말한다.(마19:24) 그러자 제자들은 “그럼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냐?”면서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부자에 대한 다른 곳의 내용도 다르지 않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에 떨어지고 파멸과 멸망에 빠진다고 하거나(딤전6:9),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미혹을 받아 근심의 원천이 된다고 한다.(딤전6:10)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도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이 재물의 유혹에 기운을 막아 자라지 못한다고 하였다.(마13:22)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하신 말씀은,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면서, 재물과 하나님 중에 하나만을 성겨야 된다고 명령하시고 있다.(마6:24) 여기에서 재물이라고 칭한 단어는 돈(Money)이 아니라 맘몬(Momon)이라는 말이다. 맘몬은 이스라엘 시대에 이방 재물신의 이름이었다. 예수님은 단지 경제적인 가치를 계량적으로 기록한 돈이란 지폐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돈을 둘러싸고 있는 사악한 영의 실체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알다시피, 이 시대의 최고 우상은 돈이다. 돈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최고의 경쟁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돈과 하나님 둘 다를 경배하고 섬기고 싶어 한다. 이 같은 태도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은커녕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제공한다.
이보다 우리를 근심스럽게 하는 것들은 이에 대한 교회와 크리스천의 태도이다. 성경에는 2,300여 구절이 넘게 돈과 그 책임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교회의 설교에서 십일조와 헌금에 대한 주제 말고는 돈에 대한 다른 가르침을 듣지 못한다. 게다가 돈의 성격을 묻기보다, 많은 돈을 헌금으로 가져온 돈만을 견고한 믿음이라고 격려하며 칭찬해준다. 하나님은 불의하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돈을 가져오지 말라고 한다. 또한 십일조나 많은 헌금을 드리는 속내도 문제이다. 이들은 자신의 희생적인 헌금을 통해 더 많은 부를 얻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헌금의 성경적인 목적은 전혀 다르다. 우리가 벌어들인 돈이 하나님이 공급하신 것을 기쁘게 여기고 믿음으로 확인하는 행위가 바로 헌금이다. 그래서 자발적이고 기꺼이 드려야 한다. 그런 태도나 속내가 아니라면 교회에 가져온 헌금은 하늘나라 곳간에 쌓이지 않는다. 다만 교회통장만을 살찌게 할 뿐이다. 예전에 교회건축을 하려면 부흥사를 불러 성대한 부흥회를 열고 헌금을 독려한 저의가 무엇인가 생각해보라.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를 떠나시고 교인의 기도를 외면하신 이유가 아니었던가?
현대사회는 황금만능의 물질주의로 대표되는 시대이다. 돈이 세상의 주인이고 부자가 되고 싶은 게 모든 사람들의 인생의 목표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모두 우상숭배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경배하고 있노라고 말하지만,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말이 거짓임을 드러내고 있다. 직업은 선택하는 조건은 신앙의 환경보다 연봉이 최우선 조건이다. 그 회사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하는 곳이라도 돈만 많이 주면 상관하지 않는다. 또한 승진을 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경건의 시간조차 내지 못한다. 주일에는 한 시간정도 시간을 낼 수 있지만, 평일에는 너무 바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결혼배우자를 선택하는 것도 최우선순위는 성품이나 믿음의 척도가 아니라 재정능력이다. 성경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 하였지만, 배우자의 직업이 변호사, 의사, 대기업 직업, 공무원 등의 고소득 연봉자라면 눈감기 일쑤이다. 나중에 전도하면 된다며 자신을 위로하며, 최고 조건의 배우자를 놓치고 싶지 않는 속내를 드러낸다. 어디 그 뿐일까? 일확천금을 눈앞에 있다면 탈법과 위법,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의와 불법을 저지르며 부도덕한 청탁과 뇌물, 거짓과 사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는 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지만, 부자가 되는 절호의 기회라는 속삭임에 양심과 신앙을 내다버린다. 물론 연약한 의지와 부족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하나님보다 부를 쫓는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면 그분과의 동행을 바랄 수 없다. 이는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출 처 : 다음 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신상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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