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배우게 된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주를 운행하시며 대자연을 다스리시는 분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으로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와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영생을 얻는 통로를 열어주신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
또 다른 삼위일체(三位一體)의 하나님은 성령이시다. 성령은 태초에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하나님과 같이 계셨으며,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성령이 오실 것은 예언하셨으며,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사도들이 간절한 기도 중에 경이로운 존재감을 드러내시며 우리 곁에 내려오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를 성령이 다스리시는 성령의 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인간의 몸으로 우리로 구원하신 예수님과 함께 성령 하나님은 동일하신 인격체이지만 맡으신 역할이 각각 다를 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성령에 대해 무지하거나 오해하고 있기에 일상의 삶에서 그분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성령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한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성령을 하나님으로 말하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기에 경외감을 느끼는 것이 어렵지 않다. 게다가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목이 꼿꼿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단호하리만큼 책망을 하시며, 명령을 어긴 이들에게 죽음을 포함한 가혹한 처벌도 마다하지 않으신 분이기에 두려운 분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지만 성령은 창조주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으로 보기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선물을 나눠주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성령을 마치 알라딘의 램프에 나오는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인 지니로 여겨, 기도할 때마다 떼를 쓰며 요청하기도 한다. 그러한 비성경적인 생각을 넣어준 것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 교회의 목회자들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쫒아내고, 질병을 낫게 하는 등 기적과 이적을 가져다주는 분으로 여겨, 아예 세상적인 축복을 가져다주며 소원을 성취하게 해준다고 선전하여 전도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교회에 오면 성령을 받아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일이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성령을 두려운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으며, 오직 자신의 욕심을 채울 요량으로 성령을 받기위해 아예 새벽기도를 작정하거나 기도원에 가서 금식하는 등의 기도의 강도를 높이는 방법이 추천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인위적으로 혀를 꼬는 등 방언을 연습하기도 한다. 성령은 특정한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나 방법이 아니라 거룩하고 두려운 하나님이시다. 성령은 천지창조를 하신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으로, 경이로운 지혜로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성령의 또 다른 이름이 지혜의 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령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고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며 신묘막측(神妙莫測)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말아야한다.
지금은 성령이 다스리시는 시대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대교와는 다른 새로운 신앙을 받아들였던 시대였다. 기독교로 회심한 유대인들과 적극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에 힘썼으며, 모진 박해와 핍박에도 신앙을 지켰던 시대였다.
그런 신앙의 선조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기독교의 복음은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었으며, 그런 결과로 기독교는 당시 최고 강대국인 로마제국으로부터 공인을 받아 권력의 제도권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정치적인 안정과 막강한 재정적인 후원으로 많은 교회와 수도원이 생겨나고 학자와 성직자들이 배출되었으며, 그 결과 교리적으로 탄탄한 신앙의 시대를 활짝 열어젖혔다. 그 이후 견고한 교리를 바탕으로 믿음의 시대가 꽃피었으며 많은 도전과 변화를 거쳐 수많은 세월을 흘러 내려왔다.
물론 지금은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던 구약 이스라엘 시대도 아니고 예수님이 공생애를 실천하시던 시대는 아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약속한 성령의 시대이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교회는 오랜 역사를 통해 성령의 존재감을 교인들의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확인하기보다, 먼지가 풀풀 나는 케케묵은 교리와 신앙 속에 가두어두었기에 희미하게 빛나기만 할 뿐이었다. 즉 성령의 존재는 교회와 신앙의 틀 안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더불어 별다르지 않게 취급된 것도 사실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서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사람들은 성령의 존재에 무지하고 찾지 않았기에 아주 오랫동안 잊혀진 존재이기도 했다. 물론 존재감이 희미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아주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에 무지한 것처럼, 후대의 사람들도 오랫동안 성령의 시대가 도래한 것에 무지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를 변화시킨 기적이나 물위를 걸으신 놀라운 이적을 보이며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안에 있음을 보여준 것같이, 이 시대에도 그러한 기적적인 능력이 동일하게 나타난다면 이는 성령이 생생하게 활동하시는 시대임을 드러내는 증거일 것이다.
비록 적지 않은 오해와 남용이 있기는 했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경이로운 표적과 기적으로 보여주셨던 그러한 놀라운 사건들이 지금도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나고 있음이다. 이 시대가 바로 성령이 활동하시고 다스리시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크리스천 중에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사탄의 존재와 귀신들의 활동에 확신이 없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는 있지만 죽은 자를 살리시고 물위를 걸어오신 기적에 대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도 사실이다. 교리적인 믿음이 성경책과 형식적인 종교의식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물론 목회자들이 설교단상에서 선포하는 성경의 약속과 성령의 능력들을,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경험이 없고 이를 현장의 삶에서 확인하지 못했기에 확신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성경에 약속한 성령이 우리 안에 존재하시고 생생하게 활동하심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실천하는 삶을 경험해야한다. 지금은 성령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확인해도 직접 체험할 수 없다면 그동안 믿어왔던 신앙이 거짓이며 지금까지 해온 희생적인 신앙행위들이 헛수고이지 않겠는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들이 진리이고 사실이라면 자신의 삶에서 확인해야한다. 그래야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고 힘 있는 신앙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출 처 : 다음 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신상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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