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듣는 사랑이란 단어만큼 식상한 게 또 어디 있을까? 거리를 가다가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표어가 교회 외벽에 붙어있는 풍경은 왠지 우리를 씁쓸하게 만든다. 사랑이란 말의 존재감이 교회에서 좀처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입만 열면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을 실천하는 데 인색한 모습이 세상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크리스천조차 인정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재는 잣대는 교회에서 쓰이는 돈의 사용처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불우한 이웃을 돌보는 데 쓰이는 돈은 교회헌금의 3%미만에 불과하다. 구차한 변명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교회가 보여주는 이러한 행동으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할 자격이 없어 보여서 말이다. 교회란 기독교의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에클레시아라는 헬라어에서 온 말대로라면, 크리스천 모두가 사랑이 식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교회와 크리스천은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보여주는 모습이 어떨지라도,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을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는 단어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세히 풀어보면 불쌍히 여김, 자비, 이해, 베품, 용서, 배려, 친절, 온유, 겸손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은 우리가 이러한 성품을 가지고 삶의 현장에서 보여주기를 원하고 계시다. 그렇지만 이러한 성품은 하루아침에 몸에 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본성은 자신의 육체가 원하는 것들을 만족시키려 하기에, 오랜 경건의 습관으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쳐서 복종하며 육체의 욕심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된다. 그런 경건의 훈련이 없기에, 말은 사랑을 외치지만 정작 행동은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이다.
딤후 3:2~4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성경은 말세가 되어 사랑이 식은 사람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말해주고 있다. 미움 증오, 시기와 질투, 교만과 시기가 난무하고 배신과 분열로 인한 싸움이 그치지 않고 있으며, 이는 돈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식고, 그 자리에 자신과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에는 성령이 들어오실 수가 없다. 하나님의 본성은 사랑이시기에, 사랑이 사라져버린 메마르고 팍팍한 마음을 안타까워하시며 견딜 수 없어하신다. 마음이 공허하고 삶이 건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추구하는 세상풍조를 쫓다보니 경쟁과 싸움, 시기와 질투, 탐욕과 조급함이 자신을 지배하게 된다. 교회예배에 성실하게 참석하고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하더라도, 하나님이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없기에 삶이 팍팍하고 영혼이 공허하게 되는 이유이다.
마 25:44~45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모습은 전 재산을 털어 불우한 이웃에 나누어주며 생명을 바쳐 실천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일상의 삶에서 남을 위한 작은 배려나 친절을 행하는 것도 그것에 못지않은 소중한 사랑의 실천이다. 많은 돈을 들여가며 휴가를 내서 불쌍한 이웃을 찾아 나서는 것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게 아니다. 사무실이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직장동료나 이웃들에게 환하게 웃어주며 따뜻하게 말 한마디라도 해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위대한 사랑의 실천도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따뜻한 마음이 자라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이러한 마음을 세상 사람들은 의혹의 눈초리로 쳐다보고 받아주지 않으며, 선한 마음을 자신들의 탐욕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상처를 받아 다시 마음을 닫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랑의 동기를 자신의 의로운 마음에 두지 않고, 오직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에 두어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오래 지속하지 못할뿐더러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다.
어째든 냉랭하고 건조한 마음을 따뜻하게 덥히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찾아오시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자신의 삶이 팍팍하고 영혼이 공허하다면 사랑이 메말라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요청하기 전에, 자신이 나눌 수 있는 것부터 찾아보고 실천해야 하나님도 감동하셔서 기꺼이 찾아오시는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만나는 사람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실천을 해보라. 건조한 말투에도 부드럽게 대해주고, 짜증스런 눈길에도 부드러운 미소로 돌려주어보라. 세상이 환하게 바뀌게 될 것이다. 사랑의 실천은 먼데 있지 않다. 춥고 어두웠던 자신의 마음부터 따뜻하게 덥히는 일에 달려있다.
출 처 : 다음 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신상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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