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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족한 성품(3) -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

제이비젼 2016. 5. 8. 11:34

              부족한 성품(3) -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하나님처럼 거룩한 성품을 온전하게 소유한 자는 없다. 누구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부족한 성품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쉽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부족한 성품을 다스리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면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적은 단점만이 도드라지게 보일 것이다. 이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능력이지만, 습관을 들이는 일은 살을 베어내고 뼈를 깎는 일처럼 고통과 인내를 요구하기에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러한 능력을 보유하며 열매를 맛보고 살고 있을 뿐이다.

사소한 일에도 화를 벌컥벌컥 내는 사람과 조용히 지나치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는 인내를 모르는 사람과 이를 참고 견디는 사람의 차이이다. 분노는 누구나 똑같이 느끼는 감정이다. 오랫동안 기다리는 줄에서 누군가가 새치기를 한다면 짜증이 날 일이다. 제조사의 결함이 있는 상품인데, 환불이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면 분노가 치솟을 것이다. 잘못한 게 없는데도 질책을 들었다면 머리털이 곤두서고 뒷목이 뻣뻣해 질 것이다.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믿었던 동료가 자신을 험담한 사실을 뒤 늦게나마 알았다면 울화가 치밀어 잠도 오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공격하고 손해를 입히며, 경멸하고 조롱하는 데 분노가 치솟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자신이 공격 받거나 손해를 입는다고 생각할 때마다 화를 발산한다면 삶은 온통 짜증과 분노로 휩싸여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분노의 빌미를 제공한 사람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정작 충격을 받은 사람은 마음 깊은 곳에서 그 사건을 곰씹으며 화를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우연히 지나가는 사람이었다면 다시 볼 날도 없겠지만,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직장동료나 상사, 혹은 집안 식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상의 삶이 온통 전쟁터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화근을 일으키는 사람은 상대방이겠지만 우리는 그들의 성품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 아무리 화를 내고 상대방의 잘못을 따지며 사과를 요구하더라도, 그들은 언제라도 다시 그러한 잘못을 반복할 것이다. 사사건건 분노를 발산하고 싸우듯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일은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되며 평안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어디 그뿐일까? 취직이 되지 않는 이유가 자신이 노력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보기에는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 친구는 부모를 잘 만나서 비싼 돈으로 해외유학을 가서 번듯한 스펙을 쌓아서 보란 듯이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데, 자신은 학원에 갈 돈조차 없어 전전긍긍하다 울화가 치밀어 밤마다 소주병만 비우고 있다. 부모시절에는 교사나 공무원이 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는 데, 자신은 세월을 잘못 타고나서 임시직인 기간제 교사만 하려해도 경쟁률이 수백 대 일의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살맛이 싹 가신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십대 중반에 명퇴한 이들도 삶이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자녀가 대학에 들어갈 나이에 직장에서 쫓겨나와 보니 세상은 살얼음판이다. 기존의 반 토막 월급으로 낮추어도 오라는 직장은 없고, 집을 담보로 빚을 얻어 자영업을 시작한 선배들은 죄다 실패하고 길거리로 나앉은 것을 보니 자신도 머지않아 빈곤층으로 전락한 불안한 예감으로 잠도 오지 않는다. 평생 쉬지 않고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래서 수천만 원의 월급을 받으면서 놀고 있는 국회위원들과 틈만 나면 드잡이를 하고 싸우는 정치인을 보면 분노가 치민다. 자신과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게, 모두 이들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살인충동까지 느낀다.

 

 그래서 더욱 상실감과 무기력감에 시달리며 좌절감에 불평과 짜증을 입에 달고 살게 된다. 그렇지만 싸늘한 현실을 바라보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개인의 운명을 압도하는 세상의 거대한 제도와 금융환경 속에서 막강한 권력과 가진 자의 위력에 휘둘리며 떠밀리며 살아야하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연민의 감정이 스며들어 안쓰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날마다 분노와 불만이 밥이 되고 불평과 짜증이 반찬을 삼아 먹고 마시며 살아가고 있다.

나약한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막강한 자연환경과 사회제도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식이라도 중학생이 되면 가르치는 것을 포기해야한다.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말은 듣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식을 가르치며 먹고 살다보면 노후대책은 언감생심이고, 당장 내년에도 지금의 생활을 유지할 지 불투명하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염려와 걱정, 불안과 두려움이 마음 깊은 곳에서 교차하며 공존한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는 두통으로 진통제를 먹어야 일을 할 수 있으며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들지 못한다. 그러나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면, 나에게만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게다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살기 편하고 흡족한 환경인 시대는 거의 없었다. 백여년 전의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식구들의 하루 두끼의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의 주된 의무였다. 임금이 다스리던 봉건주의 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개인에게 많은 자유가 보장되었으며 먹고 사는 생존의 위험도 거의 사라졌다. 지금은 노숙자라도 굶어죽는 이들은 없다. 우리나라는 세게 15위권의 경제대국으로 2만 불의 국민소득을 가진 부자나라에 속한다. 그래서 이웃의 가난한 젊은이들은 대학졸업을 한 지식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고된 허드렛일이라도 하려고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오려고 한다.

결국 평안한 삶을 이루는 열쇠는 자신을 둘러싼 제도적인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고 불안한 금융환경이 해소되는 것에 있지 않다. 막강한 제도와 환경의 문제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높은 실업률과 저임금, 직장의 부족, 불황 등의 미래의 금융환경과 폭력, 살인, 성폭행, 등의 사회문제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며, 이기적이고 악의적인 사람들은 우리 곁에서 여전히 괴롭힐 것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이들 문제를 고치려 드는 것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이 허무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을 얻는 일이다. 난공불락의 문제로 고민하거나 상대방을 설득시키려 들지 말고, 절제와 오래 참음 자족 등의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을 얻어 평안과 내적 기쁨을 누려야 한다. 모든 문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잠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예수님은 상대방의 티끌을 보고 탓하면서 정작 자신의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책망하셨다.(마7:3) 사소한 일에도 화를 참지 못하는 성품이나 짜증과 불평을 달고 사는 사람들, 먹고 사는 일에 늘 불안과 걱정을 멈추지 못하고 두려움의 포로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없다. 성경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에서 눈을 돌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을 얻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내적 능력을 얻으려 하지 않고, 오로지 핑계와 변명거리를 구하는 자들에게는 삶이 고단하고 팍팍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평안이 없고 기쁨이 사라졌는 지도 모를 일이다.

 

출   처 : 다음 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신상래 목사

 

 

 

출처 : Joyful의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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