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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독교인의 장례와 제사

제이비젼 2014. 11. 7. 00:54

 

 

 

기독교인의 장례와 제사 (26:14,15)

 

 

 

 

요즘 한국 기독교에 인터넷 사이트에 가장 많은 이슈가 되어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는 것은 베리칩은 666인가하는 것과 한국기독교 안에 들어온 우상숭배라는 것입니다 

저는 특별히 이 시간 끊임없이 한국교회에 문제화 되었던 제사와 추도식 그리고 장례예배에 대한 말씀을 드리면서 주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전하고 싶습니다. 

 

첫째: 제사에 대하여

1. 국어사전에 보면 제사란  신령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표하는 예절이라고 했습니다. 

제사는 중국 송나라 때 유교학자 주희(朱熹1130-1200)가 처음으로

조상에게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여 유교의 한 덕목으로 정착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왕들이나 재상들이 자기 가문을 자랑하기 위하여 유교덕목으로 받아드린 것이고, 사서오경 예기(禮記) 제의(祭義) 21편에 보면 

氣也者神之盛也, 魄也者鬼之盛也,合神與神이라야,敎之至也니라 

 

이 뜻은 기운이란 신의 성대함이요 백이란 귀의 성대함이라 귀와 신을 합해야만 가르침의 지극함이라 여기서 말하는 기()란 정신의 힘을 의미하고,()이란 귀()의 힘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죽으면 육체를 빠져나간 영혼이 귀와 신으로 나뉘어 지는데 귀와 신이 합해질 때 그것이 진정한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주자(朱子)는 귀()는 음의 영이요, ()은 양의 영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펴는 것은 신()이 되고 돌이켜 돌아가는 것은 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죽으면 영혼이 두 동강이 나는데 귀()는 하늘로 올라가고 신()은 땅으로 펴진다는 것입니다. 제사는 서로 헤어진 귀와 신을 만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즉 귀신을 불러들이는 것이 제사라는 것입니다. 

 

2.기독교 귀신론

우리 성경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죽는 순간 예수 믿어 구원받은 영혼은 천국에 가고, 불신 영혼은 지옥에 간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귀신은 타락한 천사라고 말씀합니다.(14:12, 28:15-17, 벧후2:4, 1:6) 

 

본래 하나님께서는 밑에 미가엘, 가브리엘, 루시엘 천사장을 두었는데 그 중에 찬양을 담당했던 루시엘 천사장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반역을 일으키다 하나님께 저주 받고 루시엘은 루시퍼가 되어 마귀(사탄)가 되었고 루시퍼는 그의 졸개 천사들과 같이 세상으로 ?겨나서 귀신이 된 것입니다. 

 

14:12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민족들을

연약하게 하였던 네가 어찌 땅에까지 끊어져 내렸느냐(킹 제임스 번역성경)  

벧후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둘째: 추도식에 대하여 

추도예배는 과연 성경적인가? 

추도예배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입니다. (1897년 정동감리교인 이무영이 만들었습니다.) 

 

참조: 1897년에 추도예배에 대한 기록이 있다. 당시 아펜셀러 선교사 등이 발행한 신문(조선 그리스도인 화보) 9월호에 이렇게 적혀 있다. 

최초로 추도예배를 드린 사람은 이무영이란 사람이라는 정동감리교회 교인이었다.그는 궁궐에서 물품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정3품의 높은 직위에 있던 사람으로 윤치호와 함께 독립협회를 운동한 사람이었다. 이무영은 모친 기일이 되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추도예배를 착안 하였다. 이 기사를 보고 다른 교인들이 좋다고 생각하여 그 이후 정동교회에서 추도예배를 많이 드렸다고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 해결 방식이 선교사가 가르치는 대로 따르지 않고 한 교인이 스스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 1934년 감리교 총회에서 추도예배를 교리와 장전에 삽입했고, 감리교 영향을 받아 구세군과 성결교가 50년대에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장로교는 70년대 말에 인정했습니다. 

 

제사를 추도예배로 바꾼 것은 우상숭배라는 비난을 극복하고 유교사회의 중요한 가치인 를 기독교 안으로 받아드린 것입니다 

이것은 가톨릭에서 선교라는 이름으로 불교의 염주(묵주)’와 제물을 차려 놓은 제사를 받아 들인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처럼 제례 행위들이 전혀 무비판적으로 유포된 채 순수한 기독교 예배 정신을 흐려 놓고 성경적 평가 없이 수수방관하고 권장을 하다 이제는 비 성경적인 행위임을 알고 일부 교단에서는 부당성을 고하고 성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1) 추도예배의 언어적 의미 

추도예배(追悼禮拜)- “죽은 자를 생각하며 슬퍼하며 드리는 예배 

추모식(追慕禮拜)-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며 드리는 예배

결국 하나님에게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죽은 자를 향한 예배의 의미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 되어야지 죽은 자가 되면 안됩니다 

그런데 추도예배는 죽은 자를 생각하여 그것도 슬퍼하며 그리워 하며 드립니다.

이것이 예배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추도예배는 명백한 우상숭배에 해당됩니다. 

 

2) 성경적 의미

성경에는 죽은 사람을 추모하거나 추도하라고 한 말이 없고, 죽은 자에게 예를 갖추라고 한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죽은 자를 위하여 성물을 쓰지 말라(26:14)고 하였고, 시편 106:28에는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산 것이 있고, 에스겔24:17에는 죽은 자를 위하여 슬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도 추도예배를 한 일이 없습니다. 명분은 하나님께 예배 드린다는 것이지만, 실상은 고인을 더 생각하는 것이고 애도와 묵상을 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비는 제사행위와 다름이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전도의 길이 막히니까 추도예배를 드리면 된다고 하고 자녀 교육상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적이 아니라면 당장 끊어야 하고 우상숭배자가 되어 지옥가면 안됩니다. 

 

셋째: 장례식 예배에 대하여  

1)헌화에 대하여

기독교인 장례식에 가보면 국화꽃을 헌화하는 것을 봅니다. 이런 풍습이 근래에 들어온 것인데 사실 그 유래를 보면 고대 그리스에서 신에게 제사 드리러 가는 사람이 신전에 들어가서 신의 마음을 풀어 주려고 꽃을 바쳤다고 하며, 서양에서는 죽은 사람이 저승에 가서 평화롭게 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국화 꽃을 사용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약 100여 년 전으로 일반 국립묘지 등에서 참배할 때 행하다가 근래에는 장례식장 문화가 생기면서 기독교 장례식장에도 무비판적으로 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그 유래도 그렇고 국화꽃을 헌화하는 의미도 그렇고 이것은 분명한 우상숭배의 죄에 해당됩니다.  

 

*헌화의 의미 

. 죽은 자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드림

. 죽은 자가 저승에 가서 평화롭게 사세요 라는 의미

. 꽃송이가 영정을 향하면 꽃 향기를 맡으세요 라는 의미

. 꽃대가 영정을 향하면 이 꽃을 받으세요.

 

헌화의 의미는 100% 죽은 자에 대한 것으로 분명한 우상숭배에 해당됩니다. 

 

2) 영정 앞에서 기도하는 것에 대하여 ? 

기독교인들은 절대로 영정 앞에서 기도하거나 묵례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절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나 동방요배와 같은 이치입니다.  

 

신사참배나 동방요배시 천황사진 앞에 묵례하고 예배당에 들어가 예배드리라고 했는데

그것이 우상숭배라 하여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투옥되고 순교하고 교회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날 그와 같은 행위를 서슴지 않고 행하고 있습니다.

빈소에 갔으면 그냥 상주와 인사하며 위로의 말만 전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3) 장례예배에 대하여 

현재 한국교회 장례문화는 유교와 불교의 제사의식에 예배란 이름만 붙이고 드리고 있습니다.

유교와 불교의 장례식 절차를 보면  

성복제(입관)- 입관 후 상주들은 정식 상복을 입고 분향소서 제사를 드리는 의식 

발인제-발인제 의미는 이제 고인의 유택(무덤)으로 모시고자 하오니

   저희들과 이 세상에서 다시 뵙지 못하는 영원한 이별을 하오니하고 고인의 평안을 비는 마음에서 지내는 제사 

. 노제- 장지로 가는 도중 고인이 평소 애착이 가는 곳이나 살았던 곳에 들려 제사

. 사토제(산신제),- 관을 모시는 자리(광중)를 파기 전에 드리는 제사

. 평토제- 광중을 메우기 시작하여 평지와 같게 되면 지내는 제사 

. 성분제- 장지에서 봉분(무덤만들기)이 완료된 후 드리는 제사 성분제 의미는

    여기에 무덤을 정하였사오니 신께서 보우하사 후한이 없도록 지켜주길 비는 제사  

. 초우제- 산에서 돌아온 날 저녁에 드리는 제사

. 재우제- 산에서 돌아온 다음날 식전에 드리는제사 

삼우제- 발인한 날로부터 삼 일째 무덤에 가서 드리는 제사 

49- 불교행사로서 육체를 이탈한 영혼은 바로 극락에 가지 못하고 온갖 세파에서 저지른 죄악을 정화하는 기간이며, 어느 곳으로 갈 것인지 정해지지 않아 심판을 기다리는 기간을 49일로 보고 있어 가족들은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지내는 제사다 

한식성묘-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매년 양력45일 또는 6) 지내는 제사

기제-고인이 돌아가신 날 해마다 드리는 제사 지내는 시간은 자정이 원칙이다. 

위령제-전쟁이나 천재지변 또는 대형사고로 인해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을 때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합동으로 지내는 제사 

 

이처럼 유교 및 불교에서는  

장례식 및 죽은 자를 위하여 드리는 제사가 많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한국 교회에서는 아무런 비판 없이 예배라는 옷만 바꿔 입었지 실상은 우상숭배를 해 왔습니다.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는 결코 예배 일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그 예배를 받으시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배란 예배를 받는 자와 예배하는 자와의 만남이 그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상호간의 주고 받음이 일어나는 자리입니다.

성경은 오직 예배를 받으실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23-24)

 

그러므로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어떤 예배도  그것이 결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망자가 생겨서 그것 때문에 드리는 예배를 예배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배가 될 수 없는 것이 자명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하나님 때문에 드리는 예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망자 때문에 예배라는 형식을 빌어 그것도 유교에서 지내는 제사,

제물을 차려 놓고 절만 안 했지 분명 우상숭배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분은 그럼 돌 예배, 개업예배, 회갑예배는 우상숭배가 아닌가요? 라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예배는 살아있는 사람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예배에는 감사라는 말이 꼭 들어갑니다.

돌 감사예배, 개업감사예배, 회갑감사예배라고 부르며 또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죽은 자가 발생하여 드리는 예배는 그 대상이 결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난 주 고 김귀순집사 장례식에서는 제가 위로예배가 아닌 천국으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자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입관이나 발인 등은 아무런 의미를 붙일 수가 없습니다 

이제 관으로 들어가게 해주신 것 감사하니 예배합시다할까요?

이제 육신이 장지로 향하게 하신 것 감사하니 예배합시다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앞으로 저는 교인들 가운데 임종하시는 분이 계시면 이 땅에 있을 때 예수 믿고 천국으로 불러주신 감사예배와 흙에서부터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에 대한 감사예배 하관식 예배만 인도할 생각입니다. 물론 하관예배는 유골을 놓지 않고 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장례식때 예배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상주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상주들이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잠도 못자고 오는 조문객 맞아야 하고 너무나 힘이 들고 피곤합니다.

그런데 목사와 교회는 와서 위로해 준답시고 예배드리자고 합니다.

그것도 자녀들이 다 신앙생활하면 오는 교회마다 예배드리니 말은 못하고 죽을 지경입니다 

그것뿐 아니라 설교는 왜 그렇게 깁니까

오는 교회 목사님마다 설교 내용이 다 비슷하고 똑 같은 내용을 들으려니 즉 뻔 한 설교 들으려니 짜증스럽니다.  

 

얼마 전 인터넷을 보니 장례를 치루고 나서 어느 기독교인이 글을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예배가 많아요 우리는 매장했는데 목사님의 설교가 거의 한 시간 이었습니다.

날씨는 춥고 정말 빨리 끝나기만 바랬습니다 

목사님! 앞으로 장례식 예배 한 두 번만 하면 안되겠어요?

하관식 때 찬송은 한 장만 부르고 설교는 생략하시고 그냥 성경 귀절만 읽어주고 유족 위해 축복기도만 해주면 안되겠어요?” 

 

저는 그 글을 읽고 그럴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도 모친상을 얼마 전에 치뤘지만 예배없이 치루니 넘 좋더라구요.

래서 지난 주 고 김귀순 집사님 하관식 때 10분 이내로 모든 걸 마쳤던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이지 더 이상 유교인도 불교인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체성을 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네가 싯타르타 제자냐? 공자의 제자냐? 아니면 그리스도의 제자냐?

그리스도의 제자이면, 그리스도의 사람이면 그리도인답게 살고 행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참된 회개가 필요합니다.

지난 날에는 제가 몰라서 저도 죄를 짓고 여러분에게도 죄를 짓게 했습니다.

그것에 대해 저는 하나님과 여러분들 앞에 사죄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까지 지은 죄와 잘못 가리킨 죄

그리고 제 아내와 아들이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하며 오늘 가족 회개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제는 성경으로 돌아가 올바른 예배를 드리고 마지막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 정결하고 바른 신앙생활을 합시다. 

 

출처 : 신창침례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 (최재희목사,카일룸)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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