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에서 누가란 누구인가?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입니다 .
바울의 사랑을 받았으며 수리아의 안디옥 출신 의사입니다.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서 이름의 의미는 빛나다라는 뜻이다.
그는 이방인이다.
초대의 전승은 그를 수리아의 안디옥 출신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도 생각된다.
누가가 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합치면 그 분량이 신약성서의 1/4이 좀 넘으며 문체가 아름답다.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인도적 방면을 분명히 밝히고, 또 초대교회의 역사를 정확히 전하는 등, 그가치는 한량없다.
바울이 `사랑받는 누가'라고 부르던 것을 보면, 친밀한 점에서 이렇게 불렀을는지도 모른다.
또, 빌레몬서에 바울이 `나의 동역자'라고 부른 네 사람 안에 있는 것으로 보아 바울의 전도사업에 협력한 것을 확실히알 수 있다.
바울은 `육체에 가시'라고 한 병을 가지고 있었다.
누가는 자기의 의술로서도 바울에게 봉사했을 것이다.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바울은 "누가만 나와 함께 있다"고 썼다.
이것을 바울의 순교 직전의 수기라고 보면 감개무량한 바 있다.
누가는 바울의 로마 옥중 생활의 반려자로서, 많은 동지가 떠난 다음에도 끝까지 충성을 다했음을 알 수 있다.
누가(Luke)
성경 기록자로서의 누가: 여러 정황을 미루어 볼 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동일 인물에 의해 쓰여졌으며(눅 1:1-4; 행 1:1), 그는 바울의 전도 여행에 함께 참여했던 동역자 누가였음이 분명하다(몬 24). 초대교회와 교부들(이레니우스, 순교자 저스틴, 클레멘트, 오리겐, 터툴리안 등)도 골로새서 4:14과 디모데후서 4:11 및 빌레몬서 24절에 나오는 의사 누가가 이 두 책의 저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한편 성경 기록자 누가는 이방인이었다. 그 근거로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인용된 구약의 본문들은 모두 히브리 원문에서가 아니라 70인역에서 인용된 것이며, 또한 누가복음서에서 주님(Lord)이라는 말이 '랍비'로 되어 있지 않고 헬라어 명칭인 '디다스칼로스'(didaskalos; 선생)와 '에피스타테스'(epistates; 主, Master)로 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마태나 마가와는 달리 예수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아람어를 사용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지 않으며, 특히 유대인들에게서 흔히 발견하게 되는 배타주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골로새서 4:10-14에서 바울은 그의 동역자 가운데 아리스다고, 바나바의 생질 마가, 유스도라 하는 예수만이 유대인이었다고 말하고 난 후에 누가의 문안을 전함으로써 누가가 이방인 신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는 신약성경의 저자들 가운데 유일한 이방인 저자인 셈이다.
의사로서의 누가: 누가가 의사였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에게 문안하는 편지에서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라고 표현한 것에서 알 수 있으며(골 4:14),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의학 용어들을 살펴볼 때 그의 직업을 짐작할 수 있다(눅 4:48; 8:55; 행 28:8-9 등). 또한 바울의 편지들을 볼 때 누가가 골로새 교회와 안면이 있었고, 빌레몬이나 디모데와도 친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딤후 4:11).
누가는 바울이 두 번에 걸쳐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도 빠짐없이 동행했는데(딤후 4:11),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누가가 사도 바울에게 '사랑을 받는 의사'였다는 것이다(골 4:14).
< 비전성경사전>
성경인물 누가(골4:7-18)
● ‘누가’라는 이름은 헬라말로 ‘빛나다’ 혹은 ‘총명하다’, ‘빛을 준다’는 뜻이며, 그는 수리아의 안디옥에서 출생한 헬라인 의사였다. 성경에서 누가의 이름은 그다지 두드러지게 소개되고 있지 못하다. 누가의 이름은 바울의 후기 서신에서 단지 세 번 언급되고 있다. 그 세 번의 언급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많은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부분이 오늘 우리가 읽은 골로새서 4:14 부분이다.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누가의 직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골로새서와 함께 보낸 바울 서신 빌레몬서에도 누가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는데, 몬1:24에 보면,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와 함께 누가는 바울의 동역자로 소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디모데후서4:11에도 누가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바울은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앞서 보았던 골4:11과 몬1:24에서 누가와 함께 소개되었던 데마는, 여기에 보면 그가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밖의 다른 동역자들도, 바울이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그 당시, 모두 바울을 떠나가 버렸다. 하지만 누가만은 사도바울 곁에서 그를 보살피며 돕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헬라인 의사로서, 바울을 떠나서도 얼마든지 독립할 수 있고 환영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누가는 끝까지 바울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동역한 신실한 인물이었으며, 자신이 가진 의원으로서의 재능으로 주의 사역에 봉사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 누가는 주님의 제자가 아니었다. 바울사도의 동역자로서 바울의 주치의 의사이기도 했던 누가는, 앞서 살펴본 대로 성경에 단지 세 번 간단히 언급된, 즉 초대교회 사역자들 가운데 두드러진 활약을 한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가는 이방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성경을 기록한 인물로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함으로써 교회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사도행전은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누가가 기록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정말 누가가 기록했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2세기 쓴 것으로 보이는 한 누가복음 소개문에 보면 “누가는 수리아 안디옥 출신의 직업 의사였다. 그는 또한 사도들의 제자였으며, 후엔 바울을 수행하여 그가 순교하기까지 같이 다녔다. 누가는 아내도 자녀도 없이 일심으로 주님만 섬겼으며, 84세의 나이로 베오디아에서 성령에 충만하여 잠들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의학적인 전문 용어들이 사용된 것도 이 두 책이 의사 누가의 저작임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누가는 헬라인으로서의 냉철한 지성과 교양, 의사로서의 덕망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뜨거운 열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최대한 활용하여 예수에 관한 모든 일을 상세하고도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겨 이방인들에게 전하고자 했는데, 그의 희생적인 봉사정신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들 속에서도 잘 반영되어 나타나 있어 성도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 앞서 살펴본 세 곳 성경 외에, 더 이상 누가에 대해 직접 언급하고 있는 곳은 없다. 사도바울의 가장 신실한 동역자 중의 한사람이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위대한 사역자 누가의 행적이 성경에 너무 간단히 소개되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학자들은 성경을 면밀히 검토하는 가운데 감추어진 누가의 흔적을 성경 속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누가복음이나 사도행전에 보면, 둘 다 그 속에 저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 단지 두 책 모두 글을 시작하면서 저자가 자신을 ‘나’라고 지칭하고 있다. 눅1:3에서는 데오빌로에게 “나도...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을 줄 알았노니”라고 썼고, 행1:1에서는 누가복음을 지칭하면서 “내가 먼저 쓴 글에는”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여러 곳에서 단수 ‘나’가 아닌 복수 ‘우리’로 표현하고 있는 것인데, 복수 ‘우리’ 속에 단수 ‘나’가 포함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세 군대의 ‘우리’로 시작되는 부분에서 우리는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계속해서 주체를 ‘사도들이’ 혹은 ‘저희가’처럼 3인칭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행2:1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행4:1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등이다.
그런데, 행16:10에 보면, 갑자기 ‘우리가’라고 1인칭 복수형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같이 사도행전에는 ‘우리가’로 시작되는 부분이 여러곳 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저들’이라는 3인칭에서 ‘우리’라는 1인칭으로 바뀌는 그 시점에서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는 바울의 일행에 가담을 하게 되었음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로 볼 때, 누가는 주후 50년경에 드로아에서 바울 일행(디모데, 실라)을 만나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이들과 합류해서 빌립보로 건너갔으며, 바울 일행이 빌립보를 떠날 때 누가는 빌립보에 그냥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7년 후, 바로 그곳에서 다시 바울일행과 합류하여 가이사랴를 거쳐 예루살렘까지 가게 되는데, 그후로 그는 헌신적인 전도의 생애에 접어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누가는 바울의 충실한 동반자로서 바울이 가는 곳에는 어디든지 따라갔으며, 로마의 감옥에도 함께 갇혀 있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십자가의 도를 버리고 바울 곁을 떠났으나, 누가는 결코 떠나지 않았다.
이밖에도 우리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내용을 통해, 그 기록자인 누가라는 인물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는 의사로서 바울의 연약한 육신을 돌보는 데 크게 이바지했을 것이다. 물론 멜리데 섬에서 그곳 토인의 병을 고친 사람은 바울이고 누가는 아니었으므로 그의 의술이 전도에 결정적 도움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모든 것을 주께 바쳤을 때, 하나님은 그의 학식을 사용하여 가장 귀중한 일 중의 하나를 수행하게 하셨다. 즉 그는 과학적으로 연단된 그 두뇌를 예수님의 생애에 일어난 일을 비롯하여 초대 교회 역사의 자료를 널리 수집하여 기록했다. 그의 필봉은 세련되고 그의 문장은 화려하다. 모든 것은 주의 손에 맡겨질 때 하나도 유용하지 않은 것이 없다.
●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세례요한의 잉태와 출생으로 시작하여, 예수님의 생애, 그리고 사도들의 활약과 바울의 로마 투옥에 이르기까지, 60여 년이 넘는 기독교 태동기의 귀중한 역사를 담고 있는, 초대 교회사의 유일한 자료이다. 그리고 이 두 권의 책은 처음에 데오빌로라는 한 사람을 위해 쓰여졌다. 그러니까 누가는 이 책들을 쓸 때 그것이 인류를 위한 경전의 하나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한 참된 사랑의 봉사는 뜻밖에도 전 인류를 위해 봉사하게 된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위대한 일을 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항상 위대한 일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자신의 일, 작은 일에 충성하라!
그는 또한 인술을 업으로 하는 의사로서 언제나 병자나 약자의 벗이 되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성령은 이점도 잘 활용하셨다. 그가 쓴 누가복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동정심이 많은 인자였다. 그가 전한 주님의 비유는 대단히 인정미가 풍부하다. 선량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잃어버린 양, 은화, 탕자의 비유 등이 그 좋은 예이다. 그리고 여성과 아이들, 가난한 자들에 대한 기사가 누가복음에는 많이 등장한다. 복음서에 기록된 열두 명의 여성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아홉 명이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누가복음을 여성의 복음, 아이들과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복음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 후에, 그 일행에 가담하기까지 누가는 마게도냐의 교회에서 전도사역으로 봉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마게도냐 즉 빌립보 지방의 교회는 모범적이었으므로 바울의 서한 중에서 이 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한 마디의 책망도 하지 않고 오직 기쁨과 승리에 빛나 있다. 그것은 이 교회가 사랑에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이 교회에서는 연보도 많이 했다. 박해와 곤궁 속에서도 힘에 넘치도록 교회에 바쳤다. 이 점에서도 다른 교회의 모범이었다.
바울에게도 사랑의 표시로 여러 차례 선물을 보냈다.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은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느니라”하고 바울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이 교회의 지도자였던 누가의 감화에 의한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 성경의 기자는 모두 이스라엘인이지만 오직 누가만은 이방인이다. 마태는 이스라엘인을 위해 그 복음서를 썼다. 마가는 로마인을 안중에 두고, 베드로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썼다. 요한의 의중에는 교회가 있었다. 그러나 누가는 전 세계를 상대하여 썼다.
따라서 주님의 계보를 쓸 때에도 마태가 다윗을 거쳐 아브라함까지 거슬러 올라갔는데, 누가는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하고 기록하고 있다. 누가가 전한 예수는 “이방인을 비추는 빛”이며, 그 복음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누가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과 역사적 연구 자료를 가지고,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인의 눈으로 접근하여 훌륭하게 후세인들을 섬겼다. 기독교의 태동에 대해 그가 남긴 두 책 중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들과 대부분 동일한 내용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귀중한 자료가 많이 담겨 있다. 우선 복음서 앞부분을 보면,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탄생 고지, 마리아와 사가랴와 시므온의 노래, 베들레헴 여관의 만원 사례,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들, 아기 예수를 찾아온 목자들, 율법의 전례대로 성전에 들어간 아기 예수, 12년 후 유월절 때 성전에 계시던 아기 예수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누가복음에만 기록된 것이다. 뒷부분의 수난 및 부활에 대한 기록에서도, 헤롯 안티파스 앞에 서신 예수,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용서의 기도, 회개하는 강도에게 확신을 주시는 말씀,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예수님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또한 누가복음에만 기록된 것이다. 중간에서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탕자의 비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 등 그만이 간직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모든 복음서 저자들에게 다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만일 누가가 복음서를 기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사실을 아는 데 있어서 훨씬 빈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바울을 흠모하는 사람들은 베드로나 야고보 같은 동시대의 다른 기독교 지도자들에 대해선 약간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 누가는 바울을 흠모하는 자였지만, 베드로나 야고보에 대해 전혀 그런 불공평한 태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사실 이방인의 구원의 문을 처음 연 것은 바로 베드로였다. 그가 고넬료의 집을 찾아가 거기서 예수님을 전했던 것이다. 누가는 예루살렘 공회에 대한 기록을 통해, 베드로가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아주 분명한 새 견해를 가지고 내려왔다고 말하고 있다. 같은 사건에 대해 야고보는 그 회의의 결론을 잘 요약함으로써 역시 행정가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 누가는 정말 마음이 넓은 기자였다. 그는 초기의 기독교 안에 여러 다양한 색채들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런 차이들을 기독교 공동체라는 주제 안에 함께 잘 짜 넣었다.
● 누가는 대사도 바울의 허약한 육신을 주께서 주신 의술의 달란트로 치유하며, 그로 하여금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완수하도록 끝까지 그와 동행했다. 오늘날에도 복음 전파 사역에 있어 누가와 같이 동역자로서의 적절한 역할을 담당해 주는 사람이 절실히 요구된다. 어느 곳, 어느 상황에서라도 끝까지 바울과 동행했던 누가의 신의 있는 행동은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와, 또한 성도 상호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끝까지 충성하며 신의를 보여야 함을 잘 교훈해 준다. 지금 우리도 ‘돕는 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누가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의사요, 두 서신을 기록한 뛰어난 저술가였으면서도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고, 묵묵히 바울을 조력하면서 자신의 맡은 바 사명에 충실하였다. 이같은 누가의 겸손한 태도는 오늘날 조그마한 자신의 업적도 드러내어 칭송받고 싶어하는 자들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뿐만 아니라 누가는 자신의 의술과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세심한 탐구와 노력 등 모든 재능과 힘을 다하여 주님의 영광을 구하였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이러한 누가의 본을 따라 우리의 재능과 시간과 건강, 그 모든 것을 주께 드려서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하겠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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