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도 갈 수 있는 교회
가난한 성도와 가나안 성도
한국 개신교에 큰 충격을 주었던 200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를 보면 개신교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는 반면, 가톨릭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10년 주기로 실시하는 이 종교 분야 인구센서스 결과에 따르면 2005년 개신교인수는 861만6천 명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아예 800만 명 이하라고 추정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에 비해 가톨릭은 10년 전의 295만1천 명보다 무려 219만 5천 명이 늘어난 514만6천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개신교인들이 가톨릭으로 많이 유입됐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그동안 개신교 교인수가 1000만~1200만 정도 될 것이고, 천주교는 정체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예측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밝혀진 진실은 가혹할 정도입니다. 통계적 오류를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200만 명 이상이 개신교를 떠난 것입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2013년에 발표한 '한국기독교 분석 리포트' 역시 타 종교의 성도수는 증가하고 있는데 반하여 유독 개신교만 교인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교인들이 이탈하는 이유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있습니다만, 그 중 하나로 '헌금과 십일조 강요 문제'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적어도 타종교에는 수십 가지나 되는 요란한 헌금 종류나 수입의 '십분의 일'을 교인의 의무로 요구하는 그런 강제적 헌금은 없기 때문입니다.
구조적인 헌금 강요
사실 교회에 헌금을 하는 것은 매우 아름답고 귀한 일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교회는 그 헌금을 바르게 사용하여 교회당을 관리하고, 구제하고, 선교하고, 교육하고, 교역자들 생활비를 지급하고, 그리고 사회 봉사에 참여합니다.
이런 면에서 헌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교인들에게 바른 헌금의 필요성에 대해 성실하게 가르치고 그 사용에 늘 투명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헌금을 걷는 방법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손사레를 치시며 부인하실지 몰라도 필자가 체감하는 바로는 많은 교회에서 헌금을 다분히 인위적으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우선 무려 85가지나 된다는 헌금 종류가 이런 실상을 잘 설명해 줍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일부 대형 교회들은 거의 모일 때마다 돈을 걷습니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구역예배, 헌신예배, 부흥집회, 심방예배, 절기예배, 심지어 특별새벽기도회까지 헌금을 걷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성경책뿐만이 아니라 돈지갑도 예배에 참여하기 위한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사실상 교회 집회가 온통 돈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헌금에 부담이 되면 적게 내도 된다"고 해명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헌금이란 본래 자율적인 것이므로 부담이 크면 덜 내도 되겠지요.
하지만 정말 현실이 그렇던가요? 여러분은 경제적 능력에 따라 교회에 자유롭게 헌금내고 다닐 자신이 있으십니까. 나머지 잡다한 헌금은 그렇다고 쳐도 우선 십일조만 해도 어떻습니까.
본래 신약교회에 '의무적 십일조'란 없었습니다. 사도들조차 십일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 이후에 성전과 제사장이 사라졌는데 무슨 십일조가 있었을까요. 따라서 현재의 강요적인 한국형 십일조는 일부 교권주의자들이 돈을 더 걷기 위해 자작한 '구약 율법의 위조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톨릭 교회를 포함한 전세계 절대 다수의 교회들이 '현대 십일조를 의무로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 한국교회에서 십일조를 안 하고 교회에서 정상적인 교인 노릇이 가능한가요. 교회 내에서 헌금이나 십일조로 인해 믿음이 부족한 자로 업신받고 하찮은 사람으로 취급받는 그런 모멸감과 상처를 진정 이해하시는지요. 그리고 그런 부당하고 모욕적인 차별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교회들은 왜 이 모양일까요. 어떤 목회자들은 머리 속에 온통 큰 교회, 큰 건물, 그리고 큰 사업을 향한 종교적 야심과 욕망이 가득하여 교인들을 그저 현금인출기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에는 작은 교회와 소박한 목회를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는 목사님들이 결코 적지 않은 듯 합니다.
이 글에서 굳이 헌금이 엉뚱한 곳에 사용되고 있으니 그것부터 먼저 시정하자는 말까지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설사 아무리 고상하고 좋은 목적으로 헌금이 쓰여지더라도 우선 그것을 걷는 방법이 불의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고 말합니다.
무기명 헌금을 장려하자
언젠가 필자가 출석하던 교회의 재정 담당 권사님과 사석에서 대화하던 중 왜 교회는 '무기명 헌금'을 장려하면 안 되나 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분은 중고등부 시절 필자의 은사이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필자가 평소에 존경하던 다른 장로님도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 말씀이 "무기명으로 하면 당장 헌금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셨습니다. 그 때 "그러면 교회도 사업을 적절히 조정하여 그 줄어든 만큼의 헌금만을 가지고 사역을 하면 좋지 않을까요" 라는 다른 의견이 나왔습니다. 즉 "교인들의 '정상적인 헌금 능력'에 따라 그에 맞는 적절한 사역을 하자"는 주장이지요. 그랬더니 권사님도 다소 놀라시면서 "정말 그러네!" 하시더군요.
우린 지금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무슨 어줍지 않은 '목회 비전'이니 '목회 철학'이니 이런 헛바람든 말로 신도들을 선동하며 '과시성 사업'에 몰두하지 말고 좀 더 차분하게 정상적인 사역을 견실히 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큰 교회 세우고, 큰 사업 벌려, 크게 사역하라'고 명령하신 적이 있었던가요. 오히려 성경은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많은 교회들은 큰 건물과 큰 사업에 그토록 집착할까요. 그게 정말 하나님의 열심입니까 아니면 단순히 담임목사의 종교적 야망과 열심입니까. 유럽의 교회들이 큰 건물이 없고 큰 사업을 못 해 그처럼 망했을까요.
한때 그들이 열심히 교회수를 늘리고 큰 건물을 세웠지만 과연 지금 유럽에 '하나님의 나라'가 진정 확장되었나요? 인위적 수단을 동원하여 무조건 헌금을 많이 걷어 큰 사업하고 큰 교회를 이룬다고 과연 그게 진정한 복음의 확장일까요.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건물과 재산을 키워 한국교회가 개신교 역사상 가장 부패한 교회가 된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구태여 일부러 무조건 작은 교회를 추구할 필요는 없겠지만 교회는 본질상 적당히 작은 것이 정상이 아닌가 그리 생각해 봅니다. 초기 신약교회는 거의 다 '가정교회'였습니다. 어떤 경우 하루에 무려 5000명이나 되는 회심자가 있었지만 큰 건물을 세운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돈 걷을 줄 모르고 큰 사업에 재주가 없어서 그리 했을까요.
지금 상당수의 교회는 사실상 의도적이며 구조적인 헌금 강요를 하며 교인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 무리하게 돈을 걷고 있습니다. 이 말을 못 믿으시겠다면 오늘이라도 길을 막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십시요. 아마 "한국 개신교에 헌금 강요는 없다!"고 주장한다면 도리어 거친 욕설을 들을 것입니다.
그동안 탈북하신 분들이 교회에 와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북한이 싫어서 나왔는데 도리어 교회가 너무 북한 사회 같아서 싫다"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대부분 수 년 내에 교회를 떠납니다. 은근히 헌금을 강요하는 분위기나 강압적인 종교 활동이 사람을 질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헌금을 강요하여 많이 걷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종교적 범죄입니다. 왜 어떤 교회는 자꾸 돈으로 일을 하려 하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왜 오늘날 교회에서 가난한 장로들이 사라지고 있습니까. 요즘 장로님들은 전부 물질적 축복을 듬뿍 받아 그런가요. 아니지요. 교회가 돈으로 직분을 차별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으면 장로가 되기 힘듭니다. 그러나 예전엔 교회와 장로님들이 가난해도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비록 협소한 예배당이지만 오손도손 모여 예배하고, 이웃에 복음을 전하고, 물질을 나누고, 그리고 사람을 키웠습니다. 세상의 칭송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가난한 교회에서 경건하고 성실한 신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교회는 가난해져야
그런데 이젠 돈 없으면 교회도 못 가야 합니까. 예수님의 은혜로 천국도 무임승차하건만 왜 유독 교회당은 무임승차하지 말라고 호통을 치십니까. 감히 '십자가 교회'를 '십일조 교회'로 만드는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요. 왜 헌금 못 내는 교인들을 차별하고 부끄럽게 하는 분위기를 방조하십니까.
그러면 가난한 교인이나 믿음이 연약한 교인은 교회에 가면 안 됩니까. 교회가 믿음이 강건한 수도사들만 모이는 곳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럴려면 교회도 차라리 수도원처럼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겠지요. 그도 아니라면 헌금을 많이 할 수 있는 부자들만 우선적으로 천국에 보내주겠다는 것인가요.
안타깝게도 지금 돈으로 타락한 교회의 주인은 부자 목사들입니다. 그 부자 목사들을 대놓고 나서서 옹호하는 사람들은 영적 노예로 길들여진 맹신도들입니다. 그리고 그 맹신도들은 계속 빼앗아 가라고 끝까지 부자 목사를 추종합니다. 이처럼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한국 개신교의 영적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자고 열심히 설교하는 많은 목회자들이 유독 '예수님의 가난한 삶'만은 결코 따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공동체라면 영육으로 가난해져야 정상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성경의 명령대로 흩어 구제하고 주고 나누기 바쁜데 언제 교회가 부유하고 비대해질 틈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어떤 교회가 부동산과 자산을 축적하며 부유하다면 그건 그 사역이 그만큼 왜곡되었고 방만하다는 강력한 반증일 것입니다.
아울러 왜 굳이 헌금 봉투에 누가 돈을 냈는지 필히 밝혀서 장부 처리를 해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봉투 없이 현금으로 들어온 주일헌금도 회계상 아무 문제 없이 잘 처리하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가 좀 더 솔직해져야 합니다. 왜 교인이 줄어들고 가나안 성도가 급증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교회가 중학생이라도 뻔히 알 수 있는 상식을 무시하며 속이 빤히 보이는 '종교적 상술'을 펼치기 때문입니다.
무기명 헌금을 널리 장려하고 권면하지 못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구구한 변명이 많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리 할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위선적 헌금을 유도하고 '사람의 유전'을 제도화하여 어찌 하든 돈을 더 걷겠다는 알량한 심사가 아닌지요. 하지만 그렇게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더 걷은 들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사명을 망각하고 배를 불리우는 교회는 중세교회처럼 그저 돈으로 타락하는 내리막 길이 있을 뿐입니다.
교회가 상식을 버리면 세상은 교회를 버린다
사실 믿음이 없으면 헌금을 못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교회가 헌금액으로 신도들의 믿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어떤 경우 부유한 장로는 믿음이 그다지 신통치 않아도 헌금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가난한 장로는 아무리 믿음이 있어도 현실적으로 헌금을 많이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수시로 빚을 내며 살아도 버티기 힘든 가난한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풍성한 헌금은 커녕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부모님이나 동생 가족들을 보면서도 돕지 못 하는 그 처절한 아픔을 아십니까. 그런데 그분들이 마음 편히 다닐 만한 교회가 몇이나 있을까요. 여러분이 출석하시는 교회는 돈이 없어 헌금이나 십일조를 넉넉히 못 해도 진정 자유로운 교회 생활이 가능한지요.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요즘 일부 교회들의 헌금 유도 행태가 얼마나 유치하고 치졸한지 잘 아실 것입니다. 교묘한 헌금 강요로 상식을 분노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갈수록 가난한 직분자들을 부끄럽게 만들며 그분들이 설 자리를 빼앗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가난한 성도'들은 교회를 떠나 모두 '가나안 성도'가 되어야 할 판입니다.
그럼에도 거룩한 공교회가 종교라는 탈을 쓰고 모일 때마다 돈 타령을 합니다. 도대체 이 나라에 종교라는 간판을 건 집단들 중에서 돈으로 장난질 안 하는 곳이 몇이나 있는지요.
개혁 교회만이라도 돈에 순수해지고 의연하면 안 될까요. 하여튼 어떤 교회들을 보면 사역을 위해 돈을 내는지 돈을 위해 사역하는지 영 분간이 안 됩니다. 상당수의 목회자라는 분들이 종교적 틀에 안주하며 무슨 사이비 집단처럼 돈만 밝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의 제자된 성도들의 믿음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요. 교회가 헌금을 바르게 걷고 바르게 사용하면 성숙한 성도들은 더욱 기쁘고 신이 나서 열심히 헌금을 할 것입니다. 설사 새신자나 믿음이 연약한 형제나 가난한 교인들이 헌금 좀 덜 내면 어떻습니까. 경제적 여유가 있는 다른 교우들이 더 내면 되지요. 지금부터라도 한국교회가 구태의연한 '종교적 공동체'를 청산하고 보다 '성경적 공동체'를 추구한다면, 그 어떤 교회라도 돈이 없어 쇠락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입니다.
아울러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지 마십시요. 세상은 바보가 아닙니다. 교인이 괜히 줄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상식을 버리면 세상은 교회를 버립니다. 세상이 돈의 노예가 되고 돈에 찌든 개신교를 비웃고 있다는 말이지요.
이젠 정말 돈봉투가 없으면 동네 교회에도 못 가는 시대가 되는 것일까요. 비록 한 도시에 단 하나의 교회라도 좋으니, 우리 가난한 성도들이 돈이 없어도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다닐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교회가 점차 늘어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막7:8)."
▲ 신성남 집사 /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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