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십자가
요한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그 분이 어떤 분이고 어떤 삶을 사셨는지 잘 모릅니다.
그럼 구원의 유일한 문이요, 길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신 구세주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시대 4000년은 아담의 범죄로 인한
탕감기간으로 죄와 율법에 얽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보내 주셔서 온전한 구원을 이룰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사야 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이사야 선지자가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로 메시야가 다윗의 혈통에서 나실 것을 예언했는데
마태복음
1장에서는 자세한 족보를 들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강림하심으로써 이상세계를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신이 강림한다는 것은 기름 부음 받은 대 제사장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
(Christ, 기름 부음 받은 자, 헬라어) 또는
메시야(Messias, 기름부음 받은자, 히브리어, 마쉬아흐)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기름 부음 받은 사람들중에는 세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왕, 제사장, 선지자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에 잠긴 자, 기름이 부어진 자, 기름이
넘쳐흐른 자,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미가 선지자가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즉 진정한 왕이요, 주인이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나심으로 예언을 이루셨고, 이스라엘의 왕이자 주인이라는 의미에서
구세주(Savior) 또는 주님(Lord)로
불리었습니다.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선지자는 처녀가 남자와 동침하지 않고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사이지만 동침하기 전에 임신을 했습니다.
이에 요셉이 파혼하려고 하자 천사가 나타나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처녀 잉태로 세상에 오신 것은 원죄를 상속 받지 않고 하늘이 주신 깨끗한 몸으로 오시기 위함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는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이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성경에 적으실 리가 없습니다.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실 것을 암시하는 구절로 우리 죄를 대신해 고통을 받으실
것을 예언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벌을 받으실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야 초림에 관한 구약의 예언 48가지를 성취하셨는데, 이는 확률적으로 우연히 일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성취하신 대표적인 예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그리스도는 이스라엘로부터 오실 것이다(민 24:17-19).
· 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 될 것이다(창 12:3 ;17:19, 민24:17).
·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다(미 5:2).
· 그리스도는 처녀에게서 태어나실 것이다(사 7:14).
·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실 때는 상세히 예언되어 있다(단 9:25).
· 그리스도의 오심은 그의 선두주자에 의해서 선포될 것이다(사 4:3-4).
· 메시야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사 9:6).
· 그는 어린 시절을 이집트에서 보내실 것이다(호 11:1).
· 그는 고난을 받고 속죄를 이루실 것이다(사 53장).
· 그는 나귀의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것이다(슼 9:9).
· 그가 고통 중에 있을 때 쓸개즙과 식초가 주어질 것이다(시 69:21).
· 그의 뼈는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시 43:20).
· 사람들은 그의 옷을 나눠 갖기 위하여 제비를 뽑을 것이다(시 22:18).
· 그는 죽음의 고통 가운데서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기록된 어떤 말들을 할 것이다(시 22:1).
· 그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질 것이다(시 16:10).
· 그리스도는 친구에 의해 배반당한 것이다(시 41:9).
· 그는 은 삼십에 팔릴 것이다(슼 11:12).
· 그는 거짓 증인에 의해 모함받을 것이다(시 35:11).
· 그는 침 뱉음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맞을 것이다(사 50:6).
· 그는 이유없이 미움을 받을 것이다(시 35:19).
· 그는 멸시와 조롱을 당할 것이다(시 22:7,8).
2. 예수님은 새 시대(생명의 시대)를 열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로운 계명을 주시며 그 계명을 지키면 구원받고, 지키지 못하면 심판을 받습니다.
아담 때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고, 노아 때는 방주를 짓고 타라는 계명을 주셨으며,
모세 이후에는 율법과 제사법을 주어 지키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법, 즉
생명의 법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누가 5/37~38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것이니라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왜 금식하지 않는냐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지 낡은 부대에
넣으면 부대가 터져 못 쓰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낡은 부대는 구약시대, 새 부대는 새 시대(신약
시대), 새 포도주는 생명의 법을 말합니다.
새로운 시대가 왔으니 이전 시대의 법인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한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믿고 따른 것은 영생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영생이란 영원한 생명(Eterner Life)으로 죽었던 우리 영이 영원한 천국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반해 구약 시대에는 영이 죽었기 때문에 육신에 관한 율법과 육신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법밖에
받을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영혼의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럼 구약 시대의 제사법과 율법이 새 시대에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a) 형식에 얽매었던 육적인 제사가 영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로 바뀌었습니다.
요한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개역한글)
요한 4/24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 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하시니라.
(한글 킹제임스)
사마리아 여인이 꼭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려야 하느야고 묻자 예수님은 어디에서든지
마음으로 즉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영이 살아 났기 때문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영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돌리면
되는 것입니다.
제사(offering)은 신께 공물을 드리는
의미가 있지만 예배(worship)은 신을 공경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태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영이 살아 났기 때문에 당당히 하나님께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화하듯이 기도로써 우리의 소원을 말하면 부모가 자녀의 소원을 들어 주듯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 줄 것이라 하셨습니다.
영이 죽었던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구하기는커녕,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에 급급했었습니다.
b) 육신에 관한 율법이 영혼에 관한 생명의 법으로 바뀌었습니다.
율법은 육체가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기 위해 주신 법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인데 우상 섬기지 말고 살인 간음 도적질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육신에 관한 법으로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영혼에 관한 진리 말씀이 바로 생명의 법이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Ⅰ) 주 예수를 믿어야 구원 받습니다.
구약 시대 때는 모든 율법을 지켜야 축복을 받고, 그
중 하나라도 어기면 저주를 받았습니다.
사람이 죄 없이 깨끗하기도 어렵지만 모든 율법을 지켰다 하더라도 영적인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요한 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 가운데 보내신 이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그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요한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듣고 지켜야지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한 1/14) 우리가운데
오셨고,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니 나를 먹으라고(요한 6/48)
하신 것은 예수님의 실체가 말씀이니 예수님의 말씀를 받아드리라는 것입니다.
Ⅱ)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마태 22/37~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예수님이 주신 계명 가운데 가장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섬기는 것이 아나라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 하십니다.
늘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생각하고 사랑해야 사탄이 틈을 타지 못합니다.
또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가까운 사람 뿐만 아나라 불우한 이웃들까지 사랑해 도우란 것입니다.
마태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구약시대에는 내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그대로 갚아 주었지만(출 21/24) 신약시대에는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십니다.
원수를 미워하지 않기도 힘든데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원한은 나를 악하게 만든다는 걸 생각할 때 오히려 원수를 불쌍히 여기고
더 죄 짓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육신의 감정적 사랑과는 다릅니다.
육신의 사랑은 일시적 기분에 의해서 좋아지나 시간이 지나면 싫증나고 실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혼의 사랑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숭고한 마음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사랑은 인내하고, 온유하고, 시기 질투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고
화내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믿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사랑이란 악하지 않고 선한 진리와 인내와 믿음으로 다져진 마음이라 할
것입니다.
Ⅲ) 내게 죄 지은 자를 무조건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마태 18/21~22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베드로가 예수님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일곱 번 정도 용서해 주면 되겠습니까? 라고 물어보니
일흔번씩 일곱 번 즉 490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했습니다.
이는 형제의 잘못을 앙갚음하거나 원한을 품지 말고 무조건 용서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마태 18/23~35 에서 빚 탕감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우리의 큰 죄를 은혜로 탕감해 주셨는데 우리가 형제의
작은 죄를 용서치
않는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지만 구원 받은 자는 최소한의 도리를 지켜야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마태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주 기도문에서도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해 달라고 합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쫓겨 다니면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맞았는데도 그를 미워하지 않고 용서했습니다.
사울왕을 죽일 기회도 있었지만 죽이지 않고, 그가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바랬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도 악행을 반복하던 사울왕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이와 같이 악인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이 하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Ⅳ) 남을 함부로 비판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하십니다.
마태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형제의 허물을 비웃고 함부로 판단해 상처주는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다 똑같은 죄인인데도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남의 탓만 합니다.
학교에서는 마음에 안드는 급우를 왕따시키고 괴롭힙니다.
왕따 당한 학생은 심한 상처를 입고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하기까지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상대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덮어주고 감싸줘야 겠습니다.
Ⅴ) 마음으로 범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6/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선한 행동을 하고,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결국 악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미운 마음을 가지면, 결국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죄의 발생지인 마음을 바르게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마음에 욕심이 생기면 결국 죄를짓게 되고 파멸로 이어집니다.
육신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자전거 타면 소형차라도 타고 싶고, 소형차 타면 중형차 타고 싶고, 중형차 타면 외제차 타고 싶어집니다.
저급한 육신의 감정에 얽매이지 말고, 신령한 것을 사모하며 살아야겠습니다.
3. 유대인은 왜 예수님을
배척했나?
유대인들은 자신을 구원할 구세주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믿게 하기 위해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죽은 사람까지 살리셨습니다.
그런데도 바리세인 같은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며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죄인, 세리, 창녀, 어부 등 순수한 하층민만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기고 따랐을 뿐입니다.
그럼 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했는지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a) 위선과 탐욕에 빠진 유대 지도자들의 잘못을 예수님이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는 예수님이 유대 지도자들의
잘못을 지적하십니다.
대표적인 잘못은 형식주의에 빠져서 겉으로는 경건한 채 하고 높임을 받지만 속으로는 각종 탐욕과 죄악이
가득찬 회칠한 무덤과 같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 싫은 법입니다.
민중의 마음이 예수님께로 쏠리자 이에 밥줄이 끊길 것을 염려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세우게 됩니다.
b)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이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한 10/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예수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하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자칭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신성모독이라며
예수님을 돌로치려 했습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말이 쉽게 이해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요한 14/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나를 본 것은 하나님을 본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언행은 하나님께서 그안에 계셔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엄청난 능력을 행하셨고, 우리를
구원할
온전한 진리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c) 율법을 지키지 않는 예수님을 율법 파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은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고 분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은 일하지 말라는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었고, 떡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일하지 말라는 안식일에 손마른 사람, 귀신들려 꼬부라진 여자,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유대인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 그를 믿기 보다는 율법으로 그를 트집 잡았습니다.
마태 5/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예수님은 새 시대의 법을 선포하러 오셨기 때문에 법이 바뀌었으니 이전의 법은 효력을
잃었습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는 밤 12시 이후에 다닌는 것이 통행금지 죄에 해당했지만
지금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새 법을 선포하신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율법 모두를 폐하신 것은 아닙니다.
율법 중 십계명 같이 육신에 관한 도덕적인 계명은 여전히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법인 율법에 이어 영혼의 법인 생명의 법을 선포하셨습니다.
사랑으로 가득찬 사람은 형제를 미워하거나 해를 끼치지 않으므로 율법이 저절로 지켜지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신 것이 아니라 더 이상적으로 발전시켜 완성시킨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율법은 초등학문이고 초등학문을 거쳐 고등학문인 생명의 법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도 초등학교를 나와야 중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율법은 영의 법을 맞기 위한 과정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지키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은 율법도 아닌 사람들이 만든 전통인 유전이었습니다.
d) 유대인들은 교만에 빠져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요한 7/52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당시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교만에 빠져 유대의 변방 지역이었던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경건하고 위엄있다고 생각한 이들은 누추한 차림의 예수님께 머리를 굽힌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가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이 왜 예수님이 죄인과 세리들과 식사를 하는지 물으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병든 자에게 의원이 쓸데가 있듯이 예수님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암환자가 암세포가 온 몸에 퍼지고 있는데도 나는 건강하다고 버티면 의사가 치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잘나고 똑똑한 사람도 이런 상황에선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땐 나는 죄인이고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오직 예수님만
믿고 의지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하고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부르시지 않고, 겸손하고 애통해 하며
심령이
가난한 자를 찾으십니다.
4. 유대인의 배역은
하나님의 뜻인가? 은혜에 대한 거부인가?
예수님께서는 여러 비유를 통해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는 혼인잔치 비유가 나오는데
임금이 아들 혼인잔치를 위해 종들을 보내서 사람들을
초청하나 다 자기일에 바뻐 무관심 할 뿐만이 아니라 보낸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진노하여
군대를 보내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동네를 불사르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천국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들의 심판을 나타냅니다.
마태 21/33~41에서는 포도원 비유가
나오는데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나가서 열매 익을 때 소출을 받으려고 종들을 보내니 심히 때리고 죽이니 '내 아들은
공경하겠지' 라고
생각하고 아들을 보내나 상속자 아들을 죽여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아들도 죽이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와
이 악한자들을 진멸하고 다른 농부들에게 농장을 줍니다.
이 역시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과 예수님을 죽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거부한 유대인들의
심판을
나타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유대인들이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인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가진 자유의지 때문입니다.
에스라 7/13 I make a decree,
that all they of the people of Israel, and of his priests and Levites,
in my realm, which are minded of their own freewill
to go up to Jerusalem, go with thee.
freewill은 '자유의지'로 내가 누구의 간섭 없이 내 마음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원격조종 로봇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5/11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하나님이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후회를 하십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식 잘 못 되는 것을 어쩔 수 없듯이 하나님도 인간이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후에 하나님은 외모 보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다윗을 왕으로 삼으십니다.
출애굽기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이사야 49/6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열국 중에 거룩한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이방인의 빛으로 삼아 땅 끝까지 구원을 베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아 온갖 죄악과 우상숭배에 빠졌고, 결정적으로
구세주인
예수님을 받아 들이지 않아 심판을 받게 되었고, 이방인에게 그 모든 복락이 돌아갔습니다.
* 유대인의 배역은 다음 두 가지 결과를 초래합니다.
첫째는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마태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 가리라
마태 27/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
누가 19/43 날이 이를찌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마가 1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선지자들의 의로운 피가 유대인에게 돌아갈 것을 예언하셨고, 유대인들은 스스로 예수님을 죽인
무죄한 피를 자신과 자손들에게 돌린다고 하였습니다.
AD 70년에 로마 군대가 반란을 일으킨 유대민족을 진압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포위하는데 주위에 토성을
쌓고 입성합니다.
로마군은 성전을 모두 무너뜨리고, 유대인들을 대량학살 했으며, 나라를 자체를 없애고, 남은자들을 노예로
팔아 넘겼습니다.
또한 유대인은 2000년 가까이 전 세계를 유랑하며 온갖 핍박과 수모를 당했고, 2차대전 당시에는 600만명이라는
기록적인 학살을 당했으니 메시야를 죽인 죄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방인(비 유대인)에 대한 선교입니다.
혼인잔치 비유와 포도원 비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수님 사 후에 본격적으로 이방인
선교가 시작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 지중해 인근 여러 나라를 순회하였습니다.
유대인은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선택받은 민족으로서의 특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는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쾌락과 욕심에 빠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육신을 예표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였고,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 육신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구원을 위해서는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5.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지는 의미
예수님을 받아드리면 구원이고 거부하면 심판인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온 인류를 심판하고 마귀 사탄에게 내어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믿는 조건까지 대신 세워주기로 하셨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죄의 씻김을 받는다는 것을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요한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를 설명한 구절로 출애굽 때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불신해
놋뱀을
쳐다 보아야지 불뱀에 물리지 않았던 것처럼, 예수님을 불신했던 인류는 십자가를 쳐다 보아야지만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사도바울은 십자가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구원 받을 수 있는 계명을 주시는데 이는 인간 스스로 바꿀 수 없습니다.
아담 때에는 선악과 따 먹지 말라는 계명이 있었고, 노아 때에는 방주에 타라는 계명이 있었으며,
모세 이 후에는 십계명과 제사법을 지키는 것이 계명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 그리스도로 시인하고, 그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시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죄사함 받는다는 것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계명입니다.
예수님은 멸망할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기 위해 우리 죄를 대신해 모진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고전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계시록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은 십자가 복음이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지혜를 찾는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게
들리지만 누구든지 구원 받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역이요 지혜라고 합니다.
계시록에서는 말세 때 구원받는 사람은 어린양(주님)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보혈로 죄사함 받아 의롭게 된 자라는 의미입니다.
* 그럼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지는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a) 대속 (代贖, expiation)
대속은 대신 속죄한다는 말로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시대 때는 육신의 법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그냥은 용서가 안되고 회막에서 자신의 죄를 무죄한 염소나
양에게 안수해 전한 다음 제사장이 암염소나 어린 암컷양을 잡아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단 밑에 쏟은 다음
나머지를 번제단에 불살라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마태 20/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와 갈이 예수님께서 스스로 어린양이 되어서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사함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 죄가 깨끗이 씻어져 죄사함 받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b) 구속 (球贖, redemption)
구속이란 죄인을 속전을 내고 건져낸다느 말로 예수님이 죄인된 우리를 마귀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피로써
죄값을 치루었다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6/20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로 죄에서 건짐을 받았으니 우리 모두 예수님에게 빚진 자입니다.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구하기 위해 예수님은 엄청난 희생과 고초를 감수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우리를 용서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이미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피값을 주고 산 존재이니 구원 받은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K·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제자의 죽음 (0) | 2014.09.02 |
---|---|
12제자 이름 분석 (0) | 2014.09.02 |
예 배 학개 론 요약 (0) | 2014.08.30 |
칼빈의 신학적 해석학 (0) | 2014.08.30 |
영광에서 영광으로 그리스도의행적 72단계 두번째 (0) | 2014.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