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기초
우리는 지금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이 너무 빨리 발전해 그만큼 우리의 생활은 풍요로워지는 것 같지만 사회도 너무 빨리 변해
우리 능력으로 좇아가기가 너무 힘듭니다.
오히려 더 바빠지고, 더 스트레스 받고, 더
살기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날마다 터지는 대형사건과 자연재해, 전쟁과 질병은 우리를 늘 불안하게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사람들은 점점 정을 잃어 버리고 물질만능주의에 도취되 각종 사치와 유행을 좇아 다니거나
좀 더 재미있고 쇼킹한 것들을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그 어떤 무엇도 우리를 근본적으로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금방 싫증이 납니다.
아모스
8/11~1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2700년전에 이러한 날을 예고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기근을 주시는데 물이 없어서 갈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근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구하려고 사방천지를 돌아 다녀도 얻지 못하니 그 날에는 젊은 사람들도
다 영적인 갈증으로 피곤해진다고 합니다.
미래가 불안하니 사람들은 의지할 곳이 없어 운세를 보거나, 각종 상해보험이나 생명보험도
듭니다.
그래도 마음은 안정되지 않아 이 책 저 책을 뒤져보고 이 종교 저 종교도 가보지만 마음의 갈증은 늘
해소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을 왜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답이 나오질 않으니 자포자기하고 살게 됩니다.
잠언
14/12~13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인생은 아무리 사회에서 출세하고 부귀영화를 누려도 필경은
늙고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망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겁게 놀아도 마음에 근심이 끊이질 않습니다.
내가 항상 불안해 하고 근심하는 것은 내 영혼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인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를 듣고 싶어합니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들으면 캄캄한 터널을 빠져 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느니라.
요한1서 4/19 우리가 그 분을 사랑하는 것은 그 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영혼육
데살로니가전서
5/23 화평의 하나님께서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책망할 것이 없게 보존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노라.
성경에 인간은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몸은 우리 육신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영혼과 육신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영과 혼은 다릅니다.
그럼 영과 혼과 육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영 (靈, Spirit)
a) 영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내 안에 또 다른 나인 내 영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영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누구나 밤에 혼자 있으면 무서움을 느낍니다.
또 예민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는 우리 영이 다른 영(귀신)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보이거나 들리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들을 수 있는 세계는 전체 파장중에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반사된 가시광선 영역으로 380~770nm(nanometers)입니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는 일반적으로 16Hz~20,000Hz 입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밤에 고양이는 적외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초음파로 돌고래는 대화합니다.
지금도 TV 전파가 공중에 떠 다니지만 TV가
없으면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라디오 방송 또한 라디오가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지 보이고 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존재가 없다고 부정하는 것은 비과학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는 가끔 사진기에 귀신이 찍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필름의 감광물질이 우리가 볼 수 없는 파장에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유명 가수 녹음실에서 귀신 웃음소리가 들렸다고 화제가 되곤 합니다.
이 역시 현대의 첨단 녹음장비는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주파수를 녹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귀신의 보거나 음성을 듣기도 합니다.
귀신의 사진이 찍히는 것을 심령 사진이라고 하는데 조작됐거나, 현상 인화 때 잘못됐거나, 착시에 의한
것도 있습니다.
사람 얼굴이나 옷 모양이 너무 또렷한 것은 가짜입니다.
귀신은 흐릿하며, 얼굴 윤곽이 분명치 않고, 팔
다리가 없거나, 머리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령 사진 중 확실해 보이는 것만 모아 봤습니다.
원래 사람이 죽고 영이 분리되면 초혼하는 영들이 와서 천국이나 지옥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 맺혀 죽은 영이나 갑작스런 사고로 죽은 영 중 일부는 이 세상에서 떠돌고 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사람들이 영적 무지에 빠지지 않도록 일부 영이 이 세상에 남겨졌다고 봅니다.
이들은 마지막 때 불못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므로 이들에게 심판이 면제된 것은 아닙니다.
계시록 20/13 바다도 그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그들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니
그들이 각자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으며
하박국 2/14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마지막 때 사망과 지옥뿐만 아니라 바다에서도 죽은 자들을 내어 주는데, 성경에서 바다는 이 세상을 의미합니다.
귀신이 이 세상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많이만 성경적으로도 이 세상에 죽은 사람의 혼령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귀신의 국어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의 혼령이지만, 개역한글에서 귀신은 영문으로 마귀(devil) 또는 악령(evil spirit,
unclean spirit)입니다.
마가 9/25 예수께서 무리가
함께 달려오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영'(foul spirit)을 꾸짖으시며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벙어리이며 귀먹은 영아'(dumb and deaf spirit), 내가 너에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와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시자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은 귀신 들린 자를 고쳐 주셨는데, '더러운 영'(foul spirit)을 꾸짖으셨습니다.
'벙어리이며 귀먹은 영'(dumb and deaf spirit)에게 명령하여 그에게서 나오고
다시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벙어리이며 귀먹은 영'(dumb and deaf
spirit)은 마귀가 아니라 죽은 사람의 혼령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문 성경에서 마귀는 엄밀히 'Devil'로 구분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마귀(Devil)는 타락한
천사로, 사탄의 수하에 있는 악령이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을 타락시킵니다.
따라서 귀신과 마귀는 다르며, 이들 모두 사람에게 해를 끼치므로 악령 또는 더러운 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귀신은 주로 안개 낀 밤에 잘 나타나고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더 영적이기 때문에 잘 봅니다.
그들이 보는 귀신은 주로 희미하고 손과 발이 없는 경우가 많으며 얼굴윤곽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도 가끔 꿈에서 악령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가위 눌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귀신이나 마귀가 다른 사람에게 들어오는 것을 귀신들임
현상이라고 합니다.
육신은 영혼의 집과 같아서 완성되지 않은 영혼은 남의 몸에 들어가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방탕하고 음란한 마귀가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술이나 도박에 빠지고, 음란한 행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난폭해 지거나 술이나 도박에 빠진다던지 음란한 행위를 서슴치 않는 경우 의심해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귀신은 자신이 살았을 때 했던 것을 죽어서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시어머니가 돌아 가신후 그 영이 며느리에게 들어가 동네 사람에게 반말을 하고,
액수까지 제시하며 돈 갚으라고 독촉을 합니다.
특히 한 맺힌 귀신은 원인 모를 병을 주거나 정신병을 주기도 합니다.
무당들은 자원해서 이러한 귀신에 들려 예언을 하기도 합니다.
귀신은 시공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에 미래의 일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러한 신접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조상들을 위해서 매년 제사를 드리지만 향불을 키고 기다리면
결코 조상 영은 오지 않고 대신 마귀가 옵니다.
왜냐하면 낙원에 있거나 지옥에 있는 영들은 함부로 이 세상에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향 냄새를 맡고 찾아온 시커먼 마귀(타락한 천사)들이
와서 제사음식을 먹고 절을 하는 사람의 몸을 들락거립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고 나면 몸이 축난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고전 10/20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마귀들에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너희가 마귀들과 교제하는 자들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아니하노라.
이러한 귀신이나 마귀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늘 찬송과 기도의 은혜속에
거해야 합니다.
빛이 비추면 결코 어두움이 침입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에도 많은 귀신과 마귀들을 내 쫓았습니다.
만약 악령이 괴롭힌다면 담대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쫓아내시기 바랍니다.
b) 영이 가진 속성
1. 영은 선하고 의로운 마음인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의 생각은 육신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지하철에서 앉아 있는데 할머니가 앞에 오면 영과 육의
마음이 싸웁니다.
육은 편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모른척 하고 자는 척 하려고 하지면 결국 양심에 찔려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남을 돕는 등 선한 일을 하면 마음에 뿌듯한 기쁨이 몰려옵니다.
로마서 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사도 바울은 양심이 마음에 새긴 율법 즉 십계명과 같다고
했습니다.
양심은 하나님이 주신 선하고 의로운 마음입니다.
그래서 거짓말이나 도둑질을 하게 되면 양심에 가책이 되고 심장이 뛰게 됩니다.
그러나 자꾸 악을 행하다 보면 양심히 무뎌져서 담대히 악을 행하게 됩니다.
2.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장합니다.
마태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사람이 떡(음식)만 먹고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는 영의 양식입니다.
따라서 진리를 듣지 못한 영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흐물흐물하고 팔 다리가 없는 귀신이 되곤 합니다.
육신은 나이가 먹으면 DNA 정보에 의해서 저절로 성장하지만, 영은 진리를 듣지 못하면 육신은 할아버지더라도
영혼은 어린아이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c) 영의 죽음
창세기 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아담과 하와를 창조한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는데 뱀(사탄)의 꼬임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는 계명을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따 먹는 날에 죽는 다고 했는데 아담은 아주 오래 살았습니다.
그 때 죽은 것은 육이 아니라 영이었습니다.
인간의 영이 떠나면 육신이 죽듯이 하나님이 떠난 우리
영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성장과 활동을 멈추고 잠자는 것 같은 상태로 지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영이 있는 줄조차 모르고 육신의 삶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영의 양심보다 육신의 본능이 강하기 때문에 선한 영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육신의 본능대로 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3/1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에스겔 18/20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끊어진 사람은 살았다
해도 죽은자와 같다고 하십니다.
또 범죄하는 영혼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끊어지니 죽는다고 하십니다.
범죄로 죽었던 내 영을 다시 살리는 것이 거듭남이며, 거듭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 받으면 성령이 오셔서
죽었던 내 영을 살려 주시면서 이루어게 됩니다.
영이 죽은 상태에 있으면 아무리 하나님을 부르짖고 외쳐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영이 죽은 사람은 마치 선장을 잃은 배와 같습니다.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결국 암초에 부딪쳐 부셔지고 말 것입니다.
영이 살아나면 더 이상 육신에 매이는 삶을 살지 않고 육신을 주관하고 다스릴 수 있습니다.
d) 자발적 영적 체험의 위험성
사람은 누구나 미약하나마 예감이나 텔레파시, 초능력 등의 영적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요즘 뉴에이지 열풍이 불어서인지 명상, 요가, 단전호흡, 마인드콘트롤, 최면 등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비주의에 속하는 마법에서는 마귀를 불러내 마귀의 힘을 빌어 마법을 행합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정신집중을 통해 영적능력을 배양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진리를 외면하고 귀신 쫓음이나 병 고침 같은 영적 능력만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영적인 세계에 접근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요한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구원을 향한 유일한 길이요 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영계에 접근했다가는 영계에 드글거리는 마귀나 귀신의 주관을 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실제로 단전호흡아니 기수련을 하다가 귀신이 들려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종종 나옵니다.
이 세상의 종교는 하나님이 만드신 기독교와 사탄이 만든 종교로 구분됩니다.
사탄 종교의 원류는 이집트와 바빌론으로 이곳에서 각종 신비주의와 여신숭배사상이 나왔습니다.
동양으로는 힌두교와 불교에 영향을 끼쳤고 서양으로는 카톨릭과 프리메이슨(사탄숭배집단), 신비주의,
뉴에이지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지만 기본원리는 부처가 말한 것처럼 "누구나 성불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 입니다.
누구나 노력해서 도를 깨달으면 신(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탄이 품었던 교만한 마음이며 이로 인해 하늘에서 쫓겨났고, 땅에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왕인 사탄은 지금은 하나님처럼 행세하지만 결국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기독교는 자신이 죄인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리석어 보일지 모르지만 주님께서는 이렇게 애통해하고, 겸손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를 찾으십니다.
내가 가진 모든 고집과 자만을 버리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고
우리를 깨끗게 하여 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며, 우리를
영화롭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2. 혼 (魂, soul)
혼은 우리의 정신을 말합니다.
영과 육의 다리 역할을 하며 우리가 이성적,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곳입니다.
혼은 무언가 이루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학문을 탐구하게
하고 예술을 지향합니다.
혼이 있기에 우리는 동물과 달리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영은 진리를 원하는데 반해 혼은 세상학문 즉 지식을 추구합니다.
우리는 학교를 다니거나 책을 읽음으로써 혼의 지적 욕구을 충족시켜 줍니다.
혼은 영이 떠나 육신이 죽으면 소멸합니다.
정신력(혼)이 강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영이 살아나기 전까지 우리는 혼으로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기 힘든 것은 혼이 이성적, 과학적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 점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 성경구절이 이해가
안가면 그대로 믿지 못하고 악착같이 성경이나
참고 자료를 뒤져서 궁금증을 해결하곤 했습니다.
요한 2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에 제자 도마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말을 듣고 "내가 그 못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보지 않고는 못 믿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바로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손의 못자국을 보이시면서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한동안 몸의 부활을 도저히 믿지 못했는데 여러 성경구절을 찾아보고 나서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IQ의 천분의 일도 안되는 제 머리로 함부로 판단한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3. 몸 (육신, 肉身, body)
육신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가깝고 실제적인 나입니다.
육신은 종족보존을 위해 다음 세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a) 생존본능
생존본능은 죽지 않고 살려고 하는 본능입니다.
그래서 우린 굶어 죽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하고, 사고 나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운전합니다.
생존본능은 모든 동물들 속에 내재된 가장 큰 본능입니다.
아프리카의 초식동물들은 언제 사자가 나타날 지 모르니까 불안한 마음에 항상 두리번거립니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수 없이 실패하는 이유는 마지막 순간에 생존본능이 발동하기 때문입니다.
생존본능 때문에 우리에겐 항상 걱정 근심이 떠나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짤리지나 않을 지, 교통사고 나지 않을 지, 큰 병 걸려서 죽지나 않을 지 늘 불안합니다.
먹고 살기 바쁘고, 근심 걱정 때문에 영적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마태 6/31~34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이러한 것을 주님께서는 다 아시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먼저 영적인 일에 시간을 투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채워주신다고 하십니다.
삶이란 건 어짜피 고통인데 내일 일까지 불안해 하고 걱정하지
말고, 오늘에 충실하라고 하십니다.
이 얼마나 명쾌하고 속 시원한 말씀입니까?
아무리 잘 먹고, 잘 살고, 아무리 안전하게
살아도 늙어 죽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먹고 사는데만 연연하다 허무하게 살다 간 인생은 동물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생존본능에 얽매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놓쳐서는 안되겠습니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목적을 아는 일입니다.
b) 생식본능
모든 동물은 결국 죽기 때문에 생식활동을 통해 자손을
번식시켜서 종족을 보존하려고 합니다.
이것을 생식본능입니다.
연어는 힘들게 태평양을 지나 강물을 거슬러 올라와 알을
낳고는 죽습니다.
허망한 생각이 들지만, 연어가 죽는 이유는 이제 할 일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포유류가 새끼를 낳고도 오래 사는 이유는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키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50대가 되어서 폐경기가 되면 골다공증, 성인병, 각종 암 발병 확률이 몇 배나 높아지며, 노화도 촉진됩니다.
이는 생식을 위한 역할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처럼 우리 육신으로서의 인간은 정해진 본능에 의해
살다 가는 비참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때가 되면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보람을
느끼며 삽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환갑잔치에서 자식과 손자가 번창한 것을 보면서 이제 할 일을 다 했다고 흐믓해 합니다.
생식본능을 위해 남자는 성욕이 강하고, 여자는 모성애가 강합니다.
그런데 건전하게 사용되야할 성이 잘못 사용되 성매매나 원조교제, 강간 같은 많은 사회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마태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간음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니, 예쁜
여자를 보면 성욕을 느끼는 것은 남자의 본능인데 어쩌란 말입니까?
이는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며, 거듭나 내 영이 살아나면 쎅시한
여자도 구원받아야
할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로 보입니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성적 대상체로 보기 때문에 성희롱 같은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c) 쾌락을 추구함
감정이란 육신이 외부의 자극이나 호르몬 분비에 대응해
표출하는 다양한 심리적인 반응입니다.
육신은 기쁨, 슬픔, 노여움, 욕심, 시기, 질투, 두려움, 좋아함, 미워함, 부끄러움 등의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물건을 보면 갖고 싶은 욕심이 나고, 사촌이 땅사면 배 아프고(시기),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은 자극 받기를 원합니다.
기쁨을 자극받기 위해 코미디나 쇼프로를 봅니다.
두려움을 싫어하면서도 두려움을 자극받기 위해 공포영화를 봅니다.
드라마는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우리의 미워함을 자극할 만한 아주 나쁘고 혐오스러운 인물을 만듭니다.
청소년들은 노여움을 자극시킬 수 있는 폭력적인 컴퓨터 게임이나 전자 오락에 열중합니다.
이렇게 감정이 자극 받기를 원하는 것은 뇌를 자극해
도파민을 분비하기 위해서입니다.
도파민은 신경전달 물질로 뇌 활동을 활발하게 해주고,
기분을 좋게해서 행복감을 느끼게 합니다.
인위적으로 도파민을 분비시킬 수도 있는데 담배, 술, 커피, 마약 등을 섭취하면 됩니다.
피곤할 때 커피를 마시면 반짝 정신이 들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약물은 건강에 해로울 뿐 아니라 도파민 분비가 약물에 의존하게
되고, 점점 더 많은 양이 필요해져
중독에 빠지게 합니다.
따라서 술, 담배, 마약 등에 중독되면 내 힘으로
끊기 힘든 것입니다.
사랑을 할 때도 도파민이 작용합니다.
이성에 매력을 느끼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지는데 이는
도파민 분비 때문입니다.
키스를 하거나 성행위시에도 도파민이 분비되 황홀한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3년 이상 만나게 되면 점점 서로의 자극에 무뎌져서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아
권태기에 빠집니다.
가장 건전하게 도파민을 분출하는 방법은 운동을 통해서
입니다.
걷기나 달리기 등의 운동을 하면 상쾌한 기분을 느낍니다.
일 중독에 빠진 사람은 일에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일을 할 때 도파민이 분비되 의욕과 성취감을 느끼게 되고,
휴일에 일을 쉬면 오히려 마음이 불안하고 삶의 의욕을 잃게 되므로 자진해서 직장에 나가게 됩니다.
도파민은 우리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도파민이 부족하면 무력증이나 파키슨병을 앓게되고, 너무 많으면 강박관념이나 정신분열증을
앓게됩니다.
그러나 육신은 이를 통제할 능력이 없어 도파민을 분비시켜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쥐의 뇌에 전기장치를 해놓고 스위치를 누르게 하니까 스위치를
누르면 전기자극으로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짜릿한 쾌감이 느껴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쥐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뇌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인생을 산다고 할 수 있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도파민을
분비하기 위해 인생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육신은 도파민이 분비되 황홀하고 짜릿하고 기분 좋기를
원하는데, 이를 '쾌락을 추구함'이라 합니다.
도박이 중독성이 강한 이유는 육신의 감정이 거의 다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도박을 하면 두려움, 기쁨, 노여움, 욕심 등의 감정이 작용하며, 뇌가 짜릿짜릿한 자극을 받습니다.
컴퓨터 게임도 박진감과 폭력성이 강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중독성이 높습니다.
마약이나 담배, 술의 중독성은 말 할 필요도 없고, 이들은
특히 건강까지 크게 해칩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왜 담배를 못 끊냐고 물어 보면 담배를 안 피우면 머리가 안 돌아간다고 합니다.
이는 도파민 분비가 이미 니코친에 의지해 담배를 안 피우면 두뇌 회전이 안되고, 의욕이
안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취미가 다른 것은 뇌가 특정한 행위나 약물에 반응해 도파민을 분비하기 때문입니다.
도파민 분비가 성행위에 의존도가 높은 사람은 음란물을 즐겨 보거나 결혼하고도 바람을 피게 됩니다.
쾌락은 우리 삶에 활력을 주지만, 통제되지 못할 때 집착과 중독에 빠지게 되고 결국 우리를 파멸로 인도하게 됩니다.
또 사회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악이 욕심과 쾌락이 통제되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최근 신용 불량자가 많아진 이유는 여자는 사치에, 남자는 술 값에 지출하는 등 욕망과 쾌락을
향한 육체적인 욕구를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한1서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모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사탄이 인류를 타락시키기 위해 쥐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내게 진정한 기쁨과 유익이 되지 못하고, 허탈한 마음만 남을 뿐입니다.
이 세상도, 육신의 정욕도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만이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개역 한글)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한글 킹제임스)
역사적으로 제국이 멸망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국민이 성적타락이나 음주, 폭력 등의 쾌락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육신의 정욕대로 살면 죽을 수밖에 없지만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고 하였습니다.
쾌락을 원하는 육신이 스스로 쾌락을 절제할 수 없습니다.
진리 말씀으로 내 영이 살아나서 쾌락을 원하는 육신을 절제시키고, 진리를 추구한다면 도덕적으로 살 뿐만 아니라
영혼의 구원도 받을 수 있습니다.
4. 결론
전도서 12/8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최고 전성기 때의 왕으로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가 지식을 구하였으나 오히려 근심이 많아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쾌락을 위하여 웃음과 희락의 나날을 보냈고, 사업을 크게 하여 엄청난 재물을 모았고, 술로써 방탕한 삶을
살아보았고, 수 많은 궁여와 성적 유희를 누려 보았습니다.
하지만 쾌락은 언제나 만족되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 흰머리가 나고 주름살이 생기면서 본능에만 얽매어 살다 가는
지독한 인생의 허무를 깨달은 것입니다.
쾌락을 추구할수록 몸과 마음은 황폐해지고, 결국 얻는 것은 병들고 죄악에 물든 육신입니다.
그리하여 늙어 아무 낙이 없다고 하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진리를 구하라고 충고합니다.
전도서 12/1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고린도후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사람은 20세를
넘으면 성장이 멈추고 생성되는 세포보다 죽는 세포가 많아짐으로써 노화가 진행됩니다.
나이가 들어 주름살이 늘어나고, 흰 머리가 나며, 병에
시달리고, 기력이 쇠약해지면서 처량한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를 감추기 위해 보톡스 주사를 맞고, 머리를 염색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지고, 시력이 감퇴되며, 뇌세포가
파괴되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남성은 중년이 되어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정력이 감퇴되면서 우울증에 걸립니다.
여성은 폐경기가 찾아 오거나, 집안 식구로부터 소외되면서 우울증에 걸립니다.
그러나 우리 육신이 늙고 병들어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내 속사람인 영이 진리로 날로 새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세상보다 훨씬 아름답고 기쁨이 넘치는 세계인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 70~80년은 아이를 잉태한 엄마의 10개월과
같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위해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음악을 들려 주고, 영양을 잘 섭취한다면 건강한 아이가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엄마가 매일 담배 피고, 술 먹고, 스트레스
받고, 화를 내면 기형아나 미숙아가 태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이와 같이 내 인생 동안에 소중한 내 영을 잉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영을 위해 산다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인생을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 지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 답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육신은 잘 먹고, 잘 살며, 결혼해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내 혼은 지식을 얻기를 원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짜 나인 내 영을 위해서 사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천국에 이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는 세계는 잠깐동안 존재할 뿐이지만, 우리가 믿는 보이지 않는 세계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잘 살아도 내 영이 심판을 받아 고통스러운 지옥에 간다면 영원히 후회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만드신 고귀한 인간이 본능에 따라 동물처럼 살다가 생을 마치는 것은 너무 비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영적)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육적)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고후 4/18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 이는
보이는 것들은 잠깐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이라.
계시록 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시편 49/20 사람이 존귀에 처해 있어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들과 같도다.
전도서 10/2 현명한 사람의 마음은 그의 오른편에 있으나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그의 왼편에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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