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신학과 신학도의 자세
김 용 복 박사
"현대신학"학이란 현대사회에 대응하는 신학을 말한다. 현대사회에서 기독교의 복음을 규명하려는 신학을 말한다. 여기서 "현대사회", "현대화", "현대"라는 말은 두가지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 첫째는 서양계몽주의시대이후의 역사를 말한다. 두째는 계몽주의철학적 정신 즉 "합리적 이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를 현대사회라고 한다. 이러한 철학적 정신은 데카르트(Decartes)에서 시작되어 칸트(Kant)에서 완성되는 합리주의에서 출발되고 현실적으로는 현대과학과 기술체계로 나타난다. 현대정신이 지배하는 사회는 현대적 산업화라는 사회경제적 변화를 수반하였고 서구의 현대문명은 정치적으로는 신민지세력화어 세계를 지배하게 되고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를 세계화하게 되었으며 문화적으로는 과학적 합리성을 보편화하였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현대정신의 물결이 진입하게 된것은 1800년대 후반부터라고 할 수 있다. 서구세력이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부터 서구현대정신이 한반도의 전통사회에 도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반도에 현대적 지식인들이 형성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1920년대 부터라도 생각된다. 이때에 한국의 지식인들 사회에는 현대과학적 합리성을 숭앙하는 사상이 내면화되어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이때에 한국의 현대적 지식인은 "종교는 미신이다"는 합리주의적 비판이 일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현대사상의 한 형태로서 사회주의사상이 한반도에 진입하여 "종교비판"을 개시하였는 데 이것은 "종교는 아편이다"는 무신론으로 나타난다.
한국사회가 본륢적으로 현대화하는 것은 해방이후부터이다. 남북한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개의 대립적인 사회체제를 형성하면서 현대적 산업화라는 목표를 내어놓고 소위 현대화를 추진한다. 이현대화의 근간은 과학과 기술을 근간으로하는 산업경제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대문명에서 일어나는 기독교신앙에 도전하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자. 우선 현대적 과학주의적 합리성의 철학은 진리의 기준을 철저하게 수학적 합리성에 둔다. 이것은 초이성적 종교적 진리를 미신으로 간주하고 진리의 범주에서 제공한다. 이러한 현대정신은 우선 전통기독교신학의 "형이상학적 논리"를 거부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신의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이라든지 우주론적 증명같은 신학적 논리를 거부한다. 이것이 칸트의 철학에서 가장철저하게 표출된다. 칸트는 모든 형이상학적 논리를 허구로 규명해버리고 수학적 합리성에서만 진리의 기준을 허용한다. 또 이러한 현대문명의 합리적 과학적 정신은 모든 종교를 미신으로 규명하고 기적을 부인하는 무신론으로 표출된다. 여기에서 기독교성경에 내포된 모든 기적적 진리는 현대문명의 도마위에 놓이게 되고 마침내는 성경의 권위마저도 도전을 받게되는 것이다.
현대신학이란 이러한 현대문명의 도전에 대응하는 신학적 노력을 의미한다. 현대문명의 도전에 대응하는 흐름은 크게는 두갈래로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현대문명의 논리를 전혀인정하지 않고 기독교의 성경과 교리를 보전하려는 보수신학의 흐름이 있고 또 하나는 현대문명을 받아 들이면서 오히려 현대문명속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증거하려는 "현대신학"의 흐름이 있다. 이러한 두가지의 흐름은 서구사회에서 줄기차게 일고 있으며 오늘 세계개신교의 큰 두가지의 신학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 두가지가 모두 기독교복음의 진리를 보다 충실하게 증거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있다.
우선 현대신학 성경해석에 현대적 합리성의 기준을 적용하는 문제가 제기 된다. 극단적인 현대신학은 성경의 진리가 과학적 합리성의 기준에 합당하지 않으면 부정하는 태도를 가진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라든 지, 동정녀 탄생이라든지, 기적이라든지를 부인하는 태도가 극단적인 현대신학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정신을 절대화하는 것이다. 현대과학적 합리성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이성절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합리적 방법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결과는 성경의 권위를 붕괴시킬 뿐 아니라 성경을 과학책으로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고 나아가서는 불란서의 계몽철학자들 처럼 이성을 우상처럼 절대神으로 섬기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최근 보수신학의 흐름속에서도 과학적 방법으로 성경의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명제를 전제하고 이것을 추구하는 노력이 있는 듯하다. 이것 역시 성경의 권위와 진리성을 과학적 규범에 성경의 권위를 종속시키는 오류를 것이다. 성경은 인간이 좌우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권위가 있는 것이지 인간이성의 테스트에 합격하기 때문에 진리인 것이 아니다.
또 다른 태도는 인간이성은 하나님이 주신 탈랜트로 인정하고 현대문명도 금정적으로 인정하면서 성경과 신학적 진리를 현대인에게 설득력이 있도록 해석하는 신학적 자세이다. 이러한 신학적 자세가 현대신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태도의 현대신학은 성경학에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여 성경을 도그마적 성경인식의 종속에서 해방시켜 "성경으로 하여금 스스로 성경말씀되게" 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성경에 대한 비판적 해석학이다. 서구의 현대적 성경연구는 성경에 대한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밝히고 성경본문의 고증, 편집사, 문학적 형식, 사회경제적 배경등 숱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이러한 결과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금물이지만 그것들이 성경의 권위를 해치지 안고 성경해석에 많은 도움을 주고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성경해석이란 이런 비평적 방법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경건한 영적 자세를 핵심으로 하여야 진정하게 이루어 진다는 것을 투철하게 전제하여야 한다. 이것은 인간이성과 합리적 방법의 한계를 전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기독교종교철학의 흐름은 기독교의 진리를 형이상학론리에 의하여 설파하려는 데서 탈피하고 오히려 기독교의 근본적 진리를 현대인에게 설득력있게 설명하는 데 그 촛점이 있다. 신의 존재를 다루는 유신론의 문제라든지, 악의 존재를 다루는 신정론이라든지, 역사와 종말을 다루는 종말론이라든지, 종교적 언어의 타당성을 다루는 종교언어분석철학등이 인간이성의 합리성과 제한성을 소박하게 인정하면서 현대인에게 기독교진리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현대신학의 측면이다.
조직신학이란 본래 현대신학에서 체계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신학의 시발은 슐라이에르마하(Schleiermacher)에서 리츨(Ritschl)로 발트(Barth)로 이어진다. 이들은 서구 현대문명의 맥락에서 서양현대지식인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데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 흐름 이외에도 서구현대신학의 흐름은 대양하고 방대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현대인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알아 들을 수 있게 설명하는 신학체계를 이룬것이 현대조직신학이다. 독일인학자 본훼퍼(Bonheoffer)는 기독교복음은 현대인 즉 합리적 문명인에게 새로운 방식 즉 현대적 언어를 통하여 설파되어야한다고 주장하였는 데 이것이 현대신학의 기본정인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현대신학의 흐름에 대항하여 지속된 보수신학은 한편으로는 성경의 권위를 교리적으로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근본주의 경향을 띄었다. 또 한편으로는 기독교진리의 보수를 위하여 개인의 영혼구원을 강조하고 세계전도를 강조하는 복음주의신학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복음주의신학에서도 개인구원을 넘어선 사회적 관심을 표명하는 새로운 복음주의신학의 흐름이 세계적으로 국내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데 이는 지극히 고무적이라고 하겠다.
현대신학의 한 흐름으로 중요하게 나타난 것이 사회구원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산업혁명이후 기독교는 18세기에서 부터 사회문제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도전을 받아 왔고 결국 20세기에 와서는 체제화된 무신론적 사회주의의 도전을 받게되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런한 무신론적 사회주의가 서구기독교문명속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서구기독교문명의 현실 즉 산업혁명의 과정에서 빈곤의 문제와 인간의 사회적 소외를 본격적으로 다룰 수 없었던 서구기독교는 공산주의 사상과 러시아혁명을 비롯한 공산주의체제의 확산이라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 체제들은 강력한 무신론과 사회주의를 공식 정치 이데올로기로 정하고 이를 주창하였다.
이러한 사회구원의 문제는 18세기부터 서서히 다루지기 시작하였는 이것이 현대신학의 한 흐름이다. 합리주의적 과학적 무신론과 사회주의는 기독교를 배격하였지만 기독교내부에는 신의 존재를 금정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기독교의 복음을 토대로하여 인간사회의 구원주장하는 현대신학적 흐름이 대두되었고 이제는 기독교신앙의 사회적 차원을 거부하는 신앙은 잘 못 된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신학적 움직임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본격화 되었고 20세기 후반에는 기독교신학이 서구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서 아프리카, 중남미, 그리고 아시아에서 줄기차게 전개되고 있다. 나미의 해방신학, 아프리카의 흑인신학, 아시아의 민중신학과 종교신학, 여성신학등 다양하게 세계적 현대신학의 흐름이 대두되고 있다. 현대신학은 이제 서구위주의 신학이 아니다. 이러한 현대신학은 서구에서 처럼 고전적인 현대정신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않고 모든 언어와 문명은 같은 타당성를 가진 것으로 간주 할 뿐 아니라 오히려 현대문명의 모순과 한계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서구세력이 현대화의 이름으로 빈곤과 억압 그리고 문화적 신민지화라는 세계적 문제를 야기시켰고 이제는 현대문명에 대한 깊은 회의가 지구의 동서남북에서 심층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신학도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는 무엇일 가? 우선은 기독교신앙의 근본을 확고히 정립하기위하여 성경연구를 심화하여야 할 것이다. 경경의 기반없이 어떤 신학도 확고히 설 수 없다. 이것은 성경에 대한 교리적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성경이 성경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이 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이는 기성신학의 제약을 넘어서 성처자체에 신앙적으로 그리고 학문적으로 깊은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의미 한다.
둘째로는 인간과 역사와 사회에 대한 깊고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살고 있는 인간과 인간공동체에게 주어진다. 시대의 징조를 명확히 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실천하기 위하여서는 인간과 역사와 사회본질과 현실과 변화를 심도있게 인식하여야 한다.
세째로는 기독교신앙과 실천을 위한 이론과 실천론을 전문적인 수준에서 터득하여야 한다. 현대사회는 복잡하고 급변하기 때문에 고정적이고 경직된 신학적 이론과 초보적인 실천신학훈련으로서는 대응할 수 없다. 신학도의 이론적 태도는 개방적이고 창조적이어야 하며 실전적 태도는 전문적이고 효과적이어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신학이론과 실천력을 겸비한 기독교지도력을 요청하고 있다. 이런 부름에 호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신학적 기초를 튼튼히 하여야 하며 그리고 그위에 탁월한 신학이론과 전문적 창조적인 실천력을 연마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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