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공부하기 원하는 학생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자기가 하나님에 관해서
알고 싶어한다는 것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하나님은 천억 개 이상의 은하게를 만드셨고
한 은하계에 천억 개 이상의 별들을 만드신 분이시며 그 이름을 일일이 명명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자연을 관장하시어 지으신 생물, 조류들, 짐승들, 곤충류, 파충류, 바다와
강에 사는 물고기, 심지어 해저의 깊은 곳에 서식하는 해조류와 각종 조개, 식물들까지도 그들로 먹이 사슬을 이어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눈과 얼음으로 덮인 그들의 산야에서 그 많은 새들과 짐승들은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을 감히
인간의 작은 두뇌로 이해할 것 같은가?
북극의 곰이 6개월이나 동면하는 것을 누가 가르쳐 주었겠는가? 키가 30m요, 몸무게가 200톤이
넘는 대왕고래 한 마리는 하루에 3백만 마리의 새우를 먹어야 살 수 있다는데, 그 많은 새우를 마련해 주는 손길이 없다면 대왕고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교제하기 원하시기에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실 때
말씀을 기록하셨고, 인간이 한 영이신 하나님을 믿도록 말씀을 주시면서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하셨다(요 1:1,4, 요일 1:1). 인간이 이 기록된 말씀이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될 때,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받아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상의
복과 유업은 물론이요, 지상에서도 그 말씀에 순종할 때 기도의 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인간에게 계시하실 때 인간이 이해할 수 없도록 혼미하게 하셔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며 머리를 싸매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누구에게 가서 물으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 답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야 됨으로
그것을 알려면 성경으로 가야 한다.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라 화평의 창시자이심이라"(고전 14:33).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은 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이 책을 알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이 말씀을 공부하려면
첫째,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인에게는 어떤 조명도 주시지 않는다(고전 2:14).
둘째, 바른 성경이 있어야 한다. 마귀는 하나님의 교과서를 삭제시키고 변개시켜 진리를 왜곡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이다.
셋째, 열심히 성경을 읽고 듣고 암송하고 기록된 것들을 지켜야 한다(계 1:3).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조명을
주시어 진리를 깨닫게 해주신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서
바른 성경도 없이 열심히 공부도 하지 않은 채 신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또 학위를 받았다는 자격을
내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려는 위치에 서게 될 때 어떤 현상이 일어 나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칼빈주의 5대 강령을 마치
성경적 교리인 양 가르치게 되며 은사주의도 성경적 그리스도인의 신앙인 것처럼 가르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말씀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성경을 따르지 않고 어떤 인간을 따름으로써
범한 오류인데도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한 자들이 세월을 통과하면서 무분별하게 계속 거짓 교리를 확산시키는 범죄자의 일을 하면서 밥을 먹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먹고 산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정해 놓고 해 온 것이다.
이번에는 신실한 칼빈주의자들이 어떻게 칼빈주의를 깨닫게
되었으며 그들이 뭐라고 말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1. 강단의 거성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1834-1892)
"칼빈주의는 복음이지 다른 것이 아닌데
복음을 칼빈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애칭이다. 만일 칼빈주의가 복음이라면 칼빈주의는 성경에서
제시한 복음과 일치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주의는 사도 바울의 복음을 존 칼빈의 복음에 비교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성경적 복음은 에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에
관한 기쁜 소식이다. 칼빈주의의 복음도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택함받은 자 중의
하나라면 그렇다는 것이다"(The Other side of Calvinism, p.5).
"형제들이여, 진리의 방패의 양면을 보려고 노력하시오. 두 가지 교리가 연결된
것이 보일 때까지 두 교리를 믿을 수 없었던 아기 때를 벗어나시오. 사람들은 두 개의 눈을 가졌지
않았소. 잘 보려면 한 쪽을 가려서는 안되지요"(Faith and Regeneration).
2. 데이비드 엥겔스마(David Engelsma)
남 홀랜드, 개신교 개혁교회, 다수의 저작이 있음. [A Defence of Calvinism as
the Gospel], [Evangelism and the Reformed Faith], [Hyper Calvinism and the
Call of the Gospel], [The Death of Confessional Calvinism in Scottish
Presbyterianism,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고백하는 칼빈주의의 죽음]
"칼빈주의는 기쁜 소식이다! 그것은 복음이요 기쁜 소식이다! 칼빈주의는 은혜의 메시지로 우리
택함받은 자와 성령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을 위로해 준다. 택함받지 못한 자에게 칼빈주의는
전혀 기쁜 소식이 아니며 칼빈주의는 영원한 사형 선고이다.
우리 칼빈주의자들은 우리의 믿음을 칼빈주의란 용어로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칼빈주의자라고 부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칼빈주의자들이 그 용어를 부끄러워하여 회피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에 가장 분명한 이유로는 우리가 한 사람을 따른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요, 둘째 이유는 시튼(W.J.Seaton)이 주장했듯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사이에 칼빈주의란 용어만큼 의심과 불신과 심지어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다른 용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3. 로레인 뵈트너(Loraine Boettner)
[Immortality, 1956], [Studies in Theology, 1947], [The Reformed Doctrine of
Predestination, 1932], [The Reformed Faith, 1983] 등의 저작이 있음.
칼빈주의처럼 그렇게 줄곧 총체적이고
심하게 오도된 사상 체계는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주의라는 용어 때문에 그처럼
광범위하게 수용되었다. 왜냐하면 칼빈주의자들 자신이 '칼빈주의'와 '칼빈주의자'는
용이한 용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뵈트너는 칼빈주의가 미국 역사와 교육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4. 해리 아이언사이드(Harry Ironside)
성경은 선택이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근거한다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선언하는 것만큼 분명하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마련해 놓으신 구원을 받도록 초청되어 있다.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이다(What is the
answer, p.54).
5. R. A. 토레이(Torrey)
"성경은 진리의 모든 면을 제시하는
무한한 마음의 계시이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한편으로는 인간 의지의 자유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가르쳐 주는 것을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The Importance and Value of Proper Bible Study).
6. 윌리엄 패팅길(William L.
Pettingill)
"최상의 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믿고 그 말씀을 용이하게 알 수
있게 만드신 그분을 바라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주권을 주장하심과 동시에 인간의 책임도 주장하신다. 두 가지를 다 믿고 두 가지를 다 설교하여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는 과제를 남겨 두라"(Bible Questions Answered, p.209).
7. 아더 피어슨(Arthur T. Pierson)
"예수님께서는 선택이나 예정을 결코
말씀하지 않으신 반면, 우리에게 양우리의 비유를 주셨다. 그분은
양우리의 문이시요, 양들의 목자시다. 극단적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계시이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이성에 근거한 하나의 철학이다. 칼빈주의자들은 논리적으로
그것을 따라야만 한다는 용어를 쓰면서 하나님께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미리 아셔야만 그것을 하라고 명령하시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죄가 올 것을 아셔야 죄를 계획하실 수 있다는 말인가! 성경은 전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다.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합리화시키려고 애쓴다는 데 있다.
이상 우리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당대의
귀한 종들의 입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칼빈주의를 보고, 느끼고, 알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진리가 사람의 숫자에 의해서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또 성경을 배제한 인간의 판단은 오류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무슨 '주의'에 편승하고 가담했다고
해서 그 '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추구하고 실행하려는 것은
하나님께서 무어라고 말씀하셨느냐에 있는 것이지 어떤 인간이 무슨 일을 했는가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
누가 뭐라고 가르쳤든지 간에 그것이 성경에 일치되면 좋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성경에 어긋난 것이면 거부해야 된다는 것이다.
칼빈주의만 해도 그렇다. 성경에는
어느 한 곳도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 것이 예정되었다고 기록된 곳도 없고 어떤 사람이무조건적으로 미리 선택되었다고 기록된 구절도 없다. 그런데 칼빈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구원받을 사람과 구원받지 못할 사람을 정해 놓으셨다는
것이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그 사람이 믿었기에
선택되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칼빈주의자들은 그 사람이 선택되었기 때문에 믿은 것이라고 한다.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구원시켜야 비로소 그 사람이 믿을 수 있다고 한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사람이 먼저 믿어야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시켜
주신다고 했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그를 믿는 자는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느니라"(롬 10:9-11).
왜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가? 왜 교회들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가?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해 놓으신 그 일을
"믿으라"고 전하는 것 아닌가? 칼빈주의들 말대로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들을 창세 전에 정해 놓으셨다면 왜 그처럼 쓸데없는 짓을 해야 되겠는가? 왜 쓸데없는 일을 하다가 목숨까지 내어 주며 순교를 당해야 하는가?
여기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고 함정이 있다. 칼빈주의가
뿌린 누룩의 결과로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것이라고 알고 있는 칼빈주의자들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최근에 입수한 한 통계에 의하면 미국 남침례교회 중에서 1년에 한 명도 구령하지 못한 교회가 10,000개가 넘는다고 하지 않는가!
필자가 국내외에 성경핵심강연회를 개최하면서 바른 성경을 강조하고, 삭제되고 변개된 한글개역성경 등은 사탄이 변개시킨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그럴
때마다 개역성경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고 했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월간 <현대종교>와
<교회와 신앙>도 마찬가지요, <기독신보>를 내세운 장로교단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복음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처럼 보이려 하는 수작이다. 그러나 그들은 심지어 구령이 무슨 말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칼빈주의자들은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기로 혹은 저주받기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구태여 복음을 전할 필요도 없고 구령(Soul Winning)이란 용어를 알 필요도 없고, 구령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알 필요가 없다.
그들은 복음전파에 무관심할 분만 아니라 성경에도 무관심하며, 성경 공부에도 관심이 없다. 이런 상태에 있는 그들의 교회들은
실제로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허구한 날 무엇을
하며 소일하는가? 그들에게는 교회 짓는 일이 가장 큰 일이요, 그
다음엔 무슨무슨 주의자에게 속하여 그 모임에 찾아다니는 일이요, 또 그 다음엔 교단 총회에서 한
자리 얻어 인정받는 일이다. 이들이 한국식 기독교를 낳은 장본인들인 것이다.
칼빈주의 신학자인 와필드(Warfield)는
어거스핀이 카톨릭과 칼빈주의의 창시자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옳다. 칼빈주의자들은 어거스틴을 칭송한다. 그러나 어거스킨(Aurelius Augustine, A.D. 354-430)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칭찬받을 일이 단 한가지도 없다.
1) 그는 유아세례를 창안했다. 유아가 자기 머리에 누가 무슨 짓을 해 놨는지 모르는데
구원과 어떻게 연관이 있겠는가?
2) 그는 교회국가(Church-State)를 만들었다. 성경은 교회를 세상에서 불러냈는 데 반해, 그는 교회와 국가를
하나로 만들었다.
3) 그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지 않고 자기 멋대로
영적으로 은유적으로 해석하여 여러 가지 각기 다른 해석이나오게
했다.
4) 그는 철학을 신봉한 사람으로, 결혼을 죄악이라 했으며 성교를 죄악시하여 독신자 신부
제도를 낳게 했다.
5) 침례를 받으면 중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며, 개신교도들은 이를 세례로 바꾸었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교회,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인들은 침례를 통해 중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6) 그는 무천년주의자로 자기와 믿음이 다른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을 정당한 것이라며 성경대로 믿는 침례교도들을 박해하였다.
당시에 펠라기우스(Pelagius, A.D. 360-420)가 어거스틴의 이런 교리에
반기를 들었는데, 그는 유아세례를 반대했다. 두 사람의
교리를 따르는 데서 자연히 지지 세력이 형성되어 세월을 따라갔다. 칼빈은 어거스틴의 줄에 섰던 것이다. 존 칼빈도 어거스틴과 마찬가지로
1) 유아에게 물을 뿌리면 구원받는다고 믿었다. (글나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는 침례가
옳다고 했다.)
2) 칼빈은 무천년주의자로, 문자적으로 성경을 해걱하지 않고 영적으로, 은유적으로 했으며, 문자적인 천년왕국을 믿지 않았다.
3) 그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주신 모든 약속을 신약 교회로 가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렸다고 여겼다. 그는 성경을 기록된 대로 믿지 않았던 것이다.
4) 칼빈은 자기와 믿음이 다르면 박해해도 좋다고
생각하여 자기 친구 세르베투스를 교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화형시켰다. 이외에도 교후형에 13명,
참수형에 10명, 화형에 35명, 추방에 75명, 그리고 여러 명을 사형에 처했다. 당시 제네바 시 감옥은 박해자들로
넘쳐났던 것이다. 그 당시의 고문은 종교재판을 능가했다.
5) 칼빈은 교회와 국가가 분리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신정 국가를
제네바에 세워 개신교 교황 노릇을 했다. 이것이 교회가 국가와 사회에 참여하는 교회협의회 같은 기구를 낳게 했던 것이다. 지면 관계상 더 많이 쓸 수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1975년 12월 11일, 캐나다 토론토의 한 침례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새로 부임한 담임 목사가 설교했다.
"이제 나는 칼빈주의자가 됐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신약 성경을, 복음을 믿는 사람이 되었단 말입니다. 이제 내가 아는 것은 칼빈주의는 칼빈주의 5대 강령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칼빈주의는 5대 강령보다 훨씬 크고
위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칼빈 자신은 5대 강령에
대하여 아무것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ULIP"이라는 이 5대 강령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지위와 신념을 5대 강령으로 대변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난 수년 동안 5대 강령 준수자였습니다만, 이제 나는 더 이상 여러분의 신학적
지성을 모독하기를 원치 않습니다.(중략)
성경대로 믿는 사람으로서 나는 왜 우리가 칼빈과 하나 되기를 원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칼빈이 가르치는 것은 여러 면에서 성경이 평범하게 가르치는 바에 전적으로 배치됩니다. 그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도 믿지 않았고 지역 교회도 믿지 않았으며 믿는 자의 침례도 믿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는 무천년주의자요, 언약 신학을 믿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나는 거절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그들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않음을 우리의 원수들까지도 스스로 판단하는도다"(신 32:31).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을 두려워하는 자와 하나님의 게명보다 인간의 명령을 추종하는 자는
진리 앞에서 늘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누가 어떤 교리를 내놓았던 간에 그 교리가 성경에 일치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러나
만일 그 교리가 성경에 일치하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을 영적으로 세워줄 수 없는 교리를 누군가가 내놓아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을 성경적 진리에서 이탈하게 했다면 그것은 이단
교리인 것이다. 얼마나 유명한 인물이 그 일을 행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입혔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누가 무슨 짓을 했던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성경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지도 못하게 했다면 그는 이단의 우두머리인 것이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말씀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소망도 없이 교회만 다니다가 죽었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아무런 상과 유업도 없게 되는 것이다.
칼빈주의 5대 강령에 따르는 사람은 자기가 죄인인 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구세주를 믿을 수 있겠는가? 자기가 창세 번에 택함받았다고 여기고 사는 것은 종교 사기꾼에게 속임을 당하는 것이다. 그는 마귀에게 속임을 당해 죽으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칼빈주의의
본질은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보장된다는 것인데 구원받지도 않은 자가 보장받을게 뭐라고 생각하는가? 지옥의
형벌인 것이다. 그런 것을 칼빈이 교리로 가르쳤다면 그는 극악한 죄인인 것이며, 칼빈의 추종자가 가르쳤다면 그 역시 극악한 죄인인 것이다. 칼빈주의자가
되려 하지 말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구원받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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