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리더(PRAISE AND WORSHIP LEADER)
'찬양경배'◆이 글은 '찬양리더'(최혁 지음. 규장)에서 발췌하였습니다sweet18@hitel.net">.
문법적으로는 찬양과 경배를 뛰어 써야 맞지만, 현재 행해지는 새로운 스타일의 예배를 지칭하기 위해서,
이 책에서는 '찬양경배'로 붙여 한 단어처럼 표기합니다. 미국에서는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이러한 새로운
예배 형식을 'Praise and Worship'이라고 부릅니다. 이 예배는 순서가 단순하고 예배 가운데 찬양을 많이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새로운 코러스·악기, 자유로운 분위기, 하나님을 향한 영적 친밀감이 이 예배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예배는 점차 미국의 주류 교단들에서 정규 예배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저명한 예배학자인
웨버 박사(Dr.Robert E. Webber) 역시 이런 예배를 'Praise and Worship'이라고 부릅니다.
차 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구약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쉼없이 이어져왔습니다.
그러나 찬양의 방식은 각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전통에 따라, 신학에 따라 다양하게 변했습니다.
성경 말씀은 어떤 시대에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또 변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요소는 변해야 합니다.
현대를 살면서 예수님 당시의 옷을 입고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자동차를 거부하고 나귀를 타고 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전기를 거부하고 등잔불을 켜고 사는 것이 거룩한 삶은 아닙니다.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민감하게 읽고 변화되어야 할 부분을 새롭게 변화시켜야 합니다.
음악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요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습니다. 아니, 변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새 노래로' 부르라는 말씀이 계속 나옵니다. 시대가 바뀌면 음악의 성향도 바뀝니다. 이것은 클래식
음악이나 대중 음악이나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찬송가에 수록된 곡들은 주로 18, 19세기 서양에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찬송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이 시대적으로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지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성경시대의 찬양
구약의 예배 의식은 모세시대에 확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제도에서의 예식적인 음악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구약시대의 찬양 전통은 BC1000년 경 다윗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성전 건립 후 찬양과 제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수금을 연주했을 뿐 아니라 직접 많은 시를 써서 예배에 사용했습니다.
구약시대 성전 음악은 네 종류의 원천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집트, 앗시라아, 바벨론, 그 외 중동 여러 나라의 발달된 음악입니다.
이곳으로부터 악기가 들어왔습니다. 유대 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솔로몬 왕은 애굽의 공주를 왕비로 맞을 때에
애굽의 악기를 결혼 지참품으로 요구했다고 합니다. 외국에서 악기가 들어올 때는 그 나라의 음악도 함께 들어오는
법입니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 우리가 그 악기로 수제천이나 가야금 산조를 연주했던 것
은 아닙니다. 악기와 함께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이 함께 들어오는 것입니다.
둘째는 가나안 원주민이나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서 자연 발생한 민요가 들어 있습니다. 시편 69편은 '소산님에 맞춘 노래'
입니다. '소산님'은 백합화를 말하는데 아마도 이것은 백합화를 노래한 민요라고 생각됩니다.
또, 시편 56편은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입니다. 이 말은 '떡갈나무 위의 비둘기'라는 말로서,
역시 자연 발생적인 민요의 곡조에 맞추어 부른 찬송입니다.
시편에서 가장 많이 쓰인 곡조는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입니다. 시편 57, 58, 59, 75편이 다 이 노래에 해당되는 시편들입니다.
이 말은 "터트리지 말아아."라는 말로서 유대인들이 포도를 딸 때 부르는 노래입니다. 학자들은 이 노래가 유대인 고유의 노래가
아니라 가나안의 민요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유목민인 데 반해 가나안의
원주민들은 농경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그들에게서 가난안의 농사법을 배웠고 그때
그들의 노래도 함께 배웠으리라는 것입니다. 이 노래가 나중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세번째로, 새로운 창작 음악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편 39, 62, 77편에서 '영장으로 여두둔의 법칙에 의지하여 한 노래'
라는 말은 '여두둔'이라는 천재적인 음악가의 새로운 작곡일 가능성을 말해줍니다.
넷째로, 이스라엘의 찬양은 히브리어에서 발전되었습니다 이것을 칸틸레이션(Cantilation)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는 그 자체에 타밈(TAMIN)이라는 엑센트 법이 있습니다. 이 법칙으로 시편을 읽으면 그 자체가 간단한 멜로디가 됩니다.
칸틸레이션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찬양의 특징입니다.
2)사도시대의 찬양
초대교회에서 찬양은 매우 중요시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의 옥에 갇혔을 때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행 16:25).
그 때 큰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겨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초대교회는 핍박받는
교회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모진 핍박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또, 초대교회 시기는 복음이 이방 지역에 널리 확산되는 시기였습니다. 이때 다른 민족의 문화가 유대 전통과 혼합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유대 출신의 크리스천들은 격식을 차리지 않고 자유롭게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반면에 그리스 출신의 크리스천 들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작곡에 의해 노래했습니다. 이러한 각자의 전통은 함께 예배를 드릴 때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두 전통은 '하나님 찬양'이라는 큰 명제 앞에서 하나가 되어갔습니다.
사도시대는 짧은 시기였지만 유대주의와 헬라주의가 합쳐지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많은 찬송들이 작사되고 작곡되었습니다.
이렇게 시편 외에 다른 가사로 부르는 찬송을 칸티클(Canticle) 이라고 합니다(누가복음 1-2장의 찬송을 참조).
3)중세시대의 찬양(410년-1517년)
313년 콘스탄틴 대제가 밀라노칙령을 발표한 후 기독교는 이제 더 이상 로마제국에서 핍박받는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지하 카타콤에서 조심스럽게 부르던 찬양을 이제는 지상에서 큰 소리로 마음껏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에 편승하여
점차 이단적인 교리가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단적인 찬송도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로 361년 라오디게아의 종교회의에서는 예배시 악기를 사용하는 것과 창작 찬송을 금하는 규례를 만들어 금지
시켰습니다. 라오디게아 회의에서 결정한 13번째 조항은, 노래를 부르도록 지정된 사람 외에는 아무도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예배에서 회중은 구경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규칙은 천 년 동안 교회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506년 포르투갈 종교회의에서는 예배시 회중 찬송 부르는 것을 권장했으나
로마교회의 전통은 이미 정교한 예전적 예배로 전환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 회중들이 마음껏 찬송을 부를 수 있는 시간은
없었습니다. 중세시대는 회중 찬송을 빼앗긴 시대였습니다. 그 대신 교회 음악은 전문가들에 의해 매우 정교하게 발전되었습니다.
교회의 고딕 양식과 함께 파이프 오르간이 들어왔습니다. 다성 음악(Polyphonic music)은 마치 고딕 건물처럼 발전했습니다.
공교하게 짜여진 미사의 형식은 예배의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중세의 대표적인 찬송을 '찬트'(Chant)라고 합니다. 특히 그레고리안찬트는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중요한 가톨릭 찬송입니다.
4)종교개혁시대의 찬양(1517-1700)
1517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다시 회중 찬송을 부활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루터는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이나 찬양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모국어로 읽고 들을 수
있어야 하며 모든 신자들이 다같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악적으로 상당한 자질이 있었던 루터는 스스로
작곡도 했고 '코랄'(Chorale)이라는 독특한 회중 찬송의 장르를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찬송가 384장)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애창되고 있는 루터의 코랄입니다.
루터보다 한 세대 뒤에 나타난 칼빈은 찬송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루터가 가톨릭의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문제가 있는 부분만 적절히 수정하는 편을 택했다면 칼빈은 가톨릭의 예배 전통을 전부 무시했습니다. 음악에서도 물론 가톨릭의
전통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칼빈의 초기 예배에는 회중 찬송이 없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칼빈은 시편과 칸티클만을 부르도록 했고 다성 음악과 악기의 사용은 금했습니다. 또 시편을 자국어의 운율시로
개작 하여 노래하도록 했는데, 이것을 '운율 시편가'(Metrical psalmody)라고 합니다.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은
바로 이 칼빈시대 운율 시편가의 리듬을 약간 변형한 찬송입니다.
이렇게 종교개혁 초기의 찬송은 코랄과 운율 시편가였습니다. 이로써 천 년간 묶여 있었던 대중 찬송이 회복되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개혁의 열기가 식어가면서 다시 개혁교회는 예전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예배의 뜨거운
열기가 사라졌고 점차 의식이 곧 예배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시금 전문 찬송, 공연 찬송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바하(J.S. Bach)와 헨델(G.F. Handel)은 매우 중요한 기독교 음악 작곡가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정교하고 신앙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이 대중 찬송에 기여한 바는 조금도 없습니다.
5)영미 각성시대의 찬양(18-19세기)
근대 찬송은 영국의 아이삭 왓츠(Isaac Watts 1674-1748)로부터 시작합니다. 왓츠는 찬송가에 대한 철학은 그동안 많은
제약 가운데 묶여있었던 찬송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그 왓츠의 기본적인 찬송 척학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는 시편을 노래하든지 창작 찬송을 노래하든지 신약성경의 복음의 빛에 비추어 해석된 복음적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시편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불러야 한다는 칼빈의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교회의 찬양은 노래부르는 사람의 감정과 사상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은 현 시대 상황에 맞게 표현되어 불려져야 합니다."
그 당시 부르던 느린 시편 찬송가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사람들이 또 있었습니다. 그들은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와
그 동생 찰스 웨슬레였습니다. 그들은 모라비안 교도들의 열렬한 찬송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요한 웨슬fp는 그들의
찬송가를 배우기 위해서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고 나중에는 그들의 찬송가(Gesangbuch)를 영어로 번역할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의 찬송은 당시 교회에서 부르던 느리고 무거운 시편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거기에는 뜨거움과 열렬함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아마 현대 복음 찬송가의 기초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왓츠의 찬송과 감리교의 찬송은 미국에 전파되어 대각성 운동에서 불러졌습니다. 대각성 운동은 미국 개신교의 특징으로,
소위 부흥회 스타일의 한 전형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고 몸을 흔들면서 열광적으로 찬양을
드렸습니다. 곡조도 단순해서 듣고 금방 익힐 수 있는 노래들이었으며 가사나 곡조의 반복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복음송(Gospel Song)은 블리스(Philip Bliss)와 쌩키(Ira D. Sanky 1840-1908)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그들이 출간한 찬송가 「Gospel Hymns」는 대단한 인기여서 5천만 부 이상이 팔릴 정도였습니다. 이런 복음송들은
최초로 미국에서 만들어진 가장 독특한 기독교 음악입니다. 칼빈의 시편가(Psalmody)에서 찬송가(Hymnody)로 옮겨가는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많은 갈등과 오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Hymnody'가 개신교 찬송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의 찬송들의 변천을 요약해봅시다.
칸틸레이션(Cantilation)→칸티클(Canticle)→찬트(Chant)→코랄(Choral)→시편가(Metrical psalmody)→찬송가(Hymnody)
6)20세기의 찬양
20세기에 들어와서 개신교의 예배는 큰 변화를 맞게 됩니다. 이 변화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계획하고 만들어낸 인위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와 함께 이루어진 자연 발생적인 것입니다. 전통적인 예배가 잘못된 예배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현대의
예배는 현대라는 특수한 시대를 잘 이해하고 그 바탕 위에 선 예배를 말합니다.
20세기는 인류 역사의 큰 전환점을 이루는 시기입니다. 사회학자들은 20세기 후반을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시대로
분류합니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이어진 시대는 이미 끝났고 이제 새로운 탈 현대, 또는 현대 이후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특징이라면 산업시대의 특징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성이 바탕이 된 시대라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이성, 인간이 만든 과학, 인간이 만든 제도, 이런 것들이 인간 사회를 가장 멋진 사회로 만들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
시대입니다. 사실 이 시기에 과학은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눈부신 과학의 발전은 인간 세계를 곧 파라다이스로 만들어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과학은 20세기에 들어서 면서 끔직한 1, 2차 세계대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한 민족이 어이없이 600만 명이나 죽어가는 비참한 상황을 바라보면서 인간들은 그들이 그렇게도 예찬해 마지않던 인간의 이성에
대해 회의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이성이란 정말 믿을만한 것인가? 인간이 만든 과학 의 세계는 인간을 정말 가장 멋진 세계로
인도해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점차 인간의 이성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세상 도처에서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자연의 세계보다, 지금까지는 무시해왔던 초자연의 세계에 더욱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과학의 세계보다는 비과학의 세계에 무언가가 더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UFO나 피라미드에도 어떤 초월적인 힘이 작용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시대는 간단히 말하자면 이러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동대의 김연종 박사님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색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째, 이성보다는 감성 중심의 사고방식이고,
둘째, 권위에 대한 거부이며,
셋째, 개인의 가치와 자유를 인정하는 상대주의이고,
넷째, 합리성보다 체험이 강조되는 신비주의라고 요약할 수 있다."
앞으로의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될 것인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인류 사회의 큰 틀이 바뀌고 있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현대의 예배(Contemporary Worship)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탄생된 예배 형태입니다.
개신교의 전통적인 예배가 산업시대에 걸맞는 예배였다면 현대의 예배는 현대 이후의 시대에 맞는 예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 예배의 특징은 이제까지 소홀히 여겼던 인간의 감성(Emotion)과 체험을 중요시하는 예배라는 점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을
중심으로 한 인류 문화사에서 인간의 감성은 이성에 비해 거의 천덕꾸러기처럼 취급되었습니다. 감성지수(EQ)라는 말을 만들어낸
다니엘 골먼 박사는 인간이 감성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능(IQ)보다 감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감성은 잘 훈련하고 가꿔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제 인간의 감성은 인생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의 예배는 인간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자제해왔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감정을 위험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감정을 엄숙한 형식과 권위주의로 덮어버리려는 시도를 계속해서 해왔습니다.
예배는 잔칫날과 같은 축제가 아니 라 하나의 예식 또는 학교에서의 공부와 같은 성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배에서 사용하는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를 찬송의 종교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2000년 기독교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교회가 얼마나 찬송하는 것을 규제해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새 노래'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교회는 줄기차게 '새 노래'부르는 것을 거부해왔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성경에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을 그리스의 에토스(Ethos)론 이라고 합니다.
철학적 성향이 강했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음악을 감정의 대상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은 수(數)로 되어 있다."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음과 음 사이의 거리를 수로 증명하는 개가를 올렸습니다.
피타고라스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음악 사상의 체계는 '에토스론'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음악의 에토스론은
스토아파 의 금욕주의와 함께 초대교회의 교부들과 중세의 교회 지도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감정 표현을 절제하지
않았던 히브리인의 찬양에도 점점 절제하는 규칙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음악을 사용하면서도 음악적 즐거움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금욕적 생각이 경건함으로 여겨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축제처럼 드린다는 것은 거룩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세속적이라고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의 찬양경배는 그동안 이처럼 억눌려왔던 성경적 찬양 방법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IQ의 찬양에서 EQ의 찬양으로 바뀐, 인간의
감정을 해방시키는 찬양입니다. 법궤 앞에서 땀을 흘리며 찬양하던 다윗의 찬양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경배는
2000년간 맥이 끊어졌던 '높은 찬양'(시 66:17), '영으로 찬양'(고전 14:15), '신령한 노래'(엡 5:19)와 같은 자유로운 성경적 찬양
방법들이 다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찬양경배는 현대교회의 예배 형태를 바꾸었습니다. 기존의 성가대는 찬양 팀으로 바뀌고, 지휘자는 경배 인도자로 바뀌었습니다.
오르간, 피아노 등의 악기가 기타, 드럼, 신디로 바뀌었습니다. 찬송가 대신 OHP나 멀티비전으로 바뀌었습니다. 미국교회의 예배는
점차 찬양경배 스타일의 예배로 바뀌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청소년들의 예배는 거의 찬양경배 스타일의 예배로 바뀌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청소년들의 예배는 거의 찬양경배 스타일의 예배로 바뀌는 추세입니다. 이제는 이런 스타일의 예배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시기는 이미 지났습니다. 개교회는 이제 어떻게 하면 찬양경배를 효과적으로 드릴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찬양경배는 개교회의 전통과 신학에 따라서 그 목적이 약간씩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대적인 음악으로 찬양을
드리는 외형적인 모습은 각 교회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나 그 목표와 내용은 크게 네 가지 경향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교회의 강조점은 약간씩 다릅니다. 그 경향은 찬양경배가 하나님께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에게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도 그 사람이 새신자냐, 아니면 기존 신자냐에 따라서 찬양경배의
경향은 약간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찬양곡의 선정, 멘트의 내용, 기도의 내용, 사역의 방향이 조금씩 다른 것입니다.
1)예전(Liturgy)중심
예배를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라고 정의했을 때 그 예배의 초점은 온전히 하나님이 됩니다.
찬양, 기도, 설교를 포함한 예배의 모든 순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이것은 매우 든든한 성경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 43:7).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예배드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이 모든 예배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치게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분리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거룩하게 제사를 드리지만, 거룩하지 못한
나의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기대도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런 신앙은 신비주의,
체험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예배는 예전 중심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하나의 형식이 되기 쉽습니다.
예배가 기념식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유교의 제사 제도에 많은 형식이 있는 것도 이런 이치입니다. 죽은 조상들과 현재 자손들의
삶은 사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예전 중심의 교회에 찬양경배가 도입되면 찬양경배는 또 하나의 예전이 되기 쉽습니다. 이런 예배에서는 뜨거운 기도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찬양이 끝나고 설교가 끝나고 축도가 끝나면 예배는 끝이 납니다. 얼마전 모 교회의 찬양경배를 인도하시는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의 예배 신학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었습니다. 찬양은 하나님께만 온전히 올려드리면 된다고 말씀
했습니다. 그 교회의 찬양 팀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음악 수준도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 찬양이 회중들의 영적 갈증을 채워주지는
못했습니다. 그 교회의 회중들이 다른 교회의 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목사님도 알고 계셨습니다.
2)전도 중심
한편, 찬양경배를 새신자 전도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 교회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도 초점을 두지만 교회에 새로 나온 사람들
에게도그 초점이 맞춰져 있는 교회입니다.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구도자예배(Seeker's Worship Service).
우리나라에서 열린 예배라고 부르는 예배가 대표적인 전도 중심의 예배입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시카고의 윌로우크릭 교회나
LA의 새들백 교회는 이런 예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회심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은 찬양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음악은 설교가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자주 감동시킨다. 음악은 지적인 장벽을 초월해서 메시지를 마음속에 와닿게 할
수도 있다. 음악은 전도를 위한 강력한 도구인 것이다. 시편 40:3에서 다윗은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
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그를 예배하리로다. 그리고 주님을 신뢰하리로다." (뉴 센추리 버전)라고 했다. 음악과 전도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분명한 연결을 보라"
새신자를 중심으로 한 예배에서는 설교 후에 보통 강단 초청(altar call)의 사역을 실시합니다. 이 사역을 통해서 예수님 믿기로 작정
한 사람들을 위해 결단하며 기도하도록 돕습니다.
전통적 예배의 음악은 클래식 음악이 바탕이 되지만, 찬양경배의 음악은 대중 음악이 바탕이 됩니다. 클래식 음악은 현대 사회의
주류음악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듣고 즐기는 음악은 대중 음악입니다. 그러므로 대중성이 중요시되는 구도자들을 위한
예배 음악으로는 찬양경배의 음악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치우치게 되면 예배에 세상적인 대중 음악을 그대로 사용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음악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가사까지 그대로 들여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음악과 전혀 차이가 없게 됩니다.
이런 음악을 찬양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3)은사 중심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고전 12:1)라는 말로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매우 귀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도가 알아야할 사항입니다. 은사가 주어졌을 때 교회는
더욱 유익하게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고전 12:6-7) 20세기 성령운동은 1901년 1월 1일 아그네스(Agnes Ozman)양의
방언으로부터 시작됐고, 1906년 아주사 거리(Azusa Street)의 부흥운동으로 전세계에 확장되었습니다.
사실 현대 찬양경배는 20세기 성령운동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사실 현대 찬양경배는 20세기 성령운동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핸슨(Calvin M. Johansson)은 오순절 성령운동의 예배 음악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세속적이고 대중적인 교회 음악을 수용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회의 역사학자인 윌리엄 멘찌스는 '오순절주의자
들은 종교적인 음악의 수단으로 세속적인 리듬을 처음 사용한 사람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점차 생동감 있고 소란스런
노래 스타일을 발전시켰는데, 여기에는 종종 강한 리듬의 손뼉치는 행위가 첨가되었다. 그들은 손에 찬송가를 들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손을 들고 눈을 감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 찬양드렸다"
은사 중심의 교회에서는 찬양경배 후에 사역을 합니다. 여기에는 신유의 사역, 축사 사역, 예언 사역이 뒤따르기도 합니다.
은사는 매우 귀중하고 신앙생활에 필요한 것이지만 지나치게 은사주의로 치우치다보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질 위험도 있습니다.
자신의 체험이 말씀을 앞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찬양경배가 하나님께 드리
는 순수한 예배라기 보다는 은사를 받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음악은 사람들을 엑스타시로 몰고가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은사 중심의 신앙은 뜨거운 찬양, 뜨거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사를 받는데 애를 씁니다. 물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보다 먼저 은사를 주시는 하나님의 손에 더 초점을 맞추어 예배 드리기 쉽습니다.
4)임재 중심
임재 중심의 예배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인격적 교제에 더욱 초점을 맞추는 예배입니다. 찬양의 대가인 다윗 왕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찬송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23:2)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르는 찬송중에 임재하십니다. 임재 중심의 찬양경배는 이 하나님 만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래서 은사 중심의 예배와 분위기가 비슷하
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 하나님이 임재하신 결과가 은사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임재 중심의 예배는 성령의 은사보다 성령의 열매에 더 초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예배입니다. 이때 성령의 기
름부음이 느껴지면서 내면의 상처가 치유함을 받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해갑니다. 완전한 인격자이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떤 형식의 예배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예배에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문제는 함께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예배자가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
다.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의식이 없기 때문이며, 또 임재에 대한 기대가 없거나 매우 약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옆집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세계적 인물이 살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분을 만나고 교제한다면 인생에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과 교제하
고 싶어합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 인물을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원치 않는다면 아무리 세계적인 위인이 당신 옆에 산다 해도
만날 수 없을 겁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을 이론적으로 믿고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 교제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크리스천은 하나님과 적극적으로 교제해야 할 의무
가 있습니다. 이런 인격적인 교제는 이론이 아닙니다. 형식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접촉이요, 체험입니다.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똑같은 음악, 똑같은 악기, 똑같은 스타일로 찬양경배를 드린다고 해도 그 방향은 신학의 차이에 따라 약간씩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하
나님 초점의 예배, 인간 초점의 예배,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 초점의 예배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하나님 초점의 예배는 인간과의 교제가 약화되고, 예배가 예전적으로 흐르
기 쉽습니다. 또, 인간 초점의 예배에는 새신자를 위한 구도자 예배와 기존 신자를 위한 은사 중심의 예배가 있는데, 구도자 예배는 영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들을 수 있
고 은사 중심의 예배는 말씀보다 체험 위주의 신앙이라고 비판받기 쉽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에 초점을 맞추는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많은 관
심을 갖게 합니다.
저는 찬양경배의 목적을 하나님과의 교제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 또한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찬양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할까?"를 염두에 두고 쓴 것입니다. 이 책을 공부하는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우신 임재가 항상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껍데기 신앙생활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강하게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하나님과 깊
이 교제해보고 싶어하는 열망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자 하는 강렬한 소망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다윗 왕은 말합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시 27:8).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얼굴 찾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교제
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에게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십니다.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깊
이 교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죽을 것을 각오하고서도 하나님을 만나길 원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생명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고향을 떠나 하란으로 가는 도중에 벧엘에서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창 28:16). 그러나 이 놀라운 만남으로 야곱의 신앙이 단번에 완전히 성숙한 것은 아니었습니
다. 20년 후 그는 고향을 돌아오던 중, 얍복강에서 다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매달렸습니다. 환도뼈가 부서지는데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결국 야곱은 하나님을 만
났고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했습니다. 이전에 벧엘에서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던 것은 야곱의 노력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얍복 강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매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
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창 32:20).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떼를 치고 있을 때, 모세는 호렙 산에서 "떨기나무의 불꽃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출 3:1-6). 그 후에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여러 번 나타나셔서 출애굽을 친히 지도하셨습니다. 십계명을 받으면서 모세는 더욱 큰 하나님의 영광(얼굴)을 구했습니다(출 33:18). 그러자 하나님
께서는 하나님의 등을 모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호렙 산에서의 첫 번째 만남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임재하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을 받을 때 만난 하나님은 모세가
간절히 보기 원해서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하나님의 임재는 성령 하나님의 형태로 우리가운데 임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
은 "성령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요 20:22). 성경학자들 중에는 이때의 예수님의 행동이 상징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령의 불씨는 이
미 제자들의 심령 속에 뿌려졌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면서 "받으라."고 말씀하셨다면 주신 것입니다.
벧엘에서의 야곱, 호렙 산에서의 모세도 그들의 심령 속에는 이미 성령의 불씨가 뿌려진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아직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분명히 느끼고 있지 못했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의 불씨를 키우는 대신 여전히 자기 생각대로, 자기 방식의 삶을 살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승천 후 열흘이 지나서야 강한 성령 하나
님의 임재를 느끼게 됩니다(행 2:1-4).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예수님의 일방적인 행위였습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님이 다시 나타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 하나님을 체험하게 된 것은 그들이 간절히 기도하고(행 1:14) 찬양(눅 24:53)
했을 때입니다. 이때 많은 기사와 표적이 잇달아 일어났습니다(행 2:43). 그러나 사도들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능력을 더욱 사모하고 구했
습니다(행 4:24-30). 그 결과 그들은 '큰 권능'을 받게 되었고 사도들을 통해 무리들은 '큰 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행 4:33).
신자에게는 영적 갈증이 있어야 합니다. 좀더 하나님을 체험하고자 하는 열망, 좀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신자들을 만
나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3).
찬양경배 사역자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임재하시는 하나님은 곧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통해
서 성령님의 인격과 활동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또 가능하면 성령 역사의 현장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의 운행하심에 민감할 수 있습니다.
정경화 씨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들으면 온몸이 쭈뼛하는 흥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연주회장이지만 졸음을 참느라 애
쓰는 사람들도 있죠. 왜 그렇습니까? 그 사람들은 바이올린의 음향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정경화 씨의 연주와 바이올린에 대해, 그
리고 음악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에 빠져들 수는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에 대해, 성경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그 얘기는
피상적인 것이 될 뿐입니다. 껍데기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고 그분과 깊이 교제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대 목표가 되어
야 합니다.
최근 찬양경배에서 많이 사용되는 말 중의 하나가 '친밀감'이라는 단어입니다. 임재감은 친밀감으로까지 발전되어야 합니다. 함께한다고 모두 친밀해지는 건 아니기 때문
입니다. 함께하는 회수가 잦아지면 친밀감이 형성됩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순수하지 않으면 아무리 자주 만나도 친밀감은 형성되지 않습니다. 사업적인 관계, 정치적인
관계에서는 아무리 자주 만난다고 해도, 그 이해관계가 없어지고 나면 관계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연세가 칠십이 되신 할머니가 그 동안 함께 살아온 남
편과 이혼하겠다는 소송을 낸 바 있습니다. 요는 그 동안 자녀를 다섯 명이나 낳고 살아왔지만 한번도 진실한 사랑의 교제, 인격적인 교제, 친밀한 교제가 없었다는 것이
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결국 승소했고 40년간 함께 살아온 남편과 이혼하게 됐습니다. 친밀감이 없는 관계란 매우 건조한 관계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과의 친밀감 없이 신앙생활 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의 사람은 그야말로 딱딱합니다. 크리스천으로서의 따뜻함과 여유를 찾아보기란 매우 어렵
습니다. 40일을 금식하고, 100일 철야기도 한다 해도 그 얼굴이 빛이 나는 게 아니라 도리어 더욱 굳어져버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구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능력만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풀러 신학교의 크래프트(Charles Craft) 박사는 "능력은 친밀감에서 나온다."(「깊은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 도서출
판 은성)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친밀감은 서로간에 감정적인 교류가 형성되는 것을 말합니다. 친밀한 교제는 마치 연애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연애에 감정이 빠진다면 아마 김빠진 사이다처럼 될 것
입니다. 하나님은 감정적인 교제를 원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매우 감정적인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로만,
교리로만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면서까지 죄인들을 뜨겁게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는 분입니다(습 3:17). 그런가 하면 주의 백성들이 다른 신을 섬길 때는 질투하고 진노하십니다. '질투'(출 20:5)는
매우 격한 감정의 표현입니다. 또 한편, 예수님은 때때로 군중들 앞에서조차 눈물을 보이실 정도로 감정 표현이 풍부하셨습니다. 불쌍한 인간들을 보았을 때 그 긍휼히 여
기는 마음을 억제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감정적인 사건입니다. 십자가를 대할 때, 우리 안에는 거룩한 감정이 생겨나야 합니다. 감정은 없고 교리만 남아 있으면 십자가 사건은
연구와 비판을 위한 냉랭한 이론이 되어버립니다. 사탄은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습니다. 교제에 감정이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예배에는 감정의 흐름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란 일종의 기념식이거나 학교 강의를 듣는 시간 정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가서는 우리에게 친밀한 교제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 나에게 입맞춰주세요, 숨막힐 듯한 임의 입술로. 임의 사랑은
임을 쏟아지는 향기름이라고 부릅니다. 그러기에 아가씨들이 임을 사랑합니다. 나를 데려가주세요, 어서요. 임금님, 나를 데려가세요, 임의 침실로"(아 1:1-4a 표준새번
역).
아가서에서와 같은 친밀한 관계란 동양 문화권에서는 조금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가정을 표현하는 관계보다는 감정을 조절하는 관계에 더 높은 점수를
주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무언가 무표정의 가치관이 멋지게 보이기도 합니다. 또, 그 속에도 뜨거운 감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이 어떤 형태로든 밖으로 표
현되지 않는다면 서로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서로 사랑을 했지만 표현을 하지 못했기에 그들은 결국 달을 보고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배가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관점에서 생각할 때 예배는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형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제까지의 예배에는 이 점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현
대의 찬양경배는 예배에서 상호 친밀한 감정이 교류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밥 소르기(Bob Sorge)는 이렇게 말합니다. "찬양경배 사역의 목표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감정을 휘저어놓는 것이다"(In His Face)
다윗은 찬양경배자의 모본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손수 수금을 연주하면서 찬양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시편 22:1-3을 보십시오. "내 하나님이여 내 하
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이스라엘의 찬송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이 시는 메시야의 고난을 예표하는 시로도 유명합니다. 학자들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 이 시를 썼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1, 2절을 보면 다윗의 상황은 지금 매우
위급한 것 같습니다. 주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응답은 없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아직 없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
께 원망한다거나 하나님을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안 보이고 안 들릴수록 더욱 하나님의 품을 찾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다윗은 찬송중에서 하나님의 임재
하심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수사가 아니라 다윗의 실제적인 체험입니다. 다윗은 젊었을 때 하나님께 찬송하기로 결정했고(시 108:1) 죽을 때까지 자신이 이스라엘의 노래하는 자라
는 긍지를 잃지 않았습니다(삼하 23:1). 그러므로 그는 화급한 상황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의 찬송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 22:3)라고 고백할 수 있었
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찬송중에 임재하십니까? 찬양경배 사역자들의 관심은 여기에 모아져야 합니다.
1) 찬송(가사)의 능력
찬송한다는 말은 음악을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칭찬한다'는 말이며 '높인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어의 '할렐'(HALAL)이나 영어의 찬양(Praise)은 '찬양한다'고
번역할 수도 있고 '칭찬하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HALAL'이라는 이 단어는 제일 먼저 아브라함의 아내 사
라의 아름다움을 칭찬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 하나님의 이루신 구속 사건의 위대함을 높이고 칭찬하는 일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 칭찬
가운데 거하십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을 칭찬하면 그 사람과 좋은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연애할 때 상대방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수사를 동원해서 상대
방을 칭찬합니다. 결혼한 후에도 이런 관계는 지속되어야 합니다. 크리스천이라면 남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 마음에 상
처가 많은 사람들은 칭찬을 잘 하지도, 받지도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그렇습니다. 남이 순수한 마음에서 칭찬해도 이상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또 친구
가 아무리 일을 잘했어도 정말 순수하게 "잘했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에서는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송을 좋아하십니다. 이 목적을 위해서 인간이 창조되었습니다(사 43:21). 어떻게 보면 하나님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 위대
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라고 우리가 칭찬해드리면 쑥스러워하지 않으십니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그 칭찬 가운데 거하십니다.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아합의 잘못된 결혼으로, 북이스라엘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바알 신을 섬기는 신앙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서는 선지자 엘리야를 통하여 아합의 비참한 종말에 대하여 예고하셨습니다(왕상 21:17-26). 그런데 아합이 이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
식하며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29절). 아합의 회개는 형
식적인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겸비함을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회개는 가장 확실한 찬양(높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
양(높임)가운데 거하십니다.
2)음악의 능력
찬송은 가사와 함께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음악이 없어도 찬송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음악으로 찬송하는 것을 기뻐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음악이 너무 감각적이기 때문에 시로만 찬양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늘나라에도 노래와 악기로 드리는 찬송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습니다(계 5:8, 14:2, 15:2).
우리가 음악으로 하나님께 찬양드릴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귀한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찬양경배에서 음악은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기능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마음을 여는 기능입니다. 이 두 가지는 각기 다른 기능이
아니며 서로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기능입니다. 먼저 음악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음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서 기뻐하시는 것은 음악과, 더 나아가 음악으로 표현된 우리의 적극적인 감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전에 세 살 난 제 아들에게 축구공을 하나 사주었는데, 아들 녀석은 이 공을 참 좋아했습니다. 아이와 저는 공원에 나가서 함께 공을 차며 신나게 뛰어 놀았고 저는 제 아
들 윤석이가 공을 차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윤석이가 제가 준 선물을 방 한구석에 처박아두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면 제 마음은 좀 씁쓸했을 것
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음악이라는 선물로, 우리가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찬양드릴 때 매우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적극적인 표현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도 말로만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그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매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이성과 감정과 의지를 총동원하여 전인격적으로 당신과 교제하기를 바라십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이
렇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나팔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 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 150:3-6).
음악의 두 번째 기능은 우리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입니다. 음악은 감정을 조정하는 힘이 있습니다. 마음을 긴장시키기도 하고 이완시키기도 하면서 감정을 조정합니다.
긴장과 이완(Spanung und Losung)은 음악을 구성하는 중요한 법칙입니다. 어느 나라의 음악이든지,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지 좋은 음악에는 긴장과 이완의 법칙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음악을 들으면 딱딱해진 감정이 부드러워지고 무감각했던 마음이 감각적, 감정적이 되며, 부동의 마음이 역동적으로 됩니다. 이런 현상
을 마음문이 열렸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음악의 힘입니다. 이런 힘이 지금은 음악 치료(Music Theraphy)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음악의 신비한 힘은 고래(古
來)로 이용되어 왔지만 그 신비의 비밀은 최근에야 조금씩 연구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대의 찬양경배는 바로 이러한 음악의 힘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찬양경배에는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과 음악이 합해지면 영적인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
의 임재와 우리의 열린 마음이 교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음악에는 모두 힘이 있습니다. 그 두 힘이 합해지면 초이성적 경험(ultra rational experience)이 일어납
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체험되기도 합니다. 이것이 찬양경배의 원리입니다.
최근의 찬양운동을 살펴보면 그 방법 면에서 크게 두 가지 방향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공연 찬송'(전문 찬송)의 활성화이며 다
른 하나는 '회중 찬송'의 활성화입니다. 이런 방향은 사실 교회사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교회사에서는 회중 찬송과 공연 찬송이 번갈아가며 나타나
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전 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초대교회는 회중 찬송의 전성기였습니다. 그러나 중세시대는 회중 찬송이 사라지고 전문적인 공연 찬송이 성
행했습니다.
그 후 종교개혁으로 다시 회중 찬송이 부활했으나 예배가 형식화되면서 다시 공연 찬송이 발달하게 되었고 바하, 헨델과 같은 음악가들이 배출되었던 것입니다. 영미 각
성 시대에는 다시 회중 찬송이 성행했습니다. 그러나 부흥의 열기가 식어지면서 회중 찬송도 자연히 형식화되었으며, 현대의 찬양경배 운동으로 다시금 회중 찬송이 전성
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현대는 회중 찬송만 성행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 찬송도 함께 성행하고 있습니다. 음악 산업의 발전과 대중 음악의 보급으로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하고 다양한 찬양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찬양경배 사역은 공연 찬송 분야가 아니라 회중 찬송 분야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공연 찬송은 전문적인 찬양 사역자의 연주와 찬양을 들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
다. 그러나 회중 찬송은 찬양 사역자의 인도에 따라 함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므로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하는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찬양경배의 사역이란 회중들이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따라서 찬양경배는 경배 팀의 재능과 음악적 기량을 나타내보이는 시간이
아니며 음악회가 아님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물론 찬양경배도 공연 찬송과 혼합된 형태를 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처음부터 마음을 열고 찬양하기 힘든 회중들에게 전문 가수들의 찬양이 앞부분에서 도입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영감 있는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열어줍니다. 이렇게 찬양경배 인도자는 전문 가수의 노래로부터 점점 회중 찬송으로 유도하는 것입니다.
성가대를 잘 활용해서 공연 찬송과 회중 찬송을 혼합하는 예배를 계획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찬양경배 교회들은 성가대를 찬양경배 가운데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
히 흑인 교회의 회중들은 성가대의 찬양을 같이 따라 부르기도 하고 손뼉을 치기도 하고, 환호성을 지르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찬양경배의 목적은 적극적인 찬양을 통해서 회중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최대한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회중이 하나님을 만나는 데 최대한 도움을 주는 일입니다. 이것은
인생에서 가장 귀한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인도자가 하나님의 임재를 이끌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대로 끌려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에 옆에 계신 하나님을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한낮에 비치는 태양은 누구라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눈을 감고 있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또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면 우리는 태양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못 본다고 태양이 없는 것입니까? 누구든지 눈을 뜨면 태양을 볼 수 있고, 구름이 걷히면 찬란한 태양 빛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찬양경배 사역자들은 회중들이 하나님에 대해 눈을 뜨고, 하나님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속의 구름을 걷어내고, 마음을 열어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기도하면서 그들 앞에서 모본을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찬양경배 사역에서 점점 중요해지는 인물이 찬양경배 인도자입니다. 찬양경배 인도자의 임무는 찬양 인도자와 다릅니다. 성가대 지휘자와도 다릅니다. 예배의 진행을 맡
은 사회자도 아닙니다. 싱 어롱(sing along)을 인도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면 찬양경배 인도자는 누구입니까?
1)찬양경배 인도자는 영적, 음악적 목자입니다.
찬양 인도자나 지휘자가 음악적인 면만을 상관하는 데 반해 찬양경배 인도자는 예배의 영적인 면에 깊숙이 관여합니다. 회중들을 위해 기도하기도 하고 기도를 시키기도
합니다. 때때로 성구를 인용해서 짧은 메시지를 주기도 합니다. 물론 설교를 담당하는 목사는 따로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물론 이때 찬양경배 인도자는 목사의 영적 지도
아래 찬양경배를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찬양경배 인도는 음악적 재능이 있는 평신도보다는 목사가 담당하는 것이 좋습니다. 찬양경배 인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음악적인 면이 아니라 영적인 부분이
기 때문입니다. 곡 선정에서부터 실제 인도에 이르기까지 인도자의 영성과 신학은 매우 중요합니다.
2)찬양경배 인도자는 회중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인도하는사람입니다.
찬양경배 인도자는 '예배는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확고한 신학을 갖고 회중들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인도자 자신이 하나
님의 임재 가운데 깊이 들어가본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체험이 없다면 적어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일이 이 세상
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도자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회중이 적극적으로 찬양하고 경배하도록 격려함으로써 찬양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도
록 돕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경배 인도자는 음악을 도구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3)찬양경배 인도자는 경배자입니다.
인도자는 스스로 한 사람의 경배자입니다. 쇼의 배우가 되어서는 안 되며 음악 연주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많은 경우, 교회에서는 음악적 재능이 있고 기타도 잘 치는
사람을 경배 인도자로 세웁니다. 이들은 찬양도 잘하고 일견 사람들에게 경건한 모습도 보일 수 있습니다. 회중들을 매료시키는 입담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위
이러한 '끼'로서는 찬양경배를 인도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예배는 궁극적으로 영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찬양경배 인도자는 먼저 그가 경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회중들에게 경배하도록 권고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경배자의 모본이 되어야 합니다. 즉, 적극적으로 찬양하도록
권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찬양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는 기도의 모본, 일상생활의 모본이 되어야 합니다.
찬양경배 인도자가 영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으면 가장 좋지만 반드시 그런 수준에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높은 수준의 경지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비록 나는 부족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를 사용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됩니다. 나는 쓸데없는 조각목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위에 금을 입혀서 법궤를 만드실 수 있다는
ale음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찬양경배 인도는 특별한 사람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신실한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성숙한 찬양경배 인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찬양경배 인도는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설교도 훈련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회중 앞에서 말하는 데는 전혀 은사가 없던 한 분이 신학을 공부
하게 되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신학자가 되라고 권했습니다. 회중 앞에서 5분 이상을 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각고의 설교 훈련 끝에 지
금은 세계최대의 장로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계십니다.
찬양경배 인도는 훈련을 통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인도자에게는 무엇보다 영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1)영적인 면
찬양경배 사역은 성령 사역입니다. 찬양경배 사역에서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음악이지만 90퍼센트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영적인 면입니다.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
은 나머지 10퍼센트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인도자는 먼저 영성 계발에 역점을 두어야 합니다. 어떻게 영성을 계발할 수 있습니까? 몇 가지 조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①영성은 말씀 공부를 통해 계발됩니다.
찬양경배 인도자는 성경 말씀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묵상한 말씀을 자신의 삶에 적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더 나
아가서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필요한 성경구절을 암기하여 찬양경배에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찬양경배의 중간 중간에 인도자가 전해주는 짧
은 메시지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반면, 성경 말씀이 바탕이 되지 않는 찬양경배는 감정적인 모임으로 끝나기 쉽습니다. 성령의 감동인지, 음악의 감동인지 구분하기
가 어렵게 됩니다. 그러므로 찬양경배 사역자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만나를 거두어 먹었듯이 정규적인 성경공부의 시간을 통해 말씀을 먹을 수 있어야 합니
다.
②영성은 기도를 통해 계발됩니다.
경배 인도자는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각종 기도에 능해야 합니다. 개인기도, 중보기도, 합심기도, 통성기도, 묵상기도, 그 위에 가능하면 방언기도, 방언 통역, 예언기
도, 신유기도, 축사기도와 같은 은사기도를 할 수 있으면 더 좋습니다. 저는 찬양경배 사역자들이 적시는 기도와 관상기도를 훈련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런 기도는 하
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기 위한 매우 귀중한 기도 방법입니다.
·적시는 기도(Soaking Prayer)
적시는 기도는 치유 사역에서 나온 기도 개념입니다. 그리고 바쁜 현대 생활에서 어디서나 적용할 수 있는 기도 방법입니다. 이 기도는 많은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꼭 필요한 한가지 기도 제목을 놓고 계속해서 조용히 기도 드리는 것입니다. 이슬비가 처음에는 아무 역할도 못할 것 같지만 나중에는 속옷까지 적시는 것
과 마찬가지 효과입니다.
"성령 하나님, 제 심령에 임재해주세요. 깊이 임재해주세요. 함께해주세요…." 이렇게 적시는 기도를 꾸준히 계속하면 성령님께서 임재하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몸의 긴
장을 풀고 간절한 마음으로, 깊이 호흡하면서 천천히, 부드럽게 적시는 기도를 드려보십시오.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기도해도 좋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성령님의 임재
하심이 느껴질 것입니다. 민감한 분은 온몸으로 체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관상기도(Contemplate Prayer)
관상기도는 주님께 마음을 쏟으면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외형적으로는 묵상기도와 비슷하지만 묵상기도가 속으로 기도의 내용을 아뢰는 것인 데 반하여 관상기
도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주님을 깊이 생각하며 앉아 있는 것입니다. 관계가 깊어지면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인식하게 되며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경배가
깊어질수록 관상기도를 많이 드리게 됩니다. 다윗은 이런 기도를 많이 드렸습니다.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시 86:4).
관상기도의 훈련이 되어 있으면 자신의 내면이 쉽게 치료됩니다. 40일 금식기도를 통해 자신의 인격이 변한 것 같다가도 조금 있으면 다시 그 못된 인격이 튀어나오는 경
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관상기도를 통해 주님과 마주하는 시간을 많이 가진 사람은 그 내면이 진실로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③영성은 성령충만한 집회에서 나눠지기도 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전달되기도 합니다. 엘리야의 영감은 엘리사에게 전수되었으며, 예수님의 능력은 제자들에게 전수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성령의 은사는 그가 안수할 때
에베소 교인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능력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안수의 방법을 통해서 성령의 능력은 다른 사람에게 전수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능력
부여라고 합니다. 현대의 집회는 강사의 말만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듯 능력을 분여해주는 집회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영성이 꼭 성령의 능력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이 주어지면 찬양경배 사역자들은 훨씬 효과적으로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는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마지막 때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욜 2:28)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사역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
입니다.
영성 계발은 회중들 앞에서보다는 골방에서 일어납니다. 골방에서 하나님과 마주하는 깊은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잘못된 인격이 치료되고 비뚤어진 성격이 바뀌는 것입
니다. 시편에 나타난 다윗의 영성은 내면의 깊은 기도에서 나왔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시 25:1). 다윗의 기도는 입으로 말하는 기도가 아닙
니다. 하나님 앞에서 홀로 자신의 마음을 쏟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찬양 사역자들을 골방에 거하게 했습니다.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족장이라
저희가 골방에 거하여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대상 9:33).
찬양경배 사역자들은 대부분 기도를 잘하는 편입니다. 함께 둘러앉아서, 또는 손을 잡고 예배 전에 기도드리는 일은 대부분 사역자들에게 익숙한 일입니다. 그런데 누구
보다도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던 사역자가 어느 날 갑자기 실족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저는 그 이유가 골방에서의 영성 훈련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
다.
저는 찬양경배 인도자의 개인적인 영성 계발을 위해 리차드 포스터(Richard Forster)의 「영적 성장을 위한 제자훈련」(보이스사)을 숙독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꾸
준한 영성 계발 없이는 찬양경배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찬양경배 사역은 결국 성령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2)음악적인 면
찬양경배의 음악적인 비중은 10퍼센트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음악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찬양경배 인도자가 배워야 할
음악적인 부분은 크게 4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찬양경배 이론
찬양경배 이론은 음악 실기적인 면은 아닙니다. 그러나 찬양경배의 이론을 알아야 확고한 신학적 입장을 견지할 수 있습니다. 찬양경배는 비교적 최근(1973년, LA
Calvary Chapel에서 Maranatha로 처음 시작. 「Christianity Today」'99년 7월 12일자)에 나타난 운동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예배를 고수하는 사람들로부터 거센 반발
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때 성경적 배경, 교회사적인 배경, 현대 문화적인 배경을 설명할 수 없다면 찬양경배 사역은 무너지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찬양경배 사역자들은 '왜 내가 이렇게 찬양경배를 드리는가?'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 교회사적인 근거를 공부해야 합니다. 또한 현대 문화에 대해 깊은 관
심을 가지고 이를 공부해야 합니다. '현대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어떤 문화가 대중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영적인 관점에서 살피고 찬양경배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②음악 이론
찬양경배 인도자가 알아야 할 음악 이론은 다음의 사항들입니다.
【인도자가 알아야 할 음악 이론】
■독보법-오선의 구조, 음표, 쉼표, 악상 기호를 알아야 합니다.
■시창-악보를 보고 즉석에서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청음-간단한 멜로디, 화성을 듣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멜로디 작법-간단한 멜로디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편곡법-간단한 멜로디를 기악으로, 그리고 성악으로 편곡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③음악 실기
찬양경배 인도자에게 필요한 음악 실기로는 기악이 있습니다.
·성악 훈련
성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악기입니다. 찬양경배 인도자는 전문 성악가처럼 노래를 잘할 필요는 없습니다. 공연 찬양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노래
를 잘하면 회중들은 찬양을 하지 않고 그 노래를 감상하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찬양경배 인도자는 충분한 감정을 들여서 그것을 노래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악기 훈련
찬양경배 인도자는 악기를 가지고 인도할 수도 있고 악기 없이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악기를 연주하면서 인도하면 찬양 팀이나 회중에게 자신의 의도를 빨리,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악기 없이 인도한다면 자신이 좀더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고 영적인 면에 좀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기 연주자와 호흡이 잘 맞
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인도하든지 간에 찬양경배 인도자는 한 악기를 잘 연주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왜냐하면 음악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배 인도에 적합한 악기는 기타와 키보드입니다. 악기를 배운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기타를 시작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키보드에 비해서 배우기가 쉽습니다. 기본적
인 코드 10여 개만 알면 대부분의 찬양을 인도할 수 있습니다. 통기타로 찬양경배를 인도할 때, 통기타는 회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도자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통기타
는 찬양경배의 주된 악기가 아니며, 따라서 반드시 숙련된 테크닉이 없다고 해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④찬양경배 인도 실기
인도자는 찬양경배 인도를 실습해보아야 합니다. 먼저 찬양 곡목 작성하는 요령을 익혀야 합니다. 코러스들을 어떻게 부드럽게 연결할 수 있는지 배워야 합니다. 물론 자
기가 좋아하는 곡목들을 적당히 연결해서 찬양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도자는 설교자가 설교를 준비하듯 찬양목록을 준비해야 합니다. 음악적으로, 주제적으로
어떻게 통일성을 이루며 찬양을 드릴 수 있는지 연구하면서 그 목록을 준비해야 합니다. 자신이 준비한 찬양 곡들을 찬양 팀에게 어떻게 연습시킬 것인지도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찬양 팀의 숙련된 경배 인도자의 지도 아래 실습을 하는 것입니다. 비행술을 배울 때, 조종 선생은 이론을 배운 학생에게 처음에는 간단한 기술 한 가지
씩을 실습하도록 해서 차츰차츰 학생이 모든 것을 조종할 수 있도록 지도해나갑니다. 이렇게 찬양경배 인도자는 후보생들에게 시작 부분이나, 중간 부분의 한 파트를 맡
김으로써 찬양경배 인도의 훈련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기술이 찬양경배 인도자로서는 실제적인 기술이 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상세하게 다루겠습니다.
⑤기타
찬양경배 인도자에게는 오디오 시스템에 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전자 악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연결하고 마이크와 스피커를 어떻게 설치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
러므로 찬양경배 사역자는 어떤 면에서 엔지니어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음악과 말씀이 있다고 해도 오디오 시스템이 엉망이면 회중들에게 괴로움을 줄 뿐입니다.
오디오 시스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값비싼 장비만 구입해놓고 그것을 비효율적으로 다루게 되는 결과만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지식이 있을 때, 우리는 본
교회에 맞는 장비로 효과적인 사역을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도자가 음악 심리와 대중 심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기 있으면 찬양경배 사역은 더욱 효과적이 될 수 있
습니다.
1)매순간의 생활이 경배가 되게 하십시오.
경배는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경배는 광복절 기념 행사가 아닙니다. 강대상 위에서만 경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위선입니다. 먼저 찬양경
배 인도자의 삶이 경배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여러분의 멋진 찬양 인도에 회중들이 감동할
지도 모르지만, 결국 여러분의 경배자로서의 삶이 회중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2)자신이 제일 잘한다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찬양경배를 몇 해 인도하다보면 사람들 앞에서는 데 어느 정도 자신이 생깁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노래에 자신이 도취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을 향한 회중들의 눈길이
의식될 때, 이때가 바로 교만해지기 쉬울 때입니다. 이쯤 되면 다른 찬양경배 인도자들이 인도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영성이나 음악성이 자기보다 못한다고 생각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찬양경배 인도자가 한 교회에 여러 명 있을 경우 서로간에 보이지 않는 질투와 경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
다. 제가 만나본 찬양경배 인도자들에게서도 대부분 자기가 제일 잘하는 인도자라는 것을 은근히 과시한다고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다른 경배자를 높이 세우고 칭찬하십시오. 그것이 찬양의 기본입니다. 다른 경배자에게서 찾을 수 있는 좋은 점을 인정하고 배우도록 애쓰십시오.
3)찬양경배를 인도하는 중에도 초점을 분명히 하십시오.
사람들 앞에서 찬양경배를 인도하다보면 사람들을 의식하게 됩니다.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면 자유로움이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사람
들에게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저 사람들이 내 노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신경을 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는 찬양경배를 인도하는 중에 계속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노래하면서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서 노래하십시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성령 하나님, 임재해주세요', '주님, 찬양을 받아주세요', '주님, 부족한 종을 도와주세요', 주님, 저들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찬양이 흐르는 중
에 인도자가 잠깐 찬양을 안 해도 찬양은 흘러갑니다. 그 시간에 기도하십시오. 속으로 기도해도 좋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기도해도 좋습니다. 한마디의 기도를 계
속 반복해서 하십시오. 매끄럽게 잘 연주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도록 애써야 합니다. 한번 멋지게 잘해봐야겠다는 인간적인 생각보다도 회중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사랑과 인내로 도와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예배 가운데 운행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4)기도, 말씀, 음악에 젖어 사십시오.
찬양경배 인도자는 영적, 음악적 목자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 영성 계발에 꾸준히 힘써야 합니다. 하루 중 말씀과 기도에 매달리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어
쩌다 기도하고, 어쩌다 성경 읽는 것은 영성계발에 도움이 안 됩니다. 가능하면 많은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보내십시오. 세상적으로는 하는 일 없이 좀 게으른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가장 귀한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골방에서 혼자 경배 드리는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신비하게 역사하십니다.
음악을 꾸준히 연마하십시오. 발성 연습, 악기 연습을 꾸준히 하십시오. 새 노래를 만들고, 새 노래를 듣고, 새 노래를 소개하고, 새로운 음악의 경향에도 꾸준히 관심을 쏟
으시기 바랍니다. 음악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실험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찬미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과 교제하길 원하십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찬양경배 사역은 참으로 멋진 사역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회중들도 기뻐하고, 찬양하는 자신도 기쁜 사역입니다. 특히 회중 앞에서 찬양경배를 인도하는 사람들은
회중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찬양드리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찬양경배드릴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감사한 일이 아닙니까?
찬양경배의 사역은 팀 사역입니다. 찬양경배 사역자들은 팀 사역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또 찬양경배 팀은 한 지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남
이 아닙니다. 그가 나이고 내가 그입니다. 구약 시대의 찬양 사역은 레위 지파가 담당했습니다. 레위라는 말은 '연합'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똑
똑하고 재능 있는 한 사람에 의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재능 있는 사람 혼자서 찬양 사역을 할 수도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음악적
으로 더 훌륭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좀 부족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찬양하는 것을 더 좋아하십니다.
요한계시록에는 하늘나라에서 드려지는 영광스런 예배의 모습과 많은 무리가 찬양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나 혼자서 드리는 독창이나 독주는 없습니다. 네 생물, 이십
사 장로, 십 사만 사천 명, 흰 옷 입은 무리들, 허다한 천사들의 찬양만이 있습니다.
많은 음악가들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될 수 있으면 혼자 연주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찬양경배 사역자들은 될 수 있으면 함께 찬양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질상 남과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진흙처럼 뭉치는 성격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모래처럼 흩
어지기 쉬운 성격이라고 합니다. 이런 성격은 우리나라의 교회, 선교사들의 사역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그러나 찬양 사역은 팀 사역입니다. 팀이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성
령이 역사하실 수 있는 그릇을 만들지 못합니다.
팀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지켜야만 합니다.
1)자기를 죽이고 남을 세울 줄 알아야 합니다.
음악 연주는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남에게 금방 나타납니다. 그래서 연주자가 음악에 빠지다보면 자기 혼자만의 연주 실력을 드러내고 싶을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
의 연주는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러나 찬양경배 사역자들은 자신들이 지금 음악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
신을 나타내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나타내는 시간입니다. 내 소리가 커지는 시간이 아니라 남의 소리가 크게 되도록 도와주는 시간입니다.
저는 독일 쾰른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음악대학의 반주과 교수님에게서 큰 감명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피아노를 공부하던 자매 한 명이 그곳으로 유학을 왔습
니다. 그 자매의 피아노 실력은 누가 들어도 부족했습니다. 그 자매는 저에게 이렇게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최 집사님, 저는 교회 반주나 하면 되거든요. 그래서 피아노
전공보다는 반주 전공을 택하려고 해요. 담당 교수님을 만나게 주선해주시겠습니까?"
너무 간곡히 부탁하길래 제가 그 교수님과 만날 수 있도록 주선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노 교수님은 그 자매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보더니 "자매님은 아직 반주를 하실 수
없습니다. 그것은 피아노 테크닉이 부족하기때문이지요. 먼저 피아노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후에 반주과에서 공부하도록 하십시오."
저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도 그 자매님처럼 반주과는 피아노과에 들어갈 실력이 안 되는 학생들이 들어가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건 너
무나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반주는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도와주는 사람은 그 사람을 잘 감쌀 수 있는, 실력이 있는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교수님은 성악가의 반주를 하면서 성악가 이상의 음악적 실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연주회에서 실제로 영광을 받는 사람은 독창자나 독주자이지 반주자가 아
닙니다. 그러나 진정한 반주자는 남을 세워줄 수 있는 실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찬양경배 사역자들은 '나는 반주자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연주 팀은 노래 팀의 찬양을 반주하는 것이며, 찬양 팀은 회중들의 찬양을 반주하는 것입니다. 회
중들이 하나님을 가장 잘 찬양하고 경배할 수 있도록 그들을 세워주는 것입니다.
2)인도자(Leader)에게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찬양경배 인도자는 고도로 훈련된 음악가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음악적인 훈련을 받았다 할지라도 모든 악기에 능통할 수는 없습니다. 반면에 찬양 팀
의 악기 연주자나 노래하는 사람들은 그 분야가 자신들의 전공이며 그 분야의 전문가일 수 있습니다. 이때 자기 전공을 내세워서 인도자의 인도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드럼 주자가 인도자의 템포가 느리다고 자기 템포를 고집하며 드럼을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드럼과 인도자, 키보드와 템포가 따로따로 가고 있었습니다. 어
느 교회에서는 인도자가 긴 박자의 박을 한두박씩 빼먹고 노래했는데 그때마다 화가 난 키보드 연주자는 볼륨을 크게해서 악보대로 박자를 채워나가는 모습도 본 적이 있
습니다. 당연히 예배 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해졌습니다. 이때 인도자가 분명 틀린 경우라도 연주자들은 즉시 인도자의 박자에 맞추어야 합니다. 인도자를 인도하려해서는
안 됩니다. 키보드 주자 역시 인도자와 마찬가지로 한두 박자를 빼고 연주한다 해도 회중들이 찬양하는 데는 그리 큰 지장이 없습니다. 음악을 아는 사람이라면 인도자의
실수를 덮어주고 재빨리 좇아가는 반주자에게 경탄할 것입니다.
찬양 팀들은 인도자에게 음악적인 조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결정은 인도자에게 맡겨야 합니다. 인도자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효
과적인 팀 사역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상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에스트로'라는 존칭으로 불리는 거장이라 할지라도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를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지휘자는 연주자들에게 전문적인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단 연주가 시작되면 모든 주자들은 지휘자의 인도에 절대 순종합니다. 크게 하라고 하면 크게
하고, 작게 하라면 작게 하고, 느리게 하라면 느리게 합니다. 이러한 절대 순종이 없이는 100여명의 주자가 다루는 그 많은 악기들로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낼 수 없
을 것입니다.
찬양경배는 팀 사역입니다. 팀은 크게 네 부분을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찬양경배 인도자(Worship Leader)
2. 악기 팀(Instrumentalists)
3. 노래 팀(Singers)
4. 스태프(Staff)
(댄스 팀, 연극 팀, 찬양경배 위원회가 첨가될 수 있다.)
찬양경배 인도자는 찬양경배 전체를 총괄하는 사령관입니다. 찬양 팀의 규모가 클수록 인도자가 할 일은 많습니다. 찬양 팀을 인도해야 하고, 찬양 팀과 회중 사이를 연결
해야 하며, 음악의 흐름을 주도해나가야 합니다. 더 나아가 영적인 흐름을 잘 파악하고 회중들을 그 흐름 속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찬양경배 인도자에 대해서는 앞장에서 이미 설명했기 때문에 몇 가지 사항만 요약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찬양경배 인도자는 경배자여야 합니다.
영적으로 민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단순한 음악 연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중들 앞에 나와서 재주 피우는 시간이 아닙니다.
2)찬양경배 인도자는 음악적 자질이 있어야 합니다.
음악적 자질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찬양경배를 인도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음악적 자질의 기준은 병적인 음치가 아닌 사람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훈
련에 의해서 음악적 자질이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인도자는 성악, 기악, 음악 이론, 악기론을 꾸준히 익혀나가야 합니다. 적어도 한 악기 이상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3)찬양경배 인도자는 지도력이 있어야 합니다.
인도자는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회중들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인도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지도력이 있어야 합니다. 회중에 대한 뜨거운 사랑, 목자 된 심정을
가지고 그들을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일로 예배가 혼란스러워
지더라도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인도할 수 있는 안정감이 있어야 합니다.
4)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영적 민감성이 있어야 합니다.
찬양경배 인도중에 입신한 영국 인도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눕게 하셨을 때 그는 "안 돼요. 나는 지금 찬양경배를 인도해야 한단 말예요."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갑자기 사라졌는데도 찬양 팀은 계속 경배를 드렸고 전체적인 찬양경배는 잘 흐르고 있었습니다. 찬양경배는 결국 성령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5)찬양경배 인도자는 훈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도자는 때때로 회중을 훈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일은 대부분 예배중에 일어나기 때문에 회중들이 예배에 방해받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훈련할 수 있도록 세심
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또 인도자는 경배 팀을 훈련해야 합니다. 음악적으로, 영적으로 좀더 높은 수준의 찬양 팀이 되도록 훈련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인도자는 새로
운 찬양경배 인도자를 훈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능하면 팀 안에서 인도자 후보를 발굴해내서 그들을 찬양경배 인도자로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인도하는 부분을 조금
씩 맡기고, 충고하고 격려하며 독립적인 찬양경배 인도자로 설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찬양경배 인도는 설교처럼 배울 수 있습니다.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처음부터 설교를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찬양경배 인도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
의 재능이 지금은 비록 적은 것일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연마하고 훈련하십시오. 지금 이 책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볼 때, 당신은 훌륭한 찬양경배 인도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찬양경배는 영적인 부분과 함께 음악적인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음악성과 영성은 사실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좋은 음악의 뒷받침이 없다면 찬양경배 사역을 효
과적으로 수행항 수 없을 것입니다. 박자, 음정이 약간씩 안 맞는 것을 일반 회중들이 금세 느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부드러운 영적 흐름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찬
양 팀은 음악 실력은 악기 연주자의 연주 실력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찬양경배의 악기 연주는 전문가가 맡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한국과 미국 찬양 사역의 차이점 중 하나는 악기 연주자에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찬양 사역자들 중 악기 연주자는 대부분 비전문가들입니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좀 쳤다
거나, 기타를 좀 퉁겨본 적이 있는 청년, 음악에 좀 소질이 있는 청년들이 찬양경배 사역을 시작하는 데 반해 미국교회의 찬양경배 사역자들은 그 악기의 전문가들이며,
청년층보다는 장년층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찬양경배 사역이 열매를 맺으며 꾸준히 지속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좋은 찬양곡을 번역해서 한국교회에서 찬양을 드릴
때, 그 기분이나 영적 감흥이 제대로 잘 안 일어나는 이유는 단지 언어의 차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악기 연주 실력의 차이 때문입니다. 인도자가 매우 영적이고, 회
중들의 열기 또한 대단하며, 미국교회가 사용한 것과 똑같은 악기 제작사의 악기들을 사용한다 해도 정작 악기를 연주하는 실력이 없으면 그 사역은 음악적으로 뒷받침되
지 않습니다. 찬양경배 사역자들은 악기를 성령의 도구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현대 찬양에 사용되는 악기】
■현악기-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하프, 기타
■관악기-플루트, 클라리넷, 오보에, 바순, 색소폰, 트럼펫, 트롬본, 튜바
■타악기-팀파니, 드럼셋, 템버린
■건반악기-오르간, 피아노, 신디사이저
■전자악기-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신디사이저, 전자 피아노, 전자 드럼
■민속악기-봉고, 시스트럼, 귀로, 장고, 징
1)키보드(Keyboard)
키보드는 건반악기, 즉 피아노, 신디, 일렉트릭 피아노를 말합니다. 특히 신디는 매우 중요한 악기입니다. 좋은 신디는 수백 명의 오케스트라 소리를 다 연주할 수 있습니
다. 인간이 연주할 수 없는 음악도 정확히 연주합니다. 신디는 화음, 리듬, 멜로디를 혼자서 훌륭히 연주할 수 있습니다.
찬양경배 사역에서는 신디를 두 대 이상 사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한 사람이 두세 대를 동시에 연주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신디를 여러 대 사용할 경우는 각 신디를 현
악 파트, 관악 파트, 리듬 파트로 나누어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대학에서 클래식 피아노 또는 오르간을 전공한 연주자들은 신디를 잘 사용하지 못합니다. 종래의 피아노나 오르간은 예배 음악의 전체를 담당했기 때문에, 이들은
신디를 마치 파이프 오르간 치듯, 전통 찬송가 연주하듯 연주합니다. 물론 신디를 그렇게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현대 찬양경배에서는 그 사용법이 약간 다릅니다. 신디 연
주자는 신디 하나로 예배 음악 전체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신디 역시 오케스트라의 한 악기로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멜로디만을 한 선율로 연주해야 하고 또 어떤
때는 멜로디 없이 화음만 깔아주거나, 왼손으로 베이스 음만을 연주하기도 하며, 연주하지 않고 쉬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신디는 다양한 소리를 디지털 신호로 만들어 컴퓨터 칩에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연주자가 필요한 소리를 배합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기능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천 수만의 음향 중에서 대부분의 교회가 사용하는 소리는 서너 가지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피아노나 오르간 연주자들이 기계 사용이 서툴기 때문입니다. 신디 연주자는
음악 연주자일 뿐 아니라 그 악기의 엔지니어가 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자기가 사용하고 있는 악기에 대해서는 필요한 소리를 다양하게 낼 수 있는 기계적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피아노가 주악기로 사용됩니다. 피아노는 단순한 한 가지 음색만 가지고 있지만 그 연주법이 다른 악기에 비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피아노는 멜로디악기
로, 리듬악기로, 또 화음악기로도 훌륭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악기입니다. 보통 그랜드 피아노에 마이크를 장착해서 사용하기도하고 전자 피아노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피아노 주자는 클래식 주법만으로 찬양경배를 반주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재즈 주법을 익혀야 합니다. 다양한 코드를 다양한 방법으로 연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키보드 주자인 버틀러(Terry Buttler)에게 베토벤이나 쇼팽을 쳐본 적이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손을 내저으며 자기는 어려서부터 코드만을 쳐왔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키보드 연주자는 찬양경배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교회는 좋은 키보드 연주자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비용을 투자해도 좋습니다. 왜냐햐면
생각보다 훌륭한 키보드 연주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2)베이스 기타와 드럼
드럼 주자는 메트로놈을 통해서 일정하게 리듬을 친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드럼의 소리는 매우 강하기 때문입니다. 드럼의 비트가 흔들리면 찬양경배 전체의 리듬이 흔
들립니다. 대부분의 아마추어 주자들은 다양한 톰톰과 심발을 부지런히 때려야 하는 필(Fill)부분에서 속도가 약간씩 느려집니다. 또 색다른 음색을 만들어낼 때도 속도가
변합니다. 드럼 주자에게 이런 혼동이 생기면 안 됩니다. 마치 기계처럼 정확해야 합니다.
드럼 연주는 크게 그루브 드럼(Groovy Drum)과 멜로디 드럼(Melodic Drum)이 있습니다. 그루브 드럼은 간단하게 기본 리듬만을 깨끗하게 쳐주는 것이고, 멜로디 드럼
은 리듬의 변형과 함께 다양한 악기를 구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찬양경배에서는 그루브 드럼으로 연주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드럼의 솜씨를 나타내기보다 회중
들의 찬양을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악기의 리듬은 드럼의 리듬에 맞추게 됩니다. 템포는 말할 것도 없고 리듬의 형태도 드럼을 좇아야 합니다. 드럼이 부점 리듬(Shuffle)으로 가고 있는데 피아노나 기
타가 4비트로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혼란을 일반 회중들은 금방 느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영적인 흐름에는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악기의 리듬이 드럼에 맞추
어 통일되어야 깨끗한 찬양이 될 수 있습니다.
베이스 기타는 콘트라베이스를 전자 악기로 만든 것입니다. 콘트라베이스는 화음의 기본음을 연주하는 매우 크고 느린 악기입니다. 그래서 빠른 음을 연주하는 데는 한
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이스 기타는 다릅니다. 악기를 보통 기타 크기로 만들었기 때문에 손을 빨리 움질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이스의 음이 크고 빨라졌습니다.
지금은 드럼과 함께 리듬 파트를 담당합니다.
드럼과 베이스를 맡은 두 연주자는 서로 호흡이 잘 맞아야 합니다. 베이스의 소리는 매우 낮기 때문에 이렇게 낮은 소리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 사람의 마음이 흔들립니
다. 여기에 재미를 붙인 베이스 주자들은 은근히 볼륨을 올리고 둥둥거리는 소리를 내며 과시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베이스 음량이 너무 크면 다름 찬양 소리들이 지저분
하게 들립니다. 중압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베이스 주자도 역시 '나는 반주자다.'라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드럼과 베이스는 찬양경배에서 두드러지는 소리이기 때문에 깔끔하게 연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찬양경배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특히 경배
로 나아가는 데 큰 장애요소가 되기 쉽습니다. 이런 때는 드럼을 빼도 됩니다. 서투른 드럼은 없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3)멜로디 악기
찬양경배의 멜로디는 사실 노래하는 사람들, 회중들이 맡습니다. 그러나 노래의 선율을 돕기 위해서 악기들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주로 사용되는 멜로디악기로는 색소폰
이 있습니다. 색소폰은 기타와 함께 전형적인 세속 악기로 여겨졌으나 현대의 찬양경배에서는 가장 많이 쓰이는 멜로디 악기입니다. 그 이유는 색소폰 연주가 다른 악기
에 비해서 쉽기 때문이기도 하고, 색소폰의 음색이 현대인들에게 잘 어울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색소폰 리드(Reed)가 달린 목관악기지만 금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소리가 크고 감정 표현이 다른 악기에 비해서 자유롭습니다. 악기의 종류도 음역에 따라 다양합니다.
소프라노 색소폰부터 지작해서 알토, 테너, 바리톤, 베이스 색소폰까지 있습니다. 주로 알토와 테너 색소폰이 마칭(marching) 밴드나 재즈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최근에
는 소프라노 색소폰이 찬양경배의 멜로디 악기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트럼펫,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등도 멜로디악기로 사용됩니다. 특수한 효과를 위해서 기타가 멜로디악기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런 악기들이 주 멜로디악기로 사용될
때는 마이크로 그 소리를 확성해주어야 합니다. 음향 기술자는 그들이 언제 주요 독주를 하는지 알아서 그 시점에서 소리를 높여주어야 합니다.
규모가 작은 찬양 팀에서는 멜로디를 연주하는 악기를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은 키보드 주자만 있으면 멜로디악기가 없다고 해도 얼마든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현대의 신디는 트럼펫과 거의 똑같은 소리, 색소폰과 거의 똑같은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찬양경배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기타는 크게 세 종류가 있습니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통기타, 전기를 사용하는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를 담당하는 베이스 기타입니
다. 통기타는 마이크나 픽업 장치를 통해서 확성할 수 있습니다. 기타가 찬양경배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통기타는 찬양경배의 주요 악기는 아닙니다. 인도자
가 인도할 때 주로 사용하는 통기타는 찬양경배의 주요 악기는 아닙니다. 인도자가 인도할 때 주로 사용하는 통기타는 그 소리가 꼭 회중들에게까지 들릴 필요는 없습니
다. 인도자 자신이 음을잡고, 리듬을 잡는 데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작은 그룹의 찬양경배에서는 기타 하나만으로도 아주 훌륭하게 찬양 인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기타는 주로 코드를 사용하여 리듬을 담당하지만 아르페지오로 연주하면 매우 섬세한 소리가 납니다. 연주 실력이 뛰어난 사람은 기타로 멜로디를 연주해서 이를 훌륭하
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록 스타일의 찬양에서는 전자 기타가 매우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시종일관 전자 기타를 쳐대면 회중들은 금방 그 소리에 식상할 것입니다. 왜냐하
면 전자 기타의 특수한 음향은 어떤 특정한 분야의 음악에만 적당하기 때문입니다.
악기 연주자들은 이조(移調, Transposition) 능력과 즉흥 연주의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찬양경배는 악보에 그려져 있는 악보를 안 보고 연주할 수 있도록 암기하고 있어
야 합니다. 이런 기술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꾸준히 연마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연주자들은 대부분 연습 벌레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전에 제가 교생실습을 할 때 제가 맡은 반에, 그 당시 한국 최고 수준의 음악 콩쿠르 두 군데에서 1등을 한 고등학생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학생에게 하루에 얼마나 연
습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학생은 부끄러운 듯 말했습니다. "요즘은 학교 공부 때문에 많이 연습을 못해요. 저녁에 5시간 정도 연습할 뿐이에요." 귀신을 쫓는 다윗의 수
금 실력도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양을 치며 들판에서 연습한 그의 수금 실력은 사울의 궁중에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영적으로 성숙하고 음악적으로 탁월한 연주자를 확보하여 세우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들이 마음껏 찬양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다윗은 연
주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세워주고 마음껏 찬양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족장이라 저희가 골방에 거하여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대상 9:33),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하여 그 형제 노래하는 자를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
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대상 15:16)
찬양경배 인도자와 함께 앞에 서서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수는 다양합니다. 한 명에서 수십 명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노래하는 사람들은 악기를 연주하는 사
람들보다 회중들의 눈에 띄기 쉽습니다. 왜 찬양경배에는 앞에 서서 노래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까? 노래 팀의 임무는 무엇일까요?
1)노래 팀의 목적
①회중이 경배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노래 팀은 회중이 예배 가운데로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회중들은 물론 예배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러나 예배 첫 시간부터 예배 가운데로 들어오는 사람
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영적 준비가 아직 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되도록 빨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바로 노래 팀의 역할입니
다. 그들은 마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이렇게 예배드리세요.'라고 무언의 말을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선적으로 이런 시각적인 감화가 중요합니다. 설령 노래
는 좀 못하더라도 열심히 예배드리는 은혜로운 모습을 회중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밝은 표정의 얼굴이어야 합니다.
②인도자의 의도를 회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찬양경배 인도자는 회중을 인도합니다. 그러나 회중들의 반응은 즉각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인도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주춤거릴 때도 있습
니다. 이때 노래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적극적인 모범을 보임으로써 인도자의 의도를 회중에게 분명히 전달하는 것입니다. 인도자가 "우리 함께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구
하겠습니다. 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인도자가 기도를 시작하면 노래하는 사람들은 즉시 뒤따라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때 회중들도 자연스
럽게 기도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 밖에도 속도를 변화시킬 때, 손을 들고 찬양드릴 때, 손뼉을 칠 때, 즉흥적인 노래를 시작할 때 등등, 이런 때마다 인도자가 회중들에게 일일이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아도 인도자의 의도는 우선적으로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즉각 전달되고 그들의 시범을 통해 회중들이 따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마치 인도자가 사회자
가 된 듯이 인도하는 것보다 예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합니다.
③기도하는 일입니다.
노래 팀의 중요한 임무는 중보기도하는 일입니다. 인도자가 예배를 인도하는 동안 성령님이 임재하시도록 끊임없이 중보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이 닫혀 있는 성도들이 보
이면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문을 여시도록 기도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악기 연주자들이 음악적인 면에 더 비중 있는 사람들이라면 노래하는 사람들은 영적인 면에 더 비중
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배 전, 예배 후에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예배중에 줄기차게 중보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때 자신에게 매여 있어 자유스럽지 못하던 모
습이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④노래하는 일입니다.
노래 팀은 적극적으로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선 가사에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코러스는 대부분 간단한 곡들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모두 암기해서 불러야 합니다. 그
래야 자세가 적극적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국 찬양 사역자들은 악기 연주자들을 제외하고 거의 보면대(music stand)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가사를 모두 암기하고 있기 때
문입니다. 그럴 때 더욱 자유롭게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더욱 집중할 수 있습니다.
노래 팀들은 성악적인 가창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소리를 구분해서 낼 수 있어야 합니다. 큰 소리, 작은 소리, 레가토의 소리, 스타카토의 소리, 비브라토의 소리, 논비브
라토의 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필요에 따라 화음을 붙여서 노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노래 팀들은 찬양드리는 다양한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시편에는 찬양드리는 다양한 방법들이 나와 있는데 이 방법들을 필요한 때에 적절히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
다.
2)시편에 나타난 찬양 방법(Psalmic Worship)
시편에는 단순히 노래로 찬양드리는 방법뿐만 아니라 그 밖의 다양한 방법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찬양 전통은 다윗 때부터 연구되고 실험된 찬양 방법입니다. 그
들은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나아갔습니다. 2천 년 교회사에서는 이런 방법들이 거의 묻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찬양경배에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
니다.
시편에는 소리로 드리는 찬양, 손으로 드리는 찬양, 몸으로 드리는 찬양, 영으로 드리는 찬양이 나타나 있습니다.
①소리로 드리는 찬양
·노래로 찬양(sing)
"나의 평생에 여호와께 노래하며 나의 생존한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시 104:33).
찬양에 멜로디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정이 무미건조한 상태에서 예배드리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음악은 너무 감각적이니
까 시로만 나를 찬양하라."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름다운 소리를 즐기며, 풍부한 감정을 표현하면서 찬양드리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
들에게 세 가지 지침을 주었는데 그 세 가지 지침이란 '크게, 즐겁게, 힘차게'였습니다. 즉, 적극적으로 찬양드리라는 말입니다. 노래 팀은 이런 자세로 회중을 예배 가운데
로 초청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특히 예배가 시작되는 전반부 시간에는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회중들이 조금밖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노래 팀은 다른 생각 말고
적극적으로 찬양하는데 몰두해야 합니다.
·말로 찬양(speak)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지로다"(시 145:21)
멜로디가 없이 말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노래 팀은 앞에 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찬양중에 말로 하나님을 찬양해보십시오. 코러스
의 가사를 불러주는 것도 말로 찬양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짧게 기도하는 것도 말로 찬양하는 방법입니다. 성구를 선포하는 것도 말로 찬양하는 방법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예수님, 사랑해요", "주여, 감사합니다", "주는 거룩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성령 하나님, 임하시옵소서", "호흡이 있는 자
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이런 말로써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면서 찬양드려도 좋습니다. 반드시 큰 소리로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에게만 들리는 작은 소리라도 좋습니다.
만약 인도자라면 회중들에게 말로 찬양하도록 해도 좋습니다. 위와 같은 말들을 회중들이 따라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찬양 팀은 찬양경배 중에 함게 사도신경을 고백
하기도 합니다. 주기도문을 함께 암기해서 말로 찬양드리기도 합니다. 인도자의 아이디어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외침으로 찬양(shout)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시 32:11).
사람들은 즐거우면 소리가 높아지게 마련입니다. 잔칫집이 조용한 법은 없습니다. 축제란 좀 소란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곳곳에는 "외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건
강한 아이는 부모 앞에서 큰 소리를 냅니다. 그러나 병든 아이는 소리를 못 냅니다. 가령 인간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귀찮아할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
니다. 건강해서 하나님 앞에서 외치는 것을 매우 좋아하십니다. 외친다는 것은 즐거움의 표현이요,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건강하다는 표현입니다. 찬양 가운데 자주 외치
십시오. 큰 소리로 "아멘, 할렐루야!"를 외쳐도 좋습니다. "주여!"를 외쳐도 좋습니다. 그러나 분위기를 잘 타면서 외쳐야 합니다. 찬양 가운데 외치는 소리는 국악의 추임새
처럼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 인간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그 기쁨을 참지 못하시고 외치십니다. 스바냐 3:17에 나오는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는 말씀에서 '즐거이 부
르며'는 '린나(RINNAH)의 뜻입니다. 똑같은 단어가 14절에도 쓰였는데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shout)로 번역되었습니다.
인도자는 찬양경배중에 회중들이 외치도록 인도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아멘" 같은 단어를 큰 소리로 외치도록 합니다. 몇 번 반복해서 외치는 훈련을 하면 회중들은 열기
가 올라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움츠려들었던 소리가 풀리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게 자신들의 마음을 열게 됩니다.
②손으로 드리는 찬양
·손을 들고 찬양(Lift)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시 143:6).
전통적인 개신교 예배에서 손을 든다는 것은 매우 쑥스러운 일입니다. 또한 동양사람처럼 표현이 적극적이지 못한 사람에게 손을 들라고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실 우리의 찬양이 찬송가에 묶여 있으면 손을 들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손을 드는 것은 구약의 히브리 민족에게는 기본적인 경배의 자세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출토
된 경배자의 옛 모습은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고 손을 높이 쳐든 모습이라고 합니다.
손을 들고 찬양드리게 되면 몇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에 적극성과 자유함이 생겨납니다. 손을 드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한쪽 팔만 들 수도 있고 양쪽 팔을 모두 들 수도 있습니다.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가슴 정도의 높이에서 들 수도 있습니다. 손바닥을 펴고 팔을 양옆으로 서서히 흔들면서
찬양을 드려도 좋습니다.
어떤 방법이든지 손을 자주 들고 찬양하십시오. 남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아빠에게 손을 들고 나오는 것처럼 하십시오. 그러나 억지로 하지는 마십시
오. 팔이 아프면 자연스럽게 내리십시오.
·악기로 찬양(Play Instruments)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
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시 150:3-5)
모든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 찬양 방법은 주로 악기 연주자에게 해당됩니다. 그러나 노래하는 사람들도 간단한 악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탬버린은 주
로 노래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악기입니다. 노래 팀은 앞에서 직접 악기를 연주하지는 않더라도 한 악기 정도는 다룰 수 있도록 배우는 것이 좋습니다. 악기를 배우면 악
보에 익숙하게 되어 음정을 잡는 데나 음악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윗은 수금이라는 악기를 연주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악기만 연주한 것은 아닙니
다. 다윗은 악기를 치면서 노래했습니다.
·손뼉치며 찬양(Clap)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시 47:1).
손으로 드리는 찬양 중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손뼉을 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잘하면 손뼉을 쳐줍니다. 손뼉은 칭찬과 격려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 사람이
기쁠 때는 자연스럽게 손뼉을 치게 됩니다. 실의에 빠진 사람, 절망적인 사람, 슬픔이 가득한 사람은 손뼉을 치지 않습니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 콤플렉스가 심한 사람도
손뼉치는 일에 인색합니다. 그러나 찬양경배에서는 하나님을 향해 손뼉 치는 행위를 자주 합니다. 또 찬양이 끝난 후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손뼉을 치면 좋습니다.
이때 손뼉은 확실한 끝맺음이 되기도 합니다.
찬양중 손뼉치는 일은 기본적인 리듬을 연주하는 역할도 합니다. 그러므로 박자에 맞게 쳐야 합니다. 박자에 어긋나는 손뼉은 찬양의 흐름에 방해가 됩니다. 간혹 점잖은
분들이 마지못해 손뼉을 칠때면 박자에 맞춰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강박자에 손뼉을 치지만 미국 사람들은 대개 약박자에 손뼉을 칩니다. 약
박자에 손뼉을 치면 강박자에 치는 것보다 더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어떤 박자에 맞추어 치든지 끝까지 쳐야 합니다. 손뼉을 친다는 것은 하나의 리듬악기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에 중간에서 흐지부지해버리면 찬양의 열기가 가라앉게 됩니다. 열심히 손뼉을 치며 찬양하면 점점 더 기뻐질 뿐 아니라 새로운 힘이 솟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손목이 시큰거려서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손뼉을 치며 찬양하시다가 손목에 새 힘이 생겨나서 그 후로는 무거운 짐도 거뜬히 들
어올리게 되셨습니다. 이것은 열심히 손뼉치며 찬양드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부수적인 선물입니다.
③몸으로 드리는 찬양
·서서 찬양(Stand)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여호와의 집 우리 하나님의 전정에 섰는 너희여"(시 135:1-2)
우리에게는 예배는 앉아서 드리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아마 예배는 설교를 듣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구약 성전의 예배는 앉아
서 드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집에 서서 드리는 것입니다.
서 있는 자세는 깨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을 지키는 보초병은 서 있어야 합니다. 높은 사람에게 경의를 표할 때도 서 있는 자세에서 합니다. 영국 왕 조지 2세는 헨
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듣다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만왕의 왕을 찬양하는데 자기가 왕관을 쓰고 앉아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찬양
하는 좋은 자세는 일어서서 드리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찬양드리는 시간에 서서 찬양드리십시오. 그러면 더 자유롭게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억지로 하지는 마십시오. 회중이 자연스럽게 일어설 수 있도
록 해야 합니다. 노약자에겐 일어서 있는 시간이 큰 고통이 될 것입니다. 또 깊은 경배로 들어가게 되면 서 있는 자세보다는 편하게 앉아 있는 자세가 더 좋을 수도 있습니
다.
·무릎꿇고 찬양(Bow)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 95:6).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게 순종하겠다는 표시입니다. 무릎을 꿇는다거나 허리를 굽히는 행위가 주로 동양 문화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서
양 사람들보다는 동양 사람들에게 익숙합니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찬양경배에서는 실제로 무릎 꿇고 찬양드리는 사람을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성경
에는 무릎 꿇고 찬양경배드리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실제로 무릎을 꿇고 찬양을 드리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깊어집니다. 찬양이 하나님께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무릎을 꿇는 행위는 하나님께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방법이 될 것입니다.
몸을 굽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목을 굽혀 절하는 방법, 더 깊이 허리를 굽히는 방법, 두 무릎을 꿇는 방법, 한 무릎을 세우고 한 무릎을 꿇는 방법, 두 무릎을
꿇되 대퇴부를 세우는 방법, 땅에 온몸을 밀착시켜 엎드리는 방법 등. 위의 방법들을 실제로 시도해보십시오. 먼저 혼자서 해보십시오.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거기에는 경
배자의 온전히 겸손해진 내면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노래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강대상에서 무릎을 꿇고 찬양을 드려보십시오. 마이크로 자기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데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앞에서 노래하는 사람
의 이런 자세는 아직 경배 가운데로 뛰어들지 않고 머뭇거리는 회중들로 하여금 빨리 경배로 들어가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춤추며 찬양(Dance)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시 149:3).
춤은 몸으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사용해서 하나님께 찬양드릴 수 있습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삼하 6:1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춤을 출 수도 있는 것입니다. 춤은 육신을 풀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육신이 열리면 마음도 열립니다. 마음이 열리면 영이 열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됩니다.
모든 운동과 군대 훈련의 기본은 구보입니다. 운동장을 몇 바퀴 뛰고 나면 그 다음 단계로 들어가기가 훨씬 쉽습니다. 반도체 신화를 이룩한 우리나라의 S그룹이 그 분야
의 전문 과학자들을 모집해서 처음 시킨 일은 반도체 연구가 아니었습니다. 구보와 행군 훈련이었습니다. 육신적으로 무장이 되면 동시에 그들의 정신도 무장이 됩니다.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정신적, 영적 파급 효과가 큽니다. 그러므로 주일 아침에도 예배드리기 전에 전교인을 운동장에 모아 놓고 한 바퀴 구보를 한 후 예배를 드리면 훨
씬 더 뜨거운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듭니다.
찬양경배에서의 춤은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간단한 몸놀림입니다. 처음에는 조금 쑥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익숙해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앞에서
노래하는 사람들은 간단한 코러스에 동작을 넣어서 회중들로 하여금 그것을 따라 율동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 노리하는 사람들은 안무가 들어간 몸놀림이 아니더라도 코러스의 리듬에 맞추어 유연하게 몸을 놀릴 줄 알아야 합니다. 어깨를 가볍게 흔든다든지, 간단한 스텝을
밟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 뻣뻣하게 서 있는 자세는 회중들로 하여금 경직된 마음을 갖게 할 수 있습니다.
④영으로 드리는 찬양
·높은 찬양(High Praise)
"내가 내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내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시 66:17).
성경에서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지 않는 찬양 방법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66:17의 '높이 찬송', 시편 149:6의 '존영'은 '로맘'이라는 단어의 번역입니
다. 이 말은 영어로는 모두 'High Praise'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찬양 사역자들은 이 찬송이 성경시대에 사용되었던 특별한 찬양 방법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찬양 방법은 사도시대에도 계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엡 5:19)에서 '신령한 노래'가 바로 이런 종류가 아닌가 생각합니
다.
이런 찬양 전통은 끊어졌기 때문에 그 방법이 어떤 것이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대 찬양경배에서 사용되고있는 방법은 악보를 떠나서 자유롭게 노래하
는 찬양 형식을 말합니다. 간단한 멜로디를 즉흥적으로 노래하는 방식입니다. 만약 열 명이 노래한다면 열 명이 모두 다른 멜로디, 리듬, 가사를 갖습니다. 이때 경배자들
은 자유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과 더 깊어지는 친밀한 관계를 느끼게 됩니다.
·묵상 찬양(Meditation Praise)
"나의 평생에 여호와께 노래하며 나의 생존한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인
하여 즐거워하리로다"(시 104:33-34).
시편 104:34의 '묵상'이 묵상 찬양을 의미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33절과 연결해서 보면 34절의 '묵상'은 찬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34절의
'묵상'은 찬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34절이 묵상 찬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묵상으로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소리없이 찬양하는 방법입니
다. 이때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로 들어가게 됩니다. 남녀가 만나서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서로 많은 말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깊어지면 말이 적어집
니다. 눈만 보고 있어도 교제가 됩니다. 묵상 찬양도 이와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묵상의 대상은 방금 노래한 찬양의 가사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성품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고백하며 묵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반주를 할
때 그 반주는 매우 간단한 것이어야 합니다. 간단한 코드 진행이어도 좋고, 멜로디만을 간단히 연주해도 좋습니다. 그것이 악기의 연주를 감상하는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되
기 때문입니다. 복잡하고 음악성이 강조된 연주는 묵상에 방해가 됩니다.
반주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음악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전체 휴지부(general pause)가 찍히는 것입니다. 인도자는 깊은 경배를 드릴 때 음악이 쉬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시간에 크게 역사하십니다. 상한 심령을 치료하십니다. 능력이 부어집니다. 예언의 말씀을 주기도 하십니다.
찬양경배는 앞에서 연주하고 찬양하는 사람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연극이나 영화 또한 보이는 배우들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대에 보이지 않는 스
태프들의 도움이 있어야 한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공연 찬양을 주로 하는 어느 유명 찬양 사역자는 자신이 무대에 서기 위해서 100명 이상의 스태프가 필요하다
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찬양경배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뒤에서 찬양경배 팀을 지원하는 스태프들이 필요합니다. 이 사람들도 찬양 팀의 중요한 구성원입니다. 그러므
로 처음부터 찬양 팀의 일원으로 함께 활동해야 합니다. 그들은 찬양경배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할 뿐 아니라 찬양경배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찬양 팀에 필요한 스태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악보 담당자
찬양경배 팀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은 악보 담당자입니다. 악보 담당자는 악보를 정리하고, 전체 찬양 목록을 만들고 예배에 필요한 찬양곡을 뽑습니다. OHP(Over Head
Project)를 사용하거나, 슬라이드(slide), 또는 멀티비전(multi vision)을 사용할 경우 이런 기계들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OHP나 슬라이드를 담당하는 사람은 코러스의 가사들을 거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순간적으로 다른 코러스로 찬양드릴 때에도 금방 그 코러스를 찾아 비출 수 있는 민첩
성이 있어야 합니다. OHP담당자는 인도자가 찬양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필름을 비추어서는 안 됩니다. 찬양경배 인도자가 그 코러스를 시작하자마자 비춰주어야 합니다.
인도자가 시작도 하기 전에 가사가 비춰지면 회중들이 새로운 코러스에 대한 기대감을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악보 담당자에게는 꾸준함과 성실성이 요구됩니다. 매주 많은 악보를 정리하는 일은 매우 성가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귀찮다고 악보 정리를 미뤄두었다가는 다음
에 예배드릴 때 필요한 악보를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악보 담당자가 불성실하면 전체 찬양경배 사역이 흔들리게 됩니다.
'89년 맨해튼에서, 제가 처음 찬양 사역을 시작할 때 한 자매님이 자청해서 악보와 OHP를 담당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는 4단짜리 큰 파일 캐비닛을 2개 구비해야 한다
고 주장했습니다. 매우 조용한 자매님이었는데 그 주장은 매우 강했습니다. 저는 내심 쓸데없이 큰 캐비닛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했지만 결국 이 자매님이 옳다는 것
을 알았습니다. 이 자매님이 한국에 돌아갔을 때 악보 정리는 한동안 그야말로 엉망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자매님을 통해서 악보를 담당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
닫게 되었습니다.
2)음향 담당자
찬양경배 사역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스태프는 음향 담당자입니다. 음향 담당자를 PA system operator, 또는 sound engineer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는 마이크, 앰
프, 믹서(Mixer), 시이퀀서(Sequencer), 전자 악기를 연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계적인 연결뿐만 아니라 음향까지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독일에서는 이런 전문가
(ton meister)가 되려면 공과대학과 음악대학에서 모두 학위를 받아야 합니다.
현대의 음악은 결국 전자 장비를 통해 출력된 소리가 회중에게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에 음향 담당자의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음악을 잘 연주해도
전자 장치가 알맞게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그 효과가 나지 않습니다. 반면 연주 실력이 좀 부족해도 좋은 음향담당자를 만나면 부족한 실력을 보완해나갈 수 있습
니다.
찬양경배 팀의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그 팀이 사용하고 있는 전자 장비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음향 담당자가 꼭 있어야 합니다. 또 그 음향담당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소
리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음악적 민감성이 있어야 합니다.
3)조명 담당자
조명 담당자가 있으면 좋습니다.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명 담당자가 있으면 찬양 사역을 더욱 빛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배가 시작되면 초반부의 조명은 밝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경배에 들어가서는 조금 어두운 조명이 좋습니다. 하나님과 은밀한 관계를 갖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
입니다. 통성기도를 할 때는 모든 전등을 꺼도 좋고, 설교시간에는 설교자에게 집중하여 조명을 비춘다면 회중들이 쉽게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OHP를 비추어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강단 쪽의 조명을 아주 꺼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앞에서 노래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어둡게 보여집니다. 어두운 얼굴
을 하고 앞에 서 있다는 사실 앞에 서서 노래할 이유가 없습니다. 노래만 하는 것이라면 앞자리에 앉아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조명은 on/OFF로 되어 있는 조명시설보다는 조명 강도를 차츰 줄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조명 장치가 좋습니다. 조명 담당자는 갑자기 어둡게 한다거나 갑자기
밝게 조명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회중들이 거의 느끼지 못하도록 차츰차츰 조명의 도수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찬양경배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물 흐르듯 부
드럽게 흘러갈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악기 나르는 사람, 설비하는 사람도 필요한데, 그것은 모든 악기와 장비를 계속 설치해놓고 사용할 수 있는 교회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큰 교
회라도 찬양경배를 드리는 시간과 전통적인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대부분 다릅니다.
이러한 스태프들로 찬양 팀 후보생을 활용해도 좋습니다. 그들이 강대상에 서서 찬양드리기 전에 훈련의 한 과정으로 악보, 조명, 음향 등을 담당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연습과 훈련 과정에는 찬양 팀과 똑같이 참여합니다. 그러나 예배 때는 뒤에서 스태프의 역할을 하며 선배들의 찬양사역을 배우는 것입니다.
찬양경배 팀은 주기적으로 연습해야 합니다. 연습 시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적어도 주1회는 정기적으로 연습 모임이 있어야 합니다. 그 연습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경배 팀 자체 내의 예배를 통해 자유롭게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다음에 드릴 회중 예배 준비곡을 재연하지 않아도 됩니다. 기본적인 암기곡 등
을 사용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들이 예배드릴 수 없다면 다른 사람들을 예배하도록 만들 수 없습니다. 혹, 회중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해도 자신들이 예배
를 드리고 있지 못하다면 그건 위선이 될 따름입니다.
음악 연습은 모두 함께 참여해서 연습할 수도 있지만 먼저 두 파트로 나누어서 연습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각각 훈련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누어 연습하면 시
간적으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1)노래 팀 연습
복식호흡을 통한 기본적인 발성 연습을 해야 합니다. 예배 찬양곡의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야 합니다. 새 노래를 정확히 연습하고 그 가사를 암기하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2,3부 정도의 화음을 첨가하거나, 대선율을 첨가한다면 미리 연습해야 합니다.
2)악기 팀의 연습
악기 연주자들은 코러스의 리듬을 정해야 합니다. 각 곡의 흐름을 위하여 전주, 간주를 만듭니다. 필요에 따라 악기 독주, 즉흥 연주를 연습해야 하며 어떤 부분에서 어떻
게 전조하고 이조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일정 시간 동안 나누어 연습한 두 팀은 함께 모여 연습을 하게 됩니다. 이때 전체적인 흐름을 민감하게 살펴야 합니다. 가능하면 튀어나오는 부분이 없도록 부드러운 흐름
에 주의해야 합니다.
음악 연습이 끝나면 기도 시간을 갖습니다. 자신의 헌신을 위해서 새롭게 기도합니다. 팀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회중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때때로 찬양경배를 방해하
는 세력들과 영적 전쟁을 벌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찬양경배 팀은 연습 시간에는 물론 실제 예배를 드리기 바로 전 시간에도 함께 모여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 중간에도 수시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배가 끝난 후에
도 함께 모여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으면 더좋습니다.
특별히 기획위원회가 따로 없을 때 찬양 팀은 스스로 기획위원회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찬양경배의 큰 틀을 계획하고, 점검하고, 평가하고, 반성하는 일입니다.
찬양경배의 연습에는 사역 후보자들이 함께 참여하면 좋습니다. 후보자들은 이런 시간을 통해서 실제 찬양경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배울수 있을 것입니다. 때때로 담
임목사가 함께 참석해서 격려해주고 조언해준다면, 찬양경배 팀을 활성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시카고 윌로우크릭 교회의 찬양경배 팀 연습 계획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카고 윌로우크릭 교회의 찬양경배 팀 연습 계획■
●예배 17일 전
기획위원회에서 노래를 선곡하고, 설교 주제의 개요, 음악, 드라마, 기타 다른 요소들을 담당할 사람들을 선정한다.
●예배 11-16일 전
찬양 팀 연습에 사용할 찬양곡의 카세트를 녹음(MIDI로 만든 트랙).
●예배 11일 전
찬양 팀 첫 연습(화요일 저녁). 독창과 중창 연습. 기본적인 연습용 사운드 트랙을 만든다.
●예배 5-10일 전
찬양 팀은 곡들을 암기. 오케스트라 부분을 작성한다.
●예배 4일 전
찬양 팀 두 번째 연습(화요일 저녁). 노래. 악기 총연습. 음악이 다듬어진다.
●예배 1-3일전
주말을 준비하며 스스로 작업.
●예배 전날
제작회의를 연다. 조명, 드라마, 기술, 음악 감독들이 참석, 이때 음악 감독은 기술 감독에게 음악을 조정할 수 있는 정보(독창, 악단 구성,
찬양 팀 마이크 수)를 제공한다.
●예배 및 시간 전
음향 점검. 각 찬양 곡마다 두세 번씩 무대 연습을 한다.
●평가
기획 팀은 그 다음 화요일 비디오 테이프를 보면서 지난 주말 예배를 평가, 비평한다.
찬양경배는 팀 사역입니다.
팀 사역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아무리 조그만 일이라도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동시에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동
일한 목적을 위해서 한마음으로 사역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면 팀 사역은 깨집니다. 그러나 한 지체라는 의식을 갖기 시
작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팀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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