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성서·

가나안 정복시기/수1:11

제이비젼 2014. 6. 2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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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입성하는 것은 오랜 광야 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큰 소망이요 숙원이었다. 그 숙원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통해 성취된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에 있어 첫관문은 요단 강이었다. 현재 요단 강은 매우 작은 하천에 불과하나 당시 요단 강은 작지 않은 강이었고 또한 우기를 맞아 범람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그곳을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쉽게 건널 수 있었고 그것은 가나안 정복이 순조로운 것을 암시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가나안 땅에 첫발을 디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과 근처 성읍들을 멸망시키며 서전을 승리로 장식하였는데 고고학은 그 사실에 대하여 매우 타당한 자료를 제시해 주고 있다. 본강은 그러한 상황들에 대해 고고학적 시야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 고고학적 접근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은 결코 부인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며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임이 증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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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안 땅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기나긴 여정의 역사는 요단 강을 도하하면서부터 시작되어 가나안의 진입으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그 땅 성읍 거민들과의 치열한 싸움과 갈등도 시작되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는 이스라엘의 야심찬 도전과 이 도전에 필연적으로 응전할 수밖에 없었던 가나안 정착민들의 마찰은 수많은 혈전을 야기시켰다. 여리고 성의 탈환과 치열했던 아이 성의 전투, 벧엘 성의 함락 그리고 라기스와 드빌에서의 피비린내나는 싸움 등 가나안의 전쟁은 쉴새없이 계속되었다. 따라서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형국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고고학적 조명이 요청되며 이와 같은 고찰의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성서의 엯적 사실성에 대해 좀더 명확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 요단 강의 수로 문제


 이스라엘에 있는 요단 강은 그 폭이 일정치 않은데 그 좁은 곳이 건강한 성인 정도면 뛰어서도 건너갈 수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요단 강이 당시 구약 시대에 이런 좁은 곳을 건넜다면 가나안 입성 당시의 이스라엘의 도하 이적 사건이 현대인에게는 한낱 웃음거리로 전락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가나안 입성시의 이스라엘의 요단 도하와 수로의 문제를 살피는 일은 중요한 작업이다.


 1) 요단 강의 구조

 오늘날 공중에서 측정한 요단 강의 길이는 발원지에서 사해까지 직선 길이가 약 130㎞를 남짓하다. 그러나 강의 실제 길이는 갈릴리와 사해 사이의 구역간 길이인 약 104㎞ 지역으로서 전형적인 사행천을 이루어 흐르고 있기 때문에 320㎞가 넘는다. 요단 강을 이루고 있는 수원은 헤르몬(Hermon) 산의 나르바니아스9Nahr Banias)와 나르 엘레단(Nahr el-Leddan) 나르 하스바니(Nahr Hasbani) 그리고 레바논과 헤르몬 산 계곡의 나르 바레이그힛(Nahr Bareighit) 강이다. 구간중 사행천을 이루고 있는 지역에서는 폭이 약 27-30m이고 깊이는 약 0.9-3m 정도로 물살이 무척 빨라서 곳곳에 급류와 소요돌이가 있다.

 

 2) 요단 도하의 시기

 요단 도하의 시기에 대하여서는 수3:15에 의하면 '모맥을 거두는 시기'로 나타났는데 이때는 '물이 넘치는 시기'라고 한다. 아열대 기후인 여리고 지역은 태양력으로 3-4월경에 밀과 보리를 수확한다. 이때는 늦은 비(봄비)가 내리는 우기에 속하여 비가 많이 오며, 또한 헤르몬 산의 눈이 녹아 흐르는 시기이므로 요단 강의 물은 넘치게 된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요단 강의 넓이가 30m 이상이 되고 깊이는 3-4m로 물살 또한 매우 빠르기 때문에 아무리 좁고 얕은 여울목이라도 걸어서 건너는 것이 불가능하다.


 2. 여리고 성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


 1) 여리고의 위치

 ① 구약 시대의 여리고

 고고학에 의해 드러난 여리고 성은 위치나 구조상으로 적에게 쉽게 점령될 수 없는 요새였다. 구약에서의 여리고(Jericho)는 요단 강에서 서쪽으로 약 8-9㎞ 정도 떨어지고 길갈에서는 북서쪽으로 약 3㎞ 정도, 사해에서는 북방으로 약 12㎞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약 30㎞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여리고는 지정학적 고창지대이고 가나안의 첫번째 관문이면서도 교통의 요지이며 고지대이면서도 오아시스를 지닌 전략상의 요새였다. 그렇기 때문에 요단 강을 막 건넌 이스라엘에게 있어 이 여리고 성읍은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반드시 점령해야 할 성읍이었다. 이곳의 현재 위치는 텔 에스 술탄(Tell es-Sultan) 지역이다.

 ② 신약 시대의 여리고 

 신약의 여리고는 구약의 여리고보다 남쪽으로 약 1.6㎞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신약 시대 여리고의 현재 위치는 툴룰 아부 엘 알라이크(Tulul Abu el-Alayig)이다.


 2) 여리고의 이중 성벽 구조

 여리고 성의 구조에 대한 논쟁점은 주로 성벽에 관한 것들이다. 여러 학자들 중 가르스탱(J. Garstang)과 캐드린 케년(K. Kenyon)에 의해, 여리고 성벽의 구조는 벽돌 성벽으로서 이중으로 되어 있다고 밝혀졌다. 가르스탱은 주전 15세기경의 지층(D성읍(을 발굴하여 높이 9m, 두께 1.8m인 외벽과 높이 9m, 두께 3.6m의 내벽을 발굴하였다. 이 구조물이 파괴된 파편을 조사하면 큰 지진과 화재로 인해 멸망되었다고 한다. 한편 캐드린 케년에 의하면 가르스탱이 발굴한 D 성읍의 성벽은 주전 3000년대의 것으로 판정되었다. 언덕의 정상에 있는 여리고 성은 바깥 부분의 방어용 석벽을 3-4m 높이로 쌓았으며, 그 성벽은 여리고 성쪽으로 약 35°정도로 기울어지게 축조되었다고 한다. 이 두 발굴자의 연대 측정은 서로 상이한 면이 있지만 성읍이 파괴된 동기와 성벽의 이중 구조에 대한 강조가 서로 일치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3. 아이(Ai) 성과 벧엘(Bethel) 성의 괴멸


 1) 아이와 벧엘의 위치

 여리고와 더불어 가나안 중부 지역의 방어벽으로 이스라엘이 반드시 점령해야만 했던 아이와 벧엘은 당시의 파괴된 정도가 너무나 심했던 나머지 '폐허'며 '무더기'라는 지명의 뜻이 시사하는 바 그대로였다. 두 성읍 중 아이 성의 위치는 여리고(Kericho)에서 북서쪽으로 약 21㎞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벧엘에서는 남동쪽으로 약 3.2㎞ 정도 떨어진 곳이었으며, 현재의 엣 텔(et-Tell)이 위치한 곳으로 여겨진다. 벧엘은 아이 성에서 남동쪽 약 3㎞ 정도 떨어진 곳이며 현재의 텔 베이틴(Tell-Beitin) 지역이다.


 2) 아이 성과 벧엘 성의 고고학적 발굴

 아이 성에 관해 가르스탱은 후기 청동기 시대의 도기 조각을 통해 그 멸망 시기를 여리고 성과 동시대인 주전 1400년경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벧엘 성에서는 여호수아 정복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갈라진 성벽과 불에 탄 재 약 1.7m 두께로 쌓인 무너진 벽돌더미와 파괴된 가옥 등이 발굴되었다.


 본강을 통해 모압 평지에 전열을 새롭게 갖추고 요단을 도하했던 이 스라엘의 가나안 입성에 관한 성서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고고학적 접근을 개괄적으로 시도해 보았다. 이와 같은 작업은 가나안 땅에서의 마찰과 갈등의 역사에 대해 성서의 증거들을 입증하고 그 기록들의 진실성과 역사성을 밝혀주는 작업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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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대 도시의 성벽과 방어용 망대


 1) 역사

 고대인들의 거주 생활에 있어서 도성의 요새화보다 더 절실하고 시급했던 문제는 없었다. 도성의 요새화는 곧 고대인에게는 그들 자신의 안전을 담보해 주는 작업이었다. 페르시아와 그 후시대 즉 B.C. 6세기에는 모든 도성들이 요새화되지는 않지만 그 전대(前代)인 동기(銅器)와 철기(鐵器) 시대에는 도성의 요새화가 거의보편적이었다. 도성의 요새화는 성읍 주위에 구조물들을 구축함으로 이루어나갔고 시대에 따라서 각기 다른 형태와 양식을 가졌다. 성경에 있어서의 최초의 요새는 성벽이었으며(창4:17; 수6:1-5,15; 수10:2,19,28,39; 수11:12), 도시나 성읍의 전면(全面)에는 벽을 둘렀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공격하며 행군했던 그 시대 B.C. 1400-1200년경)의 가나안 거주지들과 도성들도 깊고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져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 성벽들은 돌로 기초를 놓았으며 그 위에 벽돌로 기초를 놓았으며 그 위에 벽돌로 건축하였다. 통일왕국 시대(약 B.C. 1000-930)인 다윗과 솔로몬 때에 이르러서는 요새가 포안(砲眼)을 가진 구조로 건설되어졌다.

 2) 형태

 이 요새화된 포안 형태는 어떤 특정 도성들에 제한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형태는 네게브(Negev) 같은 곳에서 무역로를 지키기 위해 설계된 전초기지로도 사용되었다. B.C. 930년경 솔로몬이 사망하고 이스라엘이 남북왕국으로 분열되었을 때 북쪽 왕국은 곳곳에 견고한 성벽을 쌓아서 방어하는 옛날 방법으로 되돌아갔다. 이 성벽의 유적들은 단(Dan), 하솔(Hazor), 므깃도(Megiddo) 등지에 아직도 남아 있다. 이 성벽들의 형태는 직선 형태가 아닌 굴곡이 심한 형태로 지어졌다. 이렇게 굴곡이 심한 성벽은 당시 공격용 무기였던 공성퇴나 사다리를 가진 군인들과 성벽을 굴착하려는 군인들과 성벽을 굴착하려는 공격을 방어하기에 도움이 되었고 상대군을 공격하기에도 용이하였다.

 2. 북쪽 도성 하솔(Hazor)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당시 파괴된 도성들은 가나안 중남부지방에 위치했던 여리고 성과 아이와 벧엘, 그리고 라기스와 드빌 등지뿐만 아니라 북쪽 지역에 위치했던 하솔 등의 도성들도 있었다.

 1) 하솔의 위치

 하솔은 갈릴리 바다에서 정북쪽으로 약 20㎞ 지점에 있었는데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언덕으로 주위의 평지보다 약 40m가 높으며 넓이가 약 0.7㎢(길이 1000m, 폭 700m) 정도되는 넓은 언덕이다. 언덕의 남쪽 부분을 윗성이라 하고 북쪽의 약간 낮고 넓은 부분을 아랫성이라 구분해 부른다.

 2) 하솔의 역사

 하솔은 B.C. 300년경부터 도시가 건설된 이후로 21회에 걸쳐 새 도시가 섰다. 하솔이 가장 번창했던 때가 B.C. 18-13세기의 가나안 시대였다. 이 가나안 시대 동안에는 여러 가나안 도시 중에서도 하솔이 가장 중심되는 도시였으며 하솔의 윗성과 아랫성을 다 사용할 만큼 성의 범위가 넓었다(수11:10). B.C. 13세기 중엽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바로 이곳 하솔을 점령하고 불살랐다(수11:13).

 이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사용했던 지역은 주로 남쪽의 약간 높은 부분인 윗성이었다. 지금까지 발굴한 곳이 14곳인데 성경과 관계되는 중요 부분은 주로 윗성에 있다. 사사 시대에는 드보라와 바락이 이곳에 살던 가나안 민족의 군대를 이스르엘 계곡에서 크게 이겼다(삿4장). 하솔의 윗성에 남아 있는 성문은 솔로몬 시대의 건축물이며, 하솔의 솔로몬 성문은 그 구조가 므깃도나 게셀의 것과 같다. 성문 남쪽에 두 줄로 돌기둥이 서 있는 방은 오므리 왕 시대에 저장실로 쓰던 곳이다. 오므리 왕 때에 이곳에 견고하게 성을 지었는데 약 100년 만인 여로보암 2세 때에 있었던 지진(암1:1)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리고 북방국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될 때 하솔 또한 아주 파괴되어 버리고 말았다(왕하18:10-20).

 오늘날 하솔 언덕의 길 동쪽에 있는 키부츠(Kibbutz Ayelet Hashahar)에는 '하솔 박물관'이 있어서 이곳 하솔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3) 고고학적 발굴

 하솔의 유적은 1926년에 가르스탱(J. Garstang) 교수와 이가엘 diels(Yigael Yadin) 박사가 이끌었던 이스라엘 발굴대에 의해 발굴되었다. 유적지는 여러 지층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중에서 위에 있는 도시는 B.C. 5세기경의 것이었고 언덕 밑에 있는 유적지는 B.C. 10세기경의 것이었다. 이 유적지보다 더 낮은 지역의 다른 유적지에서 화재 흔적인 재를 발견했는데, B.C. 1400년경에 일어난 사건에 의해 소실된 것이었다. 하솔의 파괴는 북쪽에서의 전쟁이 애굽의 19대 왕조(B.C. 1314-1194)가 몰락하던 당시에 발생했음이 고고학적인 발굴 작업에 의해 증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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