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모더니즘을 수용하는 일부 신학자들 가운데는 예수의 절대성이나 유일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근거인 예수의 절대성을 거부하는 신앙은 신앙의 정체성을 상실하기 때문에 이미 심판받음이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그들은 예수의 죽음이나 부활에 대하여 그들의 짧은 지식으로 하나님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모호한 논리로 자신들의 지성과 과학의 한계 속에 갇혀진 해석을 하면서 논리를 펴나간다. 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이제까지 전통적인 신앙고백 안에서 살아온 기독교가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제대로 기능을 다할 수 있느냐 하는 물음이다. 즉 이 말은 전통적 신앙고백을 부정하는 작업이라 볼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탈현대의 예수의 이해 중 절대성, 죽음, 부활, 중보자를 설명하면서 기독교가 탈현대의 사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의 가이샤라 빌립보에서의 신앙고백은 2000년 기독교 역사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되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올바로 인식하고 신실한 신앙고백을 할 때에나 비로소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신앙의 견고한 토대인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부정하는 것은 이미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그래서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서는 예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소개하고 평가하고자 한다.
1. 예수의 절대성(딤전2:5)
포스트 모더니즘을 수용하는 일부 기독교 신학자들은 예수의 절대성과 유일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의 포스트모던신학자 마크 테일러(Mark Taylor)의 주장에 따르면 성육신 사건은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에게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초월자인 하나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이 사라지고 신과 세상이 완전하게 결합하는 것을 상징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이 고백해 온 하나님의 구속사적 속성에 나타난 예수의 절대적 사랑과 그 고난의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성육신 사건의 절대성은 하나의 상징적 의미를 표현키 위한 신화로 치부되고, 기독교 신앙의 근거(마16:16)는 철저하게 해체되고 있다. "예수는 멸망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라고 시인하고 고백함(요11:27)은 구원을 얻는 데 있어서 필수 조건이며, 예수의 절대성을 거부하는 신앙은 정체성(identity)을 상실한 심판받음 그 자체이다.
2. 예수의 죽음(롬3:25)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값을 치뤄야 할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온 인류가 지은 죄의 값을 치루기 위하여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다. 이 사실을 시인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예수는 살아서 진리를 가르치고 구원을 선포하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죽음을 통해서까지 메시야 되심을 보여 주셨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철학의 언어를 통한 관점에서는 예수의 죽음은 하나의 언어의 사건으로 본다. 즉 예수는 죄가 없었으나 타인을 위하여 죽었다고 '말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의 죽음은 인류를 위한 희생이었다거나 남의 죄값을 대속했다는 신앙고백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예수그리스도는 인류에게 하나의 교훈이나 상징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희생당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하여 드러난 사랑의 참 뜻을 축소시키고 왜곡하는 해석 방식이다. 그것은 포스트모던신학자들의 신앙 가운데 예수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에 나타난 커다란 범죄 현상이다(고후13:5).
3. 예수의 부활(행2:24)
메시야이신 예수의 죽음이 인류의 죄를 사하는 대속의 사건이라면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과 예수의 승리, 영광을 나타내며 그로부터 약속된 성도들의 부활과 영광을 대표하는 큰 사건이다.
죽음이 어두운 세력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을 성도들에게 준 것이 예수의 부활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예수가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 사건의 의미를 깨달아 예수의 부활을 시인하고 고백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명확한 예수의 부활 사건에 대하여 탈현대(post-modernism)의 신학자들은 모호한 논리로 예수의 부활은 한 개인의 부활이 아니었다고 해석한다. 그들이 예수의 부활을 보는 관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부활의 주체가 하나님이고, 예수의 부활을 하나님의 정의가 실재함을 확인하게 한 사건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또한 예수의 육신 부활을 믿는 성도들도 심판날에 예수처럼 부활하리라고 하는 소망과 믿음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 역시 예수의 죽음처럼 상징적인 사건으로 해석된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에서 비록 거부되었지만 만고 불변의 정의라는 주장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부활하신 예수가 제자들 앞에 다시 나타났다는 것을 2000년 전 문명이 미발달된 상황에서 설명 가능한 현상으로 그려냈다는 전제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한 전제 위에 대속의 주님, 부활화신 주님, 재림의 주님 등은 상징(symbol)이고 기호(code)라고 해석한다.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찾는다. 예수께서 자신의 부활 사실을 예언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고(요20:19-23) 그 이후 2000년간의 기독교회의 역사는 사람이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부활시킨, 하나님의 구원 사역으로 믿고 증거하는 역사였다(행2:36; 고전15:22,23).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설명 불가능한 초월적 사건인 성육신과 오류라고 규정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한계 안에 갖힌 모습이다. 그들이 짧은 지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서 천지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사건인 부활의 사건이 결코 부정되거나 왜곡될 수 없는 것이다(고전15:15-17).
포스트모던신학의 주된 관심은 이제까지 고백해온 기독교 신앙의 내용들이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을 다할 수 있느냐 하는 물음에 있다. 그 물음에 대해 그들은 '아니다'라는 대답을 가지고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의 고백들을 부정하는 신학 작업을 하고 있다. 예수의 대속과 부활 사건은 인간의 지식과 관점으로 이해되지 아니할지라도 그 진리성이 췌손될 수 없는 하나님의 사건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예수그리스도'라는 중보자적 존재는 그들에게 중요한 관심이 아니다. 중보자 없는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 관계와 인간과 인간의 수평적 관계, 자연의 종속적 관계성에 대한 탐구가 탈현대신학의 주된 관심이다. 이러한 관심들 중에 예수그리스도라는 하나의 사건이 있을 뿐이다. 이제까지의 '유일회적'이고 결정적인 구원 사건의 주인공이신 중보자 예수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언어 사건 혹은 하나님 역사의 상징으로서의 십자가와 예수가 남는다는 것이다.
참된 진리는 현대의 물질 과학 시대에도 변화되지 아니하고 현대의 사상과 조류 속에서도 본질적인 진리 그 자체 그대로 스스로 지켜지는 것이다.
Ⅰ. 용어 해설
1. 메시야(히) Messiah)
성경에서 구세주를 가리키는 말. 히브리어로 '기름부음받은 자'를 듯하고 그리스어로 그리스도의 어원이 된 Christos이다. 구약에서 기름부음을 받고 왕위에 오른 이스라엘의 왕을 메시야라고 부르다가, 장차 나타날 왕으로서의 '구세주'에 대한 기대로 메시야에 대한 예언들이 나타난다. 신약에서는 그 대망의 메시야가 예수그리스도임을 명시한다.
2. 성육신(聖肉身; incarnation)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을 띠고 나사렛 예수라고 하는 역사적 인물이 된 일. 이는 예수그리스도가 신인(神人)이라는 것을 뜻한다. incarnation이라는 말은 라틴어 caro(肉)에서 유래한 것으로 육신을 입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또 말씀(logo")이 육신을 입음에 의해 인간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신적인 본성과 인간적인 본성이 결합하게 되는 것이나, 여기서 그 결합의 완성은 궁극적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짐으로써 인류를 구원한다는 십자가 사상과 결합될 때 이루어진다.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고 하는 것은 이 성육신에 근거한 것이다.
3. 초월성(超越性; transcendence)
내재(內在)와 반대되는 말. 일반적으로 무엇을 넘어서 있는 것을 뜻한다. 초월은 인간으로서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에의 소극을 말한다. 형이상학이나 신학에서 절대자, 즉 신(神)을 초월적인 것으로 복 스콜라철학에서 초월적이라는 뜻은 제한이나 불완전성을 넘어선 완전함을 가리킨다. 그리고 소극신학(消極神學)이나 신비주의(神秘主義)에서는 이해를 넘어서 있는 것을 말한다.
칼 바르트(Karl Barth)파는 초월을 자연적 인간에서 소외되어 있는 상태로, 칸트(I.Kant 1724-1804)는 가능적 경험을 넘어서 있는 것으로, 실존철학의 하이데거(M.Heidegger 1889-1976)는 모든 존재자가 세계 일반으로, 존재 그 자체로 넘어가는 것으로 칼 야스퍼스(K.Jaspers 1883-1969)는 대상적(對象的)인 것을 넘어 비대상적인 것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이해한다.
4. 신성(神性; divinity)
신은 영원하여 시작과 끝이 없고 전지·전능·전선(全善)·무한한 속성을 지닌 존재로서 이러한 그의 성품을 신성이라 한다.
모든 종교가 저마다 다른 입장에서 신을 내세우고 있으므로 신의 성품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독교에서의 신은 위와 같은 속성들을 지니며, 유일신으로서 실재하는 힘으로서의 인격성(人格性)을 가진다. 이와는 달리 철학의 신은 생겼다가는 사라져 가는 이 현상적(現象的)세계에 있어서의 불변부동의 원리이며 이념이라고 한다.
5. 정체성(正體性; identity)
변하기 전의 본래의 참된 형체(形體), 고프만(E.Goffman 1922-1983)은 정체란 자신의 행위를 어느 정도 구성하는 상황하에서 어떤 독자성을 표현·성취하고자 하는 개인의 시도라 하였다. 그는 가상 자아(virtual self)와 사실 자아(actual self) 사이에 존재하는 개인적인 것으로 정체를 설명하였다. 가장 자아란 개인적 특성들이 관련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자아를 말하며, 사실 자아란 주어진 위치 밖에서 그에 관하여 알려질 수 있는 것들로 구성된 자아를 말한다. 행위란 가상 자아와 사실 자아 간의 긴장으로부터 온다.
Ⅱ. 보충 자료
예수의 칭호
1. 그리스도(Cristo"; 크리스토스) : 이 칭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의 히브리어(hvm; 마솨하)를 희랍어로 번역한 것으로서, 요1:41, 요4:25에는 히브리어를(ajvm; 메나아스)라고 음역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 용어는 '직함'으로서의 효력을 지닌다는 데 일치한다.
2. 주(kurio"; 퀴리오스) : 초대 교회에서 세례시 사용하던 이 용어는 고백의 일부이다. 유대기독교인들에게 '주'라는 칭호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 및 하나님과 동등함을 나타내는 말이 된다.
3. 인자(o uio" tou anqrwpou; 휘 오스투 안드로프) : 공관복음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 칭호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천상적 인물에 대한 개념과 세상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묘사되고 있다.
4. 하나님의 아들(uio" tou qeou; 휘오스 테우) : 구약에서 사용된 이 칭호(창6:2)는 '천사'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복음서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사용하고 있으며 그가 하늘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주장한다(막1:1; 요1:14).
5. 야훼의 종(doulo"; 돌로스) : 이 개념에는 '인자'와 같은 성격으로 종국에는 승리와 함께 수난과 죽음도 겪게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6. 말씀(loro"; 로고스) : 요한복음 외에 로고스가 그리스도의 칭호로 사용되는 것은 요일1:1과 계19:13로서 '선재하는 창조적 활동력'과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를 나타낸다.
7. 구주(swthr; 소테르) : 하나님의 아들 및 메시야와 함께 기본적 칭호로 간주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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