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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강해설교 발전시킨 F.B. 마이어

제이비젼 2014. 6. 6. 10:15

 

 

 

강해설교 발전시킨 F.B. 마이어

자료원: 교회와신앙

 
전설적인 설교자들을 연구하다 보면, 가슴 벅찬 감동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는 시공간적으로 그들과 함께 호흡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설교문을 통해 그들의 생생한 영성을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그 시대의 청중으로 되돌아가 본다는 것은 참으로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물별 설교에 관해 전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F. B. 마이어(Frederick Brotherton Meyer)도 설교의 거장으로서 충분히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마이어는 노스필드, 케직, 포트스튜어트에서 집회 연사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위엄 있는 용모를 지녔고, 인정 많은 목회자였다. 또한, 늘 부지런하여 수많은 작품을 저술했다. 그를 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새로운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

 

명설교자 F. B. 마이어의 탄생과 영향력
독실한 침례교 가정에서 태어난 마이어 목사는 어릴 때 이미 기도와 헌신의 의미를 배웠다. 퀘이커 교도인 할머니는 그에게 풍부한 영적 유산을 전해주었다. 할머니의 절제되고 거룩한 삶은, 마이어에게 심오하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주었다. 마이어는 신앙과 관련한 자신의 가정 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간의 마음 배경 속에 기독교 가정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면, 어떤 상실이나 슬픔, 실망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모든 삶은 클래팜에서의 어린 시절과 관련된 사랑스런 연상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체스터만(A. Chester Mann)의 F. B. Meyer: Preacher, Teacher, Man of God에서>.

 

마이어는 소년시절에 설교자가 될 것을 결심했다. 어느 날 아침, 그가 양친과 함께 주일예배에 참석했을 때, 담임목사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언젠가 이 통로의 끝에 서서 내가 지금하고 있는 것처럼 똑같이 사람들과 악수하게 될 거야.” 이 말씀은 예언으로서 그대로 이루어졌다.

마이어는 열여섯 살 때 처음으로 설교했다. 하지만, 설교 연습을 한 것은 훨씬 이전이다. 어린 시절, 그는 동생들을 청중으로 삼고 곧잘 설교했다. 심지어는 하녀가 어린 마이어의 설교를 듣고,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깨닫기까지 했다. 그 후 하녀는 어린 마이어가 동생에게 했던 설교를 듣고 회심하게 되었음을 간증했다.

 

마이어는 레전트파크 칼리지와 런던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869년에 그는 런던 대학교에서 문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설교를 했던 마이어는 듀크가(Duke Street) 침례교회 목사로 시무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리버풀에 있는 펌브로크 교회의 부목사가 되었다. 거기서 마이어는 존스(Jane E. Jones) 양과 결혼했다. 그 후에도 여러 교회에서 청빙을 받았다.

 

1872년에는 요크에 있는 프라이오리티가(Priority Street) 침례교회 목사가 되었다. 그는 당시, 전도여행 차 잉글랜드에 방문한 무디(Dwight Lyman Moody)를 만났다. 그때 두 사람은 친밀한 친구가 되었다. 교제가 거듭될수록 무디는 마이어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마이어는 무디의 영향을 받고, 순회설교 계획을 세웠다. 마이어는 무디가 노스필드에서 개최한 영적 각성대회에서 여러 해 동안 인기 있는 설교자였다.

 

1888년, 그는 런던 레전트 파크 교회의 청빙을 받았다. 그는 여기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 목회를 시작했다. 4년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목회지로 간주하는 람베드의 그리스도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그리고 목회 말년을 리젠트파크 교회와 그리스도 교회에서 보냈다.

그 밖에도 마이어는 복음전도자, 사회사업가, 활동적인 저자로 활동했다. 1904-1905년까지 전국자유교회연맹 의장을 지낸 후 이 단체의 선교책임자로 활동했다. 그리하여 남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 대한 선교를 주도했다. 마이어는 순회설교자로서 설교를 통한 전도를 쉬지 않았다. 그리하여 유럽, 미국, 캐나다, 자매이카, 호주, 중동 등지를 방문했다.

이와 함께 마이어는 사회적 불의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그는 이른 아침, 감옥 밖에서 석방된 죄수들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릴 때가 많았다. 그들에 대한 관심은 교도소자선협회 설립으로 이어졌다. 마이어 목사는 석방된 죄수들을 격려하고, 그들이 체류할 수 있는 장소와 일거리를 마련해 주었다. 이런 사역을 통해 약 6천 명의 죄수들을 만난 것으로 추산된다. 그는 또한, 레스터에 고용불가능한 사람들의 자조(自助)에 역점을 둔 유리창 청소대를 결성했다.

 

또한 금주운동에도 사회적 관심을 보여, 살롱들을 폐업시키는데 효과적인 운동을 주도했다. 때로는 매춘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도 시도했다. 마이어와 동료들은 여러 해 동안 약 500 여 개의 사창가를 문 닫게 했다.

이처럼 마이어는 설교뿐 아니라 사회문제에 직접 관여함으로써 개혁운동을 감당했다. 그는 정치가이자, 시의원으로서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다방겸 클럽회관을 설립했다. 특히, 미혼모를 돌보고 고아들을 양자로 입양시키는 일에 앞장섰다. 무엇보다 가난한 자들에게 거처를 제공해주고, 노동 조건을 개선시키며, 금주를 촉진시키기 위한 협회들을 조직했다.

 

마이어의 생애에서 사회 활동과 관련된 것 중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도전자 미국인 흑인 잭 존슨과 영국인 챔피언 봄바디르 웰즈와의 헤비급 타이틀전을 중지시키려는 노력이었다. 1911년 봄, 런던에서 개최될 예정인 이 시합을 마이어는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는 이것을 ‘야만적인 전시회’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결국 대중들을 선동하여 시합을 중단시키는 데 성공했다.

 

마이어의 사회적 관심은, 영적인 기초를 결여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의 일차적인 관심은 인간의 전인적 구원에 있었다. 마이어는 사회적인 병약자들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해 주고, 그들이 그리스도 신앙과 연결되는 것을 보기 원했다. 그의 훌륭한, 정신은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자유교회협의회 집행위원회는 그가 어떤 존경을 받았는지 다음과 같이 지적해 주고 있다.

“그(마이어)의 경건성과 비세속성, 종교적, 사회적, 도덕적 대의명분에 대한 대담한 투사 정신과 깊은 인간적 동정심은 그의 봉사가 하나님 나라를 촉진시키는 데 말할 수 없이 귀중한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풀러튼(W. Y. Fullerton)의 F. B. Meyer에서>.

마이어는 1875년 이래 해마다 일주일간 케직에서 개최된 복음주의 그리스도인 세계대회인 ‘케직 컨벤션’(Keswick Convention)의 명설교가 중 한 사람이었다. 케직 대회는 성공회 복음주의자를 비롯해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침례교회 등 목회자 7천 명이 전 세계에서 모인 대규모 영적 각성 집회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캄를 목표로, 기도와 성경 연구를 힘쓰며 명설교가들을 초청해 은혜를 받는 대회다. 마이어 목사는 이곳에서 수많은 설교를 했고, 이것이 케직 설교로 발간되었다.

 

천부적인 전달 능력을 지닌 설교자
마이어 목사는 60년 목회 기간 중 1,600편 이상 설교했다. 그의 설교는 강해설교 양식을 지니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설교들은 대부분 경건주의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 조용한 설교자는 대체로 청중의 심령을 자극하는 데 익숙지 않다. 그러나 마이어는 청중을 감동시키는 데 천부적인 재질을 보였다.
마이어는 설교에서 놀라운 자제력을 보이기도 했다. 얼핏 보기에 마이어의 설교는, 대부분의 위대한 설교자들이 지닌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두고, 흔해 빠진 설교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의 인격은 단순한 언어를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따라서 수많은 청중에게 감정적이며 감동적인 설교로 다가갔다. 그의 설교는 저항할 수 없는 호소력이 있었다.

 

마이어의 설교가 청중에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은 ‘확실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설교는 너무도 확실하기 때문에 논쟁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현대 사회의 고민스런 문제점에 대해, 그는 기독교인이 자연스러운 확신을 갖도록 명쾌하게 설명했다.

무엇보다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은, 마이어가 의사전달에 천재성을 지니고 있다고 느꼈다. 휴 싱클레어(Hugh Sinclair)는 그의 천재적인 의사전달 능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설교는 너무도 단순하고 친숙했기 때문에 청중들은 기교를 거의 간파하지 못했다. 그러나 설교자들은 그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언어와 사상을 다루고 있으며, 자신의 인간적인 한계들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휴 싱클레어(Hugh Sinclair)의 Voices of To-Day에서>.

 

마이어는 오랜 시간 설교를 준비했다. 그는 목회 초창기에, 존 헨리 조웨트의 주석 방법을 본받았다. 설교 원고를 작성할 때 꼼꼼하게 모든 단어들을 상세히 기술했고, 모든 행을 교정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마이어에게 적합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이 방법을 포기했다.

마이어가 발견한 새로운 주석 방법은, 주의 깊은 본문 연구를 시도하면서 주제에 대한 다양한 서적들을 읽으면서 통찰력을 얻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본문의 의미를 상세하게 부각시킬 수 있었다. 그 후 마이어는 본문의 의미를 더욱 확연하게 드러낼 보충적인 연구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처럼 새로운 설교법이 정착되자, 놀라운 결과가 생겨났다. 청중들이 설교에 집중하면서 메시지가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했다. 또한 면밀한 주석 과정과 자연스러운 예화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청중에게 전달되었다. 이는 마이어 설교의 특징적인 양식이다.

 

마이어의 설교론

 

1.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
기독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종교다. 과거 로마 제국의 탄탄대로들은 제국의 변방에서 일곱 언덕의 도시, 즉 로마 중앙의 황금 지표를 향해 집중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모든 설교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속주를 향해 도달해야 하며, 그것을 최고 목표로 삼아야 한다.

마이어 목사는 그 누구보다 이런 원칙에 충실한 설교자였다. 그는 목회의 최종 목표는 십자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어는 그리스도를 교사, 예언자, 기적을 행한 사람 또는 사회 개혁가로 보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설교할 때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증거했다.

그가 그리스도 중심적인 설교를 한 이유가 있다. 도덕적인 설교로는 구속자의 사랑에서 나오는 성품을 효과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그의 교회론과 직결된다. 진정한 교회는 죽음의 권세를 가진 자를 멸하고, 속박에 얽매었던 생명을 구원하여 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기초를 깊이 박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마이어에게 있어 설교의 주제는 늘 예수 그리스도여야 함을 강조했다. 설교자는 설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만큼 반영되었으며, 얼마만큼 그를 드러내 줄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설교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은, 청중이 일주일 동안 풍부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광산을 발견케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보았다.

 

2. 성령의 도움을 구하는 설교
마이어는 설교를 성령께서 자신의 종들과 합동 작전을 펴시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에 대한 그의 설명이 재미있다.

“커다란 나무를 톱질할 때 두 사람이 켜는 것은 일을 매우 수월하게 만듭니다. 한 사람은 위에서 톱질하고, 다른 사람이 밑에서 톱질하여 서로 보조를 맞추어 가면서 합동 작업을 하면 손쉽게 나무를 자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목사도 성령님과 합동 작업을 펼치는 것입니다.”

 

마이어는 목회자가 성령의 협조자로서의 도우심을 받을 때 몇 가지 지켜야 할 조건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첫째, 목회자는 영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적인 인간, 즉 지나친 야망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영적 능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에 대해 성령은 부활하시고 영광 받으신 주님께 순종하는 자에게만 부어진다는 사도들의 주장을 제시했다.

둘째, 목회자는 오직 예수님의 영광만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령의 중요한 목적은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성령은 무한한 겸손을 가지고 자신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후퇴시키고 있다. 목회자는 성령과 동일한 목적을 위해 오직 자신을 경주하지 않은 한, 성령은 자신을 계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셋째, 성령의 능력은 하나님 말씀의 줄을 따라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마치 전깃줄을 통해 전기가 흐르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그는 목회자의 설교에 성경이 많이 등장할수록, 하나님 말씀의 진의를 더욱 잘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3. 강해설교를 적극 시도
마이어는 여러 설교 방식 중 강해설교를 주장했다.
“강해설교처럼 성경을 존중하고, 진리를 드러내 주며, 교인들로 하여금 온 정신을 성경에 몰두하게 하는 과정이 없다. 지난 날, 교회에 영향력을 미친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거의 모두 이런 방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오늘날에 그 깊이가 더 깊어지고, 생수가 흘러가며 소금 땅이 소성케 됨을 얻게 하는 강해설교라는 비결이 있다”(F. B. 마이어, <강해설교의 계획과 방법>에서).

마이어는 강해설교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
“강해설교는 성경 속의 비밀을 파악할 수 있으며, 그 정신이 설교자의 심령 속에 들어오기까지 설교자가 머리와 마음과 두뇌와 근육을 총동원하여 이에 대해 생각하고, 울고, 기도한 뒤 성경의 어느 한 책이나 또는 보다 확장된 부분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취급하는 방법이다”(F. B. 마이어, <강해설교의 계획과 방법>에서).

 

그는 강해설교의 다섯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중심적인 교훈이나 주제를 파악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읽으라.
둘째, 그 내용을 커다란 원칙에 의해 분류하라. 그리고 세밀하게 분류하라. 그러면 모든 문단이나 장절 하나하나가 각기 완전한 시상을 포함할 수 있을 정도까지 분류될 것이다.

셋째, 문장 가운데서 중심 절을 발견하라. 여기서 ‘중심 절’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문단에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중심이 있다. 설교자가 긴 문단을 그대로 봉독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중심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고, 밝고도 짧으며, 쉽사리 기억되어 인용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상은 우리 시대의 ‘중심 사상’(Big Idea)을 찾는 것과 유사하다.

넷째, 설교자가 요약해서 반복하는 것에 시간을 허비하는 매우 큰 잘못이다. 강해설교자는 절대로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설교의 불완전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모든 설교는 그 자체로 완성되어야 한다.

다섯째, 중심 절이 선정되면, 가능한 주변에 있는 모든 문단의 중점들을 동원하여 설교를 구성하라.

 

4. 성경 전체를 조명하는 설교
마이어는 성경의 한 부분에서 한 구절을 취하여 설교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로 삼아 설교하는 것을 철저하게 배격했다. 이런 습관은 설교자로 하여금, 진리를 조화 있게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성경에 편견을 갖게 하는 위험성이 있다고 보았다. 이런 의미에서 또다시 강해설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강해설교는 성경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보는 시각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결국 설교자는 성경을 통전적으로 읽어야 하며, 결코 한 구절 말씀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마이어가 한국교회에 주는 교훈
마이어는 강해설교를 예찬하는 설교자였다. 그는 19세기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교회 설교자들에게 도전이 되는 내용들이 많다. 그는 본문을 놓고 수십 번 반복하여 읽으면서 중심 주제가 떠오를 때까지 묵상하라고 제시했다. 이런 지적은, 빠른 시간에 설교 대지를 결정하고픈 유혹에 사로잡힌 한국 설교자들에게는 깊이 생각해 볼 내용 거리를 제공해 준다. 특히, 설교자가 성경본문에 자신의 생각을 굴복시켜 본문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라는 강해설교에 대한 그의 견해는 탁월하기까지 하다.

 

마이어는 인물설교에 관해 탁월함을 갖고 있었다. 그의 12권의 인물설교 시리즈는 지루하고, 주석적이고, 단조로운 인상을 뛰어넘는다. 각 편마다 제대로 구성된 한 편의 설교로서 청중에게 도전을 주는 내용이 가득하다. 한국 설교자들이 성경을 보는 새로운 눈을 제시하고 있다.

마이어의 설교를 읽노라면, 문장이라기보다 설교를 직접 듣는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 만큼 문장마다 힘이 느껴진다. 이것은 그의 설교가, 단순한 성경해석보다 적용에 강한 설교라는 의미일 것이다. 마이어 설교는 청중들의 가슴에 강력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꽂아 넣는 것과 같은 힘이 느껴진다. 21세기 한국교회 설교자들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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