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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앙행위의 문제(3) - 헌금행위

제이비젼 2016. 5. 8. 11:33

         신앙행위의 문제(3) - 헌금행위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은 무엇일까? 그중 하나가 돈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시대는 황금만능의 물질주의 시대로 묘사되며,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삶의 모습도 부자가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돈이면 다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크리스천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의 기도목록을 보면, 말은 돌려서 하지만 세상에서 잘 살고, 성공하며, 부유하게 사는 것이 빠지지 않는다. 이를 위해 교회에 첫발을 디딘 이도 있으며, 성경적이 아니지만 기복신앙이 여전히 교회에서 활개를 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신(마6:21), 예수님도 재물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회에 가져오는 헌금에 지대한 관심이 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소중한 헌금을 드려 하나님을 감동시켜 기도응답을 받고 부유하고 형통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속내를 감추기 어렵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교회에서 성경적인 아닌 헌금관을 유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째든 하나님의 뜻이 아닌 헌금은 하늘나라의 곳간에 쌓이지 않고, 다만 교회통장을 살찌게 할 뿐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에 무지한 채, 그 많은 헌금을 드렸어도 삶이 팍팍하고 재정이 어렵다며 호소하는 이들이 수도 없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교회에서 듣고 있는 헌금관으로, 심고 거두는 원칙으로 불리는 말씀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는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는(고후9:6) 성경을 근거로 한다. 십일조 설교에서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인용하는 근거도 말라기의,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복을 쌓을 곳에 없도록 붓지 않나 시험하라 보라는 말씀이다.(말3:10) 그래서 목회자들은 강단에서 하나님께 많이 드리면 수백 배가 되어 돌아온다는 말로 대신한다. 그렇지만 성경은 일부의 말씀이아니라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한다.

 

 십일조를 비롯한 헌금을 드리는 하나님의 뜻은, 자신이 얻은 모든 재물이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었음을 인정하고 이를 믿음으로 드러내는 행위가 헌금이다. 세상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며, 세상의 모든 재물도 역시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학2:8) 그러므로 헌금을 드리는 속내가 하나님 펀드에 가입하여 수백 배의 수익으로 돌려받겠다는 속내가 아니라,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 동기나 마음의 속내로 드린 헌금이 아니라면 많은 액수의 헌금을 했을 지라도 하늘창고에 쌓이지 않는다. 말라기의 말씀도 자세히 살펴보자. 하나님께 아낌없이 십일조를 드린다면 재물을 주신다는 말씀이 아니라, 복을 주신다고 하셨다. 부자가 해주신다는 생각은 다만 우리의 착각일 뿐이다.

 

물론 복중에는 재물의 복이 빠진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우선순위로 생각하시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천국의 복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복 있는 자의 조건과 결과를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그토록 바라마지않는 지상적이고 현세적인 복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으셨다. 주기도문에서도 예수님은 끝없는 탐욕을 만족시키는 재물을 요청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다만 생존에 필요한 생계비인 일용할 양식을 요청하라고 하셨을 뿐이다. 그렇지만 재물에 눈이 어두운 우리는 헌금을 드리는 속내가 수백 배로 다시 돌려받은 생각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어디 그뿐만이 아니다. 하나님은 가져온 돈의 액수보다 돈의 성격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계시다. 우리는 많은 돈의 액수를 기꺼이 드린다면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물론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교회에 드린 돈의 성격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면 이 또한 허망한 일이다. 하나님은 깨끗하고 정직하게 벌어드린 돈을 기뻐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서 돈을 버는 직업이나 사업에서 불의하고 불법적으로 버는 일이 적지 않다.

일확천금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의한 청탁이나 뇌물, 거짓, 사기, 향응도 불사하지 않는다. 예전의 부동산 투기에서도 위장전입이나 차명계좌, 이면 계약 등으로 탈세를 하며 정부와 국민들을 속이는 게 다반사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사업이나 투자하면서 세금을 제대로 내면 수익을 볼 수 없다고 변명한다. 또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사업을 통해 돈을 버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술, 음란, 불륜, 사채, 복권, 도박, 게임, 투기 등 하나님이 싫어하는 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이다.

 

하나님은 불의한 태도를 용납하지 않으신다. 이런 변명은 돈을 쫒는 세상풍조를 대변하는 거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끝없는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탐욕을 우상숭배라고 미워하시며, 이런 자들은 천국의 자격이 없다고 못을 박아 놓으셨다. 탐욕이나 조급함을 버리고 자족이나 절제, 오래 참음의 성품을 몸에 배라고 명령하셨다. 이처럼 교회에 가져온 헌금일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이나 수단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 아니라면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돈일뿐이다. 아무리 목회자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하더라도 허망한 일이며 아무런 열매가 없을 것이다.  

성경에서 십일조와 헌금을 철저하게 드린 이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다. 이들은 내다 팔 목적이 아닌 식구들이 약초로 쓰거나 반찬으로 먹으려고 기르는 채소조차 철저하게 십일조를 드렸다.(마23:23) 그렇지만 이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은 이유는 희생적인 헌금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속내와 동기가 악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교만한 마음을 드러내고 싶은 희생적인 헌금은 있었지만 의로움과 믿음과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꺼이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의 감동을 얻는다. 예수님은 과부의 두 렙돈을 부자들의 많은 헌금보다 칭찬하셨다.(눅21:3)

 

이처럼 헌금의 액수를 떠나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꺼이 자발적으로 드리고자 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아름답게 보신다. 그렇지만 오랜 관행 탓에 형식적으로 드리는 행위,  목회자나 다른 교인의 눈을 의식해서 드리는 행위, 아까운 마음으로 줄여 드리는 십일조 행위 등 믿음이 없이 드리는 헌금행위들이 적지 않다. 돈은 사탄의 주요한 공격무기로 사용되기도 하고, 우리의 풍요로운 삶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하다. 그래서 헌금으로 드려지는 돈은 우리뿐 아니라 하나님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계시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드려지지 않은 헌금들이 교회에 너무 많이 존재한다. 그래서 소중하게 드린 헌금들이 하늘나라에 쌓이지 못하며 선한 열매가 없이 세상으로 사라지고 있다.

 

출   처 : 다음 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신상래 목사

 

출처 : Joyful의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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