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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배자가 알아야 할 60가지 메시지

제이비젼 2015. 6. 26. 11:46

 

 

 

 

예배자가 알아야 할 60가지 메시지

 

- 탐 크라우더 (이종환 옮김)

 

  5. 삶을 예배로 바꾸는 법을 배우는 예배자

♣ 섬김의 예배를 드리라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예수님이 달리셨던 십자가가 수직과 수평으로 이루어졌듯이,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최고 계명처럼, 우리는 위를 향할 뿐 아니라 밖을 향해서도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소리내어 찬양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 이 두 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이 둘 중에 하나만 있다면 예배를 불완전하게 표현한 것이다.

'예배란 노래 부를 때만 드려지는 것이라고 생각지 마세요. 남을 섬기는 것도 예배입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께서 '작은 자' 라고 부르신 이들에게까지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른 예배가 아닙니다. 어린아이, 힘없는 자, 갇힌 자, 태어나지 않은 뱃속의 아이 등 중요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즐겨 섬길 때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온전히 기뻐하실 것입니다.‘

만약 예배팀에 속해 있으면서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연습을 잠시 멈추고 '작은 자'를 찾아 나섬으로써 당신이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말씀드리라.

♣ 삶으로 예배하라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7)

이 구절 바로 앞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배의 '행위'는 있지만 진정한 마음이 없다고 꾸짖으신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성경의 이 부분을 가르쳐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는 구절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백성들이 예배에 대해서 바른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꾸짖으신 다음에 말씀하신 것이 "공의를 구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대받는 자들을 도와주라고 말씀하셨고 고아를 위해서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고 명령하신다. 내가 이해를 잘못한 것이라 생각하는가, 아니면 주님이 정말로 예배를 어떤 자비로운 행동과 연결하시는가?

자비로운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삶 가운데에 공의로운 행동이 없다면, 우리의 찬양은 의미 없다고 주님이 말씀하시지 않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말보다 행동에 훨씬 더 관심이 많으시다. 교회 안에 들어가 찬양을 부르지만 공의를 향해서 울부짖는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막고 있다면 그 찬양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성경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한다(삼상 15:22).

나는 하나님이 정말로 우리의 예배를 자비로운 행위들과 연결하고 계시다는 증거들을 점점 더 많이 발견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약 1:27) 놀라운 말씀이다. 여기서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나 손을 드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말씀하지 않으신다. 기도나 중보에 대한 언급도 없다. 순전한 경건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다.

'예배'는 주일날 아침 또는 일주일 내내 찬양을 하는 것 그 이상이다. 예배는 살아가는 방법이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며, 아주 작은 자비로운 행동들까지도 포함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신다. 우리의 예배는 교회의 벽을 넘어야 한다. 곤란에 처한 사람들에게 선행을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자. 그것이 진정한 예배다.

♣ 예배자의 부르심에 견고히 서라

"너는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구별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네게 속할 것이라 네가 그들을 정결케 하여 요제로 드린 후에 그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봉사할 것이니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게 온전히 드린 바 된 자라"(민 8:14~16).

의심할 여지없이 레위인들이 살아가는 목적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이었다. 즉, 그들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인 것이다. 그들의 삶에 있는 다른 모든 일들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행하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되었고, 하나님께 그들이 속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오늘날의 찬양 사역자들이 레위 족속의 직계 후손은 아니지만 둘 다 음악 사역을 한다는 분명한 유사점 외에도, 하나님이 레위인에게 요구했던 것과 찬양 사역을 하는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나님은 단지 재능 있는 음악인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원하신다. 우리 삶의 가장 주된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큰 일에 우리를 사용하지 않으신다 해도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자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도 관계없고, 어떤 제한도, 조건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진 그분의 레위인들이다.

♣ 어디서나 예배하기로 결정하라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2~25) 

바울과 실라가 '예배 인도자'라고 언급된 적은 없었지만, 이 놀라운 구절로부터 예배에 대한 중요한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상상해 보라. 당신과 당신의 동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수천 리를 여행했다. 이제 빌립보라는 도시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서 반응하는 것을 보기 시작한다. 하루는 어떤 점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었다. 그런데 그 여종의 주인은 자신이 이제 돈 벌 방법이 없어졌다는 것에 화가 나서 당신을 끌고 관원에게로 간다. 그가 그럴싸한 재판에서 잘 조작된 거짓말을 늘어놓자, 군중들은 당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관원은 당신을 묶고 매를 때린다. 지치고, 멍들고, 외롭게 감옥으로 던져져 도둑과 살인자와 반역자들과 함께 있다. 당신의 발에는 착고가 채워졌고, 간수는 당신의 행동을 감시한다.

괴로운 시간이 흘러서 이제 자정이 되었다.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눈을 좀 붙여서 육체의 고통을 잊으려 하고 예배하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바울과 실라는 달랐다. 그들은 자정에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미'했다. 이들에게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① 예배는 언제나 드리는 것이다.
② 예배는 어느 곳에서나 드리는 것이다.
③ 예배는 모든 상황에서 드리는 것이다.
④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⑤ 예배는 다른 사람들에게 덕이 된다.

비록 그 사람이 한밤중에 감옥에 홀로 있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찾으신다. 누가는 '찬미'가 즉시 지진을 일으켰다고 기록한다. 우리의 예배가 항상 그런 결과를 얻지는 않겠지만, 이들의 행동으로부터 배운 교훈들을 적용할 때마다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행하실 준비가 되셨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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