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食을 통한 靈性
거제다대교회 김수영목사
1)영성이란 무엇인가?
요즈음 교회 안에서 영성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본다. ‘영성세미나’ ‘영성회복운동’ ‘예수의 영성’‘영성철학’‘영성치유’ 등등......곳곳에서는 영성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그 동안 한국교회 영성운동이라면 심령부흥회가 전부였는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영성운동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이름만 바뀌어진 영성운동이라면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이다.
기독교의 영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기독교의 영성이란 깊은 진리에의 깨달음을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진리의 삶, 은혜의 삶으로 평화(행복)를 누리는 신령한 삶을 이루어 내는 것을 영성이라 할 수 있다. 즉 영원을 현재화 시키는 힘이요 정의와 평화와 희락의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힘이 곧 영성인 것이다.
인간은 밥을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진리를 먹고 사는 존재요,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천하 보다 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소중한 존재요 신령한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고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과 신념은 배고프지 않을때 이야기이지 40일 동안이나 굶은 사람이 먹을 것을 앞에 두고 아무나 그렇게 쉽게 내 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마태 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오죽 배가 고팠으면 돌을 보고 저것이 떡덩이였으면 좋겠다고 까지 생각했겠으며 금식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능력(영성)으로 저 돌들을 당장에 떡으로 만들어 먹어보았으면 하는 유혹에 빠졌겠는가?
하지만 예수님은 굶어 죽으면 죽었지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지는 않겠다는 각오로 단호히 시험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셨던 것이다. 다시말해 육체적인 생명유지(생물학적인 동물적 삶) 위해 부정한 방법에 자기의 영력(영성)을 이용하여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고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인간됨의 길)의 길을 따라 살면서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고고하고 신령한 삶(영성의 길)을 선택하며 사시겠다는 결단이었다.
예수님처럼 정말 배가 고파 죽을지경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인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아들됨을 마지막까지 지키면서 진리의 길을 선택한 삶이야말로 진정한 영성의 삶이었으며 영성의 승리의 모습이지 않는가? 이 후에 예수님은 하나님의나라 운동을 통해 영성의 삶을 펼치기 시작하셨다. 천국이 가까이 있다고 하시면서......영원을 현재화 하셨던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영성을 회복한 삶으로 당당히 사셨고 마지막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시고 지시면서 까지 하나님의 아들됨의 길.......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의 삶이 어떠 해야하는지를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영성이란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잘 살고 잘되고.....형통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지 않을 수 없으며 그래서 영성이 아니라 기복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교회는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더 이상의 이 시대와 우리의 소망이 되지 못함을 깊이 인식해야하고 예수님의 진정한 영성을 회복해야할 절체절명의 시점에 놓여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2)한국교회의 금식운동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하면 영성에 이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으며 깊은 영성에 이를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왔다.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봉사하기도 하고, 힘든 노동을 하기도 하고, 금식하기도 하고, 침묵하기도 하고 철저히 자신을 억제하고 금욕하기도 했다. 각 그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겠지만 그 중에 금식(단식)을 통한 영성훈련이 있는데 이 훈련방법이 어떤 다른 것보다 깊은 영성에 이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인 것 같아 소개해 본다.
기독교인들은 금식을 많이 한다. 금식하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가져 보려고 하기도 하고, 어떤 특별한 기도제목을 놓고 금식기도하기도 하고 또 큰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하기도 한다. 필자도 신학교를 가기 전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길이요 십자가의 길인데 나 같이 부족한 종이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하나님 앞에 4일 동안 금식기도 한 후 신학교 가기로 결정했던 적이 있다.
성경에도 보면 금식기도 했던 내용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삼상7:6)에 보면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 나라를 쳐들어와 큰 위기에 빠지게 되자 사무엘 선지자가 온 백성들을 미스바 광장에 모이게 한 다음 나라를 위한 금식기도를 한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으며 다윗 왕도 밧세바 왕비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금식하면서 기도했다고 (삼하12:16) 기록하고 있으며,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입산하여 하나님께 40일간 금식하며 기도(마4:1-11)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금식은 금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누구를 위한 금식이며, 무엇을 위한 금식이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 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슥7:5)”고 스가랴 선지자도 외치고 있다. 즉 나의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 금식하거나 목적 달성을 위해 배수진을 치고 하나님께 억지부리는 식의 금식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교회 성도들의 금식은 지금까지 대부분 이런 잘못된 금식을 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예수님은 자기 영광과 출세,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금식한 것이 아니다. 그 당시에 고통당하던 백성들의 처절한 삶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본질적인 구원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입산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려 40일간 금식기도하셨던 것이다. 이 문제의 해답이 없이는 내려오지 않겠노라고.......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노라고.......일사각오의 결단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셨던 예수님이셨다.
이제 그리스도인의 금식기도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오늘날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신 그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코자 하는 몸부림이요 깊은 영성에 이르기 위한 금식이어야 한다. 예수님이 금식기도 후 온 세상을 구원하는 영성에 이르렀듯 그런 금식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금식이 아니면 굶는 것일 뿐 더 이상은 의미는 없다.
3)영성을 위한 금식
금식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을 억제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온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코자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훈련이며,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김으로서 가장 좋은 것으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구약시대 때부터 금식을 해왔으며, 금식은 초대교회와 교부시대의 중요한 신앙훈련 전통 중의 하나였다.
내 몸을 쪼리면서(금식) 하늘의 도를 깨닫고자 함이요 배를 비움으로서 나를 비워내고자 함이며 비고 비인 내 심령에 우주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모시고자 하는 것이며 비워지고 깨끗해진 내 육체에 하늘기운(성령)으로 가득채워 육신의 평안함괴 치유를 얻고자 하는 것이 금식훈련이다. 이런 측면에서 금식은 단순한 다이어트나 건강을 위함만이 아닌 굉장한 신앙훈련인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으며 천국을 소유한다고 주님 말씀하셨다. 정말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최고의 복인데........ 심령이 가난해진다는 것은 그저 생각이나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내 마음 비웠다’고 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속아 실망하지 않았던가? 마음의 가난은 철저한 자기 비움의 훈련을 통해 습득되어지는 것인데 그 훈련이 바로 금식이다.
금식은 어떤 다른 훈련보다 효과적인 자기 비움의 훈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배를 비우면 비울 수록 저절로 마음이 비워지고 심령도 가난해지고 깨끗해 지기 때문이다. 이 느낌은 말이 필요없으며 금식해 보면 알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다. 15일 정도 금식해 보면 몸도 마음도 얼마나 자유롭고 평안한지........그리고 얼마나 영적으로 맑고 깨끗해지고 순수해지는지......나중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내가 천사같이 천상을 거닐며 사는 것 같은 신비함을 느끼게 되는데..........그 때야 비로소 안 먹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며 얼마나 자유스러운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황홀감을 느끼게 되는데......그 정도에 이르면 하나님 한마디만으로로 그 은혜에 감격해서 눈물이 흐르고........들판의 풀잎들이 새롭게 보이면서 자연스레 대화가 되어지는 신비함을 체험하게 된다. 그래서 금식은 우리들을 깊은 영성에 이를 수 있도록 해 주는 중요한 신앙훈련인 것이다.
뿐만아니라 배가 고파 죽게될 지경에 놓이게 되면 신분, 체면,위신,자존심....... 그런 것을 돌아 볼 겨를이 없다. 집을 나갔던 탕자가 주려 죽게 되자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얻어 먹고 살다가 그것도 여의치 못하자 나중에는 창피하고 부끄럽지만 하는 수 없이 아버지집에 돌아가지 않았던가? 배고픈 절박함이 자기(자존심)를 포기 하게 했으며 그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맑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때야 비로소 아버지 집을 생각하게 했으며 아버지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철저히 가난해지면 마음이 단순(simple mind)해 진다. 그래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이요 그런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며 천국은 배고픈 자만이 소유할 있는 축복인 것이다.
정말 배가 고플때의 한 그릇의 밥은 기가 막히게 행복한 것이며 고구마 하나를 들고서 너무 감격해 눈물을 주루룩 흘리게 된다. 이는 진실로 배고픈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감격이요 축복이요 은혜다. 우리는 이럴 정도로 철저히 가난해져야 하고 낮아져야 한다. 필자는 금식은 자발적 가난을 체험하는 훈련으로 너무 배부르고 풍족해진 한국교회에 있어서 새로운 영성 대안 운동으로 펼치고 있으며 16회째 계속 해 오고 있다.
4)금식을 통한 치유 역사
금식은 앞에서 언급한 심령을 가난하게 하는 영성에 이르는 영적 훈련으로서 더 할 나위 없는 좋은 훈련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 우리 몸을 하나님 창조질서대로 회복시키는 최대의 치유능력이다. 금식만 하면 내장의 어떤 질병도 치료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금식은 하나님이 모든 육체적인 존재를 만드실 때 자연치유능력으로 허락한 자연의 법이요 하나님의 치료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금식해서 치료할 수 없는 정도로 병이 중하면 이미 그 생명은 명을 다한 것이다.
모든 동물은 아프면 무조건 굶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금식하므로서 동물들은 자기 몸을 스스로 치료한다. 다 낫고나면 그 때야 비로소 먹기 시작한다. 개나 고양이 등을 키워 본 사람들이나 자연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동물들 만드실 때 허락한 치유본능이다. 산과 들의 야생동물들은 약도 병원도 의사도 없지만 이 치유본능으로 스스로 치료하고 회복하여서 천수를 누리며 건강하게 살다가 한 생애를 마친다. 사람의 육체도 동물과 같아서 몸이 병들면 금식하면 된다. 그러면 야생동물처럼 우리 몸(자연)은 저절로 치료되고 회복한다. 몸살이 나거나 중병에 걸리면 입맛이 떨어지는데 이는 먹지 말라는 인체 자연반응이요 신호인데 이것만 보아도 먹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알 수 있다. 이것은 자연의 법이요 하나님의 내신 창조질서다.
그런데 인간은 이 자연의 법을 어기면서 건강하기를 바라고 치료되기를 바라니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아프면 입맛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먹어야 기운을 차려 병을 이겨낼 수 있다고 하면서 억지로 먹게 되니 치료가 더디 되는 것이다. 금식하면 훨씬 치료도 회복도 빠르다. 완벽한 자연인 인체를 믿고 인체의 자연질서(하나님의 법)에 맡겨야 한다. 인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을 진짜 신뢰하는 것이다.
인간은 야생동물들과 달리 늘 크고 작은 병에 시달리며 온갖 고통 속에서 살면서 천명(125세)을 다 누리지 못한다. 그 이유는 야생동물들은 자연에 순응하며 욕심 없이 사는데 반해, 인간은 인체의 자연질서(창조질서)를 거스르며 내 편리대로 생활하고 내 마음대로 먹고 내 입맛대로 먹으며 사는 탐욕과 이기의 생활방식 때문이다. 그래서 옛말에 “順天者는 興하고 逆天者는 亡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늘의 뜻에 순종하며 살면 잘되고 하늘의 뜻을 거스려 살면 심판과 재앙과 멸망 밖에 없다. 얼마전 온 세계를 뒤흔들었던 광우병 파동만 해도 그렇지 않는가? 소를 빨리 키우고 살찌게 하여 수출하기 위해서 인간의 욕심으로 초식동물인 소에게 고기를 먹였더니 소가 미쳐버린 것을 보면 자명하지 않는가?
인간도 하나님이 내신 자연의 일부다. 그러므로 인간도 자연과 함께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즉 육체는 하나님이 내신 육체의 질서(법)에 따라야 하고, 영은 영적인 법칙 즉 진리의 말씀을 따라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 그럴 때에 영육 간에 건강하고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비견한 예로 인간은 잡식성이지만 육식보다는 곡채식과 과일 등을 주로 먹고 살도록 창조되었다(창1:30) 이는 갈아 먹을 수 있는 맷돌같은 어금니가 송곳니보다 많다는 사실에서 증명되고 있다.(4/32) 즉 8일에 한번 정도 육식을 먹으라는 것이 하나님의 내신 법인데 오늘날 현대인은 지나치게 많이 육식을 하고 하고 있기 때문에 당뇨병,고혈압,각종 암과 비만, 성인병 등등......온갖 질병을 앓고 있으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자연 생명의학의 이론을 깊이 깨닫고 난 후 지금까지 막연하고 관념적이던 신앙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한번 이해하게 되면서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건강하게 살아 갈 수 있는데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곧 하나님의 섭리대로 사는 것이라는 것을.....그것이 작은 일, 즉 먹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그리고 누구든지 창조하신 하나님의 질서대로 살아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어떤 질병 조차도다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을.....그리고 현대인들이 건강하게 살지 못하는 것은 창조질서를 역행하며 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금식을 통해 영육간에 치유할 수 있음을 깨닫고 뒤늦게 금식운동을 통해 全人 治兪를 위한 목회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온다고 한다. 육체의 건강은 영적인 건강과 결코 따로가 아니다. 몸이 건강해지는 것도 자연으로 돌아가야하고 하나님 법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영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금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법을 다시 깨닫고 자연의 질서를 새롭게 이해하고 그 동안 잘못 살아왔던 것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회개로 새롭게 살고자 하는 훈련을 하면서 몸도 저절로 치료되고 영도 온전해지는 금식영성훈련을 필자는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단순한 고깃덩이가 아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고전3:16)이라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몸을 건강하게 지키는 것은 천년만년 살고자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내 몸(거룩한 전)을 잘 관리하는 것으로서 진정한 신앙인의 길이요 이는 하나님 자녀로서 마땅한 일이자, 신앙의 출발점이며 하나님 백성됨의 삶으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려질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람이 한평생 병으로 인해 고통당하면서 존재의 목적에 부합된 삶을 살지 못하고 병에 매여 낭비의 인생을 살다가 죽는다고 하면 부모님(하나님)에게도 엄청난 불효가 될 것이며 얼마나 안타가운 일이겠는가? 그러기에 단순한 육신의 건강이 건강함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영성이라고 보고 필자는 영육간에 온전한 치료를 통한 새로운 생명운동인 금식영성운동을 전개 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치유사역(healing minister)을 통해 인간의 영육간의 온전한 회복으로 하나님나라를 이룩하시려고 하시지 않았던가?
5) 맺는 말
사람이 살아 가는 가운데 뜻하지 않게 질병이 걸릴 수는 있다. 그 때에 병을 단순한 질병으로만 인식해서는 안된다. 인체의 하나님의 원리에 따라 살지 못한 행위(오염된 먹거리 섭취와 인간의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잘못된 식습관 등)대한 심판이자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경종이요 신호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질병의 고통을 통해서 자기를 반성하고 돌이켜 자연에 순응하라는 것이요 창조질서대로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사인이기에 이 고통의 질병을 통해 더 큰 영성에 이를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자연은 스스로 운영되고 회복(치료)되고 변화하면서 나아간다. 인체의 병의 치료도 마찬가지다. 자연의 인체 질서대로 다시 돌아가기만 하면 어떤 질병(불치의 병 암,류마치스,아토피피부염 당뇨병,고혈압,축농증,등등)도 치료될 수 있다.
그래서 자연의 법이요 하나님의 치유 방법이자 자연치유본능인 禁食을 하면서...... 배를 비우고......마음도 비우고...... 육체의 모든 찌꺼기(숙변,온갖 노폐물과 과잉된 지방 등)를 정화시켜내면서.......육신도 치료하고.......마음의 모든 더러운 찌꺼기(불평,불만, 탐욕, 정욕, 교만, 이기심과 질투 등등)를 비워내고....... 비고 비인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우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 갈 것이가를 깊이 고민 하고.....그 기뻐하는 뜻을 발견하고자 하는 금식영성운동이 이 시대의 새로운 영성운동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필자는 1999년 1월에 제 1회 금식영성수련회를 시작하여 현재 16회까지 300여명이 넘는 훈련생을 배출하였다. 이 금식영성수련회에 참여한 수련생들 중에 당뇨병, 고혈압환자들은 기본적으로 치료되었고 아이를 못 낳던 사모님(경남노히 새빛교회 조신제 목사)이 아이를 낳게 되고 류마치스 관절염, 축농증.비염,알레르기성질환, 아토피, 비만 등등... 수도 없는 많은 질병치유 경험을 체험하였을 뿐만 아니라 큰 은혜를 받고 돌아가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훈련생들을 보면서 목회자로서 큰 보람과 긍지를 느끼고 있다.
뿐만아니라 저들의 생각이나 가치관, 마음, 생활태도와 식생활습관 등 모든 것이 완전히 바뀌어져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 정말 거듭난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수련생들을 보면서 필자는 이 금식영성훈련을 통해서 목회의 새로운 비젼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이 금식영성운동이 한국교회의 새로운 영성대안이 되기를 위해 남은 여생을 바칠려고 생각하고 있다.
필자는 앞으로 3년 후, 현재 공부하고 있는 경기대대체의학 대학원을 졸업하는 계기로 일반 목회를 접고 이 금식영성운동에 전념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물 좋고 산 좋은 2만평 정도의 땅에 금식영성센타를 짓고 자연 가운데서 영육이 병들어 있는 현대인들을 쉬게 하고 치유하고 회복시켜내는 새로운 영성운동을 시작할려고 한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리며 이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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