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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족관계 치유

제이비젼 2015. 3. 30. 23:30

 

가족관계 치유

 

제 1 장
가족관계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셨을까? 그렇지 않다고 보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심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요, 둘째는 다른 모든 동물들을 암수 한 쌍씩 지으신 하나님이 오직 사람만 짝없이 지으시진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는 피조물이기에 아담으로 하여금 자신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끼고 따라서 돕는 배필을 지어주셨을 때 그 소중함과 감사함을 알며 서로 사랑하게 하시기 위함이셨을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관계를 형성하고 산다. 물론 다른 동물들도 서로 관계를 맺고 살지만 그들보다 더 깊고 차원 높은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고 살아가도록 하셨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인간관계의 출발점이고 가장 기본이 되는 관계는 역시 가족관계이다. 따라서 가족관계는 다른 모든 인간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의 제도가운데 맨 처음 만드신 것은 가정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공생애의 첫 발자국을 가정이 시작되는 가나의 혼인잔치로 옮기셨다는 점은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족관계가 화목할 때는 심리적 안정을 이루어 매사에 자신을 가지고 적극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가정은 인생의 출발점이요 모든 싸움을 싸우고 마지막에 돌아와 쉴 수 있는 안식처이다. 까닭에 화목한 가정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한 사람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직장에서나 일을 하거나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결과는 자명한 일이라 할 것이다.


또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든든한 후원자들이 집에 있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자신 있게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있다. 특히 밖에서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사랑하는 아내가 정성껏 저녁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며 귀여운 아이들이 아빠를 반기며 뛰어나온다면 하루의 피곤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만다. 그러므로 가정의 화목은 곧 심리적 사회적 안정과 직결된다.

1. 화목하지 못한 가족관계가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

첫째, 소극적인 사람은 가족들과 만나기를 기피하는 등 우울증의 증세가 나타난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보이지 않고 어떤 문제건 기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사람들과 접촉하거나 대화하는 것을 꺼리며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매사에 용기를 잃고 부딪히는 환경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특히 지금은 옛날과는 달리 온 가족이 방을 각각 따로 쓰고 있고 식사시간도 서로 달라 웬만큼 화목한 가정이 아니면 함께 모여 오순도순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다. 이럴 경우 가정이 병들면 어른은 어른대로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집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고 일단 집에 돌아오면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꼭 닫아버린다. 그리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컴퓨터 게임과 같은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게 된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한 지붕에 사는 가족이지만 내막을 보면 남과 같이 ‘나 홀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연세대 여성연구소 손승영(孫承瑛) 전문연구원은 “우리 사회는 가족 구성원들이 가정에서 욕구를 충족시키기보다 사회 안에서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려 한다. 예컨대 수험생들은 집보다 또래집단이 모이는 독서실을 선호했고, 남편은 집에서 술을 마시기 보다 술집에서 먹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등이다” 라고 하였다(중앙일보 1996. 11. 11 기획기사 참조).

둘째, 파괴적인 사람은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어떤 부부에게 의견 차이가 생겼다. 처음엔 조용조용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다가 언쟁으로 번졌고, 종래에는 격해져서 남편이 아내를 때리려 하자 그 아내는 욕질을 하면서 문을 박차고 도망쳤다. 화가 머리 끝까지 솟은 남편이 뒤따라 좇아가다가 부인이 보이지 않자 문 밖에서 놀라 눈이 둥그래진 아들에게 “야 이놈아, 그년이 어디로 갔니?”하고 묻자 겁에 질린 아들은 “예! 그년이 저쪽으로 도망쳤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물론 얼떨결에 오고간 순간적이고도 매우 짤막한 대화(?)이긴 하지만 화목하고 단란해야 할 가정에서의 폭언과 폭력은 이미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 여성의 전화’가 지난 1995년 한해 동안 받은 15,300건의 전화상담 중 구타와 관련된 상담이 3,200건(21.1%)이나 되었는데(동아일보 1996. 5. 13) 1996년에도 총 23,753건 중 5,808건(24.5%)으로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이다(1997. 5 22 중앙일보). 따라서 여성계에서는 ‘가정폭력 방지법’ 제정을 위한 노력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폭력과 폭언은 자녀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미국 같은 나라는 ‘아동학대 보호법’이 잘 발달되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내 자식 내가 때리는데 누가 말리느냐’는 유교적 사고방식이 강하기 때문에 가정에서의 자녀 학대는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셋째, 반항적인 사람은 가정을 이탈하게 된다
경찰청은 지난 1995년에 전국 5백97개 학원가에서 6만 7천여 명의 학원폭력배를 적발, 이 가운데 1만 8천여 명을 구속하고, 약 5만 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발표했다. 학생폭력서클도 1천여 개에 이르고, 이들에게 돈을 털리거나 폭행 등을 당한 피해 학생이 전학생의 7.2%인 61만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1996. 2. 15 중앙일보).
이 학생들은 대부분 원만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학생들이며, 이런 가정에 불만을 품고 집을 뛰쳐나온 가출 청소년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학생들은 대부분 또래집단을 형성하여 폭력서클을 만들고 용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학생들의 돈을 빼앗거나 남의 집 담을 넘어 훔치기도 하기 때문에 사회문제로 비화하게 된다. 요즘에 중앙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소설 ‘브이(V)세대’는 이런 가출 청소년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가출은 비단 청소년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가정의 불화를 참지 못하고 가출을 하는 주부들도 적지 않다. 지난 1996년 10월 결혼하여 시부모를 모시고 새살림을 시작한 동소문동의 서모씨(필자의 교회 교인)는 시부모와의 갈등, 종교적 갈등(가족은 모두 기독교인이며 본인은 남자와 교제를 시작하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다)을 이기지 못하고 친정으로 발길을 옮기기를 수차례, 6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에는 가출을 해 버리고 말았다.

넷째, 극단적인 사람은 이혼을 하거나 심지어 자살이나 살인을 하는 등 자포자기하게 된다.
통계청이 세계 가정의 날(1993. 5. 15)을 맞아 발표한 ‘가정현황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20년간 이혼이 4배 가까이 증가하면서 이혼부부들의 평균 동거기간이 결국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짧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혼자 사는 가구가 15년간 3.6배나 증가, 1백만 가구를 넘어서고 소년소녀 가장도 지난해 7천3백22명으로 8년전보다 50%나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992년의 경우 5만 7천쌍이 이혼, 72년(1만2천쌍)보다 3.75배 증가했다.

 또 우리 나라 이혼부부의 평균 동거기간은 8.4년으로 미국(9.1), 일본(10.8년), 프랑스(13.4년) 브라질(16.9년)등보다 훨씬 짧은 것으로 나타나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지는 ‘냄비사랑’이 만연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가정의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쉽게 파탄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옛날에는 시집살이를 견디지 못하고 친정으로 돌아오면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다시 시댁으로 돌려보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친정부모들이 “그렇게 속썩이고 살 필요가 있느냐? 그냥 집으로 들어와 버려” 하고 오히려 이혼을 부추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보다 더 심한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살을 하거나 상대방을 살해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빈발하다는 것이다.
지난 1996년 4월 자신의 딸(丁美淑, 48세)이 동거중인 남자(吳원종, 50세)에게 매맞고 사는 기구한 삶을 보다 못해 살해 한 노모(李相姬, 72세)가 있어 세인의 관심을 끈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딸은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수를 하였으나 17일만에 어머니가 진범으로 밝혀져 쇠고랑을 차야 했다.


‘내가 진범’이라며 서로 살인혐의를 뒤집어쓰려 했던 ‘비운의 모녀사건’은 새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였다. 짐승 같은 사위의 폭력 앞에서 딸을 보호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모성은 살인을 택한 것이다. 이 사건을 놓고 서울대 이용식(李用植)교수 등 다수의 국내 형법학자들은 李할머니를 벌할 수 없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연약한 부녀가 남편의 거듭되는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살인을 택할 수밖에 없을 때 정당방위를 인정하던가, 계속되는 위난(危難)앞에 생명․신체에 대한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동은 다소 과잉수단을 선택하더라도 책임 지울 수 없다는 소위 면책적 긴급피난(免責的 緊急避難)이론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런 법논리에 더해 李할머니가 72세의 고령이란 점까지 참작한다면 李할머니는 불구속상태에서 재판 받도록 하는 것이 일반정서에 합치된다는 생각이었다(1996. 5. 10 중앙일보). 결국 재판부는 李여인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여 풀어주었다.


또한 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동안에도 19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지금까지 18년동안 매질을 일삼아온 남편(崔東富․41․노동)을 견디다 못한 아내가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윤선화(尹善花․37․서울 관악구 신림동)씨는 지난 21일 새벽(1997.5.21) 술에 취해 돌아온 남편이 항상 그랬듯이 신을 신은 채로 방에 들어와 발로 차고 주먹을 휘두르다 잠이든 남편의 가슴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것이다(1997. 5. 22. 중앙일보)


좀 오래된 이야기지만 지난 1989년 7월 17일 오후6시쯤 경북 성주군 선남면 성원리 정연택씨(34) 집 안방에서 정씨의 장녀 미희양(당시 성주중앙초등학교 6년)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이 잦은 것을 비관 “엄마는 제발 아빠와 싸우지마. 아빠는 술 먹지 마”라는 메모를 남기고 음독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2. 화목하지 못한 가족관계가 신앙적으로 미치는 영향

첫째, 믿음이 약한 사람 특히 남편들은 신앙을 등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특별한 소수의 가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가정들이 남편들은 아내에게 이끌려 교회에 다니고 있다. 이런 경우 대개 “나 오늘 교회에 안가!” 하는 말은 아내를 위협하는 좋은 무기가 된다. 남편이 이렇게 나오면 아내들은 대부분 사정하고 달래서 데려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도가 지나치다보면 여자들도 “교회는 나를 위해서 가는가, 당신 맘대로 하라”고 나온다. 결국 가정 불화가 남편으로 하여금 교회를 멀리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1993년 12월 고려대학교 인촐기념관에서 열린 ‘한국사회학대회’에서 광주대 노치준 교수(포도원교회 집사)는 ‘종교의 차이로 인한 가족간의 갈등 연구’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해 관심을 모았는데 그는 종교갈등의 결과는 관계단절, 소원한 관계, 계속 갈등, 개종 또는 신앙생활 포기, 평화적 공존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지만 부부간의 종교적 갈등의 경우 33%는 개종을 하거나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경향을 보이며, 고부간에는 개종이나 포기가 34%에 이른다고 했다.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이 경우 시부모가 며느리의 신앙을 따라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하는데 그는 그 이유를 “젊은 며느리들은 종교적 헌신도가 강한 기독교인이 많고, 시부모의 경우 종교적 헌신도가 상대적으로 약한 비기독교인이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둘째, 반면에 믿음이 좋은 사람 특히 여인들은 광신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박모 집사(40세)는 고등학교 때 만나 사귀다가 결혼에 성공한 여인이다. 그러나 결혼 후 사소한 일로 말다툼이 잦아지더니 10여년 만에 남편은 아이 둘과 아내를 버리고 이혼을 하여 다른 여자와 살고 있다. 홧김에 찍어준 도장이 화근이 되어 재산과 남편을 잃은 이 여인은 아이 둘을 친정에 맡겨두고 병원에 간병인으로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포천에 아파트를 장만하고 여름 방학 때는 친정에 있는 두 아이들을 데려올 꿈에 부풀어 있다. 이 분의 경우는 오히려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들과 헤어져 외롭게 살면서 더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 신앙생활에도 열심이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많은 신자들은 처음에는 더 신앙에 열심을 내지만 이것이 현실도피성 광신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목사의 지도를 받으며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기보다는 기도원을 전전긍긍하면서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려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오직 교회, 오직 신앙밖에 모르는 사람, 그래서 대인관계나 사회성이 결여된 비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쉽다.

셋째, 자녀들의 경우는 이런 부모들의 신앙생활에 거부감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광명시에 있는 모 장로교회 목사의 아들은 학생시절에는 아버지가 섬기는 교회에서 학생회장을 지내는 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군에 다녀온 후부터는 교회를 자주 빠지더니 이제는 아예 교회에 발걸음을 돌리지 않고 있다. 아버지가 주일 낮예배를 인도하고 집에 돌아와 보면 다 큰아들은 집에 누워 뒹굴며 TV나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가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과 가정에서의 일상생활이 상반되는 것을 느낀 아들이 아버지에게 실망과 회의를 느낀 나머지 반항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 청년은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면서 다만 아버지에게 반항을 하는 것 뿐, 어느 교회든 다시 나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심한 경우는 자녀들이 종교적 탈선을 하여 이단종파에 빠져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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