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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

제이비젼 2015. 3. 22. 17:27




교회의 은사란?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모든 신자에게 자신이 속한 지역교회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각종 은사를 주셨다. 하지만 오늘날 수많은 신자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교회에서 자신의 은사를 활용하지 못하고 영적인 실업자가 되어 봉사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채 각종 집회에 단지 참석만 하는 방관자로 일관하고 있다. 기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며 신자마다 자신의 은사는 발휘되어야 할 것이다.

은사란 교회의 성장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으로 각 지역교회는 이러한 은사를 제대로 활용할 때 교회는 성장하게 된다. 신약 성경에는 은사라는 용어가 많이 나타나 있는데 여기서는 이러한 은사가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즉 은사의 정의, 은사의 목적, 은사의 중요성, 은사의 수여자, 은사의 분류, 은사의 장애물, 은사주의와 은사주의 운동, 교사의 은사 등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은사란 무엇인가? 즉 은사의 정의에 대해 살펴보자.

은사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카리스마나 도레아이며 신약 성경에 약 20번 정도 나온다. 이 은사라는 말은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모든 은혜를 지칭하며, 좁은 의미로는 사람이 영적으로 거듭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성도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능력의 영적인 기능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좁은 의미에서의 은사, 즉 지역교회의 은사 활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은사의 목적, 즉 은사의 필요성에 대해 알아보자

하나님께서 교회에 은사를 주신 목적은 무엇보다 먼저 교회의 성장과 교회의 확장(새로운 교회 개척)을 위해 주신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목적은 각종 봉사를 통하여 지역교회의 각 지체들의 유익, 즉 성도들의 믿음의 성장과 이로 인한 영적인 성숙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엡 4:12~13).

 

셋째, 은사는 왜 중요한지 그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자.

지역교회 내에서 성도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은사가 제대로 활용되지 않으면 교회가 성장되지 않기 때문에 은사의 활용은 교회의 성장을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교회의 성장을 위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함께 은사에 관여하신 그 자체가 은사의 중요성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넷째, 은사의 수여자는 누구인가?

각종 은사를 주시는 분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다. 신약 성경에서 은사의 수여자와 관련하여 크게 세 군데에 그 내용이 나타나 있는데, 서로 중복되는 은사를 제외하면 은사의 종류는 약 20가지 정도이다. 먼저 성부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주신 은사는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침, 권면, 구제, 긍휼 등이다(롬 12:3~8). 다음으로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사는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자, 교사 등이다(엡 4:11). 그 다음으로 성령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지혜, 지식, 믿음, 능력, 서로 도움, 병 고침, 방언 등이다(고전 12:11).

 

다섯째, 은사는 어떻게 분류되는가?

은사는 크게 3가지 범주, 즉 기초적 은사, 영구적 은사, 일시적 은사로 나누어 분류할 수 있다.

먼저 기초적 은사로서는 기독교의 토대를 세운 사람들, 즉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다(엡 2:20) 이들은 기독교의 기초를 확립한 뒤에 사라졌다. 그러므로 오늘날 자신을 가리켜 사도나 선지자로 칭하거나 여기는 자들은 비성경적인 인물들이므로 주의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일시적인 은사로서, 초기 기독교의 복음을 확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표적들과 여러 능력들, 즉 기적과 방언과 병 고침 등이 있다. 이러한 은사들도 초기 기독교에 일시적으로 사용된 후에는 완성된 성경의 출현으로 사라졌다(히 2:3~4).

그 다음으로 영구적인 은사로서, 복음 전하는 자와 목자와 교사 등이 있다. 1세기에 기독교의 토대를 세우고 기초를 확립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죽은 후에는 복음 전하는 자들과 목자들과 교사들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영구적인 은사자들로서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은사자들이다(무질서한 은사주의, 존 맥아드, 부흥과개혁사, 316쪽/ 주님의이름아래모임, 노먼 크로포드, 기둥과터, 122쪽).

 

여섯째, 은사 활용의 장애물은 무엇인가?

먼저, 지역교회에서 은사 활용의 장애물은 성직자 제도이다. 여기서 성직자란 지역교회(개교회)에서 교회의 의식과 규례들을 수행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세워진 유일한 권위를 가진 특수 계급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예나 지금이나 기독교계에는 성직자 제도라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개신교회에서는 성직자가 담임 목사이며 천주교회에서는 주임 신부 또는 본당 신부이다.

이들은 예배시에 신자들의 입을 막아 버려서 신자들이 제사장 구실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시킨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교회의 모든 일에 거의 전권을 행사하고 있어, 교회에서의 자유로운 은사 활용(고전 12~14장)을 불가능하게 한다. 신약 성경의 어느 곳에도 오늘날의 담임 목사나 주임 신부와 같은 특수 계급의 사람은 없다.

따라서 신자들은 지역교회에서 자유로운 은사 활용(고전 12~14장)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성직자 제도가, 신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은사 활용에 최대의 장애물임을 인식하고 그러한 제도를 용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음으로, 성직자 제도를 용납하지 않는 지역교회들에서도 은사 활용의 장애물이 있다. 국내에는 성직자 제도가 없는 교회들, 이를테면 평신도교회, 지방교회, 형제교회, 한우리교회, 가정교회, 셀교회, 독립교회 등이 있다. 이들 교회에서는 소위 장로 형제들이 주로 말씀을 전한다. 그런데 장로 형제들 가운데 말씀을 전하는 은사가 없는 사람이 말씀을 전하는 경우도 더러 있고, 그들 가운데 독불장군처럼 혼자서 강단을 독점하는 자들도 적지 않다. 이들이 은사 활용에 장애물이 되어 교회의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일곱째, 은사주의와 은사주의 운동이란 무엇인가?

은사주의란 진리를 통한 구원보다 성령체험, 방언, 신유, 귀신쫓음 등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을 구원의 징표로 삼는 경향을 가리킨다. 이 은사주의는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시작되어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데, 이것은 신비주의 및 종교혼합주의와도 맥이 닿아 있다.

그리고 은사주의 운동이란 1960년에 일어난 운동으로서 오순절 운동의 기본 교리들인 방언과 신유를 공유하는 동시에, 밖으로는 교회 연합을 펼치는 운동이다. 여기에는 개신교회뿐만 아니라 로마가톨릭교회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은사주의와 은사주의 운동은 성경 말씀의 진리를 도외시하고, 개인의 영적인 체험을 지나치게 중시한다. 이것은 사탄 마귀와 흑암의 영들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위험한 일이며, 마지막 때에 배교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교회용어사전, 생명의말씀사, 354쪽).

 

여덟째, 교사의 은사란 무엇인가? 즉 교사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신약 성경에는 교사의 은사에 대해 분명히 나타나 있다. 먼저, 교사의 은사는 영구적인 은사자로서 지역교회들을 개척하고 성장시키는 사람이다. 초기 교회 시대에는 사도 바울이나 바나바, 실라, 디모데, 디도, 에바브라 등이 성경교사로서 지역교회들을 개척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한 군데에 정착하지 않고 순회 사역을 하였다. 오늘날에도 미국, 캐나다 영국 등 서구권에서는 이러한 순회 사역자들이 지역교회들을 순방하면서 성경교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다음으로 교사는 어느 한 지역교회에 소속된 자로서 자기네 지역교회에서 지식의 말씀(기독교 교리와 교회의 진리)을 가르치는 은사자들이다.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 지역교회의 은사자인 ‘교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사도행전 13장 1절에도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이 말씀처럼 안디옥의 지역교회에도 ‘교사’들의 은사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교사의 은사는 전체교회 또는 한 지역교회를 위한 일꾼으로 성경에 분명히 명시된 은사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계에서는 교사라는 은사가 실종되어 있는 상태다. 오늘날 지역교회들에서 칭하는 ‘주일학교 교사’라는 명칭은 성경에 언급된 교사의 은사와는 무관한 용어이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잘못 사용되고 있는 비성경적인 용어이다.   

 

한편, 교회의 은사와 관련하여 우주적인 총체적 교회를 세우시는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주신 은사자들에 대해 알아보자.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했다. 신약 성경에서 최초로 언급된 이 교회는 지역교회가 아니라 우주적인 총체적 교회를 가리킨다. 그리하여 음부의 권세를 가진 사탄이 이 교회를 없애려고 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은 은사자들을 사용하여 2천 년 동안 자신의 교회를 세우고 유지해 오셨다.

신약 성경 에베소서 4장에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은사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셨다 하였도다(엡4:7~8)”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이 말씀과 관련하여 4장 11절에는 우주적인 총체적 교회를 세우기 위한 은사자들, 즉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자, 교사에 관해 언급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은사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자신의 교회를 세울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사람들인 것이다. 

위에서 밑줄친 은사는 그 아래에 나오는 다섯 가지 은사자들, 즉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자, 교사를 가리킨다. 이들은 우주적인 총체적 교회를 세우기 위한 은사자들이다. 예컨대, 사도 바울이나 바나바, 실라, 디모데, 디도, 에바브라 등과 같이 전체 교회를 세우기 위한 순회 사역자들이다. 이들은 한 지역교회에 평생 안주하는 장로나 집사와 같은 직분자나 일반 성도가 아니라 순회하며 이동하는 일꾼들이다.

그리고 모든 한글 성경과 킹제임스흠정역성경(그리스도예수안에)은 에베소서 4장 7~8절에 나오는 ‘은사’라는 단어를 모두다 ‘선물’로 번역하였다. 다른 킹제임스한글 번역본들 즉, KJV성경전서(한국킹제임스성경협회)와 공인역성경(말씀지기)과 한글킹제임스성경(말씀보존학회)은 선물이 아닌 은사로 번역하였다.

물론 헬라어(원형)인 도레아나 도마를 직역하면 ‘선물’로도 번역할 수 있으나, 우리의 언어 문화권에서 “하나님의 선물을 불일듯 하게 하라(딤후 1:6)”는 말은 어색하며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때문에 “하나님의 은사를 불일듯 하게 하라”는 표현이 적합한 표현이다. 이처럼 성경은 정확하게 번역함과 동시에 영적으로 올바른 번역을 겸해야 적합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상술한 다섯 가지 은사자들 -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목자의 오역), 교사 - 은 교회의 직분자들이 아니라 은사자들이다. 은사와 직분은 서로 다른 영역이다. 은사는 은사의 정의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께서 교회의 성장을 위해 성도들에게 주신 특별한 영적인 능력이다. 직분은 지역교회의 질서와 통치를 위한 것이며, 지역교회의 직분은 장로와 집사밖에 없다. 성경에 장로와 집사의 자격은 디모데전서 3장과 디도서 1장에 명시되어 있다.

오늘날 개신교에서는 목사(목자의 오역)를 지역교회의 최고 직분자로 여기고 있으며, 각 교단의 헌법에도 그렇게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상술했듯이 목사(목자)는 직분자가 아니라 은사자이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 나오는 다섯 가지 사람들은 총체적인 교회에 대한 은사자들이지 지역교회의 직분자들이 아니다.

성경을 번역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개신교에서 목사 자격증을 소유한 자들이 번역하였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 나오는 ‘목자’라는 단어는 헬라어(원형)로 ‘포이멘’이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 18번 나오는데 모두 다 목자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경들은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만 ‘목자’가 아닌 ‘목사’로 오역시켜 놓았다. 이것은 개신교 목사들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성경적으로 뒷받침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변개시킨 사실이 밝혀졌다.

그 일례로 1977년에 ‘공동번역성서’가 국내에서 발행되었다. 이 성경은 국내 개신교의 목사들과 천주교의 신부들이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원어성경을 공동으로 합작하여 번역하고 발행한 성경이다. 이 성경에는 에베소서 4장 11절에 나오는 헬라어 ‘포이멘’을 목자로 올바로 번역하였다. 당시에 국내 개신교 목사들은 예전과 같이 한글 개역성경처럼 ‘포이멘’을 목사로 번역하고 싶었겠지만 천주교 신부들 때문에 목사로 번역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개신교의 모든 한글 성경들은 ‘목사’로 번역되어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짐작해 볼 때 에베소서 4장 11절에 나오는 ‘목사’라는 단어가 개신교에서는 ‘직분’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에베소서 4장 8~9절에 나오는 헬라어인 ‘도레아와 도마’를 선물이 아닌 은사로 번역할 경우, 목사는 직분이 아닌 은사로 인식될 것이 명백해 진다. 이 사실을 일반 신자들이 깨닫게 된다면, 목사들은 자신들의 존재감이 위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목사들이 성경을 번역할 때 ‘은사대신 선물’로 의도적으로 바꾸어 번역했다고 짐작된다.

한편, 한글 개역(개정)성경 디모데후서 1장 6절에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라고 쓰여 있다. 만약 밑줄친 하나님의 은사를 직역하여 ‘하나님의 선물을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라고 번역했다면 매우 어색한 표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또한 고린도전서 12장 9절의 ‘병 고치는 은사’를 ‘병 고치는 선물’로 직역해 놓았다면, 이것도 상기와 마찬가지로 성경을 처음 읽는 사람이나 초신자들도 선물의 의미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킹제임스 영어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한 킹제임스흠정역성경(그리스도예수안에 출판사)은 상기의 두 구절(딤후1:6, 고전12:9)을 은사가 아닌 선물, 즉 ‘하나님의 선물, 병 고치는 선물’로 부적합한 번역을 하였다. 그러나 KJV성경전서(한국킹제임스성경협회), 공인역성경(말씀지기), 한글킹제임스성경(말씀보존학회)은 선물이 아닌 은사로 적합한 번역을 한 것을 필자는 확인할 수 있었다. 

여하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원어성경을 정확하고 적합하게 번역해야 한다. 그러나 개신교의 목사들과 천주교의 신부들은 자기네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 성경을 일부 변개시켜 왔다. 더욱이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수많은 이단들도 성경을 자기네들의 사상과 교리에 맞추어 오역하거나 가감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상기와 같이 교사의 은사와 관련하여 올바른 번역과 부적합한 번역, 성경 변개와 오역 등에 대해 여러 가지를 짚어보았다.

지금까지 지역교회의 은사 활용과 관련하여 여러 사항들을 살펴보았다. 거듭난 성도들은 성경에 나타나 있는 은사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고, 또 지역교회를 성장시키고 확장(새로운 교회 개척)시키기 위해서는 은사가 잘 활용되어야 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은사를 활용함에 있어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것은 성경에 비추어서 성경적인 방법으로 제거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오늘날 지역교회에서 실종된 상태에 있는 교사의 은사를 제고하여, 성경 교사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올바른 기독교 교리와 교회의 진리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나아가 영적인 분별력이 있는 신자들은 지역교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온갖 비성경적인 은사들을 배격하고 오로지 성경에 나타나 있는 은사만을 준수하고 실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