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자료

가톨릭보다 더 '가톨릭스러운' 한국교회

제이비젼 2014. 11. 1. 21:41

성직 자처하는 목사, 방관하는 교인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느헤미야 연합 포럼…"교회 개혁자가 현대판 만인사제주의자"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와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은 종교개혁 497주년을 기념해,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연합 포럼을 개최했다. 배덕만 교수와 황병구 본부장이 각각 '루터, 왜 만인사제주의를 말했나', '한국교회는 과연 만인사제주의를 아는가'라는 주제로 기조 발제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루터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사제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사제라는 사실을 주장했다. 개신교는 종교개혁자의 후예임을 자부한다. 하지만 500년 가까이 흐른 지금, 한국교회가 중세기 가톨릭으로 돌아갔다는 비판을 받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교회 밖 사람들은 한국교회가 축복의 마중물로 가르치는 십일조와 로마 가톨릭의 면죄부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묻는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김형원 원장)와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복교연·강경민 상임대표)이 '루터, 한국교회 사제주의를 다시 말하다'라는 주제로 연합 포럼을 개최했다. 복교연 공동대표 이문식 목사는 한국교회가 개혁의 대상이 된 오늘날, 만인사제론에 대한 바른 이해는 '개혁교회'의 원형을 찾기 위한 시작점이라는 생각 아래 이번 포럼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포럼은 10월 30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열렸다. 패널로는 배덕만 교수(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황병구 본부장(한빛누리재단), 박득훈 목사(새맘교회), <크리스채너티투데이> 김은홍 편집인이 나섰다. 행사장에는 강경민 목사(일산은혜교회), 정성규 목사(예인교회), 남오성 목사(일산은혜교회)를 비롯해 신학생·목사·교인 등 50여 명의 다양한 참석자들이 자리했다. 포럼은 3시간 가까이 진행됐지만, 참석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패널들의 발언에 집중했다. 

배덕만 교수, "만인사제주의 적용 땐 허와 실 따져야" 

첫 번째 발제자로는 배덕만 교수가 나섰다. 그는 만인사제주의를 한국교회에 적용할 때, 허와 실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터의 만인사제론이 종교개혁의 시발점 역할을 한 건 분명하지만, 한계 역시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성경 해석 차이로 인한 교회 분열을 한계의 예로 들었다. 루터가 전통보다 성경에 근거해 자신의 주장을 전개한 것은 정당하지만, 성경에 대한 해석 차이를 중재할 방안은 제시하지 못해, 교회 분열이라는 현실적 한계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최근 교회 내 장로들의 기득권 다툼으로 내홍을 앓고 있는 교회들이 있다. 한국교회의 이 같은 상황을 지적했다. 배 교수는 목사의 전횡도 문제지만, 준비되지 않은 평신도들이 만인사제론을 근거로 교회 권력을 탐하는 것 또한 교회 개혁에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말했다. 교인들에 대한 교육과 관리가 병행되지 않은 만인사제론은, 자칫 교회를 무주공산으로 만들어 혼란만 가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병구 본부장은 배덕만 교수와 생각을 달리했다. 비기독교인을 만날 기회조차 없는 목사들보다 평신도들이 훨씬 더 사제에 가까운 삶을 산다고 주장했다. 한국교회 목사들은 교인들을 목양이나 훈련의 대상으로 여겼고, 교인들은 자연스럽게 목회자들을 영적 스승, 부모로 인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목회자들에 의한 개혁은 정권 교체가 아닌 정권 재창출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평신도들이 목회자를 비판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온전한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 참가자들은 6시 30분부터 모여들었다. 평신도, 신학생, 목사 등 참가자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질의응답 시간을 이용해 참가자들은 평소 품고 있던 생각을 꺼냈다. 주로 평신도들이었다. 루터교에 출신 교인은 한국 문화에 깃든 샤머니즘이 한국교회 안에서 성직주의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만인사제주의의 회복을 위해서는 교회론에 대한 공부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가톨릭보다 더 '가톨릭스러운' 한국교회 

기조 발제 후에는 모든 패널이 합류해 자유 토론을 진행했다. 패널들은 한국교회 안에 만연한 '신사제주의'를 주목했다. 목사들은 중세의 사제들처럼 영적 권위를 주장하고, 교인들 역시 목사의 권위에 종속돼 비판 의식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만인사제직의 바른 시행을 위해서는, 만인사제론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 패널들은 공감했다. 

박득훈 목사와 김은홍 편집인은 중세 가톨릭의 병폐가 한국교회 안에서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일부 목회자들은 신학 공부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성경 해석을 독점하고, 담임목사만이 공동의회를 소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목사들의 이런 해석은 오직 교황만이 성경을 해석하고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다는 로마 가톨릭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만인사제론에 대한 재해석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박득훈 목사는 사제와 평신도라는 전통적 구분을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목사든 장로든 집사든 직분에 상관없이, 개혁 의식을 가진 이들이 현재의 만인사제주의자라고 했다. 그는 "교회 개혁을 막는 세력은 비단 목사들만이 아니다. 사랑의교회를 봐라. 담임목사를 옹호하는 수많은 집사, 장로가 동맹 세력으로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얼마나 많은 감동을 주고 있나? 만인사제설은 사제와 비사제의 구분이 아닌 개혁과 반개혁 세력의 구분이다"라고 말했다. 

포럼은 오후 10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참가자들의 질문이 쏟아져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가량 늦어졌다. 질문은 다양했다. 만인사제론을 망각한 오늘날의 현실을 한탄하는 이도 있었고, 대형 교회에서 만인사제주의의 실현을 모색하는 사람도 있었다. 각자 처한 환경이 다른 만큼, 고민도 다양했다. 패널들은 뚜렷한 해답을 제시하진 않았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아픔을 우리의 아픔으로 여기는 것부터가 만인사제론의 시작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