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신약정경의 생성과 전례/딤후3:16

제이비젼 2014. 6. 13. 09:50

  초기 기독교의 업적들 중에서 가장 큰 중요성을 갖는 것은 정경의 확립이었다. 내외적인 환란 속에서 기독교의 본질을 전수하기 위하여 정경의 확립은 불가피한 것이었으며, 이후의 기독교의 존속을 위한 가장 중요한 사명이기도 하였다. 이 정경의 확립과 복음의 고수 그리고 이에 근거한 교회의 공적 고백문들은 이후의 기독교가 그토록 타락의 심연 속에 헤매이게 되었을 때에도, 교회로 존속할 수 있는 강력한 지침이 되었으며, 중세 카톨릭이 이 경전에 대한 세속적 해석을 더욱 심화할 때, 정경에 대한 수호와 복음의 회복을 위한 종교개혁 운동은 불가피하였다. 긴 세월 동안 교회의 가장 중요한 보물이 되어 버린 성경은, 지금까지도 진보적 신학과 이단들의 공격으로 그 정통성을 위협받고 있지만, 그 안에 숨겨진 복음의 능력은 수많은 신실한 종들로 하여금 성서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초대교회는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으로 복음 전파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도들이 죽게 되었고, 주께서 곧 오신다는 믿음도 희박해지면서 사도 시대의 영감을 점차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안팎으로 교회에 도전하는 세력들이 생겼다. 외부에서 오는 것은 로마 제국의 도전이었고, 내부로부터는 많은 이단의 공격이 일어나게 되었다. 교회는 이와 같은 공격에 대처하게 되었다. 우선 신약을 정경화하는 작업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1. 경전(Cannon)


 1) 경전의 기준-사도성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떤 문서가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가르친 신앙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느냐에 관심을 두었다. 사도권의 특징은 바른 말씀의 선포와 가르침에 있었다. 그래서 정경 형성의 가장 결정적인 기준은 사도성이었다. 사도 자신이 쓴 것이 아니면, 사도와 동역한 사람이 쓴 것이어야 했다. 실지로 신약성서의 대부분은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사도들이거나, 그 사도들에게 직접 들었던 내용들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가르친 신앙이 왜곡되는 것에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2) 의문시되었던 성경

 이러한 사도성에 비추어 신약성서 정경화 과정에서 의문시되었던 몇가지 성경이 있었다. 히브리서는 동방 교회에서는 바울적이라고 보았지만, 서방 교회에서는 비(非)바울적인 위조서라고 보았으나 결국 채택되었다. 야고보서는 저작권이 의심되어 문제가 야기되었지만 채택되었고 베드로후서는 2장과 유다서 사이의 유사성이 의심되어 배척하려 했으나 결국 채택되었다. 요한2,3서 역시 요한의 저작이었지만 초기 저술들에서는 인용이 없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요한계시록은 요한의 저작으로 폭넓게 인식되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유세비우스가 요한의 저작설을 강력히 의심함으로 말미암아 배척되었으나 결국 요한의 서신들은 정경으로 채택되게 된다. 반면 헤르마스의 목자나 디다케, 베드로계시록은 채택되지 못했다. 이는 헤르마스의 목자는 사도성이 의심되었고 디다케는 확실하지 못한 근원, 베드로계시록은 저작자의 진정성이 의심되었기 때문이다.


2. 신약 정경의 형성


 1) 사도적 교부 시대(100-140년)

 이 시기에는 심각한 논쟁이나 공식적인 선언이 없었다. 4복음서와 바울서신들이 수납되었으나 체계화되지 않은 시대였다. 이 문서들은 사도적 교부들의 인용문이었기 때문에 채택되었다.


 2) 영치주의 반대 시대(140-220년)

 정경에서 영지주의적 요소를 제거한 데 대한 반발이 일어났다. 특히 마르시온의 저술들이 의문시되었다. 이때 채택된 성경은 4복음서와 사도행전, 13개의 바울서신, 요한1서, 유다서, 계시록이고, 의문시되는 성경은 히브리서와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2,3서, 헤르마스의 목자와 디다케, 베드로계시록이었다. 이의 수납 근거는 교부들의 인용문이나 180년의 무라토리안 정경이었다.


 3) 최종 결집 시대(220-400년)

 대체로 4세기말에 최종적으로 현재의 신약성서와 똑같은 성경으로 결집되었다. 그러나 여러 학자들에 의해 의견을 달리하는 시기를 거쳤다. 오리겐은 4복음서와 사도행전, 13개 바울서신, 베드로전서, 요한1서, 계시록을 인정했으나, 히브리서나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2,3서, 유다서, 헤르마스의 목자와 디다케를 의심하였다. 유세비우스는 4복음서와 사도행전, 14개 바울서신, 베드로전서, 요한1서를 인정하였고,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2,3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헤르마스의 목자, 디다케는 의심하였다. 367년의 부활절 서신에서 아다나시우스는 현재 성경과 같은 목록을 만들었는데, 이는 동방 교회에서 채택되었다. 382년 서방 교회의 로마회의에서도 현재의 성경을 채택하였다. 이어서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전체 교회에서 현재 성경으로 공식선언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3. 사도신경의 유래


 1) 사도신경의 필요성

 영지주의의 예수의 육체 탄생 부인, 마르시온의 예수 탄생과 육신의 죽으심을 부인하는 등의 각종 이단 사설은 신조 형성의 촉진제가 되었다. 초대교회가 사도신경을 채택한 것은 거짓된 이단들과 구별되는 참기독교 교리를 믿게 함에 있었다. 이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신앙을 의미하는 것이다.


 2) 사도신경의 형성

 사도신경의 유래는 200년경부터 세례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성부·성자·성령에 관한 신앙고백을 하게 되었다. 사도신경의 첫 구절,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는 영지주의와 마르시온파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즉 하나님은 물질적인 요소를 포함한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고 계신 분인 것을 가르친다. 사도신경이 가장 상세하게 취급하고 있는 부분은 기독론이다. 그 이유는 마르시온과 영지주의의 주요한 공격이 기독론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세계와 일체의 실재를 다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다"는 것은 마르시온의 주장처럼 예수께서 지구 위에 갑자기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태어나셨다는 것을 강조한다.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을 명시함으로, 그리스도 죽음의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십자가에 못박히시고…돌아가시고 그리고 다시 부활하셨다"는 내용은 양식론을 부인하고자 하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예수께서 심판하시기 위하여 재림하신다고 선언함으로 마르시온의 잘못을 공박하고 있다.


 성령님에 대한 고백과 그 뒤의 고백들 역시 영지주의자들과 마르시온에 대하여 기독교 신자들이 정동 교회의 권위를 강조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신앙을 요약한 최고의 고백이다. 신앙은 반드시 표준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예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사도들로부터 전해져 온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정경이나 신경이 시대를 거쳐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완성되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이 성경을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1. 초기 제자들의 문서에 대한 이해

 초기 제자들이 문서 기록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초기의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생애와 교훈 또는 그 이외의 신앙적 문서들을 기록하여 남길 만큼 그렇게 문학적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아니었다.

 ② 초기의 기독교인들은 메시지를 전파하며 그 말씀대로 살면서 생활로 믿음을 증거하기 바빴기 때문에 그 메시지의 영구적 보존에 대해선 별로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③ 그 당시의 사람들은 대개 모든 말씀을 기록하지 않은 채 기억하는 일에 익숙해 있었다.

2. 성경의 문서화 이유

 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이어서 최초의 제자들도 하나씩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좀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남에 따라 기독교 신앙을 더 확고히 보전하기 위해 교인들을 가르치고 훈련해야 할 필요성도 생겨났다(임박한 종말의 쇠퇴).

 ② 로마의 교회박해가 문서의 필요성을 재촉했다. 기독교인들이 공개적으로 한자리에 모여 예배드린다는 것이 어려워짐에 따라 구전을 통해 기독교인들을 가르치며 훈련한다든지 입으로 말씀을 전파하는 일이 어렵게 되었다.

 ③ 초대 기독교인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그들이 회당의 예배 형식에 따라 봉독하던 구약성서 이외에 독자적인 기독교 문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3. 정경의 기준

 ① 사도성 : 이 책은 사도에 의해 쓰여졌는가 아니면 그 책의 저자가 자기의 책을 사도들의 책과 동일한 수준에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 사도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는가?

 ② 책의 내용 : 그 책의 내용은 정경의 지위에 오를 만큼 영적인 성격과 훌륭한 내용을 갖고 있는가?

 ③ 보편성 : 그 책은 모든 교회들 가운데서 모든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는가?

 ④ 영감 : 그 책은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인가?

4. 오리겐(Origen)의 정경구분

 ① 호모레고메나(Homolegomena) : 모든 교회에서 정경으로 인정받고 있는 책들. 4복음서, 바울의 13서신, 베드로전서, 요한일서, 사도행전, 계시록.

 ② 안티레고메나(Antilegomena) : 교회들 가운데서 다소 간에 반대를 받았던 책들. 히므리서, 베드로후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야고보서, 유다서, 바나바서, 허마스의 목자, 디다케, 히브리 복음서.

5. 원문을 확정짓는 원칙(본문비평의 척도)

 신약성서의 본문은 사본 전달과정에서 많은 와전을 겪음으로 많은 변형이 생겼다. 상이한 독법으로 기록되어 있는 여러 가지 본문을 앞에 놓고 수많은 사본이나 번역론을 참고해 가며 원문에 가장 가까운 본문을 찾기 위해 본문 비평의 척도가 생겼다.

 ① 여러 독법이나 다른 본문 중에서 좀더 짧은 것을 원문에 가까운 것으로 인정한다. 사본을 베끼는 필경사나 서기관들의 경우 원문에 있는 단어나 문구를 빼버리기보다는 오히려 설명을 위해 혹은 의미를 좀더 분명히 밝히기 위해 첨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② 좀더 어려운 독법이나 본문을 원문에 가까운 것으로 인정한다. 어려운 독법이나 본문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기 위해 설명이나 주석을 덧붙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③ 다른 독법이나 본문의 발전 과정을 좀더 잘 설명해 주는 본문을 원문에 가까운 것으로 인정한다. 이 원칙은 앞의 두 원칙과 어느 정도 중복될 수도 있다.

 ④ 저자 자신의 독특한 문체가 반영되어 있는 독법이나 본문을 원문에 가까운 것으로 인정한다. 이것은 거꾸로 필경사나 서기관들의 특징이나 그들의 문체가 반영된 본문은 원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의 문체나 어휘를 밝히는 데에는 흔히 성구사전(Concordance)의 도움이 될 수 있다. 본문 비평가들은 여러 가지 희랍어 사본들, 여러 가지 초기 번역본들 그리고 많은 초대 교부들의 신약 인용문들을 자료로 삼고 앞에서 말한 여러 원칙에 따라 원문에 가장 가까운 본문을 찾아 놓았다. 성경 본문에 대한 이러한 연구가 성경 본문에 대한 신뢰도를 약화시킨다고 우려할 사람들도 없지는 않겠으나 실제로 성경 본문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가져본 학자들은 오히려 성경 본문에 대한 확실한 신뢰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본문 비평은 사본들간의 차이가 중요한 본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별로 중요하지 않은 본문에서 그것도 사소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본간의 차이는 중요한 내용이나 단어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순이나 전치사 선택에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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