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삶·

불신자와의 결혼은 반대하는가?/고후6:1,4

제이비젼 2017. 5. 17. 01:00





  교회 안에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여성들이다. 어느 교회를 찾아가도 여성의 수는 남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그것이 여성이 남성보다 종교적인 부분에 민감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불신결혼이다. 교회 내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남성의 수는 결국 많은 미혼 여성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불신남성과의 결혼을 선택하게 만든다.

본인이 믿는 남성과 결혼하기를 원해도 결혼할 대상은 매우 한정적인 것이다. 결국 여기에서 탈출구처럼 제시된 것이 전도를 위해서 불신결혼을 한다고 하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이 아닌 인간들의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교회는 미혼여성들의 결혼에도 관심을 가져야 된다. 그리하여 남녀의 비율 때문에 발생하는 잘못된 상황을 조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번째 기관은 가정이다. 그리고 가정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곧 교회이며 믿는 부모와 언약의 자녀들로 구성된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께서 오직 주 안에서 결혼하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 메는 경우가 자주 있다. 한편 많은 기독교인들이 '전도'를 목적으로 한 불신 결혼이 정당성을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과연 옳은가? 일반적으로는 금지된 불신 결혼이 전도를 목적으로 한다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는 교회 안의 남자 인구에 비하여 여자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화 되고 있다.


1. 그리스도인의 결혼 모형-교회와 그리스도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친밀한 연합을 원형으로 한다 그리스도가 자기의 신부된 믿는 자들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생명을 속전으로 내어 주셨고, 그로 인해 신부는 순결함과 정결함으로 그리스도와 거룩한 연합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자신의 신부를 위한 깊고도 희생적인 주님의 사랑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 즉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함과 같이 해야 한다(엡5:25).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그리스도를 반영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오직 주 안에서만 결혼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계명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신 것이다. 


2. 불신자와의 결혼-반대하는 성경적 근거


 1) 구약성경의 근거

 하나님께서는 불신자와의 통혼을 제재하시기 위하여 믿는 자들에게 경고를 주신다. 이스라엘이 크고 강대한 일곱 족속을 무찌르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언약도 은혜도 베풀지 말라고 하신다. 특별히 불신자들과 결혼하는 것을 금하시면서 큰 경고의 말씀(신7:3, 4)을 주셨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성민이었기 때문이다(신7: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약속은 지키지만 불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움으로 보응할 것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에게 주신 이 명령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해당된다. 결국 우리는 불신자나 참신앙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과 하나됨을 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위하여 구별된 거룩한 백성(출19:6)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섬기기 원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이 불신자에게 끌리면 하나님을 섬기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영적 간음'이라고 표현한 다른 신을 섬기는 문제는 이방 민족과 언약을 세우는 일과 함께 친분을 맺는 데서 시작(출34:15)하기 때문이다. 신자와 불신자간의 결혼은 거룩한 자리에서 타협의 자리로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을 떠나는 불신의 자리로 하향 진행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하여 불신자와의 통혼의 위험을 강조하시며 경고의 말씀(수23:12,13)을 주시고 계신 것이다.


 2) 신약성경의 근거

 신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거룩해야 하며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동일한 훈계가 계속되어진다. 바울은 신자들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구별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불신자와 잘못 짝지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고후6:14-18)하고 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유업으로 받지 못한다(엡5:6,7)고 말한다. 


세상과 벗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약4: 4). 우리는 세상과 벗됨으로 인해서 성령을 근심되게 한다(엡4:30).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불순종의 아들들과 함께하지 말고(엡5:6,7) 빛의 자녀답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뜻을 찾아 행하라(엡5:8-12)고 촉구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불신자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원치 않으실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는 것도 바라지 않으신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신자와 세상의 자녀인 불신자와의 결혼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리라 생각할 수는 없다. 결혼으로 인해 맺어지는 친밀도는 친구에 비할 바가 못된다. 세상과의 벗됨이 성령을 근심케 한다고 하면, 세상과 짝하고 있는 불신자와 한 몸을 이루는 결혼에 있어서야 얼마나 하나님을 근심케 할 것인가.


3. 피상적 연합인 불신 결혼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은 선과 악이 이질적이어서 하나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이질적이다. 의와 불법 혹은 빛과 어두움이 결코 진정한 사귐을 가질 수 없듯이 불신자와 신자간에는 함께 멍에를 멜 수가 없는 것이다. 신자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나 불신자의 삶은 불순종과 무법의 삶이며,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지만 불신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벨리알(사탄)과 그리스도가 조화될 수 없듯이 서로 조화될 수 없으며, 신자와 불신자가 함께 있을 수는 있어도 일치 또는 하나됨은 이루지 못한다. 그러기에 신자와 불신자와의 결혼은 피상적인 연합일 수밖에 없다. 불신자들에게는 깊은 영적인 어두움이 있다. 


따라서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없고 진리를 행치 못한다(요일1:6).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사랑이 있고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진리를 반영하며 행해야만 한다. 진리야말로 우리를 하나되게 하는데 그리스도가 바로 진리이다. 

 어떤 의미에서 불신자를 전도하기 위하여 결혼한다는 주장은 옳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의 주된 목적은 전도가 아니라 결혼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 명백한 성경의 가르침을 배제하면서 '전도'라는 변명거리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별된 특별하고도 거룩한 자들이었다. 하나님은 이 특별한 구별과 위치를 오직 신자와만 결혼하라는 계명을 주심으로 해서 지키게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를 경히 여기고 오히려 이방의 딸들과 결혼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이 거룩한 언약이 불신자와의 결혼으로 인해 더럽혀졌음을 책망하신다. 


오늘날에도 많은 신자들이 결혼을 하나님의 명령이요 하나님과의 언약적 계약임을 생각지 못하고 단순히 두 사람 사이의 약속만으로 생각하고 주 안에서만 결혼하라는 명령을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며 하나님의 성전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안에는 성령께서 거하고 계신다. 따라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을 우리 마음대로 써서 성령을 근심케 해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이다.

 



 1. 멍에


 yoke(영), hfwm(모타), dmx(체메드), zugov"(쥐고스). 본래 두 마리의 소를 연결시키거나 또는 수레 등을 끄는 기타의 짐승들을 연결시키기 위해 그 목에 올려놓았던 나무로 된 틀. 이 말은 또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도 사용되었다(렘28:10; 왕상12:9;대하10: 4). 더나아가 종속과 노예 상태의 상징으로서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창27:40; 왕상11:28; 왕상12:11,14; 애3:27; 렘27:8; 호11:7). 본문에서의 이 단어는 레위기의 범세계적인 원리가 내포되어 있는 것과 유사한 원칙에 근거한다(고전 9:9). 여기에서는 신22:10이 보편화되어 영적으로 해석되어 있다.


2. 벨리알


 휴즈(Hughes)는 이 말을 '불법과 어두움의 왕자'로 정의했는데, 이것은 실제로 여기에서 쓰이기에 적합한 이름은 아니다. 이 말을 이와 같이 사용하는 것은 불가타역에 기인한다. '무가치함', '분별없음', '무법' 등에 해당하는 말로서 구약에서 자주 쓰인다. 일반적으로 사탄, 즉 악한 모든 것이 인격화된 전형으로 이해된다. 흑자는 이것을 적 그리스도, 더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의 적대자로서 설명한다.


3. 성전


 성전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중심지로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구약 시대의 성전은 모두 같은 예루살렘 장소에 세 개의 건축이 세워졌다. 이 성전은 솔로몬 성전과 스룹바벨 성전과 해롯 성전이다. 이 성전이 세워졌던 위치는 현재 회교사원이 위치해 있는 '바위사원'에 있다. 성전의 보편적 의미는 '구별됨'으로, 고대 이교도에게 '구별됨'은 성전의 본질적인 부분이었다. 엄격한 의미로 신전(templum)은 그리스의 '테메노스'처럼 구별된 영역으로 그 범위 내에서는 보통 신전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건물이 세워지곤 했다. 그곳은 문자 그대로 그 밖의 땅들과 구별된 곳으로서, 의식과 희생제사에 의해 거룩하게 성별되었다. 이스라엘의 성막 및 성전은 그 가운데 위치해 있는 본당 - 이 구절에서의 나오스-과 더불어 그 주위의 뜰과 개방된 공간도 갖고 있었다. 


4. 성민(聖民, 신7:6)


 vwdk ![(암 카도쉬, 거룩한 백성). 여기서 '거룩한'이란 모든 부패한 사람들, 또는 부패한 사물로부터 구별되어 전적으로 여호와께 바쳐졌다는 뜻이다. 신약에서는 '성도'라는 용어로 이러한 구약의 용례를 따라 쓰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있는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다 빈번하게 쓰이고 있다(빌1:1; 엡1:1;엡3:8,18; 딤전5:10).


5. 기독교회의 결혼관


 초대교회는 다소 독신 생활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교훈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당시 이교계(異敎界)의 도덕적 부패로 보아 그리스도인들이 반동적으로 취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중세 기독교회의 결혼관에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결혼이 7가지 예전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제사장은 결혼식전을 주장함에 있어서 그 결혼이 성서와 교회법에 비추어 합법적인가 또는 비합법적인가를 결정하는 권리를 가졌었다. 그리고 합법적인 결혼은 상속, 재산, 유언등에 직접 영향을 받는 일이 많았다.


 동시에 교회는 비합법적인 결혼을 결정하는 권리도 가졌었다. 가령 혈족혼(血族婚)의 문제, 기만이나 부도덕한 약혼, 교직의 결혼에 관한 문제들이었다. 

 그 후 신교가 일어난 후에는 로마 교도와 이 결혼 문제로 인하여 심각한 가정 문제를 야기 시켰으며, 교회와 민법과의 결혼관의 차이도 여러 가지 복잡한 사건들을 일으켰다. 

 서교회(西敎會)와 교회법전에서 금지되어 있는 결혼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① 폭력과 기만, 술책 등을 이용한 결혼, 약혼 의식이 명확하지 못한 것, 혼인 전의 범죄, 임신 등을 제사장에게 숨긴 것.

 ② 종교가 서로 다른 것, 곧 한쪽이 이단자인 경우.

 ③ 현재의 의무 직책상 결혼 할 수 없는 경우, 곧 동정(童貞)하겠다는 서약을 한 사람의 결혼.

 ④ 혼인 전의 범죄, 곧 당사자의 간통, 또는 살인자가 피해자의 처나 남편과 결혼하는 경우. 그러나 자복하여 용서함을 받은 자는 허용되는 일도 있었다.

 ⑤ 혈혼 및 신앙상 근친 곧 교부모(敎父母) 되는 사람과 교자녀(敎子女) 되는 사람 사이의 결혼은 금하였다. 로마 교회에서는 한때 육등친까지 금한 일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사등친까지 금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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