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C와 새로운 예배 / 강사 : 임 태 종 목사
21C와 새로운 예배
Ⅰ. 21세기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1. 인류 문명의 발전
인류 문명은 세 번의 큰 혁명을 겪었습니다. 원시 사회에서 농업 사회로 전환되는 제 1혁명과 농업 사회에서 산업(공업화) 사회로의 제 2혁명, 산업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의 정보화 혁명입니다.
1) 제 1혁명(원시사회 → 농업사회)
무리를 지어 다니면 열매를 따먹거나 짐승을 잡아먹으며 살았던 원시인들은 씨앗이 땅에 떨어져 열매 맺는 것을 발견한 이후 한 곳에 머물러 사는 정착 생활을 시작합니다. 농경 사회에서는 인간이 자연의 지배를 받으며 자연을 두려워하고 숭배하였습니다. 또한 힘이 지배하던 사회로 힘있는 자는 군림하는 계급이 되고 힘이 없는 자나 전쟁에 진자는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즉 운명적으로 핏줄이 결정되는 계급 사회였고, 노예제 사회였습니다. 지식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입으로 또는 기록으로 전해주는 "전수의 지식" 시대였습니다.
2) 제 2혁명 (농업사회 → 산업사회)
18세기 시작된 산업혁명과 함께 인류 문명은 공업화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기계와 기술을 바탕으로 한 대량 생산의 길이 열리면서 "핏줄 귀족" 대신 새로운 귀족으로 "자본가 계급"이 대두되었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1914-1918) 이후 놀라운 속도로 과학이 발달되면서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3) 제 3의 혁명(산업사회 → 정보화 사회)
80년대 말부터 급속히 진행되기 시작한 정보화 사회는 정보와 지식이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되는 사회로 정보를 소유한 자가 승자가 되는 사회입니다. '무엇을 알고 있느냐' 보다는 '내가 원하는 지식이 어디에 있느냐'를 알아서 그 정보를 조립, 조합하여 새로운 지식으로 재창조하는 시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깊고 좁은 전문지식보다는 지식 전체에 대한 넓은 안목이 더 필요하며, 변화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는 아이디어가 풍부한 사람, 꿈과 환상이 가득한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시대 변화를 정확하게 읽고 어떤 변화에도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21세기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 등 온라인으로 연결된 사이버 스페이스의 '네티즌(Netizen)'들이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인구 이동에 따른 민족의 혼합으로 민족의 개념은 희박해지고 전 세계는 하나의 '세계 시민'으로 재편성될 것입니다. 즉, 21세기에는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면에서 공간, 지리, 거리 제한이 사라지고 하나의 세계가 됩니다.
2. 정보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정보화 사회란 정보와 지식이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되는 사회입니다. 또 생산을 담당한 사람도 정보에 소홀히 하면, 전쟁에 뒤떨어져 훌륭한 생산 수단을 갖고도 망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런 정보화 시대에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절대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정보화 시대는 바로 "조립과 조합의 지식", "창조의 지식" 시대인 것입니다.
농경사회 - 전수의 지식
산업화 사회 - 발견과 발명의 지식
정보화 사회 - 조립, 조합의 지식, 창조 지식
그렇다면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은?
바로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탐색의 능력입니다. 이제는 '무엇을 알고 있느냐'보다 '내가 원하는 지식이 어디에 있느냐'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초 지식만 지니면 필요한 다른 지식은 언제든지 컴퓨터에서 꺼내 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는 바로 아이디어가 풍부한 사람을 뜻하며, 아이디어는 꿈과 환상이 풍부할수록 힘차게 솟는 것인 만큼 정보화 사회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바로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깊고 좁은 전문 지식보다 지식 전체에 대한 넓은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만 성공합니다. 이러한 넓은 안목은 또 변화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시대변화를 정확하게 읽고 어떠한 변화에도 당황하지 않고 슬기롭게 대처하는 사람이 21C에 성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3. 미래 정보화 사회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정보화 사회는 컴퓨터의 발명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시작단계입니다. 어떻게 바뀌는 것인가는 예측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우리가 예측하는 것보다 더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반면에 미국의 유명한 전기 회사인 웨스팅 하우스사를 창립한 조지 웨스팅 하우스는 예측하기를 어떤 교통기관도 최대 시속 100마일 (160KM)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뉴튼도 60KM 이상 달리면 마찰열에 의해 전소된다고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그 예측은 형편없이 틀린 것입니다.
예측 최고속도 160KM
자동차 300 KM / H
TGV 400 KM / H
비행기 900 KM / H
1) 연대별 예측 :
- 2010년 모든 수술은 로봇이 맡는다.
- 2020년 사막이 논밭으로 바뀐다.
- 2030년 화산이 에너지 원천이 된다.
- 2070년 바다 밑의 농장 : 폭증하는 인구로 인하여 지상에서 거두는 식량만으로는 크게 부족하게 되고, 21C초부터 대대적인 해저 농장 개발이 시작되어, 해저 자원은 인류의 가장 중요한 식량자원이 됩니다
- 2080년 기가 라이스 - 초대형 곡물 : 20세기말부터 슈퍼라이스 등 식량의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21세기 중반부터 수박 만한 감자, 토마토 만한 크기의 쌀 등, 기가 식품이 인류의 식량난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 2090년 우주자원시대 : 21세기는 본격적인 우주자원 개발시대입니다. 우주로 진출한 외계의 자원을 이용하는 시대를 열게 됩니다.
2) 정보화의 세계는 4차원의 세계입니다.
- 1차원은 점,
- 2차원은 점의 연결
- 3차원은 공간 - 선의 연결
- 4차원은 공간을 초월한 단계입니다.
* 인류의 역사는 바로 차원의 진화과정이었습니다.
1차원 (점) 5,000년 → 2차원(선) 500년 → 3차원(공간) 50년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메소포타미아문명, 황하문명, 이집트문명, 인더스문명 등 민족의 대 이동, 정복 등 끊임없는 이동이 이루어져 왔지만, 세계를 놓고 볼 때 극히 제한된 지역 안에서 움직였던 것이고 보면, 지중해권, 잉카, 마야 등 신대륙 인도, 서남아시아권 중국, 동아시아권은 5천년의 역사를 인류는 1차원의 세계에서 살아온 셈입니다. 그후 항해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러한 시대가 5백년 가까이 계속되었습니다. 육지나 바다를 통해 여러 문명이 선박으로 연결되는 2차원 시대가 열렸고, 20세기 초 비행기가 등장하여 지상, 해상이 아닌 공중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인류는 전 세계를 무대로 삼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인터넷 등 온라인으로 연결된 사이버 스페이스의 '네티즌(NETIZEN)'들이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하게 될 것입니다.
네티즌에겐 민족의 구분이 없다.
네티즌은 피부색을 초월한다.
네티즌은 남녀 차별을 하지 않는다.
네티즌은 빈부차이를 모른다.
그러므로 네티즌의 세계는 진정한 민주주의 세계이다.
인구 이동에 따른 민족의 혼합으로 민족의 개념은 희박해지고, 그 결과적으로 전 세계는 하나의 '세계시민'으로 재편성 될 것입니다. 즉 21세기는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면에서 공간, 지리, 거리 제한이 사라지고 하나의 세계가 됩니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의 개인은 정보를 취득하고 탐색하고 교환하며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장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통신 가능
유선으로 전 세계와 연결
어떠한 자료도 녹화, 녹음, 저장하여 언제라도 재생
문서, 도면을 전 세계 어느 곳과도 교환할 수 있습니다.
강력한 전산처리 시스템
전 세계를 온라인으로 연결
전 세계 라디오 뉴스
국경 넘는 전파 다양한 프로 - 위성방송, 유선방송 VIDEO GAME, 전 세계 뉴스
3) 정보화의 사회는 멀티미디어 사회입니다.
가) 멀티미디어 배경 : 멀티미디어란 무엇인가?
1980년 중반부터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 "뉴 미디어"라는 용어의 의미는 그 범위가 매우 폭 넓게 사용되어 왔는데, 멀티미디어의 특징은 영상, 문자, 음악 및 음성 등 다양한 정보 형태를 복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 기계와 기계 사이에 쌍방향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정보 교환을 매개하는 수단이라는 점입니다. 세 번째로 정보의 전달뿐만 아니라 가공, 처리, 축적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멀티미디어입니다.
멀티미디어는 전송로의 성질에 따라 유선계, 무선계 및 패키지계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유선계는 단말기가 호스트컴퓨터와 전용회선이나 일반 전화 회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을 말하는데, 구체적으로 비디오 텍스나 쌍방향 케이블 TV, PC 통신 팩시밀리 등이 있습니다. 한편, 무선계는 전파에 의해 이용자 사이를 연결하는 미디어로서 위성통신과 자동차, 휴대전화 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패키지계는 유선 또는 무선으로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쌍방향성 커뮤니케이션을 행하는 미디어로서 비디오 게임과 워드프로세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밖에도 멀티미디어를 분류하는 여러 가지 다른 기준이 있는데, 예를 들면 정보의 유통형태에 따라 퍼스널계, 매스컴계, 미피 중간계 미디어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즉 송신자와 수신자가 한 사람인 대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의 퍼스널계, 한 사람의 특정 송신자가 불특정 다수의 수신자에게 커뮤니케이션을 행하는 매스컴계, 또한 전달되는 정보의 표현 형식에 따라 분류하여 영상계 미디어, 음성계 비디오 및 문자계 미디어로 구분할 수 도 있다. 그러나 현재 멀티미디어의 발전에 따라 이러한 분류로 모든 미디어들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이들 성격을 복합적으로 갖는 멀티미디어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멀티미디어 시대의 도래가 우리들의 생활에 미치는 파급 효과와 영향을 생각해 봅시다.
나) 멀티미디어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멀티미디어가 사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은 다음 다섯 가지 항목의 관점에서 고찰할 수 있습니다.
(가) 주체적인 정보처리로 인한 영향
멀티미디어 서비스에 의해 제공되는 다양한 정보를 접하는 사용자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주체적으로 원하는 정보를 선별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주체적인 정보처리에 따라 발생하는 영향은 다음과 같이 고찰할 수 있습니다.
* 컨트롤감의 증대
컨트롤감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예로서 컴퓨터 게임을 들 수 있습니다.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는 사용자는 자신이 버튼을 누르면 자신이 조종하던 비행기에서 폭탄이 발사되어 가상의 사물을 폭파시키는 등, 자신의 사소한 기기 조작으로 무한한 컨트롤을 수행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컨트롤 감의 증대가 실제 생활에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현실에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컨트롤되지 않기 때문에, 현실보다는 멀티미디어 서비스에 의해 제공되는 허구를 더욱 좋아하며 무기력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 집중도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을 때, 그것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생각지도 않게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을 경우 커뮤니케이션을 제어하고 있다는 컨트롤감, 커뮤니케이션에 열중하는 인지적 태도, 호기심 등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다만 너무 열중한 나머지 다른 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거나 통상의 시간관념을 상실해 버릴 수 있습니다.
* 멀티미디어와의 일체감
사용자는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이용함으로 다양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동시에, 대화형 조작으로 멀티미디어 장비 또는 원거리 사용자와 상호 작용을 수행하기 때문에, 사용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멀티미디어 장비 및 서비스가 자신을 대신하는 또 하나의 독립된 객체라는 의식을 갖게 되며, 이는 곧 자신과의 일체감을 통하여 친숙한 상호 교감을 갖는 심리 상태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 동기유발
종래의 미디어에서는 언제나 수신자의 입장에서 있었던 것과는 달리, 멀티미디어는 이용자 스스로 능동적인 정보처리를 하도록 요구합니다. 그 결과 능동적인 자세가 습관화되어지며, 다른 상황에서도 능동적인 태도를 취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나) 통신망의 확대가 가져오는 변화
* 대인관계의 영향
멀티미디어가 대인 관계의 양을 확대합니다. 예를 들면 PC 통신에 의해 새로운 대인관계를 구축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기존의 대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친구와 지인의 수가 늘어난다는 면에서나 접촉의 기회가 증가한다고 하는 면에서 멀티미디어는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지만 멀티미디어 네트워크를 통한 대인 관계는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대인 관계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멀티미디어를 이용하여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셀러리맨도 가끔씩은 회사에 들러 상사나 동료와 만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아마도 양의 문제라면 멀티미디어만으로 충분히 만족했을 것입니다.
* 사회적 발달의 영향
예를 들어 비디오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어린이들은 비현실적인 게임의 등장 인물과 접촉할 뿐 현실 세계의 사람들과는 소원해지기 때문에, 현실에서 다른 사람과 상호 작용하면서 획득해야 할 사회적 능력을 학습하지 못하고 사회적 발달이 저해된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다) 정보량의 증가로 인한 영향
멀티미디어를 통해 얻어지는 정보의 양아 증가함에 따라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영향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① 멀티미디어는 여러 가지 다양한 정보를 대량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그 이용에 의해 지식이 넓혀져 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② 사용자의 성격 및 환경에 따라 멀티미디어 서비스의 이용에 의해 사용자의 창의성이 촉진될 수도 있으면, 반면 너무 컴퓨터에 의존하는 등의 이유로 인해 창의성 저해가 발생 할 수 있습니다.
③ 정보량이 팽창하고 각각의 정보 수명이 대단히 짧아지므로,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한 시간적 긴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④ 멀티미디어에 의해 제공되는 많은 정보 중에서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취사 선택하는 판단력과 결단력이 요구되는데, 정해진 시간 내에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빈번해지면 양자 택일적인 사고 방식을 갖기 쉬워집니다.
⑤ 방대한 양의 정보를 처리할 경우 정신적인 피로가 빨리 발생하며, 이는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⑥ 멀티미디어의 이용으로 인해 발생한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누적되는 경우, 사용자는 극단적인 경우 우울증의 증상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라) 간접 체험의 확대로 인한 영향
멀티미디어가 창출해내는 의사 환경 속에서 생활함으로써 간접 체험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영향들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 현실과 허구의 혼동을 초래할 수 있는데, 이는 나이가 어릴수록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현실 인식의 약화 현상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 고정 관념의 조장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즉 멀티미디어가 만들어 내는 의사 환경의 세계에는 현실과 다른 편향성이 있을 수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이용자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 정보의 시각화에 의한 영향
멀티미디어 서비스에 의해 정보를 영상, 음성, 문자, 도형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게 되는데, 이로 인해 사용자의 이해를 촉진시킬 수 있고, 시각적 효과에 의해 공간 지각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공격성이 증대 될 수 있는데, (일본 어린이 TV만화 애니메이션 500여명 발작증세 - 입원소동), 이는 주로 거부감 및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영상을 지속적으로 접할 때 발생합니다. 또한, 개인적인 장소에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영상 및 음성 정보도 접할 수 있게 되어, 도덕성이 저하될 수도 있습니다.
Ⅱ. 미래 정보화 사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21세기는 과거의 잣대로는 도저히 잴 수 없는 사회로써 기존의 권력에 의해 통치되어 온 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가 됩니다.
1. Paradigm 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패러다임이란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사고방식, 행동, 습관이 시대적 공유의 틀"을 일컫는 것입니다. 지역적 사고에서 세계적 사고로 변화되고, 다원적 사고에서 동질적 사고로, 지역사회 가치 윤리에서 새로운 가치 윤리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과거의 가치관이 붕괴되고, 예측 불허의 시대, 양면 사고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이러한 지금까지 신봉해온 가치관이 차츰 허물어지면서, 그러나 좀 더 자유로워지기 위한 노력은 계속 될 것이며 '원시사회로의 복귀'란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미래는 예측 불허의 시대입니다. 미래의 모든 것(가치관, 규범 등)은 이 양극 사이의 모든 가능성을 갖게 됩니다. 미래는 양면 사고의 시대입니다.
2. 미래 사회의 주역인 X세대를 인정해야 합니다.
미국 사회는 매 19년마다 괄목할 만한 인구의 변화가 있었는데, 1945년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사회가 안정되면서, 1946년부터 출산율이 크게 증가하여 베이비 붐 세대(1946-1964년)를 맞이합니다. 그 후 출산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1965년부터 베이비 버스터(Baby Buster)시대 (1965-1983년)가 됩니다. Buster는 "망가뜨리는 사람, 부수는 사람'이란 뜻으로 "베이비 버스터"란 출산되는 아기의 수, 또는 출산 증가율이 떨어지는 시대에 태어나 수가 적은 세대란 뜻입니다.
1991년 이들을 소재로 한 캐나다의 작가 더글라스 쿠플랜드가 쓴 소설에 'X세대'(X Generation)라는 제목을 붙임으로 X 세대라는 용어가 시작되었고, "Gen X"라고도 합니다. 이 호칭을 최초로 사용한 쿠플랜드는 자신들에 대한 호칭을 거부한(X) 세대이기 때문에 X세대 즉 알 수 없는 세대라는 호칭을 붙였다고 합니다. 미국의 여론 및 시장 조사 기구인 B R G(Barns Research Group)는 너무들 제멋대로이고 너무 서로 달라 정체가 '보이지 않는 세대' (The Invisible Generation)라고도 하였습니다. 이 세대는 기성 세대를 존경하거나 인정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사고를 중시하며 사회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며 자유 분방한 삶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패러다임이란 한 사람의 사고 방식이 아닌 한 세대, 사회 전체를 주도하는 것이기에, 문제는 심각하고 이들에 대한 이해와 수용, 공존의 길을 열어야 합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신세대라는 말로는 부족해 '신인간' 심지어는 '신 인류'라고 까지 뛰어 넘을 수 없는 세대 차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 세계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세대가 바로 한국의 4, 50대입니다. 이들은 농경사회에서 태어나 기본적인 의식의 뿌리를 농경 사회에 두고 있으면서도 산업화 사회에서 국가와 가정을 위해 청춘을 바쳤으며, 정보화 사회 변혁을 겪기도 하지만, 이에 적절히 대응하며 복합, 혼합적 문화 성격을 형성하여 다양한 21세기 사회에 단연 돋보일 수 있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3. 새로운 가치관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세대에게 가치관을 물려주어야 할 때입니다. 개인 지향적인 사회에 "공동체 의식"을 심어 주어야겠고, 너와 내가 공존하는 사회에로의 길을 위하여 "봉사의식"을 심어주어 다가오는 21세기는 다양한 형태 속에서도 일체감을 이루어 온 세계가 함께 어우러져 서로 돕는 아름다운 하나의 세계를 그려나가 건강한 지구촌이 되도록 사회 전반의 의식 구조 조정을 이루어야겠습니다.
4. 교회의 대응
- 변화하는 시대에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를 어떻게 전파할 것인가?
1) 변화를 무서워하지 말라
- 살아 있는 것은 변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2) 변화를 파악하라
- 재미있다.
3) 변화를 주도하라.
- 능력을 발휘하라
4) 변화를 복음화의 기회로 선용하라.
- 문화, 역사의 방향을 제시함으로 사회를 이끌어 가는 역사적 사명을 감당하라.
5) KNOW WHAT - 복음과 세상을
KNOW HOW - 복음화 - 성령의 역사(기도, 전도로)
KNOW WHERE -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 불신 영혼, 불신 민족에게
KNOW WHEN - 항상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Ⅲ. 예배는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개혁되어져야 한다.
예배는 시대에 따라 드려지는 모습이 달라져 왔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장막에서 드린 제사와 바벨론 포로 이전의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린 제사와 바벨론 포로 이후 회당에서의 제사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인류사회는 구전(음성)시대에서 문자시대로, 문자 시대는 손으로 기록하는 문자시대에서 인쇄시대, 인쇄시대에서 멀티미디어(음성 + 문자 + 영상)시대로 달라져왔습니다. 구전시대에는 성경을 보고 읽고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주보도 없었습니다. 모든 예배는 음성으로만 드려졌습니다. 그러나 기록시대인 회당예배는 말씀이 읽혀지고 낭독되어졌습니다. 즉 음성 + 문자의 복합된 예배였습니다. 인쇄시대에 와서 주보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멀티미디어 시대인 지금은 음성 + 문자 + 영상시대입니다. 이제는 들려지고 읽히어지고 보여져야하고, 재현되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면에서도 예배는 개혁되어져야 합니다.
현대사회는 컴퓨터와 전자 기술의 발전에 다라 위성방송, 문자방송, 케이블 TV등 각종 미디어와 함께 문자, 음성, 데이터, 영상 등을 복합 처리하는 멀티미디어의 보급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환경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미 경제, 산업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이러한 환경변화를 실감할 수 있으며, 다양한 미디어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증대되고 있습니다. 현대 문명의 상징인 컴퓨터와 뉴 미디어는 이제 생활의 필수적인 도구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를 매개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멀티미디어가 교회에 미치는 영향
이러한 시대의 변화와 그에 따른 미디어의 변화가 교회에 미치는 영향과 그것에 대한 대처방안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잠시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성서와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세계사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상호변화의 역사를 창출해 왔습니다. 삶의 변화는 무엇보다도 "의사전달수단(COMMUNICATION MEDIUM)"의 발전과 비례하여 결정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다가오는 21세기는 금세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진 세계가 될 것임을 내다보는 근거도 바로 멀티미디어라는 의사 전달 수단의 혁신적 변화를 전망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교수인 도널드 메서(D. E. Messer)는 "정보 고속 도로망은 하나님의 위대한 선물"이라고 전제하면서, 21세기를 맞이하는 교회와 신학기관은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임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특히 신학 수업은 '사이버 세미나리'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면서, 미국 아이리프 신학 대학원(Iliff School of Theology)을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습니다. 반면 말콤 머거리지(M. Muggeridge)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와 미디어]라는 저서에서, 인류 문명에 미치고 있는 미디어 전반, 특히 텔레비젼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새로운 매체로서의 멀티미디어에 대한 입장을 쉽게 천명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의사전달 수단으로 새로이 나타난 멀티미디어에 대한 정당한 신학적 이해가 요청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우리의 논의를 전개합니다. 그 첫 번째는 오늘날과 유사한 문명의 전환기적 상황에 처해 있었던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루터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 개혁자 로마카톨릭 교회의 태도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과연 이들은 "인쇄"라는 뉴 미디어를 교회적 차원에서 어떤 목적으로 어떤 범위로 사용했는지를 고찰합니다. 우리는 이 논의에서 뉴 미디어에 대한 정당한 접근 자세를 정리할 것입니다. 또 다른 한 방향은 멀티미디어가 던져주는 신학적 의미를 두 가지 차원에서 분석함으로써 교회와 신학의 변혁에 기여할 수 있는 점들을 찾아보려 합니다.
1) 인쇄매체와 종교개혁
월커 옹(W. ong)과 마샬 맥루언(M. Mclunhan)의 획기적인 업적을 근거로 의사전달 매체의 변천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 토마스 부머샤인(Th. Boomershine)의 말대로, 인류는 의사전달의 구전시대로부터 필사시대, 음성과 인쇄가 병행하던 시대, 음성이 사라지고 인쇄가 주도적인 시대, 그리고 오늘날의 전자시대로 변천해왔습니다. 이와 더불어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이를 받아들이는 신학적 해석의 틀 역시 변화했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그 가운데서 16세기 종교 개혁 당시 인쇄 미디어에 대한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회의 서로 다른 입장을 보다 자세히 분석해 봄으로써 오늘날의 새로운 매체인 멀티미디어에 대한 보다 정당한 신학적 이해는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전망해보고자 합니다.
미시건 대학교의 역사학자 엘리자베스 아이슈타인(E. L. Einstein)에 의하면 1517년부터 1520년 사이 약 3년 어간에 마르틴 루터의 저작 30권이 30만부 정도가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간단한 자료를 보아서도 종교 개혁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인쇄에 의한 출판행위가 얼마나 밀접히 관계되어 있는 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위클리프나 발도 주의자들과는 달리 루터 주의자들은 처음부터 인쇄물의 아들이었던 셈입니다.
루터는 인쇄라는 의사 전달 수단을 통해서 유럽인들의 마음에 정확하고 표준화된,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심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루터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쇄물을 통해서 엄청남 대중 독자층을 확보했고, 이로써 자신의 혁명적 사상의 가치를 강력히 제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루이스 홀본(Louise Holborn) 자신의 저서 [인쇄]에서 규정하고 있듯이 "종교 개혁은 인쇄출판의 도움을 받은 최초의 종교 운동"이었습니다. 물론 루터 이전에도 터키인들과 싸우는 십자군을 지원하기 위해서 인쇄업자들을 소집한 바는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루터처럼 '뉴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특히 교황제도에 대항할 때, 글뿐만 아니라 만화까지 인쇄하여 출판할 정도였습니다. 그 영향력은 지극히 자극적이었기 때문에 루터는 16세기 독자들로부터 깊은 열정과 관심을 자아낼 수 있었습니다.
루터가 이처럼 과감하게 인쇄매체를 이용하게 됨에는 그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인쇄란 '하나님이 주신 최상의 은총행위'이며 "세상이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불꽃"이기 때문에 "이로써 복음사역을 전진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그에게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한편 당시 독일인들에게 구텐베르그의 인쇄술 발명은 특별한 의미를 받아들여졌습니다. 즉 획기적인 활판 인쇄술의 발명은 로마 카톨릭의 구속으로부터 독일을 해방시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참된 종교의 빛을 가져다 준 역할을 한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루터가 인쇄물을 통해서 교황청을 행하여 신랄한 공격을 퍼부음으로써 더욱 확고해 질 수 있었습니다. 인쇄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 인식과 더불어, 인쇄는 신의 뜻에 의한 도구라는 생각이 더해짐으로써 인쇄매체에 대한 종교 개혁자들의 자세는 적극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특히 중세에는 학문이 성직자들에 의하여 독점되다시피 했었는데, 그것은 기록된 문헌 자료의 부족현상에 그 근본적 원인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루터의 종교개혁에 인쇄물의 영향이 어떠했는지를 확인하는데 빠트릴 수 없는 하나님의 사건을 소개해야 할 것입니다.
비텐베르크(구텐베르그 - 인쇄(1434년), 비텐베르그 - 종교개혁(1517)) 성곽교회 정문에 붙였다고 알려진 95개 조항 반박문은 모든 비텐베르크 시민들이나 전 독일 국민에게 보이려고 했던 문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시의 학자들간에 있었던 하나님의 관례로써 특정 주제에 대하여 자신과 다른 입장에 있는 자들을 향하여 토론 모임을 가져보자는 제안 행위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신학교수로써 루터가 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학문적 행동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독일어로 쓰지 않고 라틴어로 썼던 것도 그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 개혁사에 있어서 하나의 신비스러운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라틴어로 쓰여진 그리고 학문적 논쟁을 위한 제안문이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그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국경을 넘어서까지도 그 내용이 전달 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먼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반박문이 인쇄 배포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1517년 12월에 거의 동시적으로 Nurenberg, Leipzig, Basel 세 곳에서 출판되어 당시 라틴어를 아는 평신도 엘리트에 의해서 읽혀졌습니다. 이들은 시내 중심에 위치한 워크숍에 모여 토론하였으며 번역하고 책행상인들은 이를 가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판매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1517년 10월 31일이 "중세교회의 종말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교회당에 붙인 반박문 종이 한 장으로써는 가능할 수 없었던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루터가 취했던 전통적 방식의 신학 논쟁이 이루어지지 않은 대신, 뜻밖에도 인쇄미디어를 통해서 전적으로 새로이 나타난 대중적인 신학 토론을 전 유럽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에게 인쇄 미디어는 무엇보다도 교황제도에 대한 저항 행위를 가속화 시킬 수 있었고, 정통으로 받아들여진 신조와 예배 형식 및 기구를 변혁시키는 매체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는 라틴어 성서를 자국어 번역본으로 인쇄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격히 제안하는 이중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레오 10세는 라테란 공의회 칙령에서 히브리어, 헬라어, 아라비아 성서로부터 라틴어로 번역하는 것과, 라틴어를 자국어인 독일어,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하는 것에 대하여 철저한 통제와 검열을 실시하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번역본들이 신자들의 일상 생활 뿐만 아니라 신앙에 대하여 잘못된 내용을 제시할 수 있거나, 실제로 잘못된 것으로 빠진 경우가 나타났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국어 성서 번역에 대한 통제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루터의 팜플렛들을 집중적으로 검열하였습니다. 이것은 반종교 개혁 운동과정 중에서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1559년 바울로 4세의 교황 칙령에는 초기의 금지 조항이 되풀이 되어있고, 1564년 피우스 4의 칙령에서 처음 공포된 10개항 일반 규율에는 성서 인쇄뿐만 아니라 성서 읽기까지도 검열의 한 조항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카톨릭 당국의 정책과는 달리 개신교회는 자국어 성서번역 뿐만 아니라, 경건 서적 및 교리 문답서 등을 인쇄 배포하였습니다. 로마와 관계를 끊은 모든 영주들은 성서 번역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고, 그 결과 개신교 지역의 문화는 인쇄 출판에 의하여 주도되었습니다. 이같은 흐름이 강화되면서 중세 내내 사용되어 온 벌게트 성서는 마침내 설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엄격히 말해서 투쟁적 개신교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기보다는 바로 인쇄문화가 가져 온 혁명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상의 논의에서 몇 가지 중요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뉴 미디어는 수용하는 자의 태도 여하에 따라 그 고유한 역할이 결정됩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전통을 수호하는 자신의 기존 질서를 강화시키는 한에서만 사용하는 도구 이상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상이 될 때, 그것은 무질서를 일으키며 전통과 권위를 파괴하는 위협적인 무기로 인식하였습니다. 반면에, 종교개혁자들은 "인쇄"미디어로부터 개방성, 명확성, 개별 신앙의 존엄성 가능케 해주는 메시지를 읽어 내었습니다. 그에 따라 종교 개혁자들은 뉴 미디어가 지닌 적극적인 가능성을 교회 변혁을 위하여 최대한대로 활용하였습니다. 즉, 로마 카톨릭의 제도적 권위주의와 성직 계급 우월주의, 배타주의 장벽을 허무는데 인쇄의 기술을 적시에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로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2) 대화적 의사전달 환경을 향한 교회의 변혁
방법적 차원에서는 '읽는 행위' 보다 '듣는 행위'와 '보는 행위'가 지배적인 감각 활동이 될 것입니다. 즉 오디오 - 비디오가 전반적인 인식 활동에 주를 이루게 됩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룸으로써 이전 시대와는 다른 멀티미디어 시대를 정당히 맞이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이해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하비 콕스는 이미 70년대에 소위 "회로망"(network)이란 것이 한 쪽으로만 흐르는 "수직적인 수도관"이 아닌, 실제적으로 어느 방향에서나 다 통할 수 있는 말 그대로의 '그물망'이 되어야 할 것을 역설한 바 있습니다.
대중 의사 전달 수단은 그동안 쌍방성을 무시하고 일방성만 충족시켜 왔습니다. 이제 과학 기술의 급진적인 발전과 더불어서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 것입니다.
대중 매체에 의한 일방적 의사 전달 환경은 그대로 그리스도교 영역에도 침투하여 그리스도교적 문화일반에 각인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교회의 예배 상황을 보면 여실히 드러납니다. 예배를 드리는 주체는 분명히 신자들인데, 모든 의식 행위는 소수의 구별된 사람들에 의하여 조정될 뿐, 참례자의 의와 감각 행위는 이미 기획된 프로그램에 의하여 축소 내지는 무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강조해야 할 내용은, 그리스교의 문화는 무엇보다도 대화적 커뮤니케이션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신의 만남은 결코 대화를 떠나서는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 = 대화입니다) 그렇다면 현대 그리스도교의 현실에서 멀티미디어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늘 날 교회와 종교 일반에게 생각하고 있듯이, 이는 목회와 선교 활동을 확장하는데 효과적인 충성스런 시녀이기 전에, 기존의 일방적인 스타일의 제반 사고와 행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전령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멀티미디어는 쌍 방향적 의사 전달을 가능케 하는 실질적인 기술을 정해주고 있는데, 이것은 멀티미디어가 현대 교회에 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인류는 바로 이와 같이 환경이 실현된 날을 기다려왔다고 보아야 한다." 이 지점에 와서(!) 비로소 대중 매체로서의 멀티미디어는 "인간성의 옹호자"로서, 참된 친교를 위한 의사 전달 수준으로 수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최인식 교수 주장)
우리는 여기에서 다시 하비 콕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매스커뮤니케이션 신학은 반 커뮤니케이션의 사기성을 고발하며, 비 대화적 선전에 따른 희생에 대하여 경계시키며, 위험이 따르기는 하지만 그 고유한 스타일을 받아들이는 시도를 견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한가지(케이블TV예배)거론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헌금에 교회가 멀티미디어를 활용하는 양상에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자면, 시간과 공간 활용선 강단의 설교자 대신에 대형브라운관을 설치해놓고 설교를 듣거나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특히 대형교회나 기도원 등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방향적 텔레비전 시대'의 마지막 몸부림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계적 카리스마의 횡포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소품종 대량 체제가 가능한 시대,
일방적 의사 전달이 허용된 시대,
대중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소비의 "흰개미" 로 보는 시대,
이미 틀 지어진 미디어 환경에 의하여 조정이 가능한 시대에서만 발상이 가능한 횡포입니다.
우리에게 멀티미디어는 일방적 의사 전달의 체계를 거부케 하고, 대화적 쌍방향의 의사 전달을 가능케 하는, 그래서 인격적 환경을 교회와 신학 안에 구축하는 동력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3) "문자 이후 시대의 인간" 이해와 교회의 변혁
유진 피터슨(F. H. Person)에 의하면 "현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복음의 내용을 명확하게 해석하고 전달할 수 있는 시기를 맞이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귀를 다시 찾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매우 중요한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읽는 행위는 앞으로도 계속 중요한 역할을 계속 하겠으나, 전자 매체 기술이 발전되면 될수록 문자를 읽음으로써 의사와 정보를 전달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과거 성서 시대(구전시대 - 소리)처럼 읽기보다는 말하기와 듣기(전자시대 - 영상, 소리)가 지배적인 인식활동이 될 것이라는 전망 역시 의사 전달 매체의 발전을 전제할 때 가능한 말입니다. 책이라는 인쇄 문화 대신에 전자 이미지가 일반화 될 때, 문화, 신학, 해석학 등 전 영역에 걸친 혁신적 변화가 닥쳐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문서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형성된 모든 사고 유형에 던져질 커다란 충격을 의미합니다.
정통주의에 의한 성서의 축자 영감설이 성서 문자주의를 더욱 심화시켜 놓았습니다. 현대인을 '문자 이후의 인간'으로 보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성서를 새롭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왜냐하면 문자 이후의 인간에게는 '읽는 행위'보다는 '듣는 행위'와 '보는 행위'가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신적 현현은 실제로 멀티미디어적 사건"이라는 제이버그(G. Jaberg)의 통찰은 우리의 논의에 의해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 동안 개신교 신학은 계시의 수단으로써 문자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구텐베르그 이전의 교회 전통에서 볼 때, 성화, 성가, 가는 초, 향, 동작, 드라마 등이 다양하게 하나님의 자기 현현을 표현하는데 활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텐베르그 이전에도 얼마든지 문자는 강조되었고, 많은 서적들이 있었지만, 구텐베르그의 인쇄 기술이 발명된 이후 그 동안 골고루 사용되었던 감각 기관의 활동들이 인쇄된 문자를 눈으로 읽는 행위에로 편중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근한 예로, 예배 순서지가 없으면 신자들이 짧은 예배 시간에 보다 전 감각적으로 예배에 참여할 수 있을 터인데, 주보에 인쇄된 작은 글씨들은 굳이 눈으로 읽어가면서 부산하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 오늘의 실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배의 역동성은 약화되기 마련인데, 이것은 인쇄 문화의 무차별한 사용이 낳고 있는 한 병리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멀티미디어 시대는 과거 인쇄에 의한 문자 시대에 강조될 수밖에 없었던 눈으로 읽고서 이해에 도달하는 지각 행위를 넘어서 청각과 시각까지도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는 데 이는 지극히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환경변화가 가져다주는 적극적인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 시대에 적응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교회와 자기 혁신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멀티미디어 시대의 의사 전달 방법으로써 '듣는 행위', '보는 행위'에 대한 신학적 이해에 도달해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월터 옹의 분석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월터 옹은 먼저 의사 전달의 방법이 음성(구술), 문자, 시청각으로 변화되면서 그에 따라 전반적인 분야에 새로운 변화가 오게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표1 > 말씀의 역사적 변형에 따른 Walter ong의 분석
인간언어 정신적감정 정보저장
전수방법 요청되는
학습행위 반대견해
취급방법 신앙교육
형 태 하나님말씀
교회전달통로
음성 구술 기억 암송 타견해에 대한
열렬한 변증 변증학 말로하는 간증
필사본 구술 유추 제한된
두루마리 주제의미
토의 신학 교회 공직자들의
기록문헌
인쇄 유추 다량서적
도서관색인 침묵의 독서 다른 견해의
관대한 수용 문답식 교육 인쇄된(카톨릭)
성서(개신교)
멀티미디어 자극적
전체적 즉각적
현재적 참여 종교교육 인간의 모든
경험
월터 옹은 그의 중요한 책 [The Presence of the Word]에서 근대의 문을 열게 된 획기적인 사건에는 인쇄로 프린트 물을, 특히 지도를 대량 생산할 수 있었던 사실을 지적합니다. 이와 더불어 현대의 특징은 문자를 눈으로 읽는 것으로부터 입으로 말하고 음성을 듣는 행위가 우위를 차지하는 시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현대는 다양한 감관들이 종합적으로 활용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옹의 분석에 따르면, 인쇄물을 읽는 행위가 지배적이면서 인간의 다른 모든 감각 활동이 억눌림을 당해왔는데, 이것은 결코 바람직했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멀티미디어는 인쇄 미디어 시대에 억눌려 있었던 "말소리"(sound)를, "문자"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다시 찾게 하는 의사전달 수단입니다.
또한, 소리는 신비로운 감각을 일으키는 힘을 지닙니다. 인간에게 음성이란 내면적인 것 가운데 가장 깊이 있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내면의 힘을 느끼게 하는 실체입니다. 그래서 말이란 곧 인격이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만일 기성 교회의 신학이 계속 책과 '읽는 것'에 편중하여 매어 달린다면, 더 이상 신세대를 붙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미 그들은 보다 높은 단계에서 총체적인 감관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겠기 때문입니다. 멀티미디어 세대는 분산적이며 비인격적인 학교교육이나 교회 교육을 떠나서, 전체적이며 전 감각적인 전체 환경교육을 요청할 것입니다.
맥루언의 분석은 이같은 현실을 전망케 해줍니다.
< 표2 > 맥루언의 의사전달과 매체의 효과 개요 도표
의사전달수단 정보환경 인간정신반응 문화적가치 국가와 교회 학습행위
음 성 청 각 정서적 인격적 부족적 개별교육
문 자 시 각 분산적 비인격적 국가적 학교교육
시청각 촉 각 전체적 기술적 전체적 환경교육
종교 개혁자들이 뉴 미디어인 인쇄매체를 적극 사용할 당시, 결코 뉴 미디어가 저들이 원하는 모든 환경을 새롭게 긍정적인 차원에서만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4세기간의 인쇄문화를 절대시하거나, 그 이전의 구전문화를 열등시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은 그대로 오늘의 멀티미디어 환경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멀티미디어의 기술적 메시지를 바로 이해하고 수용한다면, 멀티미디어는 교회의 일방적이며 이론에 머물렀던 신앙과 교육의 굳은 땅을 적시는 단비가 될 것입니다. 멀티미디어는 교회를 전 인격적인 신앙과 교육환경으로 변혁하는 "하나님의 은총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찬양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배갱신 (0) | 2015.03.08 |
---|---|
바람직한 예배형식 (0) | 2015.03.08 |
예배와 음악 (0) | 2015.03.08 |
[스크랩] 리듬과 박자 / 노래 의 이해 (0) | 2014.10.14 |
하나님의 섭리 찬양/시103:19,20 (0) | 2014.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