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음악
제 1장 교회음악
1. 교회음악의 의미
세속음악, 일반 음악과 대응되는 말로써 그리스도로 머리 삼고 그의 지체된 유,무형 교회가 그 사명을 능률젹으로 완수하기 의한 음악적인 활동의 일체(교회가 요구하는 일체여야 한다.)를 말한다.
교회의 사명과 목적에 의해서라면 교회의 성격이나 내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타락한 천사의 타락한 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어 하나님이 찬송을 주신 원래의 목적을 방해하고 있다. 타락한 세속음악을 교회에 유입시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나님께 진정으로 찬양하지 못하도록 가까이로 접근하고 있다. 세속 음악은 사탄의 무기로 사용되어 성적 타락을 동반시키거나 신앙심을 송두리채 뽑아 버린다. 대표적으로 Rock음악은 지옥으로 이끌어 가는 무서운 힘을 갖고 있으며 저주의 문으로 안내하고 있다. 락 음악은 사탄숭배, 폭력,, 타락, 동성연애, 음란 등의 표현이나 자살, 이혼, 알콜중독, 마약, 신비주의, 신비하고 끔찍한 의상 등 각종 저질스러운 음악을 보급하고 있다.
요즘 헤비메탈음악이라는 게 확산되고 있다. 헤비메탈음악은 가사의 내용이 비극적이거나 비관적이고, 음악적으로는 강렬한 리듬과 금속성굉음을 특징으로 한다. 이 음악은 현실 도피 의식과 자살 충동이라는 후유증을 준다는 게 순수음악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세속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순수음악에 비해 정신 집중이 되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다. 이 세속음악은 또 유행에는 민감하지만 수명이 짧다. 오죽하면 ‘금주의 인기가요’, ‘흘러간 옛노래’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문제는, 리듬을 위주로 한 세속음악이 교회 안으로 계속 침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통로가 복음성가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복음성가가 그렇지는 않다. 복음성가 중에는 찬송가보다 훨씬 훌륭한 것들도 많다. 그러나 복음성가라는 이름을 빌려 얼마나 많은 리듬음악이 교회 안에서 격렬하게 불리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강렬한 리듬과 파괴적인 화성의 음악이 교회 안에서 상습적으로 불려진 후 무엇이 남을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리듬은 음악의 맛을 내는 부식이나 간식은 될 수 있어도 주식이 돌 수 없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교회음악은 교회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 음악이어야 한다. 또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신앙이나 음악적 수준에 있어서 많은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즉 믿음도 높여주고 음악 수준도 올려줘야지 음악적 수준만 높여서 예배에 있어서 은혜와 감동이 없는 경우를 많이 본다. 신앙으로, 기도하면서, 목회한다는 심정으로 음악 지도자는 임해야 할 것이다.
음악지도자는 내 교회, 내 사명, 내 일터, 내 양, 내 목회라는 심정으로 믿음의 지도자가 되어야한다. 지금은 음악지도자가 목회하는 시대이다. 전공자보다 믿음있는 비전공자들이 더욱 나을 때가 있다. 전공자는 음악적 수준은 있으나 신앙이 없고 비전공자는 믿음은 있으나 음악적 수준이 미달되는게 현실이다. 이때 목회자의 목회 방향 설정에 따라 선택이 이루어진다. 하나님 앞에 진실된 사람들은 당연히 따라오게 된다. 양은 목자를 따라가지 늑대를 따라가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영적인 아버지에게 이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교회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 하는 것은 신학적인 측면과 문학적인 측면, 신앙적인 측면, 음악적인 측면이 있어야한다.
교회음악은 그리스도를 내 영혼의 구주로 믿으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으며, 인간은 그만을 경배하고 기뻐해야 할 것임을 믿는 자들이 모인 진실한 의미의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음악의 토대 위에 형성된 것이어야 한다. 교회음악은 세속음악과 정반대로 형식, 가사, 음색, 리듬, 화음, 멜로디 등이 제한되어야 하고, 장엄하고 성스러운 감정을 나타내고 영감이 깃들 수 있는 음악이어야 한다.
음악의 긍정적인 영향력에 대해선 이미 태교음악, 동물과 식물 공학에서 클래식음악이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음악은 인간의 심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경건한 음악은 인생을 기름지게 하지만 타락한 음악은 인생을 황폐하게 만든다.
또한 교회음악은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아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특별목적으로 쓰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음악으로써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음 받아야 온전히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음악의 종류와 영향
종류 | 주요소 | 작용 | 작용의 대상 | 미치는 영향 |
세속음악 (대중음악) | 리듬 | 자극 | 肉(body) 감각 | -자극성 -자극 후 결과에 무책임 -후유증 -유행에 민감함 -수명이 짧다 |
순수음악 (가 곡) | 멜로디 | 호소 | 魂(soul) 감정 | -음악적 질서, 감정적 절제가 아 름다움과 조화를 이룸 -정신을 맑게 해 줌 -수명이 길다. |
교회음악 (찬 송) | 화음 | 감동 | 靈(spirit) 영 | -사람의 영을 하나님과 만나게 해 줌 |
2. 교회음악의 기원
서론
음악의 기원에 대한 이해는 곧 음악의 목적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음악이 대중화되었음에도 그 기원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1)음악의 사전적 기원설
(가)다윈의 ‘자음도태설’
음악이란 성적 충동의 발원으로 동물의 음향에서 생겨났다고 하는 설.
음향통합=성적 충동에 기인
(나)스펜서, 헤르더의 ‘음악 언어설’
음악은 인간의 감정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음성의 고저 장단에서 기원되었다는 설.
음성통합=감정 변화에 기인
(다)발라세크의 ‘리듬 기원설’
(라)스톰프의 ‘신호 기원설’
위와 같은 음악에 대한 기원설은 너무 비성경적일 뿐 아니라 증명할 만한 자료가 없는 추상적인 것이다. 성경은 명확히 음악의 기원을 말해 주고 있다.
2) 성경적 음악의 기원
(가)‘창조 전 음악의 기원설’
에스겔1:24,25의 “생물들이 행할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은즉 많은 물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니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부터 음성이 나더라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에서 하나님이 창조 이전에 인간이 아닌 어느 영적인 존재(천사)를 창조하시고 천사들을 통해 신비한 극치의 음악을 담당하게 했다는 것이다.
「엘 보스멘」은 “태초로부터 하나님이 음악을 창조하셨다”고 주장했다.
에스겔28장 13절 하반절에서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여기서 “네가”에서 너가 바로 에스겔이나 루시퍼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 루시퍼에게 음악적 특수 재능을 함께 넣어 창조했다고 말하고 있다. 곧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천사들을 통해 음악이 창조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주를 창조할 때 음악과 함께 창조하셨음을 말하고 있다.
신명기10:21에서 “그는 네 찬송이시오 네 하나님이시라 --” 라고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이 곧 찬송이시오, 찬송의 목적이시오, 대상이시오, 찬양의 본체이시다.
예레미야17:14에서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라고 말씀 하셨듯이 찬송이신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시오, 찬송이신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찬양의 능력은 바로 찬양이 영혼의 본향이요, 찬양을 통해서 영혼이 평안한 쉼을 얻게 되고, 찬송을 들으면 마음이 편하다는 것은 바로 본향의 소리를 들은 영혼이 평안해 진 것이다. 그러므로 본향의 소리를 가지고 본향의 은혜로 교통할 수 있는 것이다.
찬양의 능력은 곧 영력과 직결된다. 천국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천국의 삶을 알 수 있는 길이요 천국의 요구도 알 수 있으며 그 뜻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다윗은 찬양을 하루에 7번이나 드렸다. 시편119편 164절에서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나) 창조 후 음악의 기원설
창조 후 음악의 기원설은 음악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고 증거하기 때문이다.
창4:21에서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유발이 모든 음악하는 이들의 조상이지만 음악의 창조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소외된 생활을 하던 유발이 음악으로 위로받기 위해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종교적 의도, 예배적 의도로 만든 게 아니다. 음악은 인간이 죄로 인해서 고안해 낸 죄의 부산물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음악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분을 영화롭게 하는데 적합하지 않으며 극히 인간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음악의 기원은 창조 전 하나님으로부터 기원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5. 예배 음악의 역사적 고찰
1. 히브리 음악
1)초기 히브리 음악
히브리인들의 음악에 관한 기록은 구약 여러 곳에 나타나 있으며 그것은 초기의 음악 활동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반적인 용도나 예배의 용도로 쓰여진 음악은 히브리인들의 일상적인 생활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처음엔 일정한 형식이 없었고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을 음악이라 할 수 있었다. 그 후 선지시대 동안에 의도적으로 발전시켰고 체계화시킴으로써 불충분하나 예술적 면모를 그때야 띠게 되었다.
초기 히브리음악은 예술적 용도보다도 기능적으로 사용되었는데 곡 하나 하나가 신중하게 작곡된 것이 아니라 즉흥적이거나 어떤 큰 사건으로 인한 체험과 감각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예가 모세가 홍해를 건너서 부른 노래이다. 사람들의 가슴속에 쌓였던 것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 것이다.
2)제도적 히브리 음악
히브리 종교음악은 신앙적 특성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나왔으며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에서도 그것이 잘 나타나고 있다. 사사기 5장은 히브리인들의 즉흥적 솜씨가 매우 훌륭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노래중 하나이다.
오늘날에도 형식을 갖추지 못한 음악들이 남아있으며, 심지어 이탈리아 같은 서양에도 이런 노래가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또 옛날 켈트족의 방랑시인들, 영국 발라드 창시자들의 사이에도 이와 비슷한 노래들이 있으며 오늘날 미국 남부 흑인 영가에서도 즉흥적 노래를 찾아볼 수 있다한다.
2. 초대교회의 예배 음악
초대교회에서는 다윗 시대의 성전예배의 형식을 많이 따랐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예배에서의 음악은 교회역사의 시기에 따라 흥하기도 한다.
초대교회의 예배 음악은 음운의 가사를 지닌 단성의 성악이 중심이었고, 유대교적인 것을 바탕으로 단지 문화 세계의 음악인 그리이스, 로마적인 음악과 접촉하면서 형성되어갔다. 특히 초대교회 예배 음악에서 악기 사용과 찬송을 하는데 있어서 규제가 있었다. 초대교회 음악역사에서 예배시 악기를 사용하는 문제에 있어서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초대교회 문화가 희랍과 로마 문화의 심장부에 천천히 파고들자 옛 기성 문화의 붕괴를 두려워한 나머지 트라얀 노스는 앞장서서 잔악한 박해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박해로 자연히 교회는 지하동굴 무덤에서 예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는 로마 군인에게 발견될 위험이 있었으므로 지도자들은 집회 장소를 수시로 변경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예배시에 있어서도 악기를 사용하거나 큰 소리로 찬송하는 것을 극히 삼가야 했다.
초대교회에서는 예배시에 악기 사용을 회피해야 했는데 그 이유는 그 당시 기독교인들이 많은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박해를 받으면서 악기를 연주함으로 예배 분위기를 소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A.D.70년에 마지막 성전이 파괴되었을 때 음악의 영광도 사라졌다. 그러나 수백년 이후 콘슨탄틴대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승인한 후에 악기가 큰 축제에서 자유롭게 사용될 수 있었다.
3. 중세 교회의 예배 음악
중세는 로마의 멸망으로부터 14세기의 르네상스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 시기에 음악의 발달에 영향을 끼친 많은 신인들이 발생했다. 그 당시 예배 음악이 완성되었으며 비잔틴과 로마에는 교회 정복의 중심지가 확립되었고, 희랍 정교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이어서 세워졌다.
더욱 직접적으로 음악에 영향을 미친 것은 여러 형태의 작곡이 시도되었으며 기보법이 형식을 갖추게 되었고, 작곡 기법도 많이 발전하게 되었다. 이 시기 말엽에 이르러 음악은 7세기부터 사용된 엄격한 예배의식에서 점차 탈피하게 되었으며 이는 르네상스 특징인 음악 창작의 자유를 낳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초대 기독교 시대의 여러 사건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들이었다.
4. 중세 후반기의 성가
‘로마성가’와 ‘그레고리성가’의 선임자인 ‘암브로스성가’ 외에도 ‘모자라빅성가’와 ‘갈리칸성가’가 있었다. 이 중에서 ‘그레고리성가’는 로마 교회에서 많은 애호를 받게 되었다.(※그레고리성가는 가장 잘 만들어진 성가로 찬송가147장의 ‘주 달려 죽은 십자가’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중세교회의 음악을 요약하면, ‘암브로스성가’보다 ‘그레고리성가’가 발전한 시기였고 화성음악이 발전하게 되어 단순한 가창에서 복합음악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고 아름다운 음악인 신예술이 등장했다. 음악이 교회음악을 행하는데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 예배에서 복음성가가 사용된 이유
(1)선교사의 영향 때문이었다. =1880년경 미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부흥회에서 영향을 받은 선교사 들이 한국에 선교가로 들어오면서 그 시대의 복음성가의 형태를 많이 따랐던 것이다. (예수님 찬 양, 예수님 이름으로 등)
(2)목회자의 영향 때문이다.=우리나라의 목회 형태가 목회자의 주관에 의해서 따라가는 성향이 있었 으므로 목회자의 수준에 따라서 예배의 내용이 결정되었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음악 수준이 중요하 다. 그만큼 음악이 목회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음악의 수준도 높여야 한다. 다 양한 교회의 구조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음악과 관련된 실력적인 면을 향상 시켜야 한다. 음악의 특징 뿐만 아니라 악기의 특성을 알면 예배에 적용시키기 용이하고 상식에서 벗어난 결단을 하지 않게 된다.
또한 목회자의 목회관에 따라서 =선교를 중심하는 목회, 교육,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목회 중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고 있다.
(3)교육의 부재 때문이다.=찬송가의 정의와 복음성가의 정의를 바로 알지 못한 채 무분별하게 받아들 여서 구분 없이 난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4)학문의 미정립에 의한 영향 때문이다.= 교회음악에 대한 학문적, 체계적 정립은 아주 최근의 일이 다. 교회음악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기 아주 좋은 시기이다. 그것은 교회음악이 목회에 끼치는 영향 이 크고 중요시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5. 중세의 찬송가
사도시대가 끝나고 교황의 제도시대가 오면서 교황제도 존중주의로 변모하게 된다. 이 변천 과정 속에서 정교한 의식이 세워지고 여기에 맞는 교회음악도 첨가되어진다. 예배의 찬양에서 평신도가 차지한는 비중은 점점 감소되어가고 마침내 이 일은 소수의 성직자로 구성된 성가대가 편성되기에 이른다.
(열린 예배에서는 부담없이 거리감을 없앤 형태로 예배를 드리는데 의자도 개인의자로, 성가대도 세례를 받아야만 된다는 규칙도 없고, 예배의 형식을 타파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새신자들이나 거리를 느끼는 신자들에게도 부담없이 다가올 수 있도록 예배를 열어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약식의 예배를 드리는 회중은 음악 활동에서 물러나고 고도의 조직화된 성가대가 모든 음악을 담당하게 된다. 이러한 예배가 1천년간 진행된다. 이것은 이교도와의 혼란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라오디게아 공회의 13번째 조항에서는 설교하도록 규정한 사람 외에는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지 못하도록 했다. 노래가 평신도에서 성직자로 옮겨졌다고 해서 음악이 단절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단 예배에 대한 음악만이었다.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의식 함양을 위해 서정적인 음악이 만들어졌다.(헌당식, 축제때 많이 사용) 이 땐 그리이스 찬송이 투쟁의 곡으로 개인적인 의식 개혁과 범죄에 대한 것을 나타내주고 후기에는 로마교회가 힐라리, 어거스틴, 암부르즈, 그레고리 등의 찬송가와 함께 예배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세교회에서는 성악 음악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6. 중세 로마 예배음악
로마 교회 음악은 매우 심미적이고 사상이 깊고 기술이 세련된 음악이었다. 이 음악이 여러 다른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로마교회는 거장들의 그림과 훌륭한 조각품으로 장식한 거대한 전통을 많이 지녔던 사람들의 뛰어난 상상력을 모아서 의식을 다채롭고 풍부하게 꾸몄다. 또 교육에 있어서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 그들의 많은 사상을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 옮겨 놓았다.(동상, 조각품들로) 또 교회 지도자들이 상징과 형상을 많이 이용해서 로마 교회는 우상 숭배의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와 같은 발전에 이 음악이 영향을 많이 끼쳤다.
로마교회의 음악은 교황 그레고리 1세 때에 영광송, 삼성경(Sanctus), 구긍경(Kyrie Eleison) 등이 불려지게 되었다. 또 대송영으로 알려진 영광송은 2세기 경에 부분적으로 동방교회에서 사용되었고, 6세기에 와서 라틴어로 번역되어 서방교회에서 채택이 되었다. 삼성경은 히브리 구원의 노래로 기독교 시대 이전에 이미 유대교 예배에서 사용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Kyrie란 헬라어로 ‘주여’라는 뜻으로 1세기 경에 동방교회에 나타났으며 헬라형식 그대로 라틴 예배에 채택된 곡이다. 감사송(Te Deum)은 초기 헬라어 찬송 형식과 유사하지만 전적으로 서방 교회의 계통에 근거를 가진 노래로 간주된다. 그리고 신경(Credo)은 6세기에 동방교회에서 처음 사용되어 후에 서방교회에서도 채택이 되었다, 이 곡을 부르게 된 동기는 이단의 영향을 대항하여 전통신앙을 고수하고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고양경(Agnus Dei)은 7세기에 미사용으로 채택되었으며 10세기경 부터는 미사에서 노래하는 성가대만이 불렀고 회중들의 참여는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중세의 예배의 형태는 철저하고 엄격하여 하루 종일 예배를 드렸는데 해뜨기 전부터 성무일이라고해서 예배를 드리는 조과(우리나라로 말하면 새벽기도)로부터 해서 찬과(해뜰 때), 제1시과(오전6시), 제3시과(오전9시), 제6시과(정오), 제9시과(오후3시), 만과(해질 때), 종과(오후9시경)로 예배를 드렸다. 이러한 철저한 예배 훈련은 평신도들은 따라갈 수 없었으며 오직 수도생들나 이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찬양의 타락
야고보서 3:10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또 한 입으로 저주를 말한다는 것은 곧 찬양의 타락한 모습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찬송의 타락의 원인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데
사14:12-15에서 하나님의 천사장 루시엘이 범죄하여 타락한 후 그에게 주어졌던 찬양의 능력으로 자신이 찬송을 받게 하고 있게 된 것이다. 그러한 입장을 터툴리안, 그레고리, 크리소스텀, 스타이우, 알포스, 라이, 헬리디튼 등이 가지고 있다.
신약성서에서도 하나님 보좌 앞에서 찬송하던 천사가 타락하여 타락한 천사의 무리로 인하여 찬송의 타락을 가져온다고 말하고 있다.(죤 칼빈, 제롬, 크리소스트, 알포드, 엘리콥)
죤 칼빈은 말하기를 마귀가 처음에 창조될 때엔 하나님을 찬송하였지만 저들이 범죄하여 타락하였다. 하나님이 지으신 본성에서 나온 타락이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누가복음 10:18절에서 누가도 사탄의 타락으로 음악이 타락한 것으로 본다. 이와 같은 주장을 제롬이나 크리소스트, 알포드, 엘리콥 등이 동의 한다. 유다서 6절에서도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장 루시엘이 타락하여 자기 처소를 떠나 앞으론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상의 근거를 볼 때 타락한 천사들은 하나님 앞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증거해 주고 있다.
사14:12-15는 타락한 후의 천사들의 모습을, 겔28:13-15는 타락하기 전의 천사들의 모습, 그들이 지음 받기 전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였으나 타락 후 불완전한 존재가 되었다.
유다의 여호사밧왕은 다윗의 길로 행하여 하나님만 의지하여 하나님은 그를 부요하게 축복하셨고 가장 부강한 나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여호사밧왕과 함께 하심으로 부귀와 영화가 극에 달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가 날마다 하나님만을 찬송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하나님 앞에서 찬송하던 천사가 타락하여 타락한 천사의 무리가 하나님의 찬송을 희석시키고 있다. 살후2:6-7에서 “저의 때”라는 말씀은 불법의 사람, 멸망의 사람이 나타나는 그 때로서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환란의 때임을 암시하고 있으며 사단이 적그리스도에게 사단의 큰 능력과 권세를 부여해 주는 그 때인 것이다. 이사야가 설명한 새벽별인 사단이 하나님과 동등한 입장을 취하기 위하여 찬양의 영광을 가로채므로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찬양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찬양토록 하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음악의 타락
출32:18-19에 보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앞에 찬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모세가 그것을 보고 지신이 하나님 앞에서 받은 돌판을 던져 깨뜨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에덴 동산에서도 하나님의 길에서 타락하여 에덴을 쫓겨나 죄의 종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광야에서도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섬기게 된 것과 초림시대에도 세속 음악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일어났음을 볼 수 있었다.
믿음의 타락은 악기와 관련된 것을 볼 수 있다.
아모스의 예언을 통해 보면 다윗성전과 솔로몬 성정에서 있었던 예배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번지르르한 찬송과 예배를 드리는 백성들을 책망하고 있다. (암6:4-6) 그래서 그들의 찬송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타락한 믿음으로 부르는 타락한 음악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하신다. (아모스5:21-23) 다양하고 아름다운 악기로 드리는 찬송이라도 타락한 찬송은 받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은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듯 마음과 몸을 단장하고 드려야 한다.
또한 타락한 음악은 기생 음악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사23:16) 간사하고 흥분시키기에 좋은 기생 음악을 하나님은 싫어하신다.
독주에 취한 음악을 하나님은 받지 아니하신다. (사5:11-12)
하나님은 타락한 것을 받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를 대신하여 그 자리에 인간을 창조하셔서 찬양의 그 자리를 지키신 것이다.
소요리교리문답서 제 1문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찬양대는 제사장과 가장 가까운 자리라 할만큼 중요한 지위에 있으며 찬양대 그 자리는 천사장 루시엘이 타락하기 전의 축복의 자리인 것이다. 그 찬양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 것을 알아 타락한 찬양은 절대로 받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하나님은 흠 없고 티없는 제물을 원하신다. 귀중한 찬송임에는 틀림이 없음을 자각하여야 한다.
찬송가
찬송의 정의
최초의 정의를 내린 것은 주후633년 톨레도 종교회의에서 결정했다. “하나님을 노래로 찬양하는 것이다. ”라고.
어거스틴은 찬송가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만약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노래하는 것이 아니면 그것은 찬송가가 아니다”
칼. F, 프라이스 “기독교 찬송가는 거룩하고 경건하게 표현된 서정시이다. 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자의 태도, 인간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목적으로 된 것이다.
루이스 엘슨이란 사람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거나 예배드리는 노래로서 교회에서 부르게 된 짧은 종교적 서정시이다.”
사이토 이사무는 “찬미가는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노래로서 언제나 합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건한 종교적 감정을 소박하게 부르기 쉬운 음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어야 한다. ”
또한 찬송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힘입어 죄에서 구속함을 입은 크리스챤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기도와 감사로 엮어진 신앙고백이다.
찬송가의 중요성
시113:1에 보면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은 명령문이기 때문에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 믿는 성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전력해야 하는 이유가 시100:3에 나타나 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사43:21에는 “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함이니”라는 말씀을 비추어 볼 때 당연히 기독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찬송가는 받으시는 상대가 반드시 하나님이던가 그의 삼위 중 1위여야 한다. 성경에 보면 마21:9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할지어다 주의 이름으로 우시는 이를 위시하여 4회가 있고 마가복음이 3회 누가복음10회 행5회 롬4회 고전3회, 고후2회, 엡4회, 빌1회, 골2회, 히2회, 약2회, 벧전1회, 계5회 도합 48회에 걸쳐 찬송이란 단어가 나오고 구약에는 351회가 나오고 신구약 합쳐서 약400회가 나오는데 거의 전부가 그 앞에 하나님을 또는 하나님께, 여호와께 등이 꼭 붙어 있다. 찬송의 대상은 오직 한 분이시란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찬송을 예배의 보수적 수단으로만 취급한다든지 예배의 부분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예배의 보조적 수단이나 예배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찬송은 하나의 신학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에는 음악이 있고 불교에는 조각이 있고 유교에는 슬픔이 있다. 음악은 교회 안에서 예배 음악의 한 파트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여 왔다. 음악은 실천신학의 란 부분으로 연구의 중요한 대상이 되어야 한다. 예배를 위한 단수한 기능이 아니라 독립된 학문으로 성경에 뿌리를 둔 신학의 파트로서 신학적인 측면에서 연구되어져야 한다.
복음 찬송가(Gospel Hims)
복음찬송가는 하나님을 찬양하되 직접 찬양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찬양하는 곡이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나 구원의 역사 수단, 방법, 십자가의 사역,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등을 통해서 간접적인 방법으로 찬양하는 노래를 말한다. 예를 들면 찬송가 182장 구주의 십자가 보혈에서 이 찬송은 구세주 예수그리스도이신 성호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죄씻음 받기를 원하네 내 죄를 씻으신 주 이름을 찬송합시다. 죄악을 속하여 주신 주 내 속에 들어와 계시네 십자가 앞에서 찬송합시다.” 구주를 찬송하는 내용으로 3위 중 1위가 이룩하신 어떤 사실을 들어 그것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노래를 복음 찬송가라고 한다.
찬135장 갈보리산 위에 라는 찬송은 고난의 십자가를 사랑하고 그 십자가의 매력을 지녔고 감격했고 험한 십자가를 달게 지고 죽도록 충성하겠다는 것은 그 십자가가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구원을 성취하신 수단이며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사랑함은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이룩하신 어떤 역사나 그의 속성과 복음 등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찬송하는 것이 복음 찬송가이다. 복음 찬송가에는 아멘을 붙이지 않는가.
교회와 음악
1. 성경적 음악의 기원
(가) 창조 전 음악의 기원설’
에스겔1:24,25의 “생물들이 행할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은즉 많은 물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니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부터 음성이 나더라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에서 하나님이 창조 이전에 인간이 아닌 어느 영적인 존재(천사)를 창조하시고 천사들을 통해 신비한 극치의 음악을 담당하게 했다는 것이다.
「엘 보스멘」은 “태초로부터 하나님이 음악을 창조하셨다”고 주장했다.
에스겔28장 13절 하반절에서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여기서 “네가”에서 너가 바로 에스겔이나 루시퍼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 루시퍼에게 음악적 특수 재능을 함께 넣어 창조했다고 말하고 있다. 곧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천사들을 통해 음악이 창조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주를 창조할 때 음악과 함께 창조하셨음을 말하고 있다.
신명기10:21에서 “그는 네 찬송이시오 네 하나님이시라 --” 라고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이 곧 찬송이시오, 찬송의 목적이시오, 대상이시오, 찬양의 본체이시다.
예레미야17:14에서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라고 말씀 하셨듯이 찬송이신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시오, 찬송이신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찬양의 능력은 바로 찬양이 영혼의 본향이요, 찬양을 통해서 영혼이 평안한 쉼을 얻게 되고, 찬송을 들으면 마음이 편하다는 것은 바로 본향의 소리를 들은 영혼이 평안해 진 것이다. 그러므로 본향의 소리를 가지고 본향의 은혜로 교통할 수 있는 것이다.
찬양의 능력은 곧 영력과 직결된다. 천국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천국의 삶을 알 수 있는 길이요 천국의 요구도 알 수 있으며 그 뜻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다윗은 찬양을 하루에 7번이나 드렸다. 시편119편 164절에서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나) 창조 후 음악의 기원설
창조 후 음악의 기원설은 음악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고 증거하기 때문이다.
창4:21에서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유발이 모든 음악하는 이들의 조상이지만 음악의 창조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소외된 생활을 하던 유발이 음악으로 위로받기 위해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종교적 의도, 예배적 의도로 만든 게 아니다. 음악은 인간이 죄로 인해서 고안해 낸 죄의 부산물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음악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분을 영화롭게 하는데 적합하지 않으며 극히 인간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음악의 기원은 창조 전 하나님으로부터 기원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2. 찬송가
1) 찬송의 정의
최초의 정의를 내린 것은 주후633년 톨레도 종교회의에서 결정했다. “하나님을 노래로 찬양하는 것이다. ”라고.
어거스틴은 찬송가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만약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노래하는 것이 아니면 그것은 찬송가가 아니다”
칼. F, 프라이스 “기독교 찬송가는 거룩하고 경건하게 표현된 서정시이다. 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자의 태도, 인간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목적으로 된 것이다.
루이스 엘슨이란 사람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거나 예배드리는 노래로서 교회에서 부르게 된 짧은 종교적 서정시이다.”
사이토 이사무는 “찬미가는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노래로서 언제나 합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건한 종교적 감정을 소박하게 부르기 쉬운 음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어야 한다. ”
또한 찬송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힘입어 죄에서 구속함을 입은 크리스챤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기도와 감사로 엮어진 신앙고백이다.
2) 찬송가의 중요성
시113:1에 보면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은 명령문이기 때문에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 믿는 성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전력해야 하는 이유가 시100:3에 나타나 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사43:21에는 “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함이니”라는 말씀을 비추어 볼 때 당연히 기독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찬송가는 받으시는 상대가 반드시 하나님이던가 그의 삼위 중 1위여야 한다. 성경에 보면 마21:9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할지어다 주의 이름으로 우시는 이를 위시하여 4회가 있고 마가복음이 3회 누가복음10회 행5회 롬4회 고전3회, 고후2회, 엡4회, 빌1회, 골2회, 히2회, 약2회, 벧전1회, 계5회 도합 48회에 걸쳐 찬송이란 단어가 나오고 구약에는 351회가 나오고 신구약 합쳐서 약400회가 나오는데 거의 전부가 그 앞에 하나님을 또는 하나님께, 여호와께 등이 꼭 붙어 있다. 찬송의 대상은 오직 한 분이시란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찬송을 예배의 보수적 수단으로만 취급한다든지 예배의 부분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예배의 보조적 수단이나 예배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찬송은 하나의 신학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에는 음악이 있고 불교에는 조각이 있고 유교에는 슬픔이 있다. 음악은 교회 안에서 예배 음악의 한 파트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여 왔다. 음악은 실천신학의 란 부분으로 연구의 중요한 대상이 되어야 한다. 예배를 위한 단수한 기능이 아니라 독립된 학문으로 성경에 뿌리를 둔 신학의 파트로서 신학적인 측면에서 연구되어져야 한다.
3) 복음 찬송가(Gospel Hims)
복음찬송가는 하나님을 찬양하되 직접 찬양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찬양하는 곡이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나 구원의 역사 수단, 방법, 십자가의 사역,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등을 통해서 간접적인 방법으로 찬양하는 노래를 말한다. 예를 들면 찬송가 182장 구주의 십자가 보혈에서 이 찬송은 구세주 예수그리스도이신 성호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죄씻음 받기를 원하네 내 죄를 씻으신 주 이름을 찬송합시다. 죄악을 속하여 주신 주 내 속에 들어와 계시네 십자가 앞에서 찬송합시다.” 구주를 찬송하는 내용으로 3위 중 1위가 이룩하신 어떤 사실을 들어 그것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노래를 복음 찬송가라고 한다.
찬135장 갈보리산 위에 라는 찬송은 고난의 십자가를 사랑하고 그 십자가의 매력을 지녔고 감격했고 험한 십자가를 달게 지고 죽도록 충성하겠다는 것은 그 십자가가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구원을 성취하신 수단이며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사랑함은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이룩하신 어떤 역사나 그의 속성과 복음 등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찬송하는 것이 복음 찬송가이다. 복음 찬송가에는 아멘을 붙이지 않는가.
3. 음악의 종류와 영향
종류 | 주요소 | 작용 | 작용의 대상 | 미치는 영향 |
세속음악 (대중음악) | 리듬 | 자극 | 肉(body) 감각 | -자극성 -자극 후 결과에 무책임 -후유증 -유행에 민감함 -수명이 짧다 |
순수음악 (가 곡) | 멜로디 | 호소 | 魂(soul) 감정 | -음악적 질서, 감정적 절제가 아 름다움과 조화를 이룸 -정신을 맑게 해 줌 -수명이 길다. |
교회음악 (찬 송) | 화음 | 감동 | 靈(spirit) 영 | -사람의 영을 하나님과 만나게 해 줌 |
4. 찬양의 타락
야고보서 3:10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또 한 입으로 저주를 말한다는 것은 곧 찬양의 타락한 모습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찬송의 타락의 원인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데
사14:12-15에서 하나님의 천사장 루시엘이 범죄하여 타락한 후 그에게 주어졌던 찬양의 능력으로 자신이 찬송을 받게 하고 있게 된 것이다. 그러한 입장을 터툴리안, 그레고리, 크리소스텀, 스타이우, 알포스, 라이, 헬리디튼 등이 가지고 있다.
신약성서에서도 하나님 보좌 앞에서 찬송하던 천사가 타락하여 타락한 천사의 무리로 인하여 찬송의 타락을 가져온다고 말하고 있다.(죤 칼빈, 제롬, 크리소스트, 알포드, 엘리콥)
죤 칼빈은 말하기를 마귀가 처음에 창조될 때엔 하나님을 찬송하였지만 저들이 범죄하여 타락하였다. 하나님이 지으신 본성에서 나온 타락이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누가복음 10:18절에서 누가도 사탄의 타락으로 음악이 타락한 것으로 본다. 이와 같은 주장을 제롬이나 크리소스트, 알포드, 엘리콥 등이 동의 한다. 유다서 6절에서도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장 루시엘이 타락하여 자기 처소를 떠나 앞으론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상의 근거를 볼 때 타락한 천사들은 하나님 앞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증거해 주고 있다.
사14:12-15는 타락한 후의 천사들의 모습을,
겔28:13-15는 타락하기 전의 천사들의 모습, 그들이 지음 받기 전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였으나 타락 후 불완전한 존재가 되었다.
유다의 여호사밧왕은 다윗의 길로 행하여 하나님만 의지하여 하나님은 그를 부요하게 축복하셨고 가장 부강한 나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여호사밧왕과 함께 하심으로 부귀와 영화가 극에 달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가 날마다 하나님만을 찬송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하나님 앞에서 찬송하던 천사가 타락하여 타락한 천사의 무리가 하나님의 찬송을 희석시키고 있다. 살후2:6-7에서 “저의 때”라는 말씀은 불법의 사람, 멸망의 사람이 나타나는 그 때로서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환란의 때임을 암시하고 있으며 사단이 적그리스도에게 사단의 큰 능력과 권세를 부여해 주는 그 때인 것이다. 이사야가 설명한 새벽별인 사단이 하나님과 동등한 입장을 취하기 위하여 찬양의 영광을 가로채므로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찬양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찬양토록 하게 하는 것이다.
5. 이스라엘의 음악의 타락
출32:18-19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앞에 찬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모세가 그것을 보고 지신이 하나님 앞에서 받은 돌판을 던져 깨뜨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에덴 동산에서도 하나님의 길에서 타락하여 에덴을 쫓겨나 죄의 종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광야에서도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섬기게 된 것과 초림시대에도 세속 음악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일어났음을 볼 수 있었다.
믿음의 타락은 악기와 관련된 것을 볼 수 있다.
아모스의 예언을 통해 보면 다윗성전과 솔로몬 성정에서 있었던 예배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번지르르한 찬송과 예배를 드리는 백성들을 책망하고 있다.
(암6:4-6) 그래서 그들의 찬송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타락한 믿음으로 부르는 타락한 음악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하신다.
(아모스5:21-23) 다양하고 아름다운 악기로 드리는 찬송이라도 타락한 찬송은 받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은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듯 마음과 몸을 단장하고 드려야 한다.
또한 타락한 음악은 기생 음악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사23:16) 간사하고 흥분시키기에 좋은 기생 음악을 하나님은 싫어하신다.
독주에 취한 음악을 하나님은 받지 아니하신다.
(사5:11-12) 하나님은 타락한 것을 받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를 대신하여 그 자리에 인간을 창조하셔서 찬양의 그 자리를 지키신 것이다.
소요리교리문답서 제 1문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찬양대는 제사장과 가장 가까운 자리라 할만큼 중요한 지위에 있으며 찬양대 그 자리는 천사장 루시엘이 타락하기 전의 축복의 자리인 것이다. 그 찬양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 것을 알아 타락한 찬양은 절대로 받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하나님은 흠 없고 티없는 제물을 원하신다. 귀중한 찬송임에는 틀림이 없음을 자각하여야 한다.
정리
교회와 음악
1. 성경적 음악의 기원
(가) 창조 전 음악의 기원설’
에스겔1:24,25 에서,
하나님이 창조 이전에 인간이 아닌 어느 영적인 존재(천사)를 창조하시고 천사들을 통해 신비한 극치의 음악을 담당하게 했다는 것이다.
에스겔28장 13절 하반절에서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여기서 “네가”에서 “너”가 바로 에스겔이나 루시퍼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 루시퍼에게 음악적 특수 재능을 함께 넣어 창조했다고 말하고 있다. 곧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천사들을 통해 음악이 창조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주를 창조할 때 음악과 함께 창조하셨음을 말하고 있다.
신명기10:21에서,
하나님이 곧 찬송이시오, 찬송의 목적이시오, 대상이시오, 찬양의 본체시다.
예레미야17:14에서,
찬송이신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시오, 찬송이신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찬양의 능력은 바로 찬양이 영혼의 본향이요, 찬양을 통해서 영혼이 평안한 쉼을 얻게 되고, 찬송을 들으면 마음이 편하다는 것은 바로 본향의 소리를 들은 영혼이 평안해 진 것이다. 그러므로 본향의 소리를 가지고 본향의 은혜로 교통할 수 있는 것이다. 찬양의 능력은 곧 영력과 직결된다. 천국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천국의 삶을 알 수 있는 길이요 천국의 요구도 알 수 있으며 그 뜻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다윗은 찬양을 하루에 7번이나 드렸다.
시편119편 164절에서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나) 창조 후 음악의 기원설
창조 후 음악의 기원설은 음악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고 증거하기 때문이다.
창4:21에서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유발이 모든 음악하는 이들의 조상이지만 음악의 창조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소외된 생활을 하던 유발이 음악으로 위로받기 위해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종교적 의도, 예배적 의도로 만든 게 아니다. 음악은 인간이 죄로 인해서 고안해 낸 죄의 부산물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음악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분을 영화롭게 하는데 적합하지 않으며 극히 인간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음악의 기원은 창조 전 하나님으로부터 기원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
2. 찬송가
1) 찬송의 정의
최초의 정의를 내린 것은 주후633년 톨레도 종교회의에서 결정했다. “하나님을 노래로 찬양하는 것이다. ”라고.
어거스틴은 찬송가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만약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노래하는 것이 아니면 그것은 찬송가가 아니다”
칼. F, 프라이스 “기독교 찬송가는 거룩하고 경건하게 표현된 서정시이다. 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자의 태도, 인간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목적으로 된 것이다.
루이스 엘슨이란 사람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거나 예배드리는 노래로서 교회에서 부르게 된 짧은 종교적 서정시이다.”
사이토 이사무는 “찬미가는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노래로서 언제나 합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건한 종교적 감정을 소박하게 부르기 쉬운 음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어야 한다. ”
또한 찬송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죄에서 구속함을 입은 크리스챤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기도와 감사로 엮어진 신앙고백이다.
2) 찬송가의 중요성
시113:1에 보면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은 명령문이기 때문에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 믿는 성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전력해야 하는 이유가 시100:3에 나타나 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사43:21에는 “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함이니”라는 말씀을 비추어 볼 때 당연히 기독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찬송가는 받으시는 상대가 반드시 하나님이던가 그의 삼위 중 1위여야 한다. 성경에 보면 마21:9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할지어다 주의 이름으로 우시는 이를 위시하여 4회가 있고 마가복음이 3회 누가복음10회 행5회 롬4회 고전3회, 고후2회, 엡4회, 빌1회, 골2회, 히2회, 약2회, 벧전1회, 계5회 도합 48회에 걸쳐 찬송이란 단어가 나오고 구약에는 351회가 나오고 신구약 합쳐서 약400회가 나오는데 거의 전부가 그 앞에 하나님을 또는 하나님께, 여호와께 등이 꼭 붙어 있다. 찬송의 대상은 오직 한 분이시란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찬송을 예배의 보수적 수단으로만 취급한다든지 예배의 부분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예배의 보조적 수단이나 예배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찬송은 하나의 신학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에는 음악이 있고 불교에는 조각이 있고 유교에는 슬픔이 있다. 음악은 교회 안에서 예배 음악의 한 파트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여 왔다. 음악은 실천신학의 란 부분으로 연구의 중요한 대상이 되어야 한다. 예배를 위한 단수한 기능이 아니라 독립된 학문으로 성경에 뿌리를 둔 신학의 파트로서 신학적인 측면에서 연구되어져야 한다.
3) 복음 찬송가(Gospel Hims)
복음찬송가는 하나님을 찬양하되 직접 찬양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찬양하는 곡이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나 구원의 역사 수단, 방법, 십자가의 사역,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등을 통해서 간접적인 방법으로 찬양하는 노래를 말한다. 예를 들면 찬송가 182장 구주의 십자가 보혈에서 이 찬송은 구세주 예수그리스도이신 성호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죄씻음 받기를 원하네 내 죄를 씻으신 주 이름을 찬송합시다. 죄악을 속하여 주신 주 내 속에 들어와 계시네 십자가 앞에서 찬송합시다.” 구주를 찬송하는 내용으로 3위 중 1위가 이룩하신 어떤 사실을 들어 그것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노래를 복음 찬송가라고 한다.
찬135장 갈보리산 위에 라는 찬송은 고난의 십자가를 사랑하고 그 십자가의 매력을 지녔고 감격했고 험한 십자가를 달게 지고 죽도록 충성하겠다는 것은 그 십자가가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구원을 성취하신 수단이며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사랑함은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이룩하신 어떤 역사나 그의 속성과 복음 등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찬송하는 것이 복음 찬송가이다. 복음 찬송가에는 아멘을 붙이지 않는가.
4.찬양의 타락
야고보서 3:10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또 한 입으로 저주를 말한다는 것은 곧 찬양의 타락한 모습을 말해주고 있다.
찬송의 타락의 원인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데,
사14:12-15에서 하나님의 천사장 루시엘이 범죄하여 타락한 후 그에게 주어졌던 찬양의 능력으로 자신이 찬송을 받게 하고 있게 된 것이다. 그러한 입장을 터툴리안, 그레고리, 크리소스텀, 스타이우, 알포스, 라이, 헬리디튼 등이 가지고 있다.
신약성서에서도 하나님 보좌 앞에서 찬송하던 천사가 타락하여 타락한 천사의 무리로 인하여 찬송의 타락을 가져온다고 말하고 있다.(죤 칼빈, 제롬, 크리소스트, 알포드, 엘리콥)
죤 칼빈은 말하기를 마귀가 처음에 창조될 때엔 하나님을 찬송하였지만 저들이 범죄하여 타락하였다. 하나님이 지으신 본성에서 나온 타락이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누가복음 10:18절에서 누가도 사탄의 타락으로 음악이 타락한 것으로 본다. 이와같은 주장을 제롬이나 크리소스트, 알포드, 엘리콥 등이 동의한다. 유다서 6절에서도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장 루시엘이 타락하여 자기 처소를 떠나 앞으론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상의 근거를 볼 때 타락한 천사들은 하나님 앞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증거해 주고 있다.
사14:12-15는 타락한 후의 천사들의 모습을,
겔28:13-15는 타락하기 전의 천사들의 모습, 그들이 지음 받기 전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였으나 타락 후 불완전한 존재가 되었다.
유다의 여호사밧왕은 다윗의 길로 행하여 하나님만 의지하여 하나님은 그를 부요하게 축복하셨고 가장 부강한 나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여호사밧왕과 함께 하심으로 부귀와 영화가 극에 달하게 되었다. 이유는 그가 날마다 하나님만을 찬송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하나님 앞에서 찬송하던 천사가 타락하여 타락한 천사의 무리가 하나님의 찬송을 희석시키고 있다. 살후2:6-7에서 “저의 때”라는 말씀은 불법의 사람, 멸망의 사람이 나타나는 그 때로서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환란의 때임을 암시하고 있으며 사단이 적그리스도에게 사단의 큰 능력과 권세를 부여해 주는 그 때인 것이다. 이사야가 설명한 새벽별인 사단이 하나님과 동등한 입장을 취하기 위하여 찬양의 영광을 가로채므로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찬양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찬양토록 하게 하는 것이다.
5. 이스라엘의 음악의 타락
출32:18-19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앞에 찬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모세가 그것을 보고 지신이 하나님 앞에서 받은 돌판을 던져 깨뜨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에덴 동산에서도 하나님의 길에서 타락하여 에덴을 쫓겨나 죄의 종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광야에서도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섬기게 된 것과 초림시대에도 세속 음악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일어났음을 볼 수 있었다.
믿음의 타락은 악기와 관련된 것을 볼 수 있다.
아모스의 예언을 보면 다윗성전과 솔로몬 성정에서 있었던 예배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번지르르한 찬송과 예배를 드리는 백성들을 책망하고 있다.
(암6:4-6) 그래서 그들의 찬송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타락한 믿음으로 부르는 타락한 음악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하신다.
(아모스5:21-23) 다양하고 아름다운 악기로 드리는 찬송이라도 타락한 찬송은 받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은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듯 마음과 몸을 단장하고 드려야 한다.
또한 타락한 음악은 기생 음악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사23:16) 간사하고 흥분시키기에 좋은 기생 음악을 하나님은 싫어하신다.
독주에 취한 음악을 하나님은 받지 아니하신다.
(사5:11-12) 하나님은 타락한 것을 받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를 대신하여 그 자리에 인간을 창조하셔서 찬양의 그 자리를 지키신 것이다.
* 소요리교리문답서 제 1문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찬양대는 제사장과 가장 가까운 자리라 할만큼 중요한 지위에 있으며 찬양대 그 자리는 천사장 루시엘이 타락하기 전의 축복의 자리인 것이다. 그 찬양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 것을 알아 타락한 찬양은 절대로 받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하나님은 흠 없고 티없는 제물을 원하신다. 귀중한 찬송임에는 틀림이 없음을 자각하여야 한다.
찬송가와 복음성가의 차이
찬송이란 하나님의 귀하신 이름, 권세, 영광, 능력, 자비, 사랑, 섭리 등에 관한 이름을 높이는 노래로서 이를 문학적으로 미화하고 음악미를 가하여 완전하고, 최고의 신앙적, 예술적 걸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찬송가는 반드시 받는 상대가 하나님이어야 한다. 어거스틴은 정의하기를 “찬송이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만약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찬송이 아니다. 찬송에는 노래, 찬양, 그리고 하나님 찬양이 있는데 이 모두를 찬송가라고 부른다. ”
복음성가는 찬송가처럼 “너”와 “하나님”과의 관계적 노래가 아니라 “나”와 “너”라고 하는 횡적 관계의 전도 찬송으로서 내 이웃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전도하는데 사용되는 찬송이다. 그러므로 복음성가의 특징은 개인의 신앙 간증을 강조하는 것들이 많고, 마음의 결단을 자극하는데 도움을 주며, 권면, 격려, 교훈 등을 성도나 불신자들에게 전하는 노래이며 복음전파를 위해 만들어진 노래 가사는 직접적이소 소박하며, 노래는 음악적이고 부르기에 좋다.
시95:1-11 오너라, 우리가 주님께 즐거이 노래하자. 우리를 구원하시는 반석을 보고, 소리 높여 외치자. 2 찬송을 부르며, 그의 앞으로 나아가서, 노래 가락에 맞추어, 그분께 즐겁게 소리 높여 외치자. 3 주님은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뛰어나신 왕이시다. 4 땅의 깊은 곳도 그 손 안에 있고, 산의 높은 꼭대기도 그의 것이다. 5 바다도 그의 것이며, 그가 지으신 것이다. 마른 땅도 그가 손으로 빚으신 것이다. 6 오너라,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자. 우리를 지으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자. 7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가 손수 이끄시는 양 떼다. 오늘,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어보아라. " <표준새번역>
성경탐구
1. 함께 생각해 보자.
①사43:21
-누가 누구에게:
-왜?
-무엇을 전해주시려는가?
②약3:10
-누가 누구에게:
-왜?
-무엇을 전해 주시려는가?
2. 왜 찬양하여야 하는가?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시149:1-4=
시113:1=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시148:5=
사43:21
-하나님의 구원하신 은혜로 인해
시68:1-6
3.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가?
시150:6=
4. 당신의 언제 무엇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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