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서 그 뜻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믿으며 또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믿을까?를 요약해서 신조화한 것이 사도신경이며,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규범화한 것이 십계명입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으로 전반은 교리로서 사도신경과 관련되고 후반은 윤리로써 십계명과 관련되어 있어 두 가지의 종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많은 신조 가운데 으뜸가는 신조이고, 십계명이 계명중의 계명이라 한다면 주기도문은 기도 중의 기도인 것입니다.
1. 십계명에 대하여
1) 십계명이란 무엇인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율법에는 일반법, 종교법, 도덕법의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율법은 출애굽 후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동생활에 필요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가르침을 모아 기록한 것을 모세오경 또는 "토라"라 부릅니다. 율법중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표준적인 것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이란 본래 "열 가지 낱말"이란 뜻으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입니다. 그 내용은 출애굽기 20 : 1-18과 신명기 5:5-21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십계명의 내용
십계명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에서 4까지는 하나님의 본질을 설명한 다음에 그에 대해 인간이 취해야 할 근본 태도를 가르치고 있고, 제5에서 10까지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것으로 도덕적 계명이 담겨져 있습니다. 십계명을 조목마다 명령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당신이 누구이신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다" 이로써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시는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시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계명을 들어야 할 의무를 느끼게 하여 십계명의 권위를 확립하셨습니다.
제1은 "너는 나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이는 이 세상에는 여호와 하나님만 모든 사람들로부터 예배를 받고 경배를 받기에 합당한 신이라는 것과 모든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고 믿고 그를 예배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제2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만이 우주에서 유일의 참 신이라는 것과 따라서 세계 만민은 어떠한 물체나 생물의 상을 만들어 놓고 절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령합니다.
우상이란 단지 물체나 생물의 모양뿐만 아니라 어떤 권력이나 국력이나 명예나 때로는 애국심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제3은 "너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지 말라"
이름은 그 존재의 인격을 의미함으로 함부로 불러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걸어 함부로 맹세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고유 명칭은 "야웨"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라고 불렀습니다)
제4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안식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성별된 날이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도의 노동이외에는 다른 일을 해서는 안되고 다만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유대교의 안식일인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지 않고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주(主)님의 날로 모여서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제5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위업을 재확인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곧 부모를 공경하는 것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함은 하나님을 발견하는 지름길이 됩니다.
제6은 "살인하지 말라"
사람의 생명에 대한 권한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있는 것이므로 살인은 하나님의 권한에 대한 침범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도전하는 행위가 됩니다.
제7은 "간음하지 말지니라"
기독교는 성욕이나 성적 생활을 죄악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부의 성도덕이 지켜지지 않으면 건전한 가정을 이를 수 없고 이웃의 이성과의 성윤리가 지켜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용납하신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제8은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도적질이란 자기의 소유가 아니거나 정당한 방법이나 근거로서는 자기의 소유가 될 수 없는 것을 부당한 방법으로 자기의 소유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남에 대하여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도덕질에 속하는 것입니다,
제9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다른 사람, 즉 이웃에 영향을 주는 행동에 대한 가르침으로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로서 제일 먼저 조심할 일이 이웃에 대하여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한 것은 꼭 법정에서 하는 증언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유리하게 하지나 자기 자신에게 이득이 오게 하기 위하여 이웃에 대하여 거짓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제10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이 계명은 누구든지 힘이 센 사람이 남의 소유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매우 야만적인 행동이 자행되던 때입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안심하고 살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주어진 계명입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태어난 것이 아님으로 그의 소유의 양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그 분량에 따라 그 안에서 생각하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3) 십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
예수님은 십계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동시에 긍정적인 면으로 확대 하셨습니다,
예로 예수님은 살인이란 반드시 어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하셨고(마 5:22), 간음은 실제로 이성을 범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성을 보고 음욕을 품는 것(마 5;28)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주어진 십계명이 의식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이 강조되어졌다면 예수님은 십계명의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모든 선지자와 율법의 완성이십니다.
2. 사도신경에 대하여
1) 사도신경이란?
신경(신조: Creed)∼ 성경의 진리를 주제로 뽑아 그 주제에 관한 성경의 여러 교훈을 통일성 있고 간단 명료하게 설명함으로 신앙의 내용을 밝히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마디로 성경이 전하는 신앙의 근본 진리를 간명하게 나타낸 신앙고백입니다.
2) 유래
최초의 신앙고백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고백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16:16)라 할 수 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사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들이 전파할 말씀이 서로 다르게 전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공통적인 형태로 작성하기도 하고 성령 충만함을 받은 가운데 열두 사도가 한 사상씩 차례대로 각각 다른 조항을 써서 만든 공동 작품입니다. 사도들의 신앙고백이라는 의미에서 사도신경이라 이름 붙었던 것입니다. 서기 100년경부터 온 교회가 사용하여 왔습니다.
3)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이유
신자에게 신앙고백은 중요하다.
"당신이 '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당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고 당신 마음으로 믿는다면 당신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음으로 믿어 의롭다 함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로마서10:9∼10)라는 말씀처럼 고백은 우리 구원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4) 사도신경이 생긴 이유
신앙의 내용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무엇을 믿는지 있어야 한다.
⸁ 세례를 주기 위한 표준∼사도신경을 고백할 수 있어야 기독교인이라 한 수 있다.
⸂ 자녀 신앙 교육에 필요∼부모의 신앙을 물려주기 위해서
③ 이단을 물리치기 위해∼초대교회에서부터 지금까지 이단이 너무 많다.
5) 무엇을 믿는가? (사도신경 분해)
사도신경의 고백의 내용을 보면 하나의 순서가 있습니다.
(1) 다섯 주제의 성서적인 배경과 기초가 대체적으로 성경의 기록상의 순서를 따르고 있습니다.
성부에 대한 고백은 창 1:1(확대적으로 구약 전체)에 기초하고 있고, 성자에 대한 고백은 공관복음서에, 성령에 대한 고백은 요한복음과 사도행전, 성교회와 성도에 대한 고백은 서신서에, 그 마지막인 영생은 요한계시록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2) 사도신경의 다섯 주제는 그 존재론적인 인과 관계에서 실질적인 선후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①가장 먼저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성부가 계시고
②그 성부의 보내심을 받아 독생자, 성자가 세상에 오시고,
③성자가 사역을 마치고 승천하신 후 그의 계승자 성령을 보내 주시고,
④보혜사 성령은 오셔서 성교회를 탄생케 하시고,
⑤성교회는 그 성원인 성도를 가르치고 지키는 것입니다.
(3) 사도신경의 12개 항목은 그 시상(詩想)으로 보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사실을 다 포함합니다.
성부의 천지창조, 성자의 신분, 출생, 고난, 부활, 승천, 성령강림 들을 과거의 사실이요, 성교회 및 성도의 사죄는 현재의 사실이요, 성자의 재림, 성도의 부활과 영생은 미래의 사실에 속하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의 12개 항목(본문)
(1)성부 :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2)성자의 신분 :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3)성자의 출생 :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4)성자의 고난, 죽음, 장사됨 :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5)성자의 부활:"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시며"
(6)성자의 승천 .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안자 계시다가"
(7)성자의 재림 :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시리라"
(8)성령 : "성령을 믿사오며 "
(9)성교회 :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10)성도의 사치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11)성도의 부활 : "몸이 다시 사는 것과"
(12)성도의 영생 :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3. 주기도문에 대하여
1) 주기도문의 성격과 중요성
기도란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주기도문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주기도문의 근본 성격은 교리나 윤리에 관한 신학적인 진술이 아닌 기원문으로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하나님에 관한 부분과 인간에 관한 부분을 포함해서)과 거기에 대응하는 인간의 기원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주기도문은 하나님나라(전반)와 인간생활(후반)을 언급하고 있어 전반은 사도신경적인 신앙고백(교리)과 후반은 십계명적인 생활규범 (윤리)을 함축한 것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유의할 점은 주기도문은 기도할 내용(What)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고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사람에게 기도의 내용을 확일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기도의 내용, 즉 회개, 간구 등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 기도의 모범(pattern)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공동예배에 있어서는 기도문으로 사용된 듯 합니다.
2) 주기도문의 구성
1)기도의 대상을 부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부름으로 시작합니다.
2)기도의 내용
기도자의 모든 요구와 필요를 총괄하는 것
(1)하나님에 관한 기원
하나님 사랑에서 기원, 신적인 것, 하늘의 것, 영원적인 것
①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됨
"이름이 거룩한 여김을 받으시오며"
②하나님의 나라가 임함-기도문의 중심적인 기원
"나라이 (가) 임하옵시며 "
③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 -하나님의 뜻(인간을 구원하시는 것)
"뜻이 하늘에서 이룬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2)우리를 위한 간구
이웃에 대한 사람의 표현, 인간적인 것, 땅의 것, 일시적인 것
"우리"-주기도문의 공동성표시 (개체성이 아님)
①일용할 양식 -육적인 것(현재적) -하나님 아버지 (창조주, 지탱자)
②죄의 용서 -영적인 것(과거적)-예수 그리스도(속죄주)
③유혹과 악에서 보호해 주실것(미래적)-보혜사 성령
(3)송영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을 부름으로써 기도를 시작하는 것과 같이 간구속에 기도의 마무리를 짓는 것으로 형식상의 균형을 유지한다. (…"아버지께 영원히…")
3) 우리의 기도에 적용할 교훈
①"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부름에서 우리의 기도의 대상은 권력 (Power)을 가지고 다스리는(rule)왕이 아니라 사랑을 가지고 보살피는(care)"아버지"임을 의식해야 합니다.
②하나님의 것을 먼저 구해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③"나를 위한 간구"가 아니고 "우리를 위한 간구"인 것에서 우리의 기도가 이기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이어서는 안되고 공동적임을 배워야 합니다.
④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 육신적인 것, 영적인 모든 것을 아뢸 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⑤송영에서 우리가 기원하고 간구하는 모든 것의 성취는 오로지 하나님께 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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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사도신경의 형성사, 본문 비교, 개정 시안
1. 신경이냐 신조냐?
신조라는 우리말의 원어는 라틴어 Credo(나는 믿는다)이다. 영어로는 Creed, Cofession이라고 불린다. 사도신경은 중국어의 使徒信經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하지만 경(經)은 종교의 경전을 의미하는 말이므로 조(條)로 바꾸어야 한다(예: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등).
2. 사도의 신조냐, 그리스도인의 신조냐?
사도신조는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12사도가 온 세계로 선교하기 위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고백하여 만들어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만(Lufinus),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 사도신조는 신앙의 간결하고 올바른 조항(루터), 신앙의 요약과 개요(칼빈)으로서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내용이 압축되어 있다. 사도신조는 오늘날 가장 많이 고백되는 것으므로 사도의 신조라기보다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조라고 불러야 적합하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신앙 고백은 사도적 전승 위에 서 있으므로 사도신조라는 용어도 완전히 틀리지는 않다. 신앙고백의 사도적 기원을 존중하는 우리는 사도신조라는 말을 사용하는 일에 거부감을 느낄 필요까지는 없다.
3. 사도신조의 '삶의 자리'
사도신조의 '삶의 자리'는 초대교회의 세례식일 것이다. 하지만 사도신조는 세례를 받는 자에 의해 고백된 것이 아니라, 세례를 베푸는 자의 질문에 대한 고백적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고대교회에서 고백과 신앙과 세례가 매우 밀접하게 얽혀있었음을 알게 된다. 신앙 고백의 선언적 형식이 생긴 것은 3세기의 세례문답부터라고 한다.
4. 사도신조의 '형성사'
최초의 신조는 이레네우스가 107년에 작성한 것이며, 중요한 신조로서는 니케아 신조(325), 아타나시우스 신조(359), 칼케톤 신조(451) 등이 있다. 사도신조의 원형으로 가장 중시되는 것은 4세기 말 루피누스(Lufinus)가 작성한 라틴어 본문이다. 그 동안 교회들은 서로 다른 세례고백문을 사용해 왔지만, 390년경에 루피누스에 의해 작성된 로마교회의 신앙고백은 가장 영향력이 있었다. 비록 그 후에도 어느 정도의 첨가와 변화(예수의 음부행, 공적인 교회, 성도의 교제)가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있는 것과 거의 같다. 오늘날 사도신도의 최종 본문은 750년에 형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사도신조의 형성에는 물론 정치적인 요소도 작용했다. 교회의 통일된 규칙을 제정하는 데 큰 관심을 가졌던 칼(Karl) 대제와 오토(Otto) 1세는 로마에서 이 본문이 받아들여지도록 애썼고, 그 결과로 로마교회의 신앙고백은 유럽교회의 중심적인 신앙고백이 되었다. 비록 사도신조는 지배자의 권력정치의 영향을 받은 것이긴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적 성격도 본다.
물론 신앙고백은 완결된 것 혹은 완전한 것일 수가 없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계속 수정, 보완될 수 있다. 사도적인 전승을 거슬러 올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더 충실한, 그러면서도 시대적 도전에 신앙으로 응답한 고백을 우리는 계속 만들어갈 수 있다(예: 트렌트 신조, 아우구스부르크 신조, 스코틀랜드 신조, 웨스트민스터 신조, 바르멘 신학선언 등). 그러나 사도신조는 오늘날까지 세계의 가장 많은 교회가 고백하는 것으로서 역사적, 신앙적 가치가 매우 크다.
5. 한국교회의 사도신조의 '형성사'
한국교회 초기 우리말 찬송가에 실린 사도신조를 비교해 보기로 하자(고어는 현대어로 고침).
찬양가(언더우드 역,1894년)
찬미가(감리교,1897년)
찬셩가(장로교,1905년)
찬숑가(장감성,1908년)
나는 천지를 만드신 전능하신 참신 성부를 믿으며
나는 천주 아버님 천지를 만드옵심을 믿사오며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옵서 천주의 외아들이신 줄을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저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께 나심을 믿으며
예수께옵서 성신으로 잉태하옵셔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강생하심을 믿사오며
이는 성신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이는 성신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나도의 손에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묻히심을 믿으며
예수께옵서 본디오스 빌나도의 손에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사와
본디오 빌나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묻히시며
본디오 빌나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지옥에 내리사
음부에 내리셨더니
사흘날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심을 믿으며
장사 후 제삼일만에 다시 살아나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참신 성부 우편에 좌정하심을 믿으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옵신 천주 아버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이와 죽은이를 심판하러 오실 줄을 믿나이다
그리로서 강림하옵셔서 산 사람 죽은 사람을 다 심판하옵실 줄을 믿사오며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나 성령을 믿으며
나는 성신을 믿사오며
성신을 믿사오며
성신을 믿사오며
거룩하고 공번된 회와
성공회를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거룩한 공회와
성인이 서로 통공함을 믿으며
성도가 서로 교통함을 믿사오며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의 사함을 믿으며
죄사함을 믿사오며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육신이 다시 삶을 믿으며
몸이 다시 살아날 줄 믿사오며
몸이 다시 사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삶을 믿나이다.
영생을 믿사옵나이다.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6. 현재 한국교회의 사도신조
개신교
천주교
성공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나 천지를 내신 전능 천주 성부를 믿으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성신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성신으로 인하여 강잉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심을 믿으며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본디오 빌라도 때에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묻히심을 믿으며
고성소(古聖所)에 내리시어
음간(陰間)에 내리사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로 좇아 다시 살으심을 믿으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천주 성부 우편에 좌정하심을 믿으며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저리로서 좇아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실 줄을 믿나이다
성령을 믿사오며
성신을 믿으며
나 성신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와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을 믿으며
성도의 상통함을 믿으며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죄의 사함과
죄사함을 믿으며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육신이 다시 삶을 믿으며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영원히 삶을 믿나이다.
영원히 삶을 믿나이다.
7. 예수의 음부행이 왜 빠졌을까?
라틴어 본문에 있는 "그는 음부에 내려가셨다"(descendit ad infernas)라는 문장이 유독 현재의 한국 개신교회의 사도신조에서는 빠진 이유가 무엇일까? 위의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1894년의 찬미가에 실린 최초의 사도신조에는 "지옥에 내리사"가 들어 있었는데, 1897년의 감리교 찬미가에서는 이 문장이 빠져 버렸으며, 1905년의 장로교 찬셩가에는 다시 "음부에 내리셨더니"가 삽입되었다. 그런데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회가 합동해서 만든 찬숑가에서는 이 문장이 다시 빠져 버렸다. 그 이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추측컨대, 사도신조를 최초로 우리말로 번역한 카톨릭 교회가 믿는 "연옥설"에 반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빼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도 예수가 죽은 후에 악인이 들어가는 지옥(음부)에 내려갔다는 점을 받아들이기가 꺼림직하였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이 본문을 해석할 때, 더 상세히 거론하기로 하자.
8. 개정 시안(이신건)
개정안
이유
전능하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사오며
"전능하사'는 잘못된 번역이고, 아버지가 먼저 나오는 것이 논리적임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외아들"은 너무 인간적인 냄새를 풍김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성신"보다는 "성령"이 보편적이고, "잉태하사"는 능동태이므로 수동태로 바꾸어 하며, "에게"는 일반적으로 여격이므로 탈격으로 바꾸어야 함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라틴어 본문에 sub(아래서, 치하에서)라는 전치사가 있고, "장사한지"는 능동태이므로 수동태로 바꾸어야 함
음부에 내려가사
라틴어 본문에들어 있고, 대다수 교회가 고백함
사흘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은 자"는 단수형이므로 복수형으로 바꾸어야 함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아버지가 먼저 나오는 것이 논리적임
거기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저리로부터"보다 "거기로부터"가 더 적절함
성령을 믿사오며
"성신"보다는 "성령"이 보편적임
하나의 거룩하고 사도적이며 보편적인 교회를 믿사오며
교회의 4대 표지를 모두 다 표명하는 것이 적절하며, "공회"는 세속적인 의미를 강하게 풍김
성도들이 서로 사귀는 것을 믿사오며
"성도"(단수)는 복수로 바꾸어야 하며, "교통"의 의미는 오늘날 달라졌으며, "교제"보다 "서로 사귀는 것"이 더 나음
죄를 용서함 받는 것과
능동태보다는 수동태가 저 적절함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
"다시 사는 것"은 재생의 의미가 더 강함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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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을 통해 본 부활신앙
1. 들어가는 말
모든 종교는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인간 삶의 마지막에 찾아오는 죽음은 인간에게 있어서 결코 가볍게 지나가는 주제가 될 수 없다. 특히 기독교 신앙은 죽음에 대해서 매우 진지하다. 죽음을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하는 기독교는 참된 기독교일 수 없다. 우리는 죽음이 단지 생물학적인 마지막 단계 이상의 것임을 알고 있다. 삶의 중심에 서 있는 인간은 죽음의 다양한 세력들로 고통당하고 있다.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죽음의 세력이 삶을 훼방하고 있다.
이러한 죽음의 현실에 대항하여 기독교 신앙은 부활을 믿고 선포한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부활신앙이다. 교회가 늘 신앙으로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는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더 나아가 사도신경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받아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사도신경의 부활 항목을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부활신앙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도신경의 부활신앙
(1) 먼저 사도신경은 우리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에 근거한 것임을 말한다. 이 말은 부활사건과 부활신앙의 관계를 조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부활신앙을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주관적인 현상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의 불트만이라는 신학자가 이러한 주장을 한 이래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부활은 “초대교회가 만든 신앙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부활사건이 부활신앙의 기초임을 인식해야 한다. 일찍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믿음도 헛것”(고전 15:14)이라고 했다. 이러한 바울의 말을 통하여 볼때 우리의 신앙은 분명히 하나님의 현실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도신경은 누구의 부활을 말하고 잇는가? 부활하신 분은 다름아닌 “십자가에 목박혀 죽은”분이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내적인 연관성을 맺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부활사건 자체가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인 십자가의 맥락 안에서 살펴 질 때 의미가 있다. 부활사건의 적합한 맥락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전파와 신앙”이다. 부활의 일차적 중요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대결하고 있는 어둠의 세력과 관련되어 있다. 그 세력은 곧 죄와 죽음과 율법의 세력이다. 하나님 없는 인간은 죄 가운데 살며, 율법 아래 놓여있고, 죽음의 세력 안에서 신음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러한 죄와 사망의 주제 속에 있는 사람들과 피조물을 향한 구원론적인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부활신앙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을 하나님께서 정당하다고 선언하신 것을 기초하고 있다.
(2)사도신경은 그리스도께서 “장사한지 사흘만에”부활하였음을 말한다. 이 “사흘”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마태복음 12장 40절에서는 요나의 물고기 배속에서의 사흘과 비유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또 구약의 호세아 6장 2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고 선포하기도 한다. 이러한 성구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이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구약과 신약의 전체적인 맥락인 구속사의 관점에서 연관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사흘만에”라는 구절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이 엄연히 다른 두 사건임도 말한다. 즉 이것은 한 사건의 두 측면이 아니라 엄연히 다른 의미를 가진 구별된 사건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건이 다르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기독교 부활의 두가 지 혼란을 막아준다. 즉 하나는 부활사건이 초대교회의 주관적 신앙에 근거한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반드시 실증할 수 있다는데 부활신앙의 근거를 가지려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반면에 사도 바울의 주장을 살펴보면 부활사건의 의미를 “역사적 증명이나 실증”에 두지 아니하고, “전파”와 “신앙”에 두고 있다.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부활사건의 적합한 맥락은 단순한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전파와 신앙”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전파와 신앙”이 헛된 것임을 말하면서, 부활이 있기에 우리의 “전파와 신앙”이 살아있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고전 15:14)그럼 바울은 왜 예수의 부활을 역사적 실증에 두지 않고 “전파와 신앙”에 두었는가? 그것은 부활사건이 이 세계에 속하지 아니하는 새로운 사건이며, 지금 세계의 연장이 아닌 종말론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만일 부활사건이 이 세계의 모든 범주에 의하여 중명될 수 있다면, 그것은 부활사건의 전적인 새로움에 대한 반증이 될 수 밖에 없다. 즉 이 세계안에서 증명 가능한 사건으로 머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활사건은 이 세계의 일부분의 사건이 아니라, 다가오는 새로운 세계를 선포하는 사건이기에, 그것의 전체 의미 맥락은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틀에서 이해되어야만 올바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시대가 이미 이 세계속에서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예수의 부활이란 이전의 삶의 소생이거나 이전 세계의 단순한 연장이 아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견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골1:13)로 옮기셨음을 말한다.
(3)사도신경은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역사적 종말에 우리의 부활이 있을 것임을 고백한다. “몸이 다시 사는 것… 믿사옵나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피조물의 역사에 있어서 유래가 없는 첫 사건이었으나, 그것이 마지막 사건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에 참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그의 부활 장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안에서 모든 인간, 아니 모든 피조물의 미래가 앞서 성취되어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 가운데 부활한 것과 같이, 모든 성도도 육체가운데 부활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생의 상태가 단순한 영혼주의적 환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 하늘과 땅 사이의 이원론은 기독교 신앙의 부활이해에서 정면으로 거부된다. 성도의 최종적 완성은 육체를 벗고 영혼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의 삶에 참여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생각함에 있어서 “몸이 다시 사는 것”의 측면을 간과한다면, 부활에 대한 성서적 가르침은 축소되고 빈곤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3. 맺는말
지금까지 우리는 사도신경의 고백을 중심으로 부활 신앙의 의미를 고찰해 보았다. 이러한 부활 이해는 오늘 여기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실천적 의미를 제시하고 있는가? 우리는 부활신앙의 실천적 의미를 “죄악된 세계 아래 있는 운명론에의 도전”속에서 찾아야 한다. 부활 사건은 이 세계가 폐쇄된 세계이며 이제 더 이상의 새로움은 없다는 운명론적인 선언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여기서 우리가 논하고 있는 차원은 부활신앙의 변혁적인 차원이다. 이제 참 물음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실재와 현실에 들어섬으로써 새 역사의 변혁속에 참여하느냐, 아니면 여전히 죄, 사망, 율법 가운데 있느냐의 실존과 역사 변혁의 물음이다. 우리는 어떠한 형태든지 현실에 안주할 수 없다. 부활신앙을 진정으로 가진 자는 현실을 끊임없이 변혁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전파와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계의 삶으로부터 도피하도록 만들지 않는다. 우리가 도피하는 실재가 있다면 그것은 이 세계의 실재가 아니라 죽음의 실재일 뿐이다. 또한 우리는 죽음의 실재에 대해서 도피하는 소극적 자세만을 취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부활사건에 기초한 부활사건 가운데 죽음의 실재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며, 저항하는 가운데 마지막에 궁극적으로 성취될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선취적으로 참여한다. 우리는 죽음과 죽음의 세력이 마지막이라고 외치는 모든 죽음의 운명론에 대항하여 부활사건을 증거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에 예기적으로 참여한다.
수 많은 실직과 고통의 시대에 우리는 주저 앉거나 삶을 기피할 수 없다. 우리가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를 억압하는 죽음의 세력에 과감하게 대항해야 한다. 우리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서 새로운 삶의 창조를 시작해야 한다. 20세기 마지막에 서 있는 우리들의 과제는 과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오늘도 부활을 온 세상가운데 “전파”해야 한다. 이것을 선교적 사명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공동체는 마땅히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그곳에 안주할 수 없는 새로움의 운명에 놓여져 있다. 진정한부활신앙은 변혁과 새로움과 복음의 전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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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신경(信經) 이란?
1.신경이란
신조(信條)와 같은 의미로서 우리가 믿는 신앙을 공식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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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틴 루터의 견해 ☜|
||
|우리나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이 신앙 고백을 창안한 것이 아니다.|
| 벌의 온갖 아름다운 꽃들에게서 꿀울 모으듯, 사도신경은 어린이들과|
| 일반시자들을 위하여 성경 내용전체, 사랑하는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 글을 아름답게 잘 모아서 요약해 놓은 것이다.|
| == 루터의 1535년에 한 설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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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어원
1)신조 (Creed): 라틴어 CREDO(내가 믿는다) 에서 왔다.
2)고백 (Cdnfession): 내가 믿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3)믿음의 규범(Rule of Faith): 믿는자가 지켜야 할 법칙들
3.신조의 종류
1)니케야신조(Nicaea // A.D. 381) : 동방교회의 신조로서 콘스탄티노플 의회
2)칼케톤신조(Calcedon // A.D. 451)
3)아우구스브르그(Augusburg // 1530) : 루터교회의 신앙고백
4)웨스트민스터신조(Westminster // 1646) : 장로교회의 신앙고백
5)제39 신앙조항(1563) : 감리교회, 성공회의 신앙고백
6)발멘(Barman // 1934) : 제1차 대전 독일교회의 신앙고백
7)1967년 신앙고백 // 웨스트민스터신조에서 선교와 성령의 부분을 보충하였다.
Ⅱ.사도신경(信經)
1.작성시기
이단이 횡행하고 기독교신앙이 정리되지 않았던 5세기 경에 작성 체택되었다.
2.논쟁거리
1)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지만 하나님과 가지는 관계는 무었인가?
2)예수안에 신적인 요소가 있는가 없는가?
3)있었다면 어느 정도인가?
3.결론
여러 이단들의 주장을 물리치고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의 바른 신앙 정립이
교회에 의해서 채택 되었다.
(예) 당시의 대표적 이단으로서는 가현설(假現設:Docetism)과
양자설(養子設:Adoptionism)이 있었다.
4.구조
+----------+-------------------------------------+
|고백의대상| 내 용|
+----------+-------------------------------------+
| 하 나 님| 아버지, 전능, 창조주|
+----------+-------------------------------------+
| 예 수 님|잉태,수난,수난,십자가,죽음,부활,승천|
+----------+-------------------------------------+
| 성 령 님| 믿음|
+----------+-------------------------------------+
| 교회,성도|거룩한공회,성도의교제,사죄의은총,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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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내용
Ⅲ.사도신경을 공부하는 이유
1.성경을 바로 이해하고 바른 신앙고백을 하려는데에 있다.
(성경공부의 방법)
#성경의 본문을 차례대로 읽으며 그곳에 있는 문맥대로 연구하는 것
#제목을 정해 놓고 그 제목에 관계된 말씀을 찾아가면서 본문이 아닌 주제를
중심하여 연구하여 가는 방법이 있다.
성경의 해석은 성령의 저자이신 성령의 감화 안에서 진실하게 해야 할것을 물론
이지만 절대적으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교회적 전승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1)교회적 전승에 의존하여 종합적으로 하여야 바른 신앙고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 오다가 세월이 가면서 와전되어 가게 되었다. 이에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다 모아서 연구하되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진실한
내용을 찾아가는 것이다.
2)성경은 어느 측면과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가 중요하다.
2000년동안 해석하여 온 맥락과 문맥을 알아야 한다.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해석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2000년전 이 성경이 기록 될 당시에 어떻게 해석
되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그 대표적인 예가 이사야 7:4절의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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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귀| ぢ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っ (사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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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 현대 히브리어| 기록 될 당시의 히브리어|
+------+------------------------------+--------------------------+
| 낱말| {알마 }| {알마 }|
+------+------------------------------+--------------------------+
| 영어| Lady ( 숙녀, 여인)| Virgin (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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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3세기경의 70인역 성경은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구약|
| 해석| 을 기록하면서 분명히 처녀라는 의미의 [알마]란 용어를|
||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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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우리는 성경의 뜻을 지금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만으로 마음
대로 해석했다가는 큰 오류를 범할 수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서는 지난 2000년동안 의 교회적 전승을 주요한 도구로 사용
하여야 한다. 성경을 마음데로 뜯어 고치고 풀아 하면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해석이 되고 여기에서 이단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예) 다미선교회의 666에 대한 오류
3)교회적 전승들의 종류
여러 전승이있지만 모두가 하나 같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다.
표현만 조금씩 달랐을 뿐이지 언제나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이런 초대교회 사도들은 성경에 기초하여 예수를 믿을 때, 아버지 하나님,
그의 아들 되시는 예수님, 성령의 역사로 집약하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의 우리도
예배를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찬송으로 시작하고 이러한 삼위일체의 축도로 마
치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세례도 삼의일체의 이름으로 주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믿음의 중심이었던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고백은 변함없이 오늘의 우리의 가장 중요한 믿음의 진수가 된다. 사도들의 이 고백이 바로 우리의 신앙고백임을 부인하지 못한다면 그 중에서도 가장 전통적이요, 데표적인 사도신경을 공부하여 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2.짧은 시간 내에 기독교교리의 진수를 일별할 수 있다.
성경66권을 다 공부하자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특히 기독교교리를 빨리 알고자 하는 신입교인에게는 그 지루함이 더할 것이다. 66권을 종합하여 요약한 사도신경을 우리의 신앙욕구를 채워 줄수 있다. 성겨의 축소판이라 할 수있는 사도신경을 자세히 푸어서 많은시간을 두고 공부해야 하겠지만 가급적 요점만 추려서 기독교의 진수만 4개월 동안 쉽게 해석해 보려고 한다. 그래서 초신자에게는 확고한 신앙을 확립하고, 오래된 신자에게는 이를 계기로 사도적 전승을 재 확인하여 성경을 재음미하고 밝히 익히는데 도움을 갖고자 한다.
부디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인 {배우며, 전도하며}의 위대한 일을 이루어 가는데
그 중요한 목표 중에 하나인 전교인 성경공부 참여에 작은 출발전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도움심과 성령님의 여사하심과 예수님의 삶이 우리의 지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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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 사도들의 고백 -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복음 20:28)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고백이라고도 불립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를 요약한 것으로서 최소한 이 신앙고백을 하지 않는 교파는 우리가 믿는 기독교라 볼 수 없습니다. 이 고백은 열두 사도가 한 사람씩 각각 다른 조항을 써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일 먼저 베드로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하고 고백을 시작하자 안드레가 이를 받아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하고 첨가 하였고 이어서, 다른 사도들도 차례로 고백하여 이 사도신경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도신경은 우리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가를 확실히 함으로써, 참된 신앙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안내자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주일 예배 시에 사도신경을 함께 고백합니다. 이 신앙고백은 반드시 암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사도신경의 내용들을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 사도신경 >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1.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몇 가지로 구분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 전능하신 하나님 :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은 유한하나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십니다.
- 창조자이신 하나님 :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인간도 지으셨고 우주를 다스리시며 우리의 생사화복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 아버지이신 하나님 : 그러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나는 믿습니다.
2.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사도신경의 초점은 예수님이십니다. 그에 대한 고백이 가장 많습니다.
-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 :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그 분이 이 어두운 세상에 오셨습니다.
- 우리 주이신 예수님 :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그의 종일 뿐입니다.
-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 예수님은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주신 구세주(메시아)이십니다
-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님 : 예수님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동정녀를 통하여 성령으로 태어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와 상관이 없으신 분입니다.
-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 : 빌라도의 그릇된 재판에 의해 극형인 십자가 형을 받아 못박혀 죽었습니다. 이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 부활하신 예수님 : 예수님은 죽어 장사되었지만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망을 이기신 것입니다. 죄없는 예수님을 사망이 삼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 승천하신 예수님 :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거기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
- 다시 오실 예수님 : 예수님은 이 세상에 다시 오십니다. 2천년 전에는 우리를 구원하려 오셨으나 다시 오실 때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오십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3.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은 삼위일체가 되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듯 나는 성령님을 믿습니다.
4. 나는 공회와 성도간의 사귐을 믿습니다
- 거룩한 공회 : 이는 교회를 뜻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이며 예수님이 친히 머리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 성도간의 교통(사귐) : 이것은 성도간에 서로 얼굴을 익히고 알고 지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교회라는 거대한 몸의 작은 지체입니다. 손과 발, 눈과 귀가 다 한 몸에 붙어 서로 신경이 통하듯 우리 모든 성도들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몸의 지체로서의 관계를 가집니다. 한 지체가 아파하면 다른 지체도 고통을 당합니다. 나는 교회 및 성도간의 이러한 사귐을 믿습니다.
5. 나는 사죄와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 죄 사함 : 나는 죄인이었으나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지셨고 또 용서받았음을 믿습니다. 또 앞으로 죄를 짓게 되더라도 용서받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
- 다시 삶 : 모든 인간은 죽습니다. 나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께서 다시 사시었듯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망을 이기셨듯 죽음이 나를 삼키지 못합니다.
- 영원히 삶 : 나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날 뿐 아니라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을 믿습니다.
<낱말의 뜻>
* 승천 : 하늘로 올라 감
* 사죄 : 죄를 용서받음
* 부활 : 죽음에서 다시 살아남
* 교통 : 서로 막힘 없이 오가는 것, 사귐을 의미함
* 동정녀 : 동정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여자
* 본디오 빌라도 : 예수님을 십자가 형에 처하도록 선고한 로마 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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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고백서 -사도신경
사 도 신 경
바로잡은 사도신경
신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현재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가 서로 교제화는 것과
죄를 사함 받는 것과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아멘
(나채운 목사 사역)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를 나는 믿습니다.
나는 그분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시며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음부에 내려 가셨으며
사흘만에 죽은 사람들로부터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 데
그리로부터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을 심판하러 오실것입니다.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나는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사죄와
육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유해무 교수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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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드릴 때마다 믿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제자였던 열두 사도들의 신앙을 이어받아 내려오는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런데 사도들이 신앙고백으로 하였다는 사도신경이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신앙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도신경이 사도들의 신앙고백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늘어나면서 요즈음 예배드릴 때 사도신경을 하지 않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도신경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것으로 신앙에 미치는 영향도 대단히 크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신앙을 이어받아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신실한 기독교인들이라면 반드시 사도신경의 근원과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내용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사도신경의 역사적인 배경과 그 유래를 잠시 살펴보기로 하겠다. 사도신경은 초대교회시절 서방교회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교인들이 사도신경을 통하여 신앙고백을 하게 된 것인데 사도신경은 주로 세례문답을 할 때 사용하였다. 그러나 사도신경이 사도들의 신앙고백이라는 확실한 근거나 증거는 지금까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사도신경의 유래는 4세기 말경에 존재하던 루피누스와 암브로시우스가 기록한 문서의 내용을 발췌하여 그때부터 사용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들이 기록해놓은 문서에는 사도신경이 12항목으로 되어있는데 예수님의 열두 사도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즉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 복음을 전파하러 나가기 전에 신앙의 요체를 한 항목씩 고백하였다는 설이다.
이러한 문서를 근거로 하여 초대교회로부터 전승되어 온 사도신경은 중세기까지 그대로 받아들여졌으나 근대 학자들에 의해 신빙성 문제가 제기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신경은 수세기를 거쳐 내려오면서 기독교의 공동체 안에서 지금까지 사용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신경이 현재의 형태로 정리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8세기초 피르미나우스에 의해서였다. 이렇게 재정비된 사도신경은 중세 초기에 서방의 모든 교회들이 세례의식 때 사용을 하였으며 9세기에 이르러서는 초신자들의 교육내용으로 보편화된 것이다. 사도신경은 결국 12세기에 들어서면서 교회들의 공식 신조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들이 지금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은 그 문맥과 내용들이 카톨릭교회와 성공회와 프로테스탄트교회가 각기 조금씩 다르다. 사도신경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정통성을 가지고 모든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그런데 사도신경이 과연 사도들이 하던 신앙고백이며 또한 그 속에 담겨있는 내용들도 성경적이며 사도적인가 하는 것이다. 즉 사도신경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과 사도들의 뜻에 부합되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사도신경이 예수님이나 사도들의 뜻과 다르며 성경적이 아니라면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혼란은 물론 엄청난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에 담겨진 내용들을 성경을 통하여 비교 분석하면서 살펴보는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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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포름(Open Forum)
1991년 1-6월 New Life digest에서
질의자: 사도신경(使徒信經)에 보면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사"라고 되어 있는데 성경어디에서 이것을 찾을 수 있습니까? (영문 사도신경에는 이 기록이 있음)
캠핑: 성경에는 그렇게 직접적으로 기록된 곳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태복음 12장 40-41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the heart of the earth)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 라고 하신 데서 나온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9절에도 「예수」님께서 "---땅 아랫 곳으로(lower parts of the earth)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었이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구절에서 "the heart of the earth"와 "lower parts of the earth" 는 동의어이며, 또 지옥을 나타냅니다.
사실은 심판 날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보내질 곳입니다. 그리고 지옥은 하나님과 격리되고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우리가 가서 영원히 살아야 할 곳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상에서 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지옥에 내려가신 일이 없습니다마는 우리가 지옥에서 영원히 지내야 할 하나님의 큰 형벌과 대등한 벌을 받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밤낮 사흘은, 목요일 저녁부터 고난을 받기 시작했으며, 일요일 아침 그가 무덤에서 부활하셨을 때까지 그 형벌을 참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난이 시작되었으며, 그때 그가 받은 형벌은 너무도 커서 핏방울로 된 땀이 땅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로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고 할 수 있으며, 목, 금, 토요일 밤과, 금요일, 토요일 그리고 동이 트기 전 일요일을
합쳐서 밤낮 사흘이 됩니다.
질의자: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믿는 구세주가 없었는데 어떻게 그들이 천국에 갈 수 있었겠습니까?
캠핑: 구약시대에 노아나 모세나 그리고 다윗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겠습니까? 우리와 똑같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실상 그들은 하나님을 「예수」라는 이름으로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속죄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욥은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19:25)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유대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고 하셨습니다.
「이사야」도 이사야 12장 2절에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었으며 그 하나님께서 지상에 구원을 가지고 오실 것을 믿었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하나님 자신인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지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음을 믿습니다.
질의자: 이사야 19장에 「애굽」과 나라와 나라가 서로 싸우며, 포악한 왕과 메마른 땅에 대하여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이 잔인한 「싸담 후세인」(Saddam Hussein)을 말하며, 마른 땅이 사막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아랍사람들을 쳐서 이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캠핑: 지난 여러 세기 동안 사람들은 성경의 예언을 정치적인 사건과 연결시켜 여러 가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가상(假想)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가상이 잘못되었음을 우리는 증명해 왔습니다.
성경은 정치적인 사건의 진면(眞面)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성경은 복음만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서 19장도 현재나 장래에 있을 정치적인 사건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구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비유를 말하는 언어; 우리는 마가복음 4장 33-34절에 기록된 근본적 원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 들을 수 있는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계명이며 또 우리 믿음의 실상입니다. 우리가 이 기본적 원리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성경의 예언에 대하여 해석하는데 온갖 문제거리가 생기게 됩니다. 일단 우리가 그 사실을 이해하면 하나님께서 이사야 19장에 아름다운 약속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구절이 바로 19절입니다.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이것은 바로 주 「예수」「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그는 바로 번제(燔祭)의 제물이며, 바로 그 제단이 우리의 구원을 가지고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20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표적(標的)과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의 연고로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한 구원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다섯 도시; 18절에는 가나안 땅의 말을 하는 「애굽」의 다섯 도시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이며, 가나안은 천국의 그림자(picture)입니다. 이 구절의 문맥(文脈)에서 가나안 땅의 말은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언어입니다.
은혜; 성경에는 빈번히 숫자 5를 사용하여 인간의 구원이나, 구속하심을 상징합니다. 여기서도 다섯 도시도 구원계획을 말하며, 즉 온 세계를 복음화하실 신약시대를 가리킵니다. 구원을 받을 사람들은 가나안의 말을 할 것이며, 그것은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8절 이전에 세상이 영적으로 파산(破散)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성경에 「애굽」은 세상을 상징하며 세상은 죄의 노예(奴隸)가 되었음을 가르칩니다. 세상은 사단의 통치 아래 있고, 바로 이 사단은 "잔인한 군주"입니다. 영적으로 생명수가 흐르는 강이 없기 때문에 메말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8절에 "어부들은 탄식하며 무릇 나일강에 낚시를 던지는 자는 슬퍼하며 물에 그물을 치는 자는 피곤할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아무것도 낚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17절에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왕국이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건립된 왕국입니다. 이것은 사단의 왕국을 물리치는 승리를 말합니다.
남은 자들; 이사야 19장의 가르침은, 죄로 물든 세상에 구원을 받게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21절은 극히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그날에 「애굽」인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죄에 속박되어 있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주님을 알게 될 것이며, 그들은 일생을 주님을 섬기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19장은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니라"고 함으로써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당신이 어떤 나라에서 왔는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한다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질의자: 하나님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그리고 그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캠핑: 둘째번 질문부터 먼저 대답을 한다면, 하나님은 영이시며 우리의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천사들도 영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천사들은 믿는 자들을 섬기도록 보내졌다고 했습니다(히 1:14).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안과 마음을 천사를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도록 창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육안으로, 또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알아보도록 인간은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무한의 존재입니다. 또한 그분은 어디에나 다 계십니다. 그는 내 마음 속에 계시며 또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 속에 계십니다. 어떻게 여러분이 그 사실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모양에 대하여 몇 군데 설명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에스겔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이상(異像)을 내게 보이시니"(겔 1:1)라고 했습니다. 또 28절에는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말하기를 "샘물 곁 땅 위에 바퀴가 있는데 그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있고"(1:15)라고 했습니다. 또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 기록하기를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계 1:14)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설명이 하나님의 모양을 묘사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눈에 나타났던 그림을, 즉 하나님의 본질을 설명해 보려는 것입니다.
시작이 없음: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성경은 단순하게 영원 전부터 계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시작이 없습니다. 그는 그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I Am)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실상은 사람의 생각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제한된 인간의 마음으로는 납득(納得)하기가 힘든 일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시고, 또한 영원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 사실을 받아 들이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의 창조를 보십시오. 단순히 분자와 원자를 보십시오, 얼마나 그것들이 복잡하게 생겼습니까? 그리고 눈을 들어 해와 달과 그리고 별들과 은하수를 보십시오. 그리고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들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사실상 우리는 이 창조에 대하여 이해할 실마리가 없는데, 하물며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우리가 이해하겠습니까?
질의자: 캠핑씨, 선생님께서 말하기를 성경에는 토요일 안식일을 공식적으로 일요일로 변경한 것을 마태복음 28장 1절에 기록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 구절을 읽어봐도 그러한 내용을 읽을 수 없습니다.
캠핑: 사실입니다. 거의 모든 성경 번역이 이 구절을 잘못 번역했습니다. 예를 들면 KJV에는 "안식일이 다 지난 후 첫날"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희랍」어 원문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Interlinear"성경(「희랍」어 원문 문장 사이에 영문 번역을 삽입한 성경)을 읽어 보면 "안식일들이 다 지나가고 안식일들의 첫 번째 안식일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두 번 기록된 안식일(sabbaths)이 다 복수로 되어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영문 번역자들이 "안식일들이 지난 후"(after the sabbaths)를 "안식일(단수) 끝에"(the end of the sabbath)로 번역하고, "안식일들 중에 첫 안식일"(the first of the sabbaths)을 "주(週)첫 날"(the first day of the week)로 번역했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가끔 「희랍」어 단어가 두 가지의 뜻이 있으며, 번역할 때 번역자가 선택하여 번역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복수인 단어를 단수로 번역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뜻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렇지만 놀라운 것은 우리가 직접 「희랍」어 원문 성경을 읽고 비교할 수 있습니다. 번역자들의 의견을 믿지 않아도 됩니다. 이러한 번역자들은 "성령의 감동"에 의하여 번역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합니다. 「희랍」어나 히브리어 원문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확실하게 이해하도록 합니다. 여하간, 마태복음 28장 1절은 구약의 규례(規例)적인 안식일들의 끝이 왔으며, 그때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왔던 기록입니다. 그는 일요일 이른 아침에 무덤에 왔으며, 「예수」님의 부활을 발견하였고, 이것이 바로 신약 안식일들의 첫 번째 안식일 미명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규례적인 모든 안식일들의 목적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바로 그 제 7일 안식일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지적함을 알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6절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貶論)하지 못하게 하라"
오늘날 우리는 안식일을 일요일에 지키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 날은 주님의 날이며,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아무런 공로가 없음을 반영합니다. 인간의 의지로 하는 최선의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더러운 옷"(filthy rags)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구원을 받는데 대하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절만이 안식일들(복수)을 단수로 번역한 구절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16장 2절, 누가복음 24장 1절 그리고 요한복음 20장 1절도 번역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질의자: 우리 친구의 아들이(십대) 젊은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생기게 하셨는가?"라고 질문했을 때 나는 아무런 답변을 할 수 없었습니다. 캠핑씨, 저를 도와 주시겠습니까?
캠핑: 예! 한 젊은 사람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을 때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가 하는 생각을 자연히 하게 됩니다. 물론 성경은 이러한 특별한 사고에 대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공부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고로 죽은 젊은이나 그의 가족에게 특별히 해당되는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다마는, 우리에게 어떤 넓은 의미의 뜻을 가르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엡 1:11)라고 하셨으니,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을 가르칩니다.
가끔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하던 자들의 죽음을 통하여 남아 있는 다른 사람들을 경고하며, 경고를 받은 자들의 죽음도 영원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가르치십니다. 인간은 누구라도 하나님께서 불러 가실 날짜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면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시시로 다짐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그의 징계를 내리십니다. 질의자가 말한 그 사건이 사건을 당한 가족에게 하나님의 경책(警責)이 내리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그리고 11절에는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했습니다.
선을 이루심: 하나님께서 징계를 통하여 자기가 구원코자 하는 사람들의 영적인 눈을 밝게 합니다. 그는 또한 징계를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확고히 하며, 「그리스도」와 더 가까워져서 우리의 생활을 완전히 「그리스도」에게 의존하게 합니다.
단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떠한 사고든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이 수 천가지 다른 모양으로 일어나며,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러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건이 일어났으며, 하나님의 계획이 그 개인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참사를 볼 때 거듭난 우리 형제들과 또 곧 구원을 받게 될 사람들에게는 큰 위안이 됩니다. 그 이유는 로마서 8장 28절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질의자: 내가 어디까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지 알려 주십시오. 십계명중의 하나를 범해야 될 때가지 순종해야 합니까?
캠핑: 그 질문이야말로 참으로 실제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아내들아 너희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했으니, 같은 논리로, "우리가 어느 정도 우리를 통치하는 정부의 법을 따라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녀들이 어느 정도 부모에게 순종을 해야 하는지도 질문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성경의 법은 하나님께서 최고의 결정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다스리는 사람이 정부이건, 남편이건, 부모이건 간에,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법에 위반되는 일을 강요한다면 우리는 단연코 복종치 말아야 합니다. 사실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법을 지키도록 요구하시는 것은 십계명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두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만일 당신 남편이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며, 미워하며, 도적질을 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복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같은 이유로 정부가 우리에게 명령하기를 무죄한 민간인들을 이유 없이 살해하라고 한다면, 비단 우리가 감옥에 가서 고생을 할지라도 복종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 남편이 당신에게 현명치 못한, 천치 같은 일을 하라고 할 때, 그것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일이 아니라면 당신은 복종해야 합니다. 결혼 생활에 있어서 아내가 모든 일에 있어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성경의 법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아내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큰 문제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기초작업: 이 계명을 지키자면 우선 아내가 남편에게 대하는 태도에 있어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요구합니다. 그는 남편을 항상 좋게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의 착한 것과, 신사적인 것과, 또 잘하는 일에 대하여 늘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에 아내가 남편에 대하여 나쁜 생각을 했을 때는 곧 지체없이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야 되며, 그렇게 함으로써만 하나님과의 관계에 금이 가지 않도록 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남편이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나는 일을 하도록 요구할 때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 아내는 아주 부드럽게 "여보, 당신은 내가 언제나 당신 말에 순종하는 것을 아시지요. 그리고 나는 당신을 극진히 사랑하며, 아주 착한 「그리스도」인의 아내가 되기를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일은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계명에 복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기로는, 어떤 아내든 그가 아내의 본분을 다하고 있을 때, 많은 경우, 남편은 그 일을 잘 이해하며, 하나님 말씀이 중요하며 그 것에 불순종할 수 없다는 뜻을 알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한 남편이 있습니다마는, 특히 그 남편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경우입니다. 그러한 경우 심지어는 남편이 아내를 때릴 수도 있습니다. 만일 실제로 당신이 매를 맞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신앙을 인정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경우가 이러한 경우라면 베드로전서 2장의 마지막 10절과 3장의 처음 부분을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처사(處事)할 것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질의자: 금년 초에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까?"라는 전도지를 모스크바에 가서 100만장을 돌려 주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 전도지를 본 적이 없습니다마는, 사실상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사랑하십니까?
캠핑: 성경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며 그는 모든 인간을 사랑하신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 자비로운 단비를, 그리고 따뜻한 햇빛을 악한 자들과 의로운 자들에게 한결 같이 내리시며, 또 구원을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들에게 다 내리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구속자(救贖者:Redeemer)라고 할 때 인류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음을 우선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들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시편 11편 5-6절에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시편 5장 5절에는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다니면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혹은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합니다"라고 전하는 사람들에게는 잘못된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복음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될 때입니다. 우리가 복음에 순종하게 된 후에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떠한 연고로 내가 말씀에 순종하고 구원을 받게 되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으로 우리를 친히 인도하신 것입니다.
질의자: 그렇지만 만일 당신이 말한 대로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면 왜 그는 우리에게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까?
캠핑: 우선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이 죄를 지었다는 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죄를 지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를 경배하며, 그에게 충성을 다 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 거역하였으며, 하나님 앞에서 주먹을 휘두르면서 인간들 자신의 길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가 모독(冒瀆)당한 것입니다.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신 인간의 창조주로서 그에게 반역하는 인간을 미워하실 공의를 가지고 계십니다.
더욱이나, 우리 인간에게는 죄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상 우리는 죄인이지만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셨다면 우리도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같은 죄인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남을 판단할 권리가 전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누구를 구원하시고 자 계획하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을 사랑해야 하며, 그 중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을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웃에게 보여야 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신 자를 구원하시게 됩니다.
질의자: 우리가 다음에 올 세상에 가게 되면 우리는 어떠한 몸을 가지게 됩니까?
캠핑: 고린도전서 15장에 "신령한 몸"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사람의 육감으로는 "신령한 몸"이 어떠한 것인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지극히 영광스럽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믿는 자들이 그 몸으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 구원 받지 못한 자들, 즉 그들의 죄를 담당할 구속자가 없는 자들도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죗값을 치루어야 하기 때문에 지옥이라고 하는 곳에 가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들이 어떠한 몸으로 지옥에 갈 것인지 성경에는 언급이 없습니다.
이대우, 5/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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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교회
많은 교회들이 예배의식의 하나로 신앙고백 문으로 암송하고 있는" 사도신경"이라는 것이 있는데 과연 이 고백 문이 복음 곧 신약성경의 사상과 얼마나 일치하고 있는지 찾아보고자 한다. 사도신경의 내용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 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 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3)심판하러 오시리라 4)성령을 믿사 오며 거룩한 (5)공회와 성도가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6)몸이 다시 사는 것과 (7)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 옵나이다. 아멘"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And in Jesus Christ his only Son our Lord; who was conceived by the Holy Ghost, born of the Virgin Mary, (1)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the third day (2)he rose again from the dead; he ascended into heaven,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from thence he shall come (3)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I believe in the(4) Holy Ghost; (5)the holy Christian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the forgiveness of sins; (6)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nd(7) the life everlasting. Amen."
1. 사도신경의 정의
사도신경은 동방교회에서만 사용되어온 신앙에 관한 선언이다. 이것은 증거와 설명을 하지않고 일련의 간결하고 적극적인 믿음의 확인 입니다.
2. 유래
사도 신조는 세례식에서 관례적으로 행하여 온 삼위의 순수에 따라 3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삼위는 구성으로 보아 마태복음 28:19절을 바탕으로 한듯하며 성부로서의 하나님, 성자로서의 예수그리스도와 성령이다. 사도신경의 주요 부분은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이며 성령에 관한 간단한 선언을 한 뒤에 성령의 역사 하심에 관한 일련의 구절들이 뒤따른다. 사도신경 형식 자체는 사도들에 의해서 유래된 것은 아니다. 이 명칭이 처음 발견 된 것은 390년경 이였는데(로마제국시대)
그 뒤 오래지 않아서 사도들의 공동작품이라는 전승이 나타나게 되였다. 사도가 한 사람씩 각각 다른 조항을 써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베드로는 성령의 감화를 받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라고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 뒤 안드레가 (혹은 요한 이였을지도 모름) 그의 외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내가 믿사오니라고 첨가하였고, 형인 야고보가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라고 계속하였다고 하니 . . . . .
현행 찬송가 앞에 실려 있는" 사도신경"은 실상은 사도가 쓴 것이 아니라 주후 381년 제2차 공의회에? 제정한 것이다. 이때 이것을 초안한 사람은 당시 감독 가이사라의 바실 (330-75) 나이사 그레고리 두 사람은 쌍둥이와 나시아스스 그레고리 감독 이 함께 제안한 것을 사도신경으로 하자는 결정을 한후 오늘까지 아무런 연구나 비판 없이 전해오고 있다.
The three Cappadocians BASIL OF CAESAREA,(330-75) his brother GREGORY OF NYSSA(330-95) and their friend GREGORY OF NASIASUS(329-89) finally established the wanding with was adopted at constantinople in 381( the Second Council which came to be recognized ecumenical)
3. 내용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고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바울은 새로운 교인이 몸 바치게 되였던 가르침의 모범을 밝혀주고 있다(롬6:17)
롬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디모데는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 하였음을 말하고 있다(딤전 6:12)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 하였도다.
이것은 곧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시련과도(딤전 6:13) 연결된다.
4. 시기
2세기 중반에 이르러 세례의식에서 행하는 증언을 이레네우스, 터틀리아 누스, 노바티아누스, 오리게네스 등이 일정한 형식으로 자유롭게 구체화 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로마교회에서 행하던 형식이 시간이 감에 따라, 또 신학적인 논쟁과 이단의 세력이 커짐에 따라서 새로운 중요성을 지니게 되였다. 그래서 점차 공식적인 신조로 성격을 띠게 되였고 믿음의 규칙으로 불리 워 지게 되였고 때로는 성경에 대한 이단을 가름하는 척도가 되기도 하였다. 오늘날에 잀혀지고 있는 것은 341년 안키라의(마르첼루스)의 헬라어판에서 인용하여 온 것 입니다. 390년경 누피누스에 의해서 보존된 라틴형식에는 생략 되였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 이란 귀절이 처움 나타난 것은 650년경 헬라어 판 이였다.
5 이 신조가 만들어 져야 했던 필연성
그리스도의 교회가 역사적으로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4가지 이유로 인하여 변화가 일어났다
1) 헬레니즘 - 영지주의
2) 성령체험 - 몬타니즘
3) 로마정부 기독교 법제화
4) 당시에 성경을 개인이 읽지 못한 이유
1) 헬레니즘(영지주의)
희랍사상의 우주론이 동양종교, 특히 유대교와 철학적으로 혼합되어 나타난 결과다. 영지주의는 본질상 물질은 악하며 영은 선하다는 이원론적 주장을 펴는 이단이다. 그들은 구원 받은 영혼이 죄 많은 몸 안에 갇혀있기 때문에 몸의 행위에 대한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영지주의 자들은 구원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서의 신앙에 의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이론과 사상을 아는 것으로 구원의 가능함을 주장한다. 교회 안에서 영지 주의 자들은 거짓 교사와 거짓 가르침의 위치에 섭니다. 영지주의는 제2세기 후반부터 교회의 상태는 헤이 해지고 예배가 형식화되고, 교리가 독단적인 것이 되고 윤리의 표준이 세속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였다. 그 결과 4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교회 내에서 볼 수 있었던 아름답고, 순결하고 그리스도안에서 사랑이 넘치는 특성은 당시 국가와 사회로부터 침투해오는 야비하고 경건스럽지 못한 세속적인 경향으로 오염되기 시작하였다. 이때마다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회복시키려는 사람들이 일어나 당시의 교회 질서를 회복한다는 한 단체가 생겨났다. 이 사상이 헬레니즘 다시 말해서 영지주의인데 이는 한 교회 조직 이라기 보다는 교회의 외부와 내부에서 일어난 철학 운동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이원론, 조물주관념, 가현설 등을 주장하므로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온 것은 인간으로 실재적이 아니라 하나의 꾸민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인성 설을 부인하는 사상이 생겼다.
바벨론의 점성술 페르샤의 이원론, 우주론, 에굽의 유물론등을 종합한 일종의 종교철학. 이들은 이원론에 근거하여 선과 악, 빛과 어둠, 영과 육을 갈라 논 다음 이를 극단으로 대립시켜 영의 세계는 빛이요 따라? 선하게 보았으며, 육의 세계는 어둡고 악하다고 하였다. 이 사상이 교회까지 침투하여 구약 만물을 지으신 신 즉 하나님을 열등 신으로 보았고 그리스도는 창조의 신보다 우수한 신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알리려 오신 분으로 육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유령적, 환영적으로 오셨다 하여 예수님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동시에 기독교의 역사적인 근거를 파괴하려 하였습니다. 여기에 편승하여 금욕주의 사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2) 성령체험-몬타 니즘
헬레니즘이 있었을 때에 또한 다른 운동이 일어났는데 영지주의를 반데하고, 교회의 도덕적 문란한 점을 막으려고 하고, 교회 안에 계급주의 반데 당시에 일어나는 특별한 섭리와 계시를 믿지 않으려는 사상을 막기 위하여 일어난 운동이다. 이 사상은 철저한 금욕주의 였다.
성령의 직접적 감화를 강조하고 예수재림이 임박하였다고 믿는데서 신앙의 열정과 엄격한 생활호소, 기성교회의 전승을 무시하며 정상적 신앙을 버리고 금세의 의무를 저버리고 열광적으로 재림과 내세에만 혼미하였다.
3) 로마 정부의 기독교 법제화
325년 콘스탄틴이 황제가 된 후 기독교를 법으로 인정하여 그리스도의 교회 발전을 위하여 힘썼다(325년부터 590년까지) 네로 시대로부터 디오클레티안시대(54-305)까지 거의 250년은 박해 시대였으나 박해를 받으면서도 감?력과 세력이 확대될 뿐만 아니라 수자 적으로 지리적으로 꾸준히 성장하였다. 그러나 교회생활은 핍박에 의해 세속화되고 교구가 헤이 해졌는데 콘스탄틴황제 때 부터 국가적으로 보호를 받게 되자 교회는 더욱더 세속화되고 도덕이 부패해지고 교회의식이 속?되고 교리가 비 성서적으로 되고 교회가 불화하게되고 그밖에 여러 가지 좋지 못한 것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였다.
한 예로 이때에 알렉산드리란 교회의 장로였던 아리우스가 예수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으로 분리하여 그리스도는 피조물이나 영원하지 못하다고 주장하였는데 같은 교회 장로였던 알렉산더와 충돌이 있었음. 후에 아리우스는 파면 당하고 교회에서 축출하였음. 그러므로 대외적으로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여러가지 이론이 나온다. 이때 나타난 이론이 인성 설과 신성 설이다. 이는 예수그리스도는 인간이였는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였다는 설과 아니다. 신이 어찌 육을 입을 수 있는가 하나의 꾸밈에 의하여 인간화 하였다고 주장하는 등등
325년에 그 당시에 종교적인 격심한 논쟁을 진정시켜 또한 로마제국을 강화하여 단합시키는 목적으로 325년에 친히 종교회의를 개최하여 니케아신조를 채택하였다.
4) 당시에 성도들이 성경을 읽지 못한 이유
1) 성경이 일반화 되지 않은 시기에 이단을 구별하는 것으로는 되지만 오늘날에는 성경 적으로 식별해야 하기 때문에 구태어 이것을 외울 필요가 있을가? -물론 교육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2) 사도신경을 외우도록 한 것은 위에서도 역사적으로 알아 보았듯이 삼위일체를 부인한데서부터 시작 되였다.7세기경 혹은 390년경(- 대백과사전 516페이지
3) 천주교에서 초신자 들을 세례주기 위하여 필요했기 때문이다. -근거성서대백과사전에? -
4)문제; 사도신경 자체에 보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낳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천주교에서 마리아 숭배사상에서 나온 것 아닐가?
역사적인 것을 인정하기 위하여 빌라도를 넣었다.
II.사도신경은 신약성경의 사상인가?
많은 교회들이 예배의식의 하나로 사도신경을 신앙 고백 문으로 암송하고 있는데 과연 이 고백 문이 신약성경의 사상과 얼마나 일치하고 있는지 찾아보고자 합니다.
1) 본문의 번호 1:
빌라도 에게 고난을 받으사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사실과 전연 다른 것이다. 예수 님에게 고난을 준 사람들은 빌라도가 아니라 유대 백성들, 바리새인들, 대제사장들, 장로들, 서기관들 그리고 돈으로 매수한 예수 님의 제자 가롯 유다 와 로마 병정들 이였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빌라도의 죄가 있다고 하지 않으신데 주의하여야 한다. 오히려 나를 잡아서 빌라도에 넘겨준 자의 죄가 더 크다고 하셨는데 그 더 큰 죄의 원흉은 간 데 없고 최후까지 무죄를 주장하고 예수를 석방시키려고 빌라도 와 그 아내까지 애를 썼든 것이 오히려 유대인들의 화를 입게 되는 위협에 직면하는가 하면 예수를 석방하면 가이사 황제의 충신이 아니라고 정치적인 문제로 비하하는 것에 어쩔 수 없이 예수를 내어주면서 이 무죄한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 . "
마27:11-26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가로되 네게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 지라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 하는 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한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명절을 당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더니 그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저희가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가로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는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이는 저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일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멸하자 하게 하였더니 총독이 대답하여 가로되 둘 중에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바라바 로소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 지라.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막15:1,11-15, 눅23:1,4-25 요18:28-40, 19:4-10,11,16-더 큰 죄)
2) 본문번호 2: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로 되어 있으나 부활하실 때 어떤 몸으로 무슨 신분 곧 권능을 갖고 부활을 하셨는지 분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하늘에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어떤 중대한 사명을 위임하셨는데 이 중요한 대 명명을 빼놓은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의 것들이다.
(1) 부활하신 몸은 죽으시기 전의 몸과는 달리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하심
(2)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13-31,36-43)
(3) 부활하신 신분은 "주와 그리스도"로 하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다 가지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 이름을 주셨음(마28:18 빌 2:6-11, 행2:36)
빌2:6-11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들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끓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4) 제자들에게 대 명명으로 사명을 위임하셨는데 그것은 이제부터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8-20)
(5) 이와 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허락하신 성령의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라 (행1:4-9 ; 24:50-53, 행 2:1-14,36-38,41-47)
3) 본문번호 (3)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시리라로 되였으나 어디로 어떻게 오신다는 내용이 없이 추상적인 표현으로 분명하지 못한 것이다. 신약 성경은 정확히 명시한다.
(1) 심판의 대상은 그리스도 강림 하실 때 그에게 붙어 있지 아니한 모든 사람과 정사와 능력 멸하시고 성도들을 아버지 하나님께 바친다 (고전15:23, 계21:23-27)
고전 15:23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 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갈림 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받칠 때라
계21:23-27 그 열 두 문은 열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 금 이더라 이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 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 이라 만국이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 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2) 하나님 영광의 구름을 타고 하늘 공중에 오신다 (마24:30-31살전 4:15-18)지상에 있는 자들이 재림 주라고 하는 자들은 전부가 거짓이다.
마24:30-31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 저 끝까지 사방에? 모으리라.
살전 4:15-18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 하노니 이것을 말 하노니 주 강림 하실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서 강림 하시리니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3) 장차 주님이 오실 곳은(행1:8-11)
4) 본문번호 4
성령을 믿사오며로 되여 있는 데 이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인격을 믿고 있는데 성령의 역사가 어떻게 운동하셨는지 분명치가 못한 막연한 표현인 것이다. 성경은 성령을 믿는 과정을 명시하고 있으며 성령을 믿으려면 성경을 하나님의 밀씀으로 완전한 것으로 믿어야 한다.
성령의 역사는 ?
(1) 권능(Power)
(2) 은사(Grace)
(3) 선물(Gifts)
이는 첫째로 사도들의 신분증명으로 주셨으며
둘째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기록하게 하기 위해서요
세째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1) 성령은 진리로 영원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요 인격이요 자연의 원리로 표현되신 능력을 가지신 말씀으로 역사하십니다.
요일 5:7 증거하시는 이는 성령 이니시 성령은 진리니라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 이다.
벧후 1:20,21 만일 저희가 우리 주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움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딤후 3:14-17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 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 부 터 성경을 알 았 나니 성경 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마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 이니라
롬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 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 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 . . 복 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 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0:14-17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 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 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 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 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 느니라
5) 본문번호 5
거룩한 공회를 믿사 오며 하였는데 이 공회가 어떤 것인지 알 수 가 없다
(1)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공회가 있다(막15:1)
막 15: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로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2) 사도들을 죽이려는 공회가 있다(행4:13-15,22 23:1-,6,15,20,24)
(3) 사도신경을 제정한 공회인지도 모른다(381년)
6) 본문의 번호 6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 옵나이다 로 되어 있으나 어떤 몸으로 다시 사는지 또는 어디서 영원히 누구와 같이 사는 지도 분명치가아니하다 일반종교에서 말하듯이 막연하게 영생의 문자로 표현 된 것이다. 성경은 그렇지 않다
(1) 그리스도에게 붙은 성도들은 영원한 죽음이 없고 다만 잠자는 상태에 있다가 부활할 때에는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다시 살아다(살전 4:13-18 고전15:54)
(2) 살아있는 자들은 만국의 영광(나라의 신분으로)을 갖고 해와 달의 빛이 필요 없는 하나님이 계시고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가 계신 천국에 들어가 다시는 죽음과 슬픔 없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영생한다(계21:1-27,22:1-5, 마25:31-40)
(3) 그러나 믿지 아니하고 사단의 유혹에 빠진 자들은 유황불 못에 던지어 고통을 잊어버릴 수 없는 곳에? 영 영한 벌을 사단과 함께 받는다(마25:41-46,눅16:19-31) 그러기에 영원히 사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고? 누구와 함께 영원히 사는 가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계20:1-19, 21:8,15) 그리고 말씀을 가감하면 그 벌을 받는다(계 22:18-19)
이상과 같이 현행 한국교회에서 맹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 전면에 있는 그 사도신경이라는 것이 얼마나 신약성경의 사상(정신)과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교회는 아무런 성경대조도 영구도 없이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전통대로 하는 것만이 보수신앙 인줄 알고 오히려 이 사도신경 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는 교회를 이단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잘못된 태도인 것이다. 성경밖에 있는 자가 이단인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성도들이 주목하여 이 사도신경 이라는 것을 살펴보아야 한다. 여기에는 결코 사단 곧 마귀의 정체에 대한 것이 전연 언급이 없는 것이 신기 하리만큼 이상하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신 까닭은 이 마귀와 싸워 멸하시고 사람들은 구원코자 오신 것인데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면 멸망을 받는다는 사실과 마귀가 있다는 사실과 지옥 곧 영원히 죽지도 아니하고 고통을 받는 곳이 있다는 사실 모두를 은페하고 막연히 심판한다. 영원히 산 다로 일관하였을 뿐 아니라 천국의 존재를 흐리게 하였을 뿐 아니라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섭리와 복음을 바로 깨닫지 못하게 하는 사단을 이롭게 한 거짓 신경인 것이다. 결코 사도들이 만든 신경이 아닌 것에 명심하기를 바란다. 참된 사도들의 신경은 오직 사도들이 영감을 받아 쓴 신약성경 곧 복음서뿐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 복음이 아닌 것은 저주를 받으라고 경고하고 있다. 사도신경은 신약 성경이다. 거짓 목자에게 속지 말고 거짓 신자에 유혹되지 말고 밤낮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신약성경 곧 복음을 묵상하며 복음에 의하여 살 때에 영생의 구원이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복음에는 사단과 싸워 이기는 비결을 가르치고 있다(눅22:53, 빌2:6-11, 요일 3:8
마24:24-31 고후 11:13-15 엡6:10-20 벧전 5:7-11 갈 1:6-8계22:18,19)
눅22:53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 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시니라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 움부터 범 죄함 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 이니라 (마24:24-31
고후11:13-15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 흘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엡 6:10-20
벧전5:7-11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 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권력이 세 세 무궁토록 그에게 있을 지어다 아멘
갈1:6-8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A) 예수께서 예언하시기를 내가 장차 누구로부터 고난 받으신다고 하셨나?
(1) 인자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그때에 대 제사장들,백성들, 장로들(마26:1-21
(2) 떡을 뗄 때에 너희 중 한 사람이(마26:20-24)
(3) 열 둘중 한 사람인 가롯 유다가(막14:10-11)
(4)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막14:17)
(5)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막14:20)
(6) 예수를 잡으려고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하속들을 데리고 (요18:1-25)
B)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 모두 성취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총독에게 넘겨 주니라 대해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 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은 30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갔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 하였도다.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지고 물러가 목메어 죽은지라(마27:1-10, 26:57-68, 막14:1,2, 41-65, 눅 22:6,51-71)
C)사도들이 외치면서 증거하기를 누가 예수를 죽인 죄인이라고 하였나?
(1) 바리새인을 향하여 너희가 법 없는 자의 손을 빌어(행2:22-24)
(2)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행2:36)
(3)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행5:30)
(4)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달라(행13:27-29
D) 사도들의 선포는( Declared of the Apostles)
1.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레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느니라(눅24:20)
2.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있을 수 없음이라(행2:23-24)
3.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
4.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의 조상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행5:29)
5.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행7:52-53)
6.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믿 안식일마다 외우는 자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달라 하였으니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행13:27-30)
이상과 같이 사도들이 유대인에 대한 죄 악상을 증거하며 선포한 사실을 우리는 신약 성경을 통하여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소위 사도신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짜 사도신경에는 살인죄가 있는 유대인들은 온데 간데가 없이 숨어버렸고 예수를 무죄 석방하려고 노력하는 빌라도 만 예수를 죽인 자로 만든 것은 마귀가 한 일인 것을 똑똑히 깨달아야 합니다.
현대 교회는 사도의 신앙고백과는 정반대가 되는 가짜 사도신경을 아무런 검증도 없이 각종집회에서 신앙고백을 하게하는 것은 비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이 가짜 사도신경을 외우게 하므로 인하여 또 하나의 거짓말하는 죄를 범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니 교회마다 즉시 중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참된 사도신경은 신약성경 뿐인 것을 믿고 시간마다 고백하고 증거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E. 그리스도교 대사전에서 사도신경의 유래를 보면
신조(creed confession) 신앙의 표준을 말합니다. 교의, 교헌, 교구와 함께 교회 존재의 근본을 표식 화 한 것으로 거룩한 교회 앞에는 카토릭(Catholic)이란 말이 650년에 삽입되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키프리안이나 어거스틴이 사용한 신경에는 카토릭 이란 말이 거룩한 교회 앞에서 쓰여져 있지 않습니다.
성도의 교제도 650년 이후에 삽입 되였습니다.
영원히 사는 것은 어거스틴이 사용한 신경에 쓰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은 니케아시대 이전의 교회가 일반적으로 믿어 오던 것을 좀더 보충하여 세례문답으로 뿐만 아니라 그노시스(영지주의) 이단을 위시한 여러 가지 잘못된 교리와 구별하여 정통적 신앙고백으로 점차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성서교재 간행사의 성서백과 대사전에는 서방교회(로마카토릭)에서만 사용되어 온 신앙에 관한 선언이라고 하며 신경의 형식 자체는 사도들에게서 유해한 것이 아니 였다고 합니다.
사도신경이란 명칭이 처움 발견된 것은 서기 390년경이며 오늘날 사도신경보다는 더 짧았고 또는 긴 것도 있었으나 공식적인 사도신경은 650년에서 850년경까지며 손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고 거룩한 교회(Holy Christian Church) 거룩한 카토릭 교회(Holy Catholic Church)라는 용어로 계속 루터파 같은 곳에서는 논쟁이 있다고 했습니다.
F. 사도신경은 로마 카토릭이 만들었습니다.
카토릭 교리 사전에는 사도신경에 대해 어떻게 밝히고 있는 가요?
신경이란 우리가 믿어야 하는 신앙 개조란 뜻입니다. 라틴어로 상징, 표시, 신분증명서, 계약서라는 뜻을 가진 이 신경이란 단어는 3세기에 성 치프리아노가 처움으로 사용했습니다.
신경은 천주교 신자가 고백하는 신앙의 핵심이며 이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천주교신자라는 표시가 되는 것 입니다. 또한 다른 개신교 신자들이 카토릭으로 개종할 때 정통 카토릭의 신앙을 고백하는 뜻으로 이 신경을 외웁니다. 이러한 신경이 생기기 까지는 많은 신학자들의 논란도 있었으며 더욱이 아단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신앙개조의 기준이 곧 이 신경으로 되어 왔습니다.
한국 카토릭 대사전에서 사도신경을 설명하기를 그리스도교의 바탕이 되는 핵심교리를 담은 초대교회의 신앙 고백문이며 카토릭의 중요 기도문의 하나라고 말합니다. 사도신경은 기원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사도신경아리는 명칭은 서기 390년에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사도들의 전승이라는 주장은 4세기말 루피누스(Rufinus of Aqileia)가 하였다고 합니다. 사도신경의 필요는 세례를 위해 필요하고 또한 미사(카토릭에서 하는 예배) 때 감사기도로도 하며, 히포리투스(Hippolytus)의 사도전승(Tradito apostolica)에 나타난 신경은 고대 로마 신경이라 불리우며 사도신경의 주체였다고 합니다.
중세 초기부터 모든 서방교회(로마교회)는 세례의식 때마다 사도신경을 외웠으며, 미사 때 마다, 주일마다, 암송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방교회(러시아정교회) 는 아직도 이 의식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카토릭의 사도신경을 적어봅니다.
"전능하신 천주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성신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곧 성소에 내리시어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려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신을 믿으며, 거룩하고 공번 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사함과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히 삶을 믿나이다. 아멘"
여기서 거룩하고 공번 된 교회 란 로마 카토릭을 의미하는데 개신교 사도신경에는 거룩한 공회(Holy Catholic Church)로 고백하는데 사실상 공회란 로마 카토릭을 뜻하기 때문에 오늘날 모든 개신교에서 주일에 암송하는 사도신경은 모르는 사이에 카토릭을 공인하는 논리가 됩니다.
또한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Sanctorum communionem-라틴어)라는 말은 거듭난 그리스도인 들의 복음 안에서의 진실한 말씀과 믿음 교제(빌1:5)가 아니라 로마 카토릭에서 죽은 사람들을 성인식 서품하여 선포한 죽은 자들의 성인들 까지도 교제, 교통 한다는 뜻으로 영매, 초혼자들을 죽이라(신 18:10-14)는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됩니다.
개신교에서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있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라는 단어도 바로 이 성인들과 통공 에서 유래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개신교인들이 주문 외우듯 외우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에 대한 정리
사도신경은 이그나티우스가 그리스도인을 카톨릭교회 라는 명칭으로 바꿀때부터 시작되어 온 세례식 고백문이 었고, 사도 신경 작성은 사도들이 썼거나 만들었던 것도 아니고 신약성경 어디에도 암송하라는 구절이 없습니다.
사도신경은 초기 원문은 로마신조(Roman Symbol)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로마 카토릭에서는 절대적으로 사도신경을 미사 때와 세례식 때 고백하고 있으므로 진실한 그리스도인 들과는 그 유래가 관련이 없는 것 입니다. 4세기 초 구 로마 교회 신조(The old Roman Creed) 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고, 연옥을 믿고, 화체설을 주장하며 고해성사를 집행하는 카토릭과 같이 할 수 없다는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옵니다.
1) 유래와 전통에 있어 뿌리가 로마 카토릭이기 때문에 사도신경을 그대로 암송할 힢요가 없다. 정확히 성경에 언급되어 있다거나 아니면 사도들이 직접 가르쳤고, 작성했고, 명령했다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거듭난 그리스도인 들이 굳이 예배행사 때마다 암송해야 할 것인가?
2) 용어에 있어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래 사도신경 초기에 모체였던 로마신조에는 거룩한 교회( The holy Church)로 되어 있으나 현재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은 거룩한 공회The holy Catholic Church) 는 거룩한 카토릭 교회는 바로 로마 카토릭을 뜻하기 때문에 칼빈이 적그리스도 세력이라고 부르는 단체를 개신교 강단에서 암송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주기도문 일치 작업을 한 바 있는 나체운 교수는 카토릭(Catholic 보편적이라는 뜻)이 로마 카토릭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나 이미 보편적(catholic)은 로마 카토릭의 고유명칭이 되어버렸기에 위험합니다.
캐토릭이란(Catholic) 캣(Cat) 과 홀릭(holic)을 합쳐서 만든 합성어 인데 캣(cat) 산스크리트어 에 어원을 두고 헬라어를 거쳐 파생된 어머니(Mother)란 뜻을 가진 단어이며 홀릭(Holic)이란 뜻을 가진 단어의 근본 의미는 여신 , 세미라미스(Semiramis: 성경에는 아세라, 아데미, 아스다롯 이란 이름등으로 기록되었다) 에서 바쳐진다 란 뜻입니다. 때문에 카토릭이란 여신, 세미라미스에게 바치다란 뜻이 들어 있는 용어이기 때문에 사도신경에 넣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the communion of saints) 라는 용어도 원래 성인들과 통공하는 것이라는 로마 카토릭의 죽은 자 성인 들과의 교제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내용이며, 그리스도인 들은 거듭난 성도라고 가르치지만(고전2:2) 로마 카토릭의 성자는 죽은지 오랜 후에 서품해서 주는 성인 이기 때문에 성경적이 아니다. 만일 서도신경 암송이 성경적이라면, 성령의 인도 하심에 영적 성장이 필요하다면 용어를 바꾸어서 암송할 수도 있겠으나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 들은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3) 사도신경을 가장 중요시 하는 곳은 로마카토릭입니다.
레오(Leo)는 아무도 이 교리에 무지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막시므스(Maximus)는 신경에 무지한 신자는 믿음의 적으로 간주했고
토마스(Thomas)는 신경에 고의로 무지하면 죽음에 이르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 들은 원칙적으로 사도신경을 형식적으로 암송해야 할 성경적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경의 전부를 부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도신경이 비록 사도들이 만들지 않았고 사도들로부터 유래되지 않고 로마신조에서 왔으며 로마 카토릭이 만들어 그 용어도 로마 카토릭적인 부분이 들어 있지만 다른 일부분은 우리가 믿고 있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전부를 부인 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전부를 신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수정한다고 해도 집회 시 마다 암송하라는 규칙도 없습니다. 다만 사람의 전통 유전일 뿐입니다. 때문에 사도신경을 전부 부인해도 이단적 요소가 있고 전부 시인해도 이단적 요소가 있습니다. 다만 암송하지 않는다고 이단이라 정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침례교회는 암송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식을 싫어 하십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리(요 4:23) 이지 죽은 의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마23:25)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 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마15:8,9)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 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참고서적
1) 그리스도교 대사전 617페이지 - 기독교서회 조선출판
2) 기독교사 227페이지 케니스레토래트 윤두혁, 생명의 말씀사
3)기독교 교회사 55페이지 위리스턴 워커, 유형기역 한국 기독교 문화원) 122페이지
4)성서 대백과사전 360페이지, 성서교재 간행사
5) 카토릭 교리사전 116페이지 박도식역 카토릭출판사
6)카토릭 대사전 530페이지, 한국 교회사 문화연구소
7)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 45페이지, 신계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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