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삶·

입신과 엑스터시/고후12:2

제이비젼 2017. 5. 17. 15:50





  존재하는 모든 종교들에는 인간의 능력과 이해를 초월하는 신비적 경험들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심지어는 고대 철학자였던 플라톤을 추종하는 무리들과 일단의 철학자들 공동체 속에서도 신비적 경험들이 있었음을 고대 자료들이 증거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신비체험 가운데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입신 혹은 엑스터시의 경험이다. 일반적으로 입신과 엑스터시의 경험은 동일 현상으로 간주된다. 그것은 인간의 내부에 신적 존재가 강림함으로써 일종의 무아지경 혹은 신적 경지에 이르는 체험이다. 굳이 둘을 나누자면 입신은 순수한 신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고 엑스터시는 인간의 내부의 원천적 기운에 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종교개혁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한국 교회는 그 보수성과 경건성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체험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희박하였다. 그러므로 무속적 경향이 짙은 토양에서 생활해 온 한국 교인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신비적 체험은 무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획일적 판단보다는 성령 안에서의 정당한 신비체험을 수용할 필요를 느낀다. 



  1·2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낙관론을 버리고 회의주의와 상대주의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상대주의적 체계에서 민족을 얻지 못하였다. 그것은 인간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심겨져 있기 때문이다(전3:11). 죄악으로 왜곡된 인간은 하나님에게 눈을 돌리지 못하고, 신비주의나 강신술 등을 통하여 만족을 얻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이 기독교 내에도 발견되는데 신자들이 신령하다는 집회를 찾아다니며 귀신을 쫓는 목사는 능력이 있고 그런 목사는 하나님이 특별하게 쓰시는 종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된 듯하다. 입신과 엑스터시는 특히 기독교의 신비와 신비주의 사이에서 분명한 위치가 설정되어 있지 않는 주제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과연 성경적인 것이며, 기독교인들이 추구하고 사모해도 되는 것인가?


1. 입신


 1) 신내림

 사람이 정신적 이상의 상태나 최면효과에 걸려 전간(癲癎) 상태에 이르게 되면 엑스터시의 체험을 하게 된다. 이것을 '신들린다'또는 '신내린다'고 하는데, 이 표현이 계속 발전하여 '신난다'라는 말이 되었다. 신내림의 경우는 대체로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거나 질병이 있을 때, 또는 꿈의 계시에 따르는 것에서 생긴다. 신내림을 받은 사람은 인간의 운명이나 사회의 장래를 예견한다든지, 신의 계시를 말한다든지 하는 초월적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2) 무당의 입신

 무당은 세습무와 강신무(降神巫)로 나뉘는데 이중에서 강신무가 입신과 관련이 있다. 세습무란 혈연적 관계에 따라 세습적으로 무당이 되는 것으로 직업집단에 소속되어 있으므로 무당으로서는 우월한 입지를 가진다. 그러나 강신무는 '영험'이라고 불리는 신비 체험을 통하여 무당이 되었기 때문에 조직적인 입지는 약하나 영적인 능력에 있어서는 탁월하다. 이들은 입신 상태에 쉽게 들어가 초월적 능력을 발휘한다. 강신무는 다시 남방형과 북방형으로 나뉘는데 남방형은 신비체험에만 머물고 북방형은 천계나 지하세계를 마음대로 드나든다고 한다.


 3) 기독교의 입신

 꽤 오래전부터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입신'(入神)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 중에는 천국을 보고 왔다고 하는 이들도 있고 소위 '은사집회'에서 '입신'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이들의 주장에 대하여 무조건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다. 비록 '입신'이라는 용어자체는 미신적이지만, 성경에는 그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 중에서는 거짓을 마하는 자도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그들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믿지 말고 성경에 근거하여 판단해야한다(예를 들어 펄시콜레(P.Collet) 같은 이는 엄연한 거짓말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오직 성경뿐이다).

 기독교인이 영을 분별하지 않은 채 아무 영이나 받을 때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들이 비록 기독교적으로 채색되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무당들의 경험과 거의 흡사하다.


2. 엑스터시


 1) 역사적 실례

 엑스터시(ecstasy)는 감정이 고조되어 자기 자신을 잊고 무아도취(無我陶醉)의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성경적으로는 의식이 전체적 또는 부분적으로 일시 정지되어 자아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되는 정신상태를 말한다. 기독교의 역사에 신비경험이 강하게 나타난 것은 스콜라 신학이 절정에 달한 14세기와 종교개혁과 르네상스가 있었던 17세기이다.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엑스터시는 낮은 문화수준에서 자주 발생한다. 엑스터시는 전대중들에게 전염병처럼 퍼진다. 수백만의 무지한 사람달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십자군 전쟁, 중앙유럽에서 발생한 무도광(성비루스의 춤)의 소요, 18세기초의 프랑스 경련자들(Convulsionists), 영국 감리교인들 가운데 뛰는 자들(Jumpers) 등이 있다.


 2) 엑스터시의 상태

 엑스터시는 반 시간에서 5일 이상까지 계속 유지될 수 있다. 엑스터시 상태에 있는 핀으로 살을 찔러도 아무런 느낌을 가지지 못한다고 한다. 이것은 많은 순교자들이 고통을 거의 느끼지 않고 죽었거나 고문을 받았다는 사실로서 증명이 된다. 이러한 엑스터시는 심리학적으로 볼 때 극히 다양한 형태의 단일한 관념 속에 오랫동안 몰입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엑스터시가 객관적 진리의 계시로서 가치를 가질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기는 힘들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트랜스의 '경험'이 절대적 진리와 접촉한 증거 계시의 진리성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엑스터시는 하나님에 대해 크고 고결한 사랑을 간직한 사람에게만 나타난다.


3. 성경에 나타난 엑스터시


 엘리야의 엑스터시(왕상9:11-18), 다윗의 엑스터시(삼하6:12-23), 아브라함이 깊이 잠든 중에 본 환상, 야곱이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씨름한 것,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본 환상과 환청 등은 엑스터시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그외에 이사야와 예레미야, 아모스, 에스겔 등도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이다(사 6장; 암7장-9장; 겔2:2; 겔3:14).

 교회는 엑스터시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기도, 바람 같은 불, 방언 등은 엑스터시적인 현상이다. 베드로가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과 환청을 체험한 것, 스데반의 환상, 바울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사건, 성령에 붙들려 소리를 듣고 환상을 보았던 요한 등은 엑스터시를 경험한 것이다.


 기독교의 신비체험은 종종 무속으로 간주되거나 무속이 기독교의 신비체험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한 평가가 아니다. 건전한 신비체험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의식이 뚜렷한 상태와 도덕적, 지성적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누리는 체험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무엇보다도 성경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다.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이지만 신비주의는 아니다. 우리는 신비적인 것들을 대할 때 그것을 무조건 추종할 것이 아니라 성경을 기준으로 삼아 바로 평가하고 대처해야 한다.

 


 1. 최면술


 최면(hypnosis)이란 말은 헬라어 휘프노스(u{fno")에서 유래한 것으로 '잠'을 의미한다. 최면술이란 인위적 수면 상태를 유발시키는 기술인데 더 자세히 말하자면 몽롱해진 의식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서방세계에서는 안톤 메스머(Anton Mesmer 1778)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메스머리즘' (mesmerism) 및 '동물자성술' (animal magnetism)과 더불어 발견되었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행해졌다. 자기 최면자들은 종교 의식에 참여하는 순례자들로서 자기 최면으로 트랜스(trance) 상태가 되어 스스로 통증에 대하여 무감각해지게 만든다. 요가 수도자들이나 수도승들의 자기최면은 '심장의 박동을 감소시키는 형태'를 자주 쓴다 그들은 관속에 들어가 3주 내지 10주 동안 유폐된 채 지낼 때 동료들에게 자신을 꺼낼 시기를 정확히 알려준다고 한다. 이런 최면 상태 후에 그들은 반드시 영적으로 피폐해진다고 한다. 그것은 악령들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면술은 의지가 강하고 스스로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로 걸리지 않는다.


2. 마법주술 치료술


 주술치료는 마법적 치료 분야에 해당된다. 독일에는 이것을 '부림'(brauchen, 영적인 존재를 부리고 사용한다는 뜻)이라고 부른다. 함부르크에서는 '불어내기'(Bepustenor Beblasen), 뤼네부르크 헤쓰에서는 '추방'(Wegversetzen)이라고 일컫는다. 그외 '굿'(bBeschreien, 큰소리로 외쳐 악마를 불러낸다는 뜻)이라든가 '침뱉기'(Bespeien) 등의 용어가 있다.

 마법으로는 흑색마법과 백색마법이 있다. 마법 문헌에서는 흑색마법이 악마의 도움을 받는데 반해 백색마법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둘은 똑같이 흑암의 권세로부터 행해진다. 백색마법에서는 성삼위일체의 이름을 도용하며 그이 모세 6경, 7경 또는 다른 마법에서도 성삼위일체의 이름을 사용한다. 이 마법적 주술치료는 그 후유증 때문에 항상 비극으로 끝난다. 능동적으로 마법적 주술치료를 했건 아니면 수동적으로 환자로 있건 간에 주술치료가 행해진 가정은 불행이 항상 따른다. 즉 이 마법적 병치료의 결과로 혹독한 신비력 영향을 받는 것이다.


3. 요가(yoga)


요가란 산크리스트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산크리스트어 '유즈(yuj)'는 결합한다는 뜻을 가진다. 요가 수련은 자신을 육체적인 멍에 아래 놓이게 하는 것이나 또는 보호해주는 힘으로부터 은신처를 구함으로 특정한 목적에 상응하거나 합일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요가에 관한 저서를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전제되어 있다. ① 요가는 물질적 우주와 형이상학적 우주의 합일을 뜻한다. ② 천국과 지옥은 인간의 마음이 지어낸 것에 불과하다. ③ 마법술, 신비교 그리고 신비술의 배후에는 요가가 있다 이런 극동의 체계는 기독교와 도저히 타협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요가 수련생이 극구 찬양하는 이완기법과 텅 비우는 수련 등은 다른 영의 유입을 가져온다. 악령이 틈타서 들어오는데 요가 수련생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다.


4. 도깨비 현상(Poltergeists)


 1) 환각홀림증 :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오감을 망라한 환각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감각적 환각은 특히 정신불열 상태와 관련되어 보여지기도 한다. 환각 증세로 시달리는 환자들은 그들이 겪는 경험이 실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이런 정신불열 증세는 과대망상과 종종 겹친다.

 2) 사람과 결부된 도깨비 현상 : 도깨비 현상은 모세 6경, 7경을 읽음과 동시에 시작된다. 다시 말하면 마법주문을 실지로 사용함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모종의 신비적 관련이 드러나며, 따라서 도깨비 현상은 조상 또는 그 집안사람 누군가가 마법술을 행한 것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3) 장소와 관련된 도깨비 현상 : 유럽에는 여러 세기에 걸쳐 도깨비가 출몰하는 오래된 성과 집들이 더러 있다. 때로는 그 출몰 현상이 거주인에게 너무나도 소름 끼치는 일이어서 경찰이 그집을 에워싸고 삼엄한 경계를 펴야만 할 때도 있다고 한다.

 4) 강력한 심령력을 소유한 마법사가 조종하는 도깨비 현상 : 마법사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종종 도깨비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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