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개신교는 오래 전부터 개인 구원을 강조하는 보수진영과 사회구원을 강조하는 진보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해 왔다. 최근에 들어와서는 교회뿐 아니라 선교단체들도 이러한 2개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회구원을 강조하는 부류도 다양하여 온건한 개혁과 참여를 주장하는가 하면, W.C.C나 해방신학 같은 것들은 더욱 급진적인 혁명을 주장하기도 한다. 보수진영 역시 더욱 강경하게 개인구원을 강조하는 부류와 온건한 개혁을 주장하는 부류로 구분되어진다. 최근에 활성화되고 있는 복음주의 운동은 보수주의 내면에서도 온건한 개혁을 주장한다. 로잔대회나 그랜드 래피즈 성명서, 마닐라 대회 등은 모두 이러한 취지를 가진 운동들이다. 기독학생은 보수·진보에 상관없이 성경적인 세계관과 사회관을 가지고 현실에 참여해야 한다. 여기서 특히 복음은 결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으로 양분할 수 없는 통합적인 개념인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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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 하나님 나라의 성장, 혹은 확장에 대한 교훈은(마13:32,33) 교회와 사회를 하나님 나라의 원리로 점차 개혁해 나가야 할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암시해주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의 사회 참여에 대하여는 복음주의 신학의 입장에서의 개인구원 중심과 자유주의 신학의 입장에서의 사회구원 중심이라는 논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본 연구에서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은 서로 분리나 대립할 수 없음을 알아보고 기독학생의 현실 참여의 방법과 책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기독학생운동의 흐름
기독학생운동의 시발은 19세기 서구 교회의 복음주의 운동에서 시작한다. 이를 계승하는 복음주의 학생운동 단체로는 I.V.F, C.C.C, Y.F.C, Joy, U.B.F, Nav.(네비게이토) 등이 있다.
이들은 주로 성경읽기, 전도, 친교, 제자훈련 등의 일을 감당하고 있다. 복음주의에서 출발하였으나 점차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는 학생운동으로 학생자발운동(S.V.M.), 세계기독학생연맹(W.S.C.F.), Y.M.C.A., Y.W.C.A.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운동은 사회구성원은 정의실현을 통하여 실현되는 것으로 주장한다. 정의 실현의 방법은 모든 부정에 도전하며 가난하고 억눌린 자를 위하여 해방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암5:11; 눅4:18). 이들은 사회에 대한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을 외치면서 교회는 사회에 대하여 감시와 고발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개인구원과 사회구원
1) 양자의 관계성
신앙이라는 것이 일차적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 관계를 말한다고 할 때 개인구원을 기독교 신앙에서 비본질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 관계와 사회적 관계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 이미 내포, 전제된 것이라 할 때 사회구원의 개념 또한 기독교 신앙에서 본질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개인구원이냐 사회구원이냐 하는 분리적 사고방식이나 대립 자체는 잘못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영혼구원 사역과 함께 우리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셨다(마5:13-16). 이는 교회의 선교적 사명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하나님의 뜻(행20:27)은 개인구원에 치중하지도 사회구원에 치중하지도 않은 양자를 다 포함하고 있다.
2) 복음의 포괄적인 이해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전15:3-4).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혔던 담을 허셨고(엡2:11-19), 만물을 하나님과 화목케 했다는 것(골1:20)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복음 자제 안에 사회적·정치적·우주적인 차원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복음을 받고 그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사회, 정치 문제에 무관심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원하는 것과 같은 권리와 특권과 이해들을 찾을 의무를 지니고 있다(마7:12).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생명의 존엄과 품위를 고양하기 위해서 기회와 힘이 닿는 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여야 한다. 이에 대한 무관심은 하나님께 대한 죄이다(신15:7-11).
3. 현실의 의미와 참여의 방법
1) 현실의 의미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은 결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문제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문화·교육·사상·과학·자연·인간의 모든 문제로 확대되어야 한다. 우리의 관심의 현실은 결코 가난한 자, 억눌린 자 그리고 정치적 이용 가치가 있는 사건에만 한정되어서는 안된다. 모든 인간을 향한 모든 인간의 문제가 그 내용이어야 한다. 기독학생의 현실 참여는 복음의 순수성과 신앙의 본질과 교회의 정체성을 망각 내지 상실시키지 않도록 하는 방법 이여야 한다. 또한 구원의 복음을 전파할 때 복음을 듣는 대상이 육신을 입은 영혼이라는 사실과 또한 그가 혼자서 진공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복잡한 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의 회복을 통한 복음 안에서의 현실 참여가 모색되어야 한다.
2) 참여의 방법
① 관심의 표현과 공유 : 기독학생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현실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로 관심을 표현하여야 한다. 이웃을 위한 증보의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의 첫 번째 실천방법이다. 나아가 기독교인은 대화를 통하여 그 관심을 공유한다.
② 개인에서 단체적인 차원까지 : 우리는 정의의 그늘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처해 있는 환경을 바꾸는 데 기여해야 한다. 투표를 통한 정치 참여로 불의의 원인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정책들과 프로그램들을 지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다른 기독학생이나 비 기독교인들과 시민의 정의를 위해 일하고 있는 조직에 가입하여 정의와 자유와 평화, 시민의 의와 영적 갱신을 증진시키기 위한 활동을 하여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위에 있는 권세에 순복해야 한다(롬 13장). 그러나 때로는 정부가 하나님의 분명한 뜻과 반대되는 방식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할 때 하나님께 순종하여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정부를 파괴할 수는 없다.
바른 현실 참여는 복음 안에서 복음을 가지고 현실에로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에 관심을 지닐 필요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정치적 참여가 현실 참여의 전부는 아니며 교회의 본질적인 것도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에 속해 있지도 않고 세상적인 것도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의로 다스리시는 나라이다. 예수는 이러한 전제 아래 세상에 속하여 불의를 행하는 자에게 말씀하셨으며, 그 내용은 진리를 증거하는 것이다. 기독학생 역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요 국가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이는 국가가 추구하는 가치 질서가 하나님의 의에 부합되도록 기독교적인 방법으로 감시하며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할 것을 요구한다. 기독학생은 비단 정치적인 문제뿐 아니라 삶의 모든 자리에서 사회에 대한 올바른 비판자의 역할과 도덕적 안내자의 자리를 확보하여야 한다.
1. 복음주의 운동
1) 세계의 복음주의 운동 : 복음주의는 폴란드에서 콕시우스 주의 또는 성약주의(Fedearlism)로 시작되었는데 후에 경건주의로 발전하였다. 쉬페너나 프랑케, 벵겔 등의 경건주의에서 모라비아교가 생겨났고, 이것은 감리교의 모체가 되었다. 즉 감리교의 복음적 열정들이 복음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다.
영국 국교회 내에서의 복음주의 운동은 18세기 후반에 존 뉴톤경에 의해서였다. 난폭하나 청년기를 보냈던 그는 철저한 회심을 통해서 변화되었으며 1779년 자신의 경험을 「The Force of Truth」라는 책에 기록하여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였다. 복음주의 운동의 영향이 여러 분야로 확산되었는데 그중 기독교를 새롭게 바라보는 움직임들이 일어났다. 대표적인 인물이 윌리엄 월버포스인데 후에 그는 노예매매에 반대하는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 운동은 로드 샤프츠버리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찰스 시몬 등에 의해 대학가에 전해지기도 했다.
국교회의 이런 움직임과 동시에 비국교들도 복음주의의 활발한 영향을 받았는데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윌리엄 월버포스인데 후에 그는 노예매매에 반대하는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 운동은 로드 샤프츠버리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찰스 시몬 등에 의해 대학가에 전해지기도 했다.
국교회의 이런 움직임과 동시에 비국교들도 복음주의와 활발한 영향을 받는데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스펄전이다 그는 독창적이고 감화력 있는 설교를 통하여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토머스 찰머즈의 노력으로 복음주의 운동이 확산되었다. 한편 국교회 밖에 세워진 자유교회 등에 의해 자유 세력들이 성장해 가기도 했다. 미국에서의 복음주의 운동은 1738년 개종한 존 웨슬리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1796 켄터키와 이웃 주 등에서 뚜렷하게 일어났으며 1857년 아일랜드와 영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유럽에서의 복음주의 운동은 할데인 형제단의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세사르 말랑이나 비네(A.R.Vine)같은 흥미로운 인물들을 배출시켰다. 그밖에도 독일 등지에서는 한 기도모임이 계기가 되어 복음주의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 지도자는 바론 폰 코트비츠였다.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간 복음주의 운동으로 18세기 침체되었던 교계의 분위기는 물론 성도 각 개이의 신앙이 놀랍게 성장했다.
2)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
한국에 처음으로 선교사들이 들어올 당시 미국에서는 무디(D.L.Moody) 등을 위시한 여러 부흥사들을 통하여 큰 부흥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여기에 큰 감동을 받은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들의 신앙적인 성향은 한마디로 보수주의적 복음주의라 할 수 있다.
선교 초기에 학생들에게 가르친 내용들을 보면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된 것과 신조 등을 철저히 가르친 것, 굳건한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게 할 것 등을 기본원칙으로 삼았다. 1920년 후반부터 가까운 일본의 자유주의 계통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유학생들이나 신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학생들 때문이었다. 결국 1939년 한국신학대학의 전신인 조선신학교가 세워지게 되었고, 보수주의와 더불어 신학의 커다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한국의 보수주의적 복음주의의 특색으로는 유기적 완전 영감을 가르치는 데 있으며 1967년 부흥운동으로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2. 자유주의 신학의 사회 참여
계몽운동이나 프랑스혁명과 같은 17세기의 정신적 자극들에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은 처음에 쉴라이에르마허에 의해 이성에 성경 해석의 권위를 두며 형성되었다가 후에 칼 바르트나 브룬너 등에 의해 발전되었다. 이들은 주로 초자연적인 신앙을 과학적 사실로 재해석하는 등 현대인의 지성애 인간의 실존을 맞추려는 시도에 주력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 자체의 발전적인 고발이며 사회에 대한 기독교의 무책임에 대한 좋은 지적이라고 자부한다. 그들이 말하는 무책임이란 먼저 교회가 자신의 선지자적 사명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현대 교회는 자본주의 제도하에서 권력, 금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인상이 짙다. 또 과거 기독교가 식민지 확장에 다리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교회가 이웃사랑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혹사당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교회는 여기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오히려 정반대로 사회 속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려고 시도한다. 그들은 교회가 현재보다는 내세를 지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이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사회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대단히 발전적이라 할 수 있으나 문제는 해방의 대상을 '가난한 자'로 축소시키거나 구원의 의미를 '경제적·정치적 해방'으로 왜곡되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또 인간사회의 죄악이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악에서 기인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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