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윤리·

역사적으로 본 윤리/마5:48

제이비젼 2017. 5. 16. 12:43





 윤리는 도덕적 내면 상태와 법률적 외면 행동의 판단 기준이 되는 규범(normn, 規範)에 관하여 한 특정인 또는 어떤 부류의 계층이 가지고 있는 가치의식이나 철학적 사고방식을 말한다. 이는 윤리의 주체가 체험한 문화적 배경에 따라 습속(習俗)이 형성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무의식적으로 몸에 배어드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철학의 한 분야로서 윤리 문제를 연구하여 학문으로 독립시켰다. 중세의 유럽에서는 최대 다수의 초대 행복을 주장하는 공리주의와 교회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중세 유럽의 윤리의식을 형성하였다. 동양에서는 중국의 유교 사상과 신라의 세속오계가 도덕적 규범으로 숭상되었다. 근대 이후 과학의 발달로 물질 문명이 정신 문화를 지배하면서 경제적 윤리 문제가 새롭게 제기되어 정의와 평등, 공익과 질서 등 학문적 논의가 활발해졌으며 사회지도층의 책임감과 높은 윤리의식의 요청되었다. 


 


 1. 윤리의 어의(語義)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의 일원이 된다. 인간이 소속되는 사회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형성된 생활 방식이 있으므로 이를 따르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사회의 생활 방식으로는 습속(習俗)이라든지 도덕, 법률이 있다. 이러한 생활 방식은 규범적(規範的)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문화 속에 형성된 자연스러운 삶의 습관을 습속이라 한다면 도덕이나 법률은 자각적인 '행위 규범'이라고 할 것이다. 도덕은 행위의 내면서(內面性)에 치우친 개념인데, 법률은 행위의 외면서(外面性)에 의미를 두고 있다. 그래서 도덕과 법률은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윤리'란 행위의 규범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관한 인간의 태도나 철학적 사고다.


 윤리의 문자적 의미를 보면 '윤(倫)자는 무리(類). 또래(輩). 질서의 뜻을 포함하고 있으며, '리'(理)자는 이치. 이법(理法)또는 도리의 뜻을 가지고 있다. 물리(物理)가 사물의 이치인 것처럼 윤리는 인륜 도리(人倫道理)의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윤리는 영어의 'ethics'나 독일어의 'Ethik', 그리스어의 'ethica'의 역어(譯語)이다, 에타카 'ethica'는 에토스 'ethica'는 에토스 'ethos'에서 유래하였으며, '에토스'란 본래 동물이 서식하는 장소 또는 우리(畜舍)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뒤에 사회의 습속 또는 개인의 품성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2. 고대의 윤리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에 의한 당시의 윤리적 저술이 아직도 전해지고 있는데, 현존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윤리학인 「니코마코스 윤리학」(nichomachea)이 그것이다.

 만학(晩學)의 비조(鼻祖)라고 불려지고 있는 그는 플라톤의 제자였으며, 플라톤이 세운 아테네의 아카데미아 학원에서 수학(修學)하였다. 플라톤 사후에 이 학원의 강의 과목인 자연학   논리학과 더불어 윤리학이 철학의 한 분과로 자리잡히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분류를 삼분설(三分說)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로마 시대까지 계승되었다. 로마의 철학자인 키케로나 세네카 등은 '에티카' (ethica)의 역어로 '모랄리스' (moralis)를 사용하였다. 그 어원은 '모스 (mos)로 그리스어 '에토스' (ethos)와 마찬가지로 습속, 도덕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그들의 국가(polis)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윤리가 필요하다고 믿었으며, 인간화되어 가는 가장 근본적이고 가치 있는 일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폴리스'(도시 국가)가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주의의 등장으로 무너지게 되자 윤리의 방향이 바뀌기에 이른다. 즉, '보편을 지향하는 부류'로서 '스토아파' (Stoics)가 그것이며, 또 하나는 개인별 윤리를 지향하는 '에파쿠로스파'(Epicurians)이다.


3. 증세의 윤리


 고대 윤리의 역사는 18세기, 19세기에 이르러서는 J.벤덤의 '공리주의'(公理主義)와 J.S. 밀의 '질적 도덕관'의 양대 산맥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밀은 "살진 돼지보다 야윈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유명한 격언을 남기었는데 이는 곧 성경에서 말하는 도덕관과 모순되지 않는 도덕 기준이라고 주장하였다.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시민 혁명을 거치면서 내면적 윤리 규범으로 밀착되어 왔음을 보여 주고 있다. 서양의 문화는 이러한 기독교적 윤리 의식을 보존하였으며, 이러한 문화 속에 학문 윤리학을 포함하여 기독교에 영향을 끼치며, 기독교적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러므로 서양의 윤리가 기독교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세에 일어난 시민 혁명, 종교 분쟁 등은 이와 같이 기독교화한 윤리적, 문화적, 종교적 의식에 근원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일찍이 부족 국가, 고대 국가의 형성과 더불어 통치권, 생명권, 종적(縱的)인 혈연, 지연, 성질서 및 재산권 보호라는 근본적인 것을 바탕으로 형성되어 왔다. 삼국 시대, 고려 시대를 거치면서 불교 문화가 사회의 윤리 형성의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조선(朝鮮)시대의 윤리관은 3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 삼강오륜(三綱五倫) : 유교에 있어서의 3가지 강령(綱領)과 5가지 인륜(人倫)이다.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鋼), 즉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대의(大宜 또는大義)와 법도(法道)를 말한다. 또 오륜은 오상(五常) 또는 오전(五典)이라고도 하는데 맹자(孟子)에서 나오는 부자유친(夫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등이다. 중국 전한(前漢)때 거유(巨儒) 동중서(童仲舒)가 공맹(孔孟)의 교리에서 말하는 삼강오상설(三綱五常說)을 논하면서 유래된 조선 시대의 윤리의 기준이다.

 (2) 인덕(仁德) : 공자는 주왕조 전성 시대의 질서를 덕(德)의 통치에 의해 확립하려 했다. 인(仁)의 덕(德)으로 다스리려 했던 그는 '인'(仁)은 곧 '인(人)이라고 가르쳤다. 이 덕은 개인의 덕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육친(肉親) 특히 부모 자식간의 자연스러운 애정에 근거를 둔 성심(誠心)의 덕에 관심을 두었다. 그는 (仁德)을 쌓는 것을 '수양'이라 보았으며 이를 위하여 부모와 연장자를 공손하게 모시는 효제(孝悌)의 실천을 가르친다. 종교성에 대하여는'(不可知)' (알 수 없다)라고 하였으나 신(神)에 대하여는 인간을 압제하지 않고 돕는 존재로 이해하게 되었다.

 (3) 화랑도 : 신라의 청소년 조직으로 '효'와 '충'을 근거로 한 윤리관을 청소년에게 심어 주었다. 원광법사(圓光法司)가 귀산(貴山). 취항에게 주었다는 그들의 윤리적 근거인 세속오계는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이며, 삼국 통일을 이룩한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하였다.


4. 근대부터 현대의 윤리


 산업의 발달과 가치관의 변화는 윤리적 사상의 근거를 혼돈케 할 만큼 다양화하였다. 경제적이고 법적인 측면에서 관심이 윤리적 기준에서의 관심보다 앞서게 되었으며, 심지어 종교적인 규범도 경제 우선의 관점으로 바뀌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인과 단체의 관심사(issue)나 목적을 잘 성취하는 것을 진정으로 가치 있다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목적의 성취일 뿐이기 때문이다.

 근세 조선 시대 곧 유교 시대에 접어들면서 불사이주(不事二主)의 사상은 윤리관의 근본적인 지침처럼 사회에 퍼져 있었다. 이러한 유교 사상은 천주교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수많은 순교자가 나오게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유교와 천주교라고 하는 두 주인을 섬긴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제의 36년간의 강점기(强占期), 8.15 해방, 6.25사변 등 사회 해체와 재구성 과정이 반복되면서 윤리 의식의 정립이 흔들리는 경향도 없지 않았으나 근본적 심성 가운데 자리잡힌 불사이주의 유교적 도덕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성경에서의 윤리의 근거는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목적에 따라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핵심은 '사랑'이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4:8).

 



  Ⅰ. 용어해설


1. 행위 규범(行爲規範)


 각 개인의 행위를 직접적으로 규율하려고 하는 사회 규범을 말한다. 넓은 뜻으로는 법 규범뿐만 아니라 도덕 규범. 습속 규범. 유행 규범 등 여러 가지 사회 규범이 이에 포함된다. 법 규범 중에는  행위 규범외에 재판 규범이 있다. 재판 규범은 재판관에 대한 행위 규범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엄밀히 말하여 행위 규범을 개인의 행위를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규범이라고 본다면 재판 규범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2. 니코마코스 윤리학(Ethica Nikomacheia)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 최초의 체계적인 윤리학서로 전10권으로 되어 있다. 원리론(제1권-제3권 5장)과 덕의 현상론(제3권6장-제10권)으로 된 이 책에는 윤리학이란 모든 행위가 목적으로 하는 선(善)을 연구하는 것인데, 최고선은 국가(폴리스)의 목적이므로 정치학(폴리티케)과 직결된다. 인간적인 선은 개연적(蓋然的)이므로, 윤리학도 자연학이나 형이상학과는 달리, 개연적인 결론으로 만족해야 한다. 또한 선은 행복이라는 논리에 따라 우선 행복이 논의되고 있다(제1권 4장 이하와 10권). 행복이란 자족적(自足的)인 작용, 즉 덕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을 가리킨다. 윤리적으로는 초과와 부족을 용납하지 않는 상태. 즉 중용(中庸)을 본질로 하고, 용감 절제 정의 기타 여러 가지 중용의 표본을 들어 현실적으로 또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제6권에서는 지성적 덕 중에서 이성이나 지혜와는 다른 사려(思慮, 프로네시스), 특히 정치적 사려를 강조했다. 제7권 후반과 제10권 전반에서는 쾌고(快苦)와 선악 내지 덕의 관계를 보다 발전한 형식으로 논하고 있다. 제8. 9권의 우애론은 덕론(德論)을 보충하고 독자적인 이론을 전개했다. 또 제10권에서 청소년의 덕의 지도에 법률의 필요성을 말한 점도 주목한다.


3. 삼분설 (三分說 , trichotomy)


 인간의 본성이 육체(soma). 혼(psyche). 영(pneuma)의 셋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설(說)이다. 그리스어의 '셋으로' (tricha) '나누다'(temnein)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러한 생각의 실마리는 신약성서의 살전5:23에서 찾아볼 수 있다. 후에 아우구스티누스, .테르투리아누스 등의 2분설을 취하는 학자들에 의하여 비판을 받았으나, 근대 이후 특히 독일의 신학자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았다.


4. 폴리스 (polis)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이다. 촌락집주(村落集注, 시노이키스모스)로서 군주제에 대립하는 국가 형태로 발생하였다. 그 기원은 B.C.10-8세기까지 소급된다. 자연 풍토나 사회적. 종교적 요인에 따라 수많은 폴리스가 분립하였으나 그 규모는 아주 작고 식민 도시로 성립한 것도 많다. 폴리스는 중심 시가와 농경 주역부(農耕周域部)로 이루어지며, 거의 성벽을 갖추고 있다. 시내에는 원(原)폴리스였던 성채. 시장(아고라)이 있으며, 주역부에는 시민의 소유지. 공유지가 있었는데, 그 영역은 통상적으로 좁은 범위로 한정되어 있었다. 폴리스는 자유와 자치를 이상(理想)으로 하고 시민은 씨족 및 종교 공동체의 일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정무(政務), 군무(軍務)에 종사하였다.


Ⅱ.보충 자료


 윤리학사(倫理學史)

1. 고대 : 학으로서의 윤리학은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된다. 소크라테스에 있어서 덕(德)은 올바른 것에 대한 지식 또는 통찰인 동시에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었다. 또 플라톤도 정의의 덕을 다른 식견, 용기, 절제 등의 덕보다도 더 높은 것으로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中庸)의 개념에 의해서 더욱 구체적으로 덕을 설명하였으나 역시 최고선으로서 사람들의 행복은 국가에 의해서 보증된다고 생각했다.

2. 중세 : 고대 그리스의 윤리학은 일반적으로 지배계급의 입장으로부터의 윤리학이었으며, 그 후기에 발전한 세계시민주의도 역시 이 점에서는 비슷하였다. 그 후 기독교가 출현하자 모든 인간이 신 앞에 평등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윤리학은 신학의 한 부분으로서 봉건 사회의 지배기구를 공고히 하는 유력한 수단이 되어 갔다. 중세 윤리학의 특징인 현세 부정적, 금욕주의적인 경향은 민중이 희구하는 행복을 모두 피안의 세계로 옮겨 놓았다.

3. 근세 : 르네상스로부터 시작되는 근세에 접어들자 윤리학은 신학의 지배에서 벗어나 세속화 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도 물론 기독교(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은 강했으나 인간의 도덕적 의식 및 생활에 관한 심리학적, 사화학적인 고찰이 윤리학의 새로운 과제로 제시되었다.

로크(J.Locke)를 비롯한 영국의 경험론자들은 인간에 있어서의 생득적 관념의 부정 또는 사회적 의식의 분석에 의해서 도덕의 현세적인 성격을 밝혔다. 18세기의 프랑스 유물론자들은 이 방향을 추진시켜 종교를 도리어 도덕적인 부패 및 위선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였다. 특히 현대에 있어서 이른바 사회악으로서의 빈궁이나 질고, 퇴폐, 범죄 및 전쟁 등을 극복하는 일도 인류의 도덕적 과제와 절대적으로 결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