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윤리·

신학에서의 윤리/ 약1;22

제이비젼 2017. 5. 14. 02:04





 인간은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태어난다. 이 사회는 일정한 생활 방식과 규범과 윤리를 가지고 있다. 이중 윤리는 규범과는 달리 인간의 행위에 관한 것으로 인간 관계에 있어서 이법(異法)이라 할 수 있다. 반면 기독교 윤리는 세상 조류에 흘러가는 일반 윤리와는 달리 실생활에서 하나님을 제시해 줌으로써, 가치관의 기준이 다양한 현대인에게 있어서 윤리의 중요한 표준이 된다. 본연구에서는 신학과 윤리의 관계성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동반자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 대해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특히 기독교 윤리는 하나님의 특별계시에 입각한 것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최고의 선이라고 규정한다. 이에 본고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윤리적 선행이 됨을 연구해 본다. 


 

  윤리학은 특히 철학 및 신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발전해 왔다. 그러나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성이 있다. 일반 윤리가 이 세상의 사조(思潮)에 따라 방향을 잃어버린 채 떠내려갈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요구하시는 삶의 기준과 가치는 분명히 세상의 것과는 다르다. 본 연구에서는 기독교 신학과 윤리가 가지는 관계성과 윤리의 원칙들을 신학의 시각에서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신학과 윤리의 관계성


 1) 신학과 윤리학의 관계

 신학은 쉽게 말하여 신앙의 의미를 진지하고 명확하게 분석하고 해설하는 것이다. 특히 신학과 윤리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비록 신학적인 숙고(熟考)가 없어도 종교적인 의식적 행위는 가능하나, 신학적 성찰이 없을 때 올바른 신앙 생활 곧 기독교 윤리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기독교적 윤리를 논하고자 할 때에 신학은 규범에 대한 근거의 정당성을 제시해 주고, 여러 가지 사고와 행동의 유형들 가운데서 선택할 수 있는 기준도 제공해 주는 것으로서 필수적이다.


 신학은 하나님에 관해 다루고 있는 학문이지만 또한 인간에 대해서도 논한다. 신학은 윤리학이 다루는 문제들의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신학은 윤리학처럼 결단으로 이끌어 가지는 못한다. 윤리학은 신학의 영역에서 더 나아간다. 윤리학은 '인간이 누구냐?'는 문제에서 더 나아가 그 인간이 상호간에 어떤 관계를 가지며 거기서 일어나는 도덕적 행위를 어떻게 분석, 비평하느냐 하는 것까지 연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윤리학은 도덕론과 달리 행위 자체만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어떤 가치와 연결되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까지 분석하는 것을 통하여 그 독자성을 입증한다. 즉 윤리학은 '가치와 관계되는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원리'를 분석한다는 면에서 신학과 구분된다.


 2) 신학에서 윤리의 위치

 신학과 윤리의 관계를 누구보다도 강조했던 사람은 칼 바르트(K.Barth 1886-1968)이다. 그는 윤리학이 신학 중에서도 특히 교의학(敎義學)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윤리학을 교의학의 보조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과소 평가하는 대륙의 전통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편 헤르만(Herman)은 윤리학이라고 하는 도덕적 의식에 기초하여 교의학적 증명을 하려고 하나 그것은 무리가 있다. 또 트뢸치(E.Troeltsch 1865-1923)와 같이 윤리학을 실존의 궁긍적 목표이며, 목적에 관한 학문으로 보는 것도 지나친 것이다. 윤리학은 원래 신학에 있어서 그 적용 분야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그것이 더욱 분화하고 발전한 형태이다. 오늘날의 윤리학은 신학에 있어서 좋은 동반자적인 위치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윤리의 주요 요소에 대한 신학적 입장


 윤리적 결단에 앞서서 ① 선(가치)의 소재와 성격, ② 도덕적 행위의 주체인 인간의 본성적 상황, 그리고 ③ 행위 결정을 위한 직접적 판단 기준에 관하여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신학적 입장에서 이 3가지 요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자.


 1)선(善)의 소재와 성격

 철학자들이나 윤리학자들은 선(善)의 본질과 선에 대한 인간의 관점, 그리고 선에 대한 욕구 등을 고려하여 선의 성격을 규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선하시며(막10:18) 그분이 인간에게 선을 추구하도록 책임을 부여했다는 것(암5:14)에서 선의 성격을 규정하기 시작한다. 기독교 윤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종속되며, 세상에 대한 기독교인의 입장과 태도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합당하게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인간의 본성

 윤리학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은 모든 윤리 체계의 초석(礎石)중의 하나이다. 어떤 윤리학자들은 인간이 선을 알아 그대로 행할 수 있는 합리적인 존재로 낙관하고 다른 이들은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 존재로 비관한다. 그러나 신학은 인간을 하나님과의 관계 아래서 파악하는 신앙적 의무론의 입장과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목적론의 입장을 함께 취한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하나님의 뜻과 관련하여 이해되어져야 한다.


 3) 도덕적 행위의 판단 기준

 인간의 행동은 각각 자신의 가치관의 여하에 따라 동기와 목표와 수단이 결정된다. 보편적 가치 판단의 기준은 선악의 규정과 인간 본성에 대한 시각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신학에 있어서 인간 행위의 표준은 인간의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져 있다. 도덕적 행위에 대한 기독교인의 사고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책임의 문제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은 곧 이 세상(자연과 인류)에 대한 책임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을 시사한다.


3. 기독교 윤리의 가능성과 특징


 1) 기독교 윤리의 가능성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교리나 윤리 체계를 따로 전수하지 않으셨다. 이에 따라 그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한 연구는 매우 다양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모든 기독교인들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기독교적 지침과 규범을 나름대로 설정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자신의 뜻에 합당하게 살 것을 요구하신다. 여기에서 기독교 윤리의 필요성과 함께 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 조류(潮流)에 흘러가는 일반 윤리와는 달리 실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제시해 주는 기독교 윤리는 가치판단의 기준이 다양해져 가고 있는 현세태에 매우 절실하게 요청된다.


 2) 기독교 윤리의 특징

 기독교 윤리는 ① 성경과 분명한 관계를 가진다. ②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헌신의 문제와 관계를 가진다. ③ 사랑(agape)과 관련을 가진다. ④ 교회와 분리될 수 없다. ⑤ 윤리적 교훈의 '가치전이'(transvaluation)가 발생한다.

 기독교 윤리의 신학적인 작업은 인간적 가치 및 윤리 체계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것들을 좀더 진지하게 고려하며 새로운 적용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가치 기준은 윤리학 그 자체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뿐이다. 즉 '윤리적 연구'보다는 '개인적 책임'이 더욱 중요하다. 요컨대 기독교인은 말씀을 행하는 자(약1:22)로서 윤리적으로 흠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Ⅰ. 용어 해설


1.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스위스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로 바젤(Basel)태생이다. 베른. 베를린. 튀빙겐. 마르부르크 등 여러 대학에서 신학을 배웠다. 1919년에는 신학계를 뒤흔든 저서 「로마서 주해」(Der Romerbrief)를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변증법 신학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종래의 그의 입장이었던 리츨(Ritschl) 학파의 자유주의 신학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21년 이후 괴팅겐 대학에서 변증법적 신학 운동의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그 후 뮌스터 대학 재임시 나치스에 의해 쫓겨나,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의 신학의 특색은 신학을 인간학의 바탕 위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기독론(論)에서만 구하려 한 점이었다.


2. 교의학


 기독교에 있어서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성경에 입각하여 연구하며, 특히 교회에서 선포한 교의(敎義)들과 관련시켜 연구함으로써 높은 수준의 체계화된 지식을 얻는 학문을 말한다. 교의신학 이라고도 하는데, 독일의 신학자 L. 라이하르트에 의하여 처음으로 사용된 말이다. 기독교에 있어서의 교의 및 교의학에 대한 개념은 19세기 스위스의 신학자 바르트에 이르러, 카톨릭교와 개신교 사이에 약간의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카톨릭 교회에서의 교의는 교회가 결정을 내린 계시 진리를 말하고, 교의학은 이와 같은 교의들을 수집 해석하여 체계화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그러나 바르트는 교의를 '하나님의 진리에 관한 하나의 본질'로 보았다. 이 본질적인 것이 여러 가지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교의들'(dogmen) 또는 '교의적 표현'이라 하였다. 따라서 바르트에 의하면, 교의학의 대상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교의 자체이다. 그리고 교의학의 목적은 교회의 여러 가지 교의적 표현들을 다룸으로써 교의에 도달함을 목적으로 한다. 하나님의 진리의 근원적인 파악과 이의 지적(知的) 표현 사이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개재하므로, 교의학은 이들 사이에서 매개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현대에 이르러 슐라이에르마허, 리츨, 하르낙 등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교의학은 '기독교 신앙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하여 신앙 또는 종교를 교의학의 대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3. 선(善)


 선은 본래 행위 외적으로 사물에 부착된 성질로서 '관조'(觀照)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 내적으로 의식의 자기 귀환(自己歸還)을 구성 계기로 하는 '실천'의 장면에서 실천을 성립시키는 근거로서 자각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선을 의미하는 'agathon'(그리스), 'bonum'(라틴)이라는 말이 선의 두 가지 뜻을 나타내면서 넓은 의미에서의 선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의 선은 악을 의미하는 'Kakon'(그리스), 'malum'(라틴)과 상대될 때, 화(禍). 불행과 상대적인 복. 행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부정(不正)을 입는 편이 부정을 하는 편보다 좋다"고 말하면서 이를 자신의 죽음으로써 증명했을 때 선의 본성은 밝혀졌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불가시(不可視)의 혼(魂), 칸트의 '그대는 언제나 이를 행할 것'이라는 '선의지' 등은 진정한 의미에서 '좋은 것'은 오직 하나, 선을 지향하는 선의지(善意志)뿐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Ⅱ. 보충 자료


 기독교 신앙과 윤리

1. 통일된 신앙에 대한 윤리의 다양성 : 역사상 기독교 윤리가 다양하면서도 단일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윤리의 내용은, 신앙인의 생활이 경우에 따라서 조금씩 달리 표현된다고 하더라도 그 생활의 근본은 항상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2. 신앙과 윤리는 불가분의 관계 : 기독교 윤리의 주제는 그 내용이 신앙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신앙을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삶의 윤리는 기독교 신앙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3. 창조 신앙과 윤리 : 창조 신앙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를 깨닫게 하므로 기독교인의 삶. 곧 윤리의 근거를 마련해 준다.

4. 임마누엘 신앙에 대한 윤리적 행동 : 임마누엘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의 실제적인 노출이다. 기독교인은 그의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현실적으로 체험하면서 기쁘게 살아야 한다. 바로 이러한 임마누엘 신앙에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 있고, 이것이 곧 윤리적인 행동이다.

5. 십자가 신앙과 윤리적 현실 : 기독교인은 그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며 살아가야 한다. 바로 이러한 삶을 실현해 가고,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윤리적인 현실이다.

6. 부활 신앙과 윤리적 결단 : 부활 신앙은 결국 인간의 승리를 기약하기 때문에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윤리적인 결단을 촉구하면서 살아가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