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현대와 기독교/고후4:2
포스트 모더니즘의 지성적 문화적 탈현대화운동으로서의 기능은 문학, 건축, 철학 등의 분야에서는 긍정적 효과를 산출하였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중심 해체적 다원화, 규범 파괴적 무질서를 추구하는 탈현대주의운동은 기존 질서와 전통적 권위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배타적·절대적 진리 보수의 정신에 정면으로 대결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부인하는 그들은 하나님은 이름뿐이요, 세상에 악이 있음은 권능치 못한 증거이며, 창조 사실은 한낱 설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며 중보 역할을 부인한다. 인간이 직접 하나님과 자연과 그리고 다른 인간을 관계하는 인간 중심의 생각으로 하나님 중심, 예수 중심의 교회관을 거부한다. 지성적 운동에 성공한 포스트 모더니즘이 초월적 신앙 문제에는 왜 이러한 부정적 방향의 길을 걷게 되었는가를 본강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이란 기존 질서의 절대성이 무너지고 가치가 전도되는 시대를 가리킨다. 아직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하여도 주위의 환경이 그러한 사조를 선호하고 그러한 양상을 조성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대에 기독교는 어떠한 모습으로 자기를 세워야 하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신앙은 이러한 시대를 맞이하여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성경과 기독교 역사는 어떤 악조건에서도 순전한 신앙을 지켜온 신앙인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요16:33).
1. 탈현대의 하나님 이해(엡1:3)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알파요 오메가임을 믿는다. 이는 하나님이 창조물과 역사의 절대적인 근원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전능하심을 떠나서 기독교 신앙은 존립할 수 없다.
그러나 탈현대의 사상적 흐름은 기독교에도 그 영향을 미쳐 전통적 신앙고백을 부정하게 하였다. 전능하시고 만물을 주관하시는 섭리자 하나님이 아닌 무력하고 인간의 연약함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하나님상(像)을 그리게 한 인간의 발달된 지식이 예수님의 정체성(identity)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탈현대의 신학은 하나님을 사람이 붙인 이름이라고 말한다.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과 같아지려 했던 인간들의 교만이(창11:4)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신앙적 사상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창조주이심을 의심케 한다. 세상에 악이 팽배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무력함 때문이라고 보면서 창세기의 기록을 하나의 설화로 못박았다. 그러나 만물의 창조자이시오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인간의 지식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죄가 될 수밖에 없다(히3:12).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또 기독교 전통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신앙으로 고백되어 온 것을 전복시키려는 시도는 '인본주의적 무신론'이라고 불릴 수 있는 위험한 신앙이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개입을 부정하는 시도는 기독교 신앙의 이름으로 단호히 거부되어야 한다.
2. 탈현대의 예수 이해(요14:6)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나타난 포스트모던신학은 포스트 모더니즘이 다른 분야에서 그랬던 것처럼 해체와 일탈을 통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전통적인 신앙고백들이 전적으로 부정되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한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명제인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고백도 부정하고 있다. 예수의 구속 사건을 단회적이고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상징적이고 기초적인 것으로 해석하려는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하는 이해도 역시 전통적인 신앙고백을 뛰어 넘는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의미는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의 행적과 가르침 때문이지 죽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을 형이상학으로 취급하는 것도 탈현대(post-modernism)신학의 한 특징이다. 예수의 보혈의 역사를 중요시하지 않는 이러한 사변적인 방식은 기독교 신앙의 전통적인 고백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은 예수의 부활을 보는 관점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데, 부활 사건을 하나님의 정의가 선포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보는 것이 그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토대 위에 굳건히 서 있다(롬5:9).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토대를 부정하거나 잘못 해석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행동으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다(벧후2:1). 부활 사건이 주었던 힘이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수많은 박해와 역경을 극복하게 하였음을 기억해야 한다(고전15:15-17).
3. 탈현대의 교회 이해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사함을 입은 거룩한 백성(벧전2:22)을 성도들이라 할 때 교회는 세상에 보내진 하나님의 도성이요 사자(使者)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거룩한 모임이다(고전1:2).
이러한 교회의 성격을 규정해 주는 가장 일반적이고 오래된 신앙고백은 주후 381년 제정된 니케아 신조의 내용이다. 니케아 신조에서는 교회를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사도적' 공동체로 고백하고 있다. 이 네 가지 교회의 속성은 오늘날 형태와 교파가 다를지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기독교회의 공동의 모습이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된 거룩한 공동체, 온 인류를 향한 보편적인 구원 사업에 참여하는 공동체, 예수를 따랐고 순교의 길까지 걸었던 사도들의 신앙과 실천을 따르는 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이다. 이러한 고백에 의해서 기독교회도 시대마다 자기가 서있는 자리에서 교회적 사명을 감당해 왔다.
그러나 포스트 모던 시대에서는 전통적인 교회에 대한 이해를 거부한다. 분명하게 구별된 새로운 교회를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제까지의 교파적 이해가 무너지고 지역적 구분이 사라진다는 주장이다. 자기 지역에서 어느 교파의 교회를 출석하여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기독교의 중심지가 유럽을 중심한 서양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제3세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교회를 가리켜 제3의 교회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이러한 교회에 대한 이해는 이제까지의 이해를 무시하기 때문에 신앙과 선교의 저해 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파적 이해를 극복하여 기독교를 인정한 신앙 생활을 말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성숙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러한 구분에 상관 없이 기독교 문화에 익숙해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형식적이고 미지근한 신앙(계3:16)을 뜻할 수도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주장하는 큰 것의 거부, 작은 것의 지향은 교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선교의 열의를 식힐 수 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라 고백함과 더불어 선교적 사명을 다할 때 교회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과학적 발견과 합리적 사고, 미래에 대한 낙관론 등을 부정하고 나선 탈현대는 여러 분야에서 그 정체를 드러내는데,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는 대단히 부정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탈현대적 시각이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의 유산들을 파괴시키고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전통적인 신앙고백을 무의미하게 하고 성경과 교회와 신앙의 주제들을 단순한 언어 놀이로 전락시킨다.
이러한 시대에 불필요한 신앙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길을 힘차게 가는 것이고 신앙의 순결을 지켜나가는 것이다(히12:1-3). 지금은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유혹(골2:8)에 빠지지 말고 그리스도만을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올바른 삶이 요구되는 때이다(요일1:4,5)
Ⅰ. 용어 해설
1.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
포스트 모더니즘은 학문 발전사에 있어 일종의 과정적 방법의 하나, 17세기 이후의 과학적 사고방식을 모더니즘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르네상스 이후에 쌓아온 근세의 세계관, 즉 이성만능주의가 무너져 해체되고 하나님이 인류 생활에서 완전히 거세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이처럼 근세 세계관이 해체된 상태를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과학과 문학, 문화,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으므로 21세기의 급진적인 르네상스라고 말할 수 있겠다.
2. 예수님의 정체성(identity)
고대 교회에서 교회의 정체는 그 뿌리를 일반적인 신 존재에 두지 않고 그리스도이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에 대한 특별한 신앙고백에 두고 있다. 현대 신학자들은 배타적인 특정한 주의·주장이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신앙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하여 새로운 그리스도상을 제시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격과 사역을 계몽주의 세계관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출발점이자 종착역은 예수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속자요 유일하신 분이시며,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도 주님이시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최고봉이며 역사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3. 인본주의적 무신론
무신론이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며 유신론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인본주의 르네상스 이후에 인간의 사고가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것으로 탈바꿈하면서 인간중심적인 사고력으로 신학과 다른 학문을 평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본주의적 무신론은 이러한 사고 방식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적으로 부정한다.
4. 포스트모던신학
포스트모던신학은 기독교신학을 전제로 체계 구성보다는 현대 사회 생활에서 문제시되는 구체적 상황을 신학 작업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 신학은 헬라문화의 언어와도 다르고 17세기 이후의 과학적 사고 방식과도 다른 성경의 언어 세계 연구를 신학의 초점으로 삼고 있다. 또한 체계적 번역은 아니어도 현대 세계의 주요 지적 틀을 이용하여 새 해석을 시도해 언어 분석과 개념의 형태, 여성 해방을 위한 해방신학적 성경 해석, 과정신학의 연속과 종교다원주의 상황을 위한 종교신학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진보적 사회참여신학과 자유주의적 토착화신학은 일맥상통하는 신학이다. ② 컨텍스트로 텍스트를 변질시킨 신학이다. ③ 칼 바르트의 비신화화의 기반에서 진행된 신학이다. ④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자유주의신학의 연장이다. ⑤ 언어 게임의 일종이다. ⑥ 한국의 변선환이 주장하는 것처럼 불교에도 구원이 있고 부처도 구세주라고 고백한 종교신학이다. ⑦ 여성 해방운동가들은 포스트모던신학을 여성해방신학으로 표현한다.
5. 형이상학
'형이상학'이란 용어는 희랍어 meta ta physika에서 유래 되었다. 칸트 이후에는 과학적 관찰과 실험에 의해 해결될 수 없는 물음들에 관한 선험적 사색을 의미하였으나 통상 '형이상학'은 알기 어렵고 대단히 이론적인 어떤 것을 의미한다.
Ⅱ. 보충 자료
전통 기독교와 포스트모던신학의 비교
1. 하나님의 이해
하나님의 존재
전통 기독교 ●무소부재의 하나님 ●열방의 주관자로서의 하나님
포스트모던 신학 ○하나님의 죽음(인본주의적 무신론) ○명목적(名目的) 하나님
하나님의 능력
전통 기독교 ●전능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포스트모던 신학 ○전능의 하나님 부인 ○설화로서의 '창조론'
악의 존재 이유
전통 기독교 ●하나님의 계획
포스트모던 신학 ○하나님의 전능 부인
2. 예수의 이해
예수의 절대성
전통 기독교 ●성육신사건 인정 ●메시야로서의 예수
포스트모던 신학 ○절대성·유일성 부정 (하나님의 신성→인성) ○동정녀 탄생 부인
예수의 죽음
전통 기독교 ●대속의 주님
포스트모던 신학 ○하나님의 언어 사건
예수의 부활
전통 기독교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포스트모던 신학 ○상징적 사건
중보자 예수에 대한 관심
전통 기독교 ●하나님-예수(중보자)-인간
포스트모던 신학 ○하나님과 인간, 인간 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의 관계 강조
3. 교회의 이해
전통 기독교 ●단일성(하나님을 믿는 하나의 교회) ●거룩성(거룩한 공동체) ●보편성(보편적 구원 의지의 선포) ●사도성(사도들의 전통 수용)
포스트모던 신학 ○제도화된 교회 부정, 인간적인 교회 지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