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길
구원의 길
먼저 구원(Salvation)이 무엇입니까?
시편에 보면 다윗이 사울왕에게 죽음의 위협을 받으면서 여러 번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합니다.
이와 같이 어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것이 구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들어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는 것도 구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에게는 어느 누구도 자기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소원은 죽음을 벗어나 영생을 얻는 것이고 이것이 구원이라
할 것입니다.
또한 사후에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는 것도 구원을 얻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영생을 얻는 것','천국에
가는 것','구원을 받는 것'이 같은 의미로 쓰여집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 받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구원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기본 교리를 믿고, 교회 다니면 구원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구원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켜주는 것입니다.
죽기 전에는 그 누구도 자신이 구원 받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마태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믿고 가는 그 길이 구원의 길이 아니라 절벽 낭떠러지 일 수도 있습니다.
구원의 길이 우리의 생각과 달리 좁고 험난한 가시밭 길일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먼저 잘 보이지도 않는 좁은 문을 찾아야 하고, 또한 좁은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누가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사람이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하리라.
좁은 문은 저절로 찾아지는 것이 아니고, 힘써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성경에 있는 진리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가 13/25 일단 집 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으리니, 그러면 너희는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며
말하기를 ‘주여, 주여, 우리에게 문을 열어 주소서.’라고
하면 그가 너희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너희가 어디서 온 자들인지 모르노라.’고 하리라.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고 내 맘대로 살고,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고 세상에 빠져 사는 사람은 천국 문 앞에서
예수님의 외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태 13/47~48 또 천국은 갖가지 종류의 물고기를 모으기
위해 바다에 던져 놓은 그물과 같으니,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천국은 바다에 그물을 던져 많은 고기를 잡은 것과 같지만, 해변에
끌어 놓고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내어 버린다고 합니다.
홍수심판 때에 많은 사람 중 노아 가족 8명만 구원 받았듯이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양보다
질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태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결국 구원을 얻으려고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온전한 구원을 이뤄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입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말입니다.
저는 저를 괴롭히는 마귀 하나도 쫓아내지 못하는 저 자신을 보면서 제가 구원 받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사탄과 마귀는 제대로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을 언제든지 괴롭힐 권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을 자세히 살펴 보아야 합니다.
다음 '구원의 과정' 단원부터 구원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상세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
|
진 리
구원의 첫 번째 과정은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진리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간과하기 쉬운 항목입니다.
집을 지을 때 기초공사를 잘 해야 집이 무너지지 않을 것 입니다.
진리를 아는 것은 구원이라는 집을 짓는데 있어서 땅을 깊게 파고 철근을 박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는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마태 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개역성경)
예수님이 진리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신 구절인데 개역성경을 읽어 보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 행하면 반석 위에 지은 집 같아서 환란이 닥쳐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 것까지는
이해가 가지만, 예수님 말씀을 듣고 행치 않으면 모래 위에 지은 집 같아서 환란이 닥치면
무너진다고 합니다.
두번째 구절을 읽으면 마치 행함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행치도 않았는데 집을 지었다는 것이
모순됩니다.
도대체 이 구절이 진리를 강조하는 것인지 행함을 강조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표준 새번역 성경을 읽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마태 7/24~27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치지만, 무너지지 않는다.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치면, 무너진다. 그리고
그 무너짐은 엄청날 것이다."
(표준새번역)
개역성경에는 양쪽 구절에 '그대로'라는 말이 빠졌던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진리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 같고,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치 않는 사람은(진리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 같다고
하심으로써 진리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열심을 내어도 진리대로 행치 않으면 환란이
닥칠 때 금방 무너져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개역성경과 같은 원문을 쓰는 NIV에서도 "everyone who hears these words of mine and
puts them into practice"
라고 했는데 뜻은 "내 말들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누구나"입니다.
여기서 Them은 Words를 받는 복수 대명사입니다.
개역한글 성경은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단어를 누락시킴으로써 전체적인 의미를 오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한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인 진리로 우리가 거룩해진다고 하였습니다.
진리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진리를 알 수 있을까요?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은 사람이 쓴 것이나 하나님의 영감으로 쓴 것이니 하나님이 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성경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는 교리와 책망을 담고 있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의롭게 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진리는 영혼의 양식입니다.
요한 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요한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내 살을 먹으라 합니다.
우리가 식인종도 아닌데 어떻게 예수님을 먹겠습니까?
이는 예수님의 실체가 말씀이니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겁니다.
말씀을 떡에 비유한 이유는 말씀이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마태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우리 육신은 음식을 먹고 성장하지만 우리 영은 말씀을 듣고 자라납니다.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라도 진리를 듣지 않았다면 영은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우리 영은 진리를 사모하며 진리 말씀을 들을 때 참으로 기뻐합니다.
영이 성장해야 하나님 일을 할 수 있고 육신을 주관하고 다스릴 수 있습니다.
2. 진리를 알아야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요한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는 보통 내가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모두 사탄의 주관권 안에 살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밀려드는 분노, 욕심, 의심, 교만, 불안, 음란한
생각 등이 모두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문득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내 생각이 아니라 마귀가 주는 생각이라니 섬뜩하지 않습니까?
진리를 알면 흑암이 주는 생각을 분별해 낼 수 있고 내 생각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사탄은 갖은 음모로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합니다.
물질주의와 인본주의로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교회 내에도 침투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진리를 알아야 사탄의 일을 분간해 속지 않습니다.
사기꾼한테 안 당하려면 사기꾼보다 법을 더 잘면 됩니다.
3. 온전한 믿음의 기반이 됩니다.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진리 말씀을 들음으로써 믿음이 생깁니다.
진리를 모른체 억지로 믿는 믿음은 시험이나 환란이 닥치면 금새 무너집니다.
또한 진리를 모르면 잘못된 믿음을 갖게되 구원과 멀어집니다.
확실한 진리를 듣게 되면 믿음은 확신으로 바뀝니다.
4.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요한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표상이고, 구원의 유일한 문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어떤 분이고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 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로써 대화할 수 있고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요한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마태 19/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은 것도 예수님이 전하시는 영생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진리를 아는 것은 천국에 가기 위한 지도와 나침반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천국 가는 길과 방향을 확실히 아니, 중간에 길 잃어 버릴 염려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생명(구원)에 들어가려면 성경에 명시된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5. 죄 짓지 않고 올바른 삶을 살 수 있게 합니다.
고린더후서 9/6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것이 진리인데 많은 사람들이 적게 노력하고 많이 거둘려고 하는데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마나 도박에 빠지면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돈을 따기도 힘들지만
어쩌다 돈을 따더라도
쉽게 번 돈은 쉽게 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금융 다단계에 빠지고 있지만 금융업은 스스로 부를 창출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 손해를
봐야 다른 사람이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거의 모든 악의 근원은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됩니다.
욕심부리지 않고 검소하고 성실히 살면 죄를 지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죄는 계속 짓다보면 양심이 마비되어 점점 더 큰 죄를 짓게 되고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천국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단순노동을 해도
기쁘고 즐겁습니다.
6. 예수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마태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제가 거듭나고 나서 예수님의 종이 되어서 예수님 뜻대로 살겠다고 결심하고, 아무리 기도해도 예수님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고 지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성경을 읽거나 책을 읽으면서 많은 깨달음이 왔을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예수님 뜻대로 살고 싶은데 왜 지시를 안 하시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진리를 깨닫고, 진리대로 사는 것이 예수님 뜻대로 사는 것이라는 영감이 강하게
왔습니다.
예수님이 진리를 전하신 것은 우리가 진리대로 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는 일마다 예수님께 물어보고, 허락 받고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 이거 할까요?",
"예수님, 저거 하지 말까요?" 처럼
말입니다.
선진국의 대기업일수록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되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수 많은 지침이 있어서 위기에 처해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살면서 닥치게 될 수 없이 많은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면 자신이 잘못된 길로 가는 줄도 모르고 죄를 짓게 됩니다.
예를 들어 진리의 성령님은 내가 구원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고 예수님이 중언부언 기도하지 말라고 한 것을
알면 이교도적으로 중얼거리는 성령체험 행사에는 참여 안 할 것입니다. (요한 14/26, 마태 6/7)
예수님의 신성과 능력을 알면 이성적으로 성경을 해석해 성경의 예언과 기적을 부인하고, 성경이
조작되었거나
상징적이라고 생각하는 자유주의 신학에는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롬 1/4, 행 10/38, 눅
9/1)
먼저 의로운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 주신다는 것을 알면, 먹고 사는 일에 연연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태 6/33)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 받는 것을 알면, 이단에 빠지거나, 성모 마리아에게 절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행 15/11)
죄를 지으면 고통스러운 지옥에 영원히 거한다는 것을 알면, 함부로 담대히 죄 짓지는 못할
것입니다. (마가 9/43)
역술인에게 점 보러 가는 것이 대죄인 것을 알면, 심심풀이로 점 보러 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출 22/18, 왕하 21/6)
기 수련이나 명상 하다가 잘못하면 귀신이나 마귀 들리는 것을 알면 함부로 그런 거 배우러 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포악한 붉은 악마가 정말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 머리에 뿔 달고, 얼굴에 붉은 칠 하고, 붉은 악마의 깃발을
휘날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헤비메탈이나 롹 음악이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신과 멀어져 반항적이고 쾌락적인 사람을 만들어
마약을 보급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고, 많은 가수들이 사탄을 찬양한다는 사실을 알면 롹 음악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동성연예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악이고, 소돔도 동성연예로 멸망했다는 것을 알면 절대로
동성연예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레위기 18/22, 로마서 1/27)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가 사탄이고 포세이돈이 마귀인 것을 알면 그리스 신화에 심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헤리포터와 마법사의 이야기'가 많은 신비주의 상징과 의식을 담고 있고, Coven(마녀협회)에 소속된 실제 마녀(Witch)가 아이들을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기 위해 쓴 책이란 걸 알면 아이들에게 전집으로 사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리를 모르면 절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고, 바르게 살 수도 없습니다.
진리는 나를 지켜주는 방패요 갑옷이란 것을 잊지 않고, 항상 진리로 완전 무장하고 살아야
나를 지옥으로 이끄려는
교활한 마귀의 속임수에 당하지 않습니다.
진리로써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틈 나는 대로 성경책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요한 1/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받았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것이라.
요한 3/21 진리를 행하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하나님 안에서 행한 자기의 행위를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하시더라.
살후 2/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살후 2/13 그러나 주께 사랑받는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께 항상 감사를 드림이 마땅함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시어 성령의 거룩케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야고보서 1/18 그분 자신의 뜻으로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셔서 우리로 그의 피조물들 가운데 첫열매들에 속한
자들이 되게 하셨으니
믿 음
믿음이란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하심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으로 구원의 관문이요, 그리스도인의 무기입니다.
범죄자들이 흉악한 범죄를 계속 짓는 것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저지른 죄로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안다면 어느 누구도 담대히 죄를 짓기 힘들겁니다.
요한 5/2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느니라.
히브리서 11/6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분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분이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는 분이심을 마땅히 믿어야 하느니라.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존재와 함께 하나님을 열심히 찾는 자에게 보상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처음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 어렵지만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그분의 사랑과 역사하심을
느낄 수 있고 믿음은 점차 확신으로 변해갑니다.
믿음의 삶이란 내 자신의 의지에 의해 사는 것이 아니라 매사에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입니다.
보통 우리는 걱정이 없고 바쁠 때는 하나님을 잊고 살다가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부딪혔을 때야 하나님을 찾고 간청하게 됩니다.
저도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가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시험에 들어서
하나님을 외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급할 때만 찾으라고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지켜보시고 사랑하시고 계신데 우리가 가출한 청소년처럼 그분의 사랑을 외면할
뿐입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돌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두팔을 벌려 우리를
안아주시고 상처를 어루만져 주실 겁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그럼 믿음과 관련된 네가지 사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 율법과 믿음
구약시대 때는 모세가 정한 율법과 제사의식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율법의 십계명과 제사법, 각종 규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십셰명중 4가지는 하나님에 관한 내용이고 6가지는
사람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우상숭배하지 말고, 안식일을
지키고,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탐하거나 도적질하지 말고,
살인·간음하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제사의식으로는 번제, 화목제, 속죄제 등이 있으며
성막 안에서 제사장이 수소나 양 비둘기 등을 잡아
그 피를 지성소에 뿌리고 내장은 씻은 뒤 전체를 번제단에서 불살라 태웁니다.
제사는 여호와께 공물을 드리는 의미와, 죄를 사함 받는 속죄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규례가 있는데 예를들면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부정한 짐승은 먹지 말며, 근친상간이나 동성연애를 하지 말 것 등을 지시하십니다.
* 그러나
율법으로는 온전한 구원을 받기 힘든 다음 4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1. 율법은 범죄함으로 더한 저주의 법입니다.
레위기 26/3~4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찌라
모세가 율법을 받은 뒤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이 율법을 준수하면 축복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레위기 26/21 너희가 나를 거스려
내게 청종치 않을찐대 내가 너희 죄대로 너희에게 칠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라
만약 율법을 준행치 아니하면 7배나 더 큰
재앙을 내리겠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에 민족은 이 후에 우상을 섬기거나 타락함으로 하나님께 범죄했을 때 각종 질병,
가뭄, 이민족의 침입 등으로 고통받았습니다.
갈라디아서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축복을 받으려면 율법을 모두 지켜야 하지만 그 중 한가지만 어겨도 저주를 받는 것을
볼 때
율법은 축복의 법이라기보다 저주의 법이라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율법 행위에 속한 사람은 저주 아래에 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주어진 지키기 힘든 엄격한 법이기 때문입니다.
2. 율법으로는
의로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노아와 아브라함이 그 시대에 하나님께 불림을 받아 쓰임 받은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시편 14/2~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 보시기에 모든 율법을 지키고 의로운 사람이 있나 찾아보니 한명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구원 받을 만한 사람이 몇 백년에 한명씩 나온다면 우리는 차라리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요한 8/7 그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유대인이 간음한 여자를 예수님 앞에 데려와서 율법대로 돌로 쳐 죽여야 하느냐고 물어봤을
때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한 명씩 돌을 버리고 떠나 한 명도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털어서 먼지 않나는 사람 없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의롭다 하는 사람도 살면서 한번 이상은 양심에 꺼리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우리가 율법(행위)으로써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할 것입니다.
3. 율법은
육신에 관한 법이기 때문에 영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하나님이 떠나가시고 우리 영이 죽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영에 관한 법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육신에 관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율법은 육신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제사법과,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성적으로 타락하지
말라는 도덕 교과서를 합친 책입니다.
유대인들은 영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에 예수님 말씀을 잘 못 알아 들었으며, 심지어는 영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싸우기도 했습니다.(사도행전 23/8)
고린도전서 15/3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썩을
육신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육신에 관한 법이 우리 영을 구원할 수 없고, 육신은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 영은 영에 관한 법 즉 신약시대 말씀으로 구원 받기 때문입니다.
4. 율법으로는
원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율법에서 죄를 지으면 속죄제를 통해서 사함을 받지만 원죄는 사할 수 없습니다.
원죄를 사함 받아야 흑암 주관권에서 벗어나 생명 주관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로마서 5/17 아담 한 사람이 범죄함으로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다면
아담 한 사람의 범죄함으로 인해 구약시대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구약시대에는 어느 누구도 흑암 주관권에서 완전히 빠져 나올 수 없었습니다.
------------------------------------------------------------------------------------
그런데 참으로 기쁜 소식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풀어주셨다는
겁니다.
요한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무리 몸부림 쳐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이 가진 위의 4가지 문제를 모두 풀어주셨습니다.
1. 율법의 저주에서 풀어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신명기 21/23)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으로 율법의 저주를 받아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가 그 고통의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사랑하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희생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2.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율법의 행위로는 그 누구도 의롭게 될 수 없었는데, 죄인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하나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내가 쌓는 의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나중에 죽어 하늘나라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 "네가 무슨 의로 여기
왔느냐?" 라고 물으시면
"네, 제가 봉사도 많이하고, 십일조도
꼬박꼬박 내고, 전도도 많이 했습니다" 라고 대답하면
자유낙하 할
수 있습니다.
꼭 "제가 가진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의 하나밖에 없습니다." 라고 답하시기 바랍니다.
마태 9/28~30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실 때도 그의 믿음을 확인하신 후에 고쳐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은 하나님이 보실 때 큰 의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은
영에 관한 생명의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요한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구원 받는 것은 우리 영이지 육신은 언젠가 죽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에 관한 생명의 말씀을 전해주심으로써 우리 영을 살리시고 구원시켰습니다.
요한 4/24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 분께 경배 드리는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하시니라.
영이 살아난만큼 더 이상 육신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두세 사람이 모여서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면 됩니다.
4. 예수님께선
원죄도 사하셔서 흑암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아담이 지은 원죄 때문에 구약의 모든 사람이 사망의 권세 아래에 있었는데 예수님이 의를
세워 주셔서
신약시대에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견고한 의를 세우셨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구약시대에는 아담이 지은 죄로 하나님이 떠나가시고 대신 사탄이 주관하는
세계에 갇혀 지냈는데,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믿으면 원죄가 사해져서 죄를 조건으로 주관하던
사탄이 떠나가고 성령이 함께 해 죽었던 우리 영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2. 무엇을 믿어야
하나요?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믿어야 하지만 그 중 꼭 믿어야 할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창주주 하나님께서 살아서 역사하시고.
나를 사랑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요한 5/2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느니라.
요한1서 4/19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마태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요한 10/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셋째로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으며,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서 내 모든 죄가
깨끗이 씻어져 죄사함 받는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고전 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에베소거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 밖에도 성경의 무오성(오류 없음), 예수님의 성육신(말씀이 육신이 되심), 처녀 탄생,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삼위일체, 그가 행한 모든 기적(물이 포도주
되게 하심, 병 고침, 죽은 자 살리심, 물 위를 걸으심, 오병이어의 기적 등),
예수님의 몸의 부활과 승천, 천국과 고통받는 지옥의 실재,
예수님의 심판과 재림, 몸의 부활, 휴거, 천년왕국 등을
믿어야 합니다.
3. 어떻게 믿어야
하나요?
그럼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믿어야 합니까?
첫째로 추호도 의심없이 100% 확실히
믿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태 17/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너희가 이 산에게 말하여 ‘여기서 저리로 옮겨져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에게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니라.
간질환자를 예수님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자 예수님이 제자들을 꾸짖으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기적을 제자들이 하지 못한 이유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믿거나 99%만 믿고 조금만 의심해도 믿음은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선 추호도 의심없이 100% 확실히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 제자들은 예수님 사후에 성령이 강림한 다음부터는 믿음이 굳건해져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귀신을 좇아내고 하루에 3000명이나 전도하시는 등 예수님이 하신 기적을 거의 모두 하게
되었습니다.
마가 9/2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을 수만 있다면,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고 하시니
마가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바라는 것들은 무엇이나 받은 것으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 것이 되리라.
히브리서 11/1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니,
예수님은 믿기 힘든 사실도 뜻 안에서 확고히 믿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삶은 이 세상의 처지와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진리와 뜻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기도한 것을 이미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나아가면 믿은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이 실상으로 내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고, 이루어질 때 보이지 않는
세계가 증명됩니다.
둘째로 믿는데 있어서 내 생각이 개입되서는 안됩니다.
요한 12/3~8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는 자기 생각을 버리지 않고 예수님을 좇았기 때문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은 것은 하나님 감동으로 한 것으로 예수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한 일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이에 대해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으로 판단했습니다.
유다는 자기 생각과 욕심을 버리지 않고 예수님을 좇았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을 파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55/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나님은 역사하실 때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내 생각으로 바라보면 이해가 잘 되지 않고 시험들 때가 있습니다.
내 관념과 생각을 버리고 온전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조금만 시험 환란이 닥쳐도 금새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고 충성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4. 믿음은 구원의
시작입니다.
로마서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믿음은 구원의 시작이고 우리가 쌓는 최초의 '의'입니다.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것은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지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이를 시인해 믿음이 실체로 나타나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2/22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계시록 22/14 그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 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또 그
문들을 통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니라.
그래서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계시록에서 계명을 행하는 자가 복이 있으며, 그들이 생명나무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었으면 예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즉, 진리를 듣고 믿음이 생겼으면 죄사함 받고 거듭난 다음에 하나님의 일꾼으로써 의로운
행실을 해야 됩니다.
요한계시록 20/13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로마서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사도 요한은 마지막 심판 때 죽은 자들이 하늘책에 기록된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를 판단하지 말라고 하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 뿐만이 아니라 행위에 대해서도 심판하십니다.
행위는 믿음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마태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런대도 교회 안에서만 하나님 믿고, 교회
밖을 나서면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사는 선데이(sun day) 크리스챤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단순한 믿음만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천국에 들어 간다고 하셨습니다.
거듭난 이후의 의로운 행실은 구원을 이루는 소중한 일입니다.
루터와 칼빈이 이신칭의(以信稱義)와 절대예정론을
주장하며 종교개혁을 한 것은 천주교의 부패적인 행위에 의한
구원에 맞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를 들어 구원과 상관 없는 고해성사나 성자 성물 숭배, 면죄부 등입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구원 받을 수 없는 행위도 율법에 의한 제사의식 등 입니다.
루터나 사도 바울이 믿음 위에 선 의로운 행실을 막은 적이 없습니다.
단순한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루터식 구원으로 인해 한국 기독교회는 부패한 행위로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세상 못지 않게 돈과 권력과 외형적 성장을 추구하며
타락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5/32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성경에서도 한쪽으로 치우쳐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만약 일시적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면 잔꾀 있는 사람은 젊었을 땐 하나님 안 믿고 내 멋대로 죄 지으면서 살다가
죽기 직전에야 천국 가기 위해 예수 믿고 천국 가겠다고 할 것입다.
그러나 구원의 기회가 있었을 때 외면하고 속 보이는 짓을 한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으려고 해도 회개가 되지 않는다며, 몸부림 치며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나이가 들면 사고가 굳어지기 때문에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기가 지극히 어렵습니다.
전도서 12/1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이사야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나이 들어 몸이 쇠약해지고 아무 낙이 없어 술과 도박으로 허무함을 달래기 전에 젊을 때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기회를 늘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찾으실 때 지체 없이 달려 와 하나님의 일을 해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지금은 내 맘대로 살다가 나중에 하나님 믿겠다고 하면, 점점 더 세상의 악한 수렁에 빠지게
되고 급기야 자력으로
헤어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됩니다.
또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부인하고, 자기 행위로 의롭게 되려고
기도와 속죄와 많은
선한 행실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 받지 않고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행한 일은 주님과 상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요즘 불고 있는 종교통합운동(에큐메니컬운동)은 기독교와 천주교가 하나 되고자 하는데 이는 기독교의 근본 믿음을
뒤흔든 채 천주교의 비 성경적인 행위에 의한 구원을 용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온전한 믿음을 져 버린 채 마리아나 신부님이 구원의 문이나 길이 될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문이고 예수 그리스도 피로서 죄사함 받는다는 근본 믿음이 흔들리면
아무리 선하고 평화로운 행위라도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천주교는 마리아를 예수 그리스도처럼 섬기고 교황을 하나님처럼 받듭니다.
기독교와 천주교는 물과 기름처럼 절대로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온전한 믿음이 없는 행함은 의미가 없고, 의로운 행실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창세기 22/12 그가 말하기를 “네 손을 아이에게 대지 말고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나는 이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아노라.” 하더라.
야고보서 2/21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 그가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로마서 4/17 기록된 바와 같이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비가 되게 하였노라.” 하였으니 그가
믿은 그분,
곧 죽은 자들을 살리시며 없는 것들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서니라.
로마서 1/17 이 복음 안에는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으니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나, 자기
자식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에 행동으로
순종함으로써 진정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한 이삭을 통한 번성을 믿고, 이삭을 죽여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약속을 믿는 단순한 믿음에서 하나님이 죽은 자도 살리신다는 부활 믿음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성적 판단이나 주위환경을 배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확고히 믿고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삶이 의인의 삶입니다.
다음 단원에서는 죄사함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며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나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소망이 저에게서 나는도다
2. 나의 영혼이 간절히
여호와를 갈망하며
나의 입술이 여호와를 찬양하리
나의 영혼이 즐거히 여호와를 따르리니
나의 평생에 여호와를 송축하리
후렴)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이시니
오직 주만이 나의 산성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
나의 구원 나의 영광 하나님께 있으니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 되시네
죄사함
진리를 깨닫고 온전한 믿음이 생겼으면 죄사함을 받아야 됩니다.
죄사함을 받아야 흑암의 권세에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죄사함이란 내가 지은 모든 죄에 대해 하나님께 깨끗이 용서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먼저 죄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1. 죄
인간 사회에서 죄는 법을 어기는 것이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는 그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인간이 보기에 좋은 것 같아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라면 죄인 것입니다.
죄의 기준은 하나님에게 있지, 인간에게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강아지가 아무데나 실례를 하면 강아지 주인은 강아지를 때려서라도 버릇을 고치려 할 것입니다.
강아지는 처음에는 영문도 모르고 맞다가 나중에야 자신이 잘못한 것을 깨닫습니다.
강아지와 인간 사이의 죄의 기준은 인간에게 있었듯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의 기준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간음이나 동성연예가 인간이 보기에 죄가 아닌 것 같아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죄에는 원죄와 자범죄가 있습니다.
원죄는 아담이 지은 죄로 유전되 현재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자범죄는 스스로 지은 죄입니다.
원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끊어져, 내 영이 살았으나 죽은 듯한 처지가 되었고, 육신이 왕노릇하며,
흑암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 죄의 원인이 되는 악한 마음이 육신과 사탄으로부터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12 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
시편 51/5 보소서, 내가 죄악 중에서 조성되었고 죄 중에서 내 어머니가 나를 배었나이다.
아담 한 사람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죄를 지었고, 그의 모든 육적인
후손들이 죄를 물려 받아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사망의 의미는 크게 세가지인데, 첫째는 육신의 죽음이고,
둘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단절되는 영의 죽음이고,
셋째는 둘째 사망인 영원한 불못의 심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육신이 죄악 중에서 조성되었고, 그의 모친이 죄 중에서 자신을 잉태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23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아무리 의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도 하나님 앞에 서면 죄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들어 예수님이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이를 지키지 못했다면 죄를 지은 것입니다.
또한 형제를 내 몸 같이 사랑하지 않고, 마음으로 미워하고, 함부로 판단하거나 용서하지 않는 것도 죄라 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마가 7/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우리는 내 마음속에 악한 마음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도 잘 되면 배 아프고, 사치와 자랑으로 다른 사람 기 죽이고, 남 흉보고 망신 주면서 희열을 느끼고,
돈 벌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말로 남을 속이면서 재미있어 하고, 더럽고 음란한 생각을 즐기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무시하고, 파벌을 지어 서로 헐뜯고, 경쟁자가 잘못되고 망하는 것을 보면서 쾌재를 부릅니다.
전도서 8/11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우리는 은근히 악을 즐기면서 삽니다.
처음엔 양심의 가책을 받지만 자꾸 악을 행하다 보면 양심이 무뎌져서 담대히 악을 자행하게 됩니다.
악인이 형통한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지옥은 종교인들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습니다.
이사야 59/1~2 보라, 주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그의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들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나누었고 너희 죄들이 그의 얼굴을 너희로부터 가렸기에 그가 듣지 아니하심이라.
하지만 하나님이 길게 참으시는 것은 우리가 모두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키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팔이 짧거나 귀가 어두우셔서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악과 죄들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죄사함이란?
죄사함이란 죄를 지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완전히 용서받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시대때는 육신의 법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그냥은 용서가 안되고 회막에서 자신의 죄를 무죄한
염소나 양에게 양에게 안수해 전한 다음, 제사장이 암염소나 어린 암컷양을 잡아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단 밑에 쏟은 다음 나머지를 번제단에 불살라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히브리서 9/22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
구약시대의 육체의 법은 죄를 지으면 용서가 없고 반드시 벌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피흘림으로
죄사함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레위기 4/27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러나 이러한 속죄제는 율법 중 금령(부정한
음식이나 안식일 규례)에 해당하는 것을 부지중에
범했을 때 가능하지 살인을 하거나 상해를 끼치거나 도적질을 하는 등 중죄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21/23~25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찌니라
만약 다른 사람을 때려서 이를 부러뜨리면 때린 사람의 이를 부러뜨리고 눈을 다치게 하면
똑같이 눈을 다치게 합니다.
살벌한 법인 것 같지만 남에게 해를 끼친만큼 자신도 똑같은 고통을 받는다는 점에서 공의롭다는
생각도 듭니다.
두가지 방법 모두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해서든 벌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죄사함은 원죄를 사할 수 없기 때문에 거듭날 수 없으므로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시편 105/7 그가 바로 주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그의 공의로운 판결이 온 세상에 미친다.
구약 성경에서는 공의(righteousness)라는
단어가 165개나 나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심으로 불의한 자를 심판하시고 과부나 고아나 의인들을 보살피십니다.
결론적으로 구약시대의 율법은 육체의 법이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하고, 구약시대의
대표적인
정신은 '공의'라 할 수 있습니다.
아담 이후 4000년만에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자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왜 4000년만에 오셨는가 하면 원죄에 대한 탕감기간이
4000년이기 때문입니다.
4는 고난의 수, 탕감의 수로 이스라엘민족이 애굽에서
400년동안 고역을 받았고, 출애굽한 뒤에는 광야에서
악평한 죄로 40년동안 방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탕감기간이 끝나고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체의 법이 아닌 생명의 법을 선포하셨습니다.
요한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생명의 법은 영혼을 구원하는 진리 말씀입니다.
생명의 법은 육체의 법과 확연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구약시대 때는 원수를 미워하고 복수했었는데 생명의 법은 원수를 오히려 사랑하라고 합니다.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매번 테러와 그에 대한 복수로 얼룩져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감싸 주지 않는 한 분쟁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같이 생명의 법은 육체의 법보다 한 수 위에 있습니다.
요한일서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생명의 법은 쉬운 듯 하면서 더 어렵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실제로 살인해야 죄였는데, 신약시대에는 형제를 미워해도 살인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미워하는 감정이란 것은 나도 모르게 생기는데 그것을 어떻게 억제할 수 있습니까?
욱 하고 치밀어 오는 분노는 내 육신이 가진 혈기에서 나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들으면 염소처럼 사납게 들이받던 성격이 양처럼 순해지고 온유해집니다.
내 마음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형제를 미워하고 원한을 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사람은 절제와 인내와 용서로 미운 감정을 극복합니다.
그럼 신약시대에 죄는 어떻게 사함 받을까요?
마태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생명의 법 아래에서는 하나님께 회개하면 벌을 주지 앟고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마태 9/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단 조건이 하나 있는데 예수님께 죄사하는 권세를 주셨으므로 예수님을 믿는 조건으로 죄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약시대의 말씀은 생명의 법이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회개하면 용서 받을 수 있고, 신약시대의
대표정신은
'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유대인들이 도무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이단의 괴수', '율법
파괴자', '신성 모독자'로 간주하고 믿기는커녕 돌을 던지고
죽이려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올바른 신앙을 하지 못했고 욕심과 교만, 위선 등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사탄의 주관을
받아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한 것입니다.
비교적 순수한 세리, 창녀, 죄인, 병자, 어부 등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기고 따랐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이고 예수님을 안 믿으면 심판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예수님은 믿지 않는 그들을 위해 조건을 대신 세워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 속죄제를 통해 죄없는 양을 희생함으로써 죄사함을 받듯이, 믿지 않는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저주를 받고 무죄한 피를 흘림으로써 그 피로써 우리 죄를 사해 주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마태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포도주로 상징되는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사함을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의 피로써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하늘 성소에 영원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요한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개역한글)
요한 1/29 그 다음 날 요한이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한글 킹제임스)
요한 1/29 The next day John seeth Jesus coming unto him, and saith, Behold
the Lamb of God,
which taketh away the sin of the world.(KJV)
요한 1/29 그 다음 날 요한이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가져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KJV에 대한 제 해석)
요한이 예수님을
보면서 한 말인데 죄사함에 대한 중요한 구절이므로 여러 성경을 참조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죄를 대신해 속죄제사를 드릴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NIV와 KJV에 공통된 'Take Away'란 숙어입니다.
개역한글에서는 '지고 간다'고 표현했고, 한글 킹제임스에서는 '제거한다'고
했습니다.
어느 쪽을
믿던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했다는데는 큰 변화가 없지만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Take Away에는 '옮기다', '가져가다'란 뜻과 '줄이다', '제거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속죄제사를 드릴 때는 어린 양에게 안수해 자신의 죄를 전해준 뒤 양의 피를 내어 속죄제사를
드렸습니다.
레위기 1/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그것이 그를 위한 속죄로 주께 받아드려질 것이니라.
예수님이
속죄제를 드리기 위한 어린 양으로 오셨다면 우리의 죄를 가져갈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고 간다'거나 '제거한다'는 표현보다 '가져
간다'는 표현으로 이해하면 이치에 맞습니다.
물론 셋 중에 어느 해석을 믿어도 큰 의미에서는 차이가 없으니, 여러분 좋으실대로 믿어도
무방합니다.
에베소서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또한 예수님께서는 흑암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 죄를 대신해 저주와 형벌을
받으시고,
피로써 죄값을 치루시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모든 죄를 깨끗이 사하고 흑암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보혈로 내 모든 죄가 눈보다도 희게 깨끗이 씻어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3. 죄사함은 어떻게 받나요?
죄사함에 대해서 알았으면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고해성사를 하거나 선행을 행함으로써 죄사함 받으려 하는 경우도 있는데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써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죄사함을 어떻게 받아야 하나요?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로 인류를 위해 영원토록 효력 있는 속죄제사를 드렸습니다.
진리를 듣고 온전한 믿음이 생겼으면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내 죄가 깨끗이 씻김
받는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없이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럼 이렇게 믿기만 하면 끝나는 건가요?
아닙니다.
바로 거듭남의 과정으로 들어가서 성령을 받고 온전해져 육신을 주관하고, 마귀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다시 죄를 짓게 되고 예전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누가 17/12~14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문둥병자 열명이 예수님께 다가와 병을 고쳐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합니다.
당시 문둥병자는 율법에 의해 문둥병이 낳으면 제사장에게 확인 받아야 했습니다.
여기서 문둥병자들은 아마도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문둥병자들은 '아니, 문둥병이 아직 낳지도 않았는데
제사장에게 보이라니!'
'괜히 갔다가 망신만 당하는 것 아니야?' 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들은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그러자 가는 도중에 문둥병이 다 나아서 깨끗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죄가 눈보다 더 희게 사함을 받았다고 믿어도, 아직
내가 더러운
것 같고 죄사함 받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 받았다고 100% 확신하고 거듭나기 위해서 애쓴다면
어느새 내가
예전의 더럽고 추한 모습이 아닌 깨끗하고 경견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죄사함은 원죄로 인해 내 힘으로 나올 수 없는 사탄의 흑암 주관권으로부터 빠져나와 생명 주관권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킬 때 10가지 재앙을 내림으로써 파라오를 굴복시키고, 모세를 믿고
따르니 홍해가 갈라져 광야로 나오게 된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힘으로 파라오에게 탈출할 수 없듯이, 우리 또한 자신의 힘으로 내 생각과
환경 등
모든 것을 주관하는 흑암의 권세에서 탈출해 나올 수 없습니다.
저도 예전에 죄사함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해서 매번 사탄에 치이고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마귀는 우리에게 죄를 주었고,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마귀의 권세 아래 갇히게 됩니다.
살인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처음엔 미운 감정으로 출발했지만 그것이 증폭되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솟아 살인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살인자 중엔 '내 몸 속에 악마가 있는 것 같다!'고
고백한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습니다.
우리가 죄사함 받지 못하면 영원히 죄 짓고 마귀한테 주관당하는 악순환에서 빠져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사함으로 마귀의 권세에서 빠져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회복되고 내 영이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죄사함은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인도 예수님의 대속을 믿음으로써 순식간에 깨끗한 의인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4. 죄사함은 내 과거의
죄를 사함 받는 것이지, 미래의 죄를 사함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죄사함을 받은 후에는 다시 죄를 지어도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죄 사할 때 우리의 미래 죄까지 다 사했으므로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사함 받은 후에 구원을 단정짓고, 세상이 빠져 살면서 마음 놓고 다시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죄사함 받으면 내 미래의 죄까지 사해진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16 그러니 회개하여라.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속히 너에게로 가서 내 입에서 나오는
칼을
가지고 그들과 싸우겠다.
계시록에서 주님이 버가모 교회를 책망하면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죄사함 받았어도 다시 죄를 지었으면 회개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구원을 위한 회개와 성화를 위한 회개를 혼돈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미래의 죄를 사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앞으로 양심의 가책 없이 마음껏 죄를 짓고 살겠다는 불손한 생각입니다.
물론 온전히 거듭나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겠지요.
우리가 구원 받으려는 목적은 온전히 거듭나 죄 짓지 않고 깨끗하고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문제의 관건은
예수님의 '인류의 미래의 죄를 사한 것이냐?' '영원토록
효력 있는 속제제사를 드린 것이냐?'입니다.
일단 예수님의 속죄는 구약시대 속죄제와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율법을 어기면 흠 없는 어린 양을 가져다가 자신의 죄를 안수해 전한 후 속죄제를 드려 생명으로
보응하고 피로써 죄를 씻었습니다.
예수님의 속죄제사는 예수님 자신이 어린 양이 되어 영원토록 효력 있고 완전한 속죄제사를 십자가에서 드리신
것입니다.
구약시대 속죄제사는 원죄는 사할 수 없지만 예수님의 속죄제사는 원죄를 비롯한 모든 죄를 사할 수 있고, 구약시대
속죄제사는 죄를 지을 때마다 드려야 하지만 예수님의 속죄제사는 단 한번에 영원토록 효력 있는 속죄제사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내 모든 죄를 가져가셔서 십자가에서 대속했다는 사실을 믿으면 내 모든 죄가
사해지고, 예수의 보혈로 내 죄를 눈보다 더 희게 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대속을 믿음으로써 나의 원죄와 과거의 죄가 사해지는 것이지 미래의 죄가 사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미래의 모든 죄를 사했다면 죄를 짓는 사람마다 자신의 죄가 그 즉시 사해지므로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를
지어도 천국에 갈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짓는 죄가 즉시 사해지므로 굳이 예수의 대속을 믿을 필요도 없습니다.
계시록 22/15 그러나 개들과 마술사들과
음행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누구든지 거짓말을 즐겨 행하는
자는 모두 다 성 밖에 있으리라.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이나 죄사함 여부에 관계 없이 각종 죄를 짓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개는 도박이나 음주 같은 미련한 일을 반복하는 사함을 말합니다. (잠언 26/11)
죄사함의 시간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미래의 죄를 사하는 것으로 보지 말고,
어떠한 죄도 깨끗이 사할 수 있는 속죄의 능력이라고 봐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는 이를 믿지 않은 자들이게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은 모든 죄를 깨끗이 사해 극악무도한 죄인도 일순간에 깨끗하고
의롭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입니다.
이사야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죄사함과 관련된 핵심적인 성경구절인데 이를 앞으로 죄 지어도 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구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기 위해 나의 지난 죄를 기억하지 않는 것이지
내가 미래에 지을 죄를 용서하신다는 말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개역한글)
요한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가져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KJV에 대한 제 해석)
개역 한글 성경을 보면 마치 예수님이 내가 미래에 지을 죄까지 다 지고 가셔서 앞으로
죄 지어도 천국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KJV에 대한 제 해석으로는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가져 가는 어린 양입니다.
즉, 내가 과거에 지은 모든 죄를 언제든지 모두 가져갈 수 있는 어린 양입니다.
갈라디아서 3/1 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가운데서 너희
눈앞에 분명하게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어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계시록 7/14 내가 그에게 말씀드리기를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들은 대환란에서
나온 사람들이며 자기들의 옷을 씻어 어린 양의 피로 희게 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지금 실상으로 눈 앞에 보이므로 거짓에
속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이는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시공을 초월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에서도 예수님이 어린 양으로 33번이나 표시되는데,
환란에서 건짐 받은 사람들은 어린 양의 피로 자기 옷을
씻어 희게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구약시대에도
속죄제사를 드린 후 피를 뿌려 정결케 하였듯이, 신약시대에도 우리의 죄가 정결케 되는 것은 예수님이
어린 양이 되어서 영원히 효력 있는 속죄제사를 드렸고, 그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써 내
모든 죄가 눈보다 더 희게
씻어 진다는 것을 믿을 때 정결케 되는 것입니다.
지옥 간증문을 쓴 토마스 주남에 의해서도 천국에는 성도들의 죄를 씻은 예수님의 보혈이 바다를 이룬다고 합니다.
요한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
예수님은 우리가 지켜야 할 많은 말씀을 주고 가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형제를 비판하지 말고, 위선적인
삶을 살지 말며, 치부하지 말고, 형제들끼리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지킬 필요가 없는 말씀이면 뭐하러 힘들여 우리에게 전해 주셨겠습니까?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제시한 의미이지 죄를 지어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육신의 본능과 사탄의 주관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죄를 짓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6/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게 죽은 우리가 어떻게 더 이상 그 가운데 살겠느냐?
로마서 6/15 그런즉 어떻게 하리요?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아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10/26 이는 우리가 진리의 지식을 받고 난 후에도 고의적으로 죄를 지으면 더 이상 죄들을 위한 희생제가
남아 있지 아니하고, 다만 대적하는 자들을 집어 삼킬 심판과 맹렬한 분노를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만
남아 있기 때문이라.
요한일서 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가 있다 하면서 어두움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거짓말하는 것이며 진리를
행하지 아니하는 것이라.
다음 장에서는 구원의 핵심인 거듭남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거듭남
죄사함을 받았으면 속히 거듭나야 합니다.
요한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니고데모가 육적으로 이해하고 어떻게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가냐고 물었습니다.
요한 3/5~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이에 대해 예수님은 거듭난다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으로, 성령으로 나는 것은 육이 아니라
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물은 진리 또는 죄사함을 의미합니다.
즉, 죽었던 우리 영이 진리와 죄사함과 성령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 거듭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창세기 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고 나서 하나님이 떠나간 뒤로 우리 영은 성장하지 못하고 잠자는
상태로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에 대해 무지하고 자기 영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이 살아나야 하나님과 통할 수 있고, 육신을 주관하고 다스리며, 흑암과 싸워 이길 수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 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한글 킹제임스)
원죄와 자범죄로 범죄한 우리는 흑암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흑암 주관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죄사항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확실히 믿으면 사탄이 떠나가고 성령이 들어와 우리 영을
살리시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그러나 거듭나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내 육신의 본능과 사탄의 주관과 싸워 이겨야 되고, 내 영을 어느정도 성장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번에 거듭났다고 하는 분도 계시지만 그런 분들은 대부분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듭나는 것을 어려워 합니다.
거듭났다는 건 내 영이 살아나 육신을 주관하고, 마귀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으며, 성령이 항상 함께 해
성령의 감동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상태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거듭나기 전에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예수님의 앞길을 막고, 두려운 마음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성령으로 거듭난 다음에는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며,
기꺼히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하였습니다.
마태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예수님이 떠나시고 난 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보혜사란 영문으론 Helper, Comforter, Counselor로 원조자, 위안자, 상담자란 뜻으로 우리가 구원
받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도와 주시는 분입니다.
성령을 받기 위해선 항상 기도와 말씀과 찬양의 은혜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 조건기간을 갖고 의의 조건을 쌓는 것이 좋습니다.
마태 4/1~2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동안 마귀에게 시험받고
승리하신 후 천사들이 수종들었습니다.
예수님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40일동안 말씀을 듣고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00년 동안 애굽에서 고역을 당했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연단받았습니다.
4는 고난의 수, 탕감의 수지만 또한 의를 쌓는 조건기간이이기도 합니다.
40일 동안 조건을 쌓아 마귀와 싸워 이기고 말씀으로 무장하면 사탄이 떠나가고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거듭나는데 어느정도 기간이 필요한 이유는 내 영이 너무 어리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 성장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영이 어리면 육신도 주관하지 못하고, 어린아이가 동네 불량배한테 당하듯 사탄에게 자꾸 당하고
삽니다.
그러나 영이 성장하고 의의 조건을 세우면 사탄도 함부로 훼방하지 못합니다.
의의 조건기간엔 이를 악물고 어떤 유혹과 어려움도 뿌리치고 조건을 쌓아야 합니다.
2. 항상 은혜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시간 나는대로 성경 읽고 기도하며 찬송을 불러 주의 은혜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빛 가운데 있어야 어두움이 침입하지 못합니다.
에베소서 6/13~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마귀 사탄은 이 세상의 권세를 잡고 우리가 구원받지
못하게 악날하게 훼방하고 있습니다.
이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갑옷과 방패 없이 전쟁터에 나갔다가는 적의 화살에 고슴도치가 될 것입니다.
a)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성경)
요한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의 양식이 되는 진리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알아야 육신의 본능과 마귀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자유로워 질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아야 옳고 그름을 판단해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아야 마귀의 계략에 더 이상 속아 넘어가지 않습니다.
요한 5/39 성경을 상고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함이니, 그 성경은 나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음이라.
성경은 구원의 관문인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는 책으로,
영생을 가져다 주는 진리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경을 상고하라고 명하셨으므로, 틈나는 대로 매일 성경을 읽되 신약부터 읽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편리한 인터넷도 나쁘게 쓰면 타락으로 가지만 좋은 쪽으로 쓰면 생명으로 갈 수 있습니다.
http://www.kidok.info/BIBLE(개역한글)나 http://www.biblemaster.co.kr(한글 킹제임스)
에 가면 인터넷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고 성경검색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 읽기 힘든 분은 '오디오 성경 읽기' 기능을
통해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크게 깨우치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성령이 감동을 주시는 것이니 소중하게
생각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되도록 개역한글 성경을 읽기 보다 삭제나 변개가 없는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나
'킹제임스 흠정역'을 보시기 바랍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1611년 영국 제임스 왕의 명령에 따라 올바른 본문을 최고의 언어학자들이
번역한 책으로
최고의 권위를 인정 받고 있습니다.
b)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찬송)
언제부턴가 우리의 마음엔 평화가 없어졌습니다.
세상의 근심 걱정으로 마음은 늘 쉼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지만 주님이 주시는 평안(peace)은
모든 마음의 근심과 걱정을 잠잠케 하는 참 평안입니다.
바람이 불면 물결이 출렁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요동치는 배안에서 무서워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마태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우리 힘으론 이 바람을 잠잠케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바람을 잠잠케 하시고 우리에게 참 평안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평안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듣거나 부르는 것입니다.
찬송가를 많이 들으실 것을 권하는데 찬송가 가사가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찬송가는 성령의 감동에 의해 쓰여져서 그런지 가사에 진리가 거의 다 들어 있습니다.
http://www.c3tv.com/hymn/main.asp 에 가시면 찬송가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복음성가는 여러 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지만 http://www.maranatha.co.kr나 http://cts.tv/sub/ccm/나 http://www.jang2.pomo.net이 좋은 것 같습니다.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들으면 은혜가 넘치고, 주님의
심정이 느껴지며, 힘이 납니다.
단 복음성가(ccm) 중 너무 시끄럽거나 락음악이나 랩음악 같은 것은 듣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마귀들은 찬송가를 진절머리 치게 싫어하기 때문에 찬송가를 들으면 심란했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뿌옇던 머리가 맑아지며,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악하고
음란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c)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기도)
믿음은 어떠한 시험과 환란도 이겨낼 수 있는 방패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내 의지로 갖는 믿음은 한계가 있습니다.
누가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온전한 믿음은 기도로써 간구할 때 성령의 은혜로 채워집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로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진정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기도는 회개와 감사와 간구로 이루어졌습니다.
1. 회개란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잘못한 일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우리 사명의 촛대를 옮기십니다.
주기도문에서도 보듯이 우리가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 죄를 용서치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 받은 자로서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고 원수까지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2. 감사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한 마음입니다.
시편 100/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감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갖고 가는 예물입니다.
내게 생명을 주시고 항상 사랑해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보통 잘 되고 형통할 때는 감사하다가 어려움을 겪게 되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 없이 당하는 어려움은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함이고, 잘못 있이 당하는
어려움은
우리를 깨우쳐 주시기 위함이니 우리는 항상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3. 간구란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이 들어주시도록 간청하는 것입니다.
마태 7/7 구하여라 주실 것이요
찾아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려라 열어 주실 것이다.
우리는 간구해도 이루어지질 않을 때에는 곧 잘 실망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때가 있고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소원을 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 소원을 들어 주실 것을 믿고, 충성하다 보면 어느새 소원이 이루어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간구할 땐 자신의 이익만 내 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간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3. 자기 육신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영적으로 살려고 하는데 제일 싫어하는 것이 내 육신입니다.
원래 영이 육신을 다스리는 것이 정상인데 영이 죽어 있으니 육신이 왕노릇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영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영이 다시 살아나려면 엄청난 의지를 가지고 악하고 게으른 육신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개역한글)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한글 킹제임스)
그러나 인간은
육성이 영성보다 강하기 때문에 자의로 육신의 본능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본능대로 살면 세상적으로는 잘 살지 모르지만 결국 얻게 되는 것은 죄악과 사망과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내 영이 성령의 도움으로 성장해 더 강한 힘으로 내 육신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영은 육신의 다음 4가지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a) 자기 고집, 고정관념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누구나 자기 고집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철학 삼아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고집과 관념을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 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성령이 임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물겁에 있는 더러운 물을 버리지 않으면 깨끗한 물을 받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로마서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아무리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도 우리의 구원과는 상관없는 사망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므로 자기 고집을 버리고 오직 주님 뜻대로 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한 알의 씨가 땅에 떨어져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싹을 티울 수 없듯이, 내 자신을 버리고(고집, 관념, 욕심)
온전히 주님께 맡겨야 새 생명을 덧 입어 영생할 수 있습니다.
b) 자기 육신의 본능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육신은 동물과 같이 생존본능과 생식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존본능은 죽지 않고 살려는 본능으로 이 때문에 항상 불안한 마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마태 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는 항상 먹고 사는 걱정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까지도 해결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근심하고 걱정해도 늙고 죽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4/3 우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혐오스런 우상 숭배를 행하여 이방인들의
뜻을 행한 것은 지난날의 생활로 충분하도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생식본능이 나를 사로잡습니다.
이성에 대한 그리움과 성에 대한 탐닉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남성은 한가한 시간의 대부분을 여자랑 사랑하는 상상을 하면서 보낸다고 합니다.
수 많은 범죄와 타락과 가정파괴가 바로 이 생식본능으로부터 유발됩니다.
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개역한글)
로마서 7/24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해낼 것인가? (한글 킹제임스)
마음으로는 선한일과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지만 육신은 자기 본능대로만 행하려고
합니다.
한 집에 동물적인 육신과 하나님의 심성을 닮은 영이 함께 사니 매일 부부싸움 하듯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곤고'는 '괴로움'으로 개역성경이 뜻을 오도하기 위한 또 하나의 작품이고, 영어성경에서는 'wretched'로
'불쌍한', '비참한'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왜 육신이 비참한 몸입니까?
그건 육신이 동물처럼 본능대로 살다가 허무하게 늙어 죽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젊었을 때 아름답고 영화를 누리던 사람이 나이 들어 병들고 흉한 몰골로 죽어가는 것을 보면 비참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물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먹고, 살고, 짝
짓고 새끼를 키웁니다.
본능이란 종족보존를 위해 DNA에 내장된 프로그램으로 나도 모르게 본능대로 산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본능대로 살고자 하는 내 육신과 처절히 싸워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속에 거하다 보면 더 이상 육신의 본능에 주관 받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
내 힘으로는
강한 육신의 본능과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내 안에 모시면 예수님은 죄와 싸워 이기신 분이므로 예수님이 나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나지 못하면 나를 사망으로 이끄는 죄와 육신의 본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c) 자기 감정(쾌락)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육신의 감정은 욕심, 시기, 기쁨, 슬픔, 노여움, 두려움, 좋아함, 미워함
등으로 구성되 있는데 이러한
감정들은 자극받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싫어하면서도 공포영화를 보는 것은 두려움이 자극받으면서 쾌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슬픈 것을 싫어하면서도 슬픈 멜로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드라마에서 보면 우리의 미운 감정을 자극 시킬 만한 악역을 하나 꼭 만듭니다.
광고에서는 세련된 여자와 못 생긴 여자를 함께 등장시켜 욕심과 시기심, 수치심을 자극합니다.
청소년들은 폭력적이고 잔인한 오락 게임으로 분노와 파괴적인 욕구, 우월감 등을 즐깁니다.
이러한 육신의 감정이 자극받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쾌락입니다.
우리의 뇌가 자극 받기를 원하는 이유는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하기 위해서 입니다.
도파민은 뇌의 활동을 활발하게 해주고 기분을 좋게 해 줍니다.
마약이나 담배, 커피, 알코올, 마약 등은 인위적으로 도파민 분비를 증대시켜 줘 기분을 좋게 하지만 도파민 분비가
이에 의존하게되 중독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전도서 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쾌락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쾌락에만 집착해 살다보면 나중에 늙고 병든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은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뭔가 느끼는 바가 있으니 났다고 했습니다.
거듭나는 과정에서는 쾌락적인 것에 노출되는 것을 자제해야 영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TV는 뉴스 이외에는 보지 않는 것이 좋으며, 술 담배도 자제하고, 전자오락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쾌락적인 것에 노출되면 영적인 일은 재미 없이 느껴져서 하기 싫어지기 때문입니다.
거듭나고 나면 코메디 프로에서 남 망신주고 괴롭히면서 느끼는 기쁨이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는 참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기쁘고 즐겁습니다.)
디모데전서 5/6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구원 받고 나서도 세상의 즐거움을 좇아 다닌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다시 끊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 향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자라 했습니다.
즉, 아담이 유혹을 못 이겨 선악과를 따 먹고 영이 죽어 육신으로 주저 앉은 것과 같습니다.
육신의 쾌락을 추구함은 사탄과는 가까워지지만 하나님과는 멀어지게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d) 육신의
게으름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육신은 편안한 것을 좋아하고 불편하거나 일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차를 타더라도 좀더 크고 편안한 중대형차를 선호하고, 집을 사더라고 넓고
편안한 집을 고릅니다.
아침 벨소리에 일어나려면 게으른 육신과 정신이 사투를 벌입니다.
잠언 24/33~34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게으른 사람의 나태와 안일은 끝도 없습니다.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지런 해야 되듯이 구원 받기 위해서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사람이 게을러지는 이유는 육신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더 이상 활동할 의욕을 잃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란 확실한 희망과 목적을 가지면 게으른 육신을 끌고 나갈 수 있습니다.
4. 마귀 사탄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마귀 사탄은 우리가 거듭나지 못하게 악날하게 훼방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눈과 귀를 가려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하나님 행세를 하면서 온갖 악을 행하고 있고 갖은 음모로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원죄와 자범죄를 조건으로 우리를 괴롭히고 주관합니다.
요한1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하나님과 사탄간의 치열한 영적 전쟁터 한 복판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마음이 안정이 안되고 항상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문득 일어난 생각과 감정이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니고, 사탄이 준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너무 무섭고
치가 떨렸습니다.
유대인들도 예수님 죽일 때 자신들이 의로운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광분한 것입니다.
결국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무조건 거듭나서 주님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죄를 조건으로 사람을 주관하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거듭나려고 할 때 예수님이 40일 광야에서 시험 받으셨듯이 3가지로 우리를 시험합니다.
a) 사탄은 우리에게 환란을 줍니다.
마태 4/3~4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사탄이 예수님께 돌들로 떡덩이가 되라고 하자 예수님은 사람이 떡만으로는 살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은 인간이 뭐가 제일 약한지 알고 있습니다.
치사하게 육신의 생존본능과 관련된 먹고 사는 문제로 우리를 흔들리게 합니다.
하나님 믿다보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올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주권을 사탄이 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설령 굶을지언정 영생의 말씀을 놓칠 순 없다는 각오로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쌓는 재물은 죽어서 가져갈 수 없으므로 헛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재물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는 돈이 육신의 생족본능, 생식본능, 쾌락추구본능 등을 충족시켜서
동물천국을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땅에 보물을 아무리 쌓아도 도둑이 훔쳐가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의를 행하면 하늘에 그 만큼의 보물이 쌓여 다 보상받습니다.
재물은 먹고 살 만큼만 있으면 되고, 사치나 허영은 다 부질없는 짓이므로 재물에 집착하거나
미련을 가져서는
안되겠습니다.
b) 사탄은
우리에게 시험을 줍니다.
마태 4/5~7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귀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사탄은 우리를 궁지로 몰아 넣고 시험들게 하여서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듭니다.
주로 사람을 통해 믿는 사람을 핍박하거나, 육신을 쳐서 병들고 아프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의아해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험을 이겨내야지만 그 조건으로 마귀를 상대할 수 있습니다..
마태 11/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예수님께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탄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하셨습니다.
사탄은 우리 육신밖에 괴롭히지 못하고 영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자신도 구원 못하고 불못에 떨어지도록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c) 마지막으로
사탄은 세상 물질, 명예, 쾌락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마태 4/8~10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시험 환란으로도 우리가 꿈쩍 안하면 가장 고단수인 유혹을 통해서 우리 마음을 흔듭니다.
이 세상 권세를 쥐고 있는 사탄은 물질, 명예, 쾌락
등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갑자기 돈 벌 기회가 생긴다든지, 승진이 된다든지, 애인이
생긴다든지 해서 우리 마음을 뺏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하지만 이런 세상적인 것들은 다 헛된 것이므로 절대로 미혹당해 우리 마음을 뺏기면 안되겠습니다.
5. 더 이상적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한번 거듭났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흠 없이 온전해지기 위해선 끊임 없이 거듭나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사도바울도 더 좋은 부활을 위해 이전의 잘못되고 묵은 것을 버리기 위해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온전한 구원을 위해선 자신의 옛사람을 버리고 진리와 성령으로 말미암는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거듭남은 마치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가기 위해서 광야에서 40년동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해지기 위해 연단 받은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엄청난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를 체험하고도 모세가 40일 동안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 간 사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사탄에게 경배했습니다.
사탄은 우리 육신에 있는 악한 본성을 이용해 죄를 짓게 하려고 항상 유혹합니다.
이와 같이 구원 받았다고 방심하면 순간적으로 사탄이 틈타니 항상 긴장해야 겠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 회사 경리 직원이 실수로 2000만원이 누락되어 이를 메꾸려고 주식 투자를 하다가
회사 공금 70억원을 날린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회사의 작은 손해를 만회하려다 더 큰 손해를 끼친 것입니다.
차라리 작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솔직히 상사에게 고백했다면 이토록 큰 죄는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감추기 보다 솔직히 하나님 앞에 내 놓고 고백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은 어떤 죄도 깨끗이 씻을 능력이 있으므로 매일 자신의 죄들과 죄성을 드러내 놓고 십자가
보혈로 씻음 받아 점차 깨끗하고 거룩하고 완전해져야 합니다.
요일 1/9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한글 킹제임스)
계시록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래서 계시록에도
환란 전에 구원 받은 성도는 어린 양의 피에 옷을 씻어 깨끗해진 자들이라 합니다.
죄사함을 한 번 받으면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옷을 깨끗이 빨아도 활동하다 보면 더러워지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신령한 몸으로 부활되 하늘에 올라갈 때까지는 100% 완벽할 수는 없으므로 매일
자신의 죄를 드러내 놓고
십자가 보혈로 씻어내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6. 죄사함과 거듭남은 다릅니다.
기독 교계에 죄사함만으로 구원을 마쳤다고 믿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사함과 거듭남은 다릅니다.
죄사함은 내 죄들을 깨끗이 사함 받아 흑암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고, 거듭남은 죽었던
내 영이 성령의 도움으로
살아나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 15/19~20 마음에서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행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모독이 나오느니라.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며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시더라.
갈라디아서 5/19~21 이제 육신의 일들은 분명히
나타나나니 곧 간음과 음행과 더러운 것과 음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음과 다툼과 질투와 분노와 투쟁과 분열과 이단들과 시기와 살인과 술취함과 흥청거림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미리 말하노니 그런 짓들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
죄사함으로 죄의 증상은 제거되었으나 내 육신 안에 죄를 일으키는 원인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즉, 내 마음엔 아직도 죄를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인 미움,
살의, 음란, 도벽, 거짓을 좋아함, 욕심, 시기, 질투, 분노, 파당,
반항심, 신비주의, 의심, 방탕 등이 남아 있습니다.
병을 고칠 때에도 병의 증상과 원인을 함께 고쳐야 히듯이, 구원 받을 때에도 죄의 증상과
원인을 함께 다스려야 합니다.
에베소서 4/22 이전 행실에 관해서는 기만의 욕망에 따라
썩어진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너희 생각의 영 안에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 안에서 창조된 새 사람을 입으라.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2/2 갓난 아기들로서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이는 너희가 그것으로 인하여 자라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 1/14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진리 말씀을 순전히 받아 들여 육신의 정욕에 따른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거룩한 새사람(온전한 의인)을 덧입는 것이
'거듭남'이며, 이는 성령의 은혜로 새로운 생명을
싹 틔워 진리와 은혜 가운데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개역 한글)
골로새서 1/14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한글 킹제임스)
Colossians 1/14 In whom we have redemption through his blood, even the forgiveness of sins (KJV)
골로새서 1장 14절에서
개역한글 성경은 '죄사함'이라고 하지만 한글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죄들의 용서함'이라고 합니다.
영문성경인 KJV와 개역한글 성경과 같은 원본을 쓴
NIV조차도 sins(죄들)이라고 합니다.
즉, 죄사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지은 죄들을 용서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빚을 진 사람이 은혜로 빚을 전부 탕감 받아도 검소하게 살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빚을 질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로마서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sin)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
로마서 7/20 이제 내가 만일 원치 않는 것을 행하면 그것을 행하는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sin)니라.
로마서 6/14 죄(sin)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라.
성경에서
죄들(sins)로부터는 사함 받는다고 하지만, 죄(sin)로부터는 해방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사함을 받고도 원치 않는 죄들를 짓게 하는, 자신 속에 거하는 죄(sin) 때문에 괴로워 했습니다.
죄(sin)의 실체는 나에게 죄를 짓게하고 사망으로 이끄는 육신의 본능과 욕심입니다.
내 힘으로는 죄(sin)의 권능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오직
예수님의 생명과 말씀만이 나를 죄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원에서 수십일간 담배를 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작정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밖에 나와 마지막으로 담배 1대만 피고 끊겠다고 담배를 피웠는데 구역질과
기침이 나와 도저히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이제 담배를 억지로 끊은 것이 아니라 담배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즉, 죄들(sins)은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 받는 것이지만, 죄(sin)는 예수님의 생명과 말씀으로 해방되는 것입니다.
죄사함으로는 사탄의 주관에서 벗어나는 것이지만, 거듭남으로는 육신의 정욕(본능과 욕심)에서 벗어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당시 애굽에서 장자의 죽음이란 화를 면한 것은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피로써 그들의 죄를 가려준 것이지 이스라엘 민족의 심성이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은 아닙니다.
죄사함만으로 구원을 마쳤다는 것은 마치 홍해를 가로질러 애굽(흑암)을 탈출했으나, 가나안을 향해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광야에서 안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홍해를 건넜으면 광야를 가로지르며 갖은 연단을 받고 성장해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동안 연단 받았듯이, 나도
일정기간을 가지고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 합니다.
죄사함만으로 구원 받았다고 자만하다가 넘어지고, 죄를 범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확신할 수는 있어도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고후 5/10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선이든 악이든지 각자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계시록 20/12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더라.
마지막 때 구원 받은 사람은 대환한 이전에 들림 받아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자신이 행한 것에 따라 심판을
받습니다.
또한 마지막 때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천년동안 옥에 갇혀 있다가 하늘책에 기록된 자기 행위대로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누구나 자신의 행실을 깨끗이 하고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요한일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이는 마귀가
처음부터 죄를 짓기 때문이라.
이 목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셨으니, 곧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려는 것이라.
죄를 짓는 사람은 마귀의 주관권 아래 들어가므로, 예수님이 오셔서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사함 받는 이유는 죄를 조건으로 나를 사로 잡는 사탄의 주관에서 벗어나 더 이상 죄 짓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면 예수님과 성령님의 도움으로 온전히 거듭나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거룩한 새 사람이 되야 하며,
죽었던 내 영이 살아나 내 육신을 주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있는 계명에 따라 구원에 관한 판정을 내리시는데, 어떤 판결을 내리시던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합니다.
따라서 구원을 단정 짓는 것은 재판이 진행 중인 피의자가 무죄를 주장하는 것 같이 아무 의미기 없고,
오히려 월권행위에 해당합니다.
고린도전서 10/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빌립보서 3/12 내가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요, 또 이미 목표점에 이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쫓아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족하지 않을까 조심하라 했습니다.
사도들 중 가장 열심이었던 바울조차도 최종 목표인 구원을 아직 얻은 것이 아니요, 예수님이
자신을 구속하셨으므로
구원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했습니다.
수 없이 뭇 매를 맞고 옥에 갇혔던 사도 바울조차 구원을 자만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구원을
단정지을 수 있겠습니까?
마태 5/16 그러므로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의 선행을 보게 하고, 또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 돌리게 하라.
일부 교인과 목회자들이 믿음은 있지만 거듭나지 못함으로써 세상에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믿음은 있으나 자신을 버리고 거듭나지 못함으로써 육신의 본능과 사탄의 주관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죄사함의 전제조건은 죄를 깨닫는 일지지만, 거듭남의 전제조건은 자신을 버리는 일입니다.
물컵에 담긴 더러운 물을 버려야 깨끗한 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의 모든 고집과 관념과 욕심을 버리고 주님 뜻 대로 살겠다고 결심할 때 주님은 내 안에 오셔서 역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자만하지 말고, 애통한 마음과 죄인된 심정을 잃지 말아야 하며, 더 온전히 거듭나기 위해
끊임 없이 자신을 질책하고 가다듬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6/4~6 한 번 깨우침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며, 성령의 동참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본 자들이 만약 떨여져 나간다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시킬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공개적으로 조롱함이라.
히브리서 10/26~27 이는 우리가 진리의 지식을 받고 난
후에도 고의적으로 죄를 지으면 더 이상 죄들을 위한
희생제가 남아 있지 아니하고, 다만 대적하는 자들을 집어 삼킬 심판과 맹렬한 분노를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만 남아 있기 때문이라.
사도 바울은 또한 복음을 듣고 하늘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아 구원을 얻고, 하늘
능력을 덧입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상으로 떨어져 나가 다시 죄를 짓게 된다면 용서 받을 수 없어 회개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대신 벌을 받으신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헛되게 하는 것이므로
구원 받은 사람은 절대 자만하지 말고 진리 말씀을 생명시하며 지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죄사함은 모든 죄를 용서 받아 다시 죄 없는 상태 즉, 아담과 하와가
있었던 에덴동산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에덴으로 복귀했으면 생명나무의 실과(말씀, 은혜)를 먹고 영생해야 합니다.
그런데 또 다시 사탄의 꼬임에 빠져서 선악과를 따 먹는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처음엔 의식적으로 죄를 멀리해야 하지만 생명나무 실과를 먹다 보면 죄 짓는 것이 더럽게 느껴지고 싫어지게 됩니다.
요한일서 3/8~9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이는 마귀가
처음부터 죄를 짓기 때문이라.
이 목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셨으니, 곧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이라.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거함이요,
또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다.
죄사함을 받아도 다시 죄를 지으면 죄를 조건으로 나를 사로 잡아 더 큰 죄를 짓게 하는 마귀에게 속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인간을 타락시켜 지옥으로 인도하려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입니다.
온전히 거듭나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 새 생명을 입은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데, 죄를 지을
수 없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7~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에베소서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데 이는 육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고 순종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듭나지 않아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육신은 육체의 본능과 욕심에 따라 육체와 마음에 원하는 것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입니다.
딤후 4/1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산 자(가듭난 자)와 죽은 자(거듭나지 못한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단순한 믿음만 있거나 죄사함만 받은 자가 아니라 거듭난 자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년 대환란 이전에 들림 받는 성도는 단순히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다.
따라서 '거듭남'(중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기독교의 핵심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 5/26 이는 아버지께서 자신 안에 생명을 지니신 것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시어 아들 안에 지니게 하심이라.
요한일서 5/11~12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다는
것이라. 그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
로마서 8/9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의 사람이 아니니라.
고린도후서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거듭남과 관련된 간증적인 찬송가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거듭났다는 것은 내 안에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육신에 속한 옛 사람을 버리고 거룩한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의의 행실
거듭나서 내 영이 살아나고 성령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마태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단순히 믿는 것만으론 천국에 가질 못하며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간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믿음만으론 안 되고 행함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고,
또한 내 마음대로 행하면 안되고 하나님 뜻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하려면 거듭나서 성령의 감동대로 사는 수 밖에 없습니다.
마태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야고보서 1/22 그러나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단순히 듣기만 하는 자가 되어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라
예수님을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과 자기를 위한 삶을 포기하란 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셨는데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니 무슨 얘기입니까?
십자가는 고난과 희생을 상징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뜻을 이루기 위해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란 말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 오란 얘기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대부분 선교를 위해 온갖 핍박을 받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므로, 우리는 말씀대로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요일 3/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믿음이 있다고 해도 의를 행치 아니하거나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마귀의 자녀라 하였습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고난과 희생도 감수하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점점 물질주의가 팽배해지고, 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교회마져 타락해가고 있는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에게 원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 의의 행실은 크게 다음 4가지를 행하는 것입니다.
1. 전도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일입니다.
요한 21/16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자 베드로가 그러하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첫 번째는 내 양을 먹이고, 두 번째는 내 양을 치고, 세 번째는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비슷한 말씀을 3번 하신 것으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말씀을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양을 치란 말은 목자가 되어 양떼를 돌보란 사랑으로 이끌고, 바르게
훈계하라는 말씀입니다.
내 양을 먹이란 말은 진리말씀을 전해주고, 영적으로 양육하란 말씀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영생을 주고, 지옥의 형벌에서 구해 주는 전도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태 18/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예수님은 만일 손과 발이 범죄하거든 차라리 찍어내고 불구자로 천국에 가는 것이 사지
멀쩡히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은 너무나 뜨겁고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자살해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전도는 그 끔찍한 지옥불에서 건져내는 것이니 얼마나 값진 일입니까?
전도를 하려면 지혜로와야 합니다.
먼저 그 사람의 생각과 고민을 잘 들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무신론자에게는 인생의 허무함을 깨우쳐주고 예전에 교회 다녔던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우쳐 줍니다.
전도를 할 때는 진리의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우리에게 할 말을 일러주실 것입니다.
2.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마태 25/44~45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예수님이 재림 때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심판하시는데 가난한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를
도와 주지 않았으면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지체이므로 불우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돕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도 먹고 살기 바쁘므로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기 쉽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부자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도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 남을 돕는 사람들을 TV에서 종종 보게 됩니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 갈 수 없는 불우한 이웃들은 애타게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데 주님께서 도와주고
싶어도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도와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은 주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큰 축복이므로 물질이 없으면 봉사활동이라도 해서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이 우리의 도리라 할 것입니다.
3. 교회 안에서 서로
섬겨주고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주시면서 교회안에서 지도자는 높임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겨주는 것이라고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요즘 교회 안에서 인간관계로 인해 시험드는 종종 있습니다.
서로 파벌을 지어 비판하고, 싸우며, 지도자는
높임과 영광을 받으려 하는 사이에 교회는 점점 물질을 중심하고
세상적으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자기 영광을 구치 않고, 서로 섬겨주며 진정한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상대의 잘못을 비판하지 말고, 용서하며, 어려운
형제가 있으면 서로 도와 가며 살아야겠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형제들과 더불어 화평하고, 하나님에 대해 거룩하지 않으면 주를 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추구하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4. 마귀 사탄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요한일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우리 죄를 사해 마귀로부터 건져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도 마귀는 많은 사람들을 미혹해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사노프라는 프리메이슨 과학자가 만든 TV를 통해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고, 프리메이슨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해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게 했고, 미국이 UFO로부터
얻은 레이져나 반도체 같은 과학 기술로 사회를 급속도로
발전시켜 사람들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만들었고, 프리메이슨 국제 금융가들은 금 본위
제도를 폐지하고,
신용카드를 만들어 내 사람들이 물질주의에 빠져 타락하게 해 하나님을 외면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스포츠 연예 오락 산업을 발전시켜 사람들을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것에 몰두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 내에도 침투하여 은사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을 퍼뜨려 근본된 믿음을 져 버리게 하였고
많은 이단과 종교를 만들어내서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성경에 예정되었던 일입니다.
에베소서 2/2 전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은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봐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데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에는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서 산다고 했고, 그것이 공중의 권세잡은 통치자 즉 사탄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현대문명에 따라서 그 추세와 유행을 좇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사탄이 만들어낸 것이며, 인류의 역사가 바로 사탄의
역사였습니다.
민주주의를 만들어 낸 그리스, 법 제도를 완성시킨 로마가 사탄을 제우스로 숭배하던 국가이고
인본주의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사탄숭배 조직인 프리메이슨이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프리메이슨인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프리메인슨인 에디슨이 발명한 전구 밑에서
생활하고,
프리메이슨인 포드가 발명한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프리메이슨인 빌게이츠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쓰고 있습니다.
공중(하늘)에 권세잡은 통치자는 사탄을 가르키며, 불순종의 자식들은 타락한 천사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를 가르킵니다.(욥기 1/6)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은 사탄을 가르키고, 그는 함께 배반한 천사(마귀)들을 다스리고 있으며
지상에서 왕노릇을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행세까지 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주관하고 구원 받지 못한 모든 사람의 생각을 주관할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창조주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구원 받지 못한 자의 하나님은 바로 사탄입니다.
프리메이슨이 사탄을 숭배하는 이유는 사탄을 숭배하면 실제로 나타나서 그들에게 지혜와 지식과 부를
선물로 주기 때문입니다.
단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판 파우스트처럼 사탄에게 절대 충성해야 합니다.
성철스님은 사람들이 사탄을 싫어하지만 사탄이야 말로 진정한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탄이 준 지혜로 이 세상의 부와 권력을 거머쥔 자들은 예수님 재림 때 사탄과 함께 지옥 불못에
던져지게 예정되 있습니다.
마태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디모데후서 2/3~4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오신 것은 세상을 평화롭게 하러 온 것이 아니라 마귀 사탄과 처절하게 싸워
이기기 위한 검(말씀)을
주러 오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 받은 자는 예수님의 군사로 자신과 함께 고난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치열한 영적 전쟁터에서 군인이 전투하다 말고 자기 생활에 얽매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구원 받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과 환경 등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탄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저도 진리를 깨닫기 전에 사탄의 공격을 받아 병으로 고통이 너무 심해 하나님께 죽기를 간구했습니다.
아무 희망과 의욕이 없었고, 걸어 다닐 수도 없었으며, 밥을
먹을 수도 없었고, 밤에 잠을 잘 수도 없었으며,
손가락 하나 까딱 할 힘도 없었습니다.
실의와 좌절의 나날을 보냈고, 죽지 못해 사는 비참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전해준 프리메이슨에 관한 책(그림자 정부)을 읽고 우리 모두가 사탄에게 속고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욥기서를 통해 제대로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큰 죄를 짓지 않아도 언제든지 사탄에게 시험, 환란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욥기 42/6 그러므로 내가 나를 미워하고 티끌과 재 속에서
회개하나이다.
욥은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시험 환란을
견디고도 마지막에 하나님께 회개하였습니다.
이는 욥이 뭔가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욥은 열심히 신앙생활 했지만 완전히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 또한 제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지만 제 고집과 관념과 욕심을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 자신을 버리고 완전히 주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성경구절을 의심 없이 문자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니 진리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구제불능의 죄인임을 깨달고 주님께 의지하니 38년된 병자와 같이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저에게 주님이
다가오셔서 제 영육간의 치유할 수 없는 병을 고쳐주시고, 성경을 통해 진리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고통 받는 사람이 없도록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고, 웹사이트를 통해 널리
알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구원이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 나와 내 환경 모두를 움켜쥐고 있는 사탄의 주관과 나를 사망으로 이끄는
육신의 정욕에서 벗어나기 위한 힘겨운 싸움입니다.
마태 6/13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옵소서. 그 왕국과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니다. 아멘.’
내 혼자 힘으론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내 생각마져 주관하는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없고, 나 자신도 믿을 수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대한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내 자신에 대한 모든 신뢰가 무너져, 절망 가운데 처해 깊은 흑암에서 죽을 때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 온전히 주를 소망하고,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 5/25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고 있나니
바로 지금이라. 듣는 자들은 살리라.
오직 내 생각과 관념을 모두 버리고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주님을 증거하며 살다 죽겠다는 결연한 마음을
가질 때 이 세상의 늪에서 벗어나올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 받고, 거듭나기 위해 이 세상의 것(TV, 오락, 음악 등)을
멀리하고 하루종일
성경 읽고 찬송 부르며 기도하고 사니 서서히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대해 오해하고 궁금히 여겼던 모든 것들이 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을 때의 환희와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큰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더 이상 사람들이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 사탄과 싸우는 일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건데 예수님의 심판과 재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적 그리스도의 세계정부가 들어서고 세계종교통합이 이루어질 때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악이 관영하고, 모두가 예수님을 외면하고, 적
그리스도를 섬길 때 예수님은 오셔서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그 엄청난 말씀의 힘으로 그들을 심판하고 초토화 시킬 것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은 이미 용서 받을 수 있는 선을 넘어 버렸습니다.
페어 플레이고 뭐고 없고, 반칙과 음모를 일삼으며, 우리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성경까지 오염시켰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형상으로 나타나 수 많은 이단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마지막 심판이 오기 전에 이러한 사실을 알려 한 사람이라도 더 사탄의 미혹에 빠지지 않고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3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있는 것들에 너희 마음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또 너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기 때문이라.
이상으로 의의 행실을 마지막으로 구원의 모든 과정을 알려드렸습니다.
구원이 하나님 은혜로 되는지, 내 의지로 되는지에 대해 논란이 많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됨과 죄사항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나 거듭남과 의의 행실은 주님의 은혜와 나의 노력이 함께 이루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11 그러므로 우리가 그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써야 하리니 이는 아무도 똑같은 믿음 없음의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마태 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렇게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하시니, 이에 그가 허락하더라.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복종했던 것처럼 내가 있을 때뿐만 아니라 내가 없는 지금도
더욱더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에게 함께 의를 이루자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성도들에게 항상 말씀을 복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해 자신의 구원을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 혼자만으로도 이룰 수 없고, 나 혼자만으로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내가 함께 힘을 모아야 사탄과 마귀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고전 6/17 그러나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세상 진리는 1+1=2이지만,
하늘 진리는 1+1=1로 예수님의 머리와 나의 몸이 하나가 되어 한 영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반세겔의 속전세를 내기 위해 물고기 입에서 한 세겔을 건져 예수님과 베드로의 속전세를 낸 것과 같습니다.
구원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사랑)을 품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늘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위하는 마음이지만, 세상 욕심은 남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을
위하는 마음입니다.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 천국이고,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 지옥입니다.
콩 한쪽도 나눠 먹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천국이고, 거액의 유산을 놓고도 서로 소송하며
싸우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지옥입니다.
서로 위해 주고 섬겨주는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 천국이고, 서로 짓밟고 올라서려는 사람이
사는 곳이 지옥입니다.
마태 18/33 내가 너를 가엾게 여김 같이 너도 네 동료 종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아니하냐?
1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는 금전적 탕감만 기뻐하고 감사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1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는 금전적 은혜뿐만 아니라 왕으로부터 자신의 처지를 불쌍히 여긴 사랑의 은혜를 받았어야
했습니다.
그럴 때 왕의 사랑에 감사 감격하여 자신에게 빚진 자를 불쌍히 여겨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감사를 표시한 문둥병자나 예수님께 향유를 부인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에 화답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바라 볼 때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 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해 모진 고초를 겪으신 깊은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요한일서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럴 때 나도 예수님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사랑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긴 것 같이 나도 형제를 불쌍히 여겨 용서하며, 나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도 아낌 없이 내어 주셨듯이, 우리도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우리가 모두 원래 하나님의 자식이고 하나님의 소유인데, 사랑과
생명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 독립적으로
살아보고자 할 때부터 고통과 슬픔과 사망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결코 피조물이 창조주가 될 수 없으며, 결과가 원인이 될 수 없고, 수단이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원래 내가 창조주 하나님 소유이고, 죄인된 나를 예수님이 값을 주고 산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20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우리는
주의 것이라.
* 예수님과 하나되는 방법은 크게 다음 4 가지입니다.
1. 내가 죽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복종의 관계)
빌립보서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 예수님의 머리와 내 몸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순종의 관계)
골로세서 2/19 머리를 붙들고 있지 아니하니 온 몸이 머리에서
마디와 힘줄을 통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엮어져서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3. 예수님으로 옷을 해 입는 것입니다. (믿음의 관계)
갈라디아서 3/27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4.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된 내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
에베소서 5/31~32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 둘이서 한 몸이
될지니라. 이것은 위대한 신비라.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그 교회에 관하여 말하노라.
* 또한 많은 교회에서 한번 구원을 얻으면 절대로 잃을 수 없고, 영원히 보장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자신은 구원 받았다고 자신하고, 안심하고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거나 세상에 빠져 살며 죄를 짓고 삽니다.
그렇다면 구원 받은 사람은 신앙생활도 하지 않고, 각종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회개하지 않아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인데 과연 그럴까요?
로마서 8/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개역 한글)
그 근거로 주로 로마서 8장 1절을 제시합니다.
이를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죄를 지어도 괜챦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일부 교인들이 담대히
죄를 지으며 삽니다.
로마서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 (한글 킹제임스)
갈라디아서 5/18 그러나 너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면
너희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개역한글 성경을 지은 자들은 담대하게 핵심적인 내용을 삭제했습니다.
한글 킹제임스 성경에 의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단지 예수님을 믿는 자가 아니라 육신을 따라 행해
죄를 짓지 않고 성령을 따라 의롭게 사는 성도를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온전히 거듭나 결코 죄를 지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요일 3/6 그분 안에 거하는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그분을 보지 못하였으며,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요일 3/9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거함이요,
또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라.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하며, 죄를
짓는 자는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고,
알지도 못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온전히 거듭나 하나님으로부터 새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의 씨(성령)가 그 사람 안에 거함으로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마태 20/22 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이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디모데후서 4/10 이는 데마는 현재의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떠났고 그레스겐은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될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던 데마, 그레스겐, 디도는
복음을 전파하면서 겪게되는 고난과 시험과 환란을 이기지 못하고
주님을 버리고 다시 육신을 위한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히브리서 10/39 그러나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하게
될 자들에게 속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혼의 구원에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속하였느니라.
요한 17/21 이는 그들 모두가 하나 되게 함이오니, 아버지시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서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
따라서 천국을 향해 전진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가면 결국 멸망에 이른다는 것을 명심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예수님께 속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 되어 하나님의 일을 했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과 하나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 하지 말고, 나를 비워 성령충만함으로써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을
하게 해야 합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구원을 받고도 깨어 긴장해 열심히 신앙 생활하지 않으면 마귀가
은혜를
다 뺏어가고, 시험 환란에 넘어지며, 세상의
욕심과 유혹에 마음을 뺏겨 믿음을 져 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모닥불에 계속 장작을 투입해야 불이 지속되듯이 나의 신앙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매일 진리와 은혜를
얻기 위해 말씀을 깊히 상고하고, 뜨거운 기도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여러 번 비유로 드셨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것은 공통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잔치에 초대는 받았지만 예복을 갖추지 않아서 쫓겨났던 사람, 기름을 준비 못해 쫓겨났던
처녀들,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다가 쫓겨났던 종,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넓은 문으로 들어 간 사람 등입니다.
이들이 통분히 여기는 것은 믿음은 있었지만 뭔가 부족한 점이 있어 구원을 받지 못해 억울해 하는 것입니다.
위에 말씀드린 내용은 믿음은 있었지만 거듭나지 않았거나, 세상에 빠져 살았거나, 의로운 행실을 하지 않음으로써
억울하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에 관한 비유입니다.
계시록에 성도들의 세마포는 옳은 행실이라고 했고, 기름은 등불을 밝히 듯 내 영혼을 밝히는
성령을 상징하며,
달란트는 자기의 맡은 사명을 의미하고, 좁은 문과 길은 세상 시류를 따르지 않는 영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말고 마지막 때 구원에 관한 말씀을 생명시 하고 지켜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성경 구절만 믿고, 자신을 버리고 개혁하라는 성경 구절은 애써
외면합니다.
그래서 구원 받는 것은 쉽다고 하고, 교회 다니고 십일조 내면 죄를 좀 지어도 천국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에 나를 끼워 맞춰야지, 내게 맞게 성경 말씀을 끼워 맞춰서는 안됩니다.
살전 5/23 화평의 하나님께서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책망할 것이 없게 보존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노라.
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더럽게 하는 것이나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나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 곳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며, 다만 어린 양의 생명의 책에 기록된 자들만이라.
사도 바울이 예수님 강림할 때 내 영과 혼과 몸이 책망할 것이 없이 보존되라고 한 것은 그렇지 아니하면
구원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영혼을 더럽게 하는 일을 하는 자들이나,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을 한 자들이나, 거짓말을 하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겉으로는 경건한체 하지만 속으로는 죄악과 탐욕이 가득찬 자들은 복음으로 경건해 질 수 있는 능력은 부인합니다.
내가 육신의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죄에 연악한 육신은 결국 죄를 짓게 되고 영혼을 더럽힐 수밖에 없습니다.
영혼이 깨끗이 보전되기 위해선 예수의 보혈로 깨끗이 죄사함 받고, 온전히 거듭나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죄와
유혹을 이기고 주님 뜻대로 거룩한 삶을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느니라. 이는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면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판단하기 때문이라.
예수님이 우리 모두를 위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
속에 내 죽음도 포함돼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죄사함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해 죄에서 해방되는
단계로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구원의 목표는 1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가 1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여 주듯이 하나님의 은혜에 화답하여,
그리스도의 온전하고 거룩한 형상을 이루어, 성령의 선한 열매를 맫고,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로마서 6/8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으며
로마서 6/17~18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에게 전하여 준 교리의 본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음이라.
에베소서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살전 4/7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부정함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갈라디아서 5/22~24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벧후 1/4~7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