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 개요
-들어가는 말-
천사론의 역사만큼이나 사탄의 역사도 길고 장구하다. 어떤 측면에서 천사와 사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사탄(Satan)은 마귀들의 두목, 하나님의 대적자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하여 하나님께 대적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사탄에 대해 성서적인 기원을 중심으로 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Ⅰ. 사탄(Satan)의 어원적 의미
사탄을 뜻하는 히브리 말의 어근은 (wfc ; 사탄)으로서 그 뜻은 '방해하다, 반대하다'이다. 이 말은 구약성서에서 '사람의 길을 막다'(민22:22), '전쟁에서 대적이 되다'(삼상29:4) 등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말과 같은 동일계의 어원을 가진 (sfc ; 사탐)이라는 어휘가 있는데, 이 단어에서 '증오, 적의'라는 어휘들이 유래되기도 하였다.
70인역에서는 사탄을 일괄적으로 (diabolo" ; 디아볼로스)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으나 왕상11:14,23,25에서는 예외적으로 사탄이라는 용어가 고유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또 벌게이트에서도 대부분 사탄을 (diabolo" : 디아볼루스)로 나타내고 있으나 세 곳에서만 사탄이란 말이 초인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명시되고 있다(참조; 대상21:1; 욥1,2; 슥3:1-3). 외경에서는 사탄이라는 말이 (satana" ; 사타나스)라는 말로 집회서21:27에 나오고, 지혜서2:24에서는 '디아볼로스'라고 표기하고 있다.
Ⅱ. 구약에서의 사탄
구약에서는 사탄이라는 존재가 하나님과 대적하면서 악을 일삼는 악마적 존재로 명확하게 나타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사탄이라는 명칭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 몇 군데에서 초인적인 어떤 존재로 사용되고 있으나 어느 경우에서든지 보통명사로 사용되고 있으며 고유명사로는 사용되고 있지 않다. 즉 사탄이라는 말은 그 초인적 존재가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한 역할을 서술해 줄뿐이다.
1. 욥기
욥기 중에서 산문 형태로 된 1,2장 부분에서는,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인 욥의 믿음을 시험하려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믿음을 시험할 수 있는 허락을 취득한 천상의 시종이 사탄이다. 이곳에서의 사탄은 어떤 특정한 때 고발자로 또는 송사자로 활동하는 자를 의미하고 있을 뿐이다. 즉 여기서는 사탄이 고유의 이름으로나 구체적 역할을 칭하는 것도 아니며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자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욥기에서는 사탄이 하나님의 신하로서 하나님의 동의를 받아 그의 명령에 순종하여야만 하는 존재일 뿐이다.
2. 슥3:1-2
바벨론의 포로생활로부터 귀환하였던 시기에 여호수아가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분을 맡은데 대하여 도전한 천상의 존재도 역시 사탄이었다. 여기서도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아니라 고발자를 의미할 뿐이며 구체적인 악을 자행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탄의 역할을 실상 선지자가 본 천국 법정에서의 역할이다.
3. 대상21:1
이 본문에서 사탄은 다윗을 충동질하여 그가 이스라엘을 계수하는 범죄를 저지르도록 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여기서 사탄이라는 용어는 고유명사가 아니며 특정한 기회에 불운한 사건을 조작하는 하나의 영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에 지나지 않는다. 주목할 사실은, 이 사건에 대한 배경적 설명이 되는 삼하24:1을 보면,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을 치시려고 왕을 감동시켰다고 하는 사실이다. 따라서 나중의 기록에서의 사탄은 하나님의 대적으로서보다는 당연히 그의 도구로 간주되어졌을 것이다.
Ⅲ. 신약에서의 사탄
신약성서에서 사탄이라는 어휘는 33번 언급되고 있는데, '마귀'(디아볼로스)라는 말도 32번이나 등장하고 있다. 이는 신약 각 부분에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2:2), '귀신의 왕'(마9:34;마12:24; 막3:22), '시험하는 자'(마4:3; 살전3:5), '참소하는 자'(계12:10)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별히 고후 6:15에서는 사탄이 '벨리알'이라는 고유명사로 불리고 있으며, 다른 두 군데(참조; 마10:25;마12:24,27)에서는 예수가 사탄을 바알세불이라고 칭했다. 정확한 의미에서 이 바알세불에 대한 설명이 아직까지 주어져 있지 않으나, 아무튼 이 말은 마귀의 왕을 뜻하는 말이다.
신약성서에서의 사탄은 항상 특수한 인격적 존재로 묘사된다. 그는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악한 행위와 하나님을 반대하는 일을 하도록 충동질한다. 실제로 사탄은 유다와 베드로를 유혹하여 예수님을 배반하고 부인하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나니아를 충동질하여 헌금의 일부를 감추게 하였고(참조; 행5:3), 사람들이 절제하지 못하게 하며, 사람의 마음과 귀를 멀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또한 사탄은 모든 종류의 선한 그리스도인의 뜻과 의지를 철저히 방해한다. 본질적으로 암흑의 권세자인 사탄은 빛의 자녀, 그리고 빛 자체이신 하나님과 조화될 수 없다(참조; 행26:18). 때때로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속이기 위하여 마치 광명의 천사처럼 선한 이들로 가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래 사탄은 세상에 사망을 가져온 자이며 죄악의 근원이다.
또 사탄은 육제적인 고통과 환난을 일으키는 자이기도 하다. 혈루병으로 여러 해를 앓아온 자, 18년 동안을 귀신 들렸던 여자 등이 사탄에게 매여온 자들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사탄은 인간의 육체를 멸망시키기도 한다(참조; 고전5:5).
유다의 전통적인 민간 전승에서 나타나는 사탄의 개념들이 신약으로 직접 이어져 내려왔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부분이 그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사탄이 '공중에 권세 잡은 자'라는 내용의 엡2:2의 말씀은 랍비 문헌에서 나오는 사망의 천사 삼마엘이 가지고 있는 기능에서 왔으며(참조; 탈굼), '공중'이라는 어휘는 필로에 의하여 밝혀진 전승에서 나타나듯이 암흑의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계12:10에 나오는 '참소하는 자'는 히브리 말 '사탄'의 직역일 뿐 아니라, '참소하는 자'라는 말 자체가 랍비 문헌들에서 사탄을 이르는 통례적인 말이다.
신약에서 특이할 만한 사실은 요한계시록의 묵시적 환상에서 사탄이 행하는 기능이다. 계시록에서 사탄은 '큰 용이요 옛뱀'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는 천사장 미가엘에 의하여 붙잡혀 그의 사자들과 함께 무저갱에 던져지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리고 천 년이 지날 무렵 사탄은 다시 풀려나지만 다시 패배하여 이번에는 영원히 괴로움을 받게 된다(참조; 계12:9;계20:2,3). '옛뱀'이라는 말은 랍비들의 문서에도 나타나는데, 이 뱀은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하던 뱀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옛뱀을 가리켜 고대신화에서 천지 창조가 시작될 때 하나님으로부터 정복당한 태고의 용(리워야단)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사탄은 사14:12-15에서 언급되는 반역한 천사와 동일시되기도 하고, 그 내용은 후대의 기독교 문학에 영향을 주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사탄에 대한 민간 전승들 가운데 중요한 두 가지를 살펴보자.
유1:9를 보면 사탄과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초대교회의 교부 도리게네스에 의하면 이 이야기가 위경의 모세 승천기에 수록되어 있었으나 현재의 자료로써는 정확하게 증명할 수 없다고 전해진다. 다른 몇몇 랍비들의 설화에서는 사망의 악한 천사 삼마엘이, 미가엘과 그 밖의 천사들이 망설이자 모세의 영혼을 거두는 일을 시작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더욱이 아브라함의 유언 중에 언급되는 내용을 미루어 보아 거기서 모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전래되었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나바 서신4:9에서는 사탄이 '검은 자'(mela" ; 멜라스)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과 유사한 상례로는 마귀를 지칭하여 검은 피부의 이디오피아인으로 보는 견해가 안드레와 도마의 행벅에 나타나고 있다. 영지주의적은 성향이 짙은 '피스티스 소피아'에서도 지옥 가운데 하나를 다스리는 마귀가 햇볕에 그을린 아리우트로 불리고 있고, 만다야교의 주문에서도 악마는 '검은 자들'로 불리고 있다. 유대 설화에서 사탄은 종종 검은 비단옷을 입고 등장하는데 이와 유사한 전승은 독일이나 프랑스의 민간 전승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도 모술의 주민들은 '검은 자'라고 불리는 여성 악마를 믿고 있으며, 게일족 민간 전승에서는 악한 자가 종종 검은 도날드로 불리고 있다.
Ⅳ. 외경 및 위경에 나타난 사탄
사탄이 분명한 하나의 인격체로 등장한 것은 제2정경에서부터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발전은 이스라엘이 퇴조해 가던 로마 시대에 발생한 특수한 조건들 때문에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어려운 일들이나 고통거리들이 배교에 대하여 하나님이 내리시는 징벌이라고 본 고대의 견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설득력을 상실해 갔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 고대의 견해는 재난을 당한 당사자들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만약 그대로라면 하나님의 자비와 정의가 모순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 불행은 일시적이고 언약의 약속들은 언젠가는 결국 성취되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그들이 존재해 갈 수 있는 터전인 하나님과의 계약이 불행이나 우환을 넘어서는 힘을 근원적으로 갖고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유대교는 이러한 모순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더욱 더 이원론적인 논리에 의지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이원론적인 이론이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산 엄청난 죄와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자들이 저지르는 사악한 횡포의 원흉인 마귀의 세력하에 인간의 삶이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견해에 의하면 인간 삶의 '암흑의 밤'은 하나님의 돌이킬 수 없는 징벌의 표현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악한 자와 지속적으로 싸움을 하던 도중 일시적으로 후퇴한 결과였다. 종국적으로 그 싸움은 하나님의 승리와 하나님의 진리들의 지천명, 믿는 자들에 대한 구원, 고대로부터 맺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에 대한 성실한 이행 등으로 결과되어진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두 가지 출처에서 유래되었다. 그 중 하나로서, 민간 신앙의 개별적인 마귀들 가운데서 마귀의 괴수가 출현하여 불행이라는 의미에서의 악뿐만 아니라 죄와 범죄의 경우에서도 궁극적인 원인이 됨으로써 현재의 재난들을 낳는 장본인이 되었다. 마귀들이 보통 후기 그리이스 로마 시대의 사상에서 '대립 신들'로 간주되었던 것처럼 이 마귀의 괴수도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반대되는 개념이었다. 여기서 또 하나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최고의 신적 개념이 유일신론으로는 물론 단일신론으로도 표현되어질 수 있다고 해서 최고의 마귀의 개념이 민간 신앙에서 무수히 나오는 개별적인 마귀들을 배제하지는 않았으며, 그저 그 마귀들을 그의 대리자들과 조수들로 격하시키는 단마귀설(henodaemonism)으로만 표현되었다는 사실이다.
외경에서는 마귀의 괴수, 즉 마왕이 항상 사탄으로 불리지는 않았다. 외경에서는 실제로 사탄이라는 칭호가 비교적 드물게 사용되었다. 사탄보다도 더 흔히 사용되어진 것은 벨리알이었는데, 이 이름은 마왕이라는 성향보다는 '값어치 없는 자'라는 뜻이다. 벨리알 이외에 '아스테마'로도 언급되어지는데, 이 이름은 언어학적으로 사탄과 관련되어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적의'를 뜻한다. 이 이름은 고대의 민간 전승에서 어떤 특정한 형태의 불행을 야기시키는 자로 여겨졌던 천사의 이름으로 계속 불렸다.
앞서도 여러 번 언급한 바가 있는 삼마엘은 실제로 '사탄엘'이라고 불린 천사였는데, 그가 하나님께 대적함으로 해서 하늘에서 추방당하였을 때 그의 이름에서 신적인 명칭인 엘(el)이 떨어져나가 '사탄'이 되었다고 한다(참조; 에29:4).
사탄의 역할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마귀적 행위가 실제로 사탄이라고 불렸든 아니든간에 사탄이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의미들은 모두 그대로 그에게 적용되었다. 즉 그는 사람들의 행복과 번영의 훼방자로서 그들을 불화와 강포로 인도하였으며 음란과 표리부동으로 인도하였다. 예컨대 노아의 아들들에게 패덕을 심어 놓고(참조; 창6:10-12) 단으로 하여금 요셉을 죽일 음모를 꾸미도록 하였으며(참조; 창37:20), 보디발의 처로 하여금 요셉을 유혹하도록 한 것(참조; 창39:7)도 모두 사탄이었다. 사람이 원죄를 범하도록 충동질함으로써 세상에 죽음을 가져다 준 것도 사탄이었다. 또한 병의 원인이었고 뿌린 씨앗을 제대로 열매 맺지 못하게 한 것도 사탄이었다.
악인들은 사탄의 지배하에 떨어진 사람들이었다. 사탄은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사악한 일을 행하는 것으로 묘사되었으며(참조; 욥기28:7), 인간의 모든 환난은 그의 악으로 인해 생겨난 것으로 여겨졌다. 더구나 사탄은 사람들에 대하여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서도 훼방자로 등장한다. 사탄은 인간 창조 이전부터 활동하였었으며 하나님에 대적하는 그 자신의 군대를 지휘하였다. 그리고 사탄과 그의 군대는 결국 어떤 결정적인 전투에서 패배하게 된다고 하는 점이 분명하게 명시되어졌다.
구약에서처럼 하나님의 대적자라기보다는 종종 하나님의 시종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들의 일은 하나님이 지시한 파멸과 시련을 행하는 일이었다. 성서는 이러한 행위를 하나님 자신이 하신 일이라고도 언급하는데, 예컨대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는 하나님의 도구로서 일한 것도 사탄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악한 자'에 대한 개념의 두 번째 출처는 유대 대중이 그리스 로마 시대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받게 된 페르시아의 이원론이었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사탄은, 아베스타 경전에 등장하는 최고 신 아후라마즈다의 불구대천의 원수 아흐리만, 혹은 기만의 영 드루즈의 유대파일뿐이었다. 실상 페르시아 신화가 지닌 특성들은 거의 모두 사탄에게 그대로 부과되었다. 아흐리만도 세상에 죽음을 가져왔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데바들, 즉 악한 영들은 그의 휘하에 있다고 언급되어 있다. 또 그는 거짓의 아버지로 묘사되었으며 신체적 불구와 고통을 가져다 주는 자로도 여겨졌다. 더욱이 사해 찬미가(Dead Sea Hymns)에서 벨리알이 종국에 가서는 패배할 것이며 하나님의 진리가 승리하리라는 사실을 거듭 주장하고 있듯이, 아베스타 경전도 그와 똑같은 논리로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타락의 묵시 시대가 외경에서 분노의 시대로 빈번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처럼 아베스타 경전에서도 분노와 노여움의 영인 에쉬마가 혼란과 혼돈을 일으키는 장본인으로 주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