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관련

예배 속의 이단

제이비젼 2014. 5. 26. 13:23
 예배 속의 이단
 
이단이란 말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더구나 복음과 구원에 관계된 말이라면 무섭다 못해 아주 저주스런 말이다. 그런데 찬양에 관한한 이단이란 단어는 오늘 모든 교회에 붙여도 좋을 만큼 심각하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만물에게 찬양의 사명을주셨다. 그중 특별히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생들에게는 창조의 목적으로 찬송을 주셨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러 함이니라"(사43:21). 시119:164에는 하루 일곱 번씩 찬양하라고 하셨다. 일곱번 정도가 아니라 하루 종일, 일평생 찬양하라고 시편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 더 절실하게는 하나님께서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도 찬송을 더 기뻐 받으신다(시69:30-31)고 하셨고 같은 표현이 호14:2에도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가 따를수 없을 만큼 빼어난 찬양 곡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귀를 지으시고 눈을 지으신 자이시기에(시94:9) 들을 수 있고 보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찬송이 창3장사건 이후 예배에서 "왕따"를당하고 있는 것이다. 많이 부르지 않아서가 아니고 성경대로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예배의 중심에 있어야 할 찬양이 시녀로, 들러리로, 기독교인의 필수요 전공이 되어야 할 찬송이 변두리로 밀려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찬송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이다.그래서 깊이 병들어가고 있는것이다. 이틈에 사탄은 교회음악을 혼잡케 하고 있다.
 
얼마전 모 일간지에 경기도 안산의 원효정사 주지인 정안스님이 귀신 쫓는 음반 "카르마"를내놓아 화제가 되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불신자들은 색다른 CD가 나왔는가하여 호기심을 가지겠지만 언약의 비밀을 아는 우리들에게는 충격을 넘어 아연실색할 정도다. 교회가 바른 찬송을 회복하지 못하니 사탄이 날뛰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런 충격적인 음악들은 벌써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1950년대를 전후하여등장한 ㄹ음악(Rock and Roll)이야말로말세를 향한 사탄의 최대전략이요 공격이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흑인들의 성적행위를 나타내는 은어에서따온 용어라곤 하지만 숨겨진 저들의 저의는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굴려버리겠다는 야멸찬 계산이 깔려있는 음악이다. 저들은 성(性)을 부추기고, 마약을 권장하며 자살과 폭력을 찬양하고 이방신, 곧사탄 자신을 숭배하라고 권면하는 음악을 만들어 때론 달콤한 멜로디로, 또는 욱박지르는 듯한리듬으로 청소년들과 기성세대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과연 음악의 최고 전문가답게 전문사역을 하고있는 것이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바른 언약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동안 사탄은 교회안에 찬양의 잘못된 씨를 뿌리고 있었다. 의식적 형식적 외식적으로 순서와 격식에매인 종교적 찬송, 또 음정 박자 화음 발성 기교 등의 음악적 법칙대로 정확하게 불러야만 바른찬양이 된다는 율법주의적 찬양, 또한 찬양 중에 황홀경을 헤맨다든지 웃음보를 터뜨리며 넘어지게하는 신비주의적인 찬양운동, 또 어떤 교회는 좋은 음향시설 값비싼 악기 인기있는 음악가들을동원해 찬양하면서 그 영광을 사람들이 나누어가지는 귄위주의적이고 과시적이며 인본주의적 찬양도 있다.
 
왜 이런 이단적인 찬송들이 버젓하게 교회속에 특별히 예배속에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을까? 성경적으로 보면 그런 찬송들은 구약시대부터 이미 있어 왔다. 언약을 잃은 가인과 그 후대인 라멕에서부터 빠져나온 세상 음악은 남북 이스라엘의 말기에는 절정에 달했던것 같다. 아모스 선지는 당시의 찬양을 비판하면서 "비파에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고"(암6:5)라고 지적했으며, 그런 찬양의 모습을 바라보신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내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고탄식하셨다. 분명 오늘 교회음악이 그런 모습속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럼 찬양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목회자들과 찬양 인도자들의 찬양에 대한 무지라 하겠다. 주보를보면 예배순서에 찬양은 평균 60-70%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도신학교에서 찬양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는다. 교회사적으로 예수가 그리스도되심을 깊이 깨달았던시대나 인물들은 모두가 찬양의 비밀을 누렸던 사실을 보면 반성해야할 일이다. 특히 모세, 다윗, 히스기야, 바울, 루터, 칼빈 등. 그럼에도불구하고 교회가 찬양에 대해 무지하기에 찬양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사탄은 그런 점들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더 심한 경우는 찬양대의 무용론까지 주장, 부산의어떤 교회는 굉장한 교인수에도 아랑곳없이 찬양대를 없앴다. 그런데 찬양하고 싶어하는 인간의욕구는 대단하여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찬양신학교에는 항상 성황이라 한다. 찬양의 비밀을 회복시키는교육보다는 재능만 조금 일깨워주는 수준인데도 많은 기능을 가진 자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한다.
 
찬양회복은 먼저 '예수가그리스도 되심'을 깨닫고 깊이 체험해야 한다. 사탄은워낙 전문적인 방법과 수준으로 깊이 속이기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찬송 한 장 부르는 시간은불과 3분정도이나 그 짧은 시간에도 우리 머리속에는 수십가지, 수백가지생각들로 붐빈다. 그만큼 어떤 세력에 잡혀있다는 뜻이다. 또교회에서 부르는 찬양자체에도 이단적인 노래들이 많이 나돌고 있다. 
 
예컨데 앗시스의 성프랜시스의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라는 곡은 너무나 세계적인곡이라 좋은 찬양처럼 보이나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반(反)복음적인사실을 노래하는 곡이며, 교회 안에서도 널리 불려지는 애창곡인 '아베 마리아'는 마리아를 더 높여 예수 그리스도를 희석시키는곡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찬양대 지휘자나 찬양 리더는 빛되신그리스도의 밝은 조명 아래 꼼꼼히 살피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성경만이 찬양의 옳고 그름을 진단할수 있는 유일한 척도가 된다. 창3장에서 찬양의대상과 내용(언약), 찬양의 목적을 잃어버린 인생들에게예수 그리스도께서 회복시켜 주셨다. 사실 찬양은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주신 최고의 언어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에 가장 잘 어울리는 보좌가 바로 찬양의 보좌요, 지금도이스라엘의 찬송중에 거하시는 분 (시22:3)이라고하셨다.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언어로 지금도 바다의 어류, 지상의 동식물들은 하나님을 찬양함은 물론 짝을 찾고 사랑을 나누는 언어로 또는 먹이를 찾는 수단으로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거미는 아주 민감한 음감으로 그 짧은 시간에 기하학적으로 아주 정교한집을 지어 그것으로 먹이를 잡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사람들도 음악을 통해 풍요로운 문화생활, 초음파를 이용한 과학과 의료장비, 불치병을 치료하는치유음악, 작물과 동물을 키우는데 음악을 활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주신 음악적 혜택을 발견하여 하나하나 누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속에는 얼마나 엄청난 축복의비밀이 숨어 있을까? 성경은 찬양을 통한 기적과 역사들을 많이 기술하고 있다. 그것은 음악의 복음이며 그것을 회복해야 한다. 사탄이음악으로 완전히 망가뜨린 현장을 회복시켜 미래의 주인공들인 청소년들과 좋은 기능을 가진 이들을 사탄의 마수에서 건져내어 참 찬양의 축복을 누리게해야 한다.
바른 찬양이야 말로 사탄의 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최대의병기이다. 여리고성이 제사장들이 힘차게 부는 나팔소리와 백성들의 함성에 무너졌듯이 예수 그리스도를높이는 바른 찬양이 회복될 때 사탄에 사로잡힌 문화권에서 울려퍼지는 포학한 자들의 노래가 낮아지게 될 것이다(사25:1-5).
 
박지회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