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성서·

가나안 정착시대의 서설

제이비젼 2014. 6. 25. 21:57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40여 년 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입성하게 된다. 이는 당시대는 물론 훨씬 이전의 족장 시대로부터 염원하던 것이었는데, 드디어 실행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일에 있어 백성들을 영도했던 인물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였다. 그는 삽시간에 가나안 땅의 많은 성읍들을 탈취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착의 초석을 놓았다. 본장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과 과정 및 배경 등에 대하여 다루어 주고 있다.

 가나안에 대한 정복을 다룸에 있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정복된 시기를 논하여 보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시대에 대하여는 전통적인 견해와 진보적인 견해가 있다. 전통적 견해에 의하면 주전 1446년경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마친 1406년경으로부터 가나안 침공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반면 진보적 견해는 주전 13세기경에 가나안 침공이 전개되었다고 여기고 있다. 이처럼 연대가 엇갈리는 이유는 고고학자들마다 여리고, 아이, 벧엘 등에 대한 멸망 연대 측정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편 출애굽의 여정에 대한 성경의 기록 중 요단 강 도하 사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도 있다. 성경은 요단 강이 매우 규모 있고 창일하던 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이 강을 건널 수 있었다고 말하는데, 현재의 요단 강은 작은 여울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요단 강이 창일하고 있었음은 고고학적으로 규명이 가능하다.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의 주도권을 쥐고 그곳에 정착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그곳의 원주민들과 접하며 때로는 융화되고 때로는 투쟁하며 그들의 입지를 강화해 나갔다. 당시의 흔적을 잘 대변해 주는 유적지로는 므깃도가 있는데 그곳에서 발굴된 도자기들은 정복 시대의 가나안 정세에 대하여 소상히 알려 주고 있다.

 가나안 정착 시대에 있어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위협적인 민족이 있었다면 그들은 블레셋인들이다. 블레셋인들은 고고학적 자료들에 의하면 '바다 사람들'로 불려지는데 고대 세계에 있어서 매우 활발하게 해외 진출을 꾀했던 것으로 드러난다. 그들은 가나안 해안을 장악하고 항상 이스라엘과 반목하였으며 애굽을 침략하기도 했다. 애굽 왕 라메세스는 그들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애굽을 지켰지만 블레셋 민족은 여전히 바다와 가나안 항구 등에 정착하여 자기들의 터전을 일구어 나갔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을 다룸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가나안의 종교에 관련된 부분이다. 가나안 민족들의 종교는 정착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의 생활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당시 가나안의 종교적 상황은 극심한 타락의 양상이었다. 대표적으로 그들은 음란한 바알 신앙과 아세라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식을 불태우는 의식을 행하며 몰렉을 섬겼다. 한마디로 패역한 신앙과 윤리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신앙과 종교적 상황을 잘 대변해 주는 자료가 있는데 그 중에는 에발 산의 제단도 있다.

 가나안 정복 시대를 고고학적으로 다루어 봄에 있어 의의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본장을 고찰해 보면서 하나님의 섭리와 그분의 권능이 어떠함을 재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