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압과 발람/ 민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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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는 가로 놓이는 숱한 난관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모압 족속들과 관련된 것으로 발람의 사건이 있다. 발람이라는 이름의 뜻은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라는 뜻인데 그는 이름에 걸맞게 이스라엘을 파멸시킬 뻔하였다. 발람의 실존에 대하여는 에돔 왕 벨라(창36장)와 동일한 인물이라는 설이 있으나 설득력이 없다. 또한 바벨론의 점성가 바루와 동일하시기도 하는데 이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는 이론인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편 발람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들로는 알라라크의 입상과 그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출토된 여러 가지 유물들이 있다. 이 자료들은 한결같이 발람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주술가의 가정에서 성장한 주술가임을 증거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자료들을 제시하여 성서에 기록된 발람에 대한 기사가 진실임을 증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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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성서의 문서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발람 설화의 순수성을 부정하며 발람 설화가 이방 설화 가운데 하나였는데 성서 편집자들이 이것을 잘못 편집하여 불일치점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주장에 대처하기 위해 발람 설화의 역사성을 증명하고, 이 증명을 통해 그 설화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도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현대 고고학은 발람 설화의 역사성을 증명해 주고 있다.
1. 발람
1) 성경 속의 발람
![lb(발람)이라는 이름은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라는 의미이다. 그는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브돌 주민인데 그의 아비는 브올이었다(민22:5). 그는 암몬 사람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민22:5,23). 발람은 발락의 청원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빈번이 그것을 축복으로 돌렸고, 그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민31:8,16).
2) 발람과 유사한 자료들
① 벨라와의 유사성
문서 편집을 주장하는 자들은 창세기 36장의 에돔 왕 벨라와 발람을 동일한 인물로 주장함으로 발람의 사건이 후일 창세기와 같은 때 편집된 것으로 주장한다. 그들이 이같이 주장하는 이유는 벨라와 발람 모두가 '브올의 아들'이라고 불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람의 고향은 에돔 지역이 아닌 유프라테스 강, 갈그미쉬 근처에 있던 브돌이었으므로 그러한 견해는 설득력이 없다(민22:5; 민33:7). 특히 민22:5의 '아마윗 사람들의 땅'이란 말에서 그들이 동일 인물이 아니었음이 확실히 입증되었다. 발람은 에돔 사람이 아닌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한 주술가였던 것이다.
② 바벨론의 바루
고고학의 자료는 에돔 왕 벨라와 발람을 서로 다른 인물로 증거함과 동시에 발람을 바벨론의 점치는 사람인 바루(Baru)로 증거하고 있다. 그는 바벨론의 점술가들 가운데서도 꽤 명성이 있었는데 모압 왕 발락은 신하들을 통해 그를 데려온 것이다. 한편 이러한 자료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주변에서 점성술이 유행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2. 발람에 대한 고고학 자료
1) 알라라크(Alalakh)의 입상
발람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계시와 명령에 순종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얼마 되지 않아 발락이 제의한 물질과 명예의 유혹에 넘어가 이스라엘 민족을 범죄케 하는 변절자가 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사실을 1940년대에 발견된 시리아 알라라크의 입상에 새겨진 글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글은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후에 일반에게 발표되었는데 그 글의 내용은 '변절자 발람의 집'에 대한 것이었다. 이 내용과 더불어 그 입상의 기록에는 알라라크 왕이 왕좌에서 추방되고 그가 다시 그의 나라에 돌아가기 전까지 팔레스틴의 하비루족과 동거했음을 증거하고 있다.
2) 발람의 집에 대한 자료
모압의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발람을 불러들였다. 사실 발람은 예언자라기보다 성서에 나타난 그의 사역을 볼 때 행위를 저주하는 점쟁이, 죽 주술가였다(신18장). 이런 발람의 행위의 흔적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발굴된 발람의 집에서 발견된 서판과 양각에 잘 나타나있다. 그 서판의 양각에는 수호신들이 물통과 솔방울을 들고 주술을 행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런 고고학적 자료들로 미루어 볼 때 주술적 관습들은 당시에 있어서 보편화된 모습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 자료들은 발람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한 주술가의 가정에서 성장한 점쟁이였음을 확실히 증거함으로 그가 가나안 정착 시대의 역사적 인물임을 나타내고 있다.
3. 하나님의 인도
1) 여호와 신앙의 우월성
성경은 발람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다른 신들과 비교할 수 없음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여호와 신앙이 매우 위대함은 다른 부족신을 물리치고 이방 국가가 의지하는 신들을 멸시함으로 증거되고 있다. 이런 하나님의 인도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가운데 기초하고 있는데 이 구속사는 여호와 자신이 그의 백성의 적대 세력과 친히 싸우시며 구원하심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이런 의도는 저주로 이스라엘을 멸하려는 발락의 의도가 여호와 앞에서 무너지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이교도 발람의 행위에 대한 여호와의 배격은 여호와 신앙이 주술적 신앙보다 우월함을 제시하고 있다.
2) 하나님의 권위를 제시
발람 설화에서는 발락이 이스라엘을 매우 두려워하였다고 묘사하고 있는데 이런 두려움은 이스라엘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연속적인 승리로 모든 도상에 있는 민족들을 떨게 하였으며 당신 앞에 무릎꿇게 하셨다. 이런 역사는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던 "너희 앞에는 아무도 설 수 없으리라."는 약속이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든 민족은 이스라엘의 진군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의 권위 앞에서 떨게 되었다. 이것은 인류가 하나님을 대적하려 할 때는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행동하게 됨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고고학적으로도 발람의 역사성이 증거되고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성경은 발람에 대한 기록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 진행은 어느 것으로도 막을 수 없고 오히려 파멸만 자초할 뿐임을 알려 준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일은 어떤 물질과 명예와도 바꿔질 수 있는 성질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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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돌(Pethor)
브돌은 북부 아람(민23:7)에 위치한 성읍으로 꿈의 해석이란 의미이다. 그것은 갈그미쉬에서 남쪽으로 20㎞ 떨어진 텔 아마르(Tell Ahmar)와 동일시 된다. 브돌은 유프라테스 강과 연접해 있는 사줄(Sajur) 강가에 있는 상부 메소포타미아의 한 성읍인데 성경에서는 브돌을 발람의고향으로 자칭하고 있으며,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민22:5; 신23:4). 브돌은 사줄 강과 합류하는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에 있는 살만에셀 3세의 비명에도 언급되고 있다. 이 브돌은 헷족속의 방언으로는 피트루(pitru)로 알려져 있으며 앗수르식으로는 '아나 앗수르 우티르 아슈밧'(Ana-Asshur-utir-asbat : 내가 앗수르를 위해 이곳을 다시 세웠다)으로 불린다. 브돌이 앗수르 말로 명명되어진 이유는 살만에셀의 선조 디글랏 빌레셀 1세가 브돌과 무트키누(Mutkinu) 지역을 아람에게 빼앗겼다가 살만에셀이 다시 찾은 것은 기념한 것에서 비롯된다.
2. 시누헤(Sinuhe) 이야기
시누헤 이야기는 B.C. 20세기에 이집트의 정치적 발전을 전개한 한 영웅의 이야기다. 시누헤는 여러 왕들을 섬기며 여러번의 군대 원정에 봉사했다. 그의 군대는 이집트의 서쪼 개척지에 있는 리비아 족속들을 평정하고 있었는데 제12왕조의 창설자인 왕 아멘엠헷 1세(Amenemhet I)가 암살되었다는 풍문이 그들에게까지 들려지게 된다. 그때 시누헤는 반역을 시도한 음모자들의 대화를 엿듣고 앞으로 닥칠 대대적인 재난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였다. 후에 왕은 시누헤에게 자기 딸을 주어 사위로 삼았다. 이 이야기 속에는 시누헤가 여러 곳을 떠돌며 광야 생활을 한 일이 있다고 할려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모세가 이집트에서 도망친 후 미디안 땅에 거주했던 것과 유사점이 많다(출2:15-21). 그런데 또 한편으로 놀라운 것은 시누헤가 자신의 목적지를 거론함에 있어 "그곳은 무화과와 포도가 생산되며 풍부한 술과 물이 이는 곳이다."라고 말한 내용이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소망했던 가나안의 형편과 매우 유사한 대목이다.
3. 아마윗
유프라테스 강 부근에 위치한 지역으로 저주토록 한 곳이다. 이 지명은 성경의 민22:5에만 나타나며 RSV 성경은 그곳을 '아마윗 사람들의 땅'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KJV, ASV, MT(맛소라사본). 칠십인역에는 '그 백성의 자녀들의 땅' 또는 '암몬 자녀들의 땅'으로 되어 있다.
4. 알라라크(Alalakh)
레오날드 울리(Leonard Woolley)의 감독하에 한 고고학팀에 의한 텔 앗사나(Tell Atshana)의 발굴은 알라라크의 고대 도시왕국을 발견케 했다. 이 유적지는 현재 터키의 나타이(Natay) 군에 있으며 시리아 북서쪽을 낀 평원 지대에 놓여 있다. 알라라크 백성은 지중해에서 유프라테스와 인도뿐 아니라 타우루스(Taurus)에서 오론테스(Orontes) 강으로 내려가는 연결점에 그들의 도시를 세웠다. 이곳의 발굴이 시작된 동기는 이 지역이 에게 문명 세게와 rmsed 문화 사이에서 중요한 관계를 가진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텔 앗사나 발굴의 가치는 B.C. 2000년 중기의 북쪽 시리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넓혀 주었다. 알라라크의 발굴로 말미암은 자료들은 수메르 제국과 헷, 애굽 제국 등에 대한 수많은 참고 증거를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5. 벨라(Bela)
창46:21에 등장하는 벨라는 브올의 아들로서 '삼킨다'라는 의미이다. 그는 에돔 족속의 최초의 왕인데(창36:32-39; 대상1:43-44), 딘하바(Dinhabah)에 그의 도성이 위치해 있다. 딘하바의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한데 어떤 학자는 이를 '텐닙'(Tennib)과 동일시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학자들은 이곳을 헤스본의 동북동 벨가의 동단에 있는 데닙(Thenib)과 같다고도 한다. 그 밖에 그의 가족들이나 살았던 장소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 없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브올의 아들인 선견자 발람과 유사해서 탈굼(Targum)은 그를 발람이라 부르고 있으나 칠십인역에서는 그를 발락(Balak), 즉 선견자인 모압 왕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