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입성 직전기/민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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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학정에서 구해 주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셨다. 그러한 계획은 족장 시대 때부터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었으며, 적절한 때가 되자 다시 이스라엘로 찾아오셔서 그들의 하나님으로 자청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40여 년 동안 애굽의 통치 아래서 묶어 두셨던 이유는 두 가지로 파악이 되는데, 첫째는 이스라엘을 연단하시기 위함이며, 둘째는, 혼탁한 이방민족들의 문화에서 격리시침으로써 그들을 효과적으로 성장시키시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 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며칠이면 통과할 수 있는 광야를 무려 40여년이라는 긴 기간을 통하여 신앙적 여과를 거치며 가나안 땅으로 들어서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힘겹게 쟁취한 가나안 땅도 결코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대다수의 축복들은 그들이 끊임없이 하나님께 충성하며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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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을 기업으로 줄 것을 약속하시고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한 하나님께서는 그 신실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그들을 인도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 이스라엘 백성에겐 많은 시련의 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앙적으로 어려웠을 때 번번히 용기를 잃어버렸으며, 육적이고 인간적인 생각에 빠졌고 하나님을 원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제 가나안 땅이 보이는 모압 평지까지 무사히 인도함을 받았다. 이제 여기서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한 새로운 정리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1. 모압 평지 도착
1)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이스라엘의 가데스 바네아의 반역 사건으로 말미암아 가나안 입성에 실패한 후 40여 년 동안의 고통과 시련의 세월이 지나간 뒤에 하나님께서는 "세렛 시내를 건너라'(신2:13,14)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민족이 모압 평지까지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는 동안 헤스본과 바산 왕국을 점령하여야 했다(신2:24;신3:1-2). 이 싸움에서 모세는 이들을 물리쳤다. 특히 바산 왕 옥을 물리친 후 60개(신3:4,5)나 되는 성읍을 차지하게 되었다. 바산에는 골란이라는 성읍이 있었는데 이 성읍이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됨으로써 바산 왕 옥은 당시의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세는 이들을 무리치고 모압 평지에 이른다. 이곳에 수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한 재정비 작업을 한다.
2) 바알브올 사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입성하기 전에 모압 평지에서 바알브올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발람의 꾀에 넘어가 모압 여인과 음행하며, 바알브올에게 부속된 일을 했던 것을 말함이다(민25:1-9). 그 결과 24,000명이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의 죽음이 있었고, 그의 마지막 설교도 이곳에서 있었다. 신1:3에 이 설교는 제40년 11월 1일이라고 했다. 결국 모세는 요단 강을 건너기 두 달 열흘 전에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의 무덤이 어딘지 알 수가 없다.
2. 내·외적 체제 정비
1) 인구 조사
외적으로 이들은 먼저 인구 조사를 실시하였다. 출애굽 1세대의 인구 조사(민1:1-10:10) 후 근 40여 년이 지나서야 재조사를 하도록 하셨는데 모세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재차 연구·조사하도록 명령을 내리신다. 이것은 단순히 군대를 재조직하기 위한 목적만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입성 후 땅의 분배를 적절히 할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기초적 자료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민26:1-56). 이 인구 조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개닫게 되는데 가데스 바네아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신14:20-25)이 모두 성취된 것을 볼 수 있다. 즉 출애굽 1세대는 모두 죽고 광야 생활중에 새로 태어난 세대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기나긴 40여년 광야 생활 속에서도 1820명 밖에 감소되지 않았다는 것은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눈동자와 같이 늘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외적으로는 인구 조사로서 체재를 정비하였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적인 정비였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올바른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율법을 강조하였으며 하나님의 절대성을 인정하며 그분의 요구에 응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케 했다.
2) 가데스 바네아 주변의 고고학 발굴
가데스 바네아에 대해 잠깐 언급해 보자. 이곳은 사해 남쪽 끝에서 홍해 바다까지 펼쳐진 지역으로 라우머(Karl von Ramuer)와 로빈슨 (Edward Robison)에 의해 19세기에 발견되었다. 이곳을 발굴한 결과 철기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폐허 상태의 성채를 발견하였다. 그 성채는 이중 성벽으로 되어 있었으며, 길이는 약 61m, 넓이가 약 41m 나 되었다. 모세는 모압 평지에서 에돔 땅을 거쳐 가야 하는데 그곳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민20:14-21).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고고학에 의하면 당시의 성벽은 아주 견고하게 되어 있었다. 즉 세일 산 부근의 계곡에 견고하게 세워진 성벽의 유적들을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그리고 모세가 정탐꾼을 보내었을 때에도 가나안에 이미 이러한 견고한 성벽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민13:28).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이러한 견고한 성벽 때문에 모세가 에돔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에돔 왕이 자기가 다싀는 그 영토를 통과하는 것을 거절하였기 때문이며(민20:18). 에돔은 하나님이 에서에게 주신 땅이기에 하나님께서 에돔을 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신2:6,68)고 기록하고 있다.
3. 토지 분배법
모세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토지 분배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하는 것을 볼 수 있다(민34-36장).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땅의 경계를 분명히 해줌으로써 가나안 입성 후 야기되는 혼란을 막기 위함이다. 땅의 분배에 있어서 제비를 뽑아 분배하였다(민26:55). 이 제비뽑기는 일종의 신앙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신앙은 땅의 모든 소유주는 하나님이라는 신앙이다. 중요한 토지 분배에 있어서 제비 뽑기처럼 비합리적인 방법을 택한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지만 이것이 바로 그들의 신앙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그들은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나타난 결과에 승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방법은 세 가지가 있는데 제비를 바닥에 던지거나 용기를 흔들어서 밖으로 튀어나오게 하는 방법과 용기에 손을 넣어서 용기를 손에 넣어서 뽑는 방법이 있다. 이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땅바박에 던져서 결정하는 것이다. 제비는 돌에다 색을 칠하거나 기호를 그렸으며 이것이 점차 발달되어 종이 쪽지나 나무 조각으로 변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 가나안 땅의 크기는 동서로 180㎞ 남북으로는 256㎞ 정도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분배받기에는 부족한 땅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요. 그들이 평생 살아가야 할 삶의 터전인 것이다. 그곳으로 이제 이들은 진군을 시작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자신들의 행동과 상관없이 결정되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의 반역과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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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렛 골짜기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이 38년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으로 입성하기 위하여 최종적으로 건넜던 물줄기가 이는 곳이다(민21:12;신2:13,14). 세렛 골자기의 전체 길이는 약 56㎞ 정도이며 전체 낙차는 1,170-1,190m 정도이다. 이곳은 에돔 왕국의 북쪽 경계선이 되기도 하고 모압 왕국의 남쪽 경계선을 이루기도 한다. 느라야누스(trajanus A.D. 98-117)가 재건한 '왕의 대로'는 엘 아이납(el-Ainab)에서 세렛 골자기와 교차한다. 이사야가 모압이 패망할 것이라고 예언한 중에 나온 '버드나무 시내'(Brook of Willows)는 일반적으로 세렛 시내와 동일시되었다(사15:7).
2. 바산(Bashan)
요단 강 동쪽을 여러 조각으로 나눌 때 가장 북쪽에 위치한 지역이 바로 바산이다. 바산의 정확한 넓이는 계산하기 어려운데 왜냐하면 성경에는 바산이 단지 넓은 평야로만 언급되었고 또 바산 왕 옥의 전 영토를 포함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바산은 남쪽으로는 길르앗 경계에서 부터 북쪽으로는 헤르몬 산의 비탈에까지 뻗어 있으며, 서쪽으로는 요단 강을 국경으로 하고 있었다(신4:47). 바산은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잘 보존된 골란(Golan)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로써 바산은 요단 계곡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이 증명된다(신4:43). 대체로 이곳은 고원지대인데 높이가 480m에서 690m에 달하며 밀재배와 목축을 주로 하고 상수리 나무숲으로 아주 유명하다. 그밖에도 바산에는 비옥하고 숲이 우거진 예벨 에드 드루제(Jebeled-Druze)의 비탈이 있는데 이 지역은 엘 하우란(el-Hauran)에서 특히 기름진 평원이다. 이러한 자연적 특성들이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데 '바산의 힘센 소들'은 의로운 자를 포위하는 흉악한 적들을 의미하며(시22:12) '바산의 암소'는 사마리아의 사치스러운 여자를 의미한다(암4:1). 또 거만하고 뽐내는 자들을 가리켜 '레바논의 백향목'과 '바산의 늘어진 상수리나무'라 했으며(사2:13). 에스겔은 두로의 교만을 말하면서 두로가 바산의 상수리나무로 배의 노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겔27:6).
고고학적 발굴로 인하여 바산에는 청동기 시대 초기(B.C. 3200-2000)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스라엘은 바산 왕 옥으로부터 60여 개의 성읍을 빼앗았고 후에 토지 분배 때에는 므낫세 지파에게 할당되었다. 그 후 바산은 디글랏 빌레셀 3세에 의해 앗수르 제국에 통합되었고(왕하15:29) B.C. 2세기에는 나바테야(Nabataeans)의 수중에 들어갔다. 바산은 헤롯 왕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빌립(Ph-ilip)과 아그립바 2세(Agrippa II)의 영토가 되었다.
3. 발람(Balam)사건
'탐식가'라는 의미의 발람은 유프라테스 강가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이다(신23:4). 그는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하여 발락 왕에게 고용되었으나 하나님은 그에게 저주 대신 축복의 말을 주셨다(민22-24장). 또 그는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높아 백성들이 그 올무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게 하려고 하였으나 결국에는 백성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수13:22).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키는 일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위선적인 교사들을 가리켜 발람의 사건을 적용시키기도 했다(유1:11;벧후2:15). 또 버가모 교회에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가리켜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무리들이라고 지적하고 있다(계2:14-16).
4. 가데스 바네아
'가데스의 거룩한 성'이란 뜻의 가데스 바네아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매우 의미있는 장소이다. 출애굽한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오랜 광야 생활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제 그 광야 생활을 마치면서 그렇게도 기다리던 가나안에 입성하기 위하여 정탐꾼을 보냈다.
그러나 정탐꾼 중에 다수가 절망적인 소식을 가지고 왔다. 이로 인하여 그들은 하나님과 자기들을 인도한 모세를 원망하게 되었고, 결국 출애굽한 구세대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되었다. 또 이스라엘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말렉과 가나안을 치러 올라갔다가 오히려 크게 패하고 돌아온다(민14:40-45). 고고학적 발굴은 1880년 트룸불(H. Trumbull)이 시나이 북쪽에 있는 '에인 쿼데이스'(Ein Qedis)를 가데스 바네아로, 1905년에 스미트(Nathaniel Shmidt)가 '에인 엘 쿠테이랏'(Ein-el-Qvdeirat)을 가데스 바네아로 각각 추정했다. 1914년 울리(C. L. Woolle)와 라우렌스(T. E. Lawrence)등의 학자는 이 언덕에서 여러 유물들을 발견했고 그것들을 연구한 결과 바로 이곳이 가데스 바네아임을 확신했다. 그 주장은 현재에도 동일하다. 1956년 도단(M. Dot-han)에 의해 첫 탐사가 시작되었으며 1979년 코핸(R. Cohen)에 의해 작업이 계속되었다. 그 결과 이곳에서 사발, 주전자, 동전, 항아리, 쇠화살촉과 같은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