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성서·

광야생활/출15:22

제이비젼 2014. 6. 25. 21:51


 출애굽 후 이스라엘 민족은 즉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성경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40여 년 간을 광야에서 유리하였다고 알려준다. 그들이 진행했던 광야길은 가나안 땅과 그리 먼 곳이 아니었으며 다른 길을 거치지 않았다면 넉넉히 한달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많은 지역을 돌고 돌며 때로는 특정한 곳에 정착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연단을 받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양식을 먹었으며 그의 임재 아래 항상 보호받을 수 있었다. 현대의 고고학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머물렀던 광야길의 여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당시의 흔적과 유적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당시에도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던 광야 지역이었기에 그 작업은 쉽게 진척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 자취를 더듬어 보는 작업은 매우 뜻깊은 일일 것이다. 


  애굽에서의 430년 세월을 마치고(출12:40,41)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광야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 광야는 크게 보면 시내 반도를 일컫는 것인데, 이 지역은 메마르고 황폐한 곳이었다. 수많은 난관을 거치며 불평과 불만을 토하면서도 이스라엘은 마침내 가나안 입구라고 볼 수 있는 가데스 바네아(Kadesh-barnea)에 도착하여 가나안에 입성할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12명 정탐꾼의 보고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은 광야 40년의 연단기를 거치게 되었다. 뒤늦게 후회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쳐들어갔지만 결국 패하고 힘없이 광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끝까지 돌보시어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감으로써 언약을 성취케 하셨다. 여기서는 그 과정에서의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고고학적 자료들을 통해 다루기로 하겠다.

 1. 광야 생활의 기간

 1) 광의의 기간
 광야 생활의 기간을 넓게 잡는다면, 출애굽을 하여 홍해를 건넌 직후부터 시작해서 가데스 바네아의 반역 사건으로 받은 징계의 40년(민14:26-35) 유리 생활까지 포함하게 된다. 민33:38에도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0년 5월1일에 아론이 죽었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생활을 한 전체 기간은 홍해를 건넌 직후 수르 광야(Shur, 출15:22)에서 출발하여 민33:38의 아론이 죽은 시기까지의 40년이 된다. 아론이 죽은 후 바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점령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민33:50-54).

 2) 협의의 기간
 학자들 간에는 광야 생활을 38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 이유는 출애굽하여 시내 광야의 시내 산까지 오는 동안의 기간이 햇수로 약2년이 소요되었는데 이때까지는 형벌적 의미의 기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적 차원에서의 광야 생활은 38년간이라고 말한다(민14:34). 

 2. 광야 생활의 노정

 1) 광야를 횡단하는 길들
 시내 반도를 횡단하는 길은 크게 세 군데가 있다. 애굽길과 블레셋의 길, 그리고 광야길이다. 전통적으로 시내 반도를 거쳐 가데스 바네아에 이른 진행로는 시내 산을 시내 반도의 남부 지역에 있는 것으로 여기는 '광야길'로 여겨진다. 이 길은 시내 산의 위치에 따라 시내 반도의 중앙 부로 보기도 하고, 전통적 견해에 따라 남부 지역으로 보기도 한다.

 2) 광야의 진행로와 현재 위치
 다음의 진행로는 민33:8-37을 참고한 것으로, 에담 광야(수르 광야의 일부)→마라→엘림→홍해 가(수에즈 지협의 한 부분) → 신광야→돕가→알루스→르비딤→시내 광야(시내 산)→기브롯 핫다아와→하세롯→가데스 바네아(바란 광야, 민13:3,26)의 순이다.
 에담 광야는 '성벽, 방벽'의 뜻으로 애굽의 동쪽 경계선이며 오늘날의 와디 투밀랏(Wadi Tumilat)으로 추정된다. 마라는 '쓰다'라는 뜻이 있고 에담에서 3일길(약 96㎞)이고, 수에즈 만 동쪽 약 11㎞ 지점으로 현재의 '아윤무사'(Ajunmusa)로 추정된다. 이곳은 모세가 쓴물을 달게 한 곳이다(출15:23-26). 엘림은 '큰 나무'라는 뜻이며 오아시스 지대인데, 현재의 와디 구룬델(Wadi Ghurundel)로 여겨진다. '홍해가'는 수에즈 만 부근의 한 지역으로 추정된다.
 신 광야는 습지를 뜻하며 수르 광야 남동쪽과 수에즈 만 사이의 광야이다. 민33:36의 가데스 바네아 부근의 신광야가 아니며, 현재의 '데벳에르 라믈레'(Debbet er-Ramleh)로 추정 된다. 돕가는 구리 광산이 있는 현재의 세라빗 엘 카딤(Serabit el-Khadim)으로 추정되며 시내산의 북서쪽 약 75㎞에 있다. 알루스는 돕가 근처로 여겨질 뿐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르비딤은 '뉘는 곳'의 뜻이며 '므리바, 맛사'라고 불리기도 한다(출17:11). 반석에서 샘물을 낸(출17:6-7), 이곳의 현재 위치는 와디 데이라(Wadi Deirah)로 추정된다. 시내 광야(시내 산)는 '수풀'이란 뜻이며, '호렙 산'으로도 불린다. 율법을 수여받은 이곳은 시내 반도 남단의 '예벨 무사'(Jebel Musa)로 추정되며 2,291m의 고산이다. 이스라엘이 시내 광야에 진친 곳은 현재의 와디 데스 세바여(Wadi es Sebayeh)로 추정되는데 시내 산 남동쪽 약 8㎞에 있다. 기브롯 핫다아와는 '탐욕의 무덤'이란 뜻이며 시내 산 북동쪽 약 30㎞ 지점의 엘 에베이릭(el-Ebeirig)으로 추정된다. 하세롯은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기 전의 숙영지로서 현재의 아인 카드라(Ain Khadra)로 추정되며 시내 산 동북쪽 약 55㎞ 지점에 있다. 가데스 바네아는 '가데스'로 줄여 부르기도 하며 '거룩한 샘'이란 뜻이다. 헤브론 남쪽 112㎞에 위치한 이곳은 정탐꾼 12명을 파견한 곳이다. 민수기 33장의 광야 여정에는 신광야에 속하며 한 번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하세롯 다음의 릿마(민33:18)를 가데스 바네아로 보기도 한다.

 3. 광야에서의 생활

 광야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은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최소한 200만이 넘는 대군이 입을 옷이며, 식량, 물, 장소의 문제는 매우 심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짐승들까지 먹이려면 엄청난 양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양식이나 의복, 물 등을 전혀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다. 답사 결과 200만의 인구를 먹일 식량이 없다고 밝혀진 지역에서 그들은 끝까지 살아 남았다. 성경에서는 그 이유를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식량은 하나님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심으로 완전히 해결되었다(출16:3,13). 또한 의복과 신발은 닳지 않았고(신29:5) 거할 장소는 원래 이스라엘이 유목민이므로 장막이나 초막을 쳤을 것이다. 그리고 숙영지는 넓은 광야에 지파별로 혹은 가족별로 흩어져 지냈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식수와 짐승의 문제였는데, 이 문제도 르비딤과 가데스 바네아의 바위에서 물이 나게 하고(출17:1-7; 민20:2-3), 지하수를 팜으로(민21:16-18) 해결되었다. 하나님의 끝까지 보호하시는 은혜에 힘입어 이스라엘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시내 반도의 횡단에 성공하였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하심을 체험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쉽게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역함으로 어이없게도 38년이나 더 광야 유랑 생활을 하고, 전(前) 세대는 거의 죽고 말았다. 그들이 방황한 41곳의 지역은 현재 어느 곳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단지 성경의 기록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을 뿐이다(민33장). 시내 반도에서의 노정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지금도 계속 발굴중에 있다. 


  1. 광야 생활의 기간에 대한 연구 - 38년설
 이스라엘은 민14:26-35에 의하면 가데스바네아에서의 반역으로 40년 유랑 생활의 벌을 받는다. 하지만 40년 유랑 생활은 실제로 약 38년이라는 설이 있다. 유랑 생활을 38년으로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출애굽이 1월 15일에 있었고 3월 15일에 시내 산에 도착했다(출19:1). 그리고 출애굽 제2년 2월 1일에 인구 계수를 하고(민1:1-2), 2월 21일에 시내 산을 떠났다(민10:12). 따라서 시내 산 체류는 정확하게 11개월 6일 동안이다. 여기에다 시내 산까지의 2개월을 더하면 13개월 6일이 된다. 그러므로 햇수로는 2년이 되어 광야 유랑 기간을 약 38년으로 추산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확한 형벌의 시기는 38년 11개월 24일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시내 산까지의 기간도 불만과 불평의 시간이었음을 감안하여 광야 유랑 생활로 보아 도합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했다고 본다. 

 2. 시내 산과 호렙 산의 관계
 구약에서 시내 산과 호렙 산은 서로 혼용되어 사용되었다(출3;1;출17:6;신1,2,6). 시내산은 '수풀산'이라는 뜻이고, 호렙 산은 '건조한 산'이란 상반된 개념이다. 이 산은 시내 반도 최남단의 해발 2,219m에 달하는 높은 산으로서 '예벨 무사'(Jebel Musa-모세의 산)라고 여겨진다. 두 산의 관계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전체 산을 부를 때는 '호렙'이라고 부르지만, 특별히 정상을 가리킬 때만 '시내'라고 한다. 둘째, 산 정상 부분에 두 봉우리가 있는데 하나는 호렙이고 다른 하나는 시내이다. 셋째, 두 산은 같은 산인데 두 가지 이름으로 다 불린다. 이 세가지 견해 중에 어느 것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그런데 이 산을 '하나님의 산'으로 부르는 것은 이드로의 신전이나 고대의 유래에 의한 것이 아니고 모세의 소명과 율법을 받은 것 때문이다.

 3. 민수기 33장의 가데스 바네아 문제
 성경에 의하면 가데스 바네아에 두 번 도착한 것으로 되어 있다. 1차는 민14:35에 기록되었고, 2차는 광야 유랑 생활 중에 물을 얻기 위해 갔는데 이곳에서 모세의 누나인 여선지자 미리암이 죽었다(민20:1,2;민33:36). 이 시기는 아론이 죽기 조금 전의 일이며, 여기서부터 요단 동편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민수기 33장에는 가데스 바네아에 단 한번 도착한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민33:36). 이점에 대하여 카일(Keil)은 하세롯 다음의 '릿마'(민33:18)를 가데스 바네아로 본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릿마의 현재 위치로 추정되는 '와디 아부 레테맛'(Wadi Abu-Retemat)이 숙영지로는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이곳의 원래 이름은 '릿마'였으나, 200만이 넘는 인구가 숙영하다 보니 가데스 바네아까지 진영이 퍼졌고 또한 정탐꾼 사건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따라서 이후로는 릿마까지도 가데스 바네아에 포함되어 가데스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반면 랑게(Lange)는 민33:31의 '브레야아간'을 가데스로 보기도 한다.

 4. 물 기적과 메추라기 기적에 관한 관련자료
 1) 물 기적
 출17:1-7과 민20:2-13의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의 명령대로 바위를 쳤더니 많은 물이 나와서 갈증을 면했다고 한다. 이는 순전한 기적의 사건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근래에 이를 자연적인 사건으로 보기도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931년도의 「시내의 어제와 오늘」 (Yesterday and Today)이란 책의 pp. 174-175에서 육군 하사관 한 명이 우연히 삽으로 바위를 내리치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바위가 터지며 많은 물이 나왔다고 기록되었다. 이 사건은 시내 반도의 석회석 바위들 속에서 물이 고여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리하여 이를 근거로 모세가 반석에서 물을 낸 기적을 자연적인 기사로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세의 기사는 우연이 아니고 지정된 바위를 친 것이므로 초자연적 현상을 완전히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자연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그 자연을 백성을 위해 주신 사건, 즉 자연현상을 통해 초자연을 이루신 사건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메추라기 기적
 출16:3과 민11:31-35에 의하면 메추라기를 잡았다고 기록되었다. 메추라기는 가을철에 유럽에서 날아와 가을철의 새벽에 지중해의 시냇가에 앉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봄철의 저녁에 메추라기를 잡은 것으로 되어 있다(출16:13). 이 사건은 시내 반도의 행로가 남쪽임을 가르쳐 주는 좋은 자료가 된다. 왜냐하면 메추라기들은 봄철에는 수에즈 만과 아카바 만 북부 지협을 따라 유럽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행로가 남쪽으로 전개되었음을 알게 해준다. 역시 이 사건도 메추라기의 이동에 따른 자연현상으로 보려고 한다. 그러나 사방 하룻 길에 2규빗(약1m)이나 쌓인것은 결코 자연현상으로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