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애돔족속/옵1:2

제이비젼 2014. 6. 19. 10:29


  신앙인들은 영적인 일들을 너무 사소하게 취급한 나머지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당하는 일들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그 성서적인 예를 야곱의 쌍둥이 형인 에서를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귀한 장자권을 그의 아우에게 넘겨버렸다. 그의 이러한 순간적인 실수는 그의 평생만이 아니라 그의 후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는 장자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장자권을 그 아우 야곱에게 빼앗겼을 뿐 아니라, 자신의 후손인 에돔 족속은 역사 속에서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과 대치상태에 있었을 뿐 아니라 결국에 가서는 에돔 족속 전체가 하나님의 정죄 아래에 놓이게 되는 불운을 타게 된다. 그 이유는 에돔 족속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부패하였기 때문이었다. 영적인 것을 몰랐던 조상에게서 비롯된 그 후손들도 결국에는 영적인 것과 상관이 없는 존재들이 되고 만 것이다. 


 

  에돔 족속은 에서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미 시조부터 '유기'된 민족이었다(말1:2,3; 롬9:13).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은 에서가 항상 야곱과 비교되어 등장했듯이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과 비교됨과 동시에 대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들의 죄악은 형제 이스라엘을 멸시하였으며, 이스라엘의 대적의 편에 서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심판은 불가피한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엄한 심판을 선언하셨다. 그들은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역사에서 사라졌다. 


 1. 에돔 족속의 조상


 1)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창25:19-34;창27:1-46)

 아브라함의 손자, 이삭의 아들인 에서는 야곱과 함께 쌍둥이로 출생하였다. 그러나 야곱과 에서는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선택'과 '유기'의 작정 속에서(창25:23; 말1:2,3; 롬9:13) 나누어 놓으셨다. 그는 사냥꾼으로 아버지의 편애를 받으며 자랐다. 또한 야곱은 종용한 사람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는데 이는 태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예언해 주신 내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날 에서는 사냥으로 곤비하여 돌아와 동생 야곱에게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과 바꾸는 죄악을 범한다. 이는 장자권을 통한 하나님의 축복을 무시한 행위이다. 또한 이삭이 늙어 에서를 축복하고자 할 때 야곱과 어머니의 모의(謀議)로 말미암아 축복을 빼앗기고 오히려 완곡된 저주를 받았다. 따라서 에서는 '족장들의 언약 밖의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2) 에돔 족속의 시작(창28:6-9)

 그 후 이삭이 야곱으로 하여금 가나안 여인과 혼인하는 것을 막은 것과,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 하는 것을 알게 된 에서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면서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과 결혼을 하여 에돔 족속의 시조를 이룬다. 여기서 에돔은 어원적으로 '붉은 흙'을 의미하는 아돔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출발일 뿐이다. 이미 이스마엘은 약속의 씨인 이삭의 태어남과 동시에 언약밖으로 쫓겨남을 받은 족속이었다. 언약 밖에서 태어난 이스마엘을 통해서는 결코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에돔 족속의 미래는 하나님의 언약 밖에서 이루어지게 될 것이었다. 또한 오바댜서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하나님을 배교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2. 에돔 족속과 이스라엘


 1) 붉은 땅에 사는 에돔 족속

 에돔 족속은 세일 산을 근거지로 하여 정착하고 살았다. 이 세일 산은 독수리처럼 높은 산꼭대기에 위치한 철의 요새였다. 이들은 주로 무역에 종사하여 산에서 나는 철과 구리를 근처 아라비아, 시리아, 바빌로니아 등의 산물과 교환하였다. 또한 이들은 에돔 지역 안에 들어와 있던 대상(隊商)들의 통행료를 수익으로 삼았다. 아마도 이들은 히브리 방언을 사용하였던 것 같으며 다신론 사상 속에서 하나님 절대주의를 배척하고 멸시하였던 것 같다. 에돔 족속의 영토는 요새 에돔, 벽지(僻地), 서쪽의 후배지(後背地)로 이루어졌다. 특히 요새 에돔은 남북으로 약 12km, 동서로 약 24km의 넓은 지역으로 북쪽에는 세렛 시내가 있고, 남쪽에는 히스메 계곡이 있으며, 서쪽에는 아라바 시내가 있는 산맥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한 이 지역은 '에돔'이 말해 주듯이 붉은 흙과 바위가 풍부한 지역이기도 했다. 


 2) 이스라엘을 적대하는 에돔 족속


 에서와 야곱이 적대 관계이지만 항상 동반자로 등장하였듯이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과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은 항상 적대 관계 속에서 전쟁을 한 것을 구약사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망할 때 에돔은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고 더욱 자극하였던 것을 볼 때 그들의 관계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에돔 족속은 항상 하나님에 의해서 이스라엘을 치는 도구로 쓰였다(그러나 신23:8에서 만큼은 관대하게 등장한다). 사울이 에돔 족속을 멸하려 하였으며(삼상14:47) 다윗은 에돔을 정복하여 수비대를 배치하였다(삼하8:14). 그러나 다시 주전 847년 여호람 왕의 통치 시대에 에돔은 반란을 일으켜 독립하였다(왕하8:20-22). 주전 735년경 아람 왕 르신은 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유다 사람을 엘랏에게서 쫓아내기도 하였다(여기서 아람은 에돔을 잘못 표기한 것이다(왕하16:6;왕하20:2)).


 3. 에돔의 멸망(옵1:1-21)


 1) 에돔의 죄악

 오바댜서는 에돔의 죄악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 에돔의 죄악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형제 이스라엘에 대한 죄악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따라서 그들의 가장 큰 죄악은 형제 야곱(이스라엘)에게 행한 포악이었다(10절). 이방인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재물을 늑탈하며 예루살렘에 들어가 노략질할 때 그들은 그들을 구원하지 않고 오히려 대적하는 이방인의 한 사람과 같이 행하였다(11절). 그들은 형제 유다가 패망하는 날에 기뻐하였으며 고난의 날에 입을 크게 벌려 즐거워하였다(12절).


 2) 에돔의 멸망

 에돔 족속의 오만함은 형제 유다를 멸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바위 틈에 거하며 독수리처럼 높은 곳에 거하면서 그 누구도 자신들을 정죄하지 못할 것으로 여기며 기고만장하였다. 환경이 주는 평안함만 믿은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유다를 멸시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였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멸망뿐이었다.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심판은 상대적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으로 나타날 것이었다(17-21절). 야곱 족속은 불과 불꽃이 될 것이지만 에돔 족속은 초개가 될 뿐이었다(18절). 또한 구원자들이 오히려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돔을 심판 할 것이며(21절) 에돔은 여호와의 칼날에 멸망할 것이고 그들의 모든 소유와 땅과 생물까지도 여호와의 저주를 받을 것이었다(사34:5-17).


 '선택', '유기'는 물론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다.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은 끝까지 하나님께서 지키셔서 마지막날에 회복될 것이다. 그러나 유기된 백성, 인간 편에서 볼 때 패역한 백성은 결국 여호와의 칼에 멸절될 것이다. 우리는 에돔의 멸망에 대한 표현들을 보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백성의 삶을 책임있게 살아야 할 것이다. 

  

 


  1. 에돔 족속의 사회상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인처럼 본래 아람 태생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돔 족속이 가나안족(창26:34 여기서는 헷족이 가나안족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스마엘 사람들(창28:9). 세일의 원주민인 호리 족속(창36:20-30;신2:12에서의 언급과 모순된다)과 족외결혼을 하였다는 기록들을 볼 때 에돔 족속은 복합적 집단이었다. 

 에돔 족속이 어느 정도는 농업에도 종사하였으나 그들의 주요 재원은 무역에 있었다. 그들 영토 내의 산들에서 나오는 구리 및 철은 아라비아, 이집트, 시리아, 바빌로니아 등의 산물들과 교환될 수 있었다. 그리고 에돔 전역을 돌아다니던 대상들은 통행료를 지불하였을 뿐만 아니라 에돔 내에서 음식과 숙박을 해결하였다. 

 에돔 족속은 다른 모든 이웃 족속들처럼 히브리어 방언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언어가 어떤 상이성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하여 주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종교는 다신론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왕의 이름들로부터 추적해 낼 수 있는 신들 중에는 쿼스(또는 쿼산; 요세푸스는 코세라고 불렀음), 하다드 등이 있었는데 에돔이라는 신도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에돔 족속의 정부는 이스라엘이 군주제를 채택하기 훨씬 전부터 군주제이었으며, 현재까지 보존되어 온 왕명록(王名錄)으로 판단해 보건대 선거제였다(창36:31-39).


 2. 에돔(Edom)과 이스라엘


 성경은 에서와 그의 후손이 살고 있던 땅을 '세일 산'이라고 한다. 에서 자손의 영토는 남쪽으로 사해와 모압의 남쪽, 동쪽으로 와디 아라바, 북쪽으로 시나이 반도, 아카바 만 및 아라비아 사막까지였다. 

 에돔 지역은 주전 13세기부터 알려졌다. 이 땅은 본래 다른 유목민들의 땅이었는데 나중에 에돔인들이 들어온 듯하다. 성경의 기록과 고고학의 연구에 의하면 에돔 왕국은 후기 청동기 시대(주전 1600-1300년)와 초기 철기 시대 동안에 발전하여 강력한 체계의 통합 국가였다. 에돔 땅은 아카바 만으로부터 에돔의 북방 경계선까지 횡단하는 '왕의 대로'(king's highway)와 더불어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에돔은 이집트-아라비아-인도-북쪽 지역을 잇는 고대 상업 무역을 지배하여 큰 부귀를 누렸다. 

 에돔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초기에는 평화로웠으나 왕정 시대에는 원수지간으로 변하게 되었다. 다윗이 에돔을 정복한 이후 두 나라 사이에는 세일 지역의 지배권을 장악하기 위한 싸움이 계속된다. 여로보암 시대까지는 이스라엘이 우세하였다. 그 이후 에돔이 끊임없는 공격을 시도하여 결국 양 국가 모두 싸움으로 국력을 완전히 소모하므로 에돔이 사라지게 된 주요 요인이 되었다.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은 에돔, 모압, 갈대아 동맹군으로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첫 번 포로를 이송하였다. 그러나 에돔은 그 후 바벨론에 반항하기로 암몬, 모압, 두로, 시돈, 유다와 더불어 계획을 세웠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하였다. 이것 때문에 에돔이 멸망당하였다고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 후 구약의 외경인 아카비 즉 이두매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그때까지 남유다에 머물렀던 이두매인들은 마카비 반란이 일어나기 전에는 유대인들과 평화롭게 공존하였다.

 요세푸스와 마카비서는 요한 히르크누스가 이두매인들을 정복하여 유대의 할례를 받게 한 후 그들을 유대인화하였다고 기록한다. 유다 백성이 된 이두매인들은 로마 제국 시대에 유대인들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기도 하여, 안티파테르와 그의 가족이 유다를 다스렸다.

 주후 70년 열심당원들과 온건파 유대인들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 있었을 때 열심당원들은 이두매인들과 협력하였다. 그리고 요세푸스가 전하는 대로 하루 동안에 성전에서 8,500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등 유대 지도자들과 백성을 무참히 살해하기도 하였다. 이두매인들은 이 폭력을 후회하며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에돔은 구약에 걸쳐 '원수'의 상징어가 되었다. 



 3. 족장 축복의 상실


 에서가 아버지의 임종 축복을 받고자 별미를 가져왔을 때 그는 축복 대신에 저주를 받았다. 창27:39-40에 이삭이 에서를 위해 기도하기를 에서는 비옥한 팔레스틴 땅에서 분깃을 얻지 못하고, 칼을 의지하며 생활하고 그의 쌍둥이 동생을 섬겨야 한다고 예언했다. 이 속임수의 결과로 에서는 야곱을 증오하였다. 이를 안 그의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너무 사랑하였기에 외삼촌 라반의 집에 피하도록 하였다. 야곱이 에서와 정면 충돌을 피함으로 일단 위기는 모면하지만 형제가 늘 적대관계를 유지한다. 따라서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과 야곱의 족속 이스라엘 사이에는 늘 원만하지 못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주전 10-9세기 에돔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하나의 평행 요소를 이루고 있었던 때가 있다. 에돔 족속은 다윗에 의하여 정복되고 요람의 통치 때까지 유다에 예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