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삶·

권영구 목사가 분석한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 설교

제이비젼 2017. 9. 6. 22:05

사랑할 것들

권영구 목사가 분석한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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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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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교회라는 곳의 권영구목사가 김성수 목사설교 중 헌금과 관련한 부분을 분석한 내용입니다.  

헌금부분이라 매우 민감하죠. 저는 그닥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데 아마도 개혁주의 교회측에서는 심각한 문제인것 같습니다.

아무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서머나 교회 김성수 목사 설교를 권영구 목사가 분석 20130501 

오병이어교인은 이 설교 분석을 통해서 배우고, 잘못된 성경 해석을 하는 사람들의 설교나 성경공부를 조심해야 합니다. 요즈음 미혹의 영들이 많이 나타나 각 교회에서 열심히 충성하는 일꾼들을 유혹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외부적으로 차별금지법과 이단들의 활동과 침투, 그리고 이슬람종교의 설립과 포교 활동, 또 타종교들의 기독교 활동 제한과 핍박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잘못된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의 설교나 활동으로 타락한 기독교 모습과 변질된 교회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오병이어교회 성도들은 사단의 유혹에 조심해야 합니다.

오병이어교회의 ‘십자가의 길 양육시스템’과 성경공부는 한국교회에 검증된 것입니다.

1. 김성수 목사의 약력 <인터넷에 있는 글 정리>

가수 출신 목사 김성수(가수 예명 김정우)가 별세했다.

김성수는 3월 6일 오전 10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50세.

고(故) 김성수는 서울대학교 재학 중이던 1988년, 제2회 KBS 대학가요축제에 참가해 '비 오던 날'로 대상을 받아 가요계에 입성했다.

고(故) 김성수는,

1991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작별',

1994년 '너를 위한 사라방드',

1997년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이 끝나던 날' 등의 곡으로 가수로서 활약했다.

1997년부터 예명 김정우로 2000년까지 가수 활동을 하다가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공부를 마친 뒤,

2004년 캘리포니아 서머나 교회를 설립했다.

2012년 4월 1일 서울 서머나 교회를 설립했다.

2013년 3월 6일 50세에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저서: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기복주의, 신비주의, 물질주의, 실용주의 비판

처음에는 박영선 목사에게 같이 있으면서, 성령으로 구원을 받았으면 말씀을 지켜서 구원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하는, 그런 박영선 목사의 개혁주의 신학의 노선에 매료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 가서 박영선 목사의 스타일대로 했는데, 즉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믿고, 그 다음부터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을 주신 것은 성령의 은혜로 주신 것이니, 그러니 말씀을 잘 지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그런 개혁주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미국에서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설에는 이근호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있기는 한데, 그것은 본인의 입으로 확인된 바가 없으니 모르겠고, 아무튼 언제부터인가 박영선 목사를 따르지 않고, 개혁주의를 비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 김성수 목사의 헌금설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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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주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의 헌금 설교를 녹취한 것임>

<홈피: 남가주 서머나교회-강해말씀- 헌금. 선교. 기도- 헌금-마가복음12:41-44. 2010년8월13일>

<본 문>

(막 12:41-44)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오늘 헌금에 대한 그런 설교를 할 겁니다. 헌금.

당신만 혼자 그런 다른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하냐. 근데 이번 주에 또 설교제목을 제가 정하고 보니까 헌금이에요 이건 또 더 큰일났어요. 이거 어떡해.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차에 어저께 하나님께서 이 말씀에 대해 컨폼(conform)을 해주셨어요.

제가 어제 꿈을 꿨어요. 또 이 꿈 얘기 듣고 또 우리 목사는 그 꿈속에서 계시받나보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제 생각이에요 그냥. 꿈만 꾼 거예요. 제가 평소에는 꿈 꿀 겨를이 없어요. 한 서너 시간 자닌까 꿈 꿀 새가 없어요.

꿈속에서 제가 이 예배당을 배큠하고 있었어요. 진공청소기를 가지고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는데 이 예배당 안이 성도들로 꽉 찼더라고요 꽉 찼어요. 꿈속에서도 그냥 기분이 좋더라고요. 배큠을 막 하고 다 끝낸 다음에 그리고서 더스트 백을 딱 열었어요 제가. 근데 그 안에 상상도 할 수도 없는 먼지가 꽉 차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 먼지와 함께 돈이 십전짜리부터 시작해가지고 뭐 지폐까지 그냥 꽉 차 있더라고요. 한꺼번에 같이. (아이) 기분 좋더라구요. 꿈이여, 깨지 말아라. 한 4시 즘에 잠을 딱 깼는데 그 꿈이 너무 선명해가지구요.

제 그 꿈을 생각하면서 아, 하나님께서 다소 제가 오해를 받고 과격하다 할지라도 그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구습이나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전통, 그리고 그 신앙의 낡은 신앙의 찌꺼기같은 것들은 니가 좀 털어내다고 그리고 예배당 안에 앉아가지고 자기의 욕심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을 동원해서 얻어내겠다고 하는 그러한 욕망과 욕심과 허왕된 비전 같은 것 좀 다 털어내다오.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더라고요 저한테. 그래서 제가 “예스” 라고 대답을 하고 제가 굳게 마음먹고 그리고 이 강대상에 섰습니다.

여러분, 헌금, 헌금에 대한 설교는 상당히 민감한 설교이기 때문에 자주 할 수 없는 거에요. 하지만 그 헌금의 진위가 무엇인지 알면 매주 해도 괜찮아요.

제가 이 이야기를 이 구절을 그 선택하면서 여러분들에게 혹시 그런 오해를 받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인제 4주 됐는데 저 목사가 이제 우리에게 헌금을 강요하기 시작하는구나 혹시 그러실까봐 그런 분들은 걱정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 반대의 이야기를 아마 오늘 하게 될 겁니다.

예수님이 헌금함 맞은편에 앉으셔서 누가 어떻게 헌금하는지를 지켜보고 계셨어요. 누가 어떻게 헌금하는지를 지켜보고 계시는데 여러 부자들이 헌금을 많이 넣고 가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런데 한 과부가 왔습니다. 과부가 와서 두렙 돈 한 고드란트를 헌금함에 넣었다고요. 척 보셔서 아신 것입니다. 이 여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전 재산을 헌금함에 넣었구나 라는 것을 아셨다구요. 그래놓고 그 여자를 칭찬하신다 말이죠.

그러면 우리가 이 본문을 가지고 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 앞에 바치니까 하나님이 칭찬하시는구나 그쪽으로 접근하시면 안 되는 거에요.

분명히 예수님이 여인이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를 갖고 와서 그 헌금함에 넣는 것을 칭찬을 하셨지만 그 칭찬의 의미는 다른 곳에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 과부는 분명 자기의 전 소유를 넣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는 그 사랑의 예수님은 잠깐 니 마음은 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려는 니 마음은 안다. 그렇지만 너두 먹구 살아야 되지 않겠니. 반은 넣고 반은 가지고 가서 니 식구들과 함께 빵을 사서 요기를 하던지 그렇게 유용하게 쓰거라 해야 우리가 아는 예수님 아닙니까? 그런데 다 넣는 것 그대로 놔두시고 다 넣은 그것을 칭찬하신단 말이에요.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우리가 잘 진의를 캐보잔 말씀이에요.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이 이야기를 마가복음 요 부분에다 끼어 놓으신 이유는 너희들이 받은 거 다 바쳐라, 그래야 내가 칭찬한다, 거기에 관심을 두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그 교회의 본질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것을 힌트하고 계신 것이에요.

하나님의 백성 그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있는 이 교회의 본질, 여러분 하나님은 그 천국의 모형으로 이 땅에 교회를 주신 거거든요.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초대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살으심으로 인해서 생긴 그 초대 교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사람이 있었죠.

그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전 재산을 다 팔아서 교회에다 갖다가 바쳤습니다. 그리고 조금 자기들을 위해서 감추어두었다고요. 그게 뭐가 큰 그렇게 잘못이에요. 근데 죽여버린다구요.

교회 안에서 그 의미는 너 하나님께 다 갖다 바치지 않고 조금 감추면 니네 큰일난다, 이 얘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 그 천국의 모형 천국은 요만큼의 죄 누룩도 허용되지 않는 곳 이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그 천국의 모형인 교회에 그런 작은 죄가 들어 올 때에 죽여 버리는 거에요. 그러므로 해서 천국은 어떤 곳인가에 대한 것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시는 거라구요. 그런 교회 그러한 교회의 본질 하나님의 백성들의 본질 그 본질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시는 거란 말이죠.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행 5:1-5)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김성수 목사의 해석>

천국은 죄가 요만큼만 있어도 안 된다.-

<일반적 해석>

천국에 죄가 있으면 못 들어간다는 말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나니아 삽비라 사건을 그렇게 풀며 안 된다.

성경을 해석할 때 그 시대의 역사적인 것과 저자의 의도와 문장의 의미와 문자의 뜻과 영적인 뜻을 분별하고 해석을 해야 정확한 뜻을 알게 된다.

위의 해석은 천국에다 포인트를 맞추고 해석하다 보니 과도한 해석 및 억지 해석이 나온 것이다.

김성수 목사는 성경의 모든 이야기를 천국에 맞추어 풀어버린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해석1

구약에서 서원한 것은 반드시 갚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하고 지키지 않았습니다. 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속인 것이 된 것입니다. 믿음 없는 행동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책망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영이 몸에서 떠나 죽어버렸습니다.

(민 30: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

해석2

하나님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 속에 마귀가 들어간 것입니다. 그 죄 값은 큽니다. 잘못하면 아나니아처럼 죽을 수도 있습니다.

<참고 성구>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그래서 베드로가 사탄이 들었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속이거나 하나님의 종을 속이면 그 속에 사탄이 들어간 것입니다.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행 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그 참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우리가 한 번 살펴보면 오늘의 이 구절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단 말이죠. 사도행전 4장 32절로 갑니다.

(행 4:32-35)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니껏 내껏 없이 전 재산을 다 내려놓고 서로 통용하더라는 거에요. 다 갔다가 바치니까 제자들이 분배해서 나눠주더라는 것이죠. 그런데 실제로 이 초대교회 말고 그러한 가난한 곳이 없고 핍절한 곳이 없는 나라가 있었나요? 없었어요. 그러한 나라는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그것이 성경에 나와있어요.

초대교회 성도들이 서로 통용하였어도 가난한 사람은 가난합니다. 원래 가난한데 누가 조금 도와주어서 먹을 것을 잠시 해결했다고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즉 영세민에게 누가 땅을 팔아서 먹을 것을 분배하여 주었다고 영세민이 부유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위에서 말한 설교도 잘못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별없는 사람들은 그냥 믿어버리겠죠. 김목사는 오류를 많이 범하고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설교준비를 원고를 써서 철저하게 한다면 이런 오류는 사전에 걸러지겠지만, 그리하지 않고 강단에 서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설교를 하다 보니 이러한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뒷부분에도 계속 같은 실수를 범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말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공산주의가 칼 막스나 레닌이 성경에서 힌트를 많이 얻어다가 공산주의 이론을 적립한거에요. 그런데 공산주의는 모든 사람을 다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했다구요. 공정한 생산 공평한 분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는 거에요. 공산주의는 오히려 모두를 가난하게 만들어 버렸다구요.

우리 인간들이 모인 곳에서는 그러한 이상향이 세워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조건이 가난하고 핍절한 사람이 없는 그런 곳을 세울 수 있는가 그것이 성경 신명기 15장 4절에 나와 있습니다.

 

(신 15:4-5) “[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해석1. 김성수목사

그죠?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는 그 나라는 네게 유업으로 주는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은 그 땅이다. 여기가 어디에요? 천국이란 말이에요.

천국에서는 가난한 사람도 없고 모든 사람이 다 서로 것을 통용하며 서로 사랑해 주고 격려해 주고 상대방을 먼저 걱정해 주는 그런 곳이란 말이에요.

해석2. 김성수목사

초대교회 그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것을 다 내려놓고 핍절한 곳 없이 서로 통용하면서 그렇게 기쁘게 살아가더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 초대교회 안에는 누군가가 그것을 지켜낸 사람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누구에요 그게 예수 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살으심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그 교회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땅에서의 천국을 이루고 있더라는 거에요.

<일반적 해석>

해석1.

하나님은 한나와 사무엘을 귀족과 함께 앉게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가나안 땅을 주셔서 분배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통치하에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이 땅에서 가난하게 살기를 원하실까요?

아닙니다.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은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창조하신 후에 아담과 하와를 만들어 주었고 지배하게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그 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땅에서의 복과 하늘의 상급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약속된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화를 당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속에 있는 특정한 사람들은 평생 가난하게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받지 못하는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은 아닙니다. 땅에서도 복을 받고 하늘에서도 상급을 받습니다.

한나가 감사 기도한 내용입니다.

(삼상 2:7-8)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해석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지켜 가나안 땅을 주어 잘살게 하셨습니다.

(출 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레 20:24) "내가 전에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 내가 그 땅 곧 젖과 이 흐르는 땅을 너희에게 주어 유업을 삼게 하리라 하였노라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민 13:23)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따니라”

(민 13: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신 31:20)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이 모두 거짓말인가요?

아닙니다. 모두 진실입니다.

해석3.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어 형통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시 128:1-4)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땅에서도 복을 받게 하시고 하늘에서도 상을 받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 언약을 믿고 행하여 복을 받았습니다. 다윗도 이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죠?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는 그 나라는 네게 유업으로 주는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은 그 땅이다. 여기가 어디에요? 천국이란 말이에요.

천국에서는 가난한 사람도 없고 모든 사람이 다 서로 것을 통용하며 서로 사랑해 주고 격려해 주고 상대방을 먼저 걱정해 주는 그런 곳이란 말이에요.

천국에서는 서로 통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처럼 사람에게 필요한 것과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까지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으로 완벽합니다. 위의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천국에 다녀온 분들의 간증서를 읽어보십시오. 참고로 신성종 목사의 ‘내가 본 천국과 지옥’을 읽어보십시오.

그런 곳 그러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는데 뭐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다 지켜 행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다 지켜 행하면 그러한 것이 이루어지는데 신약의 어떤 한 모퉁이에 그러한 공동체가 생겨 버리는 거에요.

초대교회 그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것을 다 내려놓고 핍절한 곳 없이 서로 통용하면서 그렇게 기쁘게 살아가더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 초대교회 안에는 누군가가 그것을 지켜낸 사람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누구에요 그게 예수 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살으심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그 교회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땅에서의 천국을 이루고 있더라는 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교회의 일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지금 다 내놓고 살아야 되나요?

다 갔다 팔아야 되나요?

그러면 이 이야기는 도대체 우리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주시고자하는 이야기일까요. 고고를 인제 찾아보잔 말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헌금에 대해서 명확히 이제 확인하고 돌아가셔야 되는 거에요. 그래야지 내면서도 아깝지 않고 내면서도 시험받지 않고 그렇게 낼 수 있는 거에요. 안내도 되구요. 괜찮아요. 자 성경은 이렇게 파면 팔수록 진의가 드러나는데 참 얼마나 그 비밀이 크고 아름다운지 몰라요.

이것들 우리가 고사성어로 점입가경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에요. 내가 이 성경 풀때 이 고사성어를 많이 쓰잖아요.

이 고사성어를 많이 쓰게 되는 배경이 있어요.

제가 신혼부부 때 부부싸움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신혼부부 때 이 자리에 계신 남성분들에게 감히 내가 충고하건데 절 때 남자가 여자가 싸울 때 여자한테 이길 생각하지 마세요. 여자는 뼈로 만들고 남자는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부딪히면 언제든지 남자가 깨져요. 그거 못이기닌까 그냥 어떻게 한 번 해볼라고 말이죠.

저도 한 번 해볼라고 했는데 맨날 구석에 제가 궁지에 몰리는 건 저에요. 늘 제가 잘못했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또 제가 누구 입니까? JQ가 아주 발단한 사람 아니에요? IQ 지능지수 JQ 잔머리지수 저희 집사람이 1.5세대에요.

그래가지고 처음에 결혼해서 한국에 왔는데 한국말이 좀 서툴렀어요. 그래서 부부 싸움을 막 할 때 제가 이제 궁지에 몰리게 되면은 질 수 없잖아요. 그래서 거기에 대놓고 딱 제가 뽑아든 칼이 고사성어 쓰는 거예요. 아니 세옹지마면 오리무중이냐 막 이러면서. 그러면 저희 집사람이 갑자기 막 화가 나는데도 이게 무슨 얘기일까 그러다가 그냥 서로 화가 사그러지고 그랬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느날 저희 집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한 십년 당하더니 저에게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러더라구요. 드디어 고사성어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제가 그냥 조용히 죽어지내고 있습니다.

 

성경은 파면 팔수록 점입가경이에요. 너무나 그 안에 감추인 비밀들이 그 비밀이 크고 아름답고 심오하다구요.

 

그 헌금의 진의가 뭔지 파보자는 거예요.

구약 시대에는 성전에 제사를 지내러 갈 때 제물을 갖고 갔어요. 그래서 제사장이 각을 뜨고 그 머리에 죄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제물에다 손을 얹고 이 죄인에 있는 죄를 이 제물에다가 전가시켜서 이 제물을 태워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 죄인의 죄를 없애주는 것 그것이 제사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가 제사를 지냈단 말이죠.

그런데 히브리서에서 분명히 나와 있듯이 어찌 그 제물을 태운다고 그것이 죄가 사해지겠느냐.

히브리서에 이런 말씀은 없습니다.

그 제물이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죄를 다 뒤집어쓰고 다 품에 않고 태워져버리는 십자가에서 태워져버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그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거라는 거예요.

그러면 이 제물은 무엇을 상징하는 거였어요?

오실 예수 그리스도 그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거예요. 죄 사함을 받은 거라구요.

이것은 맞는 말씀입니다.

근거: (엡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히 9: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요일 2: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제물은 자신을 상징합니다.

제물에 안수하여 드리는 것은 자신 대신에 제물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예배를 드릴 때 자신을 산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러면 지금 우리가 예배 때 드리는 헌금은 뭐에요. 이 예물은 뭐에요.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구요.

틀린 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어주시고 화목제물이 되어주신 것은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소제와 번제물도 있고,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 드리는 화목제물도 있고, 속죄하기 위해서 드리는 속죄제와 속건제도 있습니다. 영적으로 제물이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보는 견해도 맞습니다. 하지만 제물은 헌금, 즉 헌금은 예수님, 이렇게 보는 해석은 아닙니다.

구약의 제사 제물은 첫째로 성도 자신을 상징합니다. 둘째로 신약으로 들어와서 영적으로 속죄제물의 의미로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헌금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입니다. 또 헌금을 드리는 것은 예수님을 드리는 것이라는 해석도 지나친 해석입니다.

예를 들어 5대 제사와 십일조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십일조는 대표적인 헌금입니다.

십일조는 5대 제사의 제물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생계비로 하나님이 작정하여 드리게 한 헌금입니다. 뒷부분의 말씀에 김성수 목사도 그렇게 설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헌금이 예수님이라고 억지로 풀고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조심해야 합니다. 앞뒤가 맞는 않는 해석입니다.

다음 말씀을 읽고 참고해야 합니다.

(벧후 3:16-17)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구약의 5대 제사를 알아야 합니다>

1. 번제(레1:1-17)

번제는 위로 드려지는 제사를 뜻한다. 번제의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다. 번제물은 흠 없는 수컷으로(레 1:3)드리는데, 짐승의 피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불살라 드린다.

2. 소제란 소제는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여 드리는 감사 제사이다.

번제가 목축을 하는 사람이 드리는 제사라면, 소제는 농사를 짓는 사람이 밭에서 추수한 곡식을 드리는 제사다.

소제는 번제와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드리는 제사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소나 양의 가격보다 상대적으로 곡식의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3. 화목제

“화목”은 ‘더 강한 기쁨, 행복, 번영’이라는 뜻이 있다. 화목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감사제’라고도 부르고, 서원의 뜻이 있어 ‘서원제’라고도 하며,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시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므로 ‘자원제’, 혹은 ‘낙헌제’라고도 한다.

화목제는 번제와 마찬가지로 소나 양이나 염소로 드릴 수 있으나 비둘기는 안 된다.

4. 속죄제

번제나 소제, 화목제는 모두 자원하는 제사이고, 속죄제와 속건제는 의무 제사이다.

속죄제는 ‘빗나가다, 죄짓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죄’라는 뜻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므로 속죄제는 하나님의 율법에서 빗나간 죄에 대하여 용서함 받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이다.

5. 속건제

인간이나 성물에 범한 죄를 속함 받는 것이다.

구약의 속죄제사는 1년 된 흠 없는 어린양을 드려야 합니다. 그 사람의 죄 때문에 어린양을 죽이고 제단에 각을 떠서 올리고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다른 제사는 죄 값을 전가시키지 않습니다.

<십일조 헌금>

(레 27:30)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우리는 2000년전 전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품에 앉고 죽고 다시 사심으로해서 새 생명을 얻은 자들이라구요.

그것이 감사해서 그것이 도대체 감격스럽고 어쩔줄 모르게 내 안에서 충만히 흘러 넘쳐 나오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 껍니다 라고 하나님 앞에 그 예수 그리스도를 드리는 것이 바로 헌금이라구요.

내 안에 와 계신 그 예수 그리스도 그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구요. 구약 시대에 내가 끌고왔던 재물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거였다면 그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다면 지금 신약에서 우리가 갖고 오는 그 헌금 예물은 나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감격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와서 주님 앞에 드리는 거예요.

그 예수 그리스도를 드리는 것 그것이 헌금이란 말이죠.

우리의 모든 것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다윗도 그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 중에서 일부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헌금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은혜에 따라서 일부를 드리기도 하고, 전부를 드리기도 하고, 십일조를 드리기도 하고, 건축헌금을 드리기도 하고, 선교헌금을 드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고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드리는 것이 헌금이라는 해석은 지나친 해석입니다.

그러면 내가 예수 안에 있고 예수가 내 안에 있다라고 성경이 이야기 하잔아요.

그것이 유니온 크라이스트(Union Christ)라구요. 그리스도와의 연합 우리는 그것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닙니까.

위의 글은 맞는 말입니다

내 안에 예수가 있고 예수 안에 내가 있다면 지금 내가 예수를 드리는 행위는 나를 다 드리는 행위란 말이에요.

 

밑줄 친 부분은 나와 예수님은 하나라는 말씀인데 그렇게 받아들이기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요14장>에서 하신 말씀을 생각하고 한 말씀 같은데 예수님과 하나님 사람과 예수님 이렇게 같은 뜻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같은 뜻으로 해석해도 됩니다.

(요 14:8-12)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지만 사람과 예수님이 하나가 된다는 뜻은 다른 의미입니다.

아마도 갈라디아서를 생각하면서 하신 말씀 같은데 헌금의 의미나 나를 드리는 것이 예수님을 드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자신의 죄 값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그때 바울도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알고 있는 바울은 자신은 죽고 예수님이 내안에 들어와서 왕이요 주인이요 메시야로 사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사는 의미는 자신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버리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자신의 자아를 죽이고 고생을 하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 것은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그 은혜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 액수가 문제가 아니란 말이에요. 5불이던지 50불이던지 500불이던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정작 관심을 두어야 할 것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이 헌금이 내 믿음을 내 신앙을 근거로 드려진 것이냐 아니면 내가 하나님의 일을 좀 돕겠다고 뻐길라고 폼 한 번 잡겠다고 내는 것이냐 이거를 먼져 확인하셔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직 여러분이 마음 속에 신앙이 구원의 확신이 없으신 분들은 헌금 못해요.

여러분들 그렇게 헌금하실 분들이 아니에요. 아직 여러분들 헌금할 단계가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은 아직 헌금하지 마세요. 여러분들 안에 그 예수 그리스도가 확연히 각인되어져 있는 확인되어진 분들은 내 신앙을 고백하는 거예요.

하나님 하나님이 나를 살리셨고 나는 이 땅에 눈 두고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는 이 땅에 사람들이 목숨 두고 살고 있는 이 제물 이것을 하나님 앞에 겁 없이 바치면서 하나님 나의 신앙고백을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 껍니다.

내 생명까지 하나님껍니다 라는 고백이 헌금이란 말이에요.

위의 글은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이 대목에서 이 과부를 칭찬한 것은 너는 그 비밀을 알고 있구나 하나님 앞에 니가 가진 것을 다 바치면 바로 다음 끼가 걱정이 되는 그러한 과분데 근데도 불구하고 니가 다음 끼니를 걱정하지 아니하고 내 앞에 이걸 다 갔다 바칠 수 있다라는 것, 니 전부 니 소유를 다 갔다 바칠 수 있다라는 것은 너는 이땅의 것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고 눈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 자구나 그러면서 칭찬해 주시는 거예요.

다 갔다 바쳤기 때문에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험을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가 우리의 관건이라구요.

<김성수 목사 해석>

해석1.

천국의 비밀을 알고 있구나. 그래서 다 갔다 바쳤다. 그래서 칭찬했다.

<예수님의 해석>

해석1.

가난한 과부는 가진 것 전부를 드렸다고 예수님이 해석하여 주셨습니다.

(막 12:41-44)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일반적 해석>

해석1.

빈손으로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기 때문이다.

(출 23: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신 16: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해석2.

가난하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전부를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드렸다.

(잠 3: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과부가 하늘의 비밀을 알고 드렸다는 것은 지나친 해석입니다.

글에는 문맥이 있습니다. 말도 전체를 들어보아야 합니다. 어렵게 사는 과부는 가장 적은 화폐단위를 드렸습니다.

(막 12: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그 시대 로마 화폐 단위로 두 렙돈은 한 고란트이고 한 고란트는 1/4 앗사리온입니다.

한 앗사리온은 참새 두 마리 값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두 렙돈은 참새 반 마리 값입니다. 과부가 참새 반 마리 값을 하늘의 비밀을 알고 드렸을까요?

또 한 앗사리온은 1/16데나리온인데 한 데나리온은 그 시대 노동자 하루 품삯이었다고 합니다.

하루 노동자 임금 ÷ 16 ÷ 4 = 한 고란트 = 두 렙돈

다시 말하면 하루 노동자 임금의 1/64이 한 고란트란입니다.

가난한 나라는 하루 노동자의 임금이 매우 적습니다.

김성수 목사는 성경을 깊게 연구하지 않고 설교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실수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김성수 목사 해석>

“하나님 앞에 니가 가진 것을 다 바치면 바로 다음 끼가 걱정이 되는 그러한 과분데 근데도 불구하고 니가 다음 끼니를 걱정하지 아니하고 내 앞에 이걸 다 갔다 바칠 수 있다라는 것, 니 전부 니 소유를 다 갔다 바칠 수 있다라는 것은 너는 이땅의 것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고 눈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 자구나 그러면서 칭찬해 주시는 거예요.

다 갔다 바쳤기 때문에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험?)을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가 우리의 관건이라구요.”

두 렙돈의 가치가 과연 위의 말씀에 해당되는 말씀일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 (모험?)을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 란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두 렙돈의 가치를 볼 때 전부가 합당하지 않은 해석입니다.

절기를 지키는 것도 똑같은 이야기라구요. 유월절에 뭘 먹으라고 그럽니까?

무교병을 먹으라고 그런다구요. 무교병은 자기가 추수한 소산이 있어야지 곡식이 있어야지 만드는 거 아니에요 무교병은. 그러닌까 유월절에 무교병을 먹으라고 하는 것은 너희는 반드시 저 가나안 땅에 가서 농사 짖고 그 땅을 다 뺏어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너희들은 내가 들여 보낼것이다 라는 언약이고 약속이라구요.

그러면 그 유월절에서 칠칠은 사십 구 해서 사십 구일 다음에 오는 날이 언제에요. 칠칠절. 거기가 오순절이라 한다구요. 50번째 되는 날이닌까. 그리고나서 거기서부터 추수를 감사하는 수장절, 초막절 거기를 갖다가 우리가 장막절 이라고도 하지요 여기에서는 뭐하는 거에요?

우리에게 온 곡식, 우리에게 거두어진 열매 이거 다 창고에다 갔다 놓고 초막에서 지내게 한다구요 일주일 동안. 뭐에요 그거? 너희들이 얻은 거 그거 니들 힘으로 온거 아니다. 초막에서 살면서 너희들이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어떻게 끌려 나왔는지를 생각해라 너희들이 광야에서 초막치고 살던거 그거 기억해라 전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하시지 않았냐? 그거 알게 해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소산을 열매를 그 추수한 곡식을 쌓아 논 곳에서 자지 못하게 하는 것은 거기에 눈 두지 말아라는 거예요. 이렇게 절기 하나에도 이런 복음이 숨어 있다구요.

우리의 것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니 하나님 다 당신 겁니다. 나는 거기에 눈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신앙 고백이 바로 헌금이란 말이에요. 절기나 헌금이나 다 똑같은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헌금하는 액수라든지 헌금을 얼마만큼 우리가 자주하는지 그것 거기에 우리가 눈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 확인이 되지요.

고후9:5-7까지 한 번 보자구요. 여기에서 말하는 그러면 이

이야기는 뭔가 우리가 아주 오해하기 쉬운 이 구절은 뭔가 풀어보자구요.

(고후 9:5-7) “[5]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

아이 이거 이 말이 걸리죠. 적게 심으면 하나님이 적게 나에게 배당금을 주시고 많이 심으면 많이 배당금을 주신다. 글로 접근하면 여러분들이 성경을 잘못보고 계시는 거예요.

그러면 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냐 적게 심고 적게 거둔다는 것은 내가 이 헌금을 내므로 해서 하나님 당신은 나에게 이거에 10배 100배의 축복을 허락해 주어야 합니다. 라는 것을 적게 심는다 라고 하는 게예요.

많이 심고 많이 거둔다는 것은 뭐에요? 우리가 앞에 설명한 것처럼 내 신앙을 내 믿음을 근거로 해서 내가 주님께 헌금 드립니다. 그러닌까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 것입니다. 나는 이 땅의 것에 눈 두고 살고 있지 않습니다. 라고 그렇게 심은 것을 많이 심는다라고 그래요.

그들이 거둘 수 있는 것이 뭡니까?

천국의 풍성함 새 하늘과 새 땅 그 땅이 그의 것이 될거란 말이에요.

그러난까 우리가 많이 심는다라고 하는 것은 헌금을 많이 낸다는 것이 아니라 내 확실한 신앙고백으로 드리면 저 천국의 풍성함이 내 것이 될 것이다 라는 것이 많이 심으로 많이 거두게 된다라는 뜻이에요.

그러면 가난한 사람은 천국 못 가게요. 부자들만 가 있는 곳이 천국입니까?

이런 걸로 사기쳐가지고 말이죠. 헌금 강요하고 뜯어먹는 인간들이 있더라닌까요. 다갔다 바쳐라 말이죠. 지들은 막 크고 화려한 집에서 살고 좋은 차 타고 다니면서 그 사람들 다 담요 만들게 만들고 그랬던 작자들이 있잔아요.

 

김성수 목사 해석 1

“적게 심고 적게 거둔다는 것은 내가 이 헌금을 내므로 해서 하나님 당신은 나에게 이거에 10배 100배의 축복을 허락해 주어야 합니다. 라는 것을 적게 심는다 라고 하는 게예요.

많이 심고 많이 거둔다는 것은 뭐에요? 우리가 앞에 설명한 것처럼 내 신앙을 내 믿음을 근거로 해서 내가 주님께 헌금 드립니다. 그러닌까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 것입니다. 나는 이 땅의 것에 눈 두고 살고 있지 않습니다. 라고 그렇게 심은 것을 많이 심는다라고 그래요.”

일반적 해석1.

(고후 9:5-7) “[5]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5절에 연보를 준비하라고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7절에 마음에 정한 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6절은 당연히 헌금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것이 상식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믿음에 따라 가난해도 많이 드리는 사람이 있고, 부유해도 적게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연보를 준비하는데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고 즐겨 내는 신앙으로 드려라,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그렇다면 형편에 따라 하나님께 많이 심는 자가 되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많은 은혜와 복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김성수목사 설교>

그러면 가난한 사람은 천국 못 가게요. 부자들만 가 있는 곳이 천국입니까?

이런 걸로 사기쳐가지고 말이죠. 헌금 강요하고 뜯어먹는 인간들이 있더라닌까요. 다갔다 바쳐라 말이죠. 지들은 막 크고 화려한 집에서 살고 좋은 차 타고 다니면서 그 사람들 다 담요 만들게 만들고 그랬던 작자들이 있잔아요.

<문제의 말들>

어떤 목사도 가난한 사람들이 천국에 못 간다고 설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자들만 간다고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틀린 말입니다.

이런 말은 자극적인 말로써 사람들의 호기심을 일으키고 집중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자기만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스타킹 사신고 담요 사서 덮고 그랬지 않았어요.

우리가 신앙을 근거로 해서 헌금하지 않으면 여러분들 내면서도 시험 받아요. 괜찮아요, 헌금 안 해도 괜찮다닌까요.

여러분.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신앙이 나에게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필요한 분이 아니라니깐요. 내가 이마만큼 도왔으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그래도 이마만큼 확장됐지.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러세요.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이렇게 돈 많이 내서 건축했는데 당신이 나를 어떻게 괄세할 수 있느냐. 더 과격한 욕이 나올 뻔 했네요 갑자기. 그런 엉터리가 어디 있어요.

여러분. 오병이어의 기적을 자기의 가진 것을 조그만 것이라도 내면 하나님이 그걸 들어서 크게 쓰실 것이다 일루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는데 1000 데나리온은 돼야 되는 것이 아니에요. 쪼끔만 요기를 해도 200 데나리온이 필요합니다 했으닌까.

배불리 먹으려면 1000 데나리온은 필요한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전혀 하잘 것 없는 전혀 하잘것없는 쓸모없는 것이라는 것을 대비시켜 주기 위해서 오병이어를 등장시킨 거라구요. 소품으로 쓰신 거라구요.

우리가 낸 것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고 그것을 크게 풍성하게 해가지고 하나님 나라 확장하는데 쓰시겠다 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거예요. 우리가 내는 헌금은 이걸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걸로 선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니깐요.

그걸로 선교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 우리가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아닌데 우리의 것을 받아서 하나님이 우리를 가르치기 위함이라구요. 어떻게요? 그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그 기적을 보면서 가장 감동을 받은 사람이 누구겠어요.

그걸 내놓은 어린 아이에요.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어린 아이가 없어요. 제자들이 우리가 가진 것이 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고 얘기 하거든요.

그 제자들이라구요. 다른 사람들은 받아먹으면서도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 어린 아이와 그것을 받아서 갔다가 전한 제자들은 안다구요.

보리떡 다섯 개와 분명히 물고기 두 마리 였어요. 조금 전에는 내 주머니에 들어 있던 하잘 것 없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가더라는 거예요.

그 풍성함이 보여 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자기가 헌금을 내어본 사람은 그것을 감동하는 거예요.

내가 도대체 낸 이 헌금이 뭐길레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져 가고 있는가 라고 하면서 그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배워가는 게예요.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서 하늘의 그 비밀을 가르치기 위해서 헌금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지 하나님이 돈이 필요해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헌금을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기에서는 헌금을 하라고 하네요.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서 또 하늘의 비밀을 가르치기 위해서 헌금하라고 하시는 것이라고 하네요.

앞에서는 하지 말라고 하고 뒤에서는 하라고 하고 횡설수설하네요.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그러면 십일조는 뭐예요?

십일조의 원래의 뜻은 뭡니까?

십일조의 원래의 뜻 그 십일조는 어떤 때 드렸어요. 구약에서 레위인들에게 레위인들에게 레위인들의 생활비를 댄 거예요.

나머지 열한 지파가 이 레위인들은 뭐에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올 때 그 유월절에 장자들이 다 죽어야 할 그곳에서 어린 양의 피가 문설주와 인방에 발려진 장자들은 다 살아났잖아요.

그걸 들어서 하나님께서 너희들 장자는 다 내꺼다 그런다구요. 그러면 이스라엘의 장자들이 전부 다 성전에 가서 일을 하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살아요.

그러닌까 이 사람들이 레위지파 한 지파만 그 일을 하는 거예요. 하고 나머지 열한 지파가 그들을 먹여 살리자 이렇게 된 거란 말이죠. <틀린 말입니다>

그러면 이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지파죠. <아닙니다. 성막의 봉사를 위해 선택된 지파입니다.>

그 레위 지파는 장자를 대표하는 거예요. <억지 해석입니다>

그 장자는 남자를 대표하는 거거든요. <이것도 억지입니다>

장자라는 것은 그 남자는 뭘 대표하는 거예요?

구약에서 성경에서 사람을 계수할 때 어른 성인 남자만 세잖아요. 그럼 여자와 어린 아이들은 사람 취급을 안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가정을 센 거라구요. <아닙니다. 한 가정에 여러 형제가 살고 있으면 남자 수가 가정 수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남자는 전체의 인구를 대표한 거예요.

근깐 그러면 레위인은 이스라엘 전체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를 대표하는 거거든요. <아닙니다>

그들이 레위인들이 하나님 앞에 바쳐 진거죠.

그들은 자기가 땅이 없고 기업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으로 먹고 살 수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바쳐진 자들이에요.

이들을 전체를 대신해서 그게 십일조라구요. <억지로 풀고 있습니다.>

원래는 십일조는 성경 그 율법대로 하자면 십일조 아니에요.

십의 일조는 레위인들에게 주고

또 십일조 하나는 고아와 과부를 위한 구제에 쓰고

또 삼년에 한 번 십일조는 그들이 성전에 올라가는 여비로 썻다구요.

그러닌까 정확히 우리가 할라면 이 시대에 우리가 하라면 십에 이점 몇 조 해야 하는 거예요. 그게 원칙이에요. <틀린 말입니다>

그런데 그걸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성경에서 지금 두 군데서 십일조에 대해서 이야기하구 있다구요.

<틀린 말입니다. 십일조는 구약에 24번 나오고 신약에 3번 나옵니다. 구약에 십분의 일은 26번 나옵니다. 신약에 7번 나옵니다. 김목사는 성경을 읽었나? 안 읽었나?>

<권영구 목사 해석>

제1의 십일조: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을 레위인에게 드리는 것이다.

(레 27:30)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민 18: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제2의 십일조: 9/10 남은 것 중에서 1/10을 하나님의 이름을 둔 곳이나 택하신 곳으로 가서 네 권속과 함께 그리고 레위인과 함께 먹고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신 14:22-27) “[22]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27]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제3의 십일조: 9/10 남은 중에서 1/10을 3년째에는 성막으로 가지고 가지 말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성읍에서 레위인과 거류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먹이라 그리하면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주시리라고 하십니다.

(신 14:28-29) “[28]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왜 거기에 목매달고 있는지 아십니까?

혹시 복 못 받을까봐. 그래서 십일조 하는 거예요. 아니에요? <틀린 말입니다>

확실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라구요. 복 받으려고 하시는거 아니에요?

여러분. 그러면 보시자구요.

그 참 레위인 참 레위인이 누구에요?

누구를 대표해서 제사를 드림으로 해서 이들이 구원을 받는 것 예수님이잖아요.

그 참 레위인 그 레위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올 것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레위인들을 택한 거라 말이에요. <이해가 안 되는 말입니다>

근데 그 참 레위인인 예수가 오셨어요. <많은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오셨다고 하고, 또 우리의 죄를 속제하기 위해서 어린 양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레위인으로 오셨다는 말씀은 처음 듣는 말입니다. 즉 틀렸다는 말씀입니다. 머리에서 생각나는 대로 말을 막 하는데 설교가 아니고 성경 말씀이 아닙니다. 이런 말을 할 때는 분명한 성경구절을 제시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많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 재물인 그 예수가 오셨다구요.

참 레위인인 예수가 오시고 참 그가 참 제물이 되어 주셔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받쳐졌단 말이에요.

그러면 인제 십일조가 필요합니까? <문맥상으로 십일조가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모든 성경 말씀을 뒤집는 말입니다. 말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겠지요?>

레위인이 있어요?

지금 이 시대에?

목사가 레위인 입니까? <목사가 레위인이라고 말한 사람 없습니다.>

목사가 제사장이에요? <목사가 제사장이라고 말한 사람도 없습니다. 김성수 목사는 모든 목사들을 매도하고 자신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최고이고 다른 목회자들은 모두 틀렸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정작 틀린 사람은 김성수 목사입니다.>

여러분이 왕 같은 제사장 이라문서요.

반론합니다. 성도가 제사장이라면 그것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요?

베드로가 한 말씀 때문인가요?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위의 말씀을 만인 제사장설이라고 합니다.

올바른 해석 1

“구약 시대와는 달리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완전한 중보자이신 예수님이 구속사역을 성취하셨으므로,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그분의 공로를 힘입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경배하며 섬길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신약 성도들이 구약의 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수 있게 된 사실을 가리켜 만인 제사장론 이라고 한다.” <주석 책에서......>

구약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직접 뵈옵지 못하고 제사장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사나 기도, 응답 등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제사장의 직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 사역을 완성하심으로써 신약의 성도들은 제사장처럼 직접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위의 성경 말씀에 성도가 구약의 제사장이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목사가 구약의 제사장이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목사는 자신이 제사장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목사는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합니다.

그럼 성도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성도도 하나님의 종 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만약 성도가 제사장이라고 하면 목사도 성도가 목사가 되었으니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면 목사도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아래에서 말하고 있는 김성수 목사의 말은 틀린 말입니다.

목사 제사장 아니에요 누누이 얘기하지만 목사 존경하지 말래닌까요.

불쌍히 여겨 주세요.

자신을 소모시켜서 여러분을 가르쳐 천국에 들여보내는 자닌까.

목사는 섬기는 존재 아니라니까요.

여러분이 제사장이라는 말이에요.

김목사의 괴변입니다.

자기 말에 자신이 오류에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설교 한편에 이렇게 많은 오류를 범하는 것도 보기 드문 일입니다.

김목사도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교회나 목회자들을 사기꾼, 존경하지 말라는 등 언사를 사용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권영구 목사의 ‘목사와 성도의 차이’ 이론>

모두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입니다. 스스로 제사장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목사는 처음엔 성도였는데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권위로 성도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성도를 권면하고 교훈하고 때로는 책망도 하고 성경말씀으로 바르게 인도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직책과 직무는 다릅니다. 일반 성도는 성도의 직책과 직무가 있고, 목회자는 목회자가 받은 직책과 직무가 있습니다.

사람은 평등하지만 직책에 따라 권위가 주어집니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는 사장의 직책과 부장의 직책과 과장의 직책과 평사원의 직책에 따라 권위가 주어집니다. 권위를 인정하고 존경하고 따를 때 질서가 지켜집니다.

같은 직책을 가졌지만 직무에 따라 권위가 달라집니다. 영업과장, 경리과장, 감사과장 등 직무에 따라 권위가 달라지고 그 권위를 인정하고 존경하고 따를 때 질서가 지켜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도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직책과 직무를 주시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목회자의 직책을 인정하고, 목회자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하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섬기고 존경하고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것을 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여기서 장로는 목회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딤전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벧전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갈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목회자는 성도를 사랑하고 교훈하고 권면하고 섬겨야 합니다. 또 어린 양을 돌보듯이 돌보아야 합니다.

레위인들에게 우리가 할 일을 대신해서 당신들이 하니까 우리가 이것 주는 거다 라는 속전이었잖아요.

그 참 속전이 오셔서 하나님 앞에 다 바쳐졌잖아요.

속전이. 다 바쳐졌다구요.

그러면 인제 없는거에요. 필요 없는 거예요.

<지금 아무도 속전을 내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거는. 또 한 가지 지금 오해할 수 있는 구절이 누가복음에 있다구요. 11장 40절에

눅 11: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눅 11: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눅 11: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예수님이 직접 십일조 해라 그런다구요?

그러면 이 이야기를 뭡니까?

이렇게 질문하셔야줘.

이 이야기는 이 당시는 구약의 시대죠. 예수님이 아직 죽기 전이라구요. 부활하시기 전이잖아요. <혼자만 이 때를 구약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함께 신약이 시작되었다고 모든 성경학자들이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은 구약 시대, 오신 날부터 신약 시대,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 오순절 성령 강림하신 후에는 성령 시대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끊임없이 율법을 지키고 계셨잖아요 그때까지. 구약의 시대라구요 그러닌까 당연히 지켜야죠. <혼자 주장하는 말입니다.>

십일조 해야죠.

그 때는 구원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단 말이에요.

율법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단 말이에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가 지켜야할 이 만큼의 율법이 있다면 우리가 이 만큼 지켜놓면 나머지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 지키고 계셨다구요. <틀린 말입니다>

그러닌까 너희들 지금 율법을 지켜라 지켜라 지켜라 하는 것은 니들이 지킬 수 있는 존재다 하는 것이 아니라 니들이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아르라는 거란 말이에요.

말라기에서 너희들이 십일조 해라 내가 너희들이 십일조를 하면 축복을 하는지 안 하는지 나를 시험해 봐라 그러는 것은 구약 시대이기 때문에 너희들 십일조 해라 근데 못하지?

그 이야기와 아울러 너희들이 정말 율법 중에 가장 하기 쉬운 것이 뭐냐?

지나가는 여자만 봐도 간음한거고 <틀린 말입니다. 모든 남자는 눈을 감고 다녀야겠네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형제보고 이 바보 같은 놈 그래도 살인한 거라면 <이것도 틀린 말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근거하지도 않고 말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가장 우리가 형이하학적인 것으로 지켜낼 수 있는 것이 뭐냐구요?

십일조란 말이에요.

그런데 너희들은 그것조차도 못하더란 말이에요.

겨우 가지고 온다는게 저는 것 못쓰는 것 집에서 못쓰는 것 이런거 가지고 와가지고 나 십일조 했소 라고 이야기 한다라고 하나님이 이야기 하시잖아요.

그래서 이 나쁜 놈들아 그게 십일조냐?

봐라 니들 실력으로는 도저히 안 되지?

그러닌까 내가 한다.

그러면서 신약을 여는거란 말이에요.

거기서 십일조 안하면 죽어 그리고 협박하는거 아니라구요.<틀린 말입니다. 아무도 십일조 안 하면 죽는다는 말은 안 합니다>

그런데 이제 신약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율법이 완성됐다라는 말이에요. 볼까요? <끝 부분에 율법의 완성에 대한 글을 읽으십시오.>

마태복음 5장 17절 보십시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율법을 예수님이 완전케 하러 오셨다 그러죠. 그런데 쪼끔 남기고 가신 거에요?

완성 못하셨나요? 완성 하시고 가셨잖아요.

근데 여러분 유독히 고 십일조에만 묶여 있냐구요. 고 십일조 할려거든 매주 주일날 양 한 마리씩 끌고 오세요. 왜 안 끌고 오세요. 따른 율법은 왜 하나도 안 지키냔 말이에요. <십일조 하지 말라는 소리로 들리고, 십일조를 강조하는 교회 목회자는 잘못된 것처럼 들리네요.>

왜 그리고 제사 안 지내냔 말이에요.

가서. 그 율법은 하나도 무시하면서 자기의 축복과 관련돼 있는 십일조에는 묶여있단 말이에요.

그러면 십일조 하지 말라는 거냐?

기쁘죠?

굉장히. 아 자유롭다. 나 자유 얻었네. <성도가 십일조 안 하니까 자유롭다고 찬송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전부 달라고 한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다 달라고 하는 거예요.

니 전부를 내게 달라는 거예요.

이제. 너는 내꺼다란 말이에요.

 

<위의 말씀의 뜻은 구약의 십일조는 예수님의 구원의 완성으로 폐지되었으니 안 해도 되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제물이 되시고 율법도 완성해 주시고 구원해 주셨으니 우리 전부를 달라고 하신다는 말이네요.>

그게 바로 하나님이 오늘 과부를 칭찬하신 그 비밀이라구요.

너는 그 비밀을 알고 있구나.

이 땅에 눈을 두지 않고 하늘에 눈을 두며 그 소망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그런 하나님의 백성의 그 본질을 너는 알고 있는 자구나.

그걸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기 위해서 바로 자신의 전부를 다 내어 놓은 그 여자를 칭찬하신 거예요.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십의 일만 드려도 되는 것이 아니라 십의 십을 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선하게 쓰셔야 되는 거예요.

십의 일만 교회에다 덜렁 던져 놓고 나머지 십의 구는 자기를 치장하고 자기를 화려하게 만들고 자기의 욕심만을 따라서 그렇게 써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십의 십을 다 하나님을 위해 쓰는 거예요.

<여기서는 십의 일을 드리라고 하네요. 그런데 그 정도로 부족하고 십의 십을 다 드리라고 하네요.>

교회에다 꼭 다 안 갖다 내도 상관없어요. <틀린 말입니다.>

교회에다 헌금 안 해도 상관없어요. 여러분. 괜찮습니다. <이것도 틀린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그 모든 소유, 모든 시간, 삶 전체를 하나님을 위해 쓰는 거예요.

그 믿음을 근거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물질을 쓰시기 바랍니다.

자신 없으면 교회에다 갔다 맡기는 거예요. <그런데 교회에다 헌금 맡기라고 하네요. 말 뜻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것이 헌금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 재정 담당하는 분들이 아마 저를 보면서 굉장히 가슴을 칠거에요.

도대체 저 목사가 우리 은혜 어카운트(통장)에 얼마나 남은 있는지 알고나 저런소리 하는거냐.

왜 그런 걱정을 여러분들이 하시는 겁니까

여러분. 교회는 누가 세우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세워서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고 하나님이 완성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교회가 이제 막 세워졌기 때문에 필요한 것들이 우리의 은행 가지고 있는 발란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것을 제가 모르는 바가 아니에요.

에어컨 못사요?

부채들고 다니자구요.

전기세 못 내서 쫓겨나면 흩어지자구요. <여기도 문제가 있는 말입니다. 잘못하면 교회에 헌금하지 못하게 하고 교회를 흩어도 괜찮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여러분 교회가 왜 꼭 생기면 크게 사람이 많아지고 부흥하고 돈이 재정이 많아지고 그래야만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교회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카톨릭에 가세요.

14억이에요 거기는. 아니면 문씨 아저씨를 쫓아가던지 거기는 교주 중에 최고 부자 아니에요.

그 옆에 있으면 어떻게 떡 고물이라도 떨어질 줄 아세요?

그게 축복이에요?

아니에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흩으실 줄 몰라요.

잘 배웠으닌까 이제 흩어져서 너희들이 속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바로 좀 전해다오. <교회에 헌금을 안 하고 흩어지는 사람이 복음을 잘 전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언젠가 우리를 흩으시면 흩어지면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여러분의 돈을 내가지고 이 교회를 운영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교회는 하나님이 끌고가는 거예요.

헌금은 자기의 신앙 고백인 거예요.

버리는 연습하는 거예요.

하나님 내가 이 땅에서 이것 목적으로 두고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버려보는 거예요.

많이들 버리세요 버리려면. 버려보는 거예요. 그래서 아직도 아까워요?

그는 헌금할 준비 되어 있는 분 아니에요. 그러면 하지 마세요. 기달리세요. 먼져 하나님께 메달리십시오.

하나님 내 안에 헌금할 수 있는 이 믿음이라는 근거가 생기게 해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주십시오.

내가 이렇게 봉사하고 시간을 내어서 교회와서 헌신 할 수 있는 그러한 믿음부터 나에게 주십시오로 가시란 말이에요.

<잘못 오해하면 전부를 드릴 수 있는 믿음 달라고 기도시키는 것 같네요. 옳은 말인 것 같으면서도 오해의 소지가 많습니다. 십일조를 열 사람이 하는 것보다 혼자 전부를 드리는 것이 교회에 유익이 되겠죠.>

아니 어떻게 우리 청년들이 말이죠.

새벽에 나와 갔고 우리 어른들 대접하기 위해서 닭죽 끓여오고 스프 끓여오고 빵 사오고 그러냐고요. 자기들 당장 한 끼 걱정을 해야 할 우리 청년들이 말이에요 학생들이. 자기 아파트에다가 디파짓(보증금)할 돈이 없어가지고 깨쓰도 못키고 있는 얘들이 어떻게 어른들 걱정을 먼저 해주고 있냐구요.

어른들 와가지고 먹을 음식들 없는데 그냥 가시면 섭섭해 하실까봐 그러한 신앙의 근거들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 거예요.

내가 가진 것 이것 가지고 내 형제 자매를 섬길 수 있는 실력자가 되시란 말이에요.

그런 실력자가 되었을 때 주님 앞에 내 전부를 드릴 수 있는 그 행위가 바로 헌금인 것입니다. <무서운 말입니다. 위에서 말한 청년들처럼 하라는 말입니다.>

그 전에는 하지 마세요.

그 전에는 예수가 누구인지 아는데 더 노력하십시오.

거기에 더욱더 힘쓰시란 말입니다.

헌금은 우리의 신앙 고백입니다.

- 설교의 끝입니다 -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참고의 성경구절을 드립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인류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율법이 완성된 것입니다.

구약의 십계명이 “하라, 하지마라” 로 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사랑하라”가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랑을 자신의 몸을 우리를 위해 주심으로써 보여 주셨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막 12:33) "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갈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막 12:29-32)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요 13:34) "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성경을 전하는 목회자들이 참고 할 구절>

(신 4: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신 12:3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

(잠 30:6)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벧후 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나타난 목자와 양의 관계 설명>

1) 양을 치는 사람들을 목자라 하였습니다.

(창 46:32)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눅 2: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2) 다윗을 목자라 하였습니다.

(삼하 5:2)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다윗을 말한 것이다.)

(겔 34: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3) 성부 하나님을 목자라 하였습니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4) 성자 예수님이 목자라 하였습니다.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5)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목자들을 주신다고 했다.

(렘 3: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6) 이스라엘 영적 지도자들을 목자라 하였습니다.

(겔 34: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7) 예수님을 목자장이라 합니다.

(벧전 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8) 예수님이 제자들을 목자로 세우셨습니다.

(요 21:15-18)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9) 교회 영적 지도자들을 목자라 합니다.

양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목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성경과 영적으로 지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들과 그 뒤를 잇는 장로들과 감독자들이 목자입니다. 현재는 사도들의 사역을 이어서 하는 목회자들이 목자이고, 하나님의 백성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하고 돌보는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목자라 합니다.

목자장 되시는 분이 목자를 세우시고 각각 양을 보내 돌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전통적 성경 해석입니다.

<참고 성경 구절>

(딤전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벧전 5: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요이 1:1) "장로인 나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히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헌금 설명>

1) 예수님이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였습니다.

(막 12:1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2) 십일조도 바치라 하였습니다. 십일조는 의무금이라고도 합니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3) 초대교회도 연보(헌금) 하였습니다.

(롬 15: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고전 16: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고전 16:2)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후 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고후 8: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고후 9:5)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고후 9:11)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고후 9: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4) 헌금의 정신

(대상 29:14-17) “[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15]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16]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5) 헌금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시 50: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레 22:29) "너희가 여호와께 감사제물을 드리려거든 너희가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드릴지며"

6) 드리기 싫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신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7)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잠 3:9-10) “[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8) 헌금은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제일 좋습니다.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김성수목사의 설교에 대한 평>

<장점>

설득력이 있습니다.

비논리를 적절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용하는 용어가 일반 목회자들이 사용하지 않는 자극적인 용어입니다. 그래서 처음 듣는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게 됩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내용을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단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좋아하는 설교입니다. 교회나 목회자들에게 시험든 사람, 불만이 있는 사람, 헌금에 의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들으면 좋아하는 설교입니다.

<단점>

원고설교 준비를 안 하는 설교입니다. 원고설교를 준비하였다면 사투리나 같은 말의 반복이나 횡설수설하지 않고 성경인용이 정확했을 것입니다.

성경을 깊게 모르고 성경 전체의 말씀을 파악하지 못한 설교입니다.

본문과 주제만 가지고 올라가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즉시 말로 전달하는 설교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실수를 하고 비논리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설교는 처음들을 때는 호기심을 유발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싫증을 느끼게 합니다. 철저한 준비가 없는 설교는 발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깊은 기도와 묵상이 없는 설교입니다.

성경해석을 천국에만 맞춘 설교입니다.

한 편의 설교에 이렇게 성경 인용이 잘못된 것을 처음 봅니다.

<문제점>

김성수 목사의 설교를 듣고 나면 모든 교회가 잘못되었고 목회자도 잘못되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느끼게 합니다. 기존 목회자들이 성경 해석을 잘못하고 있고 자신이 바르게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설교 내용을 믿는 사람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헌금을 안 드려도 된다, 십일조를 안 해도 된다, 전부 드릴 믿음이 생기면 드려라, 그때까지 기도를 하라 등 이러한 말들이 성도를 혼란에 빠지게 합니다.

교회 질서를 파괴하고 있는 설교입니다. 교회론이 정립되지 않은 설교입니다.

교회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고 교회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설교입니다.

성경 인용을 엉터리로 하여 성도를 혼란스럽게 하고 목회자에 대한 권위와 존경심을 없애므로 교회를 파괴하는 설교입니다.

매우 위험한 설교입니다. 성경의 전체적인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설교입니다.

이단들이 사용하는 설교 방식입니다. 기존 교회와 목회자를 비방하고 자기를 따라야 구원이 있다고 하는 설교입니다.

김성수 목사는 목사가 되어서도 가요를 불렀습니다. 대중 앞에서 찬송가를 불렀어야 했습니다. 영성이 부족한 형상입니다.

개인의 이력을 보니 신학을 졸업하고 목사안수 받고 바로 개척한 것 같습니다. 교회를 알기에 부족하고 성도를 알기에도 부족하고 성경을 알기에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분의 설교를 듣고 교회에 십일조와 헌금을 안 하는 성도가 있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거짓말도 자꾸 들으면 진짜로 믿어집니다.

틀린 설교도 자꾸 들으면 진짜로 믿어집니다.

이런 설교는 처음부터 듣지 않는 것이 자기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런 설교에 빠지게 되면 기존 교회에서 신앙생활하지 못합니다.

잘못하면 평생 떠도는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이 신앙에 빠지면 기존 교회의 질서를 파괴하고 자신의 영혼은 병들고 방황하게 됩니다.

몇 십 년 후에 깨닫고 돌아올 수도 있지만 너무 늦어 버립니다.

듣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이단 설교도 이와 비슷하게 들으면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단 설교도 자꾸 들으면 이단의 말이 모두 믿어지게 세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듣지 않는 것이 최선책입니다.

이분의 설교가 하나님 보시기에 이 시대에 필요했다면 생명을 더 연장하여 주셨을 것입니다.

모두가 분별의 영을 받아 잘못된 성경공부나 설교에 미혹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글을 쓰고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