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종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행4:12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다윈주의의 등장으로 기독교는 심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이러한 신학적 변화를 계속해서 정죄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이럴수록 기독교의 종교적 유일성과 더불어 타종교를 수용할 수 있는 이중적 부담을 책임으로 통감해야 한다. 타락한 인간들에게는 소위 말하는 양심의 빛이 희미하게 존재하므로 이것이 인간의 종교성을 가능케 한다. 그로 그들의 왜곡된 양심의 제한성 속에서 진리를 추구하게 되며, 이러한 노력들이 많은 종교의 모태가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유한성으로 말미암아 그 목적이 완전하게 실현될 수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를 강조한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시로만 인간은 참된 종교성을 체득하게 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육화하기 이전부터 이미 로고스로 선재해 계셨으며, 모든 만물과 진리의 근원이 되셨다. 그러므로 자연인들이 체득한 종교성은 오직 초월하시는 주님의 주권하에 놓여져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는 기독교의 우월성을 고수하면서 타종교와 접촉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신자로서 살아가다 보면 많은 신앙적 갈등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같은 하나의 종교인가? 아니면 인간이 가져야 할 유일한 진리인가 하는 것이다. 기독교를 유일한 진리라고 답을 한다면 이 대답은 자연스럽게 다른 종교는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한다.
타종교에 대한 올바른 설명은 기독교의 진리성 및 유일성을 굳게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의 종교다원주의는 바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종교다원주의가 말하는 대로 다른 종교들에도 구원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종교들도 나름대로의 진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에 충실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기독교가 타종교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기독교가 가지는 유일성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1. 기독교와 타종교
기독교와 타종교를 살필 때 기독교도 하나의 종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가 타종교와 같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세계의 종교를 언급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1) 인간의 본성인 종교
종교는 인간의 본성과 구조에 속해 있다. 인간에게는 다양한 적성과 능력이 있다. 이런 것은 인간이 하나의 종교적 존재라는 것을 시사한다. 인간은 날 때부터 종교적이기 때문에(전3:11) 인간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종교가 있다. 그리고 종교는 우리의 정서적 인격과 관계가 있다. 인간은 이 우주가 무한하고 자기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종교적이다. 그래서 종교는 인간이 사상가로 생각하고 반응하는 식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2) 응답으로서의 종교
종교에서 인간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받으면 신이 그 자신에게 현현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교는 인간의 신적 계시에 대한 응답이다. 이 응답은 여러 행위와 태도를 동반한다. 즉 신앙, 자복, 기도 등이다. 이것은 그 자체가 섬김이고 순종이다. 그래서 종교는 결코 독백이나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낸 대화가 아니다. 종교는 본질상 교통(Communion)으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 편에서 자기 계시의 행위가 있음을 전제한다.
2. 종교다원주의
1) 주장
종교다원주의는 종교간의 대립을 불식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타종교와의 대화를 주장하면서, 대화를 위해서는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같은 것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제(諸) 종교들 안에 있는 공통적인 요소들, 즉 초월적 경험, 종교의 도구적 기능, 도덕성과 인내 등을 강조하여 지속적인 대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대 종교다원주의의 대표적 학자들은 영국의 존 힉(J.Hick), 스페인의 파니카, 인도의 스탠리 사마르타(S.Samarta) 등이다. 한국에서는 최근에 물의를 빚었던 감신대의 변선환, 홍정수 교수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종교다원주의의 예수가 있듯이 각 종교에도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가 있으며, 각 종교에서 가르치는 진리를 따르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2) 비판
종교다원주의는 현대의 다양성(diversity)과 통일성(unity)이라는 2가지 주요 사항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것은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의 내적인 통일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 사상이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과 문제는 다음과 같다. ①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 선교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면 기독교의 선교는 불필요한 것이며,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은 의미 없는 말이 된다. ② 그것은 기독교의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를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상대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유일성을 주장한다. ③ 종교다원주의는 결국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넓은 길에 불과하다(마7:13,14).
3. 기독교의 유일성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차이점은 기독교의 핵심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느냐에 달렸다. 그것은 곧 역사성과 직접 연관을 가진다.
1) 기독교의 핵심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오신 분이 스스로 말씀이 되셨다. 기독교의 복음에서 선포자인 예수는 메시지가 되었고, 그의 죽음과 부활과 재림은 그 선포의 본질이 되었다. 그래서 사도적 가르침의 핵심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 가운데 개입하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단번에 죽으셨고, 3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서에서 말하는 유일한 사건이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이 사건을 하나의 상징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2) 기독교의 역사성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은 기독교가 역사적 사건 위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안에 개입하셔서 활동하셨다. 이렇게 기독교는 그것이 발생하게 된 사건에 의해서 다른 종교와 완전히 구별된다. 그 사건이야말로 기독교의 필연적 요소요, 출발점이요, 시금석이다. 기독교와 타종교의 또 하나의 차이점은 타종교는 '가르침'에 집중을 하지만 기독교는 '가르치는 자'에게 집중한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 가르침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은 타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종교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종교의 유무를 따지는 것은 헛된 일이다. 우리의 생활의 근본을 이루는 것이 종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종교가 참이냐 아니면 거짓이냐 이다. 기독교는 기독교 외에는 참종교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거짓이라고 한다. 동시에 그 모든 종교들은 인간 생활 기초를 이루고 있기에 종교를 긍정한다. 그러나 구원에 이르기에는 너무 미약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타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이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모든 시도의 현상적인 형태이다. 그러기엔 우리 신자들은 그들에게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예수그리스도를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다.
1. 1919년 이전의 신학적 동향
이 시기에는 역사적 비평 방법이 신학 사상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성경에 대해서는 성경의 가장 근본적인 권위가 될 수 있는 '축자영감'을 포기하게 되었고, 신관에 대해서도 이제 하나님은 더 이상 그의 초월적인 능력으로 이 세상에 개입하시지 않는다는 '불가개입설'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밖의 종래의 전통을 깨고 성경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며 오류를 그 속에 가지고 있는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 여느고전과 같이 취급되어져야 한다고 주장되었다.
근본적으로 바르트와 볼트만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또 역사와 신앙이 분리되어졌으며 종교와 참기독교도 분리 개념으로 취급되어졌고 그 분리된 공간을 뛰어넘을 필요조차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우발적으로 생겨난 역사성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인격과 그 생활을 변화시키는 진리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즉 종교는 역사성에 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변화 능력의 유무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를 예리하게 지적하는 것이 바로 레싱(Lessing)의 반지 이론이다. 옛날에 그 반지를 갖게 되면 사람과 하나님 모두에게 축복을 받게 되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반지가 있었다. 이것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한 사람에게 전해지게 되었는데 그에게는 세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어느 누구도 덜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생각하던 끝에 모조반지 2개를 몰래 만들어서 각각 아들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각각 그 아들들은 자기가 진짜 반지를 갖게 된 줄로 알고 열심히 생활해서 모두들 훌륭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똑같은 반지가 두 개나 더 있었고 어느 것의 진짜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세 아들은 모두 축복받게 되었다는 내용인데 여기서 세 아들이 바로 유대교와 기독교와 회교이다. 즉 지금은 서로 분리되어 각각 자신의 것만을 주장하지만 멀지 않아 자신을 초월하여 사람의 보편종교로 연합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상들이 유행하는 가운데 존 로빈슨 등은 '천국'의 개념을 종래에 알고 있던 것처럼 하늘에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오소의 존재'가 천국이라고 이해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에 대해서도 어떤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 아닌 '존재의 바탕'으로 각각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이 20세기초의 신학적 동향들이다.
2. 종교의 기원에 대하여
인간은 모두 본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종교성들을 가지고 있다. 인류의 초기에도 이러한 의식들은 일신교 내지 동물 제사 등의 형태로 나타났는데 회랍이나 이집트, 중국, 인도 등의 고대 문헌에 이러한 동물 제사에 관한 기록들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 진화론자들은 '자연물도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애니마티즘에 의해 초기인류는 자연을 숭배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졌는데 이것이 종교의 기원이 되었으며 후에 이것은 정령론으로 발전되었고 여기에서 다신론이 나왔으며 이어서 회랍신화가 만들어지고 현대의 다양한 종교에 이르렀다는 종교진화론을 주장하였다.
그들의 종교진화론, 즉 종교발전사를 보면 이러한 종교적 진행 가운데 이스라엘은 유일신론을 만들어 내었고 또 플라톤은 철학자 일신론을 만들어 내었으며 이러한 것들이 현대의 고등종교의 기원이 되었다고 각각 주장한다. 벨하우젠 등의 문서설 등이 여기에 조력하였으나 연구에 의해 유일신교와 정교한 제사종교가 아브라함 이전에도 존재했음이 증명되자 종교발전론은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한편 비엔나의 빌헬름 슈미트가 이끄는 학자들은 세계에 퍼져있는 소수민족들을 상대로 그들의 종교들을 파악해 본 결과 각각 그들도 고등한 신개념을 가지고 있음이 파악되었다. 하나님은 직접 인간 창조를 계획하시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셨으며 이렇게 해서 지어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된다.
이렇듯 최초의 인류는 유일신론자였으나 선사 시대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이를 입증하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B. C. 1500년경에 평민들이 동물로 제사 드린 사항들이 밝혀졌으며 인도의 베다경에서도 아리아족이 인더스 평야와 간지즈 평야를 거쳐 동쪽으로 가면서 동물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인도에 정착해서 더욱 정교한 제사를 드릴 때는 제사 중 읊는 찬송가에 신의 이름을 '태양'이라든지 '하늘에 계신 분'등으로 다양하게 불렀고 또 그를 우주의 통치자로 경배함으로써 단일신교의 기원이 되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는 내용들이 기록되었다.
이러한 인도 최초의 종교가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신의 이름이 '디아우스 피타르'(Dyaus Pitar), 회랍어의 '제우스'(Zeus Pater), 라틴어의 '쥬피터' '데우스', 초기 독일어의 '티우', '치우' 노르웨이의 '튀르'(Tyr) 등으로 각각 이름지어졌고 이들은 모두 '거룩한 자', '친구' 등의 의미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