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제도/갈3:28
독재자 히틀러는 아리안족의 우월성과 타민족의 열등성을 편협한 성서관에서 유추하였다. 한국의 독재정권때, 어떤 정치가는 기존의 권력을 옹호하기 위하여, 로마서를 인용함으로써, 성경의 권위를 현저하게 실추시켰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사상의 편협한 수용을 통하여, 인권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식민주의가 팽배할 무렵 유럽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이 득세하였다. 그의 양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이론에 의하여 제국들은 앞을 다투어 세력진출에 분투하였으며, 수많은 미개인들을 야만적으로 다루었다. 이처럼 여성에 대한 문제도 전통적인 여성이해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비롯된 남성우월주의의 표상이었다. 그 동기는 창세기의 아담을 통한 하와의 창조와, 사도 바울의 여성의 열등성에 대한 표현에서 비롯된다. 사형 옹호론자들은 구약의 하나님 개념에서 그 지지기반을 찾는다. 이처럼 모든 억압되고 왜곡된 구조는 편협한 인간들의 사고와 지식을 통하여 유지되었다. 우리는 보다 폭넓은 역사 이해와 심도있는 성경적 접근을 통하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보다 완전한 형태의 평등과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를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건전한 기독교의 육화(肉化)임에 틀림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다른 피조물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친히 지으실 만큼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베푸셨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엄성, 인권의 평등, 인격의 존중 등 인간 사회의 기본적 이념의 기초가 형성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제도를 보면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으므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에게 있어서 섭리론적 난제로 등장하는 것이다. 인종 차별의 문제, 성차별의 부당성, 여성해방운동의 발생, 사형 제도의 존폐문제 등에 관하여 역사·현실·성서적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인종차별의 문제
1) 인종주의와 인간의 존엄성
인종주의자들은 노아의 세 아들이 세 종족의 조상이 될 때 그 아비 노아로부터 받은 예언의 차별성(창9:20-27)에 근거한 인종 차별을 당연한 것이라 주장한다. 히틀러는 독일 아리안족을 위협한다고 생각하여 유대인들의 제거를 공언하고 수백만 유대인의 학살을 자행하는 사상적 동기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인간 창조의 과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인간 상호간의 땅-자연-기타 피조물과의 관계성 세 가지 속에서 존엄성을 지니도록 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창1:27,28).
2) 인종주의 비판
인간의 영혼은 천하보다 귀하고 한 생명은 천하와 맞바꿀 만큼 존엄하기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존귀하다. 그래서 인종간의 차별은 인정될 수 없다. 문명 선진국이 신대륙을 점령하던 시대에 정복자들은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피정복 대륙의 원주민을 노예로 학대하였다. 이러한 식민적 침략주의는 부당하다. 하나님의 형상을 공유한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을 함께 섬기고, 서로 사랑하며 대자연을 창조와 질서대로 보존해야 하는 공동 사명을 지닌 인류 공동체의 일원임을 인식할 때 인종 차별은 결단코 발생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2. 성차별의 부당성
1) 성차별의 실상
교회, 사회, 직장 어디에서나 여성의 역할과 지위에 한계가 설정되고 부모 양측 모두 남아 선호 경향을 가지고 있음은 한국에서 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교적 남존여비 사상과 성서에서 파생된 남성 우월주의(고전11:3; 14:34)에 반발한 한국의 여권 운동가들이 남녀 평등권과 여성 해방론을 본격적으로 부르짖고 나선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2) 성차별 철폐의 재인식
유교 사상의 부부유별(夫婦有別)과 부위부강(夫爲婦綱)은 구약성서에서 남녀 구별을 모호하게 할 옷을 바꿔 입는 행위 등을 엄하게 그한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고 한 것과 동일한 윤리관이다. 반면에 남녀가 다 하나(갈3:28)이며 남자가 여자로 말미암아 났다(고전11:11,12)는 등의 말씀은 남녀 평등과 여성 우월성의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남녀의 구별 가운데 존속시킬 것은 존속시키고 폐지할 것은 폐지해야 할 것이다. 여자로서 특성 있는 고유한 성품과 역할이 있는 것이므로 그러한 차별됨을 존중히 여길 것이며 남성 중심의 부당한 차별 제도는 철폐되어야 할 것이다.
3. 여성해방운동
1) 여성해방운동의 관점들
남성 중심의 가부장 제도는 남성의 노동력이 전쟁이나 생업 활동에 절실하게 필요했던 농업, 목축업, 수산업, 임업, 광업 등 원시산업 시대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남녀 공히 직업 전선에서 똑같이 활동하며, 그 결과 여성의 경제적 역량이 심히 강화되었으므로 남녀 평등권 주장이나 여권 신장운동은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에 비하여 연약하며 출산과 수유의 독특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또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성에게 지배받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그 위치에 여성이 자리잡고 다스리는 상황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2) 새 여성상의 정립
하나님이 제정하신 창조 질서는 가정의 주부가 남편과 자녀를 위하여 다정다감한 가정분위기를 가꾸어 가는 것이다. 여성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과거의 왜곡된 시작이나 규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필요하다. 여성도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한 존재이며, 동시에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자여야 한다. 이 진리를 수용하면 자유한 정체성을 깨달으며 속박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다.
4. 사형 제도 존폐론
1) 사형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들
개인의 생명은 그 당사자의 모든 것이며 죽음은 온 천하를 잃는 것이다. 그러나 악한 한 생명을 제거함을 통하여 온 천하가 화평을 얻고 만족할 수 있다고 할 때, 그의 생명을 박탈함이 정당한가? 인간이 남의 생명에 관한 문제를 판단하고 결정한 권위를 가졌는가? 형사 정책은 사형제도의 존치(存置)를 주장한다. 사회 공익을 위한 합의(법률)에 의거 극형에 처함으로써 인과응보의 원리를 실현하고 일벌백계의 예방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창9:6; 출21:12,14; 마26:52; 롬13:4).
2) 사형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들
인과응보를 비인간적 앙화를 초래하는데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한 사람인데 고통은 부당하게도 그 가족들에게 돌아간다. 오판에 의한 사형 집행은 돌이킬 수 없는 범죄이며 순간적 사형보다 장기적 구금이 교육효과가 높다. 형벌권은 생존권에 우선할 수 없으며 생명의 주권은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만 있다. 그러므로 자살과 낙태도 불의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참으시되 심판의 징계로 회개를 유도하신다. 따라서 장기 복역을 통한 개과천선(改過遷善)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사람은 저마다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자기의 사명을 스스로 깨달아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종 차별이나 남녀 불평등은 개선되고 철폐되어야 한다. 사형 제도는 생명 활동을 박탈하는 대신 생활 활동을 제한하고 사회 접촉을 격리시킴으로 동일한 효과를 거두도록 대체되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의 도리이다.
1. 인권 운동의 역사
1) 세계의 인권운동
고대의 법전들에서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사항을 찾아보기 어렵다. 최초로 등장한 성문법들로는 1188년 레온 왕국의 봉신회의가 알퐁소 4세로부터 일련의 권리들의 비준을 받은 것을 비롯하여 1222년 앤드류 2세의 황금칙서, 1215년에 수락된 영국의 대헌장 등이 있다. 그 밖에 영국, 미국 등에서는 1628년의 권리청원과 1689년의 권리장전 그리고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 1791년 미국 권리장전 등이 있다. 19세기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의 각 나라들은 미국과 프랑스의 모범에 따라 각각 자국의 헌법에 이를 명시하게 되었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권 문제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더욱 가속화되었는데 양차대전 이후에 1945년 유엔헌장이 만들어지면서 기본적인 인권에 관한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한다든지 남녀 평등의 권리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이어서 1948년 국제 인권법 등이 제정되었고, 세계 인권선언이 발표되면서 인권 운동은 더욱 확장되었다.
2) 한국교회의 인권운동
18세기 한국에 천주교가 전파되면서 동료애가 싹트기 시작했는데, 교회는 천민과 양반들을 함께 예배 드리게 함으로 그리고 그들에게 성례를 행함으로써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평등의식을 실천에 옮겼다.
그 이후에도 여성들에게 세례를 주거나 동정으로 봉사하게 함으로써 여성 인권신장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또 초기 선교사들은 이화학당이나 정신, 배화, 숭의 등의 여성 교육기관을 세우거나 여성 운동기관을 설립함으로써 여성 인권운동에 더 큰 도움을 주었다.
한편 한국 교회가 구체적으로 인권운동을 최초로 실시한 것은1890년대 북장로회 무어(S.F.Moore)의 형평운동 때부터이다. 그는 백정을 상대로 선교하면서 당시 있었던 백정들에 대한 억울한 법을 시정하도록 건의한 것이다. 이러한 인권운동이 전쟁을 겪으면서 더욱 발전 되었는데 4·19와 5·16을 경과하면서 특히 3공화국을 지나면서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N.C.C.는 1974년 4월 11일 산하에 인권위원회를 설치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 밖에 각종 기독교 연합단체나 선교단체에서 현재 활발히 진행중이다.
2. 여성해방운동
남녀의 성별에서 오는 차별과 폐단들을 철폐하려는 운동으로 1960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B.프리던스 여사 등이 주동하여 전미 여성연맹을 결성하고 고용, 임금, 교육 등의 기회균등, 낙태의 자유 등을 호소하였다. 또 1792년 M.월스톤크라프트라는 여성 운동가는 여성의 존재에 대해서 남성에게 복종적인 것에 대하여 항의하였다. 그후 S.안토니 등은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투쟁을 벌였고 그 밖에 노예폐지론, 노동운동, 금주운동 등에도 앞장섰다.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여성해방운동은 세계 각지에 파급되었다.
3. 성경적인 여성관
교회 안에서 여성에 대한 연구가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이후 그 지원을 받아 이루어졌다. 세계가 다원화되고 여성들의 사회 참여도가 높아지면서 여성과 남성간의 관계 문제 그리고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창조 순위에 의한 차별의 문제가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실 성경의 창조기사를 통하여 볼 때 창조 순서에 따라 남자가 여자 위에 있는 것으로 생가하기 쉽다. 그러나 그 둘의 관계는 우열의 관계가 아닌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인 것이다(창1:26-31). 구약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당시 우세하던 가부장적 가족 형태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았으나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예수의 여성에 관한 태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있음을 본다. 여기서 바울의 여성관을 간략히 논하자면 바울은 남녀가 서로 인격적으로 동등하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나 여성은 스스로 잠잠하고 겸손할 것을 권면한다(딤전2:12). 아무리 여성이 경건에 있어서 훨씬 능가하고 실력에 있어서 우수하다 하더라도 교회의 강단에서 가르치거나 설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적인 여성관의 습득은 오늘날 발생할지도 모를 많은 남녀간의 혼나 내지는 필요 이상의 아집을 막아줄 수 있을 것이다.
4. 낙태
최근 연구 조사에 의하면 기혼 여성 7,500명 중 53%나 되는 여성이 1회 이상의 임신 중절수술을 했으며 그 가운데 56%는 2회 이상 중절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1993.3. 5. <한겨례 신문>) B. C. 2,500년경 중국의 역사 속에서도 발견되어지는 이 낙태는 현재 합법적으로 실시하는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매년 900-1,800만 건이나 시행되고 있다. 더구나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출생률의 2배나 되는 약 150만 건의 낙태가 시행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