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삶·

성차별의 부당성/갈3:28

제이비젼 2017. 5. 17. 00:12




  성차별은 전통적 사상이었으나 현대 여성해방운동은 성차별을 배척하고 있다. 이러한 남녀간 가치평가의 차별은 성격적인가, 교회에서의 실정은 어떠한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남자가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므로(고전11:11,12) 결코 여자가 남자보다 덜 중요할 수 없으며 더욱이 남자나 여자나 다 하나이라(갈3:28)는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 남녀평등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남자가 여자를 다스리게 된 전통의 근원은 여자가 남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뱀의 말을 따랐고 또 남자에게도 따르게 했기 때문이다(창3:16). 반면 남자는 여자를 잘 다스리지 못하였고 여자에게 이끌려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렸기에 가정에 대한 경제적 책임을 홀로 떠맡게 되었다(창3:17). 그러므로 남녀평등의 회복 주장은 가정적 평등과 사회적 평등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신구약성서 시대 모두 교회에서 여성의 활동은 때때로 남성보다 더욱 두드러지기도 하였고 그러한 여성 브리스길라에 대하여 바울은 좋게 여겼다(고전14:34).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와 결합되어 교회 및 사회의 여성활동에 대해 부정적이고 제한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실제로 기업체 내지는 모든 직장에서 여성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한국 교회 부흥의 주역이 여성들임에도 불구하고 상호이해와 협조에 대한 바른 인식의 부족으로 인하여 남존여비의 전통을 굳혀 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현상은 남아를 선호하는 등 잘못된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많은 여성들에 의하여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리하여 진부적 일각에서는 여성해방을 부르짖고 또 한편에서는 남성우월의식에 젖어있어 남녀간에 관계를 대립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1. 전통적 견해


 1) 주장

 남녀간의 관계에 있어서 전통적인 견해는 남성의 우월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보통 '남성우월주의' 라고 불린다. 이들의 주장은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하며 단지 남자를 보조하는 역할에 그친다고 주장한다. 동양의 가부장적 사회제도는 여성을 천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서구에 있어서 이러한 사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성경에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 교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교회에서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고전11:3),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14:34)는 바울의 구절들이 언급되면서 남성에 대한 복종이 바람직한 여성의 자세라고 가르치고 있다. 여성의 창조는 남성의 신체 일부를 제공받아 된 것이므로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다는 것이다. 창조의 목적에 있어서도 여성은 남성의 '돕는 자'로서, 나아가 여성은 인류 타락의 원인 제공자로서 책임과 연약함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2) 문제점

 위와 같은 주장은 과연 성경적으로 타당성을 가지는가? 여성의 위치에 대한 바울 언급들은 원리적인 말씀으로 보아야 하는가? 오히려 그것은 당시 교회의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표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있다. 십자가 아래서 모든 인류는 동등한 것이다(갈3:28). 죄로 인하여 남자는 여자를 다스리고 여자는 언제나 다스림의 위치를 빼앗으려고 하는 대립의 관계로 나아가게 되었지만(창3:16)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갈등과 대립을 회복하고 참다운 창조질서를 확립하였다. 단지 초대교회의 정리되지 아니한 모습들에서 노예의 문제, 이방인들의 문제와 더불어 여성의 지위 또한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복음이 점차 확산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의 역할이 교회 내에서 두드러지고 권리가 회복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여성해방론자들의 견해


 1) 주장

 남성우월론의 계속적인 득세에 반발하고 일어난 것이 소위 '여성해방 운동'이다. 이들은 이제껏 남성의 지배 아래서 억압받고 지내왔던 여성이 거기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더 나아가 남성과 여성은 동등하며 결코 여성이 열등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사상은 신학에도 영향을 미쳐 '여성(해방)신학'을 형성했다. 이들 교회 안의 진보적인 집단은 남녀간의 관계에 있어서 여성은 남자와 동등하며 때로 우월하기도 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주장의 근거가 되는 성경은 갈3:28과 고전11:11,12이다. 즉 여자와 남자는 원래 동등했으며, 어떤 면에서 보면 남자가 여자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여자가 더 위대하다는 것이다.


 2) 문제점

 이들의 여성해방론은 다분히 전통적인 남성우월관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남녀평등의 주장에서 더 나아가 여성우월 내지는 남녀간의 성 구별을 모호하게 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즉 남성이 하는 모든 사회·경제적 활동을 여성이 동등하게 수행함으로써 남성의 영역주장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여성의 해방이 곧 여성의 고유한 역할을 포기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지적되어야 한다. 


3. 성경의 가르침

 

 1) 고유한 역할

 성경에는 많은 여성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일들을 때로 남성들보다 더 지혜롭고 훌륭하게 감당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여자들은 잠잠하라고 가르쳤던 바울도 그의 초기 선교 사역에 여성들이 매우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으며, 특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부부로서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가 되었다(롬16:3). 브리스길라는 여자의 몸으로 남자를 가르치는 일을 하기도 하였다(행18:26). 이것은 바울의 가르침이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졌을 것임을 시사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선이 굵은 남성들을 통하여 역사하시기도 하지만 섬세하고 부드러운 여성들을 통해서도 큰 일을 이루신다. 


 2) 창조의 질서

 성경은 남녀 동등(同等)을 가르친다. 이것은 평등(平等)과는 다른 개념이다. 평등이란 말 속에는 '똑같다'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남녀를 똑같게 만들지 않으셨다. 남자와 여자는 결코 똑같을 수 없다. 기능과 구조뿐만 아니라 그 특성도 다르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한 인간으로 동등하며 그 누가 더 우월하고 월등한 것은 없다. 또한 성경은 남녀간의 질서가 있음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인간의 창조 순서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우선한다. 그러나 이것이 남성의 우월함과 여성의 열등함을 가리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신체구조와 정서에 맞는 기능을 상호간에 나타냄으로 사회의 균형을 이루어 낸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듯이, 가정의 머리는 남편이므로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섬김으로 창조시 부여된 가정의 질서를 이룰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가정과 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한 위계를 허락하셨고, 이것이 성경의 원리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시될 수 없으며, 또 그것이 '성차별'이라는 잘못된 방향으로 오도되어서도 안 된다. 


 남자와 여자는 모두다 하나님에 의해서 지음받은 '하나님의 형상보유자'이다. 성경은 이둘을 모두 '사람'이라고 부르며 그들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성경이 성차별을 가르친다는 기존의 주장은 잘못된 성경해석에 근거한 것이다. 성경은 남녀의 '동등'을 가르치며 동시에 남녀 사이의 '질서'를 가르친다. 우리는 이 2가지원리(동등과 질서)를 균형있게 잡음으로 '남존여비'나 '여성우월' 등의 극단적인 사상에 빠지지 말아야 하겠다. 남녀는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역을 조화롭게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1. 성서에서 남녀 관계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5:1,2). 그러므로 태초에 인간의 종족이 두 부분, 즉 두 개의 성으로 갈라진 상태를 의미하는 라틴어 secare에서 따온 말로 그 뜻은 '자르다', '나누다'는 뜻이다. 이것은 인간 관계에서 남성 또는 여성으로 각각 존재한다는 뜻으로 여성종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특별히 신약성서에서 남편에 대한 아내의 역할과 의무에 관한 구절, 즉 고전11:11,12에 나타난 바울의 설명에서 결혼은 남녀의 동등한 위치에서의 하나의 결합임을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갈3:28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 라고 했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남녀의 성을 서로 갈라놓고 보거나 두 개의 성에서 어느 하나의 성이 다른 것보다 우월하다든가 또는 열등하다고 보지 않았다. 오직 모든 인간(남성과 여성)은 하나님 앞에서 다같이 부족한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동등하게 받는다는 예수의 메시지가 여성들에게는 더욱 기쁜 소식으로 생각되었다. 


2. 남녀의 창조의 동일성


 하나님은 창2:21,22에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고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그것으로 여자를 만들었더라"고 하셨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은 여자가 남자의 옆구리에서 취해졌으니 남자와 동등한 존재가 될 수 없으며 남자의 심장 부분에서 취하였으니 남자의 사랑을 받는 종속적인 존재로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보다 어원적인 뜻으로 본다면 갈빗대(rib)라는 말은 생명(lire)이라는 말과 관계된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는 똑같은 생명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각기 다른 두 쪽이 아니고 한 몸(one flesh)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와를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로 지으셨다(창2:18,20), 이 말을 번역한 영어성경 KJV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함축되어 있다. 여기서 ezer란 도움(help) 또는 돕는 자(helper)라는 뜻의 명사로서 이 말은 구약에서 21번 나온다. 16번에 걸쳐서 종속적인 위치에서가 아닌 초능력자인 위치에서 돕는자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여자는 모든 면에서 남자와 동등하게 창조되었고, 남자와 같은 모든 존재의 위치에서 서로 관계를 맺게 된다. 아담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하와를 자신의 종속적인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자기와 똑같은 존재로 보았다. 


3. 예수와 여자


 예수는 본래 남성으로서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이 당에 오셨다. 그는 여성들을 인간으로 대우하셨다. 또 감성적이거나 연약함으로서 아니라, 그들이 회개하고 사랑하도록 한 인격으로서 대우하셨다. 특히 예수는 혼인잔치, 잃어버린 동전, 맷돌을 돌리는 것, 빵에 누룩을 넣는 것 등 모두 여성의 역할을 통하여 그의 가르침에 사용하였다. 여성이나 여성적인 것에 대하여 조롱하거나 비난한 적은 결코 없었다. 또한 예수는 여자들에 대해서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공공연히 그들과 접촉하시기까지 하셨다. 이것은 유대사회에서 보기 힘든 것으로, 유대사회에서는 여자들과 접촉을 꺼려하여 거스름돈을 받을 때도 여자로부터 손으로 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예수께서는 18년 동안 혈루병 앓던 여인이 자신의 옷자락을 만짐으로 고침을 받을 때 이를 책망하지 않으셨으며, 마리아가 예수에게 향유를 붓고 그의 발에 입맞추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던 때 제자들이 예수를 부인하고 다 도망하였지만 여인들은 예수를 끝까지 따랐으며, 안식 후 첫날 예수의 무덤에 맨 처음 간 사람도 여인들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우연한 사건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배려한 행위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의 지상 생활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여성에게 있어 제일 친한 친구로 등장했다. 


4. 남녀의 결혼


 결혼은 남녀의 성차별이 아닌 존경, 의무, 권위, 순종 및 역할 차이를 말한다. 오늘날에는 동료의식, 애정, 자기 실현, 성장, 남녀 동등권을 강조하는 결혼관을 중요시하고 있다. 이런 결혼에서는 서로를 각자의 역할이나 이성간으로 보기보다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인정한다. 각자는 필요와 능력을 특별한 개인적 자산을 가지고 결혼이라는 구성체에 힘을 쏫는다. 이런 것들은 가정 생활 양식에 창조성, 융통성, 문제 해결 능력의 여유를 주며, 협력의 아름다움을 제공해 준다. 이 결혼의 공동체 안에 각자 특유한 재질과 관심을 개발해 나갈 수 있는 최대한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결혼은 남녀의 동등을 의미하는 협력 공동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