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의 어미 사라/창17:16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는 잉태치 못한 여인으로 등장하면서 '씨'와 관련된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씨'로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는 약속이 늦어지자 사라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여종 하갈을 통해서 '약속의 씨'를 만들려는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열국의 어미라는 축복을 받아 '약속의 씨'인 이삭을 낳게 된다.
노년에 얻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남편 아브라함의 믿음에 함께 순종하는 믿음의 여인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과 더불어 이스라엘 민족의 부끄러움이 없는 어머니가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사래에서 사라로, 노년에 이삭을 잉태하여 열국의 어미가 된 사라의 믿음과 생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아브라함의 아내이자 이복 누이인 사라(hrc, 여왕)는 잉태치 못하는 여인으로 등장한다. 신약성서에서 자유하는 여자로 상징된 사라는 평생을 갈대아 우르에서 약 960km 떨어진 하란으로, 다시 640km 떨어진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며 '씨'와 관련된 삶을 산 여인이다. 한때 여종 하갈을 통해 '약속의 씨'를 만들려고 하는 잘못을 범하기도 했지만 결국 '열국의 어미'라는 축복을 받아 약속의 씨인 이삭을 낳고 믿음의 여인이 되어 127세에 죽었다.
1. 아브람의 아내 사래
1) 길 떠나는 사래(창11:27-12:9)
바벨탑 사건 이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아브람이었다. 다만 사래는 65세까지 자식이 없는 잉태치 못하는 여인일뿐이었다. 큰 민족에 대한 약속도, 이름의 창대함의 약속도 사래가 받은 것이 아니라 남편 아브람만이 받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00여 km나 되는 장도(壯途)의 나그네 길에 오른 것은 남편 아브람을 통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신약 성서는 사래를 남편에게 순복하는 여인의 표본으로 제시하고 있다(벧전3:6).
2) 아리따운 여인 사래(창12:10-20)
큰 민족을 이룰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렀으나 오히려 기근이 발생하여 사래 일행은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때 아브람은 안전을 도모하고자 편법으로 자신의 아내 사래를 누이로 속였다. 65세 정도였던 사래는 중년의 아름다움으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고, 드디어 바로의 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언뜻 보면 이들의 행위는 거짓된 것이 없다고 볼 수 있으나 하나님은 바로에게 큰 재앙을 내리셨다. 그 재앙의 성격은 알 수 없으나 사래를 보호하심은 그를 통한 '약속'의 신실성 때문인 것이다.
3) 생산치 못하는 사래(창16:1-16)
큰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10년이 지나도 요원(遙遠)했기에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창15:4)을 신뢰치 않고 고대 근동의 풍습대로 여종 하갈을 통하여 아들을 갖고자 했다. 그러나 하갈은 자신의 잉태를 알고 사래를 멸시하였고, 사래는 여종 하갈을 학대하여 광야로 쫓아냈다. 결국 하갈은 이스마엘을 낳아 사래에게 데려온다. 사래의 삶에 하갈이 등장한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갈4:21-31을 보면 '여종'과 '자유하는 여자', '육신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의 대비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중요한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2. 연단받는 열국의 어미 사라
1) '사래'에서 '사라'로(창17:15-18:15)
아브람 99세, 사래 89세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언약의 표징인 할례를 명하심으로(창17:11) 구체적인 언약을 실행해 나가신다. 아브람에게는 '아브라함', 사래에게는 '사라'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심으로 그들의 정체성(identity)을 새롭게 하셨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사라에게 아들을 낳을 것과 열국의 어미가 될 것을 약속하셨다. 다시 하나님께서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 나타나셔서 사라의 잉태를 약속하였으나 사라는 자신의 경수(經水)가 끊긴 것을 알고 그 약속을 불신하고 웃는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사라에게 상기시킨다(18:14). 참으로 하나님은 믿는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이다(막9:23). 그것은 사라의 삶에서 잘 드러난다.
2) 범죄하는 사라(창20:1-18)
아브라함이 남방의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고 있을 때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려고 하였다. 원인은 아브라함이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의 집에 재앙을 내리사 모든 태(胎)를 닫으셨다. 또한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사 그를 질타하심으로 사라를 구원해주셨다. 이는 사라 부부의 명백한 죄악이다. 왜냐하면 전에 애굽의 바로 왕에게 같은 잘못을 범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몸에서 그 '약속의 씨'가 나오리라고 언약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행위는 하나님의 언약을 멸시하는 죄악인 것이다.
3. 믿음의 여인 사라
1) 이삭을 낳음(창21:1-21)
마침내 사라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졌다. 사라 나이 90세에 언약의 씨를 낳은 것이다. 그 아들을 이삭으로 이름하였으며, 젖을 떼는 날에 대연(大宴)을 배설(排設)하였다. 그때 이스마엘이 이삭을 히롱하는 것을 본 사라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다시 내어 쫓을 것을 아브라함에게 종용하였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하셔서 사라가 하갈을 내어쫓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대하여 갈4:21-31에서는 '자유하는 여자'가 '육신의 여종'을 내어쫓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따라서 21장의 사건은 필연적인 것으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의 상징으로 이해되어진다.
2) 믿음의 여인(창22:1-19)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시험에서 사라의 태도에 대해서는 성경이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사건의 전후를 살펴볼 때 히11:11을 보면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믿음으로 잉태하여 이삭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이삭을 낳은 사라의 믿음은 완숙했으며, 열국의 어미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험에 순종하는 남편 아브라함을 이해하고 같이 순종하는 사라의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는 그릴 수 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순종을 도와 이삭을 바치는 번제를 도움으로 믿음의 의를 드러냈으며, 127세에 생을 마감하여 아브라함이 자신을 위해 준비한 헷 족속의 막벨라 밭 굴에 장사되었다.
3) 열국의 어머니(사51:2)
사라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의 시금석이 되었다. 그녀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보았음에도 아브라함은 믿음을 잃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롬4:19). 또한 사라는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더불어 열국의 어미로 이사야 선지자는 밝히고 있다(사51:2). 더불어 바울은 사라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의 상징으로 '자유자' 곧 우리 어머니로 밝히고 있다(갈4:26). 이와 같이 사라는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과 더불어 이스라엘 민족의 부끄러움이 없는 어머니가 되었다.
기독교인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사라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믿지 못했지만, 결국 그분을 신뢰함으로 새 언약의 씨를 자신의 죽은 몸에 잉태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이는 그녀가 큰 믿음을 지녔기에 가능했던 아름다운 삶이라 할 수 있다. 우리들 역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생각 속에 제한시키지 않는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1. 사라의 죽음과 장사(고고학적 입장)
고대 청동기 문화의 특성은 전반적으로 해안을 따라서 유럽과 다양한 관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네델란드, 북도이취, 덴마크, 스웨덴 남부와 노르웨이 남부 지역의(B.C. 25-23세기) 집단들에 의해 발전된 문명이 공존하고 있다. 무덤의 형태를 살펴보면 입구없는 무덤(Dolmen), 블록 벽면 위에 돌을 얹어 놓은 통로로된 무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역에 따라 이 통로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거석 기념비와 함께 씨족을 합장했던 이들은 대부분 유럽의 청동 문명이 증거해 주는 바처럼 농사와 함께 가축을 쳤다. 이러한 고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아브라함은 헷 족속으로부터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막벨라 밭과 굴을 사들였다. 아브라함은 이 굴을 씨족의 소유 매장지로 정하고 사라를 장사하였다.
2. 사라의 인간성
1) 사라의 본성
사라를 올바르게 평가하려면 우선 사라의 본성을 알아야 한다. 사라는 사랑이 많았으나 질투심이 강하고 오만했다.
즉 그의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의 첩으로 주어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 후 자신의 몸에서 이삭이 태어나자 어머니로서의 질투심으로 인해 잔인한 행동을 취했다. 사라는 이스마엘이 12세 때 이스마엘과 그 어머니 하갈을 내쫓음으로서 이삭의 안전을 확보한다.
또한 기근으로 인해 그랄 땅에 갔을 때 그랄 왕 아비멜렉 앞에서 아브라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그의 누이라고 속였다.
2) 사라의 불신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만년에 자식을 갖게 되리라는 약속을 하셨다. 사라는 그러한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의심을 품고 그러한 약속 성취를 위해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사라는 자신의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의 첩으로 주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확증해주시는 말씀을 불신하며 비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단순히 한 인격으로 평가해 볼 때 사라는 모든 점에서 존경할 만한 여인이다.
3) 사라의 경건
사라의 경건은 히11:11,12에 잘 제시되어 있다.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의 신앙을 공유하였다. 사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약속만을 믿은 것이 아니라 그러한 약속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가지고 있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다. 그녀의 믿음은 때론 극심한 갈등과 혼란을 겪었지만 믿음이 변치 않고 하나님에 대한 경건성을 유지하였다.
3. 복음과 율법의 비유로서의 사라와 하갈
1) 두 여자는 다른 두 가지 언약을 의미한다.
사라는 보다 고상한 자유와 보다 큰 영적인 충만함을 지닌 복음을 상징하는 예루살렘을 의미하였고(갈4:26-28), 하갈은 노예적인 강요와 극심한 협박을 수반한 율법을 상징하는 시내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갈4:22,25). 시내 산은 두려움과 속박을 의미하나 예루살렘은 자유함과 기쁨을 나타낸다.
2) 복음(사라)에 대한 반대를 의미하는 율법(하갈)
복음과 대조적으로 율법은 사람들을 구속하거나 얽매이게 한다. 이처럼 사라의 아들 이삭의 후손들과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의 후손 사이는 지금까지도 적대 관계에 있다.
3) 복음은 율법보다 더 풍성한 유업을 제공한다.
바울은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갈4:30,31). 율법과 복음은 공존할 수 없고 공동으로 재산을 상속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사라의 아들 이삭은 하나님의 풍성한 유업을 이어받았다. 이처럼 복음은 보다 높은 영적인 순종을 제공함으로 율법을 폐지한다.
4. 바벨탑 사건
바벨탑이란 일반적으로 창11장에서 묘사된 탑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이 탑은 동쪽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시날(Shinar) 평지에 건설한 것이다.
인류 역사의 초기, 즉 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시날 땅에서 다시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세우고자 했다. 성경에 기록된 그들의 탑 건축 목적은 자기들의 이름을 떨치기 위함이었고 여호와께서 이를 불쾌하게 여기시고, 그 건축자들을 멀리 흩어지게 하심으로 이 계획을 중단 시키셨다. 이어서 그들의 언어를 다르게 하시어 서로 알아듣지 못하도록 하셨다. 결국 바벨탑 건축 계획은 언어의 혼란만 가져왔을 뿐 완성되지 못하였다. 여기서 언어적 정치적 혼잡은 그들에 대한 여호와의 징벌로 보고 있다.
5. 사래
'자유롭다, 석방되다, 풀려나다'라는 뜻이다. 즉 자유함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한다. 또한 개명된 사라에서 그리스도의 모형인 이삭이 탄생됨은 하나님의 영원한 자유함을 얻은 백성의 은혜이다(창17:15; 갈4:21-31).